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문선명 선생님은 누구이신가 - 박보희 선생 간증

2013. 1. 25. 14:13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천일의 창

인간 문선명 선생은 누구이신가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왜 나는 이 제목 ‘인간 문선명 선생’을 두려워 했을까? 그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내 소견으로 다룰 수 없는 엄청난 제목인 까닭이다.

지난 22년을 모시고 따라왔고 최근 10년 동안은 미국에서 이 어른을 모시고 전세계와 미국의 50개 주를 누비면서 모든 말씀과 강연을 통역했으면서도 이 제목을 놓고 어디서부터 써야 할지 몰라 고민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22년을 모시고 따랐다 하지만 사실은 이제야 겨우 문선명 선생을 알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영어에 "Scratch the surface"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깊은 속을 아는 것은 고사하고 겨우 손을 댔을 뿐’이라는 뜻이다.22년간 문선명 선생을 모시고 따르면서 겨우 나는 문선명 선생의 인격에 "Scratch the surface"한 것처럼 그 겉을 만져본 격이라 하겠다.

산이 너무 높거나 너무 가까이 있으면 그 산의 높이를 측정하기가 어렵다. 또 측정하는 데는 자가 있어야 한다. 그 자는 재는 물건에 상당한 자라야 한다. 예를 들어 태평양의 물속을 재는데 30센티 자를 가지고서는 재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마치 문선명 선생을 태평양 바다에서 비교한다면 이를 재보려하는 나는 30센티 자에 불과하다. 도저히 이 일은 불가능한 과업이다.
나는 이 어른을 모시면서 항상 역사에 이런 분이 또 있을까 하고 감탄해 마지 않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지 2천년 가까이 되었지만 아직도 그분의 인격을 다 알았다 할 자가 없다고 본다. 세계의 수많은 학자들이 이분을 연구하여 박사학위의 논문을 썼지만, 아무도 그 인격을 다전파한 사람은 없다.

석가모니, 공자, 맹자 나아가 마호멧트도 같은 대열에 속할 것이다.
오늘날 나는 문선명 선생을 논하라면 이 기준에서 비교나할까. 이 어른은 60세 당대에 한국 사람으로서 단군 할아버지 이래 처음으로 세계 역사에 충격을 주었으며 이 어른은 앞으로 백년, 천년, 수천년 역사가 흘러감에 따라서 역사에 남기는 그 충격이 보다 커질 것은 명약관화하다. 이분의 사상과 철학과 인생관은 벌써 우리 세계에 사는 오색인종의, 그 언어와 문화의 배경을 막론하고 수백만의 사람에게 변화를 일으켰다. 이와 같은 인격적 변화는 앞으로 이 어른께서 이 땅 위에 생존하시는 당대에 수천 수억의 인류에게 영향과 충격을 줄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감히 예언할 수 있다. 이런 어른에 대하여 그 생활을 통해 보고 느낀 인격적인 모습을 쓰라고 하니 나로서 감당하기 힘들 일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번 이분의 60회 회갑을 맞이하여 가까이 모신 어린 제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 몇 마디를 적으라고 하는데 차마 거절할 수 없었고 또 기적이 일어나서 한국에 2일을 더 체류하게 되어 별 수 없이 이를 시도해 보려 하는 것이다.

1. 선생님의 이상은 ‘하나님 해방’


문선명 선생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집약해 본다면 ‘하나님 해방’이라고 표현하고 싶다.우리는 해방이라는 말을 흔히 쓴다. 그런데 그 해방이 하나님의 해방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당황한다.인류의 해방, 어떤 억압에서의 해방, 빈곤에서의 해방, 질병에서의 해방, 식민지에서의 해방, 다 멋있는 해방이라는 말이요, 뜻이 통하지만, 갑자기 하나님의 해방이라는 것을 논하게 될 때는 도대체 그 뜻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어떤 철인도 어떤 종교가도 하나님 해방이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으며 책에 쓴 일도 없다. 그런데 문선명 선생께서는 흔히 그의 설교 가운데 설교의 결론으로 하나님의 해방을 부르짖고 나선다. 이것은 새로운 말이며 새로운 사상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으로부터 해방하자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도대체 누구의 포로가 되어 있는 것입니까? 문선명 선생은 말씀하기를 하나님을 슬픔과 고통에서 해방하자! 그 자식들이 마치 병석에 신음하는 부모를 병고로부터 해방시키려고 애쓰는 것처럼 하나님을 해방하려고 몸부림 치며 사시는 분이 문선명 선생이시다. 그런데 이제까지 그 누구도 하나님의 슬픔과 하나님의 고통을 논의해 본 적이 없다. 2천년의기독교 역사도 하나님의 슬픔과 그분의 고통에 대하여 설파하지 못하였다. 하나님 하면 전지전능하신 분이요, 완전무결한 분으로서 저 하늘 보좌에 앉으셔서 축복을 내리고 계시는 분으로 우리는 늘 알아왔다.우리는 문선명 선생에 대하여 이제까지 인류가 아는 정도를 훨씬 넘어서 구체적이고 실체적인 면에서 하나님을 철저히 아신 분이라고 해야 옳겠다.

그래서 문선명 선생께서는, ‘나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나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요, 하나님을 보는 것이요, 하나님을 느끼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믿는다는 단어는 실증을 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 부모가 나를 낳아준 분이라고 나는 믿는다고 하지 않는다. 엄연한 사실을 놓고는 믿는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오늘날까지 기독교가 하나님을 믿어 왔다. 그 말은 곧 그들이 하나님을 엄연한 사실로 알지 못했다고 말한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문선명 선생은 역사 이래 처음으로 나는 하나님을 ‘안다’고 선언하고 나선 분이시다. 고린도전서 13장 12절을 보면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는 것같이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했다. 문선생님이 하나님을 아는 것은 바로 고린도전서 13장 12절에 말한 그 예언의 실현이다. 하나님을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게 아는 것이 아니라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고 보시는 분이 문선명 선생이시다.
이렇게 하나님을 속속들이 알고 하나님의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알고, 하나님의 심정 속에 뛰어들어서 알고 보니 그 하나님이 영광가운데 계시는 기쁨과 존귀와 평화의 하나님이 아님을 아신 것이다. 그 하나님은 창세 후 오늘날까지 이루 형용하기 어렵고 말할 수 없이 가슴 아픈 사정 속에서 신음하시며 고통을 겪으면서 애통해 하고 계시는 하나님인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 발견은 인류 역사상 위대한 발견이며, 최초의 발견이다. 하나님을 알고 보니 그 하나님은 기쁨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영광의 하나님도 아니셨다. 마치 자식을 잃고 그 죽은 자식을 얼싸안고 우시는 그 부모의 모습과 비슷한 하나님을 문선명 선생은 발견한 것이다.
부모되신 하나님께서 자식된 인간들이 서로 투쟁하여 상극하고 있는 실상을 바라보시는 그 하나님은 비참한 하나님임에 틀림없다. 고통의 아버지요 그 아버지의 마음은 찢어지는 듯 아플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참역사는 애통해 하는 역사였다. 영어에 "heart broken God"이라는 말이 있다. ‘심장이 깨어진 하나님’그 하나님을 그 아무도 초상화로 묘사해 보지 못했다. 역사에 처음으로 문선명 선생이 아셔서 그 하나님의 참모습을 초상화로 그려 보았다고 하겠다. 그리고 그 초상화를 온 세계에 발표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그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 드려야 한다는 운동을 제창하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문선명 선생의 하나님 해방 운동인 것이다. 그 운동이 오늘날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는 통일교회의 운동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해방하자고 하시는가?

타락한 인간을 죄악으로부터 구원해 가지고 완성의 영역으로 이끌어가는 길만이 하나님을 고통과 슬픔으로부터 해방하는 길이다. 이 운동이 바로 문선명 선생의 가르침이요, 통일교회의 운동인 것이다.하나님을 고통과 슬픔으로부터 해방해 드린다는 말은 결국 이 땅 위에 본연의 지상천국 이념을 실현해 드리자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땅을 내려다 보실 때 환희와 기쁨으로서 너털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세계로 되돌려 놓자는 것이다. 이 운동은 바로 문선명 선생의 사상을 집약한 내용이며, 그 사상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하나님 해방주의’라고 할 수 있겠다.이렇게 역사상 처음으로 본연의 하나님을 철저히 아시는 분이 나타났기 때문이요, 그렇게 철저히 아시는 터 위에서만이 이와 같은 주의와 운동은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2. 하나님이 사랑에 미치신 분


‘하나님을 위해 철저히 미치신 분’이라고 하면 표현이 점잖치 못한 것 같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이상 더 정확한 말로 표현할 길이 없기 때문에 나는 굳이 이 말을 쓴다. 성서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제일 큰 계명 가운데 ‘너희는 너희 주 하나님을 사랑하라’하는 계명이 있다. 뜻과 성품과 마음을 다한다는 말을 영어로 하면 "All your mind, all your heart, all your soul" 마음과 심정과 영혼을 다하여 너희 주 하나님을 사랑해라이다. 그러면 이 말을 남녀가 서로 사랑하는 데 적용해 보자. 한 남성이 한 여성을 뜻과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사랑했다면, 또 영어에서의 표현처럼 마음과 심정과 영혼을 다하여 사랑했다면 그는 그 외에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있었을까! 또 요즘 흔히 한 여성이 한 남성을 그렇게 사랑했다면 흔히 우리가 할 수 있는 표현은 그 여성은 그 남성을 위해서 미쳤다고 말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문선명 선생은 하나님을 진실로 알고 하나님의 심정을 뼈저리게 느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역사에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수준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미치신 분이다라고 표현하고 싶은 것이다. 그 분은 하나님과 더불어 일하고 피땀 흘리며, 하나님과 더불어 온 평생을 살아오신 분이다. 그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알고 보니 그 하나님 아버지가 슬픔의 아버지요 고통의 노예가 된 하나님인 것을 안 까닭에 그 하나님의 슬픔을 역사에 대신 울어주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그분은 하나님의 해원이란 말을 즐겨 쓰신다. 아마도 이 역사상에 그 누구도 그 하나님을 위해서 문선명 선생 이상 눈물을 흘린 사람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많은 일화를 듣는다. 통일교회의 초창기에 있어서 우리 선생님께서는 그 많은 시간을 기도에서 시작하여 기도로 끝나는 기도생활로 하루를 보내셨다. 한번 무릎을 끊고 앉으시면 열시간도, 14시간도, 때로는 17시간도 진실로 하나님의 대신자가 되어 하나님의 울음을 울어줄 분이 또 있을까? 그는 너무도 엎드려 기도하는 까닭에 무릎과 팔굽에는 굳은 살이 박히었다.

기도가 시작되면 하루도 좋고 이틀도 좋다. 식음을 잊으시고 잠자는 것도 잊으신다. 이것은 문선명 선생을 가까이 모시는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선생님의 생활원칙인 것이다. 최근에 미국에서 통역관을 통해 설교하심에도 불구하고 아침6시에 설교 말씀이 시작되었는데 오후 다섯시에 끝났으니 장장 11시간동안 설교를 하신 것이다. 그런데 설교를 끝내고 나서 ‘이제 점심때쯤 됐나’라고 말씀을 하신다. 이 어른은 사람들에게 어디에서나 하나님을 위해서 미쳐서 살아가게 되어 있으니 돈, 이성, 명예, 학문보다 하나님을 위해 미쳐보라고 말하신다. 또 2년 전에 이 어른은 일년 간 표어를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미치자’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위해 미치는 그 인생은 거룩한 인생이요 보람있는 인생이다. 그렇게 쏟은 피와 땀의 가치는 영원히 지워질 수없는 것이다. 그것을 누구보다도 몸소 실천하시고 그것을 누구보다도 앞서 실행하시는 분이 선생님이시다.
한때 미국의 어떤 고위 정치인이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러 왔었다. 물론 준비없이 대화로부터 시작된 이 자리에서 감동받은 이 미국의 정치인은 마지막 결론으로 하는 말이 ‘레버런 문은 하나님에게 미치신 분 이구요. 어디를 찔러도 하나님의 말씀만 나옵니다.‘고 평했다. 그 말은 참 재미있는 말이다. 선생님의 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꽉 차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하나님을 위해 철두철미 미치신 분을 나는 보았다.

3. 하나님을 대신해서 사신분


세상 모든 일을 책임지려고 하시는 분이라고 할 수 있다. 문선명 선생은 철두철미 그 생활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산다는 책임감에 넘친다. 하나님은 무형이시다. 그 무형의 하나님에게 유형의 몸을 제공하신다고 생각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의 눈과 귀 그리고 입은 하나님의 군과 귀 그리고 입을 대신한 것이요, 선생의 몸은 하나님의 몸을 대신한다고 생각한다.
문선명 선생은 종교지도자라고 해서 오직 종교에만 관심이 있으신 분이 아니다. 세상 만사에 관심을 쏟으신다. 그 일이 경제의 일이건 정치의 일이건 산업의 일이건 문화의 일이건 관계치 않는다. 선생은 완전히 자연인이시다. 선생은 모든 일에 관심을 가지신다. 어디서 지진이 일어나면 그것을 염려하며 밤을 세우신다. 어디서 기근이 있다 하면 그것을 염려하며 밤을 세우신다. 어디서 기근이 있다 하면 그것을 염려하여 기도하신다.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하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내다보시려 한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가르치시기를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다. 아버지이기 때문에 자식들의 만사에 관심을 갖는 분이시다. 부모가 집안의 모든 일을 관여하시듯 세상 모든 일을 관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이 진실로 우리의 아버지요. 그 하나님의 아들 노릇을 하려고 한다면 그 하나님과 같이 우리도 세상의 모든 일에 관심을 두어야 하며 세상의 모든 일에 대하여 책음을 져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선생은 철두철미 이 세상은 내가 아니면 구원할 수 없다고 하는 신념에 차 있으시다. 그렇기 때문에 자나깨나 세상의 되어지는 일에 고통을 느끼실 뿐 아니라 책임과 아픔을 느끼신다. 미국에 가서는 미국을 책임지려 하신다. 이것은 세계 어떤 나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전세계에 선교사를 파송해 놓고는 온 세계에 되어지는 일에 책임을 지려 하신다. 오늘날 민주세계가 공산주의의 침범을 받아 불난집과 같이 되어지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신다. 그렇게 때문에 오늘날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것 중에 가장 큰 문제의 하나가 공산주의 문제라고 설파하신다. 공사주의가 세계 제패를 완성한다면 그것은 곧 이 지상에서 하나님을 완전히 추방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이 땅위에 공산주의를 어떻게 몰아낼 것인가를 생각하는 분이 계신다면 그는 하나님이실 것이다. 또 그 하나님을 참말로 아는 사람일진대는 하나님께서 공산주의에 대해 생각한 것과 마찬가지로 심각하게 느껴야 할 것이다. 그분이 바로 문선명 선생이신 것이다.
문선명 선생은 그의 어깨로 세계 공산주의 문제를 책임지고 계신다. 그러므로 이제 공산주의는 문선명선생과 더불어 최후의 결전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문선명 선생은 승공이념을 이 땅위에 펴시었다. 이것은 역사에 처음으로 공산주의의 거짓됨과 그릇됨을 폭로하는 것이요, 공산주의가 궁극에 있어서 인류의 적일 뿐 남 아니라, 하나님의 적인 것을 폭로하는 주의이다. 이제 이 승공이념 앞에 공산주의는 역사에 처음으로 수세에 몰리고 있다. 오직 공산주의를 이기는 참다운 길은 진리에 의한 것이요, 하나님이 계신다고 하는 것을 온 세계에 들어내는 데서부터 출발된다. 하나님이 안계신다 하는 주의는 하나님이 계시다 하는 주의가 이길 때에 분명히 망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일본이나 미국에서도 공산주의자들은 수세에 몰리고 있다. 그들이 지금까지 60년동안 공세를 거듭하여 세계의 3분의 1을 집어 삼켰다. 그러나 한국이 낳으신 문선명 선생이 주창하시는 승공이념은 비로소 공산주의를 수세로 몰고 간다. 나는 단언한다. 이제 우리 조국 한국에 세계 공산주의의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무기가 탄생할 것이다. 그것이 문선명 선생 자신이요, 그것이 문성명 선생의 사상인 것이다. 이 사상으로 무장하면 한 국가는 물론이요, 나아가서는 자유세계를 해방시킬 수 있는 데까지 전진해야 할 것이다. 공산세계까지도 마지막에는 해방시켜줘야 할 책임을 느끼시는 분이 문선명 선생이시다. 공산주의의 심볼이 되는 모스크바가 워싱턴 머뉴먼트 다음 대회의 집회목표라고 하는 것은 선생에게 있어서는 너무도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다고 보겠다. 어떻게 보면 선생은 온 세계 공산주의를 없애고 나아가서는 이 땅위에 지상천국을 이룩하는 혁명군을 모집하고 계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바로 그 혁명의 사상이, 이 지상천국을 이루어 드리려는 그 혁명의 사상이 결국은 메시아 사상이라고 하겠다.

나는 선생을 모시고 영국에 간 일이 있다. 그 때만 해도 거의 10여년 전이다. 영국에 통일교회 교도들이 그리 많지 않을 때였다. 선생이 가신다고 하니까 영국의 신도 약 25명이 한 방에 모여 앉아 선생을 환영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선생은 느닷없이 질문하시기를 ‘너희들 가운데 자기 혼자 영국의 구원을 책임 지겠습니다 하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 손들어 보라‘고 하셨다. 영국의 구원을 혼자 책임 진다는 엄청난 과제 앞에 그 누구도 손을 번쩍 들어 대답하는 청년이 없었다. 선생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시기를‘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구원하는 데 몇 명의 구세주를 필요로 하겠느냐“고 물으셨다. 거기에 대해서도 아무도 대답을 못하니까 선생님께서는 부드럽게 말씀하시면서, ‘그러면 2쳔년 전에 몇 명의 메시아를 이 땅위에 보내셨지?"하고 물으셨다. 그때에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라고 모두들 대답했다.

다시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면 이 온 세계 인류를 구원하는데 하나님은 한 분의 메시아를 필요로 했다. 그렇다면 이 조그마한 영국을 구원하는데 과연 메시아적 사명을 할 사람이 몇 명이나 필요하겠느냐? 너희들이 진실로 메시아의 사상으로 무장되어 메시아의 인격을 본받아서 메시아의 사명을 다하려고 하는 생각을 가졌다면 몇 명이나 필요하겠느냐‘고 재차 물으시면서 이 말이 무슨 말인지 깨달았다면 여기 모인25명도 많다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들은 용기를 얻어 모두 손을 번쩍 드는 것이었다. 선생은 웃으시면서 영국에는 25명의 메시아가 있으니 너무 많지 않으냐고 말씀하시었다. 진실로 하나님의 뜻을 구원하고 남는다는 결의를 가지고 나가라고 가르치셨던 것이다.

4. 진실로 소박한 분


놀라울 정도로 ‘문선명 선생은 소박하고 자상하신 분’이시다.
한때 미국에서 야외집회가 있었다. 모처럼 야외에 나가셔서 신도들 앞에 설교하신다고 하니까, 미국의 유명한 ‘people"이라는 잡지사의 사진반과 기자들이 대거 출두해서 선생의 말씀과 그 장면을 기사화했다. 그때 그 기사의 서두에서 선생님께서 입으신 복장을 묘사하기를 영국에서 특별히 주문해서 만든 양복에다 보석으로 장식된 수만불짜리 시계를 차시고, 그 구두는 역시 미국제가 아닌 영국에서 특별 주문한 수백불 짜리 구두이며 하는 식으로 와이셔츠에서부터 시작해서 모든 전체 의복을 황금으로 뒤집어 쓴 것 같이 묘사해서 기사를 쓴 일이 있었다.

그런데 사실과는 달리 그 날 선생께서 입으신 양복은 한국의 어느 양복점에서 만든 허름한 라사지의 양복이요, 시계는 그분의 아드님으로부터 생신 선물로 받은 40불짜리 시계며, 구두는 미국에서 산 싸구려 40불짜리 신발을 신고 계셨던 것이다. 이와같이 밖에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선생의 생활은 참 소박하고 간결한 생활을 하신다는 것에 대해서 세상 사람들은 모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분을 모셔오면서 한번도 이분께서 음식을 놓고 탓하시는 것을 보지 못했다. 음식이라면 무엇이든지 맛있게 드신다. 또 절대로 호화식이나 식도락을 싫어하신다. 특히 많은 미국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된 이유중의 하나가 미국의 대중음식점으로 알려진 소위 ‘맥도날드’라고 하는 햄버거점에 선생님 내외분께서 자주 출입하신다. ‘맥도날드’라고 하는 음식점은 어린아이들이나 서민들이 들어가서 간단히 식사를 하는 연쇄점인데 거기서 파는 햄버거는 대체로 1불 미만이고 조그마한 햄버거는 40∼50센트이다.
선생은 언제든지 자녀들을 거느리고 자연스럽게 들어가서 드시는 그 모습이 하도 신기한 나머지 기자들이 와서 사진을 찍는 일이 많았다. 미국 50개 주를 누비면서 강연을 하실 때는 항상 강연이 끝나면 수고한 젊은 이들을 데리고 가서 그 간소한 햄버거를 같이 드시며 그들의 수고를 위로해 주시곤 한다. 선생의 이러한 소박한 생활은 미국 젊은 신도들의 전통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선생께서 1974년도에 50개 주의 강연을 40일 동안에 누비시면서 순방하실 때는 프리머스라고 하는 허름한 차를 타시고 밤낮없이 여행을 하였는데 그때 내가 모시는 가운데 가장 어려웠던 것은 식사를 너무 거칠게 하시는 것이었다. 항상 거리에 차를 세우고 수퍼마켓에 들어가서 빵봉지 하나에다 오이 김치 한 통과 고기 내장으로 만든 스프 한 봉지를 사가지고 그것으로 식사를 때우면서 40일간을 순방하시었다. 그분이 미국에서 입으시는 옷은 기성복집에 가서 바지 하나에 9불, 한 벌을 사도 30∼40불이면 해결되는 그런 옷을 사서 입으신다. 그러면서 이분은 또한 공금에 대하여 그렇게 철저하실 수 가없다. 항상 제자들에게 가르치시기를 하늘의 돈을 함부로 한푼이라도 썼다가는 하늘 앞에 도둑이 되는 줄 알라고 말씀하신다.

이렇게 가르치시며 그분 스스로가 먼저 실천하시는 어른이시다. 또 이분은 남을 위해서 돈 많이 쓰기에도 세계 제일의 기록을 세우시는 분이 문선명 선생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우리 제자들이 항상 감명받는 일화가 있다. 선생께서 이북공산당의 감옥에서 고생하실 때 그곳에서 주는 밥덩이 가지고는 도저히 연명할 수 없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서 만이 생존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선생 께서는 남들이 배고파 죽어가는 그 판에 자기 몫으로 받은 거칠은 보리밥 한 덩어리를, 그것을 다 먹어도 양이 차지 않는데 그것을 절반으로 갈라서 동료들에게 주고 자신은 그 절반을 드셨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죽어가는 사람의 입에서 밥을 꺼내 먹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처참한 환경 가운데서도 선생께서는 사랑을 베푸셨고, 빵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셨다. 그러한 인생의 전통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통일교회 신도들이 물질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5. 무한히 크고 섬세하신 분


선생은 한국 사람이지만 한국인이라고 하는 그 범주를 벗어난다. 선생은 완전히 세계인이시다. 선생을 만나 말씀을 듣는 자마다 느끼는 것은 이분이 어떻게 한 인간으로서 이렇게 웅대하고도 엄청난 꿈과 사상과 철학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분은 제자들과 같이 앉으면 세계를 논하고 천주를 논한다. 이 지상뿐만 아니라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저 영적인 세계를 철저히 설파하신다.
결국 선생은 이 땅 위에서 모든 악과 죄악을 무찌르는 싸움을 시작하시기 전에 벌써 그 싸움을 영적인 세계에서 싸워 이기신 것이다. 그 세계를 평정해 놓고 그 세계의 통일을 이루고 나서 결국 잔여 병력을 소탕하는 것과 같은 싸움을 지상의 싸움이라고 설파하시는 것이다. 이렇게 엄청난 전략을 논하고 천주의 세계를 설파하시는 그 스케일이 얼마나 큰지 가히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느끼게 하시는 것이다. 22년간 따르면서 아무리 들어봐도 새롭고 아무리 통역을 해봐도 항상 새로운 말씀이시다. 거기에는 무궁무진한 예지가 있고, 진리가 있고 기쁨이 있으며 소망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주의, 주장을 설파한다 하더라도 실천이 따르지 못하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그러나 선생은 이와 같은 엄청난 말씀을 하시면서도 그것이 허무맹랑한 꿈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정확한 실천이 뒷받침된다. 섬세하게 계획하고 추진하는 것이다. 나는 또 이렇게 크신 어른이 어쩌면 그렇게 섬세하시고 작은 일에까지 관심을 기울이는가 하는 것에 놀라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예를 들면 평소에 선생께서 옷 입는 것을 많이 보아왔지만 단추 하나 흐트러 놓는 때가 없다. 넥타이를 매더라도 언제나 반듯하게 핀을 꽃아 정확하게 매신다. 선생께서 항상 바쁜 일과를 보내시면서도 옷깃 하나 흐트러짐 없는 섬세한 면을 보여주신다.
나는 또 한 가지의 일화를 들은 적이 있다. 선생께서 1950년대의 한국동란 이전 이북 흥남감옥에서 근3년간을 공산당 밑에서 형을 치르던 세상 지옥이라고 할 수 있는 절박한 가운데서도 한 올 두 올 주워 모은 실을 가지고 젓가락집을 손으로 짰다고 하는데 얼마나 섬세하게 잘 짜여졌는지 모른다고 하는 말을, 일찍이 선생을 따르던 제자들을 통해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선생께서는 아무리 긴박한 가운데서도 여유가 있을 뿐 아니라 그 솜씨 또한 놀랍다고 하겠다. 글씨도 잘 쓰실 뿐 아니라 그림도 잘 그리신다. 미국에서는 젊은 신학생들에게 그물을 짜는 법도 가르치시고 고기 잡는 일도 가르치셨다. 그물 짜는 선생님의 솜씨를 그 누구도 당할 자가 없었다. 선생님은 여행을 하실 때 난 그 가방 속을 보고 깜짝 놀랐다. . 그 가방 속에는 여러 가지 물건들이 있어야 할 곳에 딱딱 제자리에 잘 정돈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선생님의 평소 생활 모습이 언제나 흐트러져 있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선생은 자리에 앉으면 언제나 몸을 곧게 가지시고 흐트러짐이 없는 분이시다.. 절대로 흐트러짐이 없는 분이시다. 이와같이 외형적으로 섬세함을 보여주시는 선생의 일면일면은 그분의 내적인 섬세함을 또한 단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 하겠다.

6. 목표는 최고의 정상에 둔다.


‘무엇이든 최고의 정상을 목표하시는 분’이다. 선생께서 유년시절을 보내신 일화에 대해 그분의 가까운 친척을 통해 들을 때가 많다. 또 선생 자신도 그의 유년시절에 있었던 일화를 가끔 말씀해 주시는 때가 있다. 그런데 그분의 어릴 때나 이제 환갑을 맞으시는 오늘날에 있어서나 항상 그분의 생활에서 느껴지는 것은 이분은 무엇이든지 최고의 정상을 정복하지 않고는 결코 물러서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이시다 하는 것이다. 이분은 일상 생활에서 역사를 의식하신다.

이분은 일상 생활을 통하여 후대 사람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그 무엇을 항상 생각하신다. 그리고 후대 사람들이 이어받아야 할 전통을 스스로 세우신다. 그 전통은 최선을 다하여 새로운 기록을 깨쳐 가라는 것이다. 한때 선생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일생을 살면서 이 세상을 왔다간 사람 중에, 가장 잠을 적게 자고가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은 누구보다도 잠자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일한 신기록을 세우시겠다는 것이다. 사실 오늘날 문선명 선생과 같이 잠을 안자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일한 사람은 역사에 없을 것이다. 그분이 12시 이전에 침실로 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 옛 청파동 초대교회에서 모시는 동안에도 밤을 지새워 한시 두시 세시까지 말씀을 계속하시는 것이 일상 생활이었다. 그리고 잠깐 눈을 붙이고 아침 일찍 다섯시가 되기 전에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신다. 미국에 가서도 이분은 주무시는 것을 잊으신다. 의자에 앉은 채로 잠깐 눈을 붙이고 다음날 일로 넘어가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선생님보다 10세가 아래인 이 필자도 도저히 선생님 앞에서 나는 젊다고 자랑할 수 없는 것이다. 도저히 선생님의 기록을 따라가지 못한다. 이러하신 선생을 모시는 보좌관으로서, 가장 어려운 점과 소원에 대해 말하라고 하면 그것은 정말로 잠이 모자라 잠을 실컷 자는 것이라 하겠다.

역사에 이분처럼 많은 말씀을 하신 사람이 또 있을까! 또 그 말씀이 철두철미 하나에서부터 백까지 하나님을 중심한 말씀이고 보니 이것 또한 신기록이 아닐 수 없다고 하겠다. 선생은 항상 말씀하시기를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어려운 길이요, 고난의 길이요, 눈물의 길이요, 형극의 길이지만 감사하고 갈 수 있어야 한다고 설파하시고 우리보다 더 고통과 슬픔을 참고 나오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강조하신다.
그런 하나님인 것을 알고 있다면 어찌 우리가 이만한 고통을 참지 못하고 불평할 수 있을 것이냐고 반문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같은 사람을 하나님이 찾고 계신다고 설파하시면서 나는 지칠 수 없고 안갈 수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어려운 일이기에 우리가 가는 길이 보람이 있고 뜻이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가르치신다.

최근 몇 해 동안은 보스톤 근해 바다에 나가셔서 ‘투나’를 낚으신다. 물론 선생은 직업적인 어부는 아니시다. 그런데 몇 년 간을 거듭하시는 가운데 선생은 이 지방의 유명한 투나잡이의 스승이 되셨다. 선생의 배는 아침 일찍이 출항했다가 밤에 늦게 돌아오시기 때문에 그 배가 돌아오는 것을 보는 사람이 없다. 여름에는 수백 척의 투나잡이 배들이 모여든다. 이 배들은 ‘Sports fishing"에 참여하기 위하여 세계의 보호들이 호화판 배를 가지고 오는 것이다.
여기서 제일 많이 잡은 사람에게는 상패를 준다. 그런데 문선명 선생께서 이곳에 등장한 이후로는 그 누구도, 30년의 역사를 가진 사람도 선생의 기록을 따르는 자가 없다. 그리고 1979년에 낚으신 것으로서 또 한번 신기록을 세우셨다. 드디어 천파운드가 넘는 투나를 낚으신 것이다. 이제 이 지방에서 문선명 선생의 투나잡이는 신화적인 얘기가 되었다. 그래서 선생께서 가시는 곳에는 반드시 투나가 몰려온다고 생각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New Hope"라고 하는 선생의 배가 출범을 하면 그 뒤에는 여러 배들이 뒤따라 온다. 선생의 배가 정박하면 그 근처에서 닻을 내리고 고기를 잡기 시작한다. 그리고 선생께서 고기를 낚아서끌기 시작하면 모든 배에서는 어떻게 하시나를 배우기 위해서 쌍안경을 가지고 쳐다본다. 그런데 아무리해봐도 선생의 기록을 따라갈 수 없으니 최근에 와서는 결국 문선명 선생은 바다의 고기까지도 세뇌해서명령하는 신비로운 힘을 가지고 있다고 평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기적은 없다. 기적은 만드는 것이다. 선생은 철두철미 하나님의 역사를 믿는 동시에 철두철미 인간이 해야 할 책임을 잊지 않는 분이시다. 그야말로 ‘진인사 대천명’(盡人事待天命 ), 사람의 책임을 다하고 천명을 기다린다는 그 유명한 말을 철두철미 실천하신다.

7. 강인한 투지와 의지의 소유자


“한번 손을 대시면 끝장을 보시는 분”이다. 미국에서는 흔히 선생의 인격을 평하여"Born Fighter"라고 한다. 그 뜻은 투쟁가로서 혁명가로서 태어난 분이라는 것이다. 본인이 보기에도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승리하기 위하여 한 분을 특별히 보내셨다고 할 수밖에 없는 강인한 투지와 의지력의 소유자이시다.
그런데 선생께서 제일 싫어하시는 것은 우리 선생님은 특별한 분이시기 때문에 피로를 느끼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 말은 곧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히셨어도 아픔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신다.

선생께서 1965년 처음으로 각 나라의 신도들을 순방하시기 위한 비자를 받기 위해 신체검사를 하신 일이 있다. 그때 흉곽 X-Ray를 찍어본 의사는 깜짝 놀라서 말하는 것이었다. 선생께서는 언제 늑막염을 앓으신 일이 있었느냐는 것이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X-Ray 사진에 나타난 선생의 흉곽에는 옛날에 늑막염을 앓으신 흔적이 지금도 크게 남아있다는 것이었다. 선생은 너무도 뜻에 대한 사명에 골몰하시는 동안에 병마가 그 몸을 엄습한 것을 감지할 여유도 없으셨다. 드디어 그 병마는 선생의 강인한 정신력과 철석같은 의지 앞에 굴복을 한 것이었다. 이것이 선생의 생활 모습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서 비록 서투른 통역관을 써서 그 말씀을 가르치신다 하더라도 이와같이 강인한 정신력과 그 의지는 서양 사람들에게 전달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념이 약한 사람도 한번 선생의 말씀을 듣게 되면 용기를 얻어 새로운 신념과 각오로서 다짐하고 나서는 것이다. 선생의 말씀에서는 부활의 힘을 느낄 수 있다. 기운을 잃고 죽어가던 생명들도 한번 그분 앞에 나와서 한두 시간 말씀을 듣고 나면 완전히 회춘한 새싹 모양 그 생명이 부활하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다.

언젠가 신학교에 가셔서 말씀을 하시게 되었는데 마침 그때 통역관이던 필자가 옆에 없으니까, 내 입이 어디 갔느냐고 고함치며 웃으시는 때가 있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나는 선생의 입이라는 별명이 생기게 되었다. 나는 그 별명을 들을 때마다 그이상 영광된 별명을 가질 수 있겠느냐고 스스로 반문한다. 선생의 입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하시는 입이시다. 그 하나님의 말씀을 통역하는 선생의 입이 ‘나’라면 이는 사명적인 면에서 영광된 사명을 가진 사람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나는 선생께서 하시는 말씀을 통역하지 않는다. 말씀 이전에 숨어 있는 그분의 정신을 통역하는 것이요, 그분의 심정을 통역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떤 유능한 유엔총회의 통역관이라도 선생의 통역은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선생께서 가르치시는 말씀은 다만 그분의 말씀 통역에 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분의 적절히 흐르는 하늘에 대한 충성과 효성, 그리고 혁명가적인 투지 "Born Fighter"의 정신, 병마도 불사르고 나가는 강인한 신체에서 흘러나오는 그 정신의 통역은 곧 영적인 통역이요, 인격의 통역이요, 신념의 통역인 것이다. 그래서 말씀에 먼저 감동받는 사람은 바로 통역관인 것이다.

8. 선생은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하신다.


마지막으로 결론 맺고 싶은 것은 문선명 선생은 조국 대한민국을 진실로 사랑하시는 애국자라는 것이다. 작년에 한국에 돌아오셔서 한국 지역 사회 개발연구원의 초청에 의해 한국의 저명인사들 앞에서 강연하실 때 그 제목을 ‘조국이여 빛나라!’항상 선생의 심금 속에는 내 조국 대한민국을 잊으시는 날이 없으시다. 그리고 선생은 이 조국을 영원히 세계인들이 선망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드시기에 분주하시다. 결국 조국 대한민국을 세계 사람들의 신앙의 조국으로 만드시려는 것이다. 앞으로 오색인종 세계 1백20개 국의 국민들은 한국을 신앙의 조국으로서 순례할 때가 올 것이다. 불원한 장래에 이 날이 올 것이다. 세계 인류가 한국에서 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기쁘게 사랑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다.

우리 조국은 그동안 오랜 역사를 통하여 자랑스러운 역사라기보다는 눈물과 비애와 치욕의 역사를 겪어왔다. 지난 36년간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이 바로 그것이다. 또 오늘날 공산주의에 의하여 1천7백만의 이북동포들이 신음하고 있다. 이같은 한국의 역사는 비애의 역사요 고난의 역사이다. 이 고난과 비애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으려고 결심하신 분이 문선명 선생이시다. 이는 우리 조국강토 한반도가 영원히 하나님의 역사가운데 잊혀지지 아니하며, 영원히 인류 해방사에 기여하는 새 민족으로서 등장하는 새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것이다. 이 이상 더 애국하는 길이 어디 있겠는가?

최근에 나는 어떤 신문사 사장을 만나서 대담하는 가운데 이런 말을 들었다. 그는 최근 한국 개항 백년사를 특집으로 다루기 위해서 한국의 개항 백년사를 연구하다 보니, 그 개항백년의 역사가 치욕의 역사요, 부끄러움의 역사요, 떳떳치 못한 역사임을 알게 되었는데 그 마지막 10년 기간에 드디어 통일교회라고 하는 어떤 이념의 단체가 탄생하여 새로운 운동으로서 세계 만민 앞에 한민족의 기개와 한민족의 우수성과 한민족의 박애정신을 높이 외침으로써 세계의 존경과 추앙을 모으게 하였으니 우리 민족 개항 백년사에 있어서 체면이 섰다고 말했다.
그러나 선생께서 하신 그 일은 다만 한국 개항 백년사에 체면을 세우는 정도가 아니다. 단군 할아버지 이래 처음으로 세계는 한국에서 태어난 한 이념과 한 지도자로 인하여 영원히 은혜를 받게 될 것이다.

우리 조국 대한민국은 영원한 하나님의 역사에 해방국으로 등장할 것이다. 그리고 해방자의 은혜는 하나님의 역사가 이 땅위에 계속 되는한 영원할 것이다.
‘조국이여 빛나라!’ 이는 선생의 염원이시다. 그리고 조국을 빛나게 만드는 역사는 우리 당대에 우리 눈으로 볼 수 있으며 영원히 자손 만대에 이어져 나갈 것이다. ‘인간 문선명 선생’ 이분은 대한민국이 산출한 최고의 보물이며, 이분의 이름은 인류 역사의 새 여명이시다. “인간 문선명 선생” 이분은 하나님의 해방자이시다.

* 이글은 박보희 회장께서 수십년간 문선명 선생내외분을 모시고 느끼신 간증의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