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랑 영원까지/천성경
제8편 신앙생활과 수련 - 제4장 참부모의 삶으로 본 신앙인의 길_ 1절
호로고루
2013. 3. 6. 12:55
1절 소명의 삶
1 희망에 찬 내일이 나를 소명을 지닌 자로서 부르고 있습니다. 그 소명 받은 사람이 가는 길은 운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숙명적인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운의 길은 변경시킬 수 있지만 숙명적 길은 변할 수 없습니다. 부자관계를 바꿀 수 있습니까? 형제관계를 변경시킬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것은 숙명적입니다. 천운의 도리와 숙명에 귀착되어 안착하기를 바라는 그러한 역사가 회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안착 기점이 참부모입니다. 참부모를 중심한 참된 자녀의 숙명적인 인연을 하나님과 더불어 결탁지어 놨기 때문에 이것은 변경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명
2 우리 인간이 몸으로 마음으로 바라는 소망은 창조주 하나님이 다시 직접 주관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이와 같은 소망과 뜻을 이루어야 할 사명이 있고 그 일을 완수하기 위한 소명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관성을 복귀해 드려야 되겠고, 그와 더불어 만물의 주인으로서의 주관성도 복귀해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관해 주시는 은사에 대해 감사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이런 책임이 만물에 있는 것도 아니요, 하늘의 천군천사에게 있는 것도 아니요, 오늘 우리에게 있습니다.
3 하나님은 우리 개인을 찾아오지만 그 개인을 중심삼고 가정과 사회, 나아가서 세계까지 찾기를 바라십니다. 그런데 이 길이 아직까지 막혀 있습니다. 하늘의 섭리역사노정은 나를 찾아 땅에까지 내려왔습니다. 이제는 나를 중심삼고 다시 하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데, 그 길이 막혀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선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세상적인 모든 것을 끊어 버리고 부정하면서 잃어버린 본연의 것을 하나님 앞에 다시 찾아 세울 수 있는 길을 찾으려 했지만 이런 길이 한계점에 와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느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서러움입니다. 예수님의 서러운 심정을 체휼해야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6천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서러움 속에서 허덕이며 여러분 한 사람을 찾아오셨다는 사실을 실체적으로 느끼지 않으면 안 됩니다.
4 여러분이 제한된 환경에서 일을 하더라도 누구의 명령을 받아서 하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혹은 세계와 국가의 소명을 받아서 하고 있다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세계를 대신한 일을 제한된 환경에서 하고 있습니다. 국가를 대신한 일도 제한된 환경에서 하고 있습니다. 개인을 중심삼은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명령을 받은 배후가 다름에 따라 그 일의 결과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5 신앙길을 간다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은 누구든지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소명을 따라간다는 것은 무척 힘이 듭니다. 하나님은 내 뒤에서 가시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앞서서 가십니다. 얼마나 바쁘게 앞서 가시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보조를 맞추지 못할 만큼 앞서서 가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섭리 도상에 있어서의 계획적인 섭리, 계획적인 사업은 힘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비약적인 발전을 통하여 나갑니다. 개인에서 가정, 가정에서 종족을 타고 넘으면서 탕감시켜 나간다는 것입니다. 순리적으로 돌아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뛰어올라 가기 때문에, 여기에는 1년이면 1년이라는 일정한 기간을 통하여 계획적으로 일을 하다가는 막혀 버리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때에 뒤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볼 때 소명을 받아 뜻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초조한 마음으로 나아가야 됩니다. 하나님과 내가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상대적인 관계를 중심삼고 조정해 나가면서 자기 위치를 찾아 그때를 맞추어 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때를 적절히 포착해서 행동을 개시하기는 심히 어렵습니다.
6 여러분은 여러분의 학문과 여러분 자신을 세계와 하나님 앞에 봉헌하도록 소명을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을 대변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희망을 이웃에게 전달하고, 세상 사람들이 인류와 하나님에게 봉사하는 일을 돕는 사명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교회나 사원이나 회중을 일깨워 하나님을 중심한 자유와 평화의 세계를 이루는 데 동원하는 일로 연결될 것입니다.
7 선생님이 하나님의 천명을 받아 미국을 구하라는 소명을 받고 미국에 갈 때 얼마나 긴장하고 얼마나 심각했겠습니까? 한국의 여러분은 선생님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서울을 떠날 때 심각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선생님의 지시를 받을 때 선생님이 미국을 향해서 책임을 짊어지고 나서던 자세와 같지 않고서는 사랑의 동반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 사랑의 천리는 부정적인 천리이지 공의적인 천리가 아닙니다.
8 선생님은 반대를 받으면서 올라왔습니다. 복귀노정이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의 복귀역사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첫 번 절개를 잃지 말고, 개인에서부터 세계 꼭대기를 넘어갈 때까지 끝까지 따라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책임을 다했느냐 못했느냐 할 때, 다했다는 결재를 받아야 합니다. 다했다고 할 때는 복을 받습니다. 그 복을 통고받을 때까지 남아진 자가 돼야 같은 권내에 들어갈 수 있는 혜택을 받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세계적으로 여러분이 선생님을 중심삼고 생명을 각오하고 하나가 되어 나간다면 동형(同型), 동등의 혜택권 내에 서는 것입니다.
9 소명이라는 것은 내가 무슨 책임을 짊어질 수 있는 권한이 없다는 뜻입니다. 소명은 부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어떠한 절대적인 중심에 의해 나는 동쪽으로 가고 있는데 서쪽을 향해서 가라고 새로운 명령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 명령받은 것이 동쪽에 있다고 해서 동쪽 사람들에게 명령받은 것이 아닙니다. 중심을 통해서 명령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 중심은 모든 것의 소망의 기준을 대표할 수 있는 중심이기 때문에 그 소명받은 사람은 전체 중심의 상대적 역을 해야 됩니다. 소명을 받지 않았을 때에는 방향적 책임을 하면 됩니다. 그 말은 소명을 받고 난 뒤에는 사방적 혹은 구형적 사명이 부여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세계적 중심에 연결된 인간 개인 개인들을 대표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았다고 할 때는 동서남북 상하관계, 모든 면의 대표적인 격을 갖추어야 소명받은 자로서의 사명이 완수되는 것입니다.
10 소명자도 개인이 있어야 되고, 가정이 필요하고, 종족·민족·국가가 필요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선민이라고 하는데, 그 선민은 무엇입니까? 소명을 받은 민족입니다. 선민의 나라, 소명을 받은 나라입니다. 선민의 세계라는 것은 소명을 받아서 소명된 모든 뜻을 완성한 나라입니다. 그래서 그 뜻을 이루게 되면 돌아가서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 시작과 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11 부모 중의 참부모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참부모입니다. 참가정의 왕, 참나라의 왕, 참세계의 왕이 우리 부모님입니다. 그분을 모실 수 있는 천년 태평시대를 맞이해야 됩니다. 한국의 ‘달아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라는 노래처럼, 이 땅 위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천년만년 사는 희망을 이룰 수 있는 통일교회 각자의 사명과 소명적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12 하나님의 뜻 앞에 부름을 받은 책임자로서 소명적 책임을 다해야 됩니다.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으로서의 소명, 세계 메시아로서의 소명이 있습니다. ‘소’ 자는 ‘부를 소(召)’ 자입니다. 명령의 부름을 말합니다. 군대의 출동명령과 마찬가지입니다. 소명적 사명을 다해야 됩니다.
사명 자각
13 선생님은 한 고개를 넘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누가 한마디 하면 언제든지 백세 천세, 저나라에 가서도 통곡할 수 있는 마음이 사무쳐 있는 사람입니다. 선생님이 하나님 앞에 ‘문 총재, 문선명이 왔습니다.’라고 할 때, 하나님도 사무친 마음으로 자기도 모르게 천만 계단을 날아 내려와 목을 안고 통곡하며 ‘잘 왔다!’라고 하면서, 아담 해와 때문에 통곡을 했었지만 이제는 돌아왔다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아들을 안고 천만 계단을 올라가서 앉았던 왕좌에 다시 앉아 ‘뜻이 이루어졌다. 아주!’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전에는 죽을 수 없습니다. 안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참부모가 가야 할 철칙의 노정이었습니다. 여러분 일생 노정에 그러한 기념의 기준을 중심삼고 남겨질 수 있는 선물을 이 땅에서 마련해 하늘 앞에 가져가야만 부모님 앞에 가까이 가고, 동고동락의 상속권의 분야를 차지하고, 여러분이 천상세계 계열의 책임자로 설정된다는 것을 틀림없이 알고 책임 있는 생애의 길을 가야 합니다.
14 자각이 필요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자각, 자신의 환경에 대한 자각, 국가에 대한 자각, 세계에 대한 자각을 해야 됩니다. 이렇게 새로운 세계관을 중심삼고 새로운 자각을 해서 모든 것을 청산짓고 넘어가는 자리에서 아벨의 자리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아벨의 자리를 결정지었으면 가인을 반드시 굴복시키고 하나님을 모셔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여러분이 천국에 갈 수 있는 개인이 될 수 있고, 하늘 가정, 하늘 국가, 하늘 세계, 즉 천국을 이루는 개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복귀의 기점입니다.
15 나를 역사적인 죄의 결실로 봐야 합니다. 그다음에 그러한 종족이면 종족으로 봐야 합니다. 종족은 현실로 볼 때 국가로 볼 수 있습니다. 현실의 모든 민족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수천 대 종족의 뿌리를 받았기 때문에 그것을 연장하여 평면적으로 보면 나라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라, 민족의 죄를 책임져야 할 죄의 후손입니다. 나는 민족이 받을 죄의 대가를 대신 받아야 됩니다. 세계의 죄를, 현재에 받을 죄의 대가를 내가 대신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아를 느껴야 됩니다. 그것이 메시아로 오셨던 예수님이 느낀 길입니다. 내가 살면 이 세상이 살고, 내가 죽으면 이 세상이 죽는다는 경지까지, 그런 자각을 한 단계까지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16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뜻을 알면서부터 자각의 심정을 갖고 이 문을 두드려 왔습니다. 여러분은 역사를 거치고 시대를 지나 미래를 세워 나가는 ‘나’라는 것을 자각해야 됩니다. 나 스스로가 자각하는 것 같으나 사실은 하나님이 나를 자각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내 한 모습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피를 흘렸고, 지금도 배후에서 자각한 내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또 역사를 망쳐 왔고, 망치고 있고, 망칠 가능성이 있는 한 자체라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역사에 어린 아담과 해와의 한을 양 어깨에 짊어지고, 현실과 미래까지도 책임져야 할 나라는 것을 자각해야 됩니다.
17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나왔느냐? 죄를 회개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자고 나왔습니다. 죄를 회개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자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떠한 자각을 해야 되느냐? 믿음으로써 구원 얻는 내용은 있습니다. 세계를 대표한 자각을 해야 됩니다. 남자도 세계를 대표한 자각을 해야 되고, 여자도 세계를 대표한 자각을 해야 됩니다. 역사적인 승리의 제물이 되어야 한다는 자각, 시대적인 승리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자각을 해야 됩니다. 메시아를 죽였기 때문에 자각해야 되는 입장에서 죽은 그분 앞에서 내가 죽어 탕감해서 그분의 긍휼이 나에게 미쳐짐으로써 그와 더불어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원칙입니다.
18 자각! 타락은 개인 자신을 중심삼고 자각한 위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이제는 탕감복귀해서 자기를 중심삼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정을 중심삼은 자각이 있어야 됩니다. 거기서부터 새로운 이상세계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데는 혈통이 문제입니다. 인류가 그것을 지금까지 몰랐습니다. 처음으로 선생님이 지상에 나타나서 상세하게 해명해 주기 때문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안 자체는 자기 존재권과 관계가 없습니다. 혁명적으로 뒤집어엎어서 새로운 부모를 중심삼은 새로운 가정이 나와야 되는데, 그 가정은 지금처럼 개인을 자각한 입장에서의 타락한 그것과는 다릅니다. 이것은 공적인 자각 위에 섰기 때문에 몸 마음의 싸움이 없습니다.
인류 구원의 삶
19 종교가 지향해야 할 최후의 목적은 무엇이냐? 물론 개인 구도의 목적을 주장하는 것도 일리가 있지만, 그보다 더 나아가서 가정을 구해야 됩니다. 먼저 가정을 찾아 악주권에 속해 있는 인간을 죄악 가운데서 해방시켜야 됩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역사를 대표하고, 시대를 대표하고, 미래를 대표하는 가정을 찾아야 합니다. 또한 세계 인류가 다 같이 즐거워할 수 있는 가정의 터전과 가정이 가야 할 정도의 기준을 확정해야 됩니다. 그 가정의 제도가 어디서 출발하고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 결정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는 한 이 지상에 평화의 세계를 창건할 수 없습니다. 외적인 것이 아무리 잘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내적인 가정에 들어와서는 파탄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0 아무리 태풍이 불어오고, 아무리 수난길이 첩첩이 가로놓여 있다고 하더라도 사랑의 말을 달리는 데는 적수가 없고 막을 자가 없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길을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힘으로 막을 수 없습니다. 수단 방법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의 그 사랑을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위대한 것입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의 가는 길을 어떤 힘을 가지고도, 무엇을 가지고도 막을 수 없습니다. 살 수도 없고 팔 수도 없습니다. 천리의 도리를 밝혀 나가는 성자의 가는 길에 있어서 인류를 구도하고 인류를 사랑하는 그것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21 하나님이 망해 가는 세속적인 세계를 대치하기 위해 통일교회를 세웠기 때문에 이 통일교회는 대치받을 수 있는 모든 내용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중심이 없는 세속적인 이 세상 가운데에서, 떨어져 내려가는 이 현실세계에서 그것을 막을 수 없는 비탄의 환경을 맞은 이 인류는 절망에 부딪혀 있습니다. 반면에 이것을 대치하고, 떨어진 것과 반대로 무한히 향상할 수 있는 한 길을 준비하지 않고는 인류를 구도해 나오는 하나님의 모든 섭리가 중단되어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22 선생님은 세계와 하늘땅을 살리는 것입니다. 하늘땅은 선생님이 책임지니, 여러분은 여러분 일족을 살리라는 것입니다. 자기 형제를 구원하고, 어머니 아버지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천사장을 굴복시키고 참부모를 따라서 조부모로부터 손자 손녀까지 4대가 합하여 하늘나라에 가서 돌이켜 드려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국가와 전체를 내가 하늘 앞에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23 일편단심 이 대우주에 심정세계를 다시 세우려는 것이 구원역사이니, 그 구원역사의 노정에서 내가 어느 정도의 재료가 될 수 있겠느냐 하는 것만 생각해야 됩니다. 만물을 재료로 삼고, 인류를 재료로 삼고, 영계의 천천만 성도를 재료로 삼아야 되는데, 내가 움직이면 만물이 어느 정도 움직이고, 인류가 어느 정도 움직이고, 천상의 천천만 성도가 어느 정도까지 움직이고, 내가 땅 위에서 부르짖는 것이 이 우주 어느 범위까지 심정의 반응을 불러일으키느냐에 따라 천상에서 나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는 순간의 슬픔은 하늘에 반영되었고 만우주에 반영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은 구주입니다. 심정의 구주입니다.
24 여러분은 개인의 어떠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애쓸 것이 아니라, 보다 더 큰 목적을 위하여 희생하고 봉사하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하여 오직 하나님의 뜻과 인류를 위해 수고하셨던 예수님의 심정 기준까지 나아가야 되고, 지금까지 수고해 나오신 하나님의 애달픈 심정을 위로해 드리는 하나님의 참자녀의 자리까지 나아가야 됩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불의를 보면 분개하는 마음을 가지고, 또 주고 싶어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지니고, 이 세상 끝까지라도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찾아 세우기 위하여 수고해야 됩니다. 나아가 애달픈 가운데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지금까지 수고해 오신 하나님의 심정을 위로할 수 있어야 합니다.
25 하나님은 타락한 인류를 붙들고 구원섭리하기 위하여 무한히도 애써 나오셨습니다. 인간이 죄악에 빠져 있을 때 인간을 찾아 주고, 인간을 위하고, 인간에게 복지를 소개해 주기 위해서 수고하신 분이 있다고 한다면, 그는 우리의 사랑하는 부모도 아니고, 어떠한 정으로 인연맺어져 있는 자식이나 부부도 아닙니다. 또한 국가도 아니고, 어떠한 성인현철도 아닙니다. 하나님입니다.
26 우리는 타락하지 않았던 본연의 동산을 다시 회복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타락한 인간이기 때문에 떨어지지 아니한 그 본연의 상태, 하나님을 잃어버린 인간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잃어버리지 아니한 그 자리, 인류의 참부모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참부모를 잃어버리지 않은 그 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이상의 참부모를 중심삼은 평화의 동산에서 자녀로서 생활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도 우리에게는 새로이 구원섭리라는 명사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27 구원을 하기 위해 섭리하시는 하나님은, 이 땅에 대한 모든 고통을 방관하는 무책임한 입장에서는 이 세상을 수습할 수 없기 때문에 타락한 세상에서 인간이 당하는 모든 고통을 인간만의 고통으로 방관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 고통권 내에 들어가 책임을 지고 대응해 나가십니다. 또한 이 슬프고 비참한 역사적인 대응의 노정 위에 하나님이 직접 참여하지 않고서는 인류를 구원할 수 없기에 인류의 슬픈 역사에 동반하여 지금까지 싸워 나오고 있습니다.
28 인류는 부모를 잃어버렸습니다. 부모로부터 태어나긴 태어났지만 진정한 부모의 깊고 높고 귀한 사랑을 몽땅 받지 못하고 태어났고, 그 부모와 더불어 살지 못한 것입니다. 또한 부모의 입장에 있는 하나님은 자식을 잃어버림으로써 바라던 기준을 달성하지 못했으므로, 기나긴 역사를 붙안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인류의 배후에서 지금까지 수습해 나오고 계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섭리입니다.
29 구원을 받아야 할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찾아 아버지의 사랑 속에 품기기 위해서는 갖은 고난과 모진 상처를 딛고 일어서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가정과 사회와 국가, 세계가 반대하더라도 그것을 밟고 올라가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붙들고 나섰던 예수님의 입장에 서서 역사적인 사망의 종족을 향하여 돌진할 수 있는 하늘의 정병이 되어야 합니다.
30 세상에서 결심 없이 이루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싸우는 데는 모름지기 정의에 입각하여 싸워야 합니다. 사탄은 근성적으로 높아지기를 원하나 우리는 그와 반대로 낮아져서 내 몸과 사랑으로 싸워 나가야 됩니다. 두 눈은 오직 일직선이어야 됩니다. 즉 일편단심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 자신은 포탄이기 때문에 내 귀와 눈과 손이 각각 다른 데 있으면 망합니다. 이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아까운 것이 없어야 합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도 각오하는 것이 하늘의 계산법입니다. 여러분은 선조들의 핏자국이 얼룩진 희생의 제단을 지켜서 하나님의 원수를 갚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