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해설] 타락론(5) : 선과 악은 목적성으로 결정된다

2013. 1. 8. 10:50참사랑 영원까지/원리해설

선과 악은 무엇인가?


인류역사를 통해서 선하게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은 누구나 갈등을 느꼈던 문제였습니다.  혹자는 선하게 살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선이 무엇인지 몰라서 선하게 살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선과 악의 개념이 시대와 장소와 주권자에 따라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동시대에 살면서 북한과 남한의 선의 개념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릅니다. 같은 대한민국에 살면서도 자기가 신봉하는 종교관에 따라 가치관이 다를 세상입니다. 그래서 어떤 종교인들은 종교적 신념 때문에 국법에 의해 죄인이 되어 감옥생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절대적인 선과 악의 개념을 모르게 된 이유는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통일원리 서론에서는 인간의 타락을 무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지한 타락인간은 선이 무엇인지 혹은 악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데 까지 타락했습니다.
 
통일원리에서는 이 문제를 목적성으로 본 선과 악이라는 제목으로 확실하게 정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그들에게 부여된 사랑으로써 하나님을 중심하고 사위기대(四位基臺)를 조성하였더라면, 그들은 선의 세계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와 목적을 반대로 한 사랑으로써 사탄을 중심하고 사위기대를 조성하였기 때문에 악의 세계를 이루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선과 악은 동일한 내용의 것이 상반된 목적을 지향하여 나타난 결과를 두고 하는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예리하게 날선 칼이 있다고 할 때 목적성에 따라 선한 칼이 될 수도 있고 악한 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의사가 죽어가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몸에 칼을 대고 수술하는 데 사용한다면 선한 칼이요. 살인강도가 사람을 죽이기 위해 칼을 사용한다면 악한 칼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육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종교에서는 정욕과 죄악에 물든 몸이요 사탄의 초소라고 금식이나 철야를 하면서 육신을 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육신이 처음부터 악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사탄의 뜻을 이루는 몸이 되었기 때문에 악한 몸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중심한 몸으로 복귀되면 선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악이라고 생각해 온 인간의 성품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목적삼고 나타나면 선이 되는 예를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우리가 흔히 죄(罪)라고 생각하는 욕망이나 욕심은 원래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된 창조본성(創造本性 )이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창조목적(創造目的)은 기쁨에 있고, 기쁨은 욕망을 채우게 되었을 때 느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만일 인간에게 욕망이 없다면 동시에 기쁨도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욕망이 없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자 하는 욕망도, 살고자 하는 욕망도, 선을 행하고자 하는 욕망도, 발전하고자 하는 욕망도 없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목적도 복귀섭리도 이루어질 수 없으며, 인간사회의 유지와 그 발전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식사하기 위해 식당에 간 사람은 식욕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식당에 갔는데 식욕이 없으면 맛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식욕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배가 고프고 식욕이 강할 수록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씀을 듣기 위해 교회에 온 사람들은 심령이 가난해서 와야 합니다.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욕심이 식욕보다 강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말씀을 들으면 말씀을 하는 사람도 저절로 신이 나서 말씀하게 됩니다. 차원 높은 수수작용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 억지로 와서 앉아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주변사람의 강권에 의해 억지로 와서 시간이나 때우고자 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강의하기는 정말 힘이 듭니다. 쇠 귀에 경을 읽는 격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욕망은 인간의 행복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창조본성인 것입니다. 인간은 본래 주관성을 완성하여 욕망을 하나님의 뜻을 중심하고 성취함으로 천국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본래 창조본성입니다


이와 같이 욕망은 창조본성이기 때문에, 이 성품이 하나님의 뜻을 목적삼고 그 결과를 맺으면 선(善)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사탄의 뜻을 목적삼고 그 결과를 맺으면 악(惡)을 자아내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타락으로 이루어진 이 죄악세계도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중심하고 하나님의 뜻을 중심하고 방향만을 돌려놓으면 선한 것으로 복귀되어 지상천국(地上天國)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상천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망이 창조목적을 지향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확실히 알고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무엇인가를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욕망의 방향을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는 데 초점을 두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돈을 벌고자하는 욕심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면 선한 것입니다. 사랑에 대한 욕심도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기 위한 원리적인 사랑이라면 선인 것입니다. 육체적인 모든 욕망도 하나님의 뜻을 중심한 욕망이라면 선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식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사람들은 욕을 할 때에 생식기를 빗대서 말합니다. 가장 비천한 생식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창조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생식기보다 소중한 것이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남성 혹은 여성으로 생식기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리고  생식기가 있기 때문에 때가 되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축복결혼을 받아 참사랑과 참생명과 참혈통이 출발되고 결실되는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가 출발하는 것입니다. 천국의 기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식기를 눈먼 장님처럼 방향을 잃고 사용하다보면 지옥밑창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복귀섭리는 방향성을 바꾸어 나가는 섭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사탄의 목적을 지향하고 있는 이 타락세계(墮落世界)를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룬 지상천국에로 그 방향성을 바꾸어 나아가는 섭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가는 공식은 의외로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타락인간의 욕망의 방향성만 바꾸면 되는 것입니다. 타락세계를 지향하던 욕망을 뒤로 돌려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지향하도록 하면 지상천국을 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과 지옥은 마음먹기에 달려있습니다


어제까지 자기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상대를 미워하고 원수시 했다면 오늘부터 상대를 위해서 사랑하고 축복하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면 천국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과 지옥은 마음먹기에 달려있습니다. 똑 같은 자리에서도 천국같이 사는 사람이 있고 지옥같이 사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미국에 갤럽에서 나온 조사결과를 보니까. 캘리포니아 일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앙케이트를 돌려서 ‘당신은 행복하냐? (Are you happy?)’ 이렇게 물어봤답니다. 그런데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만 골라서 ‘당신이 행복을 느끼는 이유가 뭐냐?’고 물어 봤다는 겁니다. 그랬더니 ‘나는 매일 매일의 삶에 의미를 느낍니다.’ 삶의 보람을 느끼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불평불만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감사와 감격으로 행복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천국과 지옥이 마음먹기에 달렸음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똑같은 상황에서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느끼는 기쁨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중앙수련원에서 제4차 하나님 섭리사의 책임분담 해방권 선포교육이 있었습니다. 수련생들을 격려하시기 위해 찾아오신 이요한 목사님께서는 말씀을 청강하시더니 "이 수련회가 바로 가나안 땅에 흐른다고 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수련회"라고 하시면서 은혜가 넘친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수련회를 고통으로 받아들이지만 어떤 사람은 일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시대와 장소와 주권자에 따라 선의 개념은 달랐습니다


지금까지 인류역사를 통해서 선과 악의 개념은 절대적이 아니고. 상대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특정한 시대를 놓고 볼 때, 그 시대 주권자의 이념이 지향하는 목적에 순응하면 선이 되고 그 목적에 반대하면 악이 되지만, 한번 그 시대와 주권자가 바뀌어 그 이념이 달라지게 되면 동시에 그의 목적도 달라지고 따라서 선과 악의 기준도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권이 바뀌어 지면 전시대의 충신이 역적이 되기도 합니다. 예를들면 고려 말 충신이었던 정몽주는 조선이 개국되면서 역적의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단종에게는 충신이었던 사육신은 세조시대에는 역적이 비참하게 처형되었던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일제의 식민지로 주권이 빼앗겼을 때 역적이었던 유관순 열사와 안중근 의사는 조국이 광복된 이후에는 충신의 자리에서 모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서양사에서도 마녀로 화형을 당했던 잔다르크가 오늘날에는 불란서의 성녀로 추앙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나 사상에 따라 선악의 개념이 달랐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종교(宗敎)나 사상(思想)에 있어서도 그 테두리 안에 있는 사람들에 있어서는 그 교리와 그 사상이 지향하는 목적에 순응하는 것이 선이고, 그에 반대하는 것이 악이 됩니다.
그러나 일단 그 교리나 사상이 달라지거나, 혹은 다른 종교로 개종(改宗)하거나, 또는 다른 사상으로 전향하게 되면 그에 따라서 목적도 달라지기 때문에 선악의 기준도 자연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사회에 항시 투쟁과 혁명이 일어나게 되는 주요한 원인은 이와 같이 인간이 지향하는 목적이 달라짐에 따라서 선악의 기준이 항시 달라지는 데서 일어나는 문제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복귀과정에 있어서의 선(善)은 이와 같이 상대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선하게 살고 싶은 인간의 본성은 있었지만 선과 악이 무엇인지 몰라서 한번밖에 주어지지 않은 일생을 악의 방향으로 살다가 비참한 종말을 고한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원한 주권자 하나님의 이념에 순종하는 것이 선이다


그러나 지상에서 사탄의 주권을 물리치고,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영존(永存)하시는 절대자 하나님이 주권자가 되시어 그로부터 오는 이념이 세워질 때는, 그 이념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그것이 지향하는 목적도 절대적인 것이어서 선의 기준도 절대적인 것으로 세워지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재림주(再臨主)님에 의하여 세워질 천주적(天主的)인 이념인 것입니다.


인류역사는 본심이 추구하는 절대선을 추구해온 역사입니다


사실상 인류역사는 수많은 투쟁과 혁명을 거듭하면서, 본심(本心)이 지향하는 이 절대선(絶對善)을 찾아 나왔던 것입니다. 따라서 타락된 인간사회에 있어서의 투쟁과 혁명은 이 절대적인 목적을 추구하여 절대적인 선의 세계를 이룩할 때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절대선의 기준에 맞추어 잘못된 자기를 스스로 혁명해가야 합니다


따라서 절대적인 선의 기준을 세우지 못하는 개인이나 가정이나 주권자는 투쟁이나 혁명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진리를 알아 스스로를 혁명해 나가지 않으면 혁명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타락성에 습관들어 살다보면 혁명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창조본성을 찾아 이루어나가는 사람들의 탄식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혁명의 대상이 되는 것만큼 불쌍한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역사를 보면 혁명의 대상된 주권자들은 비참한 자리에 떨어졌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에 구약성경을 믿으면서 영생을 추구했던 유대교인들도 절대적인 선의 이념을 가지고 오신 예수님 입장에서 볼 때 혁명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원한 선의 실체로 이 땅에 강림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지적을 받고도 스스로를 혁명하지 않고 도리어 심판하는 자리에서서 비소하고 조롱하다가 십자가에 못을 박았습니다.


우리가 역사적인 죄인의 자리에 서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원리를 중심하고 확실한 선한 목적관을 가져야 합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죄악의 자리에 서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원리적으로 가다듬어 하나님을 중심한 정오정착의 자리에 서야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