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 창 조 원 리

2013. 2. 8. 22:44참사랑 영원까지/원리강론

제 1 장 창 조 원 리


인간은 오랜 역사의 기간을 두고 인생과 우주에 관한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고민하여 왔다. 그러나 아직까지 아무도 이 문제에 대하여 석연(釋然)한 대답을 해 준 사람이 없었으니, 그것은 본래 인간이나 우주가 어떻게 창조되었는가 하는 구극(究極)의 원리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나아가 우리에게는 보다 더 근본 된 선결문제(先決問題)가 남아 있다. 그것은 결과적인 존재에 관한 것이 아니라, 원인적인 존재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과 우주에 관한 문제는 결국 그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어떠한 분으로 계시는가 하는 것을 모르고서는 풀리지 않는 것이다. 창조원리(創造原理)는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들을 광범하게 다루고 있다.

 


제 1 절 하나님의 이성성상과 피조세계

 

 

Ⅰ. 하나님의 이성성상

 

무형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신성(神性)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피조세계(被造世界)를 관찰함으로써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롬 1 : 20)고 기록하였다. 마치 모든 작품은 그 작자의 보이지 않는 성품의 실체적인 전개인 것같이, 피조세계의 삼라만상(森羅萬象)은 그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그의 보이지 않는 신성을 그의 실체대상으로 전개해 놓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작품을 보아 그 작자의 성품을 알 수 있는 것같이, 이 피조만물(被造萬物)을 보아서 하나님의 신성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신성(神性)을 알기 위하여, 피조세계(被造世界)에 보편적으로 간직되어 있는 공통사실을 찾아보기로 하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 자체 내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존재들과의 사이에서 양성(陽性)과 음성(陰性)의 이성성상(二性性相)이 상대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

 

이에 대한 실례를 들어 보면, 모든 물질의 궁극적인 구성요소인 소립자(素粒子)들은 모두 양성 음성 또는 양성과 음성의 중화에 의한 중성(中性) 등을 띠고 있는데, 이것들이 이성성상의 상대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원자(原子)를 형성한다. 그리고 이러한 원자들도 양성 또는 음성을 띠게 되는데, 이것들의 이성성상이 상대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물질의 분자(分子)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형성된 물질들이 또한 서로 이성성상의 상대적 관계에 의하여 식물 또는 동물에 흡수됨으로써 그것들의 영양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식물은 각각 수술과 암술에 의하여 존속하고, 또 모든 동물은 각각 수컷과 암컷에 의하여 번식 생존한다. 인간을 보더라도 하나님이 남성인 아담을 창조하시고는 독처(獨處)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하시면서(창 2 : 18) 그의 대상으로 여성인 해와를 창조하신 후에야 선하다고 하셨다(창 1 : 31).
그리고 전리(電離)된 양이온이나 음이온도 또한 각각 양자(陽子)와 전자(電子)의 결합으로 형성되어 있는 것과 같이, 수술이나 암술 또는 수컷이나 암컷들도 역시 각각 그 자체 내에서 양성(陽性)과 음성(陰性)의 이성성상(二性性相)이 상대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에 있어서도 남성에는 여성성상(女性性相)이, 여성에는 남성성상(男性性相)이 각각 잠재해 있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삼라만상의 존재 양상이 표리(表裏), 내외(內外), 전후(前後), 좌우(左右), 상하(上下), 고저(高低), 강약(强弱), 억양(抑揚), 장단(長短), 광협(廣狹), 동서(東西), 남북(南北) 등과 같이 모두 상대적으로 되어 있는 것도 모든 피조물이 이성성상의 상대적 관계에 의하여 서로 존재하도록 창조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위에서 모든 존재가 양성과 음성의 이성성상으로 인한 상대적 관계에 의하여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나아가 우리는 모든 존재를 형성하고 있는, 보다 근본 된 또 하나의 이성성상의 상대적인 관계를 알아야 하겠다.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 외형(外形)과 내성(內性)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그 보이는 외형은 보이지 않는 그 내성을 닮아 난 것이다. 따라서 그 내성이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반드시 그 어떠한 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닮아 난 그 외형이 눈에 보이는 그 어떠한 꼴로써 나타나는 것이다. 이에 전자를 성상(性相)이라 하고 후자를 형상(形狀)이라고 한다. 그런데 성상과 형상은 동일한 존재의 상대적인 양면의 꼴을 말하는 것이어서, 형상은 제2의 성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통틀어서 이성성상이라고 한다.

 

이에 대한 예로서 인간을 들어 보기로 하자. 인간은 몸이란 외형과 마음이란 내성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나타나 보이는 몸은 보이지 않는 그 마음을 닮아 난 것이다. 따라서 마음이 어떠한 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마음을 닮아 난 몸도 어떠한 꼴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관상(觀相)이나 수상(手相) 등 외모로써 보이지 않는 그의 마음과 운명을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에 있다. 이에 마음을 성상(性相)이라 하고 몸을 형상(形狀)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마음과 몸은 동일한 인간의 상대적인 양면의 꼴을 말하는 것이어서, 몸은 제2의 마음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들을 통틀어서 이성성상(二性性相)이라고 한다. 이로써 우리는 모든 존재가 성상과 형상에 의한 이성성상의 상대적 관계에 의하여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 성상과 형상은 서로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무형(無形)의 내적인 성상이 원인이 되어 그것이 주체적인 입장에 있기 때문에, 그의 형상은 유형(有形)의 외적인 결과가 되어 그의 대상의 입장에 서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양자는 서로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원인적인 것과 결과적인 것, 주체적인 것과 대상적인 것, 종적인 것과 횡적인 것의 상대적인 관계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예로서 다시 인간을 들어 보자. 마음과 몸은 각각 성상과 형상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몸은 마음을 닮았을 뿐만 아니라 마음이 명령하는 대로 동(動)하고 정(靜)하기 때문에, 인간은 그 목적을 지향하여 생(生)을 유지한다. 따라서 마음과 몸은 내(內) 외(外), 원인(原因)과 결과(結果), 주체(主體)와 대상(對象), 종(縱)과 횡(橫) 등의 상대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어떠한 피조물(被造物)에도 그 차원은 서로 다르나, 무형의 성상 즉 인간에 있어서의 마음과 같은 무형의 내적인 성상이 있어서 그것이 원인 또는 주체가 되어 인간에 있어서의 몸과 같은 그의 형상적인 부분을 움직여서, 그 개성체(個性體)로 하여금 어떠한 목적을 가진 피조물로서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물에게도 인간의 마음과 같은 것이 있어서 이것이 어떠한 목적을 지향하는 주체적인 원인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 육체는 그 개체의 목적을 위한 생(生)을 영위하게 된다. 식물에도 역시 그러한 성상적인 부분이 있어서, 그것이 인간에 있어서의 마음과 같은 작용을 하기 때문에 그 개체는 유기적인 기능을 유지하게 되어 있다.

 

그뿐 아니라 인간이 서로 결합하게 되는 것은 그들 속에 각기 마음이 있기 때문인 것과 같이, 양이온과 음이온이 결합하여서 어떠한 물질을 형성하는 것도 이 두 이온들 속에 각각 그 분자(分子) 형성의 목적을 지향하는 어떠한 성상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양자(陽子)를 중심하고 전자(電子)가 회전하여 원자(原子)를 형성하는 것도 역시 그것들 속에 각각 그 원자 형성의 목적을 지향하는 성상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오늘의 과학에 의하면, 원자를 구성하고 있는 소립자(素粒子)는 모두 에너지로 되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에너지가 소립자를 형성하기 위하여는 반드시 그 에너지에도 그로 하여금 소립자 형성의 목적을 지향하게 하는 성상적인 부분이 없어서는 안 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는 이와 같이 성상(性相)과 형상(形狀)을 갖추고 있는 그 에너지를 존재케 함으로써 모든 존재계의 궁극적인 원인이 되는 한 존재를 추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 존재는 바로 모든 존재의 제1 원인으로서, 그 모든 것들의 주체적인 성상과 형상을 갖추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존재계의 이러한 제1 원인을 우리는 하나님이라고 부르며, 그 주체적인 성상과 형상을 하나님의 본성상(本性相)과 본형상(本形狀)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제 바울이 논증한 바와 같이, 모든 피조물들에게 공통적으로 간직되어 있는 사실들을 추궁(追窮)함으로써 마침내 하나님은 본성상(本性相)과 본형상(本形狀)의 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中和的 主體)로서 모든 존재계의 제1 원인으로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이미 위에서,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양성(陽性)과 음성(陰性)의 이성성상(二性性相)의 상대적 관계에 의하여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러므로 삼라만상의 제1 원인 되신 존재인 하나님도 역시 양성과 음성의 이성성상의 상대적 관계에 의하여 존재해야 된다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창세기 1장 27절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기록되어 있는 말씀으로 보아서도 하나님은 양성과 음성의 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로도 계시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성상(性相)과 형상(形狀)의 이성성상과 양성(陽性)과 음성(陰性)의 이성성상은 서로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본래 하나님의 본성상과 본형상은 각각 본양성과 본음성의 상대적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본양성과 본음성은 각각 본성상과 본형상의 속성(屬性)인 것이다. 그러므로 양성과 음성은 각각 성상과 형상과의 관계와 동일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양성과 음성은 내 외, 원인과 결과, 주체와 대상, 또는 종과 횡 등의 상대적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남성인 아담의 갈빗대를 취하여 그의 대상으로서 여성인 해와를 창조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창 2 : 22).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에 있어서의 양성과 음성은 각각 남성과 여성이라고 칭한다.

 

하나님을 중심하고 완성된 피조세계(被造世界)는 마치 마음을 중심하고 완성한 인간 하나와 같아서, 하나님의 창조목적(創造目的)대로만 동하고 정하는 하나의 완전한 유기체(有機體)인 것이다. 따라서 이 유기체도 성상과 형상을 갖추어야 할 것이니 그의 성상적인 존재가 하나님이시요, 그 형상적인 존재가 피조세계인 것이다. 하나님이 피조세계의 중심인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창 1 : 27) 하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피조세계가 창조되기 전에 있어서의 하나님은 성상적인 남성격 주체로만 계셨기 때문에, 형상적인 여성격 대상으로 피조세계를 창조하셔야만 했던 것이다. 고린도전서 11장 7절에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라고 기록되어 있는 성구는 바로 이러한 원리를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성상적인 남성격 주체(男性格 主體)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아버지라 불러 그 격위(格位)를 표시하는 것이다.

 

상술(上述)한 내용을 요약하여 볼 때, 하나님은 본성상(本性相)과 본형상(本形狀)의 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中和的 主體)인 동시에, 본성상적 남성(男性)과 본형상적 여성(女性)의 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로 계시며, 피조세계에 대하여는 성상적인 남성격 주체로 계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Ⅱ. 하나님과 피조세계와의 관계

 

위에서 논술한 바에 의하여, 피조물은 모두 무형의 주체로 계시는 하나님의 이성성상을 닮아 실체로 분립된 하나님의 실체대상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러한 실체대상을 우리는 개성진리체(個性眞理體)라고 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적인 실체대상이기 때문에 형상적 개성진리체라 하고, 인간 이외의 피조물들은 상징적인 실체대상이기 때문에 그것들은 상징적 개성진리체라고 한다.

 

개성진리체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이성성상을 닮아 실체로 분립된 것이기 때문에, 그것들은 하나님의 본성상적 남성을 닮은 양성(陽性)의 실체와 그의 본형상적 여성을 닮은 음성(陰性)의 실체로 분립된다. 그뿐 아니라 이와 같이 분립된 개성진리체는 모두 하나님의 실체대상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것들은 각기 하나님의 본성상과 본형상을 닮아서 그 자체 내에 성상과 형상의 이성성상을 갖추게 되며, 그에 따라서 양성과 음성의 이성성상을 함께 갖추기도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성성상(二性性相)을 중심하고 본 하나님과 피조세계와의 관계를 요약하면, 피조세계는 무형의 주체로 계시는 하나님의 이성성상이 창조원리에 의하여 상징적 또는 형상적인 실체로 분립된 개성진리체로써 구성되어 있는 하나님의 실체대상이다. 즉 만물은 하나님의 이성성상이 상징적인 실체로 분립된 실체대상이요, 인간은 그것이 형상적인 실체로 분립된 실체대상이다. 그리고 하나님과 피조세계는 성상과 형상과의 관계와 같아서 내 외, 원인과 결과, 주체와 대상, 종과 횡 등 이성성상의 상대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창조원리(創造原理)에 입각하여 동양철학(東洋哲學)의 중심인 역학(易學)의 근본을 알아보기로 하자.
역학에서는 우주의 근본은 태극(太極, 無極)이며, 그 태극에서 음양(陰陽)이, 음양에서 금(金) 목(木) 수(水) 화(火) 토(土)의 오행(五行)이, 그리고 오행에서 만물이 생성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음양을 ‘도(道)’라 이르고(一陰一陽之謂道), 그 ‘도’는 곧 ‘말씀’(道也者言也)이라고 하였다. 이 내용을 종합하면 태극에서 음양 곧 말씀이 나왔고, 이 말씀에서 만물이 생성되었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태극은 모든 존재의 제1 원인으로서 음양의 통일적 핵심이며 그 중화적 주체임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것을 요한복음 1장 1절 내지 3절에 기록된 바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고 이 말씀으로 만물이 창조되었다고 한 그 내용과 대조해 보면, 음양의 중화적인 주체인 그 태극(太極)은 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이신 하나님을 표시한 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창조원리(創造原理)로 보더라도 ‘말씀’이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 말씀으로 창조된 피조물도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음양이 곧 ‘말씀’이라고 한 역학(易學)의 주장은 타당한 것이다. 그러나 역학은 다만 음양을 중심하고 존재계를 관찰함으로써 그것들이 모두 성상과 형상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었기 때문에, 태극이 음양의 중화적 주체인 것만을 밝혔을 뿐 그것이 본래 본성상(本性相)과 본형상(本形狀)에 의한 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라는 것을 밝히지 못하였다. 따라서 그 태극이 인격적인 신(神)이라는 사실에 관해서는 알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여기에서 역학에 의한 동양철학의 근본도 결국 창조원리에 의하여서만 해명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근래에 한의학이 점차 그 권위를 더해 가게 되는 것도, 그것이 음양을 중심으로 한 창조원리적 근거에 입각하고 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제 2 절 만유원력과 수수작용 및 사위기대

 

Ⅰ. 만 유 원 력

 

하나님은 모든 존재의 창조주(創造主)로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자존(自存)하시는 절대자(絶對者)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러한 존재로 계시기 위한 근본적인 힘도 영원히 자존하는 절대적인 것이며, 동시에 이것은 또 피조물이 존재하기 위한 모든 힘을 발생케 하는 힘의 근본이기도 하다. 이러한 힘의 근본 된 힘을 우리는 만유원력(萬有原力)이라고 한다.

 

 

Ⅱ. 수 수 작 용

 

모든 존재를 이루고 있는 주체(主體)와 대상(對象)이 만유원력에 의해 상대기준(相對基準)을 조성하여 잘 주고 잘 받으면, 여기에서 그 존재를 위한 모든 힘, 즉 생존과 번식과 작용 등을 위한 힘을 발생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힘을 발생케 하는 작용을 수수작용(授受作用)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만유원력과 수수작용의 힘은 각각 원인적인 것과 결과적인 것,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주체적인 것과 대상적인 것으로서의 상대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만유원력은 종적(縱的)인 힘이요, 수수작용의 힘은 횡적(橫的)인 힘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에서 만유원력과 수수작용을 중심하고 하나님과 피조물에 관한 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기로 하자.
하나님은 그 자체 내에 영존(永存)하는 이성성상(二性性相)을 가지고 계셔서, 이것들이 만유원력에 의하여 상대기준을 이루어 영원한 수수작용을 하게 된다. 이 수수작용의 힘에 의하여 그 이성성상은 영원한 상대기대(相對基臺)를 조성하여, 하나님의 영원하신 존재기대를 이룸으로써 하나님은 영존하시며, 또한 피조세계를 창조하시기 위한 모든 힘을 발휘하시게 되는 것이다.

 

한편 피조물(被造物)에 있어서도, 그 자체를 이루고 있는 이성성상(二性性相)이 만유원력에 의하여 상대기준을 이루어 가지고 수수작용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수수작용의 힘에 의하여 그 2성(二性)은 상대기대(相對基臺)를 조성하여 그 개성체(個性體)의 존재기대(存在基臺)를 이룸으로써, 비로소 그 개성체는 하나님의 대상으로 서게 되며, 또 스스로가 존재하기 위한 모든 힘도 발휘하게 된다.
이에 대한 예를 들면, 양자(陽子)와 전자(電子)의 수수작용에 의하여 원자(原子)가 존재하게 되고, 그의 융합작용 등을 일으킨다. 그리고 양(陽) 음(陰) 두 이온의 수수작용에 의하여 분자(分子)가 존재하게 되며, 또 화학작용이 일어나기도 한다.

 

한편 양전(陽電)과 음전(陰電)의 수수작용에 의하여 전기가 발생하며, 모든 전기작용이 일어나게 된다.
식물에 있어서는 도관(導管)과 사관(篩管)의 수수작용에 의하여 식물체의 기능이 유지되며, 그의 유기적인 성장을 하게 된다. 그리고 암술과 수술의 수수작용에 의하여 번식을 하게 되는 것이다.
동물도 수컷과 암컷의 수수작용에 의하여 그의 생(生)을 유지하며 또한 번식한다. 그리고 동식물간에 있어서도 산소와 탄산가스의 교환, 벌과 꽃의 수수작용 등에 의하여 그들은 공존(共存)하고 있다.

 

천체(天體)를 보아도 태양과 혹성(惑星)의 수수작용에 의하여 태양계(太陽界)가 존재하면서 우주 형성을 위한 운행을 하고 있으며, 또 지구와 달도 서로의 수수작용에 의하여 일정한 궤도를 유지하면서 공전(公轉)과 자전(自轉)의 운행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육체는 동·정맥, 호흡작용,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 등의 수수작용으로써 그 생을 유지하고 있고, 그 개성체는 몸과 마음의 수수작용에 의하여 존재하면서 그의 목적을 위한 활동을 한다.

 

그리고 가정에 있어서는 남편과 아내가, 사회에 있어서는 인간과 인간이, 그리고 국가에 있어서는 정부와 백성이, 더 나아가서 세계에 있어서는 국가와 국가가 서로 수수작용을 하면서 공존하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바른 것을 위하여 살려고 하는 그 양심(良心)의 힘만은 뚜렷이 그 내부에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힘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으로서, 자기도 모르게 강력히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악을 행할 때에는 즉각적으로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되는 것이다. 만일 타락인간에게 이러한 양심의 작용이 없다면 하나님의 복귀섭리(復歸攝理)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양심작용(良心作用)의 힘은 어떻게 되어 생기는 것인가? 모든 힘이 수수작용(授受作用)에 의하여서만 생기는 것이라면, 양심도 역시 독자적으로 그 작용의 힘을 일으킬 수는 없는 것이다. 즉 양심도 어떠한 주체에 대한 대상으로 서서 그와 상대기준(相對基準)을 조성하여 수수작용을 하기 때문에 그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이 양심의 주체를 우리는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타락(墮落)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과의 수수(授受)의 관계가 끊어짐으로써 서로 일체를 이루지 못하고, 사탄과 수수의 관계를 맺어 그와 일체를 이루게 된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완전한 수수의 관계를 맺어 일체를 이룬 오직 한 분의 독생자로 오셨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이 그와 완전한 수수의 관계를 맺어 일체를 이루게 되면 창조본성을 복귀하여 하나님과도 수수작용을 하게 됨으로써 그와 일체를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타락인간의 중보(仲保)가 되는 동시에 길이 되고 진리가 되며 또한 생명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생명을 바쳐 사랑과 희생으로 모든 것을 주시려고 오신 분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그 앞에 믿음으로 돌려 드리기만 하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이다(요 3 : 16).

 

기독교(基督敎)는 사랑과 희생에 의하여 예수님을 중심하고 인간 사이의 횡적인 수수(授受)의 회로(廻路)를 회복함으로써, 하나님과의 종적인 수수의 회로를 복귀시키려고 하는 사랑의 종교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교훈과 행적은 모두 이 목적을 위한 것이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은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마 7 : 1∼2)라고 말씀하셨고,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 7 : 12)고도 하셨으며, 또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마 10 : 32)라고도 말씀하셨다.

 

 

그리고 또 예수님은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마 10 : 41)라고 말씀하셨고,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마 10 : 42)고도 말씀하셨던 것이다.

 

 

Ⅲ. 정분합작용에 의하여 삼대상목적을 이룬 사위기대

 

1. 정분합작용

 

만유원력(萬有原力)으로 인하여 하나님 자체 내의 이성성상(二性性相)이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수수작용을 하게 되면, 그 수수작용의 힘은 번식작용을 일으키어 하나님을 중심하고 이성성상의 실체대상으로 분립된다. 이와 같이 분립된 주체와 대상이 다시 만유원력에 의하여 상대기준을 조성함으로써 수수작용을 하면, 이것들은 다시 합성일체화(合性一體化)하여 하나님의 또 하나의 대상이 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정(正)으로 하여 그로부터 분립(分立)되었다가 다시 합성일체화하는 작용을 정분합작용(正分合作用)이라고 한다.

 

 

2. 삼대상목적

이와 같이 정분합작용에 의하여 정(正)을 중심하고 2성(二性)의 실체대상으로 분립된 주체와 대상과 그리고 그의 합성체(合性體)가 제각기 주체의 입장을 취할 때에는 각각 나머지 다른 것들을 대상으로 세워 삼대상기준(三對象基準)을 조성한다. 그래 가지고 그것들이 서로 수수작용을 하게 되면 여기에서 그 주체들을 중심으로 각각 삼대상목적(三對象目的)을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3. 사위기대

이와 같이 정분합작용에 의하여 정(正)을 중심하고 2성의 실체대상으로 분립된 주체와 대상과 그리고 그의 합성체가 각각 삼대상목적을 완성하면 사위기대(四位基臺)를 조성하게 된다.
사위기대는 4수의 근본이며, 또 그것은 삼대상목적을 완성한 결과이므로 3수의 근본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위기대는 정분합작용에 의한 하나님, 부부, 자녀의 3단계로써 완성되므로 3단계 원칙의 근본이 된다. 사위기대는 그의 각 위(位)를 중심하고 각각 3대상이 되므로 이것들을 총합하면 12대상이 되기 때문에 12수의 근본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또 사위기대는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완성한 선(善)의 근본적인 기대이므로, 하나님이 운행하실 수 있는 모든 존재와 또 그것들이 존재하기 위한 모든 힘의 근본적인 기대가 된다. 따라서 사위기대는 하나님의 영원한 창조목적이 되는 것이다.

 

 

4. 사위기대의 존재양상

정분합작용에 의하여 삼대상목적을 이루어 사위기대(四位基臺)를 완성한 존재는 무엇이든지 원형(圓形) 또는 구형운동(球形運動)을 하여 입체로 존재한다. 이제 우리는 그 이유를 알아보기로 하자.
정분합작용에 의하여 하나님의 이성성상이 각각 그의 실체대상으로 분립된 주체(主體)와 대상(對象)에 있어서, 그 대상이 주체에 대응하여 상대기준을 조성하면 그 대상은 주체를 중심으로 하고 서로 주는 힘(遠心力)과 받는 힘(求心力)으로써 수수작용을 하게 된다. 이와 같이 주체와 대상이 수수작용을 하게 되면, 그 대상은 주체를 중심하고 돌아서 원형운동(圓形運動)을 하게 됨으로써 합성일체화한다.

 

 

그런데 이와 동일한 원리에 의하여, 그 주체는 하나님의 대상이 되어 하나님을 중심하고 돌아서 그와 합성일체화하고, 또 그 대상이 그러한 주체와 합성일체화하게 될 때, 비로소 그 합성체는 하나님의 이성성상을 닮은 실체대상이 된다. 이와 같이 그 대상은 그의 주체와 합성일체화함으로써 비로소 하나님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실체대상에 있어서의 주체와 대상도 역시 각각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들도 동일한 수수작용의 원리에 의하여 제각기 원형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실체대상은 이와 같이 제각기 부단한 운동을 하고 있는 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에 의하여 원형운동을 하기 때문에, 그 원형운동은 이 운동을 일으키고 있는 그 주체와 대상 자체들의 특수한 운동양상에 따라서는 동일한 평면상의 궤도에서만 일어날 수도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그 주체를 중심하고 부단히 그 원형운동 궤도의 각도를 달리하면서 돌아가기 때문에, 이 원형운동은 드디어 구형운동(球形運動)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위기대를 완성한 존재는 모두 원형 또는 구형운동을 하게 되어 그 존재양상은 입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한 예로서 태양계(太陽界)를 들어 보기로 하자. 태양을 주체로 한 모든 유성(遊星)들은 태양의 대상이 되어 그와 상대기준을 조성함으로써 태양을 중심하고 그에 대응하여 원심력과 구심력에 의한 수수작용을 하기 때문에, 그것들은 모두 공전(公轉)의 원형운동을 하게 된다. 이와 같이 되어 원형운동을 하는 태양과 유성들은 합성일체화하여 태양계를 이룬다. 그런데 이성성상의 복합체인 지구가 자전(自轉)하고 있을 뿐 아니라, 태양이나 태양을 중심한 다른 유성들도 또한 이성성상의 복합체이기 때문에 부단히 자전하고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이 자전하고 있는 태양과 유성들의 수수작용에 의한 태양계의 원형운동은 항상 동일한 평면상의 궤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태양을 중심하고 부단히 그 궤도의 각도를 달리하면서 돌아가기 때문에, 태양계는 구형운동을 하게 되어 입체로서 존재하게 된다.
이와 같이 되어 모든 천체(天體)는 원형 또는 구형운동에 의하여 입체로서 존재하며, 이와 같은 무수한 천체들이 서로 수수작용을 함으로써 합성일체화하여 이루어지는 우주(宇宙)도 역시 동일한 원리에 의하여 구형운동을 하게 됨으로써 입체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원자(原子)를 형성하고 있는 전자(電子)가 양자(陽子)와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양자를 중심하고 수수작용을 하게 되면, 그것들은 원형운동을 함으로써 합성일체화하여 원자를 형성하게 된다. 그런데 양자와 전자도 각각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어서 제각기 부단한 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양자와 전자의 수수작용에 의한 원형운동도 역시 동일한 평면상의 궤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양자를 중심하고 부단히 그 각도를 달리하면서 돌아가기 때문에 이 운동은 드디어 구형운동으로 화하게 된다. 원자 역시 이렇듯 구형운동을 함으로써 입체로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전기에 의하여 양 음 두 극에 나타나는 자력선(磁力線)도 동일한 원리에 의하여 구형운동을 하게 된다.
다시 이러한 예를 인간을 두고 생각해 보기로 하자. 몸은 마음의 대상으로서 마음과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수수작용(授受作用)을 하게 되면, 몸은 마음을 중심하고 원형운동을 함으로써 합성일체화(合性一體化)한다. 그런데 마음이 하나님의 대상이 되어 하나님을 중심하고 돌아서 그와 합성일체화하고 몸이 이러한 마음과 합성일체화하게 되면, 그 개체는 비로소 하나님의 이성성상(二性性相)을 닮은 실체대상이 되어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완성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몸과 마음도 각각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어서 그 자체들도 제각기 부단한 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몸과 마음의 수수작용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원형운동은 하나님을 중심하고 부단히 그 각도를 달리하면서 돌아가게 되어 구형운동으로 화하게 된다. 그러므로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은 하나님을 중심하고 항상 구형운동의 생활을 하는 입체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결국 무형세계(無形世界)까지도 주관하게 되는 것이다(본장 제6절 참조).

 

이와 같이 주체와 대상이 주고받는 평면적인 회로에 의한 원형운동이 다시 입체적인 회로에 의한 구형운동으로 화하는 데서 창조의 조화는 벌어지는 것이다. 즉 그 회로의 거리와 모양과 상태와 방향과 각도와 그리고 그들이 각각 주고받는 힘의 속도 등의 차이에 의하여 천태만상의 조화의 미(美)가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성상(性相)과 형상(形狀)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의 구형운동(球形運動)에도 성상적인 것과 형상적인 것의 두 가지가 있다. 따라서 그 운동의 중심에도 성상적인 중심과 형상적인 중심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전자(前者)와 후자(後者)는 성상과 형상의 관계와 동일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면 이 구형운동의 궁극적인 중심은 무엇일 것인가? 하나님의 이성성상의 상징적 실체대상으로 창조된 피조물의 중심은 인간이고, 그의 형상적 실체대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중심은 하나님이시므로, 피조세계의 구형운동의 궁극적인 중심은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이제 이에 관한 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기로 하자.
하나님의 모든 실체대상(實體對象)에 갖추어진 주체(主體)와 대상(對象)에 있어서, 그 대상의 중심이 그의 주체에 있으므로, 주체와 대상의 합성체(合性體)의 중심도 역시 그 주체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주체의 궁극적인 중심이 하나님이시므로, 그 합성체의 궁극적인 중심도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3대상이 상대기준(相對基準)을 조성하여 그것들의 3중심이 하나님을 중심하고 하나되어 수수작용(授受作用)을 함으로써 삼대상목적(三對象目的)을 완성할 때 비로소 사위기대(四位基臺)가 완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위기대의 궁극적인 중심은 하나님이시다.

 

이와 같이 사위기대를 완성한 각개 피조물을 개성진리체(個性眞理體)라고 한다. 그런데 위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개성진리체는 형상적 개성진리체(인간)와 상징적 개성진리체(인간 이외의 피조물)로 대별된다. 그리고 피조세계는 무수한 개성진리체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저급한 것으로부터 고급한 것에 이르기까지 단계적으로 질서정연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그중 인간은 그 최고급의 개성진리체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개성진리체는 모두 구형운동을 하고 있는데, 저급한 개성진리체는 보다 고급한 개성진리체의 대상이 되므로, 이 대상의 구형운동의 중심은 보다 고급위(高級位)에서 그의 주체가 되어 있는 개성진리체인 것이다.

 

 

이와 같이 수많은 상징적 개성진리체의 중심들은 저급한 것으로부터 보다 고급한 것에로 연결되어 올라가 그 최종적인 중심은 형상적 개성진리체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좀더 상고(詳考)해 보기로 하자. 오늘의 과학은 물질의 최소단위를 소립자(素粒子)로 보고 있는데, 소립자는 에너지로 되어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물질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각 단계의 개성진리체(個性眞理體)들의 존재목적을 차원적으로 살펴보면, 에너지는 소립자의 형성을 위하여, 소립자는 원자(原子)의 구성을 위하여, 원자는 분자(分子)의 구성을 위하여, 분자는 물질의 형성을 위하여, 모든 물질은 우주 삼라만상의 개체들을 구성하기 위하여 각각 존재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에너지의 운동의 목적은 소립자에, 소립자의 목적은 원자에, 원자의 목적은 분자에, 분자의 목적은 물질에, 모든 물질의 목적은 우주 형성에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주(宇宙)는 무엇을 위하여 있으며, 그의 중심은 무엇일 것인가? 그것은 바로 인간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나서 피조세계를 주관하라고 말씀하셨다(창 1 : 28). 만일 피조세계에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피조세계는 마치 보아 줄 사람이 없는 박물관에 비할 수 있을 것이다.

 

 

박물관의 모든 진열품들은, 그것들을 감상하고 사랑하며 기뻐해 줄 수 있는 인간이 있음으로써 비로소 역사적인 유물로서 존재할 수 있는 인연적인 관계가 그것들 사이에 성립되어, 각각 그 존재의 가치를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만일 거기에 그 중심 되는 인간이 없다면 그것들이 무슨 존재 의의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인간을 위주로 한 피조세계의 경우도 이와 조금도 다름이 없다. 즉 인간이 있어 가지고 피조물을 형성하고 있는 모든 물질의 근본과 그 성격을 밝히고 분류함으로써 비로소 그것들이 상호간에 합목적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고, 나아가서는 인간이 있어야만 동식물이나 수륙만상(水陸萬象)이나 우주를 형성하고 있는 모든 성좌(星座)들의 정체가 구분되어 그것들이 인간을 중심하고 합목적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물질은 인간의 육체에 흡수되어 그의 생리적인 기능을 유지하게 하는 요소가 되며, 삼라만상은 인간의 안락한 생활환경을 만들어 주는 자료가 되는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인간의 피조세계에 대한 형상적인 중심으로서의 관계이지만, 이밖에 또 성상적인 중심으로서의 관계가 있다. 전자를 육적인 관계라고 하면, 후자는 정신적 또는 영적인 관계인 것이다. 물질로 형성된 인간의 생리적 기능이 마음의 지(知)·정(情)·의(意)에 완전히 공명되는 것은, 물질도 역시 지·정·의에 공명될 수 있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러한 요소들이 물질의 성상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삼라만상은 각각 그 정도의 차는 있으나 모두 지·정·의의 감응체인 것이다. 우리가 자연계의 미(美)에 도취하여 그와의 혼연일체의 신비경(神秘境)을 체험하게 되는 것은, 인간은 피조물의 이러한 성상의 중심도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와 같이 피조세계의 중심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이 합성일체화한 자리가 바로 천주의 중심이 되는 자리인 것이다.

 

우리는 또 다른 면에서 인간이 천주의 중심이 되는 것을 논하여 보자. 상세한 것은 제6절에서 논하겠지만, 무형 유형 두 세계를 총칭하여 천주라고 하는데, 인간은 이 천주를 총합한 실체상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미 위에서 논한 바에 의하여, 천주를 이루고 있는 모든 피조물은 주체와 대상으로 양별(兩別)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 시조로 창조되었던 아담이 완성되었더라면 그는 피조물(被造物)의 모든 존재가 갖추고 있는 주체들을 총합한 실체상이 되고, 해와가 완성되었다면 그는 또 피조물의 모든 존재가 갖추고 있는 대상들을 총합한 실체상이 되었으리라는 결론을 바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피조세계를 주관하도록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아담과 해와가 다 함께 성장하여서 아담은 피조물의 모든 주체의 주관주(主管主)로서 완성되고, 또 해와는 모든 대상의 주관주로서 완성되어 그들이 부부를 이루어 일체가 되었더라면, 그것이 바로 주체와 대상으로 구성되어 있는 온 피조세계를 주관하는 중심체였을 것이다.
또 인간은 천주의 화동(和動)의 중심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의 이성성상의 실체적인 중심체인 아담과 해와가 완성되어 부부를 이루어 가지고 그들이 서로 화동하여 일체를 이룰 때 비로소 이성성상으로 창조된 온 천주도 화동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아담과 해와가 완성된 부부로서 일체를 이룬 그 자리가 바로 사랑의 주체이신 하나님과 미(美)의 대상인 인간이 일체화하여 창조목적을 완성한 선(善)의 중심이 되는 자리이다. 여기에서 비로소 부모 되신 하나님은 자녀로 완성된 인간에게 임재하시어 영원히 안식하시게 된다. 이 때의 이 중심은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대상이므로, 이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영원히 자극적인 기쁨을 느끼시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이 실체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여기가 바로 진리의 중심이 되어 모든 인간으로 하여금 창조목적을 지향하도록 이끌어 주는 본심의 중심도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피조세계는 이와 같이 인간이 완성되어 하나님을 중심하고 부부를 이룸으로써 이루어진 사위기대(四位基臺)를 중심하고 합목적적인 구형운동을 하게 된다.

 

그런데 피조세계(被造世界)는 인간이 타락됨으로 말미암아 이 중심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만물도 탄식하면서 하늘의 뭇 아들들 즉 창조본성(創造本性)을 복귀한 인간들이 나타나서 그의 중심이 되어 줄 날을 고대한다고 하였다(롬 8 : 19∼22).

 

 

Ⅳ. 하나님의 편재성

 

위에서 우리는, 정분합작용(正分合作用)에 의하여 삼대상목적을 완성한 사위기대는 하나님을 중심한 구형운동을 일으키어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게 되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이 운행하실 수 있는 모든 존재의, 그리고 그 존재를 위한 모든 힘의 근본적인 기대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창조목적을 완성한 세계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본성상(本性相)과 본형상(本形狀)의 실체로 되어 있는 피조물의 모든 개성체가 다 이와 같이 구형운동을 일으키어 하나님이 운행하실 수 있는 근본적인 기대를 조성하게 되어 있다. 이와 같이 되어 하나님은 일체의 피조물 가운데 편재(遍在)하시게 된 것이다.

 

 

Ⅴ. 생리체의 번식

 

생리체(生理體)가 존속하기 위하여는 번식해야 하며, 그 번식은 수수작용(授受作用)에 의한 정분합작용으로 인하여 되어진다. 이에 대한 예를 들면, 식물은 꽃씨로부터 꽃의 수술과 암술이 생기고, 그 수술과 암술의 수수작용으로 인하여 다시 많은 씨를 맺어서 번식한다. 동물에 있어서는 그 수컷과 암컷이 성장하여 서로 수수작용을 하면 새끼를 낳아 번식하게 된다. 그리고 동식물의 모든 세포분열도 수수작용으로 말미암아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어떠한 목적을 세워 놓고 마음이 원하는 대로 몸이 실천하여 몸과 마음이 수수작용을 하게 되면 동지가 생기고, 동지들이 서로 잘 주고 잘 받으면 더 많은 동지를 번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보면, 피조세계(被造世界)는 무형의 하나님의 본성상(本性相)과 본형상(本形狀)이 그 창조목적을 중심하고 수수작용을 함으로써 그것이 실체적으로 전개되어 번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Ⅵ. 모든 존재가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는 이유

 

무엇이든지 존재하기 위하여는 반드시 어떠한 힘을 요하게 되는데, 그 힘은 수수작용(授受作用)에 의하여서만 생긴다. 그런데 무엇이나 단독적으로는 주고받을 수 없기 때문에, 그가 존재하기 위한 힘을 일으키기 위하여는 반드시 수수작용을 할 수 있는 주체(主體)와 대상(對象)의 이성성상으로 존재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직선상의 운동에는 어느 때고 끝이 올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직선운동을 하고 있는 존재는 영원성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영원성을 가지기 위하여는 돌지 않으면 안 되고, 돌기 위하여는 주체와 대상이 수수작용을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영원성을 가지기 위하여 이성성상(二性性相)으로 계시는 것이며, 하나님의 영원한 대상인 피조물도 영원성을 가지기 위하여는 하나님을 닮아서 이성성상으로 존재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간도 주기적인 윤회(輪廻)에 의하여 영원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제 3 절 창 조 목 적

 

Ⅰ. 피조세계를 창조하신 목적

 

피조물(被造物)의 창조가 끝날 때마다 그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 창세기의 말씀을 보면(창 1 : 4∼31), 하나님은 스스로 창조하신 피조물이 선의 대상이 되기를 원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피조물이 선의 대상이 되기를 원하신 것은 하나님이 그것을 보시고 기뻐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면 피조물이 어떻게 되어야만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실 수 있을 것인가? 하나님은 만물세계를 창조(創造)하신 후, 끝으로 자기의 성상(性相)과 형상(形狀)대로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성을 가진 인간을 창조하시어 그를 보시고 즐기려 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창조하시고 나서, 생육하고 번식하여 만물세계를 주관하라(창 1 : 28)고 하신 3대 축복(三大祝福)의 말씀에 따라 인간이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을 이루고 기뻐할 때에, 하나님도 그것을 보시고 가장 기뻐하실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면 하나님의 3대 축복은 어떻게 하여서 이루어지는 것인가? 그것은 창조의 근본 기대인 사위기대가 이루어진 터전 위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피조세계를 창조하신 목적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을 중심한 사위기대를 완성하고 3대 축복의 말씀을 이루어 천국을 이룩함으로써 선의 목적을 완성한 것을 보시고 기쁨을 누리시려는 데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을 중심한 피조세계(被造世界)가 존재하는 목적은 하나님에게 기쁨을 돌려드리는 데 있다. 그리고 모든 존재는 이중목적(二重目的)을 지닌 연체(聯體)인 것이다. 위에서 논술한 바와 같이 모든 존재의 중심에는 성상적인 것과 형상적인 것의 두 가지가 있기 때문에, 그 중심이 지향하는 목적에도 성상적인 것과 형상적인 것의 두 가지가 있어서, 그것들의 관계는 성상과 형상과의 관계와 같다. 그리고 성상적인 목적은 전체를 위한 것이고, 형상적인 목적은 그 자체를 위한 것이어서 전자와 후자는 원인적인 것과 결과적인 것,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주체적인 것과 대상적인 것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체적인 목적을 떠나서 개체적인 목적이 있을 수 없고, 개체적인 목적을 보장하지 않는 전체적인 목적도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삼라만상의 피조물은 이러한 이중목적에 의하여 얽혀 있는 하나의 굉대(宏大)한 유기체(有機體)인 것이다.

 

 

Ⅱ. 하나님의 기쁨을 위한 선의 대상

 

하나님의 창조목적(創造目的)에 관한 문제를 더 상세히 알기 위하여는, 우리가 어떠한 상태에 있을 때에 기쁨이 생기느냐 하는 문제를 먼저 알아야 한다. 기쁨은 독자적으로는 생기지 않는다. 무형이거나 실체거나 자기의 성상(性相)과 형상(形狀)대로 전개된 대상이 있어서, 그것으로부터 오는 자극으로 말미암아 자체의 성상과 형상을 상대적으로 느낄 때 비로소 기쁨이 생기는 것이다.
하나의 예를 들면, 작가의 기쁨은 그가 가지고 있는 구상 자체가 대상이 되든가 혹은 그 구상이 회화(繪畵)나 조각 등의 작품으로 실체화하여 대상이 되었을 때, 그 대상으로부터 오는 자극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성상(性相)과 형상(形狀)을 상대적으로 느낌으로써 비로소 생기게 된다. 이에 구상 자체가 대상으로 서게 될 때에는 그로부터 오는 자극이 실체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로 인한 기쁨도 실체적인 것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의 이러한 성품은 모두 하나님을 닮은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그의 실체대상으로부터 오는 자극으로 말미암아 자체의 본성상(本性相)과 본형상(本形狀)을 상대적으로 느낄 때 비로소 기쁨을 누리시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위기대(四位基臺)의 터전 위에서 3대 축복(三大祝福)에 의한 천국이 이루어지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쁨을 느끼실 수 있는 선의 대상이 되는 것이라고 우리는 앞서 설명하였다. 그러면 이것이 어떻게 되어 하나님의 기쁨을 위한 선의 대상이 되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하나님의 제1축복(第一祝福)은 개성을 완성하는 데 있다. 인간이 개성을 완성하려면, 하나님의 이성성상(二性性相)의 대상으로 분립된 마음과 몸이 수수작용을 하여 합성일체화함으로써 그 자체에서 하나님을 중심한 개체적인 사위기대(四位基臺)를 이루어야 한다.

 

 

하나님을 중심하고 마음과 몸이 창조본연의 사위기대를 이룬 인간은, 하나님의 성전(聖殿)이 되어(고전 3 : 16) 그와 일체를 이루기 때문에(요 14 : 20), 신성(神性)을 가지게 되어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함으로써 그의 뜻을 알고 그대로 생활하게 된다. 이와 같이 개성을 완성한 인간은 하나님을 중심한 그 마음의 실체대상이 되고, 따라서 하나님의 실체대상이 된다. 이에 그 마음이나 하나님은 이러한 실체대상으로부터 오는 자극으로 말미암아 그 자체의 성상과 형상을 상대적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기쁨을 누리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의 제1축복을 이루면 그것은 하나님의 기쁨을 위한 선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개성을 완성한 인간은 하나님의 희로애락을 곧 그 자체의 것으로서 느끼게 되어 하나님이 서러워하시는 범죄행위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절대로 타락할 수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제2축복(第二祝福)을 이루기 위하여는, 하나님의 이성성상(二性性相)이 각각 개성을 완성한 실체대상(實體對象)으로 분립된 아담과 해와가 부부가 되어 합성일체화함으로써 자녀를 번식하여 하나님을 중심한 가정적인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중심하고 사위기대를 이룬 가정이나 사회는 개성을 완성한 사람 하나의 모양을 닮게 되므로, 이것은 하나님을 중심한 인간의 실체대상이요, 따라서 하나님의 실체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인간이나 하나님은 이러한 가정이나 사회로부터 그 자체의 성상(性相)과 형상(形狀)을 상대적으로 느끼게 되어 기쁨을 누리게 된다. 따라서 인간이 하나님의 제2축복을 이루면 그것도 또한 하나님의 기쁨을 위한 선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인간이 하나님의 제3축복(第三祝福)을 이루게 되면 그것이 어찌하여 하나님의 기쁨을 위한 선의 대상이 되는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이 문제를 해명하기 위하여는 먼저 성상과 형상으로 본 인간과 만물세계와의 관계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시기 전에 앞으로 창조하시게 될 인간의 성상과 형상을 형상적으로 전개하여 만물세계를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인간은 만물세계를 총합한 실체상이 되는 것이다. 인간을 소우주(小宇宙)라고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하등동물에서부터 점차적으로 기능이 복잡한 고등동물들을 창조하시고, 마지막으로 최고급의 기능을 가진 존재로 인간을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어떠한 동물의 구조(構造)와 요소(要素)와 소성(素性)도 다 구비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이 어떠한 동물의 소리도 다 낼 수 있다는 것은 곧 어떠한 동물의 발성기(發聲器)의 성능도 다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어떠한 피조물의 형(形) 선(線)의 미(美)도 다 갖추고 있기 때문에 화가는 인간의 나체(裸體)를 모델로 하여 화법을 연마하는 것이다.
인간과 식물을 놓고 보더라도 그 구조와 기능에는 차이가 있으나 모두 세포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식물의 구조와 요소와 그의 소성이 모두 구비되어 있다. 즉 식물의 잎은 그 모양이나 기능으로 보아 인간의 폐(肺)에 해당된다.

 

 

잎이 대기 중에서 탄산가스를 흡수하는 것같이 폐는 산소를 흡수한다. 식물의 줄기와 가지는 인간의 심장(心臟)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영양소를 전체에 공급한다. 그리고 식물의 뿌리는 인간의 위장(胃腸)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영양소를 섭취한다. 더 나아가 식물의 사관(篩管)과 도관(導管)의 형태와 기능은 인간의 동맥과 정맥에 해당하는 것이다.
한편 인간은 물과 흙과 공기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광물질(鑛物質)의 요소도 가지고 있다. 지구도 인체 구조의 표시체로 되어 있는 것이다. 지구에는 식물로 덮인 지각(地殼)이 있고, 지층(地層) 속에는 지하천(地下泉)이 있으며, 그 밑에 암층(岩層)으로 둘러싸인 용암층(熔岩層)이 있는데, 이것은 마치 솜털로 덮인 피부가 있고, 근육 속에는 혈관이 있으며, 그 밑에 골격(骨格)과 골격으로 둘러싸인 골수(骨髓)가 있는 인체의 구성과 흡사하다.

 

하나님의 제3축복(第三祝福)은 만물세계에 대한 인간의 주관성 완성을 의미한다. 인간이 이 축복을 이루기 위하여는, 하나님의 형상적 실체대상인 인간과 그의 상징적 실체대상인 피조세계가 사랑과 미(美)를 주고받아 합성일체화함으로써, 하나님을 중심한 주관적인 사위기대가 이루어져야 한다(본장 제5절 Ⅱ 3 참조).
위에서 논한 바와 같이, 만물세계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성상(性相)과 형상(形狀)을 실체로 전개해 놓은 그 대상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중심한 인간은 그의 실체대상인 만물세계로부터 오는 자극으로 말미암아 자체의 성상과 형상을 상대적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기쁨을 누리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은 위와 같이 인간과 만물세계가 합성일체화하여 하나님의 제3대상이 된 피조세계(被造世界)로 말미암아 하나님 자체의 본성상(本性相)과 본형상(本形狀)에 대한 자극적인 감성을 상대적으로 느끼심으로써 기쁨을 누리시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이렇듯 하나님의 제3축복(第三祝福)을 이루면, 그것도 하나님의 기쁨을 위한 또 하나의 선(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창조목적(創造目的)이 이루어졌더라면 죄의 그림자조차도 찾아볼 수 없는 그러한 이상세계가 지상에 이루어졌을 것이니, 이러한 세계를 말하여 우리는 지상천국(地上天國)이라고 하는 것이다. 차후에 상세히 설명하겠지만, 원래 인간은 지상천국에서 생활을 하다가 육신을 벗으면 그와 동시에 영계에 가서 자동적으로 천상천국(天上天國)의 생활을 하도록 창조된 것이었다.

 

위에서 설명한 바 모든 사실들을 종합하여 볼 때, 천국은 하나님의 본성상과 본형상대로 개성을 완성한 인간 하나의 모양을 닮은 세계를 말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게 된다. 인간에게 있어서 그 마음의 명령이 중추신경(中樞神經)을 통하여 그의 사지백체(四肢百體)에 전달됨으로써 그 인체가 하나의 목적을 지향하여 동(動)하고 정(靜)하는 것과 같이, 천국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명령이 인류의 참부모를 통하여 모든 자녀들에게 전달됨으로써 모두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동하고 정하게 되는 것이다.


제 4 절 창조본연의 가치

 

Ⅰ. 창조본연의 가치 결정과 그 가치의 기준

 

창조본연(創造本然)의 가치는 어떻게 결정되는가? 어떤 대상이 지니고 있는 가치는 그 대상이 존재하는 목적과 그것을 대하는 인간 주체의 욕구와의 상대적 관계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가 이제까지 알아 왔던 일반적인 가치관이었다. 그런데 어떤 개성체의 창조본연의 가치는 그 자체 내에 절대적인 것으로 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개성체가 하나님의 창조이상(創造理想)을 중심하고 어떠한 대상으로 존재하는 목적과 그것을 대하는 인간 주체의 창조본연의 가치 추구욕이 상대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결정된다. 따라서 어떤 대상이 창조본연의 가치를 가지기 위하여는, 그것이 인간 주체와 수수작용에 의하여 합성일체화함으로써 하나님의 제3대상이 되어 창조본연의 사위기대(四位基臺)를 이루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러면 창조본연의 가치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창조본연의 가치는 어떤 대상(對象)과 인간 주체(主體)가 하나님을 중심하고 창조본연의 사위기대를 이룰 때 결정되는데, 이 사위기대의 중심이 절대자 하나님이시므로 이 가치의 기준도 절대자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절대자 하나님을 기준으로 하여 그에 상대적으로 결정되는 어떤 대상의 창조본연의 가치도 절대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예를 들면, 꽃의 미(美)는 어떻게 결정되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그 꽃을 창조하신 목적과 그 꽃의 미를 찾는 인간의 미에 대한 창조본연의 추구욕이 합치될 때,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창조이상에 입각한 인간의 미에 대한 추구욕이 그 꽃으로부터 오는 정적(情的)인 자극으로 말미암아 충당되어 인간이 완전한 기쁨을 느낄 때 그 창조본연의 미가 결정된다. 이와 같이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중심하고 그 꽃으로부터 느끼는 기쁨이 완전할 때 그 꽃의 미는 절대적이다. 여기에 그 미의 추구욕이란 인간 자신이 그의 성상(性相)과 형상(形狀)을 그의 대상을 통하여 상대적으로 느끼려 하는 욕망을 말한다. 그리고 그 꽃의 창조목적과 그 꽃을 대하는 인간의 가치 추구욕이 합치되는 순간 그 대상과 주체는 혼연일체의 상태를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어떠한 존재가 창조본연의 가치를 가지기 위하여는, 하나님을 중심하고 그와 그를 대하는 인간 주체가 혼연일체의 상태에서 하나님의 제3대상이 되어 사위기대(四位基臺)를 이루어야 한다. 그러면 절대적인 가치의 기준인 하나님과 상대적으로 결정된 만물들의 창조본연의 가치도 절대적인 것이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어떤 대상의 가치가 절대적인 것이 되지 못하고 상대적이었던 것은, 그 대상과 그것을 대하는 타락인간과의 사이에 이루어지는 수수관계(授受關係)가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중심한 것이 아니고 사탄적인 목적과 욕망을 중심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Ⅱ. 창조본연의 지 정 의와 창조본연의 진 미 선

 

인간의 마음은 그 작용에 있어서 지(知)·정(情)·의(意)의 3기능을 발휘한다. 그리고 인간의 육신은 그 마음의 명령에 감응되어 행동한다. 이것을 보면 그 육신은 마음 곧 지·정·의의 감응체로서, 그의 행동은 진(眞)·미(美)·선(善)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또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마음의 주체이시기 때문에 지·정·의의 주체이시기도 하다. 따라서 인간은 창조본연(創造本然)의 가치 실현욕에 의해 마음으로 하나님의 그 본연의 지·정·의에 감응하고, 몸으로 이것을 행동함으로써 비로소 그 행동은 창조본연의 진·미·선의 가치를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Ⅲ. 사랑과 미, 선과 악, 의와 불의

 

1. 사랑과 미

 

하나님으로부터 분립된 2성(二性)의 실체가 상대기준(相對基準)을 조성하여 수수작용(授受作用)을 함으로써 사위기대(四位基臺)를 이루려 할 때, 그들이 하나님의 제3대상으로 합성일체화(合性一體化)하기 위하여 주체가 대상에게 주는 정적(情的)인 힘을 사랑이라 하고, 대상이 주체에게 돌리는 정적인 힘을 미(美)라고 한다. 그러므로 사랑의 힘은 동적(動的)이요, 미의 자극은 정적(靜的)이다.
하나님과 인간을 두고 볼 때 하나님은 사랑의 주체이시요 인간은 미의 대상이며, 남녀를 놓고 볼 때에는 남자는 사랑의 주체가 되고 여자는 미의 대상이 된다. 피조세계에 있어서는 인간은 사랑의 주체가 되고 만물세계는 미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주체(主體)와 대상(對象)이 합성일체화하면 미에도 사랑이, 사랑에도 미가 내포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체와 대상이 서로 돌아서 일체를 이루면 주체도 대상의 입장에, 대상도 주체의 입장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대인관계에 있어서 윗사람의 사랑에 대하여 아랫사람이 돌리는 미를 충(忠)이라 하고, 부모의 사랑에 대하여 자녀가 돌리는 미를 효(孝)라고 하며, 남편의 사랑에 대하여 아내가 돌리는 미를 열(烈)이라고 한다. 사랑과 미의 목적은, 하나님으로부터 실체로 분립된 양성(兩性)이 사랑과 미를 주고받음으로 합성일체화하여 하나님의 제3대상이 됨으로써 사위기대를 조성하여 창조목적을 이루려는 데 있다.

 

다음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하나님을 중심하고 그의 이성성상(二性性相)의 실체대상으로 완성된 아담과 해와가 일체를 이루어 자녀를 번식함으로써 부모의 사랑(제1대상의 사랑), 부부의 사랑(제2대상의 사랑), 자녀의 사랑(제3대상의 사랑) 등 창조본연의 3대상(三對象)의 사랑을 체휼해야만, 삼대상목적(三對象目的)을 완성하여 사위기대를 이룬 존재들로서 인간 창조의 목적을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위기대(四位基臺)의 3대상 사랑에 있어서 그 주체적인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3대상의 사랑으로 나타나 사위기대 조성을 위한 근본적인 힘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위기대는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받아서 그를 체휼할 수 있는 완전한 미의 대상이요, 또 완전한 기쁨의 대상이기 때문에 창조목적을 완성한 선의 근본적인 기대가 된다.

 

 

2. 선과 악

 

주체(主體)와 대상(對象)이 사랑과 미를 잘 주고 잘 받아 합성일체화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제3대상이 되어 사위기대를 조성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성취하는 행위나 그 행위의 결과를 선(善)이라 하고, 사탄을 중심하고 사위기대를 조성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배치(背馳)되는 행위나 그 행위의 결과를 악(惡)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하나님을 중심하고 마음과 몸이 주체와 대상의 입장에서 사랑과 미를 잘 주고 잘 받아 합성일체화하여 개인적인 사위기대를 조성함으로써, 창조목적을 완성한 개성체가 되어 하나님의 제1축복(第一祝福)을 완성하게 될 때, 그 개성체나 또는 그러한 개성체를 이루기 위한 행위를 선이라고 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중심하고 아담과 해와가 주체와 대상의 입장에서 사랑과 미를 잘 주고 잘 받아 부부를 이루고 자녀를 번식하여 가정적인 사위기대를 조성함으로써, 창조목적을 완성한 가정을 이루어 하나님의 제2축복(第二祝福)을 완성하게 될 때, 그 가정이나 또는 그러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행위를 선이라고 한다.

 

 

또 개성을 완성한 인간이 어떠한 사물을 제2의 자아로서 그 대상의 입장에 세워 놓고 그것과 합성일체화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제3대상을 이루어 주관적인 사위기대를 조성함으로써 하나님의 제3축복(第三祝福)을 완성하게 될 때, 그 사물이나 또는 그 사물을 이루기 위한 행위를 선이라고 한다. 그리고 사탄을 중심하고 사위기대를 조성함으로써 위와 같은 하나님의 3대 축복과 반대되는 목적을 이루는 행위나 그 행위의 결과를 악이라고 한다.

 

 

3. 의와 불의

 

선의 목적을 이루어 나아가는 과정에 있어서 그 선을 위한 생활적인 요소를 의(義)라고 하며, 악(사탄)의 목적을 이루어 나아가는 과정에 있어서 그 악을 위한 생활적인 요소를 불의(不義)라고 한다. 그러므로 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는 필연적으로 의의 생활을 요하게 되는 것으로서, 의가 선의 목적을 추구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제 5 절 피조세계의 창조과정과 그의 성장기간

 

Ⅰ. 피조세계의 창조과정

 

창세기 1장을 보면, 천지창조(天地創造)는 혼돈하고 공허하여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데서 빛을 창조하신 것으로 출발하여, 먼저 물을 궁창(穹蒼) 위와 아래로 갈라 세우고, 다음에는 육지와 바다를 가르고j, 다음엔 식물(植物)을 비롯하여 어류(魚類), 조류(鳥類), 포유류(哺乳類), 인류(人類) 등을 창조하시는 데 6일이라는 기간을 요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으로써 우리는 피조세계(被造世界)의 창조가 끝날 때까지 6일이라는 시간적인 과정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성서(聖書)에 기록된 창조의 과정이 오늘날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한 우주의 생성과정과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과학자들의 문헌에 의하면, 우주는 처음에는 가스 상태로서 무수시대(無水時代)의 혼돈과 공허한 가운데서 천체(天體)를 이루어, 강우(降雨)에 의한 유수시대(有水時代)가 되면서 물로 된 궁창을 형성하였고, 다음에는 화산(火山)의 분출에 의하여 물 속에서 육지가 드러나 바다와 육지가 생겼으며, 다음에는 하등의 식물과 동물에서 시작되어 순차로 어류, 조류, 포유류, 인류가 생성되었다고 하며, 지구의 연령을 수십억년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수천년 전에 기록된 이 성경의 천지창조 과정이 오늘날의 과학자들이 연구한 것과 거의 부합되고 있다는 사실을 볼 때, 우리는 이 기록이 하나님의 계시(啓示)임에 틀림이 없다는 것을 재확인하게 된다.

 

우리는 여기에서 우주는 시간성을 떠나서 돌연히 생성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생성될 때까지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따라서 천지창조를 완료하기까지의 6일이란 기실 일출(日出) 일몰(日沒)의 횟수로 계산되는 6일이 아니라, 창조과정의 여섯 단계의 기간을 표시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Ⅱ. 피조물의 성장기간

 

피조세계(被造世界)의 창조가 끝날 때까지 6일 즉 여섯 단계의 기간이 소요되었다는 사실은, 곧 피조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각 개성체(個性體)가 완성되는 데 있어서도 어느만큼의 기간이 소요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창세기 1장에 있는 천지창조에 관한 기록을 보면 하루하루의 창조가 끝날 때마다 그 서수(序數) 일자를 밝힌 것이 있는데, 이 일자 표시에서도 우리는 피조물의 완성에 어떠한 기간이 소요되었음을 알게 된다.

 

 

즉 하나님은 첫날의 창조를 마치시자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날이니라(창 1 : 5)고 말씀하셨다. 저녁으로부터 밤을 지나고 다음날 아침이 되면 둘째날일 것인데 첫째날이라고 한 것은, 피조물이 밤이라는 성장기간(成長期間)을 지나 아침이 되어서 완성된 후에야 창조이상(創造理想)을 실현하기 위한 첫 출발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피조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반드시 어느만큼의 시간이 경과한 후에야 그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인 바, 이것은 피조물(被造物)이 창조될 때 일정한 성장기간을 거쳐서 완성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1. 성장기간의 질서적 3단계

피조세계는 하나님의 본성상(本性相)과 본형상(本形狀)이 수리적인 원칙에 의하여 실체적으로 전개된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은 수리성(數理性)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미루어 알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절대자이시면서 상대적인 이성성상의 중화적 존재이시기 때문에 3수적인 존재이시다. 따라서 한 하나님을 닮아 난 피조물(창 1 : 27)은 그 존재 양상이나 그 운동이나 또는 그 성장기간(成長期間) 등이 모두 3수 과정을 통하여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목적인 사위기대(四位基臺)는 하나님, 아담과 해와, 그리고 자녀 번식의 3단계의 과정을 거쳐서야 완성된다. 그리고 사위기대를 조성하여 원형운동을 하려면 반드시 정(正)·분(分)·합(合) 3단계의 작용을 하여 삼대상목적(三對象目的)을 이루고 3점을 통과해야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한 물체가 정착하려면 최소한 3점에서 지지(支持)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이 완성됨에 있어서도 그의 성장기간은 소생기(蘇生期), 장성기(長成期), 완성기(完成期)의 질서적 3단계를 거쳐서야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자연계(自然界)에서 3수로 나타나고 있는 그 예를 들어 보기로 하자. 자연계는 광물과 식물과 동물로 되어 있고, 물질은 기체와 액체와 고체의 3상(三相)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식물은 뿌리와 줄기와 잎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졌고, 동물은 머리와 몸과 사지의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다음에 우리는 또 성서(聖書)에 보여지는 3수의 예를 들어 보기로 하자. 인간은 성장기간의 3단계를 완성하지 못하고 타락됨으로써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 목적을 다시 이루는데 있어서도 이 3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러므로 복귀섭리(復歸攝理)는 3수를 찾는 섭리를 하셨고, 따라서 성서에는 3수를 중심한 섭리의 기록이 많이 있다.

 

 

성부(聖父)·성자(聖子)·성신(聖神)의 3위(三位), 낙원의 3층, 누시엘 가브리엘 미가엘의 3천사, 방주(方舟)의 3층, 노아 홍수(洪水) 때의 3차의 비둘기, 아브라함의 3제물(三祭物), 이삭 헌제(獻祭)의 3일, 모세 때의 어둠의 재앙(災殃) 3일간, 출애급노정(出埃及路程)을 위한 3일간의 사탄 분립기간과 가나안 복귀를 위한 3차의 40년 기간, 요단강을 건너기 전 여호수아를 중심한 사탄 분립의 3일 기간, 예수님의 30년 사생애(私生涯)와 3년 공생애(公生涯), 3인의 동방박사(東方博士), 그들의 3예물, 3제자, 3대 시험, 겟세마네의 3차의 기도와 베드로의 예수님에 대한 3차의 부인(否認), 예수님이 운명하시기 전의 세 시간의 어둠과 3일 만의 부활(復活) 등 그 예는 허다하다.

 

그러면 인간 시조는 언제 타락되었던가? 그들은 성장기간(成長期間) 즉 미완성기(未完成期)에서 타락했던 것이다. 인간이 만일 완성된 후에 타락하였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전능성(全能性)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인간이 선(善)의 완성체가 되어 가지고 타락하였다면 선 자체도 불완전한 것이 되는 것이요, 따라서 선의 주체이신 하나님도 역시 불완전한 분이시라는 결론에 이르고 마는 것이다.

 

창세기 2장 17절을 보면,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에게 선악과(善惡果)를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경고하신 말씀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듣지 않고 죽을 수도 있었고, 혹은 그 경고를 받아들이어 죽지 않을 수도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들은 아직 미완성기에 있었음이 분명하다. 만물세계가 6일이라는 기간을 지나서 완성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피조물의 하나인 인간도 역시 그러한 원리를 떠나서 창조되었을 리는 없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은 성장기간의 어느 단계에서 타락되었던가? 그것은 장성기(長成期)의 완성급(完成級)에서 타락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인간 시조의 타락을 전후한 제반 사정과 복귀섭리역사(復歸攝理歷史)의 경위가 실증하는 바로서, 본서의 전후편을 두루 연구하는 데서 명확히 알게 될 것이다.

 

 

2. 간접주관권

피조물(被造物)이 성장기에 있을 때에는 원리 자체의 주관성(主管性) 또는 자율성(自律性)에 의하여 성장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하나님은 원리의 주관자로 계시면서 피조물이 원리에 의하여 성장하는 결과만을 보아서 간접적인 주관을 하시므로, 이 기간을 하나님의 간접주관권(間接主管圈) 또는 원리결과주관권(原理結果主管圈)이라고 한다.
만물은 원리 자체의 주관성 또는 자율성에 의하여 성장기간(간접주관권)을 경과함으로써 완성한다. 그러나 인간은 원리 자체의 주관성이나 자율성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책임분담(責任分擔)을 다하면서 이 기간을 경과하여 완성하도록 창조되었다. 즉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 : 17)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보면, 인간 시조(始祖)가 하나님의 이 말씀을 믿어 따먹지 않고 완성되는 것이나 그 말씀을 불신하여 따먹고 타락되는 것은 하나님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에게 달려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완성 여부는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에만 달려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책임수행(責任遂行) 여하에 따라서 결정되도록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그의 창조주(創造主)로서의 책임분담에 대하여 인간이 그 자신의 책임분담을 다하면서 이 성장기간(간접주관권)을 다 경과함으로써 완성되도록 창조하셨기 때문에, 그 책임분담에 대하여는 하나님이 간섭하셔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이 그 자신의 책임분담(責任分擔)을 완수하여서만 완성되도록 창조하신 것은, 인간이 하나님도 간섭할 수 없는 그의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써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창조성(創造性)까지도 닮게 하여 하나님의 창조의 위업에 가담케 하심으로써, 창조주(創造主) 하나님이 인간을 주관하시듯이 인간도 창조주의 입장에서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주인의 권한을 가지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창 1 : 28). 인간이 만물과 다른 점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이 자신의 책임분담을 완수하여 하나님의 창조성을 이어받음으로써 천사(天使)를 비롯한 만물에 대한 주관성을 가지게 될 때 비로소 완성되도록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간접주관권(間接主管圈)을 두시고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타락되어 이러한 주관성을 갖지 못하게 된 인간들도 역시 복귀원리(復歸原理)에 의하여 인간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써, 사탄을 비롯하여 만물에 대한 주관성을 복귀하기 위한 그 간접주관권을 다 통과하지 않으면 창조목적을 완성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섭리(救援攝理)가 그처럼 오랜 기간을 두고 연장되어 나온 것은, 복귀섭리를 담당한 중심인물들이 하나님도 간섭할 수 없는 그 자신들의 책임분담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항상 실수를 거듭하여 왔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로 인한 구원(救援)의 은사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인간 자신이 그의 책임분담인 믿음을 세우지 않으면 그를 찾아온 구원섭리는 무위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한 부활(復活)의 혜택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책임분담이었고, 그것을 믿고 안 믿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 자신의 책임분담인 것이다(요 3 : 16, 엡 2 : 8, 롬 5 : 1).

 

 

3. 직접주관권

직접주관권(直接主管圈)이란 어떠한 것이며, 또 이것을 두고 창조하신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을 중심하고 어떠한 주체(主體)와 대상(對象)이 합성일체화(合性一體化)하여 사위기대(四位基臺)를 조성함으로써 하나님과 심정의 일체를 이루어 가지고, 주체의 뜻대로 사랑과 미(美)를 완전히 주고받아 선(善)의 목적을 이루는 것을 직접주관(直接主管)이라고 한다. 따라서 직접주관권은 곧 완성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직접주관은 어디까지나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이루기 위한 것이므로 이것이 없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직접주관이란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하나님을 중심하고 아담과 해와가 완성되어 가지고 합성일체화하여 가정적인 사위기대를 조성함으로써 하나님과 심정(心情)의 일체를 이루어, 하나님을 중심한 아담의 뜻대로 서로 사랑과 미를 완전히 주고받는 선의 생활을 하게 될 때, 이것을 하나님의 직접주관이라고 한다. 이러한 인간은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고 그의 뜻을 완전히 알고 실천하게 되므로, 마치 두뇌가 명령 아닌 명령으로 사지백체(四肢百體)를 움직이는 것같이, 인간도 하나님의 명령 아닌 명령에 의하여 그의 뜻대로 움직여서 창조목적을 이루어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만물세계(萬物世界)에 대한 인간의 직접주관은 어떠한 것인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하나님을 중심하고 완성한 인간이 만물세계를 대상으로 세워 합성일체화함으로써 사위기대를 조성하여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하고 일체를 이루어서, 하나님을 중심한 인간의 뜻대로 인간과 만물세계가 사랑과 미를 완전히 주고받음으로써 선의 목적을 이루게 되는 것을 만물에 대한 인간의 직접주관이라고 한다.


 

제 6 절 인간을 중심한 무형실체세계와 유형실체세계

 

Ⅰ. 무형실체세계와 유형실체세계

 

피조세계(被造世界)는 하나님의 이성성상(二性性相)을 닮은 인간을 본으로 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에, 모든 존재는 마음과 몸으로 된 인간의 기본형을 닮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본장 제1절 Ⅱ 참조). 그러므로 피조세계에는 인간의 몸과 같은 유형실체세계(有形實體世界)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의 주체로서의 인간의 마음과 같은 무형실체세계(無形實體世界)가 또 있다. 이것을 무형실체세계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생리적인 오관(五官)으로는 그것을 감각할 수 없고 영적 오관으로만 감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적 체험에 의하면, 이 무형세계는 영적인 오관에 의하여 유형세계와 꼭같이 실감할 수 있는 실재세계인 바, 이 유형 무형의 두 실체세계를 합친 것을 우리는 천주(天宙)라고 부른다.

 

마음과의 관계가 없이는 몸의 행동이 있을 수 없는 것같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없이는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인간의 행동이 있을 수 없으며, 따라서 무형세계와의 관계가 없이는 유형세계가 창조본연의 가치를 드러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알지 못하고는 그 사람의 인격을 알 수 없듯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는 인생의 근본 의의를 알 수 없으며, 무형세계가 어떻게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을 모르고는 유형세계가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완전히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형세계는 주체(主體)의 세계요 유형세계는 대상(對象)의 세계로서, 후자는 전자의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히 8 : 5). 유형세계에서 생활하던 인간이 육신(肉身)을 벗으면 그 영인체(靈人體)는 바로 무형세계에 가서 영주(永住)하게 된다.

 

 

Ⅱ. 피조세계에 있어서의 인간의 위치

 

첫째로, 하나님은 인간을 피조세계(被造世界)의 주관자로 창조하셨다(창 1 : 28). 피조세계는 하나님에 대한 내적인 감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세계를 직접 주관하지 않으시고, 이 세계에 대한 감성을 갖춘 인간을 창조하시어 그로 하여금 피조세계를 직접 주관하도록 하신 것이다. 따라서 인간을 창조하심에 있어서 유형세계(有形世界)를 느껴 그것을 주관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그것과 같은 요소인 물과 흙과 공기로써 육신을 창조하시고, 무형세계(無形世界)를 느껴 그것을 주관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그것과 같은 영적인 요소로써 영인체를 창조하시었다. 변화산상(變化山上)에서의 예수님 앞에 이미 1600여년 전에 죽었던 모세와 900여년 전에 죽었던 엘리야가 나타났었는데(마 17 : 3), 이것들은 모두 그들의 영인체들이었다. 이와 같이 유형세계를 주관할 수 있는 육신과 무형세계를 주관할 수 있는 영인체로 구성된 인간은 유형세계와 무형세계를 모두 주관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은 인간을 피조세계의 매개체요 또한 화동의 중심체로 창조하셨다. 인간의 육신과 영인체가 수수작용에 의하여 합성일체화함으로써 하나님의 실체대상이 될 때, 유형 무형 두 세계도 또한 그 인간을 중심하고 수수작용을 일으키어 합성일체화함으로써 하나님의 대상세계가 된다. 그리하여 인간은 두 세계의 매개체요 또한 화동의 중심체가 된다. 그러므로 인간은 마치 두 음차(音叉)를 공명시키는 데 있어서의 공기와 같은 것이다. 인간은 또 이와 같이 무형세계(영계)와 통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마치 라디오나 텔레비전과도 같아서 영계의 사실을 그대로 반영하게 되어 있다.

 

셋째로, 하나님은 인간을 천주(天宙)를 총합한 실체상으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나중에 창조하실 인간의 성상(性相)과 형상(形狀)을 실체적으로 전개하시어 먼저 피조세계를 창조하셨었다. 따라서 영인체(靈人體)의 성상과 형상의 실체적인 전개로서 무형세계(無形世界)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영인체는 무형세계를 총합한 실체상이요, 한편 또 육신(肉身)의 성상과 형상의 실체적인 전개로서 유형세계(有形世界)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육신은 유형세계를 총합한 실체상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천주를 총합한 실체상이 되는 것이니, 흔히 인간을 소우주(小宇宙)라고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되어 피조세계는 자기를 주관해 줄 수 있는 주인을 잃어버렸으므로, 로마서 8장 19절에 피조물은 하나님의 아들들(복귀된 창조본연의 인간)이 나타나기를 고대한다고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화동의 중심체인 인간이 타락되어 유형 무형 두 세계의 수수작용(授受作用)이 끊어짐으로써 그것들이 일체를 이루지 못하고 분리되었기 때문에, 로마서 8장 22절에는 피조물(被造物)이 탄식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영인체와 육신을 가진 완성한 아담으로 오셨던 분이었다. 따라서 그는 천주를 총합한 실체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 아래 두셨다고 말씀하셨다(고전 15 : 27). 예수님은 타락인간이 그를 믿어 그와 일체가 됨으로써 그와 같이 완성한 인간이 되게 하시기 위하여 오셨기 때문에 구주(救主)이신 것이다.

 

 

Ⅲ. 육신과 영인체와의 상대적 관계

 

1. 육신의 구성과 그의 기능

 

육신(肉身)은 육심(주체)과 육체(대상)의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다. 육심(肉心)은 육체(肉體)로 하여금 그 생존과 번식과 보호 등을 위한 생리적인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작용부분을 말한다. 그러므로 동물에 있어서의 본능성은 바로 그들의 육심에 해당하는 것이다. 육신이 원만히 성장하려면 양성의 영양소인 무형의 공기와 광선을 흡수하고 음성의 영양소인 유형의 물질을 만물로부터 섭취하여, 이것들이 혈액을 중심하고 완전한 수수작용을 해야 한다.
육신의 선행(善行)과 악행(惡行)에 따라서 영인체(靈人體)도 선화(善化) 혹은 악화(惡化)한다. 이것은 육신으로부터 영인체에게 어떠한 요소를 돌려주기 때문이다. 이렇듯 육신으로부터 영인체에 주어지는 요소를 우리는 생력요소(生力要素)라고 한다. 우리는 평소의 생활에 있어서 육신이 선한 행동을 할 때는 마음이 기쁘고 악한 행동을 할 때는 마음이 언짢은 것을 경험하거니와, 이것은 그 육신의 행동의 선악(善惡)에 따라 그에 적응하여 생기는 생력요소가 그대로 영인체에 돌아가는 증좌(證左)이다.

 

2. 영인체의 구성과 그의 기능

 

영인체(靈人體)는 인간의 육신의 주체로 창조된 것으로서 영감(靈感)으로만 감득되며, 하나님과 직접 통할 수 있고, 또 천사나 무형세계를 주관할 수 있는 무형실체(無形實體)로서의 실존체인 것이다. 영인체는 그의 육신과 동일한 모습으로 되어 있으며, 육신을 벗은 후에는 무형세계(영계)에 가서 영원히 생존한다. 인간이 영존(永存)하기를 염원하는 것은 그 자체 내에 이와 같이 영존성을 지닌 영인체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 영인체는 생심(生心, 주체)과 영체(靈體, 대상)의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생심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영인체의 중심부분을 말하는 것이다. 영인체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소(生素, 양성)와 육신으로부터 오는 생력요소(生力要素, 음성)의 두 요소가 수수작용을 하는 가운데서 성장한다.

 

 

그리고 영인체는 육신으로부터 생력요소를 받는 반면에 그가 육신에게 돌려보내는 요소도 있는 것이니, 우리는 이것을 생령요소(生靈要素)라고 한다. 인간이 신령(神靈)에 접함으로써 무한한 기쁨과 새로운 힘을 얻어서 고질(痼疾)이 물러가는 등 그 육신에 많은 변화를 일으키게 되는데, 이것은 그 육신이 영인체로부터 생령요소를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인체는 육신을 터로 하여서만 성장한다.

 

 

그러므로 영인체와 육신과의 관계는 마치 열매와 나무와의 관계와 같다. 생심(生心)의 요구대로 육심(肉心)이 호응하여 생심이 지향하는 목적을 따라 육신이 움직이게 되면 육신은 영인체로부터 생령요소를 받아 선화(善化)되고, 그에 따라 육신은 좋은 생력요소를 영인체에 다시 돌려줄 수 있게 되어, 영인체는 선(善)을 위한 정상적인 성장을 하게 되는 것이다.
생심(生心)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진리(眞理)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진리로써 생심이 요구하는 것을 깨달아 그대로 실천함으로써 인간 책임분담(人間責任分擔)을 완수해야만 생령요소(生靈要素)와 생력요소(生力要素)가 서로 선(善)의 목적을 위한 수수작용(授受作用)을 하게 된다.
그런데 생령요소와 생력요소는 각각 성상적인 것과 형상적인 것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악인(惡人)에 있어서도 그의 본심이 선을 지향하고 있는 것은 그 생령요소가 항상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선한 행동을 하지 않는 한 그 요소도 육신의 선화(善化)를 위한 것으로 돌아갈 수 없으며, 따라서 생력요소와의 사이에 있어 올바른 수수작용을 할 수도 없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영인체(靈人體)는 어디까지나 지상의 육신생활에서만 완성할 수 있다.

 

 

영인체는 육신을 터로 하여 생심을 중심하고 창조원리에 의한 질서적 3기간을 거쳐서 성장하여 완성하게 되는데, 소생기의 영인체를 영형체(靈形體)라 하고, 장성기의 영인체를 생명체(生命體)라 하며, 완성기의 영인체를 생령체(生靈體)라고 한다.
하나님을 중심하고 영인체와 육신이 완전한 수수작용을 하여 합성일체화함으로써 사위기대를 완성하면 그 영인체는 생령체가 되는데, 이러한 영인체는 무형세계의 모든 사실들을 그대로 느낄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영인체에 느껴지는 모든 영적인 사실들은 그대로 육신에 공명되어 생리적 현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인간은 모든 영적인 사실들을 육신의 오관(五官)으로 느껴서 알게 된다. 생령체를 이룬 인간들이 지상천국(地上天國)을 이루고 살다가 육신을 벗고 영인으로서 가서 사는 곳이 천상천국(天上天國)이다.

 

 

그러므로 지상천국이 먼저 이루어진 후에야 천상천국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영인체의 모든 감성도 육신생활 중 육신과의 상대적인 관계에 의하여 육성되는 것이므로, 인간은 지상에서 완성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체휼해야만 그 영인체도 육신을 벗은 후에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체휼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이 영인체의 모든 소성(素性)은 육신을 쓰고 있는 동안에 형성되기 때문에 타락인간(墮落人間)에 있어서의 영인체의 악화(惡化)는 육신생활의 범죄행위에 유인(由因)하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그 영인체의 선화(善化)도 또한 육신생활의 속죄(贖罪)로 인하여서만 이루어진다. 죄악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육신을 쓰고 지상에 오셔야 했던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상에서 선한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며, 따라서 구원섭리(救援攝理)의 제1차적인 목적이 지상에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천국문의 열쇠를 지상의 베드로에게 주셨고(마 16 : 19), 땅에서 매고 푸는 대로 하늘에서도 매이고 풀린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마 18 : 18).
천국이든 지옥이든 영인체가 그곳에 가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영인체 자신이 정하는 것이다. 인간은 원래 완성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호흡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범죄행위로 인하여 생긴 허물로 말미암아 이 사랑을 완전히 호흡할 수 없게 된 영인체는 완전한 사랑의 주체 되시는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도리어 고통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영인체는 하나님의 사랑과 먼 거리에 있는 지옥을 자진하여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영인체는 육신을 터로 하여서만 생장(生長)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영인체의 번식은 어디까지나 육신생활에 의한 육신의 번식과 함께 하게 되는 것이다.
3. 생심과 육심과의 관계로 본 인간의 마음

생심(生心)과 육심(肉心)과의 관계는 성상(性相)과 형상(形狀)과의 관계와 같아서, 그것들이 하나님을 중심하고 수수작용(授受作用)을 하여 합성일체화하면, 영인체와 육신을 합성일체화하게 하여 창조목적을 지향하게 하는 하나의 작용체를 이루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인간의 마음이다.

 

 

인간은 타락되어 하나님을 모르게 됨에 따라 선(善)의 절대적인 기준도 알지 못하게 되었으나, 위와 같이 창조된 본성에 의하여 인간의 마음은 항상 자기가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니, 이것을 양심(良心)이라고 한다. 그런데 타락인간은 선의 절대적인 기준을 알지 못하여 양심의 절대적인 기준도 세울 수 없기 때문에, 선의 기준을 달리함에 따라서 양심의 기준도 달라지게 되어, 양심을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도 흔히 투쟁이 일어나게 된다. 선을 지향하는 마음의 성상적인 부분을 본심(本心)이라 하고, 그 형상적인 부분을 양심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그 무지(無知)에 의하여 창조본연의 것과 그 기준을 달리한 선을 세우게 될 때에도 양심은 그 선을 지향하지만, 본심은 이에 반발하여 양심을 그 본심이 지향하는 곳으로 돌이키도록 작용한다. 사탄의 구애(拘碍)를 당하고 있는 생심과 육심이 수수작용을 하여 합성일체화하면, 인간으로 하여금 악을 지향하게 하는 또 하나의 작용체를 이루는 것이니, 이것을 우리는 사심(邪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심이나 양심은 이 사심에 반발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사탄을 분립하고 하나님을 상대하게 함으로써, 악을 물리치고 선을 지향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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