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랑 영원까지/천성경

제8편 신앙생활과 수련 - 제2장 마음과 몸의 수련_ 4절

호로고루 2013. 3. 6. 13:18

4절 마음의 수련

1 마음은 영원을 동반하고, 몸은 일생을 동반합니다. 마음은 생애를 조정하여 나오고, 몸은 생활을 조정하여 나옵니다. 생활과 생애는 다릅니다. 생애는 일생을 두고 말하는 것이고, 생활은 하루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의 몸과 마음은 그 자체가 다릅니다. 인간은 마음이 생애를 주관하고 몸이 생활을 주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하루의 생활에서 먹지 않으면 몸은 죽게 됩니다. 그렇지만 마음은 먹긴 먹되 생애에 어긋나는 자리에서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마음이 바라는 관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부모 중의 부모
2 우리가 다른 사람과 화합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그 마음을 움직여 모든 사람에게 백 퍼센트 맞춰 줄 수 있는 마음 수련을 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사탄은 끝날에 여러분을 심판대 위에 세워 놓고 ‘아무개야, 너는 이런 미비한 조건이 있지 않으냐?’라고 하며 그렇게 하지 못한 점을 들어 참소할 것입니다.

3 마음은 우주의 하나님을 대신했기 때문에 부모 중의 부모입니다. 스승 중의 스승이요 주인 중의 주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결을 가진 내 마음은 세상 어머니보다도 더 가까운 어머니요 부모입니다. 세상의 어떤 훌륭한 선생보다도 나에게 제일 가까운 선생입니다. 또 세상의 어떤 주인보다도 자기 종들을 올바로 인도할 수 있는 주인의 자리에 서 있는 것이 마음입니다.

4 마음과 몸은 다릅니다. 마음은 어디서 받았느냐?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하늘, 몸은 부모로부터 왔습니다. 몸은 땅에서 왔으니 땅에서 나는 것을 먹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땅의 신세를 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은 물질입니다. 사람은 남자 아니면 여자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담 해와의 연장이 바로 나입니다. 사람 하면 거기에는 벌써 실체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 속에 몇 가지가 들어와 있습니까? 땅이 들어와 있고, 사람이 들어와 있고, 하나님이 들어와 있습니다. 옛날부터 천·지·인이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마음은 천이고, 몸은 지이고, 사람은 인입니다.

5 나 하나에는 하나님이 들어와 있고, 땅이 들어와 있고, 사람이 들어와 있습니다. 마음이 주체가 되고 몸은 대상이 됩니다. 마음이 몸의 중심이 되니까 의지가 있어야 되고, 관이 있어야 되고, 주장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하나로 일치된 사람을 인격자라고 합니다. 마음의 명령대로 몸이 움직이는 양심적인 사람을 인격자라고 합니다. 자기 일신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인격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중심입니다. 마음은 하나님 대신이고 몸은 사람 대신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고, 사람의 마음은 사람의 몸을 지배하고, 사람의 몸은 만물을 지배합니다.

6 인간에게는 몸과 마음이 있습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몸, 땅으로부터 몸의 요소가 되는 물질을 공급받아 체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몸과 마음을 불변한 심정의 기대 위에 세우고 싶어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요, 타락한 인간을 대하여 섭리하시는 목적입니다. 아무리 마음이 좋고 편하다 할지라도 그 마음은 심정의 집에 들어가 쉬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몸도 역시 그렇다는 것입니다.

7 지금까지 인간이 무엇을 찾아 수고하여 나왔습니까? 인륜의 마음을 대신할 수 있는 천륜의 심정을 찾아 그 심정과 우리 마음이 하나되려고 지금까지 애써 왔습니다. 하나된 그 마음은 절대적인 마음과 인연을 맺었기 때문에 그 마음은 어느 누가 도려내려야 도려낼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이 어떠한 이념과 어떠한 주의 주장을 가지고도 감히 침범할 수 없는 마음을 우리는 지금까지 찾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이것을 찾지 못한다면 반드시 서러움과 슬픔을 면할 수 없습니다.

마음의 지향성
8 마음은 자연의 이치에 부합됩니다. 선을 향해 무한히 움직이고자 합니다. 그것은 나침반이 남과 북을 가리키는 것과 같습니다. 자연의 이치는 방향을 잃고 선을 피해 가는 법이 없습니다. 그런 현상은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도 역시 어떤 목적을 향하여 움직이고자 합니다. 생명을 향하여 움직이는 마음, 심정을 통하여 움직이는 마음, 진리를 분별하는 마음, 전체와 화합하고 싶은 마음, 전체의 어떤 이념에 화하여 살고 싶은 마음, 이 마음이 하늘이 도피의 방향을 지시할 수 있는 터전입니다.

9 우리에게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 마음은 더 큰 이념을 향하여 자나 깨나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나를 어떠한 방향으로 몰아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움직임이 연속되는 역사와 더불어 움직여 나가고자 하는 사실을 느끼면서도 그런 면을 갖고 있는 자신을 해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나를 알아 달라고 말하고 싶고 나를 믿어 달라고 말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고 내가 주장하는 모든 것이 그 어떠한 움직임과 인연을 맺기를 바라면서 지금까지 살아 나왔다는 사실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나를 믿어 주고 나를 알아 달라고 요구할 때, 자체를 확정지어 어떠한 천륜의 대목적과 관계맺은 자리에 자신을 세워 놓고 그런 요구를 하였느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볼 때 나의 가치는 어디에서 결정될 것이냐? 만상을 움직여 낼 수 있는 주체, 혹은 주동체가 되기를 마음으로 바라고, 생활로, 행동으로 움직여 이루고자 하는 자신을 다시 한 번 분석해 보고 냉정히 비판하는 과정을 거치기 전에는 대목적을 이룰 수 없습니다. 하늘은 천륜의 목적을 이루려 하시는데, 자신이 그런 일을 하지 못하면 하늘 앞에 떳떳이 설 수 없습니다. 천륜 앞에 고개를 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10 하늘은 생명의 주체요, 이념의 주체요 사랑의 주체이며, 우리 마음과 몸의 주체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하늘과 접촉되는 순간에는 내 몸이 내 몸이 아닙니다. 내 마음이 내 마음이 아니며, 내 심정이 내 심정이 아닌 것입니다. 내 이념이 내 이념이 아닙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을 대신한 몸이 되기 때문에 만물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에 내 마음이 하나님과 같은 마음이 되기 때문에 내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을 대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때에 비로소 내 생명은 만우주를 움직일 수 있는 생명의 권한을 가지는 것입니다. 내 심정은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여 나타날 수 있고, 내 이념이자 아버지의 이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 심적인 소원의 모든 목적은 종결되는 것입니다.

11 마음은 자극적인 현실의 고통스러운 환경을 피하고 이상을 향하여 나아가기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어떤 지도자라도 이 현실과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이상을 지향하고 고대하고 재촉하는 이 마음에 대하여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마음의 명령에 따라 해야 됩니다. 역대 수많은 선지자들도 그 마음에 항거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어떤 사람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마음에 응하여야지, 누가 어떻게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항거할 수 없는, 스스로 응해야 할 운명에 처해 있는 자신들임을 명심하고 인정한다면, 오늘날 이 세계는 이상세계가 아니며, 우리가 꿈꾸고 소망하는 이상세계와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타락되었기 때문입니다.

12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당한 모든 일들은 우리 몸과 마음에 반영됩니다. 몸이 행동하는 하나하나마다 마음은 선의 목표를 지향하도록 환경을 단속하며 쉴 새 없이 노력합니다. 또 몸이 그 목적과 방향을 잃어버리고 사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될 때, 마음은 몸을 향하여 선한 것을 바라보라고 권고합니다. 그러기에 나 자신부터 해결해야 됩니다. 우리 마음이 하늘을 대신한다면, 마음이 바라는 목표와 하늘이 바라는 목표가 일치되어야 합니다.

13 하나님이 우리 마음의 중심이라면, 그 하나님이 바라는 목표와 우리 마음이 바라는 목표가 일치되어야 합니다. 또 몸과 마음이 하나되기 위해서 몸은 이 땅의 이상적인 기준과 일치되어야 하고, 마음은 하나님이 목표하는 방향과 일치되어야 합니다. 역사적인 최후의 종말시대, 선의 이상세계가 기필코 올 것이기 때문에 내 몸이 생활에서 선의 이념세계와 접할 수 있는 인연을 갖고 있어야 됩니다. 마음의 기준이 하나님의 기준과 갈라지게 될 때 고충이 생기게 되고, 몸의 생활 기준이 세계적인 이념과 상충될 때 또한 고충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시정할 것이냐? 그것은 상대방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믿음과 기도, 정성의 길
14 오늘 죽음을 각오하고 새로운 신앙길을 따라 나선 여러분이 절대적인 믿음으로 하나님의 소망을 향해 나가면 그런 신앙노정을 통하여 하나님적인 가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믿음을 갖고 책임감을 느껴야 하고, 이런 믿음을 갖고 실천하는 참아들딸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고는 도저히 아버지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절대적인 아버지 앞에 참아들딸로, 충신의 모습으로 설 수 없습니다.

15 역사적으로 무엇을 통하여 하늘이 인간을 찾아 주셨느냐 하면 믿음이라는 조건을 가지고 찾아 주셨습니다. 하늘은 인간으로 하여금 이 믿음의 조건을 세우게 하는 한편 인간에 대하여 실천을 요구했습니다. 하늘과 내가 인연되어 슬픔의 감정을 제거할 수 있는 하나의 발판을 세우기 위해서는 믿음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의 실천적인 행로가 벌어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역사적인 인연을 세울 수 있습니다.

16 거북한 자리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 대해 솔직히 직고해야 됩니다. ‘나는 본래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라고 솔직히 통고해서 ‘나는 이와 같이 못된 사람이지만 당신은 선한 사람이니, 나 같은 사람을 동정하여 갈 길을 모색할 수 있는 방안이 있으면 나에게 친절을 베풀어 주시옵소서.’라고 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게 되면 자유스러운 환경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그냥 그대로 버티고 서 있으면 아무리 자기가 한다고 하더라도 마음으로는 수습되지 않습니다. 환경을 수습하지 못하고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으로서 당신과 관계를 맺고 싶습니다. 그러니 동정을 베풀어 주시옵소서.’라고 하려면 솔직히 직고해야 됩니다. 그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내가 가는 방향이 틀렸을 때 올바른 방향으로 가게 이끌어 줍니다. 여러분의 생활을 보면 말 한마디, 행동 하나, 느낌 하나에 의해서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오늘날 현실 가운데에서 숨 쉬며 살고 있는 이 순간에 이렇게 저울질하고 있습니다. 그 저울눈을 맞추는 데 있어서는 솔직해야 됩니다.

17 선생님의 기도는 일반 사람이 들어도 모릅니다. 백번 읽어 봐야 통합니다. 하늘의 신비의 소리를 들어서 거기에 공명할 수 있는 몸 마음의 체휼경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연과 통하고 다 통해야 됩니다. 통하지 않고는 모릅니다. 석가모니도 얘기했습니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는 말은 그 경지에서 하는 말입니다. 경계선을 넘게 되면 반드시 그렇습니다.

18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기도와 정성입니다. 내가 스스로 부활된 자리에 섰느냐? 부활된 자리에 서지 못했다면 간절히 구할 수 있는 자리에라도 섰느냐? 신앙을 하면서 환경을 책임질 수 있는 자신이 되었느냐?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가 중요합니다. 기도는 생사의 기준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능동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기도를 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내가 넓은 탑을, 천길 높은 탑을 쌓는다면 얼마나 바쁘겠습니까? 넓고 높은 탑을 쌓으려면 얼마나 바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을 50년이면 50년 동안에 다 쌓아 올려야 되겠다고 다짐했다면 쉴 새가 없습니다.

19 선생님은 기도를 가장 위력 있는 것으로 믿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기도를 강조하지만 다른 특별한 방법으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이 다릅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기도하지 말라.’라는 것이 선생님의 가르침입니다. 자신의 사명을 위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또 자기 기도가 위로의 말씀으로 하나님에게 상달되도록 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20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는 기도를 해서 풀어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기도는 왜 하느냐? 기도는 하나님의 심정적 기준을 중심삼고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를 놓고 진정한 의미에서 나라를 염려하고 하나님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하게 되면 하나님은 반드시 전후를 가르쳐 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역사는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21 우리는 외적으로 뻗어 나가는 것보다도 정신을 통일해서 내적으로 깊이 추구해 들어가는 길을 모색해야 됩니다.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에서 말하는 기도생활입니다. 여러분이 목적을 세워 놓고 그것을 성사시키려는 기도보다도 하나님의 생각에 접해서 하나님이 하고 싶어하시는 말씀을 체휼하여 그것을 실천하겠다는 기도가 더 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를 하기 위해서 조용한 곳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22 기도생활을 하면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 옵니다. 그 경지가 창세 전 하나님의 생각의 경지입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경지에서 ‘이렇다!’ 하는 내용을 갖고 설명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된다면, 그 입장은 바로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시던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피조물을 창조하시던 입장입니다. 그러한 경지에서 말씀을 선포해야 됩니다. 그러면 사람들도 반드시 그 말씀과 접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23 여러분이 기도를 하려면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해야 합니다. 그러니 가장 중요한 시간이 새벽입니다. 새벽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시간이 하루의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시간대입니다. 이때 기도를 해야 됩니다. 깊은 기도를 하는 데 있어서 자기가 지금까지 전혀 느껴 보지 않은 그 어떤 분야를 느끼기 위해서는 자기를 중심삼은 기도를 해서는 안 됩니다. 국가면 국가, 세계면 세계라는 큰 목적을 중심삼고 기도해야 됩니다.

24 뿌리 깊은 기도생활을 많이 해야 됩니다. 뜻에 사무친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가시는 길과 교회가 가는 길에 자기가 얼마나 호흡을 맞추어 사느냐 하는 것을 항상 생각해야 됩니다. 그러려면 교회 소식이 궁금해 죽겠다고 하면서 직접 찾아가지 못하면 전화라도 해서 알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앞세우고 사는 가정이면 하나님이 같이하지 않는 법이 없습니다. 그런 뿌리도 없는데 심어 놓으면 죽어 버리기 때문에 심지 않은 것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원칙을 알고 생활을 재정비해서 그러한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25 기도가 밥 먹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도 자연을 좋아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취미로 삼고 있습니다. 고요한 밤을 참 좋아합니다. 생활의 풍부한 저변 기반을 닦을 수 있는 것은 기도 이외에 길이 없습니다. 그 세계, 그 자리에서 사랑을 느끼고 사랑을 체험할 수 있지 보통 자리에서는 힘듭니다. 그러한 터 위에서 자기 자체가 힘을 보강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여러분의 신앙길을 여러분 자신이 갈 수 있지, 언제나 이렇게 선생님이 이끌어 줘서 가게 되면 선생님이 없을 때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러한 이면의 생활을 갖추기 위해서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밤이나 낮이나 전체를 위해서 기도해야 그것이 산 기도가 됩니다. 그래야 몇 년마다 자기가 원하는 기도가 달라지고 제목이 달라지면서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때가 어떤 때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이면의 생활을 여러분이 기도생활을 통해서 갖춰야 됩니다.

26 기도는 내가 변덕스러운 데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깊숙한 곳, 하늘 대표한 곳, 경계선에서 먼 중앙지에 가서 기도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기도할 것이냐? 자기 생애의 간절하고 중요한 문제를 놓고 기도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깨끗이 하고, 이 경계선과 관계없는, 영원히 사탄과 관계없는 자리에서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하나님 앞에 암만 기도해 봐야 응답이 없더라.’라고 하는데, 그것은 응답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탄 편에서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그런 기도를 들어주시겠습니까?

27 마음은 둥글고 심문(心門)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기도하게 되면 줄줄줄줄 언제나 잘되는 것은 아닙니다. 거기에도 춘하추동과 마찬가지의 자기 성품에 따른 형이 있습니다. 하늘과 더불어 이렇게 마음 방향이 딱 맞춰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를 놓치면 안 됩니다. 그런 때가 오면 벌써 압니다. 기도생활을 하면 대번에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때를 위해 단단히 준비해야 됩니다. 그때 가서는 백사(百事)를 대비해 놓고 이 마음문을 활짝 열고 거기에 파고 들어가면 크나큰 힘과 크나큰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다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단계에 들어갑니다.

28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많이 해야 하는 때가 끝날입니다. 또 눈물만이 아니라 피를 쏟으면서라도 기도해야 됩니다. 우리는 눈물의 고개, 십자가의 고개를 넘어왔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눈물 나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민족을 붙안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런 기도는 사탄의 권한을 눌러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29 여러분은 자신의 마음을 통하여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몸을 통하여 나타내는 말이나 행동이 여러분 마음의 중심과 연결되었을 때, 그 말이나 행동은 하나님과 사탄, 또는 어떤 사람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고 떳떳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존재를 찾고 계신 것입니다.

30 마음으로 기도하고 모든 면에서 계율을 세워 하늘을 향해 부르짖은 기도는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기도하는 사람들 같은 기도를 몇 십년 했댔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진정한 사랑의 심정을 갖고 약속할 수 있는 자리에서 기도 드려야 합니다. 한번 기도하고 30년 40년 기다릴 수 있는 간절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30년 40년 지나서도 잊어버리지 않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기다려 보십시오. 이루어집니다. 많은 기도가 필요 없습니다.

31 기도할 때에는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고, 땀을 흘리면서 기도해야 됩니다. ‘어떤 무엇이 부딪치게 되더라도 나를 쿵 뚫고 갔으면 갔지 나는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신념을 가지고 기도를 해야 됩니다. 핍박이 있고 반대가 벌어지더라도 기도를 이루어 주기 위한 하나님의 때가 가까이 온 것을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를 믿고 가면서 점점 힘들거들랑 힘든 만큼 때가 가까웠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32 하나님만을 위주로 하여 자신이 새로운 것을 자극할 수 있는 생활을 직접 경험해야 됩니다. 그러한 심정을 느끼면서 활동을 하게 되면, 거기에는 반드시 번식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발전하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나무에는 새싹이 나오는 것입니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생명력이 약동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감정을 잃어버리는 날에는 생사를 걸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철야기도를 해서라도 정성을 쌓아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그러한 생활을 하려고 하면, 일부러 그 시간을 빼앗아 가려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노력해도 소망을 찾으려야 찾을 수 없습니다. 노력하면 할수록 더 깜깜한 궁지에 들어갈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에는 따라다니는 사탄까지도 내 편으로 굴복시켜서 하나님을 섬겨야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더욱 강하게 싸울 수 있어야 됩니다.

33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어차피 헤쳐 나가야 할 길인 것을 생각할수록 이것은 우리의 힘만 가지고는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자는 기도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개인으로서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는 전통을 이어받을 수 있는 길을 못 찾게 될 때는, 그가 아무리 노력을 하고 아무리 충성을 다하면서 간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과 위배되는 자리에 귀결되게 됩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현재 나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34 여러분은 아들딸을 위해 기도하기 전에 먼저 천성에 있는, 지금까지 수고한 역사적인 선조들을 위해 기도해야 됩니다. 자기가 잘살기를 바라기 전에 이 땅의 인류가 잘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내가 춤추기 전에 먼저 탄식권 내에 있는 만민을 바라보고 염려할 수 있어야 됩니다. 또한 기뻐도 기쁨의 표정을 취하지 못하고 즐거워도 즐거운 행위를 취하지 못했던 예수님의 사정을 대신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35 자기 뜻을 놓고 암만 기도해 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밤을 새워 기도해도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한 세상을 부정하고, 한 세상을 붙들고, 그 세상을 위해서 가야 됩니다. 예를 들면 가정을 부정하고 나라를 붙들라는 것입니다. 더 큰 것을 위하는 것, 그것이 공적입니다. 그래야만 남아지는 것입니다. 자기 욕심을 중심삼고, 가정을 중심삼고 가는 것, 그것은 나중의 일입니다. 보다 큰 목적을 중심삼고 가야 됩니다.

36 타락한 인간은 태어날 때 기쁨 속에서 태어난 것 같지만 갈 때는 눈물을 흘리며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불쌍한 민족을 붙들고 우는 자는 민족의 복을 받을 것이요, 불쌍한 교단을 붙들고 우는 자는 교단의 복을 받을 것이요, 불쌍한 세계를 붙들고 우는 자는 세계의 복을 받을 것입니다.

제물 되어 분립하는 길
37 여러분은 먼저 여러분 자체를 하늘 앞에 맹세의 조건물로 세울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도 세계를 위하여, 하늘땅을 위하여, 혹은 뭇 백성을 위하여 단 한 번 맹세의 조건을 세웠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이 십자가를 통하여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생을 바쳐 수고해 나온 그 기준을 일시에 넘어섰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우주적인 생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앞으로 어느 한때 하늘 앞에나 세계 앞에, 또는 개인 앞에 드려지는 하나의 맹세의 제물이 되겠다는 관념을 확실히 가져야 합니다.

38 통일교회 자체를 두고 보면, 하나님의 뜻과 선생님의 뜻과 여러분의 뜻이 일치가 되어야 합니다. 우선 그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방향을 잡고, 조건물을 제시해야 됩니다. 그것이 일치되지 않고는 아무리 때가 무르익었다 하더라도 뜻 성사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이 조부모, 부모, 자기, 3대가 합해져서 하나의 제물과 마찬가지 입장에 서야 합니다. 우주사적인 전체를 중심삼고 볼 때 하나되는 길밖에 없습니다.

39 제물이라는 것은 소유물을 결정짓는 조건물입니다. 선생님이 그런 것을 다 알기 때문에 이런 정의를 내렸습니다. 선한 곳에 소유되느냐, 악한 곳에 소유되느냐 하는 문제는 무엇을 중심삼고 결정되느냐? 사탄과 하나님이 사랑의 심정을 가지고 거래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도 몰랐습니다. 사랑의 길을 개발하고 사랑의 길을 개척하는 뜻을 세우고 사랑의 사람을 찾아 나오는 입장에 서기 전에는, 높은 사랑의 기준을 하늘 앞에 돌리기 전에는 사탄세계의 사랑 기준의 물건이 하늘의 소유물로 등장할 수 없습니다. 하늘의 소유물로 등장하지 않고는 하나님이 인간과 더불어 하나된 물건을 소유할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물은 희생되고 사람을 대신 소유하는 것입니다.

40 인류가 당하는 모든 고통을 자기 고통으로, 인류가 기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내 기쁨으로 느낄 수 있는 입장에 서 계신 것이 하나님이니만큼, 그런 하나님 앞에 제물의 자리에 나가는 존재는 인류가 기뻐하고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그 자리에 보조를 맞춰야 됩니다. 인류와 하나님이 플러스될 수 있는 데 보조를 맞추다 보니 나는 마이너스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는 희생해야 됩니다. 이것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렸던 모든 전체를 회생시킬 수 있는 하나의 조력부대입니다. 하나의 제물적 조건물이라는 것입니다.

41 본질적 사랑을 떠나서, 공적인 사랑을 떠나서 이질적이요 자주적인 각성을 한 데서부터 타락이 시작됐습니다. 자기 중심삼은 데에서부터 타락이 시작됐기 때문에 자기를 중심삼고 사랑을 논하는 그 세계는 사탄의 착륙 기지가 그냥 그대로 연장되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 공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자기 개인적인 사랑까지도 희생시켜서 사탄을 분립하겠다고 이것을 밟고 넘어서는 그곳에는 사탄의 침식 기지가 영(零)이 돼 버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