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랑 영원까지/천성경
제10편 평화사상 - 제1장 평화란 무엇인가_ 1절
호로고루
2013. 3. 6. 12:37
1절 평화의 개념
1 지금 이 세계에서 제일 긴박한 과제가 뭐냐? 세계 전쟁은 하다가 끝납니다. 나라 간의 싸움도 끝날에 가서는 끝나지만, 영원히 계속되는 전쟁은 몸과 마음의 싸움입니다. 마음을 중심삼고 몸을 완전히 정복하게 되는 거기에 평화의 기준이 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영원히 하나되고, 부부가 영원히 하나되고, 부자가 영원히 하나되고, 일족이 영원히 하나되는 평화의 기지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평화의 기지가 개인을 넘고 종족을 넘고 민족을 넘고 인종을 넘어 세계 끝까지 돼 있어야 세계평화가 이루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개조 혁명이 필요합니다.
평화의 참뜻
2 평화를 이룬다는 것은 주체와 대상이 서로 하나됨을 말합니다. 한문의 평(平)은 영어로는 호리존털(horizontal)이고, 화(和)는 하모니(harmony)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중심과 상대가 상충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화하여 들어가는 것입니다.
3 역사 이래 인류는 평화를 염원하여 왔으나 이 땅에는 여전히 전쟁이 존속하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강대국이나 권력자들은 평화란 말을 종종 오용해 왔습니다. 그들은 평화를 운운하면서도 실제로는 사람들을 평화가 아닌 것으로 괴롭혀 왔습니다. 특히 공산주의자들은 도발을 일삼으면서 평화란 말을 입버릇처럼 써 왔습니다. 이렇게 평화라는 말은 불의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많이 이용되어 왔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지식이나 부, 그리고 사회적 위치나 정치적 권력과 같은 외적 조건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세상에서는 세계적 관심사를 공평하게 판단할 절대적 기준이 없으므로,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상충되는 이해관계에 얽혀 진정한 평화 유지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참평화는 오로지 참사랑의 기반 위에 세워질 수 있으며, 사랑의 관계는 인류를 함께 묶는 신(神)을 중심한 절대가치를 이해할 때만 체험할 수 있습니다.
4 화평이나 평화란 오랜 역사기간을 두고 세계가 지금까지 모든 수단 방법을 다 동원하여 온갖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어느 한 국가의 정치력이나 경제력, 군사력만을 가지고는 완전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가장 가까운 가정에서부터 종족·민족·국가, 그리고 세계를 넘어 천주까지를 포함하여 통용될 수 있는 근본적인 진리, 즉 평화의 사상이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5 평화라는 것은 구김살 하나 없는 평평한 상태를 말합니다. 모두 평평한 것으로 화해진다는 말입니다. 백 퍼센트 화하다 보면 원형이 됩니다. 흙을 섞어서 자꾸 굴려가다 보면 둥글게 됩니다. 뺑뺑하게 펼쳐져서 화하니까 결국은 최고의 원형이 이루어집니다. 구김살이 없고, 어느 무엇이든지 꽉 차지 않은 것이 없고, 완전히 충만하게 원형을 이루는 것입니다.
6 하나님은 절대자이시고 한 분입니다. 그 한 분이 완성의 기준을 자기 자신에게 두었겠습니까? 그랬다가는 큰일 납니다. 기쁨과 행복이라는 말은 혼자를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도 상대적 관계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머니와 자식 간에 둘이 하나가 되는 데에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평화라는 말 자체, 평평히 화한다는 것은 벌써 상대성을 안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평화나 행복이라는 말은 독자적인 입장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상대권과의 관계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7 평화는 상대적인 말입니다. 둘이 화(和)해서 평(平)이 되는 것이지, 독평(獨平)이 아닙니다. 상대와 동등한 자리에서 서로 좋아해야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자유니 무엇이니 해도 사랑을 빼놓고는 자유가 없습니다. 사랑이야말로 그것은 무한정의 자유입니다. 사랑을 가지고 채찍질을 하는 독재자가 되더라도 그것은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8 평화는 수평이 돼서 화하는 것을 말합니다. 평화는 혼자 이룰 수 없습니다. 이것은 상하관계 좌우관계 등 전부가 화해서 기쁠 수 있고, 모든 것이 기울어지지 않고 원만해야 됩니다. 그래야만 평화라는 것입니다.
평화와 사랑
9 하나님도 혼자 있으면 불행합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혼자서는 외롭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절대적인 참사랑을 좋아한다고 하면 이론에 맞습니다. 하나님보다 높은 사랑, 절대적인 존재보다 높은 사랑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필요로 하는 보다 절대적이고 높은 사랑을 원한다면,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도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됩니다. 우주 존재의 근원은 무엇이냐?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 절대적인 존재를 묶을 수 있는 절대적인 사랑이 우주 존재의 근원이요 기원이 됐으면, 이 천지는 평화의 세계를 조성할 수 있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이 우주에 존속하기 시작했다는 결론을 지으면, 사랑 때문에 평화와 이상도 현현한다는 논리가 자동적으로 나옵니다.
10 생명의 원천이 되시는 하나님은 어떤 기반 위에서 살기를 원하느냐? 평화의 기반 위에서 살기를 원할 것입니다. 평화의 기반은 생명이 설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체와 대상이 높고 낮음을 초월하고 공통적 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 질서적 단계를 초월한 그 무엇입니다. 그것이 참된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참된 사랑의 바탕 위에서 생명을 지니고 있고, 참된 사랑의 바탕 위에서 전지전능해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은 역사를 초월한 입장에 선 이상적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이지, 생명의 힘만 가지고 주체적 입장에 선다면 모든 만물이 하나 안 되려고 합니다. 미물인 동물이나 식물들도 전부 사랑의 주인이 자기를 가꿔 주기를 바라고 사랑의 손길이 오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11 오늘날까지 인간은 눈부신 과학의 발전을 이뤄 놓음으로써 창조적 생활면에서는 신을 닮았다고 할 수 있으나, 사랑의 생활에 있어서는 아직 전혀 신을 닮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슬픔과 고통과 불행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랑은 조화이기 때문에 사랑이 없는 곳에 조화가 있을 수 없으며, 조화가 없는 곳에 평화나 행복이 또한 있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가지가지의 비참상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리하여 신도 인간도, 신을 닮은 이상적인 생활, 이상적인 세계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이 원하고 인간의 본심이 원하는 이상적인 인간은 창조적이면서도 신을 중심한 사랑을 실천하는 선한 인간입니다. 또 신과 인간이 바라는 이상적인 세계는 환경을 개선하는 창조적 활동이 계속되면서 개인과 개인, 국가와 국가 사이에 사랑이 차고 넘치는 대조화의 통일세계입니다. 이 같은 새로운 타입의 인간이 새로운 통일세계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될 때, 오랫동안 인간을 괴롭혀 오던 일체의 슬픔, 고통, 싸움은 비로소 영원히 자취를 감추게 된다는 것입니다.
12 무엇을 중심삼고 세계를 수습하느냐? 오늘날 여기에 대해 역사가들도 말하고 현재 지성인들도 말하지만, 우선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무엇을 지도할 것이냐? 경제력을 중심삼고 지도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정치적인 입장을 중심삼고 지도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돈이 없어서 안 되는 것이 아니고, 정치체제가 없어서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이상에 통할 수 있는 사랑의 질서가 없습니다. 본연의 사랑의 질서가 세계적 기반 위에서 성장할 수 있는 진리를 모색할 수 있다면 거기서 비로소 평화의 기원이, 인간 본심이 안식할 수 있는 출발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13 평등은 하나를 중심삼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좌우라는 관념에서 둘이 하나의 수평을 이루어야 평등이 됩니다. 평화라는 말 자체가 반드시 상대적 관계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동서를 중심삼고 평화를 말합니다. 동쪽만을 중심삼은 평화는 일방적 평화이지 전체 평화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평(平)’ 자가 들어간 ‘평준(平準)’ ‘평형(平衡)’이라는 말은 모두 상대적 개념입니다. 둘 이상을 중심삼고 연결되는 데에서 성립되는 말입니다. 평화의 경지도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는 데서 이루어집니다. 남자와 여자가 하나된다는 것은 키가 같아서가 아닙니다. 키를 중심삼고 보면 남자는 크고 여자는 작습니다. 힘으로 봐도 남자는 강하고 여자는 약합니다. 외적인 면을 가지고는 수평을 취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상대적 수평권을 무엇을 중심삼고 이루느냐? 그것은 어떠한 힘도 아니고 지식도 아닙니다. 지식은 아무리 해박하다 하더라도 높고 낮음이 있습니다. 평등의 자리를 이룰 수 있는 단 하나의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14 ‘평’이라는 기준은 어디서 찾을 것이냐? 사랑을 중심삼은 기준에서만 가능합니다. 사랑은 남성이나 여성이나 우리의 모든 세포들이 요구하는 절대적인 이상봉입니다. 그 이상봉을 중심삼고 하나될 수 있는 기준, 전체를 대표한 기준으로 서기 때문에 평균이나 평등이라는 말은 힘이나 모양을 중심삼은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하는 말입니다.
15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느냐? 이상세계를 향해 갑니다. 또 평화세계, 통일세계를 향해 갑니다. 이상이니 통일이니 평화니 하는 것은 하나의 세계입니다. 그 하나의 세계의 중심이 뭐냐? 이 모든 것에 사랑이 중심이 안 돼 있으면 안 됩니다. 공산세계가 평화의 세계입니까? 민주세계가 평화의 세계입니까? 아무리 조직이 통일됐다고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통일세계가 못 됩니다. 사랑이 있어야 됩니다.
16 천년만년 불변하는 본질이 있다면 그 본질을 중심삼고 평화가 이루어져야 영원한 평화가 벌어질 것이고, 행복도 그런 본질을 중심삼고 벌어져야 영원한 행복이 이루어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이 참사랑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참다운 사랑을 중심으로 해서 주장하는 자유는 영원한 자유요, 그 참사랑을 중심삼고 시작되는 평화는 영원한 평화요, 그러한 행복은 영원한 행복이요, 그것을 중심삼고 전체가 통일되면 그것이 영원한 통일이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면 영원한 평화가 영원한 사회, 세계까지 연결되는 것입니다.
평화와 행복
17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된다면 어떻겠습니까? 몸과 마음이 기쁘겠습니까, 기쁘지 않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불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영원하신 것과 같이 나도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생명의 주체요 모든 것을 갖춘 분이고, 나는 그 갖춘 분의 사랑의 대상이니만큼 그가 슬퍼하지 않는 한 나도 슬퍼할 수 없고, 그가 기뻐하는 한 나도 영원히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완성한다는 것은 간단합니다. 행복한 것입니다. 평화롭고 행복한 것입니다. 그 이상은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이 꽉 차 있는 자리를 말합니다. 물론 그 가운데에는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또 원하는 것이 모두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18 불행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주려야 줄 수 없고 받으려야 받을 수 없는 사람이 불행한 사람입니다. 혼자서는 행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혼자서는 평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평화라는 것은 상대적 관계에서 벌어집니다. 사랑이니 행복이니 평화니 하는 말은 혼자 있을 때 성립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상대적 관념에서 성립되는 말이기에 그 상대가 완전한 상대가 아니고는 완전한 행복이 있을 수 없고, 완전한 평화와 완전한 사랑이 있을 수 없습니다.
19 인간은 갖은 노력을 다해 봤지만, 인간이 참으로 요구하는 참된 사랑이니, 참된 이상이니, 참된 행복이니, 참된 평화니 하는 것들을 바랐음에도 그러한 요건들을 성사할 수 있는 가망성마저 상실해 버린 비참한 실상에 놓여 있습니다. 이 변하는 인간상을 넘어 영원하고도 불변하고도 절대적인 분이 계시다면, 그분이야말로 우리가 아는 하나님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류가 바라는 참된 희망의 중심이요, 참된 행복의 중심이요, 참된 평화의 중심이요, 참된 사랑의 중심이요, 참된 이상의 중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왕이요, 이상과 행복과 평화의 왕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같은 소망의 기준, 같은 희망의 자리, 동고동락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참된 사랑이 어디서부터 시작하며 참된 이상과 참된 행복과 참된 평화가 어디서 시작하느냐 하는 근원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20 오늘날 세계 인류는 자기들도 모르지만 평화의 세계, 행복의 세계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유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근본적인 자유의 기반 위에 서지 못하고, 평화와 행복의 근본 된 자리에 서지 못한 연고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이시고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으로 말미암아 지음 받은 모든 만물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인간도 그 하나님이 자유 하시면 그와 더불어 자유 해야 되고, 하나님이 평화스러운 자리에 있으면 우리도 그분과 같은 자리에 서야 됩니다.
21 나 자신이 비천한 줄 알았지만, 우리 개개인 자체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시킬 수 없다는 사실, 나 자체가 아니고는 하나님의 이상을 성사시킬 수 없다는 사실, 하나님의 행복과 하나님의 평화를 완성시키는 데에 있어서 인간이 아니고는 안 된다는 확실한 사실을 지금까지 몰랐습니다. 부족한 나이지만,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완결시키고 이상을 완결시키고 하나님의 행복과 평화를 완결시킬 수 있는 고차원적인 가치의 존재입니다.
22 상대방을 위하면서 살아가겠다는 원칙만 들고 나가게 되면, 가정에서는 평화의 가정, 자유의 가정, 행복한 가정, 사랑의 가정, 사회에서도 평화의 사회, 자유의 사회, 행복한 사회가 이뤄질 것입니다. 국가와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떠한 곳에서든지 이 원칙을 중심삼고서는 행복과 자유와 평화와 사랑이 깃들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은 당연한 것입니다.
23 남을 위해 살고자 하는 남자와 여자가 부부가 되었다고 한다면, 그런 부부야말로 이상적인 부부입니다. 그러한 부부야말로 참다운 평화의 기준을 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 부부가 참으로 행복한 부부라는 것입니다. 그런 부부야말로 영원 보편의 참사랑의 주체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참으로 이상적인 부모는 어떠한 부모일 것인가? 자체를 위하여 존재하고 자기 자체를 위하여 생애를 보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을 위하여 태어났고, 그 자식들을 위하여 존재해 왔다고 생각하는 부모, 자식들을 위하여 생명을 바치고 생애를 끝마치겠다고 하는 부모가 있다고 한다면, 그러한 부모야말로 참부모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부모야말로 진정한 평화, 진정한 행복, 진정한 이상의 부모입니다. 자식이 태어나기를 부모를 위해서 태어났고, 사는 것도 부모를 위해서 살고, 죽는 것도 부모를 위해서 죽는다고 한다면, 그 자식은 효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진정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진정한 행복과 진정한 평화와 진정한 이상의 자식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4 평화의 기원, 행복의 기원을 어디에 세울 것이냐? 이제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나는 나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대상과 상대를 위해 태어났다.’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우주의 모든 난문제는 해결될 것입니다. 타락의 원인은 아담 해와가 자기 자각과 자기주장을 한 데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을 주장해야 할 텐데 반대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에게 하나의 공식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위해서 존재하는 데서만 참다운 이상과 행복과 영원한 세계가 연속될 수 있습니다.
25 아무리 잘난 남자라도 그 남자는 남자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여자를 위해 태어났습니다. 아무리 잘난 미녀도 자신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남자를 위해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본래 존재의 기원이 위해서 태어나는 것에서 시작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상세계를 창조한 공식을 여기서 찾아낼 수 있습니다. 위해서 존재하는 데에서만이 하나님의 참된 사랑이 출발할 수 있고, 하나님의 이상적 상대가 현현하고, 평화가 이루어지고 행복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26 오늘날 세계의 혼란상을 맞이한 모든 인류는 국가를 초월해 평화세계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중심삼은 평화는 지금까지 실패해 나왔습니다. 사람들이 바라던 모든 평화는 실패해 나왔으므로 이제 한 가지 가능성이 있고 소망을 줄 수 있는 곳이 있다 할 때, 그곳은 신을 중심삼은 평화세계의 논리를 제창하는 곳입니다. 그곳에서만이 혼란된 세계에 새로운 방향성, 새로운 역사성을 제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결론은 논리적으로 추구하게 될 때 얻어지는 당당한 결론입니다. 이 결론이 천국입니다. 천국을 말하는 것입니다. 평화의 세계, 중심을 가진 평화의 세계입니다. 그런 곳이 천국입니다. 그 중심은 역사성을 극복해야 되고, 종단성(宗團性)을 극복해야 되고, 그다음에 민족성, 인종성(人種性) 등 모든 것을 극복해야 됩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변치 않는 하나의 중심으로 남아질 수 있는 곳이 돼야 합니다.
27 종교가 가는 길, 윤리를 중심삼고 가는 길, 혹은 철학이 지향하는 진리의 길에서 행복의 세계를 소개할 수 있는 평화와 자유를 어떻게 찾아야 되겠습니까? 사람의 심정은 누구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수천년 전에 가졌던 심정이나 억천만년 후에 나타나는 심정은 같습니다. 심정의 세계는 발전이 없는 것입니다. 같은 기반에서 움직이는 심정을 이끌어내어 행복의 동산을 이룰 수 있는 세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회적인 기준, 행복감을 맛볼 수 있는 종교적인 의식, 이러한 것이 이 땅 위에는 없을 것인가? 만일 없다고 단정한다면 하나님은 어디로 가 계실 것인가?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인류와 더불어 계실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집니다.
28 인류를 붙들고 섭리와 윤리 도덕을 세워 선을 지향케 하는 천륜이 있다고 한다면, 하늘은 기필코 우리와 관계되고 인연된 모든 것을 해명하여 주는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남녀노유를 막론하고 이것을 심정적으로 긍정할 수 있는 한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화하고 동하면서 이 행복이 우리의 행복이요, 이 평화가 우리의 평화요, 이 자유가 우리의 자유라고 소리 높여 말할 수 있는 한때가 나타나야 될 것입니다. 그러지 않다면 하나님도, 어떤 위대한 사상가도 우리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평화와 자유
29 세계 인류는 평화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자유를 누리는 개인이 되어 자유의 사회, 자유의 나라, 자유의 세계에서 살기를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내 마음에 평화가 없고, 내 마음에 자유가 없고서는 진정한 행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참다운 인생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참다운 평화 속에서 참다운 자유를 구가하며 참다운 행복을 누리기를 바랄 것입니다. 오늘날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이구동성으로 이 세계는 평화의 세계가 못 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유를 부르짖고 있으나 심정에서 우러나 살 수 있는 자유스러운 환경이 못 되어 있음을 시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념적으로 고대하는 행복의 자아가 못 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30 모든 것은 기원이 좋은 것을 찾아갑니다. 또 자유로운 곳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행복한 것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자유는 자유대로, 행복은 행복대로, 평화는 평화대로 따로따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보조를 맞춰서 가야 합니다. 그러면 평화 가운데 자유가 있어야 되겠습니까, 자유 가운데 평화가 있어야 되겠습니까? 평화 가운데 자유가 있어야지, 자유 가운데 평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평화는 둘이 서로서로 화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서로 양보할 때 가능합니다.
31 사탄세계의 사랑을 중심삼고는 자유가 없습니다. 평화가 없습니다. 행복이 없습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이 없습니다. 그것을 탕감복귀해야 됩니다. 물권·인권·애권을 복귀함으로써 거기서 자유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몸 마음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인권을 환원하라는 것입니다. 몸 마음이 하나로 통일된 기준에서만 자유가 있습니다. 할아버지와 손자며느리가 하나되면 비밀리에 문을 열고 들어가든, 어디로 가든 관계가 없습니다. 담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되어야 자유가 있습니다. 자유가 없으면 평화가 없습니다.
32 통일된 기반 위에 서지 않고는 자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몸 마음이 싸우고 있는데, 자유 보따리를 갖다 놓고 그 자유를 붙들고 기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자유가 생겨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또 평화가 어디에 있습니까? 평화는 평탄한 상태에서 모든 것이 결여됨이 없이 충만히 자유로운 것입니다. 그런데 몸과 마음이 싸우고 있는데 평화가 머무를 곳이 있습니까?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몸 마음이 싸우고 있는데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까?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근본문제를 두고 볼 때 몸 마음이 완전히 하나되는 자리에서만 자유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몸 마음이 하나되는 자리에서만 평화의 기반이 생기는 것입니다. 몸 마음이 하나되는 데에서만이 행복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남편의 마음과 아내의 마음, 남편의 몸과 아내의 몸이 하나되는 데서만이 가정의 평화를 중심삼고 세계에 대한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