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해설] 타락론(3) : 타락방지를 위해 계명을 주신 하나님

2013. 1. 8. 10:51참사랑 영원까지/원리해설

통일원리 타락론 중에서 제3절 사랑의 힘과 원리의 힘 및 믿음을 위한 계명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사랑의 힘과 원리의 힘으로 본 타락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말씀으로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성경에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1장 1-3)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모든 존재는 하나님의 말씀 즉 창조원리를 중심하고 생존 번식 활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도 원리로 창조되어 원리궤도(原理軌道)에 의하여 생존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육신은 하나님이 지으신 목적대로 살아갈 때 만족과 평안을 이룰 수 있고 마음도 말씀 즉 진리 안에서 살아갈 때 자유롭고 편안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마음  속에서는 끊임없이 원리의 힘이 솟아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즉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원리의 힘 그 자체가 인간을 원리궤도에서 탈선케 하여 타락시킬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레일이나 기관에 고장이 없는 한, 기차가 스스로 궤도를 탈선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 기차도 그가 달리는 힘보다도 더욱 강한 외력(外力)이 그와 방향을 달리하여 부딪쳐 올 때는 탈선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그런 사건이 있었습니다. 2007년 2월 28일 신문보도에 의하면 중국 서북부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에서 27일 새벽 강력한 황사폭풍 때문에 달리던 열차가 탈선하는 사고가 발생해 승객 4명이 숨지고 백여명이 중경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승객들에 따르면 사고 열차가 투르판 역을 출발해 20여 킬로미터쯤 달리고 있을 때 갑자기 강한 모래바람이 불어 열차의 창문이 깨졌으며 승객들이 깨진 창을 막으려는 순간 객차가 뒤집혔다고 합니다. 우루무치 철도국측은 사고 발생 당시 해당 지역에는 초속 40미터가 넘는 강풍과 황사폭풍이 불었다고 합니다. 초속 40미터가 넘는 강풍이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를 탈선시킨 것입니다.


이처럼 기차가 레일 위를 달리고자 하는 힘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힘 보다 더 강한 외력이 방향을 달리하여 부딪쳐 오게 될 때에는 탈선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도 그 자신을 성장케 하는 원리의 힘보다도 더욱 강한 그 어떠한 힘이, 그와 목적을 달리하여 부딪쳐 올 때는 타락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담과 해와가 원리의 힘으로 살고자 하는 힘보다도 더욱 강한 힘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사랑의 힘입니다. 그러므로 미완성기(未完成期)에 있어서의 인간은 그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으로 인하여 타락될 가능성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왜 원리(原理)의 힘보다도 사랑의 힘이 더 강해서, 미완성기에 있는 인간이 목적을 달리한 사랑의 힘에 부딪칠 때 타락될 수도 있게 되었을까요?


첫째로 사랑은 행복과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창조원리(創造原理)에 의하면, 하나님의 사랑은 삼대상 사랑에 의하여 삼대상목적(三對象目的)을 완성한 사위기대(四位基臺)의 주체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이 없이는 인간 창조의 목적인 사위기대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므로, 사랑은 인간의 행복과 생명의 근원이 됩니다.


따라서 사랑이 없으면 사위기대도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4위가 있다고 할지라도 사랑이 없는 4위는 이미 사위기대가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삼대상목적도 삼대상을 향한 사랑이 대상을 향할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랑의 힘이 없으면 생명도 행복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힘은 목숨보다 강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생명을 걸고 사랑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요즘도 신문에 보면 부모의 반대로 사랑을 이루지 못한 젊은 남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목숨보다 사랑이 더 귀한 것을 나타내는 증거입니다.


둘째 원리로 창조하시고 주관은 사랑으로 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원리로 창조된 인간을 사랑으로 주관하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이 사랑답기 위해서는, 사랑의 힘은 원리의 힘보다도 더 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일 사랑의 힘이 원리의 힘보다 약하다면, 하나님은 원리로써 창조된 인간을 사랑으로 주관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보다도 원리를 더 추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진리(眞理)로써 바로 세워가지고, 사랑으로써 구원(救援)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돌아온 탕자의 비유가 주는 교훈


누가 복음 15장 11절부터 24절까지의 예수님 말씀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는데 그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아버지, 재산 가운데서 내게 돌아올 몫을 내게 주십시오' 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살림을 두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며칠 뒤에 작은 아들은 제 것을 다 챙겨서 먼 지방으로 가서, 거기서 방탕하게 살면서, 그 재산을 낭비하였다. 그가 모든 것을 탕진했을 때에, 그 지방에 크게 흉년이 들어서, 그는 아주 궁핍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그 지방의 주민 가운데 한 사람을 찾아가서, 몸을 의탁하였다. 그 사람은 그를 들로 보내서 돼지를 치게 하였다. 그는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라도 좀 먹고 배를 채우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그에게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제서야 그는 제정신이 들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꾼들에게는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에게 돌아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 하겠다.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나는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으니, 나를 품꾼의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그는 일어나서,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먼 거리에 있는데, 그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서, 달려가 그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말하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꺼내서, 그에게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내다가 잡아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래서 그들은 잔치를 벌였다."고 하였습니다.

만약에 원리의 힘이 사랑의 힘보다 강하였다면 돌아온 탕자는 저주를 받든지 심판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힘이 더 강하기 때문에 돌아온 탕자에게 용서와 사랑이 함께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섭리가 가능한 이유는 바로 이 사랑의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랑의 힘으로 타락한 인간들을 영원히 심판해 지옥에 던져 버리지 못하시고 아무도 멸망치 않고 모두 다 구원하시기 위해 눈물겨운 복귀섭리를 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뜻길을 가는 모든 원리들은 인간관계에서 나에게 손해를 주고 큰 피해를 준 어떤 사람이 용서를 빌고 찾아오게 되었을 때, 하나님 입장에서 원리와 법도를 놓고 따져서 심판하기보다 사랑의 힘으로 용서하게 될 때에 세상은 점점 밝고 환한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언제나 창조는 원리로 주관은 사랑으로라는 원리를 명심해야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창조의 길을 가는 우리들은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원리로 창조하고 주관은 사랑으로 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이 올바로 서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원리와 계명을 교육하는 기반위에서 용서와 사랑이 넘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바로서기 위해서도 철저하게 원리와 법도를 중심하고 교육하면서 그 기반위에 용서와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원리와 법도만 강조하고 용서와 사랑이 없는 가정이나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요즘 가정이나 교회의 문제를 세상법정까지 끌고 가서 원수시하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절대로 타락하지 않도록 믿음을 위한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에게 따먹지 말라는 믿음을 위한 계명(誡命)을 주신 목적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사랑의 힘이 원리의 힘보다 강하므로, 아직 미완성기에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사랑의 주관을 받을 수 없는 아담과 해와가 천사장의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에 의하여 타락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천사장의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천사를 상대하지 않고 하나님과만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수수작용을 하였더라면, 그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은 작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결코 타락되지 않았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 계명을 지키지 않고 천사장과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그와 수수작용을 하였기 때문에, 그 불륜(不倫)한 사랑의 힘은 그들을 탈선케 하였던 것입니다.

 

미완성기에 있는 모든 인간에게 믿음을 위한 계명이 필요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미완성기에 인간들은 믿음을 위한 계명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타락론을 통해서 모든 인간들에게 믿음을 위한 계명을 절대적으로 소유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에덴동산에서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10대 청소년들이 비원리적 사랑의 힘으로 유혹하는 세상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타락론을 교육시켜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위한 계명>을 생명시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달콤한 비원리적 사랑의 힘으로 유혹한다고 하더라도 상대기준을 맺어 수수작용을 하지 말도록 교육해야할 것입니다.

 

믿음을 위한 계명을 주신 또 하나의 목적


미완성기(未完成期)에 있었던 인간에게 이러한 계명을 주셨던 것은, 단순히 그들로 하여금 타락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서만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그 자신의 책임분담(責任分擔)으로서, 그 말씀을 믿고 스스로 완성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성(創造性)을 닮게 하여 만물에 대한 주관성을 가지게 하시기 위함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계명을 주신 것은 인간을 족쇄에 채워 구속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완성시키기 위한 축복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성장기에 있는 어린아이들에게는 "하라" 혹은 "말라"의 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교사의 매를 맞으면서도 범죄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 성공한 사람들은 철이 들고 나면 <사랑의 매>라고 고마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은 교육이 아니라 방임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성장수준에 맞게 인간의 도리를 가르쳐 그 것을 책임 하도록 하는 교육이 필요한 것입니다.


학교현장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대한 신문보도를 보면 우리나라의 미래가 정말 걱정됩니다. 그리고 참 세상 많이 잘못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에는 교사의 어린이 폭행에 문제를 제기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습니다마는 요즘은 중고등학생들이 교사를 폭행하는 사건이 종종 보도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초등학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인간으로 완성해 가는 과정가운데 윤리와 도덕을 가르치게 되고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책임을 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교육의 기본인 것입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교사를 폭행한다는 것 자체는 교실의 붕괴요 교육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는 계명을 천사장에게는 주시지 않고 인간에게 주셨을까요? 하나님의 자녀의 입장에서 천사까지도 주관해야 할 인간의 창조원리적인 자격과 위신을 세워 주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타락론 강의를 통해서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는 에덴동산의 계명을 오늘의 계명으로, 지금 나의 계명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에덴동산의 아담과 해와의 입장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천사장(사탄)의 입장에서 계명을 받지도 않았고 계명을 지키려는 의지가 없는, 오직 사랑을 유린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유혹하는 세력들을 극복하고 승리해야 할 것입니다.

 

믿음을 위한 계명은 언제까지 필요할까요?


하나님이 인간조상에게 따먹지 말라 고 하셨던 믿음을 위한 계명(誡命)은 언제까지 필요할까요?
하나님의 제2축복(第二祝福)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부부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를 낳아 그 자녀가 번성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에 의한 직접적인 주관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완성하면 따먹는 것은 원리적인 것으로서 허용되도록 창조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힘은 원리의 힘보다 더욱 강하기 때문에, 아담과 해와가 완성되어 하나님을 중심하고 부부를 이룸으로써, 그 절대적인 사랑의 힘에 의하여 하나님의 직접적인 주관을 받게 되면, 이 절대적인 부부의 사랑의 힘을 끊을 자나 그것을 끊을 힘은 없기 때문에 그들은 절대로 타락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절대성의 기반위에 절대적인 사랑의 힘으로 심정일체를 이룬 아담과 해와가 되었더라면 더 이상 계명을 지키라고 권고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참사랑의 부부로 완성한 이후에는 인간보다도 저급한 천사장(天使長)의 사랑의 힘으로써는 도저히 하나님을 중심한 그들 부부간의 사랑을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은 미완성기에서만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따먹지 말라하신 하나님의 계명은 아담과 해와가 미완성기에 있을 때에 한해서만 필요했던 것이다. 이는 구약의 십계명이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님께 필요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는 등의 계명이 더 이상 필요 없는 것처럼, 율법 말씀을 절대적으로 완성한 사람에게는 더 이상 율법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심각한 불륜의 사회현상에서도 절대사랑으로 하나 된 부부는 탈선의 염려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부의 사랑이 금이 가거나, 사랑의 급이 낮아질 때에는 천박한 사랑의 유혹에도 탈선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오늘날 중년 남성과 여성들의 탈선이 심각한 사회현상이 되는 이유도 저급한 사랑의 힘으로 묶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간조상의 죄의 뿌리가 무엇인지? 인간완성을 위한 절대계명(인간책임분담)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반드시 타락론을 알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계명을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절대계명으로 받아들이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을 구하는 생명의 말씀인 것입니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타락론을 교육하여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해와에게 주신 하늘의 계명이 오늘날에도 절대유효하다는 사실을 알게 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일생과 영생의 개념을 확실히 알게 함으로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을 극복할 수 있는 강력한 원리의 힘과 계명의 힘을 소유하도록 지도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