원리본체론 - 전편 - 제1장 창조원리 - 2

2013. 1. 6. 21:35참사랑 영원까지/원리 본체론

2) 하나님의 실상   

 

인간으로부터 소립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존재는 성상과 형상, 양성과 음성이라는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공통된 법칙입니다.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는 피조만물을 보면 하나님이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 27절에도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이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모르거든 사람을 보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보면 결과인 피조세계가 성상과 형상, 양성과 음성으로 되어 있으니, 원인인 하나님도 성상과 형상, 음성과 양성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피조만물이 지닌 성상과 형상, 양성과 음성은 하나님을 닮은 것입니다. 하나님도 성상과 형상, 양성과 음성을 지니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지니고 있는 성상·형상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성상·형상과 무엇이 다른가?

 

하나님은 존재세계의 근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는 근본 본(本 ) 자를 붙여서 본성상(本性相)과 본형상(本形狀)이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양성과 음성에도 근본 본(本) 자를 붙여서 본양성(本陽性)과 본음성(本陰性)으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은 보이지는 않지만 본성상과 본형상, 본양성과 본음성의 이성성상이라는 꼴을 가진 중화적 통일체(中和的統一體)로 계십니다.

 

결과는 원인에 의해 나타나는 것인데 원인에 원인을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제1원인(第一原因)이 나옵니다. 제1원인이라는 말은 원인 중의 원인이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반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1원인이라는 것은 어디에서 왔느냐? 그것도 원인이 있어서 결과로 나타난 것이니 그 원인을 추적하면 또 원인이 나올 것이다. 계속 원인을 추적하면 결국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니 신(神)도 없고 무(無)다. 존재세계는 보이는 것밖에 없다.’ 이러한 유물사상을 가진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원인을 추구해 가더라도 최종적인 원인은 하나입니다. 그래서 제1원인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 제1원인을 가리켜서 기독교에서는 창조주, 과학에서는 절대자, 철학에서는 유일자(唯一者)라고 합니다. 이것을 한국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입니다.

 

제1원인인 하나님이 이성성상을 지녔기 때문에 결과체인 만물도 하나님을 닮아서 이성성상이라는 양면의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피조세계는 하나님의 본성상과 본형상, 본양성과 본음성의 이성성상이 전개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존재의 법칙에 따라 결과세계를 있게 한 원리본체(原理本體)입니다.

 

(1) 본성상과 본형상      


존재세계의 제1원인자인 하나님을 원리본체로 규정했습니다. 원리본체, 즉 하나님에게는 인간의 마음과 같은 부분이 있고 몸과 같은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본성상과 본형상의 이성성상입니다.

 

본성상은 인간의 마음과 같은 부분이고 본형상은 인간의 몸과 같은 부분입니다. 원리본체는 보이지는 않지만 인간의 마음과 몸처럼 두 속성(屬性)의 꼴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몸보다 마음이 중요한 것처럼 하나님도 본형상보다 본성상이 중심입니다. 이 본성상의 근본 속성이 바로 심정(心情)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성상은 하나님의 마음인데 마음 중에서도 가장 핵심이 심정이라는 것입니다. 심정은 하나님 참사랑의 뿌리가 되고, 하나님 인격(人格)의 핵이 됩니다.

 

그 심정에서 나온 사랑이 참사랑인데, 참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인격입니다. 하나님께서 실체를 지니지 않는 한 이런 내용은 실체화되지 않습니다. 또 느껴지지도 않고 체휼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실체를 지니기 위해서 인간을 창조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원리본체는 심정의 근원자로서 사람을 통해 참사랑을 실천하기 때문에 원리본체를 놓고 인격적인 하나님이라는 말을 쓰게 된 것입니다. 심정에서 나온 사랑이 참사랑이고, 참사랑을 표현하고 실천했을 때 나타나는 품격이 인격입니다. 하나님에게 ‘님’자를 붙이는 것도 인격적인 표현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에서는 사랑의 하나님, 거룩한 하나님, 영광의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이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심정의 하나님’이라고 규정짓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신이면서 동시에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무한대의 영(靈)으로 계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존재의 창조주로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스스로 계시는 절대자이십니다.

본형상은 본성상의 대상으로서 원리본체의 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능력에 해당하는 분야로서 현상세계를 존재케 하는 힘이기 때문에 만유원력(萬有原力)이라고 합니다. 만유원력에는 원리와 법도와 질서가 포함됩니다. 하나님도 이 만유원력의 원리와 법도와 질서 속에 운행하시고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창조주라고 해서 마음대로 사실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만유원력은 모든 존재를 존재하도록 하는 힘이기 때문에 그 분야는 무한대입니다. 그것을 성서에서는 능력(能力)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로마서 1장 20절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神性)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성서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신성은 본성상을 말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능력은 본형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원리본체의 본성상과 본형상은 피조만물의 성상·형상과 마찬가지로 주체(主體)와 대상(對象), 원인(原因)과 결과(結果), 상(上)과 하(下), 전(前)과 후(後), 안(內的)과 밖(外的), 종(縱的)과 횡(橫的), 무형(無形)과 유형(有形)이라는 상대적 관계입니다.

 

본성상과 본형상의 상대적 관계로 보면 본성상이 주체요, 본형상은 대상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주체와 대상은 격위(格位 : 품성의 차이)의 개념입니다. 원인과 결과는 시간의 개념이고, 상·하, 안·밖, 종·횡은 위치의 개념입니다. 또 전·후는 위치와 시간이 복합된 개념이고, 무형과 유형은 시각적인 개념입니다.

 

성상에 속하는 원인에는 시간과 공간이 없습니다. 원인에서 결과가 이루어지는 과정이 있어야 시간이 나오고, 형상이라는 결과가 나와야 형체(有形)가 드러나면서 존재하는 위치, 즉 공간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본성상은 무형이나 유형이라고 규정할 수 없지만, 본형상을 통해 형체가 드러났기 때문에 상대적인 개념으로 무형이라는 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창조가 벌어지기 전에 하나님에게도 완성하기 위한 성장기간이 있어야 합니다. 시각(視覺)이 감지할 수 있는 어느 한계선을 넘으면 그 점을 볼 수는 없지만, 끝없이 가더라도 그 한 점은 존재합니다. 그 핵(核 )이 하나님입니다. 그런 한 점과 같은 작은 점에서부터 하나님은 커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한 점에서부터 커 오셨다는 말은 하나님도 본성상과 본형상을 통해 당신 스스로를 창조하고 성장시켰다는 뜻입니다. 성서 출애굽기 3장 14절에도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2) 본양성과 본음성        

인간으로부터 소립자까지 모든 피조물은 공통적으로 하나님의 속성인 양성과 음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에게도 양성과 음성이 있습니다. 그것이 본양성과 본음성의 이성성상입니다. 양성과 음성은 하나의 성(性 ; 생식기)을 의미합니다. 창조는 본성상과 심정과 본형상의 능력을 동기로 하여 벌어지지만 최종적으로는 본양성과 본음성의 절대성(絶對性: 여기에서는 다른 것과 비교하거나 양립할 수 없는 번식을 위한 절대적인 생식기를 말함)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본양성의 절대성에서 출발한 정자는 참사랑의 씨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본음성의 절대성에서 출발한 난자는 참생명의 몸입니다. 참사랑의 씨와 참생명의 몸이 하나님 안에 공존하지만, 그 자체는 존재세계의 근원일 뿐 시간과 공간성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자체적으로는 창조나 번식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실체를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의 실체로 아담·해와(남자·여자)가 나타날 때 절대성 참아버지의 참사랑의 씨와 절대성 참어머니의 참생명의 몸이 하나 되어 번식이 이루어집니다. 실체인 아담과 해와의 생식기를 통해서 혈통이 세워지고 핏줄이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앞에서 밝힌 본성상과 본형상의 관계처럼 원리본체의 본양성과 본음성도 상대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서로는 주체와 대상, 안(內的)과 밖(外的), 우(右)와 좌(左)의 관계로 존재합니다. 본성상과 본형상은 서로 수직적이요 종적인 관계를 이루고 본양성과 본음성은 수평적이요 횡적인 관계를 이룹니다.

 

또 같은 양성과 음성도 똑같지는 않습니다. 양성도 자세히 살펴보면 양적인 부분에 해당하는 넓은 데가 있는가 하면, 음적인 부분에 해당하는 좁은 데가 있습니다. 음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음성도 양적인 부분에 해당하는 넓은 데가 있는가 하면, 음적인 부분에 해당하는 좁은 데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양성에도 양적인 기질과 음적인 기질이 있으며, 음성에도 양적인 기질과 음적인 기질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크게 보면 양성과 음성, 둘로 나누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성과 음성은 상하(上下)의 주종관계(主從關係)가 아니라 좌우(左右)의 평등관계(平等關係)입니다.

 

(3) 이성성상의 통일체             

앞에서 원리본체가 본성상과 본형상, 본양성과 본음성의 이성성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그렇다고 원리본체를 분립된 다수의 개체로 보면 안 됩니다.

 

본성상과 본형상의 통일체

본성상은 하나님의 마음이고 본형상은 하나님의 몸입니다. 하나님은 본성상과 본형상의 중화적 통일체로 계십니다. 마음과 몸은 개념으로 볼 때는 정신과 물질로 나뉘지만 실제는 하나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정신에 속하는 마음은 존재하기 위해 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다만 물질에 속하는 몸만이 공간을 필요로 할 뿐입니다. 그래서 본성상과 본형상은 공존하는 동일요소입니다. 제1원인자인 하나님의 본체는 마음과 몸, 두 요소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분리할 수 없는 완전한 동일 요소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통일체(統一體)입니다.

 

물과 수증기와 얼음은 액체·기체·고체라는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니지만 그 본질은 H2O입니다. 물도 H2O, 수증기도 H2O, 얼음도 H2O로 되어 있습니다. 액체·기체·고체로 존재하는 물의 형태는 각각 다르지만 그 본질은 수소와 산소라는 동일 요소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성성상은 이원론(二元論)이 아니고 일원론(一元論)입니다. 마음과 몸을 이원론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들은 통일체로 존재하기 때문에 일원론이 맞는 것입니다. 존재세계는 물질과 정신이 따로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 그 본질은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정신이 먼저냐, 물질이 먼저냐?’, ‘유물론이냐, 유심론이냐?’ 등의 논쟁은 더 이상 무의미합니다. 본질을 보니 원인적 존재인 하나님도 시차가 없는 정신과 물질의 두 요소로 되어 있으며,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통일체로 존재합니다. 여기에서 분명한 것은 제1원인 되시는 하나님만을 ‘창조주요, 절대자요, 유일자’라고 부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본성상의 속성은 심정과 참사랑과 인격이고 본형상의 속성은 원리와 법도와 질서입니다. 그런데 본성상과 본형상의 중심은 심정입니다. 심정이 있기 때문에 참사랑과 인격도 있고, 원리와 법도와 질서적인 생활이 가능합니다. 심정과 원리와 법도와 질서를 떼어 놓으면 굉장히 삭막합니다. 그래서 원리 안에서 심정이 작용하고, 법도 안에도 심정이 작용하고, 질서 안에도 심정이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정이 작용하고 있다는 말은 거기에 참사랑이 있고 인격이 들어 있다는 말입니다. 심정과 원리도 이질적인 요소라 해서 따로 떼어 놓고 보면 안 됩니다. 원리의 본체 되시는 하나님은 제1원인자이시며 본성상과 본형상, 이성성상의 중화적 통일체로 계십니다.

 

본성상과 본형상은 하나님의 마음과 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 속에는 심정과 참사랑과 인격이 있고, 하나님의 몸 속에는 원리와 법도와 질서가 있습니다. 원리와 법도와 질서를 떠난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인간도 하나님의 마음을 닮고 하나님의 몸을 닮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그렇게 될 수 있는 요소를 다 주셨습니다.

 

벼농사를 예로 들면, 벼는 이삭이 나오면 하얀 꽃이 피고 그 꽃이 떨어지면 벌어졌던 벼 껍질이 오므라들면서 그 속에 젖빛 달콤한 물이 가득찹니다. 그 달콤한 물이 씨가 됩니다. 여물기 전 벼 껍질 속에 들어 있는 달콤한 물을 씨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 달콤한 물은 씨가 되는 요소일 뿐입니다. 씨가 되는 요소가 일정 기간을 지나 완숙(完熟)하게 되면 비로소 씨로 완성됩니다. 완성(完成)과 완숙(完熟)은 좀 다른 개념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 속에도 하나님이 주신 요소가 다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성상이라고 하는 마음의 꼴 속에 하나님 심정의 본질적 속성을 닮을 수 있도록 모든 요소를 다 주셨습니다. 인간은 생활을 통해서 그 요소를 완숙시켜야 합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심정과 참사랑과 인격을 온전히 닮아야 하고, 몸으로는 하나님의 몸이 되어 원리와 법도와 질서적인 생활을 해야 완숙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지구상에 70억 인류가 살지만 모두가 하나님을 닮고 하나님 안으로 돌아가게 되면 통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인간의 마음이 본성상인 하나님의 마음을 닮고, 몸도 본형상인 하나님의 몸을 닮으면 통일이 됩니다. 하나님의 본질적 속성인 심정과 참사랑과 인격을 닮은 인간은 원리와 법도와 질서적인 생활을 통하여 인류를 통일체로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어디에 살든 오색인종이 하나님을 닮아 원리의 본체 안에서 실체화한다면 서로 갈라지고, 갈등하고, 대립하고, 투쟁하는 요소는 사라집니다. 그때 비로소 인류는 역사상 오랫동안 염원해 온 통일된 세계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본양성과 본음성의 통일체

하나님은 본성상과 본형상의 중화적 통일체일 뿐만 아니라 본양성과 본음성의 중화적 통일체로 계십니다. 본양성과 본음성이란 하나님의 절대성(絶對性 : 생식기관)에 속한 두 가지 요소를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참아버지의 생식기, 즉 절대성의 정자인 참생명의 씨를 가졌고, 참어머니의 생식기, 즉 절대성의 난자를 가졌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생명의 몸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자가 난자를 만나 새로운 혈통이 나오게 되는 것은 정자와 난자만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을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기관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생식기관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성을 실체로 나타낸 것이 남성과 여성입니다. 하나님의 실체 남성이 아담이고, 실체 여성이 해와입니다. 남성과 여성이 실체로 나타나기 전 하나님 속에 있던 양성과 음성은 하나님의 두 생식기입니다. 하나님이 두 생식기를 가지고 계시다는 말입니다. 인간이 분립되어 나올 때 남자와 여자의 생식기가 따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는 볼록이, 여자는 오목이를 가졌지만 그 두 생식기의 주인은 상대방입니다. 생식기는 자기 몸에 있지만 자기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두 생식기의 주인을 엇바꿔 놓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두 생식기를 가지고 계셨지만, 그 생식기는 쓸 데가 없었습니다. 원인적 존재에는 시간과 공간성이 없는데다 하나님은 무형의 본체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두 생식기를 가지고 계시지만 당신 스스로 느끼고 체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분리된 실체를 창조했고 인간은 남자의 생식기, 여자의 생식기 따로따로입니다.

 

하나님은 남성격 주체(男性格主體)이기 때문에 여자를 선유(先惟)하고 남자를 지었습니다. 여자를 선유했다는 말은 그 여자에 맞게끔 남자를 지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해와의 것이 오목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계셨기 때문에 오목이에 맞게끔 아담을 볼록이로 지은 것입니다. 아담의 볼록이는 하나님 아버지의 볼록이를 닮았습니다.

 

본양성과 본음성의 중화적 통일체로 계신 하나님은 격위로 볼 때는 남성격 주체(男性格主體)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여성격 주체(女性格主體)가 아니고 남성격 주체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해방신학을 주장하는 남미의 여성 신학자들이 “왜 하나님이 아버지냐?”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하나님은 어머니다.”라고 주장합니다. 창세기 1장 27절의 말씀(하나님은 당신의 모양대로 사람을 짓되 남자와 여자로 지었다)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로 지었는데 왜 하나님을 아버지로만 부르느냐, 어머니라고 부르자.”는 주장입니다. 그것은 원리를 모르면 이해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근본을 따진다면 하나님은 아버지만도 아니고 어머니만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의 성품과 어머니의 성품을 다 지니고 있는 우리의 부모입니다.

 

하나님은 본양성과 본음성의 중화적 통일체로 계시는 절대성의 본체로서 모든 양성과 음성의 주체이기 때문에 격위로 보면 남성격 주체가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라는 단어에는 절대성의 남성격 주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동시에 나의 아버지, 나의 부모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체라는 말은 대상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입니다. 마음이 주체라면 몸은 대상입니다. 마찬가지로 남성이 주체라면 여성은 대상입니다. 앞으로 남자와 여자의 질서는 여기에서 세워집니다. 따라서 주체와 대상이라는 말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피조세계는 모두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에 주체와 대상의 질서와 법칙 속에 운행됩니다.

 

남자를 먼저 지었기 때문에 여자는 남자의 종속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여자를 전제하고 남자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평등합니다. 사랑 때문에 평등한 것입니다.

 

양성과 음성은 상하관계나 원인과 결과가 아니라 주체와 대상의 횡적인 관계입니다. 아담에게 ‘너의 생식기는 네가 가지고 있지만 해와 것이다.’ 해와에게 ‘네가 가지고 있는 생식기는 네가 주인이 아니라 아담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부모인 하나님으로부터 공인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축복입니다. 가정이상은 영원합니다. 깨질 수가 없습니다. 둘이 하나되는 절대성 때문에 본연의 세계에서는 한 번 결혼하면 두 번 다시 결혼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의 생식기를 하나님으로부터 허락받고 나면 부모인 하나님이 그 안에 들어옵니다. ‘너희들 생식기의 주인은 나다.’ 그러니 너희들 맘대로 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생식기의 주인은 횡적으로 볼 때는 상대가 되고, 종적으로 볼 때는 하나님이 됩니다.

 

모든 피조만물에게는 보다 근본적인 성품이 있습니다. 결과세계가 양성과 음성으로 되어 있는 이 두 생식기의 실체로 나타났다는 말은, 제1원인적 존재가 가지고 있는 본양성과 본음성의 본체이신 하나님도 내적으로 두 생식기를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원리강론’에서는 하나님이 본양성과 본음성의 실체로 계시다고 밝혔지만, 하나님이 두 생식기를 가지고 있다는 표현은 하지 못했습니다.

 

본성상·본형상과 본양성·본음성의 통일체

하나님의 실상을 설명하려면 본성상과 본형상이라는 이성성상에 본양성과 본음성이라는 또 하나의 이성성상이 거론됩니다. 이것을 보고 이성성상이 아니라 사성성상(四性性相)이라고 잘못 이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성성상에는 본성상과 본형상, 본양성과 본음성이라는 네 가지 성품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성성상이 아니고 이성성상입니다.

 

왜냐하면 본양성과 본음성은 본성상과 본형상이라는 본성에 포함되는 속성(屬性)이기 때문입니다. 성상인 마음에는 명랑하고 유쾌하고 즐겁고 기쁜 양적인 요소가 있는 반면, 우울하고 짜증스럽고 기분 나쁜 음적인 요소도 있습니다. 두 요소가 마음속에 있다가 나타납니다.

 

형상도 마찬가지입니다. 형상 속에도 양적인 요소와 음적인 요소가 들어 있습니다. 그것을 성상 속에는 양성만 들어가고 형상 속에는 음성만 들어가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제1원인 되시는 하나님은 본성상과 본형상이라는 본성(本性), 그리고 본양성과 본음성이라는 속성(屬性)이 공존하는 이성성상으로 계시다는 것입니다.

 

‘원리강론’에 본양성과 본음성의 관계는 본성상과 본형상의 관계와 같다고 설명해 놓았습니다. 그 내용을 잘못 이해하면 본양성과 본음성의 관계도 본성상과 본형상의 관계와 같다고 규정하기 쉬운데, 본양성과 본음성은 본성상과 본형상에 속한 속성입니다.

 

그러므로 양성과 음성의 관계가 무조건 성상과 형상의 관계와 같다고 보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본성상과 본형상, 그리고 그 속성인 본양성과 본음성이 포함된 이성성상의 통일체입니다. 통일체에는 싸움의 개념이 없습니다. 한 분의 원인자에서 태어난 실체들은 모두 상대적인 존재이면서도 내용으로 볼 때는 하나입니다. 모든 존재는 정신과 물질이라는 두 요소로 이루어져 있지만, 싸우고 갈등하고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을 위한 통일체로 존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