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론(2) :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복귀섭리

2013. 1. 30. 01:16참사랑 영원까지/원리강론

종말론(1) 강의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섭리(救援攝理)는 바로 복귀섭리(復歸攝理)라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인류역사(人類歷史)는 타락한 인간을 하나님의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세계로 복귀하시려는 섭리역사(攝理歷史)인 것입니다.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와 복귀섭리>

하나님의 섭리는 크게 보면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자연의 섭리입니다. 엄동설한이 지나면 봄기운이 돌아 온 산천초목이 파릇파릇 고개를 내밀고 꽃동산을 이루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모기가 들끓는 무더운 여름이 찾아오고 이어서 풍요한 가을이 찾아 옮니다. 그런가하면 어느덧 아름다운 오색단풍은 낙엽이 되어 이리저리 딩굴다가 눈 내리는 겨울이 찾아옵니다.

이런 자연의 섭리는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은 자연의 섭리에 살아남기 위해 미리미리 준비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거역할 수 없는 섭리가 타락한 인간을 창조본연의 세계로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복귀섭리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신앙자가 되려면 하나님의 복귀섭리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인류역사는 곧 복귀섭리의 역사라는 것을 여러 면으로 고찰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로 문화권 발전사(文化圈發展史)의 입장에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무리 악한 인간이라도 악을 버리고 선을 따르려는 본심(本心)만은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본심(本心)이 아무리 선을 지향하면서 노력한다고 해도, 이미 악주권하(惡主權下)에 놓여진 이 세계에서는 선의 실상을 찾아볼 수 없는 지옥의 실상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현실세계보다는 시공을 초월한 영적세계에서 그 선의 주체를 찾으려고 몸부림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이러한 간절한 요구에 의하여 탄생된 것이 바로 종교(宗敎)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타락한 인간은 종교를 세워 부단히 선을 찾아 나아감으로써 하나님을 만나려고 한 것이었기 때문에 종교는 하나님의 복귀섭리를 위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종교를 받들고 있었던 개인이나 민족이나 국가는 망하였다 할지라도 종교 그 자체만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 남아져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국가는 망해도 종교는 망하지 않은 국가흥망사>

이제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국가흥망사(國家興亡史)를 중심하고 더듬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중국의 역사]

먼저 중국(中國)의 역사를 보면 춘추전국(春秋戰國)의 각 시대를 거치어 진(秦) 통일시대가 왔고, 전한(前漢), 신(新), 후한(後漢), 삼국(三國), 서진(西晋), 동진(東晋), 남북조(南北朝)의 각 시대를 거치어 수(隋) 당(唐) 통일시대가 왔으며, 오대(五代), 북송(北宋), 남송(南宋), 원(元), 명(明), 청(淸)의 시대를 거치어 오늘의 중화민국(中華民國)에 이르기까지 복잡다양한 국가의 흥망과 정권의 교체를 거듭하여 내려왔으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儒), 불(佛), 선(仙)의 극동종교(極東宗敎)만은 엄연히 그대로 남아져 있습니다.

[인도의 역사]

다음으로 인도(印度)의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마우리아, 안드라, 굽타, 바루다나, 사만, 가즈니, 무갈제국을 거쳐서 오늘의 인도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변천은 거듭되어 내려왔으나 힌두교만은 쇠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중동의 역사]

또 중동지역(中東地域)의 역사를 보면 사라센제국, 동·서 칼리프, 셀주크 터어키, 오스만 터어키 등 나라의 주권은 여러 차례 바뀌어 내려왔으나, 그들이 신봉하는 이슬람교만은 연면하게 그 명맥이 끊기지 않고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유럽의 역사]

나아가 유럽사를 보면 유럽의 주도권은 그리이스, 로마, 프랑크,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거쳐 일시 프랑스와 네덜란드를 지나 영국으로 옮겨진 다음 미국과 소련으로 나뉘었다가 오늘에 이르렀지만 기독교(基督敎)만은 그대로 융흥(隆興)해 왔습니다. 유물사관(唯物史觀) 위에 세워진 전제정치하(專制政治下)에서 종교는 아편으로 취급을 받았던 소련에서마저 기독교는 멸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은 내용을 보게 될 때에 종교인은 개인적으로 하던 사업이 망한다고 해서 신앙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을 포기하면 하나님의 복귀섭리가 포기당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복귀원리를 알고 나면 잘 되던 사업이 망하는 것도 하나님의 탕감복귀섭리로 연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업이 망하고 현실적인 꿈이 모두 사라진다고 해도 종교적인 신앙심이 더욱 돈독해 질 때 복귀섭리에 합당한 개인이 되어 더욱 큰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종교박해국은 망 보호육성국은 흥한 국가흥망사의 공통점]

또한 모든 국가 흥망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 종교를 박해하는 나라는 망하였고, 종교를 보호하고 육성시킨 나라는 흥하였으며, 그 나라의 주권은 보다 더 종교를 숭앙(崇仰)하는 나라에로 넘겨져 간 역사적인 사실을 우리는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옛말에도 '역천자는 망하고 순천자는 흥한다'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문총재님의 공산주의 종언 선포는 복귀섭리에 대한 절대믿음의 선언]

따라서 문총재님은 변증법적유물론 즉 무신론 사상을 중심하고 공산주의가 국제적으로 강력한 세력을 가지고 확장하고 있을 때에 종교를 박해하고 있는 공산주권은 반드시 멸망한다고 스위스 제네바에서 1985년 8월18일 공산주의 종언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로부터 수년 뒤 선포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문선명 총재께서 공산주의 종언을 선포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의 선포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개인적으로도 흥하는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의해 생겨난 종교를 보호하고 육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에 그렇지 못하고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의해 세워진 중심종교를 박해하는데 앞장선다면 그는 아무리 강한권세를 가졌더라도 반드시 멸망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복귀섭리가 내적무지에서 내적 지(知)에로 이끌어 가는 섭리라면 새로운 진리를 가진 종교의 출현은 불가피한 것이므로 함부로 이단이라 심판하여 하늘의 섭리를 거역하는 죄악행위를 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21내지 26개 문화권이 단일문화권으로>

그리고 역사상에는 많은 종교가 오고갔습니다.
그 가운데서 영향력이 큰 종교는 반드시 문화권(文化圈)을 형성하여 왔는데, 문헌에 나타나 있는 문화권만 해도 21내지 26개나 됩니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에 따라 점차로 열등한 것은 보다 우수한 것에 흡수되었거나 또는 융화되어 왔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은 극동문화권(極東文化圈), 인도교문화권(印度敎文化圈), 회회교문화권(回回敎文化圈), 기독교문화권(基督敎文化圈) 등의 4대 문화권이 남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다시 기독교를 중심한 하나의 세계적인 단일문화권을 형성해 가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오늘날 전세계는 공통적인 서기 즉 서력기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서기는 예수님이 태어난 해를 기점으로 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난 해를 1년이라 하고 그 이후를 서기 몇 년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기 2009년은 즉 예수님가 태어나신지 2009년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기원전은 바로 예수님이 태어나기 이전의 역사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기원전의 숫자가 크면 클수록 더 오래된 것을 의미하는데 오늘날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인들 중에도 2009년이 단기로 몇 년인지 모르고 지내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참고로 말씀드린다면 서기의 수 2009에 2333 더하시면 4342가 됩니다.그러므로 2009년은 단기 4342년이 되는 것입니다.

원래 서기는 기독교문화권인 서양에서 쓰는 역법이었는데 오늘날 전세계가 공통적으로 사용하다보니 우리나라도 따라 쓰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문화권의 발전사는 인류역사가 바로 하나의 통일된 세계에로 복귀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섭리의 증거인 것입니다.

둘째로, 종교와 과학의 동향으로 보아서

종교와 과학의 동향으로 보아 인류역사가 복귀섭리(復歸攝理)의 역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종교와 과학은 타락인간의 양면의 무지를 극복하기 위해서 발달하였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종교와 과학이 최고도로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만일 인간이 타락(墮落)하지 않았더라면 인간의 심령과 지능이 영적인 면에서 최고도에까지 향상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육적인 면에서도 최고도로 발달되어 과학은 그 때 극히 단시일 내에 놀라울 정도로 향상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조상이 타락으로 인하여 무지에 빠지게 되면서, 그러한 사회를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유구한 역사의 기간을 두고 과학으로써 그 무지를 타개하면서 창조본연의 이상적 과학사회를 복귀하여 나왔습니다.

그 결과 오늘의 사회는 과학이 극도로 발달되어, 외적 환경으로는 이상적인 환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50년대 서울시의 어느 주택가를 찍은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동네 한가운데 수도꼭지가 하나 있는데 한 신사가 그것을 지키고 있고 동네사람들은 물지게를 지고 물을 받아 나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 때 그 시절에 시민들의 주거환경은 말할 수 없이 열악했습니다. 목욕도 제대로 할 수 도 없고, 수세식변소는 생각할 수도 없는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현대식으로 잘 지어진 주택을 보십시오. 가스보일러가 저절로 온도를 맞추어 주고, 너무 더우면 에어콘이 저절로 작동하고, 화장실에는 수세식으로 비데까지 갖추어져 있고, 거실에는 실물처럼 선명한 LED TV가 거실에 장착되어 있는가 하면, 로버트가 빙빙 돌면서 청소를 하는 주거환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100여년전 사람은 상상하지도 못한 세계에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환경에 살면서도 해마다 스스로 인생을 포기하는 자살자들이 생겨납니다. 유명배우나 탈랜트들도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재벌회장들도 자신의 사무실에서 투신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좋은 환경에 살면서도 어렵게 살면서 때로는 밥을 굶던 그 시절이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는 내적인 종교적 진리의 깨달음이 부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과학이 발달된 현실세계에 주체적인 입장에 서서 하나님과 영계와 인생의 목적을 확실히 가르쳐 줄 수 있는 종교적진리가 출현하고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인류는 지금 곧 이상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때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맞추어 살아가는 사람은 부지런히 공부하여 외적인 지를 깨달아 천국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내적인 무지에서 벗어나 내외적인 천국을 이루는 것이 섭리적인 사명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투쟁역사(鬪爭歷史)의 귀추로 보아

투쟁역사의 귀추로 보아 인류역사는 복귀섭리역사(復歸攝理歷史)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타락한 인간들은 인류역사이래 다른 사람의 재물을 빼앗고 땅을 빼앗고 사람을 빼앗아 종으로 삼으려는 싸움을 계속해 왔습니다. 이는 인류사회의 발달과 더불어 벌어져,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구한 역사의 기간을 두고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되어 왔습니다.

한나라가 재물과 땅과 사람을 한꺼번에 획득하는 방법이 식민지 확보였습니다.
그래서 1차대전이 끝난 후에 패전국가(敗戰國家)가 승전국가에게 식민지를 내놓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는 패전국가는 물론이요, 전승국가(戰勝國家)들도 차례로 식민지를 내놓는 놀라운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또한 오늘날의 강대국들은, 그들의 일개 도시만도 못한 약소국가들을 유엔에 가입시키고, 그들을 먹여 살릴 뿐 아니라, 자기와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주어, 모두 형제국가들을 만들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와 같은 투쟁역사의 귀추로 보아서도 인류역사는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세계를 복귀하는 섭리역사임을 부인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넷째로, 성서(聖書)를 보아서

성서를 중심하고 봐도 인류역사는 복귀섭리역사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류역사의 목적은 '생명나무'(창 2 : 9)를 중심한 에덴동산을 복귀하려는 데 있습니다.

인간조상이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생명나무'를 중심하고 세우려던 에덴동산은 사탄에게 내주게 되었습니다(창 3 : 24). 그래서 알파로 시작된 인류 죄악역사(罪惡歷史)가 오메가로 끝날 때의 타락인간(墮落人間)의 소망은, 죄악으로 물든 옷을 깨끗이 빨아 입고, 복귀된 에덴동산으로 다시 들어가 잃어버렸던 그 '생명나무'를 다시 찾아 나아가는 데 있다고 요한계시록 22장 13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원리강론 타락론(墮落論)을 보면, '생명나무'는 완성한 아담 곧 인류의 참아버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타락되어 그의 후손도 원죄(原罪)를 가진 자녀들이 되었으니, 이 죄악의 자녀들이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인간으로 복귀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모두 거듭나지(重生)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역사는 인류를 다시 낳아 주실 참 아버지 되시는 예수님을 찾아 나온 것이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의 '생명나무'는 바로 예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서의 기록을 보아도, 역사의 목적은 '생명나무'로 오실 예수님을 중심한 창조본연의 에덴동산을 복귀하려는 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21장 1절 내지 7절 에도, 역사의 종말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사탄의 주관하의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복귀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서 8장 19절 내지 22절에는 사탄 주관하에서 탄식하고 있는 만물(萬物)도 말세에 불에 타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입장으로 복귀함으로써 새롭게 되기 위하여(계 21 : 5) 자기를 주관해 줄 수 있는 창조본연의 하나님의 아들들이 복귀되어 나타나기를 고대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 면으로 고찰하여 볼 때, 인류역사는 창조본연의 세계에로 복귀하는 섭리역사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구의 미래에 대한 절망적인 소식들에 매이지 말고 희망과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 복귀섭리에 동참하는 신앙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