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해설] 창조원리(14) : 자신이 결정하는 천국과 지옥

2013. 1. 8. 10:54참사랑 영원까지/원리해설

모든 존재는 이성성상으로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도 성상적인 영인체가 있고 형상적인 육신이 있습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건강한 육신을 가진 사람이 육적오관으로 자연계를 자연스럽게 이해하듯이 영적오관으로 영계와 영인체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이해하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하나님을 모르는 것은 물론 인간자신에 대한 무지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타락한 인간은 내 속에 영인체가 있는지 조차 모르는 심각한 무지의 자리에 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중요합니다. 따라서 먼저 육신의 구성과 그의 기능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성성상으로 본 육신의 구성과 그의 기능

 

통일원리에서는 인간을 육신과 영인체로 구분합니다. 그리고 모든 구성과 기능을 이성성상 원리로 정리합니다. 따라서 인간의 육신은 육심(주체)과 육체(대상)의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육심은 육신의 성상적인 부분으로 육체로 하여금 그 생존과 번식과 보호 등을 위한 생리적인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작용부분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동물에 있어서의 본능성은 바로 그들의 육심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에게도 본능적인 요소들은 육심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의식주성(衣食住性)에 대한 욕망이 육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육체는 육심의 형상적인 부분입니다. 따라서 육심과 육체의 관계는 성상과 형상 무형과 유형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육신이 원만히 성장하려면 양성의 영양소인 무형의 공기와 광선을 흡수하고 음성의 영양소인 유형의 물질을 만물로부터 섭취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보다 더 주체적인 영양소는 양성의 영양소인 무형의 공기와 광선입니다. 음성의 영양소인 유형의 물질 즉 음식물은 일주일이상 금식하면서 기도하면서 정성을 드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양성의 영양소인 공기는 단 한 시간도 호흡을 중단할 수 없습니다.

이는 양성의 영양소가 보다 더 주체적인 영양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음식을 먹고 사느냐 하는 것보다 어떤 공기를 마시고 사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양성의 영양소와 음성의 영양소가 혈액을 중심하고 원활한 수수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인 단 1분만이라도 심장의 박동소리가 멈추고 동맥과 정맥의 원활한 수수작용 운동이 멈추어 버린다면 육신은  곧바로 죽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영양소를 흡수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원활한 수수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육신을 통해서 영인체가 선화 혹은 악화합니다

 

육신에 가장 중요한 역할은 영원한 영인체의 성장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육신이 어떤 행동을 하느냐 하는 것이 영인체에 그대로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육신이 선을 행하면 영인체는 선화하고 육신이 악을 행하면 영인체 역시 악화됩니다.

 

그 이유는 육신으로부터 영인체에게 어떠한 요소를 돌려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육신으로부터 영인체에 주어지는 요소를 통일원리에서는 생력요소라고 합니다. 우리가 평소의 생활에 있어서 육신이 선한 행동을 할 때는 마음이 기쁘고 악한 행동을 할 때는 마음이 언짢은 것을 경험 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육신이 하고 있는 행동의 선악에 따라 그에 적응하여 생기는 생력요소가 그대로 영인체에 돌아가는 증거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선한 영인체로 완성해 가기 위해서는 일상생활에서 선한 생력요소가 영인체에 돌아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일 같이 선한 생력요소가 육신생활로부터 일어날 수 있는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든 인간관계 생활적인 요소에서 생력요소가 울어나는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사람은 어떤 사람은 항상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동기 가운데 하나가 육신의 삶에 있다는 것입니다. 선한 생활을 하면서 생력요소를 받아 영인체에 전달하는 생활을 하다 보니 항상 기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똑같은 환경에서 살아가면서도 항상 기분 나뿐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는 육신생활을 통해서 악한 생력요소를 영인체에 돌려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자기의 마음을 관찰해야할 것입니다. 나의 생력요소가 악한 생력요소인가? 선한 생력요소인가? 하는 것을 판단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똑 같은 시간에 똑같은 장소에서 단풍구경을 하면서도 선한 생력요소를 영인체에 돌려보내면서 한없는 기쁨에 넘치는 관광객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악한 생력요소를 영인체에 돌려보내면서 원망 불평 탄식을 하다가 싸움질 까지 하고 돌아와 다시는 안가겠다고 나쁜성질을 부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언짢은 생활을 하는 사람은 악한 생력요소를 영인체에게 돌려주는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떤 상황에서든지 항상 선한 생력요소가 울어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생활을 해야할 것입니다.

 

이성성상으로 본 영인체의 구성과 그의 기능

 

다음에는 영인체의 구성과 그의 기능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인간의 영인체는 육신의 주체로 창조되었습니다. 따라서 영감으로만 감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육적인 감각만으로 사리를 판단해 오던 타락한 인간들은 영인체를 감득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자신 속에 영인체가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던 것입니다.

 

또한 영인체를 통해서만이 하나님과 직접 통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체휼신앙을 하려는 사람은 영인체를 통한 영적오관을 통해서 하나님과 통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과 직접 통하기 위한 체휼신앙을 해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영인체는 천사나 무형세계를 주관할 수 있는 무형실체로서의 실존체인 것입니다.

 

영인체의 모양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그렇다면 영인체의 모양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영인체의 모양은 그의 육신과 동일한 모습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영인체 모습이 궁금한 사람은 자기의 육신을 보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영인체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영생의 가치를 가진 영인체입니다.

 

그러므로 영인체가 육신을 낡은 옷처럼 벗어 버린 후에는 무형세계(영계)에 가서 영원히 생존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영존하기를 염원하는 것은 그 자체 내에 이와 같이 영존성을 지닌 영인체가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영인체는 생심과 영체의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인체도 생심(주체)과 영체(대상)의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성성상은 모든 것을 해결하는 만능열쇠와 같은 원리입니다. 생심은 육심과 구별이 됩니다. 육심은 의식주성(衣食住性)에 대한 욕망을 추구하는 마음부분이라면 생심은 정지의애(情知意愛), 미진선성(美眞善聖)의 가치를 추구하는 마음부분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생심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영인체의 중심부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생심의 존재를 깨달아서 생심이 추구하는 욕망을 검토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휼하는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목표는 영인체를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인체의 성장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육신이 양성영양소와 음성영양소가 혈액을 중심하고 원활한 수수작용을 통해서 성장하듯이 영인체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소(양성)와 육신으로부터 오는 생력요소(음성)의 두 요소가 원활한 수수작용을 하는 가운데서 성장합니다.

 

그리고 영인체는 육신으로부터 생력요소를 받는 반면에 육신에게 돌려보내는 요소도 있는 데 통일원리는 이것을 생령요소라고 합니다. 인간이 기도생활을 통해서 신령에 접함으로써 무한한 기쁨과 새로운 힘을 얻어서 고질이 물러가는 등 그 육신에 많은 변화를 일으키게 되는데, 이것은 그 육신이 영인체로부터 생령요소를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통해서 새로운 힘을 얻으려고 간절한 기도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하는 사람이라면 항상 하늘로부터 오는 생령요소의 효력과 가치를 경험하여 늘 간구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건강한 사람이 맑은 공기와 정갈하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추구하듯이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생령요소를 영적인 공기와 영양소로 생각하고 마음속에 충만하도록 받아들이는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육신과 영인체의 관계는 나무와 열매와 같습니다

 

또한 영인체는 육신을 터로 하여서만 성장합니다. 그러므로 영인체와 육신과의 관계는 마치 열매와 나무와의 관계와 같습니다. 생심의 요구대로 육심이 호응하여 생심이 지향하는 목적을 따라 육신이 움직이게 되면 육신은 영인체로부터 생령요소를 받아 선하게 되고, 그에 따라 육신은 좋은 생력요소를 영인체에 다시 돌려 줄 수 있게 되어, 영인체는 선을 위한 정상적인 성장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통일원리를 통해서 영인체와 육신의 상대적 관계를 확실히 깨달은 사람들은 자기자신의 영인체가 선을 위한 정상적인 성장을 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늘 원망 불평 탄식 속에 사는 성도라면 그는 악한 영적요소를 육신에게 돌려주게 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선한 육신생활을 통해서 생력요소를 얻으려고 해도 악한 생력요소만 영인체에게 돌려보낼 뿐입니다.

 

따라서 그런 사람은 먼저 진리를 배워야 합니다. 진리란 생심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진리를 통하여 생심이 요구하는 것을 깨달아 그대로 실천함으로써 인간 책임분담을 완수해야만 생령요소와 생력요소가 서로 선의 목적을 위한 완전한 수수작용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生靈要素와 生力要素는 각각 성상적인 것과 형상적인 것의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악인에 있어서도 그의 본심이 선을 지향하고 있는 것은 그 생령요소가 항상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선한 생활을 하지 않는 한 그 요소도 육신을 선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되지 못하며, 따라서 생력요소와의 사이에 있어 올바른 수수작용을 할 수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생령요소를 받은 사람은 반드시 선한 생활을 하여 생력요소를 영인체에 돌리는 생활을 해야할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마음에 얻은 은혜는 받드시 생활권에서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영인체의 완성도 질서적인 3단계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와 같이 영인체는 어디까지나 지상의 육신생활에서만 완성할 수 있습니다.

영인체는 육신을 터로 하여 생심을 중심하고 창조원리에 의한 질서적 3기간을 거쳐서 성장하여 완성하게 되는데, 소생기의 영인체를 영형체라 하고, 장성기의 영인체를 생명체라 하며, 완성기의 영인체를 생령체라고 합니다.

 

완성기의 영인체는 어떻게 무형세계와 교통하는가?

 

여기에서 완성기의 영인체인 생령체는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을 말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중심하고 영인체와 육신이 완전한 수수작용을 하여 합성일체화함으로써 사위기대를 완성한 영인체는 생령체가 됩니다. 이러한 영인체는 무형세계의 모든 사실들을 그대로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영인체에 느껴지는 모든 영적인 사실들은 그대로 육신에 공명되어 생리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인간은 모든 영적인 사실들을 육신의 오관으로 느껴서 알게 됩니다.

 

생령체를 이룬 인간들이 지상천국을 이루고 살다가 육신을 벗고 영인으로 가서 사는 곳이 천상천국입니다. 그러므로 지상천국이 먼저 이루어진 후에야 천상천국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성도들이 지상생활에서는 괴로움과 죄악에 빠져 살다가 육신을 벗고는 천당에 가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육신을 쓰고 사는 동안 생령체를 이루어 지상천국 생활을 해야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막연히 천국을 기다리는 생활이 아니라 지금 현실생활에서 천국을 이루는 생활입니다.

 

악한 영인체의 속죄도 육신생활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영인체의 모든 감성도 육신생활 중 육신과의 상대적인 관계에 의하여 육성되는 것이므로, 인간은 지상에서 완성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체휼해야만 그 영인체도 육신을 벗은 후에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체휼할 수 있게 됩니다.

 

이와 같이 영인체의 모든 소성은 육신을 쓰고 있는 동안에 형성되기 때문에 타락인간에 있어서 영인체가 악하게 되는 것은 육신생활의 범죄행위로 말미암은 것이며, 마찬가지로 그 영인체가 선화도 또한 육신생활의 속죄로 인하여서만 이루어집니다.

 

죄악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육신을 쓰고 지상에 오셔야 했던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상에서 선한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며, 따라서 구원섭리의 제1차적인 목적이 지상에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천국문의 열쇠를 지상의 베드로에게 주셨고(마태복음 16장 19절), 땅에서매고 푸는대로 하늘에서도 매이고 풀린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마태복음 18장 18절).

 

천국과 지옥은 영인체 자신이 결정합니다

 

천국이든 지옥이든 영인체가 그 곳에 가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영인체 자신이 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옥은 한번밖에 없는 지상생활을 잘못 살아온 자기 자신에 대해 한없이 후회하고 탄식하는 사람들이 가는 세상입니다. '내가 왜 그랬을까!' '내가 왜 그 때 신앙을 제대로 하지 않았을까!' '내가 왜 그 때 원리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 '내가 왜 그 때 열심히 전도하지 않았을까!' 등등 까! 까! 까!---- 탄식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죽을 때 까- 까- 울어대는 까마귀 때가 몰려왔는지도 모릅니다.

 

천국과 지옥은 인간이 매일 매일의 육신생활로 결정된 영인체의 내용에 따라서 스스로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지옥가는 길을 피하고 천국가는 길을 교육할 뿐입니다. 그 가르침을 따르느냐 따르지 않느냐 하는 것은 각자의 책임분담인 것입니다.

 

그러나 한번 지나간 일생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일회적인 일생을 촌음도 아끼지 않고 열심히 영인체의 완성을 위해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영인체가 스스로 천국이든 지옥이든 선택하는 이유는 인간이 본래 완성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호흡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범죄행위로 인하여 생긴 허물로 말미암아 이 사랑을 완전히 호흡할 수 없게 된 영인체는 완전한 사랑의 주체되시는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도리어 고통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영인체는 하나님의 사랑과 먼 거리에 있는 지옥을 자진하여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아담에게 "네가 어디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음으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세기 3/9-10) 라고 하였듯이  스스로 하체를 가리고 숨은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본래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이루어진 세계는 사탄도 죄악도 지옥도 없는 세계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 속에는 천국만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죄 때문에 인간은 그의 본래적인 가치를 상실한 패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폐물된 인간을 수용하는 곳이 지옥인 것입니다.

 

그리고 영인체는 육신을 터로 하여서만 생장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영인체의 번식도 어디까지나 육신 생활에 의한 육신의 번식과 함께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육체는 아주 소중한 가치가 있습니다. 영인체 번식의 터전이요 만물주관의 터전인 동시에 영인체 성장의 터전이 되는 고귀한 가치의 육신을 잘 관리하기 위하여 영인체에서는 언제나 생령요소를 공급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육신으로부터도 선한 생력요소를 받아 영인체가 선화되어 생령체로 완성되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생심과 육심과의 관계로 본 인간의 마음

 

영인체의 완성은 자연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 이루어집니다. 인간책임분담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마음생활을 잘 해야 합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책임의지가 없이 선한 생활의 실적을 세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인체와 육신의 마음부분인 생심과 육심과의 관계는 성상과 형상과의 관계와 같습니다. 따라서 그것들이 하나님을 중심하고 수수작용을 하여 합성일체화하면, 영인체와 육신을 합성일체화하게 하여 창조목적을 지향하게 하는 하나의 작용체를 이루게 되는 데 이것이 바로 인간의 마음입니다.

 

인간이 타락되어 하나님을 모르게 됨에 따라 선의 절대적인 기준도 알지 못하게 되었으나, 창조된 본성에 의하여 인간의 마음은 항상 자기가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니, 이것을 양심이라고 합니다. 이 양심은 부모보다, 스승보다, 하나님보다 더 가까운 자리에서 우리를 선의 길로 인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인간은 선의 절대적인 기준을 알지 못하여 양심의 절대적인 기준도 세울 수 없기 때문에, 선의 기준을 달리 함에 따라서 양심의 기준도 달라지게 되어, 양심을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도 흔히 투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선을 지향하는 마음의 성상적인 부분을 본심이라하고, 그 형상적인 부분을 양심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그 무지에 의하여 창조본연의 것과 그 기준을 달리한 선을 세우게 될 때에도 양심은 그 선을 지향하지만, 본심은 이에 반발하여 양심을 그 본심이 지향하는 곳으로 돌이키도록 작용합니다.

 

사탄의 구애를 당하고 있는 생심과 육심이 수수작용을 하여 합성일체화하면, 인간으로 하여금 악을 지향하게 하는 또 하나의 작용체를 이루는 것이니, 이것을 우리는 사심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심이나 양심은 이 사심에 반발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사탄을 분립하고 하나님을 상대하게 함으로써, 악을 물리치고 선을 지향하게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