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해설] 타락론(6) : 선신과 악신의 역사를 구별하는 신앙생활

2013. 1. 8. 10:46참사랑 영원까지/원리해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을 중심하고 영계에는 악신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악신들이 쉬지 않고 활동하게 됨으로 지상에 육신을 쓰고 있는 인간들을 중심하고 죄를 짓는 생활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한 생활을 추구하는 신앙자들은 먼저 내 마음을 중심하고 선신이 역사하고 있는가 혹은 악신이 역사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서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악신이 역사하는 사람이 되어 하늘의 천도를 거역하는 죄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가인은 악신의 역사를 힘입어 동생인 아벨을 때려죽였습니다.


가인이 스스로의 마음을 살폈더라면 악신이 역사하는 자신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가인이 시기 질투 교만 혈기를 가지고 동생을 죽이려하는 마음이 바로 악신의 역사라는 것을 구별하여 스스로를 분립하고자 하는 마음만 가졌더라면 복귀섭리는 연장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부름받은 중심인물들이 자신들의 행위가 선신이 역사하는 것인지 악신이 역사하는 것인지를 구분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서 항상 분립하는 마음생활을 했더라면 섭리적인 실수를 자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초림 메시아 예수님이 오셨을 때에도 당시에 구약성도들이 자신들의 마음가짐과 행위를 중심하고 선신의 역사인가 악신의 역사인가를 구분하는 마음생활을 할 수 있었다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행위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의 재판을 받을 때 모여든 유대인들은 빌라도와 빌라도 부인만도 못한 분별력으로 악신의 도구가 되어 예수님을 죽이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빌라도 부인은 빌라도에게 사람을 보내어 꿈 이야기를 하면서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말라고 부탁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민란이 일어날까 두려워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줄 수밖에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주님 재세시에 수제자인 베드로도 그의 마음가짐과 행위가 악신의 역사였다는 것을 깨닫는 삶을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악신의 역사로 주님을 세 번 불신한 베드로

주님께서는 베드로에서 “사탄아 물러가라,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복음 16/23) 라고 하시면서 그의 속  마음에 악신이 역사하고 있는 것을 지적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기막힌 지적을 받았으면서도 계속해서 악신의 역사를 함으로 주님을 세 번이나 불신하는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뜻길을 걸어가는 신앙자들에게 있어서는 선신의 역사와 악신의 역사를 바로 아는 것이야말로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선신과 악신은 무엇을 말하는가?

원리강론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선신(善神)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편에 있는 선영인(善靈人)들과 천사(天使)들을 총칭하는 말이고, 악신(惡神)이라고 하는 것은 사탄과 사탄편에 있는 악영인(惡靈人)들을 총칭하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악신은 하나님이 악신으로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선한 피조물로 지음받은 천사와 인간이 타락하여 악신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과 악이 그러하듯이 선신의 역사(役事)와 악신의 역사도 처음에는 동일한 모양으로 출발하여 그 목적을 달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원리적으로 자세히 관찰해 보거나 시간이 흐르면 선신의 역사인지 악신의 역사인지 구분할 수 있습니다.


선신의 역사와 악신의 역사는 어떻게 구별하는가?


선신의 역사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개체의 평화감과 정의감을 증진시키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든 마음이 안정되고 희생하고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동시에 선신이 역사하는 사람은 그 육신의 건강도 좋아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감각을 통해서 선신의 역사를 느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성상으로 하여 몸에 형상으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몸의 변화 또한 선신의 역사를 확인하는 중요한 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


통일교회 초창기 50년대에 입교한 선배들의 간증에 의하면 그토록 많은 멸시 천대 비소 조롱 박해를 받았고 언제나 굶주림 속에 있으면서도 마음속에서는 항상 기쁨과 감사와 평화가 넘쳐 있었고 하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날마다 죽을 각오를 다짐했던 것을 보면 얼마나 선신이 역사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초창기 분위기를 성가 13장 맹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나면서 이미 죽은 몸 한 줌의 흙만 못한 것을 버리지 아니 하시고 죄악의 사슬 끊으신 후  죽은 나를 살리시고 어루만져 기르시며 피땀 흘리며 타이르신 그 말씀 내 맘에 새기리다.


   철없이 따라 나선 몸 발자취 따라 가는 몸이 지쳐서 쓰러 지며는 날 돌아보고 부르시네 멀고 먼 저 가시밭길 피로 물들인 험한 그 길, 나는 맹세코 가오리다 아버님 가시는 그 곳까지


   깊은 잠 깨어 난 이 몸 참 뜻을 찾아 나선 몸이 한신들 어이 맘 놓으리 이맘엔 오직 일편단심 뜻을 위해 나는 살고 뜻을 위해 또 죽으리 승리의 날이 오기까지 뜻만을 위해 싸우리라 "


그러나 악신이 역사할 때에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됩니다. 처음에는 뜻을 위해 살겠다고 일주일 금식기도를 하면서 결단을 하고 혈서를 쓰면서 맹세를 표시 했던 사람이 시간이 흐른 다음에는 악마의 실체가 되어 뜻을 불신하고 원망하면서 청춘을 돌려달라면서 앞장서서 소리를 지르는 딱한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악신의 역사를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악신의 역사는 처음에는 선신과 동일한 모습을 시작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과 공포와 이기심을 증진케 하며 건강도 해롭게 합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역사는 원리를 모르는 사람으로서는 그것을 분별하기가 대단히 어렵지만,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그 결과를 보아 그 내용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신의 역사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과 육신을 잘 살펴봄으로 원리적으로 분석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악신의 역사일 경우에는 과감하게 스스로의 행위를 심판하면서 악신과의 관계를 과감하게 단절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영통인들이 스스로를 하나님과 선신이 절대적으로 역사하는 사람으로 정당화 하면서 섭리의 중심인물을 비판하고 하늘의 섭리를 거역하고 교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신의 역사와 악신의 역사를 원리적으로 바로 알아서 악신이 역사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교회가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악신이 역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처음에는 하늘의 뜻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것처럼 나서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기를 중심한 개인적인 심정을 하나님의 심정인양 오인하게 하고 자기를 중심한 세력권에 식구들을 뭉치게 한 후 섭리의 중심을 불신하게 합니다.


따라서 악신이 역사하는 사람들을 중심하고 사람들이 모이게 되면 암세포가 세력을 확장하는 병든 몸과 같은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타락한 인간은 영적인 역사를 함에 있어서 항상 바늘 끝에 선 것과 같은 심각한 자리에서 스스로를 원리적으로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보다 더 원리적인 섭리의 중심인물이 아니라고 하면 절대복종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타락인간(墮落人間)은 하나님도 사탄도 다 대할 수 있는 중간위치에 있기 때문에 선신의 역사인 경우에도 악신의 역사를 겸행하는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악신의 역사도 어느 기간을 지나면 선신의 역사를 겸행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원리를 모르는 입장에서는 이것을 분별하기가 대단히 곤란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많은 교역자(敎役者)들이 선신과 악신의 역사에 대한 무지(無知)로 말미암아 선신의 역사까지도 악신의 역사로 몰아 하늘 뜻에 반하게 한다면 그 또한 섭리를 거역하는 무리가 될 것입니다.
 
지금부터 34년전 제가 군대생활을 할 때입니다. 무술을 많이 한  청년을 전도하게 되었습니다. 그 청년에게 영적인 역사가 일어나는 데 선한 영이 역사하면 그렇게 안정되고 평안한 분위기 속에서 영계에 관한 소식을 알려 주다가도 악영이 역사하게 되면 눈 빛이 확 돌아가면서 불안과 공포의 분위기를 만들고는 "다 때려 죽인다"고 주먹질을 하며 소리를 지르다가  구토하면서 뒹굴기도 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영적인 역사를 원리적인 입장에서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이 영적인 역사를 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것입니다. 만약에 통제하지 못할 경우에 엄청난 불상사를 저지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역사가 벌어질 경우에는 원리적으로 냉철하게 정리할 수 있는 지도자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마음을 가져야 선신의 역사를 통하여 선한 결실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서에 마지막 날에는 신령한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 2:17) 고 하였습니다.


성경말씀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무릇 훼방하는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 하시니"(막 3:28-29)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선신의 역사와 악신의 역사를 바로 알지 못하면 성령을 거스르는 행위로 천도를 거역하는 무리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악신의 역사에 대한 경계는 영통인들에게 국한 된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가지고 있는 활동하는 모든 지상인들이 항상 마음을 관찰해야할 것입니다. 그 마음 속에 감각되어지는 느낌이 바로 선신 혹은 악신이 역사하고 있는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안정, 평화, 희생, 봉사의 마음이 자리를 잡고 있으면 선신이 역사하고 있는 것이요. 불안, 공포, 이기심이 자리를 잡으면서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서라도 자신의 기쁨을 얻으려 한다면 악신이 역사하고 있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양심의 가책을 받는 자리가 악신이 역사하고 있는 자리인 것입니다.


오늘날 희대의 살인마에 대한 보도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들 배후에도 악신이 역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악신이 역사하여 악신의 도구가 되어 있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영원한 멸망의 자리로 뛰어들어 활동하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마음을 살펴 악신이 역사하고 있는 마음이 감각되면 모든 수수작용을 단절해야 합니다. 그리고 선신이 역사하는 마음이 감각된 후에야 하늘을 중심하고 수수작용의 인연을 맺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