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해설] 창조원리(1) : 문제 해결의 열쇠 이성성상 하나님

2013. 1. 8. 11:05참사랑 영원까지/원리해설

인생과 우주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사람으로 태어나 일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인생과 우주에 대해서 적어도 한번쯤은 깊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고민했던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떤사람들은  그 무엇보다도 먼저 인생문제를 해결하고자 구도의 길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아무도 이 문제에 대해서 속 시원하게 대답을 해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하늘은 이 세상을 사랑하사 인류의 참스승으로 문선명 선생을 보내셨습니다.

 

선생께서는 1920년 경신년(庚申年) 음력 1월 6일, 자시(子時)에 평안북도 정주군 덕언면 상사리 2221번지에서 부친 문경유(文慶裕) 선생과 모친 김경계(金慶繼) 여사 슬하 2남 6녀 중 둘째 아드님으로 탄생하셨습니다.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서 불쌍한 이 민족을 바라보면서 깊은 고민을 하는 동시에 인생의 근본문제들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고심하셨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부터 왔는가?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사후 우리 생명은 계속되는가? 하나님은 실존하시는가? 하나님은 과연 전능하신가? 전능하시다면 왜 인류세계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 않는가? 지구상에는 왜 수많은 고통이 존재하는가?” 등등, 끝없는 문제들에 골몰하시면서 신앙과 하나님을 통해서 그 해결점을 찾고자 몸부림을 치셨습니다.

 

그래서 선생께서는 주로 생가 뒤편 샛말잔등이라는 낮은 야산 나무숲에 들어가 하늘을 붙들고 기도하셨습니다. 또 집에서 가까운 묘두산에 들어가 홀로 깊은 사색에 몰두하시는 가운데 울음과 눈물로 하늘과 담판기도를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산에 올라서 풀과 나무와 바위를 붙들고 기도하다보면 풀뿌리가 뽑히고 나무뿌리가 뽑혀나갈 정도로 심각하고 처절한 심정으로 사무치게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러던 중 16세 되시던 해, 1935년 4월 17일 새벽이었습니다. 선생께서는 오랜 시간 눈물어린 산중 기도 끝에 형언할 수 없는 비상한 체험에 이르게 되셨습니다. 영적인 세계가 돌연히 눈앞에 펼쳐졌던 것이다. 그리고 홀연히 예수님께서 현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심오하고 놀라운 사실들을 많이 말씀하셨으며, 그 내용이 지금 통일원리의 핵심적인 내용이라고 합니다.

 

 그 후 여러 번 예수님을 비롯한 영계의 성자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시면서 더 깊은 진리를 깨닫게 되셨습니다. 그 때 선생은 왜 사람들이 인생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는가 하는 이유를 알게 되셨습니다.

 

모든존재는 원인과 결과의 법칙을 통해서 존재한다

 

모든 존재는 원인과 결과의 법칙으로 존재합니다. 그리고 결과적 존재의 존재목적은 원인적 존재에게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핸드폰이 있다면 핸드폰의 존재목적은 인간의 제조목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인적 존재의 제조목적을 모르고서는 결과적 존재의 존재목적을 알 수 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과적 존재인 인생과 우주에 대한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인적 존재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는 해결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과 우주에 관한 문제는 결국 그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어떠한 분으로 계시는가 하는 것을 모르고서는 풀리지 않는 것입니다. 창조원리는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를 광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무형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신성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무형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신성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피조세계를 관찰함으로써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로마서 1장 20절)고 기록하였습니다.

 

마치 모든 작품(作品)은 그 작자의 보이지 않는 성품의 실체적인 전개인 것 같이, 피조세계의 삼라만상은 그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그의 보이지 않는 신성(神性)을 그의 실체대상으로 전개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작품을 보아 그 작자의 성품을 알 수 있는 것 같이 이 피조만물을 보아서 하나님의 신성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陽性 陰性 이성성상으로 계시는 하나님

 

피조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 자체 내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존재들과의 사이에서도 양성과 음성의 이성성상의 상대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비로소 존재하게 됩니다. 소립자, 원자, 분자, 식물, 동물 등 모든 존재가 양성과 음성의 이성성상이 상대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존재하고 번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을 보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남성인 아담을 창조하시고는 혼자 있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하셨습니다(창세기 2장 18절). 그 후 아담의 대상으로 여성인 해와를 창조하신 후에야 선하다고 하셨습니다(창세기 1장 31절). 그리고 남성에게는 여성성상이, 여성에게는 남성성상이 각각 잠재해 있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의 이성성상은 서로 상대적 관계를 가지면서 존재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삼라만상의 모든 존재하는 모양은 겉과 속, 안과 밖, 앞과 뒤, 왼쪽과 오른쪽, 위와 아래, 높은 것과 낮은 것, 강한 것과 약한 것, 넓은 것과 좁은 것, 동과 서, 남과 북 등과 같이 모두 상대적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제 1원인 되시는 하나님도 역시 양성과 음성의 이성성상의 상대적 관계에 의해 존재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 27절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기록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양성과 음성의 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로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性相 形狀 이성성상으로 계시는 하나님

 

더 나아가서 보다 더 근본 된 또 하나의 이성성상의 상대적 관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외형(外形)과 내성(內性)을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보이는 외형은 보이지 않는 내성을 닮아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내성이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반드시 그 어떠한 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닮아 난 그 외형이 눈에 보이는 그 어떠한 꼴로써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에 보이지 않는 내성을 성상(性相)이라고 하고 보이는 외형을 형상(形狀)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상과 형상은 동일한 존재의 상대적인 양면의 꼴을 말하는 것이어서. 형상은 제2의 성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통틀어서 이성성상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인간은 몸이란 외형과 마음이란 내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나타나 보이는 몸은 보이지 않는 그 마음을 닮아난 것입니다. 따라서 마음이 어떠한 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마음을 닮아 난 몸도 어떠한 꼴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관상이나 수상 등 외모로써 보이지 않는 그의 마음과 운명을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이에 마음을 성상이라고 하고 몸을 형상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마음과 몸은 동일한 인간의 상대적인 양면의 꼴을 말하는 것이어서, 몸은 제 2의 마음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들을 통틀어서 이성성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존재는 성상과 형상에 의한 이성성상의 상대적 관계에 의해서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공적인 삶을 살기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성상입니다. 그 사람의 성상이 곧 그의 형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간절히 원하면 기적처럼 이루어진다 - 믿음의 힘이라는 책의 저자인 [삭티 거웨인]이라는 사람은 10년 동안이나 정신과 치료를 받을 정도로 내면세계가 복잡한 사람이었습니다. 10년 동안 두려움과 불안과 공포와 갈등으로 가득 찬 마음을 가지고 살다보면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만약에 그런 마음 즉 성상을 가지고 계속 살아갔다면 그의 일생은 참으로 비참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심리학과 명상을 통해서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자기스스로 자신의 마음 즉 성상을 새롭게 만들어간 것입니다. 그 결과 성공적인 새로운 삶을 얻게 되고 자신의 경험을 아주 구체적으로 정리해서 책으로 출판하였습니다. 이 책은 누구든 간절히 소망하는 것을 상상력으로 창조해내는 하나의 방법인 시각화를 통해서 자기 스스로가 자기 인생의 주인공임을 깨닫게 해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진실로 원하는 것을 이루어내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이미 자신의 내면에 있음을 발견하고, 현재의 삶을 소중히 하며 삶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합니다. 이성성상 원리로 보면 자신의 성상에 따라 자신의 형상도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상과 형상의 관계는 어떤 관계일까요?

 

그렇다면 성상과 형상의 관계는 어떤 관계일까요? 그것을 이해하면 우리의 인생에 새로운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상과 형상의 관계는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원인적인 것과 결과적인 것, 주체적인 것과 대상적인 것, 종적인 것과 횡적인 것의 상대적인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을 보면 마음과 몸은 각각 성상과 형상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몸은 마음을 닮았을 뿐만 아니라 마음이 명령하는 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인간은 그 목적을 지향하여 생을 유지하게 됩니다. 따라서 마음과 몸은 안과 밖, 원인과 결과 , 주체와 대상, 세로와 가로 등의 상대적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상에 따라 형상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동양의학에서도 마음의 변화를 칠정(七情), 즉 기쁨(喜).분노(怒).근심(憂).생각(思).슬픔(悲).놀람(驚).공포(恐) 등 일곱 가지로 나누고, 그 칠정이 심장. 간. 폐. 비. 위. 담. 신장 등 장부와 연계되어 감정이 상하거나 치우치면 해당되는 장기가 상하고, 그 결과 오장육부의 조화가 무너져 질병에 걸린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대인은 칠정 중에서도 특히 분노. 근심. 생각 때문에 몸을 상한다. 우선 분노는 간이 상하고 근심과 걱정은 폐를 상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깊은 생각에 잠겨 신경을 많이 쓰면 비장과 위장이 상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현대의학이나 심리학으로도 입증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병을 치료하는데도 마음을 치료하는 것이 먼저인 것입니다.

 

성상에 따라 형상이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성경말씀 마가복음 9:23절에도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믿음에 따라 현실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개인의 현실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개인의 성상을 새롭게 해야 할 것입니다. 가정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가족 전체의 성상을 새롭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피조물은 성상과 형상의 관계를 보면 그 차원과 정도는 다르지만, 무형의 성상이 원인이 되어 그의 형상적인 부분을 움직여서 그 개체로 하여금 어떠한 목적을 가진 피조물로서 존재하게 하는 것입니다. 모든 동물도 식물도 광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과학자들에 의하면 원자를 구성하고 있는 소립자는 모두 에너지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 에너지가 소립자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에너지에도 그로 하여금 소립자 형성의 목적을 지향하게 하는 성상적인 부분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는 성상과 형상을 갖추고 있는 그 에너지를 존재하게 함으로써 모든 존재계의 궁극적인 원인이 되는 한 존재를 추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 존재가 바로 모든 존재의 제일원인으로서, 그 모든 것들의 주체적인 성상과 형상을 갖추고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존재계의 이러한 제일원인을 우리는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그 주체적인 성상과 형상을 하나님의 본성상과 본형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상과 형상의 이성성상과 양성과 음성의 이성성상이 상대적 관계를 가짐으로 존재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상과 형상의 이성성상과 양성과 음성의 이성성상의 관계

 

그러면 성상과 형상의 이성성상과 양성과 음성의 이성성상은 서로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을까요? 본래 하나님의 본성상과 본형상은 각각 본양성과 본음성의 상대적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본양성과 본음성은 각각 본성상과 본형상의 속성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성과 음성은 각각 성상과 형상과의 관계와 동일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양성과 음성은 안과 밖, 원인과 결과, 주체와 대상 또는 가로와 세로 등의 상대적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서에 하나님이 남성인 아담의 갈빗대를 취하여 그의 대상으로 여성인 해와를 창조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창세기 2장 22절). 따라서 원리에서는 하나님에 있어서 양성과 음성은 각각 남성과 여성이라고 칭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온전한 하나님의 이성성상을 닮으려면 아담과 해와가 참사랑을 중심하고 하나 되어야 할 것입니다. 혼자서는 하나님의 온전한 이성성상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각기 반쪽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사랑도 생명도 혈통도 이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성성상은 참으로 놀라운 신관

 

하나님을 중심하고 완성된 피조세계는, 마치 마음을 중심하고 완성한 인간 하나와 같아서, 하나님의 창조목적대로 움직이는 하나의 완전한 유기체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 유기체도 성상과 형상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 유기체의 성상적인 존재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형상적인 존재가 피조세계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피조세계의 중심인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창세기 1장 27절)이라고 하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상적인 남성격 주체로 계신분이기 때문에 그의 대상으로서의 형상적인 피조세계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장 7절에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라고 기록되어 있는 성구는 바로 이러한 원리를 입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성상적인 남성격 주체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아버지라 불러 그 격위를 표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본성상(本性相)과 본형상(本形狀)의 이성성상(二性性相)의 중화적주체(中和的主體)인 동시에, 본성상적 남성과 본형상적 여성의 이성성상의 중화적주체로 계시며, 피조세계에 대하여는 성상적인 남성격주체로 계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성성상은 참으로 놀라운 신관입니다. 기존의 신관으로는 도저히 이를 수 없는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내리신 새로운 계시입니다. 동시에 이러한 신관은 인생과 우주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을 중심하고 새로운 인생관을 가진 사람들이 기존 신앙생활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