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편 신앙생활과 수련 - 제2장 마음과 몸의 수련_ 6절

2013. 3. 6. 13:16참사랑 영원까지/천성경

6절 마음과 몸의 통일을 위한 생활

1 우리의 눈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어야 합니다. 만일 인간이 타락하지 않고 근본적으로 잘 되었다면 90도 이하를 바라보면서 살 수 있는 것인데, 타락하였기 때문에 눈은 하늘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자들에게는 90도 이하를 바라보는 것이 용납되지 않습니다. 하늘을 바라보아야 됩니다. 그런데 땅을 바라보고 가다가는 망합니다. 나를 중심삼고 가다가는 망합니다. 이제 우리는 모든 것을 수습해야 됩니다. 생활에서부터 몸, 마음, 심정에 이르기까지 전부 수습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 심정의 기반은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이냐? 심정의 기반은 역사노정에 두는 것이 아니라 타락하기 전 아담 해와의 심정에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심정을 통하여 하늘과 더불어 오늘의 생활감정과 시대적인 모든 사조를 소화시키고, 하늘과 더불어 해결짓는 생활을 해야 됩니다. 그러한 아들딸들이 이 땅 위에 나와야 합니다.

2 몸과 마음을 통일시키는 데도 사랑이 없이는 안 됩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게 될 때는 자신의 몸이 굶주리는 것도, 수고스럽고 헐벗는 것도, 혹은 원치 않는 자리도 자처해서 갑니다. 이런 사랑의 길에는 몸도 마음도 통일적인 방향을 갖추어 나가기 때문에, 이 길만이 통일의 요인이요 통일의 방안입니다. 이것을 자기 생활노정의 기준으로 삼고, 생애의 표준으로 정하고 나가면 여러분은 망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선생님이 보증합니다.

전도생활
3 하나님은 복귀의 길을 더듬어서 개인과 가정을 찾아오셨지만 그 개인과 가정으로부터 배척을 당하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이 또다시 세계를 향하여 가는 그 걸음을 멈추지 않으니, 나도 가야 되겠습니다. 그 길이 험준하다고, 그 길에 죽음이 있다고, 슬픈 곡절이 있다고 마다해서는 안 됩니다. 나의 아버지가 가신 길을 나도 가야 되겠으니, 아버지가 어려우면 나도 어렵기를 바라고, 아버지가 슬프면 나도 슬프기를 바라야 합니다. 이것이 통일의 이념입니다. 이 뜻이 정녕 아버지께서 세우신 뜻임을 알게 될 때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극복해야 됩니다. 또한 아무리 어려운 사정이 있다 하더라도 그분은 내 아버지요 그 사정은 내 사정이 되기 때문에, 그 아버지가 세우신 전통을 상속받고 그 아버지의 역사와 심정에 접붙임을 받기 위해서는 그 아버지가 고통을 받으면 나도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러기에 통일교인들은 쉬지 말고 그 길을 가야 합니다. 갈보리 산상에서 예수님이 죽음의 자리에서도 기도하며 전도한 것처럼, 통일교회 여러분은 사망의 어둠이 휩쓰는 이 천지 가운데서도 전도를 해야 됩니다. 지옥에 가더라도 그 속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을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4 신앙생활은 부업이 아닙니다. 주업 중의 주업입니다. 사람을 만나도 내가 만나는 그 사람에게 지금 말씀을 전하지 않으면 그 사람이 돌아가다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부모라든가 형님이나 누나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늦게 되면 말씀을 전해야 할 텐데 내가 바빠서 미안하다고, 언제 다시 한 번 만나기를 바란다고 인사라도 해서 조건을 남기고 가야 됩니다.

5 전도는 생명을 접붙이는 일이기 때문에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을 놓고도 정성 들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일생을 걸어 놓고 몇 사람한테 정성을 들여 보았습니까? 자기를 위해 정성 들여 주는 사람이 많다고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정성을 들이는 사람은 복을 받지만 정성 들인 것을 받는 사람은 복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내가 정성을 들여 주어야 합니다. 정성을 들여 주었는데 그가 말을 안 듣는다고 외로워하거나 슬프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천리원칙이 그렇다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절대로 서럽거나 외롭지 않습니다.

6 전도는 해산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이 지내보니까, 한 사람을 자기 아들 이상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아들을 낳는 것보다 세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전도한 이후에도 책임을 져야 됩니다. 다른 길로 가던 사람이 다시 돌아오려면 충격적인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리든가, 자기 스스로 분함이나 억울함을 느끼든가, 지금까지 느끼지 못한 심정적인 폭발사건이 벌어져야 됩니다.

7 전도는 누구 때문에 하느냐? 하나님 때문에 하고 인류 때문에 하지만, 내 아들딸 때문에, 그리고 나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우리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누구를 원망할 것이 없습니다. 자기를 원망해야 됩니다. 누구한테 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내가 해야 됩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소원하는 살 곳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8 전도는 배고픈 사람이 밥을 찾듯이 그렇게 해야 됩니다. 배고플 때 밥의 귀중함을 알듯, 그러한 마음을 갖고 해야 영계에서도 협조하고 상대가 생기는 것입니다. 본업으로 해야 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9 아담이 완성의 자리에서 결혼하지 못했기 때문에 타락한 데서 복귀돼 참부모가 가정을 거느리고 세계에 유리하면서 하늘 편 가정, 하늘 편 종족이 나와서 사탄세계가 빼앗아 간 종족·민족·국가·세계를 합해서 찾아와야 됩니다. 그래서 전도해야 됩니다. 전도는 무엇이냐? 사탄세계의 핏줄을 중심삼고 태어났기 때문에 그 태어난 핏줄에 새로이 접붙인 하나님의 핏줄을 중심삼고 돌감람나무를 전부 없애 버려야 됩니다. 그것이 전도입니다.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재산입니다.

10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그 사랑을 주어야 하므로 전도를 안 할 수 없습니다. 위로 하나님을 모시는 중간 자리에 서려면 자기 아래가 필요하므로 전도해야 됩니다. 내 죄까지도 책임져 줄 수 있는 신앙의 자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교회를 위한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면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11 전도하러 돌아다니면서 가게 되면 하나님이 동행해 주는 것입니다. 전도를 거꾸로 하면 무엇입니까? 도전입니다. 내가 가는 데 있어서 적이 있으면 적을 물리쳐 주는 하나님과 같이하면 만사가 형통하는 것입니다. 도전입니다. 전도, 도전! 그것을 못하는 사람은 자꾸 까라집니다. 아버지가 싫어하고, 할아버지가 싫어하고, 할아버지 후손, 아버지 후손, 자기 아내, 아들딸까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어머니는 어머니로서 도전해야 됩니다.

12 여러분이 사랑의 씨를 심어 놓고 크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영계에 가서 자기한테 전도받은 후손들이 남이 아닙니다. 나뭇가지에 연결된 또 다른 새로운 가지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입니다. 몇 천년 된 나무, 몇 만년 된 나무에서 싹이 나올 때 금년에도 나오고 내년에도 나옵니다. 몇 천년 몇 만년 된 그 나무의 요소가 나와 더불어 끊어질 수 없습니다. 거기에 연결되어 더 크는 것입니다.

13 여러분이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이 그리워 그냥 있을 수 없어서 길을 나서서 누구를 만나게 되면 그와 인연되어 자연히 전도가 됩니다. 누구 상대할 사람이 없어서 혼자 있을 때는 하나님이 직접 오셔서 같이하는 것입니다. 자기 손을 척 붙들면 빛이 납니다. 그런 것이 느껴집니다. 빛이 나를 옹호하고 품어 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럴 때 평화스러운 얼굴, 평화에 잠긴 얼굴, 행복에 잠긴 얼굴을 하고 그런 심정을 어떻게 체휼하느냐가 문제입니다. 마음과 몸이 부풀어 오르고 세포나 모든 것이 흠뻑 충만되어서 하늘의 무한한 사랑에 잠길 수 있어야 합니다. 손짓하며 노랫가락을 읊조릴 때에 온 우주가 주목하고 있는 것을 느끼는 자리에 서서 ‘아버지!’ 하는 그 음성, 그런 심정권이 필요합니다. 그런 것을 여러분이 체휼해야 됩니다. 그렇게 전도하게 되면 전도가 되게 마련입니다.

14 내 마음이 출발해서 움직일 때, 혹은 ‘전도하자.’라고 할 때, 원해서 하는 사람이 있고, 마지못해서 하는 사람이 있고, 죽을까 두려워서, 무서워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됩니까? 환영해서 하느냐, 마지못해서, 죽지 못해 할 수 없이 하느냐, 무서워서 하느냐?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다 낙제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몸과 마음이 주체와 대상이라면 그 환경 여건에 일치하게 될 때는 기쁨으로 출발하는 것입니다. 슬픔으로 출발하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출발하게 되어 있습니다. 기쁨의 내용이 첫 번이지 슬픔의 내용이 첫 번이 아닙니다. 타락이 뭐냐? 슬픔의 내용이 첫 번이고, 기쁨의 내용은 시작도 안 했다는 것입니다. 복귀의 운명길을 찾아가는 우리로서는 뜻을 기쁨의 내용으로 출발하여 기쁨의 과정으로 소화시켜 나와야 됩니다.

축복가정 생활
15 축복가정은 마음이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또 몸이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야 하고, 뜻이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창조이념을 대신해 나가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이 없이는 ‘나’라는 가치를 결정지을 수 없습니다. 우리 개체에는 하나님의 심정과 소망이 깃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정의 실체이고, 하나님의 뜻을 대표한 입장입니다.

16 축복가정은 수많은 민족 앞에 본이 되고, 수많은 교회 앞에 본이 되어야 합니다. 요셉 가정이 책임하지 못한 것을 여러분 가정이 잘함으로써 탕감복귀하고, 요셉 종족이 책임하지 못하고 유태교가 책임하지 못한 것을 우리가 교단적으로 탕감복귀해서 넘어가야 됩니다. 그리하여 가정적 실패, 종족적 실패를 국가 기준을 중심삼고 일시에 탕감복귀해서 넘어가자는 것입니다.

17 축복가정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그 나라와 그 세계를 상속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상속받아야 합니다. 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는 권한과 하나님의 사랑을 상속받을 수 있는 권한을 축복가정은 갖고 있습니다. 금후에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사랑을 상속받을 수 있는 특권적 권한을 허락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통일교회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연결시킬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들고 나왔기 때문에, 심정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요 심정의 역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이 문제가 됩니다.

18 축복받은 가정들은 하늘나라 창건에 있어서 애국자의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일체의 생활은 자나 깨나 하늘의 명령에 의해 움직여야 됩니다. 영계로 보게 되면 이 땅 위에 있는 축복가정은 하늘나라의 첩자 가정입니다. 사탄세계에서 핍박을 받으면서, 자유가 없는 예속된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서 그것이 노출될 수 있는 기반을 확대시키기 위해서는 자기 생사지권을 걸고 활동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19 선생님은 축복가정을 앞세웁니다. 그런데 축복가정들이 고생하지 않고 하늘땅을 위해 눈물짓는 생활을 하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눈물 없이 사는 사람은 가짜입니다. 끝날에는 알 것입니다. 오늘 우리 역시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그렇다고 먹는 것 때문에 울어서는 안 됩니다. 맡은 바의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울어야 합니다. 원수와 대결하고 있는 우리는 원수의 기반을 점령하라는 특별명령을 받은 책임자로서 그 책임 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며 눈물지어야 합니다.

20 축복을 받으면 아담 해와가 타락하기 직전의 단계로 복귀하게 됩니다.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완성해야 될 단계가 남아 있으니 하나님의 심정을 깨쳐 나가야 됩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을 구하기 위해 수고하신 내적인 사정을 체득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이 땅 위에 사랑하는 독생자를 보내시어 복귀역사를 책임지고 나가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축복가정들도 자기 자녀들을 제물 삼아 사탄 세상에 나가야 됩니다. 자기 아들딸을 업고 다니면서,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님을 안고 애급으로 피난하던 것과 같은 생활을 해야 됩니다. 그러면서 사랑하는 아들딸이 굶는 것을 보고는 ‘이러한 생활을 하는 것은 이 인류를 위한 것이니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께서 보호해 주실 것이다.’라고 해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서 이 세상에 실체로 오실 주님과 같은 입장에 세우실 것입니다. 그러니 끝까지 남아져 책임을 해야 됩니다. ‘나는 축복가정이니 대접해라.’라고 하다가는 꺾여 나갑니다.

21 축복가정들이 하나님을 중심삼은 생활, 뜻을 중심삼은 생활을 했느냐? 못했습니다. 모두가 자기를 중심삼은 생활만을 했습니다. 모든 생활의 동기도 목적도 뜻과 하나님이어야 거기에 사랑의 동산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주체로 하고 우리는 상대가 되어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거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개입되는 것입니다.

22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하늘의 가정으로서 살아가는 원리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축복가정은 자기가 속한 씨족을 위해서 고달픈 생활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주위에 있는 가정들이 잘 때 같이 자면 안 됩니다. 또 그들이 무엇을 먹는다고 같이 먹어서도 안 됩니다. 축복가정은 그 씨족 내의 가정을 키워야 됩니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와 마찬가지 입장에서, 그 가정들이 어려우면 자기 어려움 이상의 어려움을 느껴야 합니다. 자기 동네에 아무개가 밥을 굶고 산다고 하면 ‘차라리 내가 굶는 것이 낫지 그 사람을 굶길 수 없다. 도저히 나만 먹을 수 없다.’라는 심정을 갖고 그 사람에게 갖다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3 오늘 축복가정들이 아기를 품고 사랑할 줄은 알 텐데, 그 아기가 무엇 때문에 태어났느냐?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이라는 인연을 통해서 태어났습니다. 남편이 귀하고 아내가 귀해서 비밀 얘기를 하고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그 상대가 자기들끼리 만난 것이 아닙니다. 공적인 천도를 앞에 놓고 만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개재시켜 놓고 만난 사람들입니다. 아들딸이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거기에 개재된 하나님이 비참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정성을 들이고 자세를 가다듬고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절개와 지조를 가지고 가게 되면 우리의 갈 길은 절대로 막히지 않습니다. 반드시 타개됩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선생님이 싸워 나온 생활노정을 통해서 체험한 것으로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24 축복가정들은 선생님이 자기들을 위해서 고생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자기들도 가정에서 선생님 이상 고생할 수 있는 후손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원리관입니다. 모세를 따라가는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의 길을 따라 나오기 위해서는 모세와 같은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모세가 그 길을 나설 때까지는 애급의 풍습 가운데서 이스라엘 사람으로서의 지켜야 할 전통을 잃어버리지 않고, 선민권을 지켜 나올 수 있는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가 지도자가 될 때까지의 생활은 이스라엘 민족 어느 누구보다도 고생하는 생활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를 받들 때 그런 것을 생각해서, 자기 생애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모세 이상 고생하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하고 광야노정을 떠났다면 3주일 이내에 가나안복지에 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거기에 있습니다. 부모를 모시는 입장에 있으면 부모보다 자식이 더 고생해야 됩니다. 나라에 있어서도 충신이 있으면 충신이 군왕보다도 더 고생하려고 해야 됩니다. 그것이 천리입니다.

25 통일교회 축복가정은 자기 나라를 찾아야 됩니다. 내 나라를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을 잃어버린 것이 아담 해와입니다. 아담 해와가 잃어버렸으니 이것은 필연적이고 숙명적입니다. 타락한 아담 해와의 숙명입니다. 하나님과 참부모가 개재했기 때문에 숙명적인 과제이니 돈 가지고 할 수 없고, 수단 가지고 할 수 없습니다. 언제든지 피를 흘려야 됩니다. 피의 제단에 서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