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시대와 한글의 가치

2015. 10. 11. 16:29삶이 깃든 이야기/문화유산

[기고-박규석] 디지털시대와 한글의 가치

 

[기고-박규석] 디지털시대와 한글의 가치 기사의 사진
2008년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 르 클레지오는 “한글은 보편성을 지닌 문자로 전 세계 소수 언어를 보호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한글이 영어, 스페인어보다 훨씬 더 논리적이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한글의 탄생’을 출간한 노마 히데키 교수는 한글을 “기적의 문자, 문자의 기적”이라고 극찬했다. 그 밖에도 한글을 높이 평가한 글은 수없이 많다. 세계 저명 인사들이 칭송하는 한글은 오늘날 대한민국이 정보통신 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디지털시대의 피해자는 한자를 쓰고 있는 중국과 일본이다.

 컴퓨터와 스마트폰 덕택에 알파벳 발음기호(pinyin)만으로 화면에 문자나 문장을 띄울 수 있고 그중에서 필요한 글자나 짧은 문장을 선택하다보니 사람들이 직접 손으로 한자 쓰기를 멀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중국 인민일보에서 ‘위기의 한자 살리기운동’을 펼치고 있고, 중국 국영방송(CCTV)에서는 ‘중국 한자 받아쓰기대회’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겠는가.

 

일본도 중국 못지않다.

2012년 일본 문화청에서 성인 347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설문에 응한 2069명 중 66.5%가 일상생활에서 컴퓨터와 휴대폰의 도움을 받아 이메일을 작성하는 탓에 간지(일본 한자)를 정확하게 손으로 쓰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답했다. 이처럼 디지털시대의 한자는 위기에 처해 있다. 전문가들도 중국이 결국 한자를 버리고 병음(pinyin)으로 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반면 한글은 디지털시대에 적합한 표기수단이다. 스마트폰의 경우 공간 압축 능력과 입력 속도에서 한글을 따라올 문자가 없다. 한국인의 정보처리 능력이 앞선 데에는 이런 요인이 자리하고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오늘날의 디지털시대를 다녀간 뒤 한글을 만들기라도 한 것처럼 한글의 과학성과 효율성은 디지털시대에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세종대왕이 고마울 따름이다. 

지난여름을 달구었던 ‘초등 교과서 한자 병기’ 문제는 반대 여론에 밀린 교육부가 9월 22일 개정 교육과정을 확정·발표하면서 초등학교 한자 교육과 관련해 “적정 한자 수 및 표기 방법 등 구체적인 방안은 정책연구를 통해 2016년 말까지 대안을 마련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이 문제 역시 디지털시대가 주는 의미와 방향을 교육부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소동이었다. 

신문, 방송, 잡지 그리고 거의 모든 서적에서 한자가 사라진 마당인데,

한자를 교과서에 병기해 가르치겠다는 발상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고 본다. 한자는 지속 가능한 지식이 되지 못한다. 일상의 말글살이가 한자를 기본으로 이뤄지고 있음에도 디지털시대의 도래와 함께 ‘문자건망증’ 환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중국과 일본의 현실에 주목해야 한다.

 

박물관으로 들어가기 일보직전에 있는 한자를 초등 교과서 한자 병기라는 꼼수를 부려 다시 살려낸다면 세계 최고의 소리글자 ‘한글’의 위상을 스스로 파괴하는 어리석은 짓이 될 것이다.

한글을 가지고 디지털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국민들에게 한자는 불편할 뿐이다. 한자를 공교육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세계 최고의 표기수단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긍지와 자부심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게 될 것이다. 국민 모두가 한글의 가치와 고마움을 가슴 깊이 느끼면서 우리말과 글자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박규석 한국전문번역사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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