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랑 영원까지/천성경

제7편 지상생활과 영계 - 제3장 영생을 위한 지상생활_ 3절

호로고루 2013. 3. 6. 13:32

3절 영성 계발과 영계 체휼

1 선생님이 나와서 영계 뿌리를 세밀히 밝힐 수 있었다는 사실이 인류 앞에 얼마나 큰 복이고 축복인지 모릅니다. 지금 그것을 다 믿지 못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믿는 사람들이 복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줄기가 되고 줄기 앞에 제일 첫 번 가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중심 줄기와 첫 번 가지가 된다면, 그 나무가 천년 가더라도 그 줄기와 가지를 따라서 발전하는 것입니다.

기도와 정성으로 영계 체험
2 마음의 문, 심문(心門)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해 보면 아는 것입니다. 시간에 따라 느낌이 다릅니다. 새벽 1시에 기도하는 것과 3시에 기도하는 것이 다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체험해 보면 압니다. 신비스러운 깊은 경지에 들어가서 기도해 보면 기도하는 시간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느끼는 것과 낮에 느끼는 것과 저녁에 느끼는 것과 밤에 느끼는 것이 모두 다릅니다. 우리의 마음 상태에서도 느끼는 기준이 우리가 육체적인 감정을 가지고 사시사철 계절의 변화에 따라 느끼는 감도가 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음의 세계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하는 데도 어떤 시간에 잘되는지를 알아야 됩니다. 기도가 잘되는 시간은 하나님과의 감응의 도가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 잘되는 시간에 마음의 문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 문과 인간의 마음 문이 딱 맞아서 어느 기준까지만 맞추어 돌아가는 날에는 하나님이 느끼는 것을 체휼하는 길이 생깁니다. 여러분이 이 같은 자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마음을 닦아야 됩니다.

3 대개 영적으로 느끼는 사람은 영적으로는 크지만 진리 면에서는 크지 못합니다. 처음에는 굵지만 뾰쪽해지면 시종여일이 아니기 때문에 영원히 못 가는 것입니다. 어느 때에는 반드시 굴러떨어집니다. 또 진리는 크지만 영적인 면이 작다면 영원히 못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조정하는 생활을 해야 됩니다. 기도와 진리,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평형을 만들어 화하는 자리에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영계와 육계를 조정해야 됩니다. 영적 세계의 중앙에 서야 되고, 진리세계의 중앙에 서서 조정할 수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인간이 되지 않고는 완전한 자리가 될 수 없습니다.

4 정성을 들이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가 오는 것입니다. 기도생활을 해본 사람은 알 것입니다. 기도생활을 하게 되면 크고 위대한 힘이 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의 눈은 그 힘에 의해서 육계뿐만 아니라 영계까지도 투시합니다.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실체의 이념권을 인간에게 인연맺어 주시기 위하여 종교적인 기반을 중심삼고 섭리해 나오셨습니다.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을 자극시켜서 그러한 권내로 가게끔 하는 욕구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인간을 초현실적인 선에 연결시키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5 사도 바울이 영계의 3층천 세계를 보고 체험한 것은 그가 14년 동안 꾸준히 선교활동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체험이 있어야 됩니다. 선생님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에게도 바라는 기준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말하지 않았으나 ‘이렇게 할 것이다.’라는 곧은 뿌리가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러한 신념을 갖고 끝까지 밀고 나갈 것입니다. 이 신념이 꺾이지 않고 뭉그러지지 않는 한 어떠한 시련과 풍파가 부딪쳐 와도 밀고 나갈 것입니다.

6 우리는 하나님의 심정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심정이 어디에 있느냐 할 때, 기도 가운데서 음성을 들어 보면 ‘선생님의 말을 잘 들어라. 선생님을 슬프게 해서는 안 된다. 선생님을 기쁘게 해드려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잠을 안 자고 그러다 보니 영계가 열리더라는 것입니다. 영계가 열립니다. 선생님이 미국에서 뭘하는지 앉아서 봅니다.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이것은 막연하던 신앙의 주체적 대상을 현실적인 실체적 주체로서 횡적 무대에서 체휼할 수 있는 권을 형성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종교세계에 위대한 혁명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체휼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7 여러분이 지금까지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일한다고 하는데, 어느 자리에서 일했는가를 생각해야 됩니다. 자기가 생활하는 자리에서 개인적인 생활과 화합해서 했느냐, 하늘을 중심삼고 세상과 화합하려 했느냐, 방향이 어디이고 위치가 어느 자리인가를 언제든지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나와 같이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은 벌써 눈만 감으면 압니다. 기도를 안 해도 안다는 것입니다. 어디 가서 말하려면 말이 술술 나옵니다. 양심 있는 사람에게 가면 내가 쭉 끌려 들어갑니다. 전부가 상대적입니다. 자기의 주체나 대상이 되면 끌어당기는 것입니다. 처음 만났다고 해서 상대가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본질은 영원불변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런 데에 가게 되면 마음이 좋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 경지에 들어가면 말을 안 하려 해도 입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8 오늘 길을 가다가 어떤 사람을 만날 것인가를 생각해야 됩니다. 첫 번째 만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두 번째 만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세 번째 만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를 생각하며 ‘아버지, 어떤 사람입니까? 나는 이런 사람을 만나기를 바라는데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내가 생각하고 기도한 그 기준과 딱 맞아떨어진다면 기분이 좋습니다. 이러한 체험을 함으로써 여러분의 영적 촉감이 발달됩니다. 길을 나서면 벌써 오늘은 어떤 사람을 만날 것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사람의 영은 무한정으로 통합니다. ‘오늘은 어떤 사람을 만날 것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그런 사람을 대하게 되면 ‘아이쿠!’ 하고 깜짝 놀라게 됩니다. 이렇게 자기의 생각과 영계에서 가르쳐 준 영감이 실제의 사실로 들어맞을 때가 많습니다. 이런 체험을 쌓아 올라가야 됩니다.

9 물고기 세계에서는 물이 공기와 마찬가지이고, 인간세계에는 공기가 우리의 생명을 이어 주는 모체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계의 생명요소는 사랑입니다. 사랑이 공기와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호흡했던 이 오관을 통해서 그것을 체질에 화하게 해서 세포 자체가 사랑을 호흡하면서 하늘과 더불어 약동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호흡할 수 있는 상응적인 관계를 체휼하는 것입니다. 체휼적 신앙, 체험적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체휼적 사랑을 중심삼고 남편이 아내를 대할 때는 매일 체휼하면서 사랑하고 존경하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을 중심삼고 체휼적 심정을 통해 천정과 인정이 합덕해야 됩니다.

10 마음이 반사작용을 함에 따라 몸도 같이 반사작용을 해야 소모가 벌어지지 않습니다. 전파가 들어왔는데 그 들어오는 전파를 몸이 가로막으면 반사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전파가 들어온 그대로 통할 수 있게 되면 우리 몸은 진동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작용을 하기 때문에 영적인 체험은 자동적으로 오는 것입니다. 영적 체험을 갑자기 하게 되면 부작용이 벌어집니다. 자연적으로 체험해야 됩니다. 봄이 되면 자연적으로 나무에서 꽃이 피는데, 나무가 꽃을 피우려면 꽃을 피울 만큼 자라야 됩니다. 이제 겨우 싹이 트는데 거기에서 꽃을 피울 수 있겠습니까? 꽃이 피기를 바라면서 빨리 커야 한다고 나무를 잡아당기면 되겠습니까? 뽑히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꽃은 자연적으로 피어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신앙길은 조급하게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천년사를 창조해 내는 길이기에 조급하게 가서는 안 됩니다.

11 심문(心門)에 맞추어 심전(心田)을 계발해야 됩니다. 이 마음의 밭을 계발하고 방향 기준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체 되시는 하나님을 발견해야 됩니다. 그런데 주체 되시는 하나님은 모호하게 느껴집니다. 하나님과 연결하려면 정신을 집중시켜 내 마음에서부터 출발하는 길 외에는 없습니다. 마음에서부터 마음을 맑혀 놓으면 반드시 방향을 알게 됩니다. 자연히 따라가는 것입니다. 동쪽을 향해서 기도를 했는데, 신비의 경지에 들어가면 벌써 방향이 달라집니다. 이런 것을 볼 때, 마음 문이 있다는 것입니다.

12 체휼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도를 해야 됩니다. 정신을 집중해야 됩니다. 될 수 있으면 무아경지인 영점의 자리에 내려가든가 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한 제일 빠른 길이 어디냐? 이 영점 자리에 가기 위해서는 여기에 내려오는 것이 제일 빠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선하는 사람이 ‘도대체 마음이 무엇이냐?’라는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영원한 이상적인 선의 주체이면 그 주체적 존재 앞에 상대적 바탕으로서 언제나 변함없이 상대기준을 이룰 수 있는 것이 마음의 중심입니다. 이것을 통일교회에서는 생심의 기원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신비스러운 기도 가운데로 들어가서 상대기준만 딱 맞으면 초연한 힘이 나타납니다. 석가모니도 그 경지에 들어가서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는 말을 한 것입니다.

암시 몽시를 무시하지 말라
13 기도가 잘될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목욕재계를 하고 정성을 들이더라도 기도가 안 될 때가 있습니다. 방에 따라 다르기도 합니다. 방의 위치에 따라서도 다릅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의 중심 앞에 동서남북이 있기 때문에 그 위치에 따라 다른 것입니다. 또 방향에 따라 다릅니다. 산에 가더라도 기도가 잘되는 곳이 있습니다. 또 사탄이 모여 있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은 음지입니다. 음지와 양지라는 것이 영적으로 그렇게 돼 있습니다. 여러 번 체험하면 그런 것을 다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모든 암시나 몽시나 계시나 묵시가 벌어지는 것은 하늘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 벌어지는 개척적이고 발전적인 불가피한 현상이기 때문에, 이것을 소홀히 하지 말고 생활에 적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14 앞으로 여러분이 가정생활에 있어서 중요시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선생님이 아내나 아이들의 몽시 가운데 나타나서 무엇을 가르쳐 주었다면 그것을 믿어야 됩니다. 자기 딸이 가르침을 받았다면 그 딸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존중시하고, 그 가르침을 절대시하고, 그 말씀에 하나되어 가지고 따라갈 수 있는 가정환경을 만들어야 됩니다. 남편이 그 가르침을 받지 못하면 아내를 중심삼고 반드시 가르쳐 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 가정에 하나님이 가까이해 주신다는 것을 알고 아내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과 마찬가지로 여기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15 한국말에 암시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슨 말이냐? 내가 길을 무심코 쓱 가는데 어떤 좋은 집 담벼락에 앉아 있던 새가 날아가는 것을 보았을 때, 새가 날아가는 그 자체를 통해서 암암리에 무엇인가를 느끼는 것입니다. 실제 생활에 있어서 그런 형태가 전개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 암시적인 것들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는 우연히 가운데 무엇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들이 점점 많아집니다.

16 암시의 단계를 지나게 되면 어떠한 형태가 벌어지느냐? 몽시 같은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꿈 가운데 일어나는 일인데 꿈도 깊은 잠 가운데서의 꿈이 아닙니다. 바울도 비몽사몽간에 3층천을 체험했습니다. 비몽사몽간에 그런 현상이라든가 혹은 음성이라든가 하는 것이 오관에 감각이 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무심코 흘려보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종합해서 어떤 방향의 인연을 나에게 연결시키기 위해 나타나는가 하는 것을 과학적인 면에서 통계를 내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그 결과가 나타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잊을 수 없는 몽시 같은 것은 백 퍼센트 적중하게 됩니다.

17 비몽사몽간에 어떠한 사람이면 사람, 물건이면 물건이 인연되었는데 그것이 현실 가운데서 실체로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꿈 가운데서 누구하고 노래하고 있는데, 그 노래가 바로 꿈 가운데서의 노래가 아니고 옆에서 누가 부르는 그 노래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이 벌어집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영적 차원에 있어서 마음 상태가 공명할 수 있는 권내에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것을 지극히 귀하게 여겨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이 있다면 그 하나님이 어디에 나타나느냐? 공중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여러분이 그런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왜 그러냐? 마음이 아직까지 존재성을 확립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몸한테 끌려다니는 사람이 됐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이 존재성을 확립해 또 다른 하나의 주체라는 인격적인 차원의 자리가 형성되면 그것은 반드시 다릅니다.

18 계시의 단계를 지나게 되면 묵시 단계입니다. 하루 종일 영계에 들어가서 체험을 한다든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까지 연결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생활적인 감정권까지 도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체휼적인 신앙을 안 가지고는 위대한 하늘 뜻의 결과세계를 우리 생활무대에 적용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체험을 갖지 않는 신앙자는 믿을 수 없습니다. 체휼적인 신앙이 얼마나 고귀한가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계발해 나가야 됩니다. 그다음에 역사라는 것이 있습니다. 영적인 힘이 전기작용과 마찬가지로 들어옵니다. 고압에 접한 것과 같은 힘이 찾아들어 오게 되면, 우리 의식보다 강한 힘이 들어오기 때문에 그것은 딴 세계의 의식입니다.

19 체휼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도를 해야 되고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거기에서 나타나는 계시나 몽시를 절대 무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조정해서 현실적 생활권 내에, 실천무대에 어떻게 적용시키느냐 하는 것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