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본체론 - 전편 - 제1장 창조원리 - 1

2013. 1. 6. 21:35참사랑 영원까지/원리 본체론

제1장 창조원리

 

창조원리는 인간과 우주를 창조한 하나님의 창조 설계도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인생과 우주를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창조원리를 제대로 알아야 우리 인생과 더 나아가 우주에 대해서 알 수 있으며,

인간과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서론: 창조원리란 무엇인가?

 창조원리(創造原理)는 인간과 우주를 창조한 하나님의 창조 설계도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인생과 우주를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빌딩을 지을 때 먼저 건축가가 어떤 빌딩을 지을지 구상하고 설계도를 그려서 건축합니다. 설계도에 따라 일정 기간에 기술과 재료를 투입하면 빌딩이 완성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존재세계(存在世界)는 하나님의 설계도에 따라 창조되었는데, 창조원리가 그 설계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창조원리를 제대로 알아야 우리 인생과 더 나아가 우주에 대해서 알 수 있으며, 인간과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1) 잘 사는 법(設計圖)     

 제품은 반드시 사용법이 있습니다. 최신 기술이 적용된 신제품일수록 사용법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목적과 용도에 어긋나게 사용하면 그 제품은 망가집니다. 예들 들어 100볼트 전압에 맞추어 사용해야 하는 전자제품을 220볼트 전원에 꽂으면 순식간에 망가집니다. 물건은 공장에서 만들어질 때부터 용도에 결정되므로 수천 개가 생산되더라도 사용하는 목적은 똑같습니다.

우리가 물건을 목적에 맞게 사용해야 하듯이 만물의 영장인 인간도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창조목적(創造目的)대로 살아야 합니다.

사람은 환경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에 한국 사람은 한국식으로 살고, 아프리카 사람은 아프리카식으로 살고, 미국 사람은 미국식으로 살지만 살아가는 근본은 똑같습니다.

 

2) 잘 사는 인간, 못 사는 인간

세상에서는 잘 살고 못 살고를 물질을 중심으로 해서 판단합니다. 평가기준은 외모·물질·지식·명예·권력입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면에서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을 규정한다면, 창조원리대로 사는 사람은 잘 사는 사람이고, 창조원리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은 못 사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호화롭고 윤택한 환경에서 살아도 창조원리대로 살지 않는 사람은 잘못 사는 것입니다.

 

지구상에 사는 우리 인류는 하나님의 창조원리를 놓고 볼 때는 대부분 잘못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는 기준은 ‘원리대로 살고 있느냐,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있느냐,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으로 존재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왕이다, 대통령이다, 수상이다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안중에는 없습니다. 외적인 것에만 치중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는 기준에 따라서 생활하는 사람이 잘 사는 사람입니다.

 

내적인 기준이 아니라 외적인 기준에만 매달려 생활하는 사람은 마치 고장 난 인간, 즉 중병 환자와 같습니다. 현실의 인간은 고장 난 상태입니다. 타락으로 인해 고장 난 인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용법대로 사용하지 않는 전자제품이 고장 나는 것처럼 오늘날 타락한 인간은 창조원리를 모르기 때문에 어떻게 살아야 올바르게 사는지 그 방법을 모른 채 살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알고 보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만신창이가 된 중환자인 셈입니다.

 

육신의 병만으로는 중환자라고 하지 않습니다. 육신의 병보다 더 무서운 병이 마음의 병입니다. 가치를 잃어버리고 목적 없이 사는 것처럼 무서운 병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육신의 병만이 문제가 아니고 마음의 병을 고쳐야 합니다.

 

이 중환자를 고쳐야 하는데, 그 분야를 확실히 아는 전문의만이 그 병을 정확히 진단하고 치유할 약을 처방할 수 있습니다. 전문의가 병을 진단하고 처방을 내리면 환자는 그 처방을 반드시 지켜야만 합니다. 규칙적으로 시간을 맞춰서 약을 복용하고 먹는 약의 순서도 잘 지켜야 합니다. 귀찮다고 자기 방식대로 약을 복용하면 오히려 병이 더 깊어질 수 있습니다.

 

앞의 예처럼 환자가 자신의 병을 치료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자기 생각대로 살았는데, 다른 어떤 사람이 지시하는 대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더욱 힘이 듭니다. 그러니 인간이 지금 앓고 있는 중병에서 회복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살아온 습관을 버리고 창조원리대로 살아야 합니다. 창조원리대로 살면 원래대로 회복될 수 있습니다.

 

3) 인생의 목적은 언제 결정되는가?            

인간이 사는 목적은 언제 결정되는가. 인간은 태어나서 사는 동안에 인간의 사는 목적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태어나기 전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이미 결정됐습니다.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 때 물건이 생산되어 나오기 전 설계도에 따라 물건은 생산됩니다. 인간도 태어나기 전 하나님이 창조한 원리대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창조원리의 법도를 모르기 때문에 자기가 보고 듣고 실천한 경험을 토대로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목적대로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것입니다.

 

인간은 현실 문제를 만든 당사자입니다. 그러니 문제의 해결도 인간이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타락으로 무지해서 이 현실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목적 등 현실세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확실하게 알려주는 통일원리(統一原理)는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어떤 교리가 아니고 만인이 알고 실천해야 할 천도(天道)요, 원리입니다.

 

1. 하나님의 이성성상

지금까지 종교인과 신앙인을 포함한 많은 지성인들은 하나님에 대한 문제를 놓고 ‘하나님이 있다, 없다’, 그리고 ‘만일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계시는가?’에 대해 논쟁을 해왔습니다.

성경 출애급기 3장 14절을 보면,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존(自存)하시는 분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또 로마서 1장 20절을 보면,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능력과 신성으로 지은 피조만물을 보면 하나님이 어떻게 계시는지를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1장 27절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전개된 남자와 여자를 잘 관찰하면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속성을 파악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이 세 가지 말씀을 중심하고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1) 존재의 법칙

존재하는 사물에는 존재의 법칙이 있습니다. 존재의 법칙 가운데 하나는 인과법칙(因果法則)이고, 다른 하나는 닮기법칙입니다.

 

인과법칙은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는 법칙입니다. 결과가 있으면 원인이 있고,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반드시 이 인과법칙을 따릅니다. 원인은 보이지 않지만 결과는 눈에 보입니다. 결과는 눈에 보이기 때문에 있는 것이고, 원인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없는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결과는 보이지 않는 원인에 의해서 나타난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원인이요, 보이는 피조물은 결과입니다.

 

닮기법칙은 결과는 반드시 원인을 닮는다는 법칙으로서 이것도 중요한 존재의 법칙입니다. 결과는 원인을 닮습니다. 예들 들어 자식이 부모를 닮는 것도 닮기법칙에 따른 것입니다.

 

이처럼 피조물은 인과법칙과 닮기법칙이라는 두 가지 존재의 법칙에 의해 존재합니다. 여기에서 피조물은 원인자인 하나님을 닮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과 상반된 모습이 아니라 공통된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성경 로마서 1장 20절에도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고 했습니다. 피조물이 하나님을 닮았으므로 피조물을 통해 하나님의 속성을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작가에 비유하면, 작품 활동을 하던 작가가 고인(故人)이 되어 볼 수 없다 하더라도, 살아 있는 동안 남겨 놓은 작품이나 행적을 통해서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창조주인 하나님을 알려면 먼저 피조물의 공통점을 살펴봐야 합니다.

 

성경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은 6일이라는 기간을 놓고 6단계로 천지를 창조했습니다. 첫째 날에는 빛과 어둠을, 둘째 날에는 하늘과 땅과 바다를, 셋째 날에는 온갖 식물을, 넷째 날에는 해와 달과 별을, 다섯째 날에는 새와 물고기 등 온갖 짐승을 창조하시고, 여섯째 날에는 인간을 창조했습니다.

 

하나님이 마지막 날에 창조한 인간은 제일 차원 높은 존재입니다. 그리고 동물·식물·광물 순으로 점차 차원이 낮아지는데, 광물도 분자(分子)·원자(原子)·소립자(素粒子) 순으로 낮아집니다. 이러한 피조물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공통된 법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1) 양성과 음성

먼저 하나님을 가장 많이 닮은 인간을 놓고 보면, 사람은 반드시 남자 아니면 여자로 태어납니다.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에 차이가 있고 지역이나 인종은 다를지라도 사람은 반드시 남자나 여자로 태어난다는 것이 공통의 법칙입니다. 그것이 바로 양성(陽性)과 음성(陰性)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생식기를 보고 구분합니다.

 

지금까지 양(陽 : +)과 음(陰 : -)이라고 했는데 그냥 양과 음이 아니고 양성(陽性)과 음성(陰性)입니다. 그것은 남자와 여자의 성(생식기)을 중심으로 해서 남자는 양성, 여자는 음성이라고 규정한 것입니다. 사람은 이 양성과 음성을 통해 번식·발전하고 대(代)를 이어갑니다.

 

그런 인간이 하나님을 닮아서 창조되었는데 하나님은 인간을 본으로 해서 만물을 지었습니다. 실제로는 만물을 인간보다 먼저 창조했습니다. 어떻게 존재하지도 않는 인간을 본으로 한 만물의 창조가 가능한가? 그것은 하나님의 구상이 인간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창조하겠다는 선유조건(先有條件)을 세워놓고 먼저 만물을 창조하여 인간이 태어나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미리 조성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궁극적인 종착점은 인간에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피조세계는 인간을 닮도록 창조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동물도 인간의 남자와 여자에 해당하는 수컷과 암컷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수컷과 암컷이 없으면 번식이 있을 수 없습니다. 동물을 놓고 수컷과 암컷이라 한 것도 생식기를 중심으로 규정하는 말입니다.

식물도 마찬가지로 수술과 암술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식물도 역시 수술과 암술을 통해서 번식합니다.

광물계(鑛物界)도 양이온과 음이온이 있어 분자(分子)를 이룹니다. 원자(原子)도 양자와 전자로 인해 이루어지고, 소립자(素粒子)도 양성과 음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인간에서 광물질로 내려갈수록 정확하게 구분되지는 않지만, 모두가 양성과 음성이라는 두 가지의 성질을 지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양성과 음성이라는 양면성이 존재를 가능케 합니다. 그러니까 소립자 속에도 양성과 음성의 두 속성이 있습니다.

 

심지어 병균도 수컷과 암컷을 통해 번식합니다. 몸속에 있는 병균이 환경이 맞아서 그냥 번식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수컷과 암컷의 유언자가 만나 번식이 이루어집니다. 만물세계는 그 등급과 위치는 다를지언정 이처럼 양성과 음성이라는 공통된 법칙 아래 존재합니다. 이처럼 결과의 세계가 양성과 음성으로 되어 있는 것은 원인이 하나님, 즉 제1원인(第一原因)이 양성과 음성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2) 성상과 형상           

만물세계에는 또 다른 측면의 공통점도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마음과 몸이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볼 수 없고 몸은 볼 수 있습니다.

 

100평의 땅에 집을 하나 짓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집을 짓기 위해서는 먼저 구상을 합니다. 몇 평으로 지을지, 정문을 어디로 낼지, 방은 몇 개 만들지, 안방을 어디에다가 둘지, 부엌은 어디에 만들고 화장실은 어디에 둘 것인가? 등 필요에 따라 구상을 합니다. 구상한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구상한 것은 머릿속에 들어있는 하나의 상(像)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구상은 내적으로 어떤 꼴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도 일종의 꼴입니다.

 

구상을 그림으로 그려놓으면 설계도가 됩니다. 머릿속에 있는 상이라는 꼴은 지우지 않고도 수없이 변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설계도를 고치려면 지워야 합니다. 구상을 그려놓으면 하나의 설계도가 되고, 설계도에 따라 일정 시간과 기술과 재료를 투입하면 건물로 나타나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구상이 보이는 건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인간도 이처럼 보이지 않는 마음이 몸을 통해 표현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마음과 몸이 있는 것처럼 모든 피조만물에도 마음과 같은 내성(內性)이 있고 몸과 같은 외형(外形)이 있습니다. 피조만물은 인간을 본으로 해서 지었기 때문에 인간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동물에게는 인간의 마음과 같은 동물심(動物心)이 있고 그 동물심에 따라 움직이는 몸, 즉 동물체(動物體)가 있습니다.

 

식물도 식물심(植物心)이 있고 그 식물심에 의해서 움직이는 식물체(植物體)가 있습니다. 식물을 관찰해 보면 주광성(走光性)이나 굴광성(屈光性)에 따라 식물이 추구하는 방향대로 움직입니다. 나팔꽃의 경우 꽃씨는 매우 작습니다. 그러나 그 조그만 씨 속에 나팔꽃이 줄기로 휘감고, 꽃이 새벽에 피었다가 해가 떠오르면 지는 속성이 담겨 있습니다. 그 조그마한 씨 속에 생명이 들어있고 향기도 들어 있습니다. 동물이나 식물도 모두 마음과 몸에 해당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광물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분자에도 인간의 마음에 해당하는 내명성(內命性)이 있습니다. 양이온과 음이온을 결합하여 분자를 형성하도록 명령하고 감독하는 원인적인 요소가 바로 내명성입니다. 내명성에 따라서 수소(H) 두 분자와 산소(O) 한 분자가 만나서 물 분자(H2O)를 형성합니다. 분자를 쪼갠 원자에도 내명성이 있습니다. 내명성이 전자(電子)에게 양자(陽子)를 중심으로 돌도록 합니다. 원자를 쪼갠 소립자도 양성과 음성이 있으며 그것도 내명성에 의해서 움직입니다.

 

내명성은 에너지입니다. 인간의 육신이나 마음도 마지막에는 에너지로 존재합니다. 존재세계가 물질로 되어 있다고 규정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에너지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정신적인 분야라 할 수 있는 파동성(波動性) 에너지이고, 다른 하나는 물리적인 분야라 할 수 있는 입자성(粒子性) 에너지입니다. 파동성 에너지는 입자성 에너지가 물체가 될 수 있도록 명령합니다. ‘통일원리’에서는 이 파동성 에너지와 입자성 에너지의 작용을 내명성이라고 규정합니다. 파동성 에너지는 우주의 근본으로서, 그 근원은 하나님에게로 올라갑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만물세계는 무엇이든지 내성과 외형을 갖추고 있습니다. 내성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반드시 어떤 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이는 외형은 보이지 않는 내성을 닮았습니다. ‘통일원리’는 보이지 않는 내성을 성상(性相)이라 하고, 보이는 외형을 형상(形狀)이라 합니다. 이처럼 만물세계는 성상과 형상이라는 공통적인 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성상과 형상은 동전의 양면처럼 같은 존재의 상대적인 양면의 꼴을 말하는 것이므로 형상을 ‘제2의 성상’이라고도 합니다. 이 성상과 형상은 앞에서 논한 양성·음성과 구별되는 또 하나의 공통된 법칙입니다.

 

피조세계가 지닌 성상과 형상, 양성과 음성이라는 법칙은 과거·현재·미래에도 변하지 않는 영원한 법칙입니다. 이처럼 피조세계가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양면성, 즉 성상과 형상, 또는 양성과 음성을 각각 ‘이성성상(二性性相)’이라고 합니다. 이성성상은 같은 존재의 양면적인 꼴을 말하는 것이므로 성상과 형상도 이성성상이고, 양성과 음성도 이성성상입니다.

 

이성성상의 성상과 형상, 그리고 양성과 음성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가 있습니다. 성상과 형상은 서로 주체와 대상 안(내적)과 밖(외적), 원인과 결과, 종(종적)과 횡(횡적), 무형과 유형의 관계를 지니며, 양성과 음성은 서로 주체와 대상, 안(내적)과 밖(외적), 우와 좌의 관계를 지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