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편 가정교회와 종족적 메시아 - 제3장 교회장의 길_ 5절

2013. 3. 6. 12:39참사랑 영원까지/천성경

5절 교회장과 전도

1 통일교회의 현재 입장을 보면, 지금까지 책임자들이 해왔던 활동방법을 갖고는 앞으로 혁신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옛날의 사고방식과 옛날의 생활태도, 혹은 옛날의 전도 방법이나 신앙자세를 그냥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안 됩니다. 이제까지 그런 식으로 걸어 나왔지만, 오늘날 기대할 만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못한 입장에 있는 것을 볼 때, 과거와 같은 신앙자세와 생활태도, 전도 방법에서 벗어나 새롭게 달라진 모습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새로운 신앙자세, 새로운 생활태도, 새로운 행동을 제시하지 않고는 새로운 발전을 가져오기 어렵습니다.

심정 기준을 먼저 세워야
2 발전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발전을 추구하기 전에 자기 자체 내의 순수성을 어떻게 조성하느냐 하는 것이 더 문제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는 기도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정성 들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정성은 그냥 들여서는 안 됩니다. 과거를 청산하고 들여야 됩니다. 과거의 의식이 남아 있다면 그 의식이 나를 어디로 끌고 가겠느냐 하는 생각을 해야 됩니다. 과거의 의식에 내가 도취하여 얼마나 강한 입장에 서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과거가 순수했느냐고 비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순수한 입장에 처해 있다면 선했느냐 하는 것을 비판해야 되고, 현재 그런 입장에 서 있느냐 하는 것을 비판해야 됩니다. 또 내가 바라는 소원이 순수한가 하는 것을 비판해야 됩니다. 순수한 선의 입장이란 무엇입니까? 자기를 위하는 데에는 순수한 선은 존속할 수 없습니다. 선은 자기를 강화시키는 데에는 존속하지 않습니다. 선은 하나님을 모시기 위한 바탕이기 때문입니다. 선 가운데서 하나님을 모신다는 것은 선의 주인으로 하나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선의 주인은 타락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3 지방에 나가 전도할 때, 먼저 그 마을 사람들과 내적인 면에서 일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내적인 일치란 심정통일을 말합니다. 그다음엔 생활통일, 이념통일의 기준을 연결시켜 나가야 합니다. 현실적인 무대에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과 마음이 일치된 거기에 몸이 굴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소생·장성·완성의 3점을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갈 뿐만 아니라 이 민족을 그렇게 이끌고 가야 합니다.

4 목회자 중에 자기는 천적 완성 기준에 섰다고 생각하며 자신에게 모심과 경의를 표해 주기를 요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큰 잘못입니다. 모심을 받는 것보다 모셔 주고 위해 주는 것이 부모 입장입니다. 형제 입장에서 보면 아벨입니다. 부모 입장에서 보면 부자관계입니다. 자신은 아벨이므로 가인이 모셔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무엇을 위한 아벨인가 하면, 부모의 입장을 복귀하기 위한 아벨입니다. 그러므로 아벨은 부모의 심정을 먼저 갖지 않으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형제끼리 아벨이라고 생각하여 부모로서의 입장을 잊어버리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결함을 빨리 일소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5 우리는 발전할 수 있는 내용을 충분히 갖고 있습니다. 시대적인 여건과 환경도 완전히 구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발전을 못하는 것은 왜 그렇습니까? 이 시대와 입장, 현재의 처한 환경, 마을이면 마을에 플러스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익을 주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물질적인 면에서 이익을 못 주었다고 하더라도 정신적인 면에서라도 너나 할 것 없이 이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게 하면 교회에 오지 말라고 해도 오게 되어 있습니다.

6 교회가 발전하지 못하는 원인은 어디에 있느냐? 그것은 전도된 사람에게 끝까지 관심을 가져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전도한 사람에 대해 시일이 지남에 따라서 점점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전도할 때는 관심을 가지지만 전도를 하고 나서는 무관심해진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3년까지는 어느 때를 막론하고 관심을 가져 주어야 됩니다. 왜 그러냐? 사람의 심령 정도는 점점 발전합니다. 처음 원리를 들었을 때와 1년 뒤의 입장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1년이 지나게 되면 원리 안팎에 대한 입체적인 내용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것을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원리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더 갈급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지도할 수 있는 사람과 접근하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시간을 더 투입해 세부적인 계획을 세워서 내면적으로 갈구하는 그 마음을 해결해 주어야 합니다.

7 교회가 왜 발전하지 못하느냐? 그것은 책임자가 남을 위한다는 내용을 가지고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영계에서 협조를 안 하는 것입니다. 책임자들이 식구들에게 시킬 줄은 알지만 식구들의 심부름을 할 줄은 모르고 있습니다. 문제는 거기에 있습니다. 95퍼센트 남을 위해서 살겠다는 책임자가 없기 때문에 발전을 못하는 것입니다.

8 전도란 사탄세계를 버리고 웃으면서 하늘길을 따라오게 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보게 되면 전도한다고 그저 그 사람이 좋아하든 안 하든 강제로 ‘오소, 오소.’라고 하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영물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어떤 한 사람을 두고 기도해 보고 한번 실험해 보라는 것입니다. 어떤 한 사람을 지극히 사랑하고, 그를 뜻 앞에 세우기 위해서 아픈 심정을 가지고 눈물을 흘려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연구해 봐야 됩니다. 진정 그의 부모가 사랑하는 자리 이상의 자리에 내가 어떻게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싸움입니다. 그의 어머니 아버지 이상의 마음을 갖고 내가 어떻게 그를 점령하고 나서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9 아벨이 플러스라면 가인은 마이너스입니다. 사탄세계에 대해서 내가 플러스, 아벨의 자리에 있습니다. 전도는 사탄세계의 플러스를 하늘세계의 마이너스가 되게끔 복종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창조하는 것입니다. 나하고 하나될 수 있도록 만드는 재창조입니다. 싫어서는 안 됩니다. 기뻐서 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할 때에 기쁨으로 지었지 슬픔으로 지었습니까? 그러니 자기가 어려운 것보다, 힘든 것보다도 더 놀라운 사랑을 줘야 합니다. 내가 전체를 위해서 있다고 생각할 때는, 전체를 위해 주려고 하면 그 사람이 전체 앞에 주체가 됩니다. 재창조가 되는 것입니다. 투입하는 것입니다. 재창조가 다 끝난 다음에 내가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 주체 앞에는 전체가 좋다고 머리 숙이는 것입니다.

전도 방법과 자세
10 어떻게 전도를 해야 되느냐? 매일같이 무작정 돌아다닐 것이 아니라 백 집을 돌았으면 그중에서 열 집을 고르고, 그 가운데서 다시 한 집을 골라서 집중적으로 말씀을 전해야 됩니다. 한 달에 한 사람 전도하는 것을 목표로 움직여 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한 달 동안에 한 사람을 전도했다면, 그 사람이 한 달 동안 정성 들이며 수고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한 사람이 전도되었으면 그다음에는 전도된 그 사람에게 ‘너도 너희 친척들에게 내가 너에게 한 것처럼 정성을 들여 전도를 하라.’라고 해야 됩니다. 그런 전통을 세워 놓고 지도하면 틀림없습니다. 이렇게 한 달에 한 사람씩을 전도하는 일률적인 방법으로 나가게 되면, 한 사람에서부터 그다음 사람으로 이어지는 횡적인 전도가 벌어져 식구들이 무한정 늘어나는 것입니다.

11 여러분이 나가서 전도한다고 하는데 전도가 무엇입니까? 길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세계를 위해서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길을 가르쳐 주니 그것이 얼마나 위대한 것입니까? 본성의 인간을 보고 ‘너 어디로 갈 거야?’라고 물으면 ‘아이쿠! 세계를 통해서 하늘나라로 돌아가야 되겠다.’라고 합니다. 그 길을 개척해 주니 얼마나 멋집니까?

12 지금까지 종교는 자신의 구원이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해 나왔습니다. 그런 종교는 반드시 멸망합니다. 끝이 옵니다. 지금은 아무리 세계적으로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반드시 다시 한 번 부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기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종교와 기독교를 믿는 신자들의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자신이 구원받아 천국에 가겠다고 하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천국에 가는데 혼자 가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만민을 데리고 가기 위해서 신앙을 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전도하지 말라고 해도 전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을 행하지 말라고 해도 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13 전도 나가는 것은 나도 살고 가인도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전도는 하나님과 사탄 앞에 인증서를 받아 놓고 실천하기 위해서 가는 길입니다. 내가 싸우는 것은 인증서를 받기 위해 세워 놓은 조건대로 실천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고 길을 가야 하는데, 지금까지 그렇게 간 사람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모르고 왔다 갔다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일의 원수가 사탄이 아닙니다. 내가 제일의 원수입니다. 내가 원수 된 입장에 서 있으니까 사탄인 원수가 달려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신이 언제나 원수라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원수는 우리 몸을 통해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즉 핏줄을 통해서 사탄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몸이 원수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14 내가 생명을 바쳐 악을 굴복시키게 되면 생명을 찾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나에게 옵니다. 이것은 공식적입니다. 저울추와 마찬가지입니다. 한 쪽이 내려가면 다른 한 쪽은 올라가게 됩니다. 악을 많이 제거하면 선이 올라가고, 악을 많이 갖게 되면 선이 내려갑니다.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악을 제거하는 만큼 사랑을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누구보다 나를 더 사랑하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라는 것은 하나님을 더 사랑한 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더 받는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했으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15 전도할 때는 반드시 정성 들여서, 하늘을 부여안고 눈물을 흘리며 ‘내가 오늘 만나게 되는 사람과의 인연을 파탄시키는 천륜의 거역자가 되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 환영을 받고 여기에 동기를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시옵소서.’라고 해야 됩니다. 그런 마음으로 전도 나가 보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고 기분 나쁘게 해서 동네에서 제일 좋은 사람을 찾아간다면, 소박맞고 쫓겨나는 것입니다. 그런 체험을 여러분이 생활을 통해서 하고, ‘아, 하늘이 이런 곳에는 같이하시고 이런 곳에는 같이하시지 않는구나!’라는 것을 시험하면서 가리어 가야 여러분이 발전하고 인격수양도 되어 하나님의 심정세계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욕심만 더 품은 채, 도사리고 앉아서 자기 이익만 생각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16 전도는 무한히 주면서 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렇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응하지 않게 되면 하늘의 호출명령이 내려지는 것입니다. 용서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선은 뿌려서 거두지 못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선한 사람이 부를 때 거기에 대답하지 못하면 벌을 받는 것입니다. 선이 손길을 폈는데도 불구하고 그 결과가 안 나오면 그 동네와 이웃 마을까지 사탄의 손길에 말려들기 때문에, 선한 인연을 가진 선조들은 그런 곳에 가서 전도하려고 하는 사람이 요구하는 기준에 합당한 대상자를 자기 후손 가운데 긁어모아서라도 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후손에게 몽시 가운데에서라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17 여러분은 전도 대상자를 놓고 밤을 새워 통곡하며 기도해 보았습니까? 자기 어머니 아버지가 죽은 이상으로 슬퍼하면서, 혹은 사랑하는 애인이 죽은 이상으로 슬퍼하면서 통곡해 보았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안 해봤으면 해봐야 됩니다. 밤을 새워 가면서 통곡해야 됩니다. 하나의 생명을 살릴 수만 있다면 그 무엇도 아까운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돈이나 옷이나 집이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을 사랑하기에 미쳐야 합니다.

18 전도를 하려면 사람들의 심리를 연구해야 됩니다. 표정이나 걸음걸이만 보고도 저 사람이 좋아하겠는지 싫어하겠는지 알아야 됩니다. 그 사람의 감정을 공식적으로 감정할 줄 알아야 됩니다. 자기 아내의 발걸음 소리만 듣고도 그에게 좋은 일이 있는지 나쁜 일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내가 방에 척 들어오면 ‘당신 왜 기분이 좋지 않소?’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내는 언제 보지도 않았는데 벌써 남편이 다 알고 있으니 할 말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잼대를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게 되면 그 사람이 나에게 관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19 우리가 전도를 할 때도 어제 전도할 때의 마음과 오늘 전도할 때의 마음이 출발할 때부터 달라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과거에는 이러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나섰지만 오늘은 새로운 마음을 갖고 해야 되겠다는 각오로, 출발 동기부터 그렇게 다른 각오로 나섰다면 틀림없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고 옛날보다 더 낮은 입장에서, 어제보다 못한 마음으로 출발을 하게 되면 반드시 후퇴의 일로를 걷게 됩니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계속 일을 하면 할수록 파경을 자초하게 됩니다. 또 그것이 일방적이 아니라 사방적으로 그런 후퇴의 감정을 일으켜 간다면, 아무리 목적이 크고 아무리 스스로 굳게 다짐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정지 상태로서 움직이려야 움직일 수 없는 완전히 고착된 입장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20 인간이면 누구나 말씀을 중심삼고 복귀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국가적 기준을 탕감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려면 국가적 기준 앞에 종족적 탕감을 해야 하는데, 그것을 대행할 수 있는 사람을 세워 놓으면 종족이 반대하는 것을 그가 막아 줄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그러한 사람을 세워 놓으면 가정들이 반대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종족 대표를 세워 놓으면 다 막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높이 올라가더라도 후계자를 세워서 그가 내 갈 길에 동참하여 반대하는 것을 막아 줄 수 있게 하는 터전을 넓히려니 전도가 필요합니다.

21 우리는 무기를 가지고 전도하는 것이 아니고, 사랑을 가지고 전도하는 것입니다. 아벨이 사랑으로 가인을 구한 승리의 터전을 통하여 거짓 사랑으로 점령당한 것을 참사랑으로 복귀해야 됩니다. 그래야 상충이 없는 본연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다른 수단 방법을 통해서 했다가는 또다시 사탄이 수단 방법을 가지고 나오는 전법이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음길 위에서도, 생명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랑의 도리를 세워 나왔습니다. 완전한 가인 구원의 도리를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가인 구원의 도리의 문을 열 수 있는 증거를 죽음을 통해서 보여 주었던 것입니다.

22 전도하는 것은 통일교회 자체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통일교회를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전도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 전도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와는 목적이 다릅니다. 그들은 자기 교파의 발전을 위해서 전도하지만, 통일교회는 우리 자체를 위한 전도가 아닙니다. 통일교회가 완성한 자리에 섰다고 하더라도 통일교회가 궁극적으로 찾아가야 하는 곳은 나라입니다. 교회를 버리고라도 나라 완성의 길을 가게 되면 한 단계 높은 자리에서 완성의 길을 맞게 됩니다. 그 길이 보다 가치 있는 길이기 때문에 교회를 희생시켜서라도 나라를 찾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