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랑 영원까지/천성경
제8편 신앙생활과 수련 - 제2장 마음과 몸의 수련_ 3절
호로고루
2013. 3. 6. 13:19
천성경증보판 - 제8편 신앙생활과 수련 - 제2장 마음과 몸의 수련 3절 신앙 수련 1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에 독생자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미국을 사랑하고 교파를 사랑해서 독생자를 준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세계를 위해 주신 것입니다. 무슨 침례교니 장로교를 위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똑똑히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세계를 위해서 있고 하나님을 위해서 있지 선생님을 위해서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은 망하지 않습니다.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호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완성은 참사랑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전 세계가 참사랑을 중심삼고 이런 공식을 적용해서 훈련해야 합니다. 그렇게 안 하고는 못 살 정도로 습관화되어야 합니다.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그렇게 살아야 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면 자기 할아버지 할머니같이, 어머니 아버지 연령이면 자기 어머니 아버지같이, 자기 상대의 연령이면 자기 아내나 남편과 같이, 아들딸 연령이면 자기 자식과 같이, 자기 연령이면 형제와 같이 사랑해야 됩니다. 그것이 습관화해야 됩니다. 재미가 있어야 됩니다.
참사랑으로 2 강물은 바다로 갑니다. 지상은 강물과 마찬가지이며 영계는 바닷물과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영계에 가게 됩니다. 민물고기는 바닷물에서는 죽어 버립니다. 갑자기 들어가면 질식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그 세계의 내용을 지상에서 훈련하는 곳입니다. 참사랑, 위하여 사는 사랑의 활용 훈련을 시키는 수련소가 통일교회입니다. 위하여 사는 사랑의 실체를 형성하기 위한 수련소입니다. 하나님이 위하여 사는 사랑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위하여 사는 사랑을 가졌을 경우 어디에 가든지 환영받습니다. 어디 가든지 반발이 없는 것입니다.
3 참사랑의 치리권으로 정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첩첩 방위선을 거치고 수난을 극복하고 나서야 가능합니다. 또한 그 수난을 감수할 수 있는 스스로의 입장이 결정된 현재의 터전을 갖지 않고는 달성할 수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통일교회의 현재 입장을 두고 볼 때, 통일교회가 이 세계의 역사과정에서 미래의 주인으로 군림할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개인을 위한 자리가 아닙니다. 개인의 자리보다 나은 자리입니다. 세계 인류의 개개인보다 조금 나으면 개인적인 미래의 주인이 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주인으로는 안 됩니다. 또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조금 나으면 가정적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가정을 넘어서 종족, 종족을 넘어서 국가, 국가를 넘어서 세계적 주인으로 군림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누구보다도 비참한 역사과정을 거쳐서 현실적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지 않고는 미래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4 사랑의 보자기는 하나님과 이 우주를 집어넣고도 남습니다. 하나님까지도 그렇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1초 동안에 3억 미터나 가는 전기를 만들었다고 합시다. 그것보다 더 빨리 가는 하나님일 텐데, 그 사랑 보자기에서 있는 힘을 다하여 달리더라도 사고가 안 날 수 있을 만큼 사랑의 보자기는 크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주가 크더라도 그 사랑을 중심삼고 돌게 되어 있지 직선으로 안 갑니다. 참사랑을 가진 사람은 우주를 가진 것이고, 이 우주를 가진 사람은 우주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오늘 지상생활은 이와 같은 사랑을 훈련하는 곳입니다. 그런 광장에 살고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5 참사랑으로 위하면 올라가고, 자기를 사랑하면 내려갑니다. 지옥과 천국이 자기를 중심삼고 되어 있습니다. 몸을 중심삼고 좋아할 때는 사탄의 무도장이 되고, 마음을 중심삼고 절대 좋아하면 하나님의 무도장이 됩니다. 하나님이 절대 마음을 중심삼고 좋아할 수 있는 것이 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몸을 중심삼고 절대 좋아하면 지옥으로 떨어지고 망해 없어지는 것입니다. 6 원수를 참사랑으로 위해 주게 되면 원수의 세계를 지배할 수 있게 되고, 그 원수의 세계가 오히려 여러분을 존경하고 모시게 됩니다. 여러분의 자식이나 부모보다도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주고 지극한 참사랑을 베풀면 사탄은 자동적으로 도망가게 되고 하나님이 대신 그 자리에 오셔서 천배 만배로 갚아 주는 것입니다. 사탄이 도망갈 수밖에 없게 만드는 비법이 무엇이겠습니까? 참사랑으로 위해서 살고, 위해서 죽고, 위해서 사랑하겠다는 참사람 앞에서는 아무리 지독한 사탄도 국경선을 포기하고 도망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도망을 가더라도 국경선을 헐어 버리고 가게 되어 있지 그냥은 못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악마 사탄이 떠나감으로써 지옥의 사망권으로 직행하던 무수한 생명들이 180도 선회하여 하늘나라로 상승할 수 있는 영생의 도리가 펼쳐집니다. 이렇게 영생의 축복이 내리는 것입니다. 말씀에 따라 7 선생님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았으니 여러분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선생님보다 몇 배 숙달될 수 있게끔 말씀을 읽고 또 외우고 행해야 됩니다. 그러면서 ‘내가 이런 길을 가야 되겠다. 부모님이 원하는 것이 이런 길이니 이리 가야 되겠다.’라고 해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어떤 마을에 들어가면 그 마을의 조상들까지 와서 자기를 모셔 줄 수 있는 환희의 동참자가 되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8 부모님이 남겨 놓은 말씀을 더듬을 수 있는 후세가 되어야만 그 만국 만민 전체가 영원한 천상에 가까운 길로 접근해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조상을 존중시하고 조상이 남긴 유물과 조상이 훈시로 남긴 말씀을 세상에 자기 사는 것보다도 표상적이 아닌 실상적인 주체로 어두운 세계의 등대와 같이 바라보아야만, 어두운 바다에 암초가 겹겹이 싸인 세계를 가려 갈 수 있고 자활의 해방의 길로 갈 수 있습니다. 그 등대를 보고 자기 방향을 찾아가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 등대가 될 수 있는 이야기를 선생님이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늘땅을 중심삼고 선생님 말씀 이상의 말씀을 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지극히 높은 심정의 세계에서 싹터 나오는 천상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9 끝날에는 심정과 인격과 말씀으로 심판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잘 믿었는가 하는 것으로 심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심정의 중심이 있습니다. 하늘땅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세워야 할 단 하나의 심정의 중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심정과 일체가 될 수 있는 인격의 중심이 있습니다. 또 이 인격과 심정과 일체가 될 수 있는 사람으로서 하나님 대신 말할 수 있는 말씀의 중심이 있습니다. 이것이 심판의 3대 요건입니다. 그중에서도 말씀심판이 제일 먼저 벌어집니다. 타락한 인간세상에서는 말씀심판이 먼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10 오늘날 타락한 세계의 사조는 진리의 세계를 찾아 나갑니다. 그리고 문화와 더불어 발전해 나가는 역사는 하나의 문화세계를 향하는 이념을 찾아 나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세계 사조는 사상과 주의를 통해 나왔지만, 만민이 하나될 수 있고 만민이 화할 수 있는 하나의 말씀 기준을 세우지 못한 채 막다른 골목에서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들도 녹여내고 민주주의자들도 녹여내어 하나로 만들 수 있는 말씀이 나와야 합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이 세계에 하나의 말씀이 나와서 지금까지의 진리를 심판해야 되는 것입니다. 11 여러분이 은혜에 사무치고 생명을 결심하고 나서면 하나님이 대신 마이크를 들고 나선다는 것입니다. 천사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도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씀에 취해서 밥 먹는 것을 잊어버리고, 자는 것도 잊어버리고, 사는 것을 잊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올라가게 되면 여러분은 누구든지 선생님이 하던 일을 대신할 수 있습니다. 이 작용이 위대한 것입니다. 탕감의 고개를 넘어 12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의 타락으로 인해 인류를 한꺼번에 죽여 버리는 것 이상으로 더 분통하고 억울한데도 그 아버지의 신세를 지고 잘살겠다고, 자기가 행복하겠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버릴 수밖에 없는 세계를 다시 수습해서 제2 이상향을 향하여 본향의 고향산천 부모들을 모시던 효자·충신·성인들이 간 그 뒷모습을 따라가서 한 발짝이라도 틀림없는 그 길을 밟고 이 탕감의 고개를 넘어야 됩니다. 부모님이 간 길은 여러분이 다 같이 가야 됩니다. 따라가야 됩니다. 천리만리 천리원정입니다. 천리원정이 남아 있습니다.
13 탕감길은 반드시 시간이 소모되어야 합니다. 또한 단지 시간의 소모뿐만이 아니라 자기 자체의 소모가 벌어져야 됩니다. 이러한 신앙길을 개척해 가야 할 각자의 책임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여기에 얼마나 시간을 소모했으며, 얼마나 자기 자신을 소모했느냐? 이것이 탕감 요인을 제거시키느냐, 못 시키느냐를 좌우합니다. 이렇게 볼 때에 신앙길은 희생의 길입니다. 자기 생애의 희생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가 행복할 수 있는 모든 요인을 투입하는 길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자기 육신도 여기에 말려 들어가야 됩니다. 전체를 중심삼은 희생과 자기 자체를 중심삼은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됩니다. 그 시간이 길고 자기 자체의 희생의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자기 일대에 대한 탕감의 양을 비례적으로 청산지을 수 있는 것은 정당한 이치입니다. 14 잘사는 사람보다 고생을 많이 하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제일 높은 기준은 제일 고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여러분을 고생하는 자리로 내모는 것입니다. ‘그 분야에 있어서는 내가 아니면 안 된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책임을 수행하는 것이 됩니다. 종 중의 종이 되고, 양자 중의 양자가 되고, 아들 중의 아들이 되어 후손까지도 공인하는 영원한 축복의 자리까지 나아가야 책임을 다한 여러분이 되는 것입니다. 가는 데는 종으로 가고, 양자로 가고, 아들로 가고, 성신과 예수님의 자격으로 가고, 최후에는 아버지로 가야 합니다. 아들딸의 자리까지는 자기를 위한 탕감분야요, 성신과 예수님의 자리는 아버지를 위한 탕감분야입니다. 아버지의 책임까지 다해야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 되고, 과거·현재·미래를 대해 부족함이 없는 자신이 됩니다. 15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세계와 천주를 연결하여 효도를 하는 남자가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효도를 하는 가정을 만드는 것입니다. 가정 혈통의 잘못된 기준에서 개인적 가정, 가정적·종족적·민족적·국가적·세계적 가정을 만드는 것입니다. 선생님 혼자서 그 십자가를 지고 탕감의 고개를 넘고, 경계선 국경선을 넘어와 있습니다. 선생님은 세계적인 기준에서 승리를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사탄의 전쟁까지 멈추게 하여 평화로운 지상천국·천상천국을 만드는 것입니다. 16 하나님의 슬픔을 탕감해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눈물을 흘린 대신 우리는 형제를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고, 세계를 위해서 눈물 흘리자는 것입니다. 이런 책임을 수행할 수 있는 무리가 세상에 나오게 되면 그 무리는 망하지 않습니다. 그 후손은 틀림없이 발전할 것입니다. 여러분 당대에는 물론 비참한 역사적인 무엇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지금 끝날이 왔기 때문에 당대에 두 세계를 심판하고 한 세계를 건국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는 것을 알고, 이때야말로 역사적인 시점인 것을 알고, 하나님 앞에 효자가 될 수 있고 충신이 될 수 있는 이때인 것을 알고 하나님을 위로하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17 만일 어떠한 비참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감과 용기를 가지고 어려움을 극복하며 재출발할 수 있는 무리가 있다면, 새로운 세계는 그들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런데 무엇인가 가지고 있는 무리는 움직이는 데 있어서 용기가 없고, 가지고 있지 못한 무리는 움직이려 해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수행할 수 있는, 또 줄 수 있는 그 무엇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경지를 넘어서는 데에는 자연적으로 될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많은 탕감조건과 희생을 거쳐야만 됩니다. 자기 이익을 위한 희생이 아니라 전체에 이익이 될 수 있는 희생을 하고 전체의 승리, 전체의 가치를 위하여 자기 일신을 희생하는 데에 만족하는 무리가 필요합니다. 관계 회복의 원리 18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모든 만물이 화동하는 가운데 만물의 주인 자격을 갖추어 하나님 앞에 ‘나의 아버지여! 영광을 받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었던 아담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런 가치를 상실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창세 이후 본연의 아들딸이 나와 아버지라 부르는 그 한마디의 음성을 듣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부르고 있는 그 아버지는 죄악의 입장에서 부를 아버지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악의 세상에서 벗어나 선의 이상동산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 이상동산은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 동시에 기쁨에 도취되어 살 수 있는 세계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동하면 만물이 동하고, 인간이 정하면 만물이 정하게 되어 인간과 만물이 동하고 정하는 동시에 창조주 하나님도 동하고 정할 수 있는 세계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상대적인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초월하여 일체 될 수 있는 이상동산입니다.
19 하나님은 인간이 당신과 하나되기를 바라셨고, 하나된 가운데서 놀라운 사랑을 중심삼고 기쁨에 취하는 그 한 장면을 그리면서 그러한 세계를 창조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만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이것이 자기들의 원한이 된 동시에 천륜의 원한이 되었고, 타락 이후 지금까지 그 원한에 원한을 가중시키는 슬픈 역사를 저질러 왔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오늘 이 땅을 대하시어 섭리하시는 최대의 희망은 무엇인가? 그것은 타락의 부모를 갖고 있는 인류를 다시 하나님 편에 세워 놓고 ‘나는 그대들의 영원한 아버지요, 그대들은 나의 영원한 아들딸이다.’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날을 맞이하는 것이 타락한 인간의 역사적인 소망이요, 천륜을 대하는 천적인 소망입니다. 20 평화의 세계는 국가와 국가 사이에 좋은 관계를 맺어야 됩니다. 투쟁 개념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인연은 관계를 맺어야, 상대적 입장이 되어야 됩니다. 인연이 있어서 왔으니 상대적인 관계가 되어야 관계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관계라는 것은 나쁜 것을 중심삼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좋은 의미입니다. 21 관계는 인연이 없는 데서는 맺어지지 않습니다. 불교에서는 인연을 말하는데, 통일교회에서는 관계를 말합니다. 한 단계 앞서 있습니다. 관계는 반드시 둘 이상에서부터 맺어집니다. 인연은 혼자서도 맺어집니다. 마음과 몸이 인연돼 있기 때문에 통일된 관계를 맺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인연이 돼 있기 때문에 부부일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인연될 수 있는 그 중심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부자관계도 인연이 있기 때문에 아버지를 중심삼고, 아들을 중심삼고 절대적인 내용을 채워 줄 수 있는 중(中)이 있어야 됩니다. ‘가운데 중(中)’ 자, 이것은 사방의 중심을 말합니다. 22 주체와 대상의 관계라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포괄하고 있습니다. 관계를 맺게 될 때 상대는 낮은 자리에 있지만 큰마음을 가지고 대하면 그 상대에게도 큰 영광을 주는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이 넓으면 넓을수록 그 상대도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주체 앞에는 대상존재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23 관계라는 것이 틀이 있으면, 그 틀에 매인 모든 인간 역사라든가 개인 사정이 다 다릅니다. 그러니까 주류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나무로 말하면, 나뭇잎은 천년 전에 나온 잎이나 천년 후에 나온 잎이나 그 본질은 마찬가지입니다. 그 나무의 중심 뿌리와 연결돼 있습니다. 또 중심 줄기와 연결돼 있고, 중심 순이 연결돼 있습니다. 가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서남북 사방에 다른 가지가 있더라도 그 내용에서는 다 같다는 것입니다. 24 공명권은 두 사람이 하나된 경지입니다. 부모도 두 사람이요, 부부도 두 사람이요, 형제도 두 사람이요, 자녀도 그렇습니다. 전부 두 사람입니다. 쌍쌍이 되니 관계라는 말이 됩니다. 형제관계라는 것도 두 사람을 두고 말합니다. 혼자로는 관계란 말을 못합니다. 정치관계도 나라와 백성이고, 주체와 대상의 관계도 역시 두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지, 혼자서는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25 인간에게 체휼시키고, 인간과 부자의 관계를 맺기 위해 수고하고 계신 아버지이신 것을 마음으로나 생활에서 느껴야 합니다. 우리의 최후 소망으로 남아져 있는 것, 즉 하나님의 은사 가운데 우리가 세움 받는 것도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 이뤄질 것인가? 그것은 창조의 이념인 하나님과 인간의 부자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땅 위에서 어느 정도나 실천했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권에서 어느 정도나 실천했느냐에 따라 자기들의 가치를 찾을 수 있습니다. 26 새나 바다에 있는 고기 같은 만물, 만유의 존재들도 노래와 춤과 화답할 수 있는 말이 있습니다. 말이 조금 발전하면 노래가 되고, 걸음걸이가 발전하면 춤이 되는 것입니다. 이 형용하는 전부로써 화합 화답할 수 있는 관계라는 것은 사랑을 중심삼고 되어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사랑의 시간들을 나누고 사랑의 시간들을 서로 높이기 위한 일을 만유의 존재가 경쟁적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만유의 주인입니다. 그렇게 되니까 인간이 이 노래의 말씀과 화합의 말을 하루에 10배 100배 가담시켜 가지고 지저귀고 좋아할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그 세상은 하나님이 취해 살 수 있는 환경의 세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