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랑 영원까지/천성경

제9편 가정교회와 종족적 메시아 - 제3장 교회장의 길_ 1절

호로고루 2013. 3. 6. 12:43

1 제사장으로서 제물을 드리고 제사를 지내는데, 사람이 모이지 않으면 그것은 제사장의 책임입니다. 내가 대신 눈물을 흘리며 나를 치고 이 백성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내가 죄가 많기 때문에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민족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자기 죄를 회개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는 장소가 마루면 그 마루가 마르지 않고 24시간 눈물에 젖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전도할 사람을 보여 주고 그럽니다. 그리고 여러분 앞에 찾아오는 사람을 왕과 같이 모셔야 됩니다. 내가 종이 되어 모셔야 합니다. 죄인이 죄를 벗으려니 할 수 없습니다. 왕과 같이 모시면 모실수록 여러분의 탕감이 빨라지는 것입니다. 내가 밑에 내려가 죄 있는 사람을 하늘같이 모셨으니 그 사이에 탕감조건이 많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2 제사장 족속은 가인들이 먹여 살려야 됩니다. 속죄함을 받기 위해서 바치는 제물은 속죄 받을 사람들이 바치는 것입니다. 제물은 가인들을 속죄해 주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가인 편에서 아벨에게 제물을 드려 먹여 살려야 됩니다. 가인이 아벨을 먹여 살리는 대신 아벨은 생명을 바치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것을 기준으로 하는 가인과 사람을 기준 하는 아벨이 여기에서 하나가 됩니다. 그럼으로써 복귀의 터전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한 제사장들은 아벨의 입장이기 때문에 가인을 복귀하기 위한 수고의 대가를 치러 가인을 분깃으로 갖는 것입니다. 물질을 갖는 것이 아니라 사람인 가인을 갖게 됩니다.


3 제단을 꾸미기 위해서는 제사장이 책임을 다해야 됩니다. 제사장 책임을 다하려면 제사장이 있어야 합니다. 제사장이 없는데 제단을 꾸미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제사장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세상에 있어서 하나님이 사랑하는, 축복받은 족속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레위 족속입니다. 제사장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레위 족속은 자기 소유의 분깃이 없습니다. 그들의 소유는 성전밖에 없습니다. 성전 가운데는 제단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단이 있는 동시에 제단 위에 제물이 있습니다. 제물을 제단에 바쳐서 속죄적인 혜택을 백성 앞에 주고 난 후에 제물을 자기 분깃으로 취하는 것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4 통일교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현재 통일교회 자체는 레위 족속과 같은 입장에 서야 됩니다. 그러려면 우리는 가진 것이 없어야 됩니다. 그런 입장에 섰다면 제사장이 됩니다. 제사장이 되어 성전을 가져야 합니다. 성전을 가진 후에는 제단을 가져야 됩니다. 또 제단을 예비해 놓으면 제물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 땅의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옛날에는 양과 소를 잡아서 제물을 바치게 했는데, 맨 나중에는 자기의 제일 사랑하는 아들을 제물 삼아 바치게 했다는 것입니다. 제일 사랑하고 제일 귀한 제물이 무엇입니까? 자기 자신입니다. 그러니 자기를 제물로 바치라는 것입니다.


5 책임자 자체를 두고 보면 언제나 행복한 사람이 아닙니다. 불행한 사람입니다. 왜 불행한 사람이냐? 언제나 부채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저 ‘식구들에게 내가 잘해 줘야지.’ 하며 언제나 빚을 졌다는 생각을 해야 됩니다. 불쌍한 사람을 보게 되면 그 사람의 생명을 염려해 밤을 새워 가면서 얘기해 줘야 합니다. 그 사람이 죽을 수 있는 입장에 있으면 내가 희생해서 그 사람의 죽을 길을 막아 줘야 할 것이 영적 지도자의 책임입니다. 그런 자리에 서야 됩니다. 그 말은 얼마나 식구를 위할 수 있는 자리에 섰느냐 하는 말입니다. 얼마나 위했느냐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남이 아니고 나의 연장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가지가 됩니다. 가지가 자라려면 잘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6 전도를 하면 믿음의 아들딸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자기 가지입니다. 그 가지에게 얼마나 보급하려고 불철주야 노력했느냐? 그러려면 내가 줄기가 되든가 뿌리가 되어야 합니다. 뿌리가 되어 있으면 그 줄기가, 혹은 가지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줄기와 가지가 필요로 하는 영양소를 땅에서 나 자신이 쉬지 않고 그 요구하는 이상으로 보급할 수 있는 여유의 조건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크는 것입니다. 한계선이 있게 되면, 꼭대기에서는 영양소를 요구하는데 그것을 보급하지 못하게 되면 꼭대기는 말라 죽는 것입니다. 저변에 생명의 감사와 생명의 윤택함이 언제나 샘솟듯 흐르는 그 무엇이 자기 스스로에게 있어야 됩니다. 고통스럽지만 평화스럽고, 안식할 수 있는 보금자리와 같은 생명이 깃들 수 있는 안식처가 자기 마음에 잠겨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같이하는 것입니다.


7 책임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시대적 책임뿐만 아니라 역사적 책임을 짊어졌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한 채 살고 있습니다. ‘내 조상이 나에게 달려 있고, 이 시대의 일족이 나에게 달려 있고, 앞으로의 후손이 나에게 달려 있다.’라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로운 마음을 가질 수 없는 것이 영적 지도자의 책무입니다. 사면초가와 같은 입장에서 하나만, 한 길만 가지고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영적 지도자의 책무입니다. 한 길이 무엇입니까? 심정의 길, 효성의 도리를 가르치는 길 외에는 갈 길이 없습니다. 밥을 먹으나 잠을 자나 그 심정에 사무쳐야 됩니다. 그러면 발전합니다.


8 선생님은 식구들이 그리워 운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진정한 아들딸을 찾아 나오기 위해서 그렇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람이 척 나타나면 ‘연보를 얼마 하겠느냐?’라며 돈을 생각하는 것은 안 됩니다. 그것은 바리새교인이 보는 관입니다. 절대 그런 사람은 발전 못한다는 것입니다. 돈보다도 사람을 사랑해야 됩니다.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돈은 저절로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꿀잡이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또 얼굴 잘생기고 젊은 사람이라야 전도한다고 하는데 천만에요! 교회는 가정의 연장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어야 되고, 아주머니 아저씨가 있어야 되고, 젊은 사람도 있어야 됩니다. 통일교회에 젊은 사람만 있다면 이것은 병폐입니다. 이것을 빨리 시정해야 됩니다.


9 영적 책임자는 어떠한 좋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공동의 이익이 될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좋은 것을 맞이한 환경에 또 좋은 것을 줘야 됩니다. 계속적으로 좋은 것을 가해 줄 수 있는 입장에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에 하나님이 얼마나 불쌍한 분이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적 지도자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한테 행복감을 느끼느냐고 물어본다면 진정한 행복감을 느낄 수 없다는 대답을 들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언제나 줘야 합니다. 또 대하는 사람이 여러 층입니다. 여러 종류의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면만 줘서는 안 됩니다. 전체를 위해서 줘야 됩니다. 언제나 모든 것을 줄 수 없게 될 때는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10 복귀섭리를 책임지고 나오는 하나님은 가장 불쌍한 분입니다. 사람들은 받으면 받은 것으로만 만족하지 않습니다. 받으면 더 받고 싶어합니다. 어디서 받고 싶어하겠습니까? 어떤 중심존재를 통해서 받고 싶어합니다. 그러니 앞으로 따르고 있는 사람들이 전부 받기만을 바라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하나님도 곤란할 것입니다. 사랑이면 사랑을, 혹은 귀한 것이면 귀한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겠다고 하면 참 곤란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믿는 것도 자기를 위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해서 믿어야 되고, 순응하는 것도 자기를 위해서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해서 순응하고, 사랑하는 것도 자기를 위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해서 사랑하라는 상대적 여건을 강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공적인 기준에서 믿어야 하고, 공적인 기준에서 위해야 하고, 공적인 기준에서 사랑해야 됩니다. 이런 공적인 기준을 세워야 됩니다. 이러한 공적인 것들을 자기와 관계맺게 하려면 보다 공적인 자신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11 책임자의 사명은 말씀을 전하고 뿌리는 것이 아니라 거두는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것은 뿌리는 것이요, 뿌려서 거둬야 하는 것이 책임자의 사명입니다. 이를테면 돋아난 싹에 물을 주어 가꾸고 제초작업도 해서 꽃이 피게 하고 열매가 맺히도록 해야 됩니다. 이것이 어느 기간이 지난 다음에 완전히 익어서 수확을 할 때 비로소 책임자로서의 사명을 완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이 심어 놓은 것을 새로운 책임자가 다시 심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잘 가꾸어 주어야 합니다. 비록 다른 사람이 심었을망정 잘 가꾸어서 수확을 하게 되면, 그것은 하늘 창고에 입고됩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갖지 않고, 과거 지도자의 성격이나 그에 대한 전체적인 지도 방법을 파악하지도 않고 자기 것을 다시 심으니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12 주류는 어디까지나 교회 활동을 하는 사람입니다. 교회를 맡고 있는 사람은 이스라엘 민족의 레위 족속과 마찬가지입니다. 레위 족속은 분깃이 없었습니다. 목사님들에게 누가 월급을 줍니까? 교인들이 월급을 줘야 합니다. 교회장은 자기 생계를 이어 가기 위해서는 교인들 앞에 그 이상의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교인들이 기뻐서 자기 먹던 밥까지 가져오고, 찬까지도 가져올 수 있을 정도로 희생의 제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장이 가야 할 길입니다. 그것이 선생님이 천도를 통해서 안 법도입니다.


13 하늘은 여러분을 기반으로 해서 환경을 다시 변혁시켜야 할 책임을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직에 있는 통일교회 교인들은 눈물과 더불어 복귀의 심정을 가지고 모든 부처에서 이런 운동을 제시하여 국가 운동으로부터 세계 운동까지 전개하지 않고는 스스로 눈물 흘린 이 세계를 하늘나라로 전환시킬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통일교회 사람, 진짜 식구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요, 진짜 책임자 또한 눈물을 흘리는 사람입니다. 눈물로써 타락했으니 눈물로써 복귀해야 됩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고 인류를 위해 공적인 눈물을 많이 흘려야 합니다. 그런 눈물을 많이 흘린 사람일수록 하늘의 심정권 내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14 신앙길은 자기 나름대로 판단한 길, 자기가 바라보는 길로 가서는 안 됩니다. 신앙길은 영계에 가 있는 수많은 도의 지도자들과 인연맺어 높은 단계로 하나씩 올라가야 합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 이 세 제자 이상의 자리에 나아가야 비로소 예수님과 관계맺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자기보다 높은 사람을 만났을 때, 그 높은 사람에게 자기를 직접 소개하는 것은 실례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볼 때, 여러분은 자신이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어떤 길이 빨리 영광에 접할 수 있는 길이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어떤 도의 길을 책임지고 간 사람들의 길을 내가 찾아서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아는 일입니다.


15 우리의 평면적 생활에 있어서 다리를 놓기 위해 교회를 갈 때, 교회에는 반드시 지도자가 있습니다. 교회 지도자는 자기 목적을 달성하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지도자가 못 됩니다. 지도자에게는 중간 다리를 놓아 주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찾아오는 교인들을 위해 주어야 합니다. 교회 지도자는 교인들을 위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교인들의 정신적인 문제나 생명문제까지도 책임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지도자는 자기가 책임진 분야를 중심삼고 교인들을 지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를 보아서 그 사람이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할 때, 교인들이 그 사람과 하나되면 교인들도 높은 자리에 나갈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나를 대신해서 정성을 들여 주고, 그 사람이 나를 대신해서 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기도해 주면, 나는 그의 기도로 말미암아 그 사람이 선 자리에 동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은혜 받은 사람의 기도를 받겠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렇게 다리를 놓아서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끝날이 되면 될수록 영적인 세계의 내정이 지상에 나타날 수 있는 때가 되기 때문에, 종교지도자 가운데에는 하늘의 역사를 직접 하는 사람들도 많이 나타나게 됩니다.


16 오늘날 사람들은 사람에 대해서 너무나 무관심합니다. 횡적 관계에 있어서 횡적인 인연을 중심삼고 서로 존중하는 일이 적습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사람에 대해서 귀찮아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귀찮아지면 도의 길을 가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해 나오는 데에는 대한민국만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 모든 인류를 다 필요로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고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였습니다. 우리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모인 무리라면, 모든 사람에 대해서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서 관심을 가지고 대할 줄 알아야 됩니다. 겉으로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본심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을 갖고 대할 때 인연 중에 최고의 인연을 결실하는 자리에 설 수 있고, 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도 최고의 관계를 맺는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