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해설] 창조원리(13) : 인간의 영혼과 사후세계에 관한 원리

2013. 1. 8. 10:55참사랑 영원까지/원리해설

살아서 숨을 쉬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는 반드시 죽음의 한 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죽음 그 다음의 세계가 어떤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혹자는 죽은 다음에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돌아가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너무 힘들고 괴로운 상태 즉 한계상황에 처하게 되면 죽음을 도피처로 생각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죽은 다음의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생명체든지 다음 단계를 위해서 미리알고 준비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어머니 복중생활은 지상 육신생활을 준비하는 기간이기 때문에 미리 준비하지 못할 경우 일생동안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지상생활이 죽은 다음의 세계를 준비하는 기간이라면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썩어 없어질 육신만을 위해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다면 얼마나 허망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죽음도 미리 알아야 준비하면서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후세계와 영혼의 문제를 바로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영혼은 존재하는가?' '있다면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며 영계의 모습은 어떤가?' 그리고 '지상과는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영계에 있는 영인들은 어떻게 음식을 준비하고 활동하고 있는가?' 하는 것 등 궁금한 문제들이 해결되기만 한다면 누구든지 그 세계를 목표로 삼고 진력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영인체와 무형실체세계의 실재성

먼저 모든 존재는 하나님을 닮아 이성성상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상적인 유형실체세계가 있다면 성상적인 무형실체세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인간의 마음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생심과 육심으로 구분합니다. 생심은 지,정,의 및 진, 선, 미와 사랑을 추구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육심은 동물의 본능과 같이 의, 식, 주, 성의 가치를 추구하는 마음입니다. 육심이 추구하는 것들은 흙으로 돌아갈 것들이지만 생심이 추구하는 것들은 흙으로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요소들은 흙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원소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사랑에 원소가 있습니까? 만약에 사랑에 원소가 있다면 못된 사람들을 잡아다가 사랑주사만 한 대 놓으면 위대한 인간으로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영적가치들은 원소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이나 자비나 미움 등도 원소가 없습니다. 따라서 생심이 추구하는 가치의 세계가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인식의 종류를 통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오관으로 인식합니다. 오관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육신에 있는 육적인 오관이 있고 영인체에 있는 영적오관이 있습니다. 영적인 오관이 열릴 경우 영적으로 영적인 세계를 보게 됩니다. 영적으로 듣고, 보고, 말하고, 맛보고,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나 석가모니 같은 성인들의 말씀이나 행적을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지금도 많은 영적인 현상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심령과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무심코 찍은 가족사진에 죽은 가족의 얼굴이 찍혀 깜짝 놀란 나머지 언론에 알려 전 세계에 심령사진으로 유포되기도 하였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교회에서는 기도를 통한 환상, 몽시, 계시, 방언의 역사가 있고 신령한 사람들은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죽은 조상을 불러내 문답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가 영적인 현상들입니다.

또한 성서를 통해서도 영계가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2/7에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라고 하셨고 전도서12/7에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고전 15/44에 사도바울은 "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 즉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고 했습니다.

또한 고전12/12에 사도바울은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가 셋째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니라" 고 하였습니다. 셋째하늘은 바로 영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유형실체세계와 무형실체세계

그 영계에 대해서 통일원리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습니다.
피조세계는 하나님의 이성성상을 닮은 인간을 본으로 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에, 모든 존재는 마음과 몸으로 된 인간의 기본형을 닮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피조세계에는 인간의 몸과 같은 유형실체세계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의 주체로서의 인간의 마음과 같은 무형실체세계가 또 있습니다. 무형실체세계라고 하는 것은 육신의 생리적인 오관으로는 감각할 수 없고 영적 오관으로만 감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체험에 의하면, 이 무형세계는 영적인 오관에 의하여 유형세계와 꼭 같이 실감할 수 있는 실재세계인 바, 이 유형, 무형의 두 실체세계를 합친 것을 우리는 천주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마음과의 관계가 없이는 몸의 행동이 있을 수 없는 것같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없이는 창조본연의 인간의 행동이 있을 수 없으며, 따라서 무형세계와의 관계가 없이는 유형세계가 창조본연의 가치를 드러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알지 못하고는 그 사람의 인격을 알 수 없듯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는 인생의 근본 의의를 알 수 없으며, 무형세계가 어떻게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을 모르고는, 유형세계가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완전히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무형실체세계의 그림자와 같은 세계

그러므로
무형세계는 주체의 세계요 유형세계는 대상의세계로서, 후자는 전자의 그림자와 같은 것입니다(히브리서 8장 5절).

화창한 날씨에 길을 걷다보면 그림자가 보입니다. 그 그림자와 같은 세계가 유형세계라면 실체와 같은 무형실체세계가 얼마나 아름다운 세계일까요? 영적체험을 한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입술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세계라고 합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유형세계에서 생활하던 인간이 육신을 벗으면 그 영인체는 바로 무형세계에 가서 영주하도록 창조하신 것입니다.

인간은 두 피조세계의 주관자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인간을 피조세계의 주관자로 창조하셨습니다(창세기 1장 28절). 피조세계는 하나님에 대한 내적인 감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세계를 직접 주관하지 않으시고, 이 세계에 대한 감성을 갖춘 인간을 창조하시어 그로 하여금 피조세계를 직접 주관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을 창조하심에 있어서 유형세계를 느껴 그것을 주관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그것과 같은 요소인 물과 흙과 공기로 육신을 창조하시고 무형세계를 느껴 그것을 주관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그것과 같은 영적인 요소로써 영인체를 창조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질과 요소가 같지 않으면 주관할 수 없습니다. 마음으로만 책장을 넘길 수 없는 것은 마음과 책이 요소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책과 같은 요소로 되어 있는 손가락으로는 책장을 마음대로 넘기고 주관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육신으로는 유형세계를 주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서에 보면 변화산상에서 예수님 앞에 이미 1,600여년전에 죽었던 모세와 900여년전에 죽었던 엘리야가 나타났었는데(마태복음 17장 3절), 이들은 모두 그들의 영인체들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유형세계를 주관할 수 있는 육신과 무형세계를 주관할 수 있는 영인체로 구성된 인간은 유형세계와 무형세계를 모두 주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두 피조세계의 매개체요, 화동의 중심체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인간을 피조세계의 매개체요 또한 화동의 중심체로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의 육신과 영인체가 수수작용에 의하여 합성일체화함으로써 하나님의 실체대상이 될 때, 유형, 무형 두 세계도 또한 그 인간을 중심하고 수수작용을 일으키어 합성일체화함으로써 하나님의 대상세계가 됩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두 세계의 매개체요 또한 화동의 중심체가 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마치 두 음차를 공명시키는데 있어서의 공기와 같은 것입니다. 인간은 또 이와 같이 무형세계(영계)와 통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마치 라디오나 텔레비젼과도 같아서 영계의 사실을 그대로 반영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영계의 사실을 보고 듣기는 커녕 영계의 실존조차 알지 못하는 무지가운데 떨어졌습니다. 따라서 영적으로는 귀머거리나 봉사와 같습니다. 병들어 육체가 죽어가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육신의 감감만 가지고 있는 것처럼 양심의 가책만이 희미하게 느끼는 인간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통해 두 피조세계의 매개체요 화동의 중심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은 천주를 총합한 실체상입니다

세째로, 하나님은 인간을 천주를 총합한 실체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나중에 창조하실 인간의 성상과 형상을 실체적으로 전개하시어 먼저 피조세계를 창조하셨습니다. 따라서 영인체의 성상과 형상의 실체적인 전개로서 무형세계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영인체는 무형세계를 총합한 실체상입니다.

그리고 육신의 성상과 형상의 실체적인 전개로서 유형세계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육신은 유형세계를 총합한 실체상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천주를 총합한 실체상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소우주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되어 피조세계는 자기를 주관해 줄 수 있는 주인을 잃어버렸으므로, 로마서 8장 19절에 피조물은 하나님의 아들들(복귀된 창조본연의 인간)이 나타나기를 고대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화동의 중심체인 인간이 타락되어 유형 무형 두 세계의 수수작용이 끊어짐으로써 그것들이 일체를 이루지 못하고 분리되었기 때문에, 로마서 8장 22절에는 피조물이 탄식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인체와 육신을 가진 완성한 아담으로 오셨던 분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천주를 총합한 실체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두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고린도 전서 15장 27절). 따라서 얼마나 고귀한 가치를 지니신 분인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네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마태복음16/26)라고 하셨습니다.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은 타락인간이 그를 믿어 그와 일체가 됨으로써 그와 같이 완성한 인간이 되게 하시기 위하여 오셨기 때문에 구주이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두 피조세계의 주관주요, 매개체요, 천주의 총합실체상인 인간의 위치와 가치를 바로 알아서 메시아를 통해 구원함을 받아 창조본연의 가치를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하나님이 탄식(창세기6/6)하고, 주변에 가까운 사람들도 탄식하고, 만물마저 탄식(로마서8/22)할만한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불쌍하겠습니까? 더 나아가서 한줌의 흙만도 못하고 쓰레기만도 못한 삶을 살다가 어느 하늘아래서 쓰러져 죽는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생이겠습니까?

따라서 통일원리를 공부하고 원리적인 실천생활을 통해서 창조본연의 자아를 복귀하는 길을 찾아 나가야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