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편 신앙생활과 수련 - 제1장 신앙생활은 무엇인가_ 1절

2013. 3. 6. 13:27참사랑 영원까지/천성경

1절 신앙생활이란

1 신앙생활은 반드시 제삼자의 입장을 탈피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선생님을 따라 나가지만 선생님을 중심삼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남이야 어떻든지 나 홀로 지켜 나가야 할 신앙의 길이 있습니다. 그러한 신앙생활은 가까운 사람한테서 체험하지 못하는 깊은 심정세계에서 하늘을 중심삼고 홀로 감사하는 생활, 홀로 만족하는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하더라도 하늘땅을 바라보면서 ‘감사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라고 할 수 있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고 그런 것을 못 느끼겠거든 그 반대의 자리, 지극히 슬픈 자리에서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부족하오니 용기를 주시옵소서.’라고 결의하여 재기하는 스스로의 기간을 반드시 가져야 됩니다.

참된 신앙관을 가져야
2 내가 믿고 하면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이런 신앙관을 가져야 합니다. ‘제1 주체는 하나님이요, 나는 대상이다. 완전한 플러스는 완전한 마이너스를 창조하는 것이다. 내가 제2의 하나님, 제2의 예수님, 제2의 부모님 자리에 있으니 그 자리에 도달할 수 있소!’라는 생각을 가져야 됩니다. 선생님이 어떻게 세계적인 일을 혼자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할 때, 이와 같은 철학적 배경의 내용을 중심삼고 직접적으로 나라를 소화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 앞에 깨끗이 ‘틀림없이 우리가 그것을 전수받아 그렇게 살 것입니다!’라고 약속하라는 것입니다.

3 선생님이 이 땅에 와서 신앙세계에 남긴 위대한 내용이 네 가지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확실히 했습니다. 책임분담과 탕감이라는 것을 역사의 누구도 몰랐습니다. 인간이 왜 이런 모습이 되었는지를 몰랐습니다. 이것을 확실히 해 놓았습니다. 그다음에 양심적인 사람은 못살고 악한 사람이 잘살았는데 왜 그러냐는 것입니다. 탕감법, 가인 아벨 문제를 몰랐습니다. 그다음에는 인간이 선을 바라는데 왜 점점 문제가 나빠 가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혈통 문제, 사탄의 더러운 피 때문입니다. 혈통 문제를 근본적으로 모르기 때문에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세계의 문제가 다 이 원리에 걸려 있습니다.

4 지금까지 신앙생활은 나 하나를 찾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잃어버렸던 아담 해와와 같은 입장에서 원죄 없는 본연의 개체를 갖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최후에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먼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개체 개체끼리 합한 하나의 가정을 찾는 것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그 가정을 중심삼고 거기서 벌어지는 종족을 찾고 민족과 세계를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체적인 뜻입니다.

5 하늘은 인간적인 소망을 중심삼고 살고 있는 인간으로 하여금 새로운 소망을 갖고 죽음의 고비도 넘을 수 있고 영원한 세계를 흠모하면서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무한히 애쓰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땅 위의 어떤 소망을 품고 살 것이 아니라 죽음까지도 넘어설 수 있는 소망을 품고 영원한 소망의 세계를 꿈꾸며 생활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하여 우리도 지금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심정을 체휼하고 그 심정권 내에서 미쳐지는 충격과 자극을 느끼는 자가 있다면 땅 위의 어떠한 핍박이나 고통이나 죽음의 길이 가로막더라도 그 사람이 가는 길을 막으려야 막을 수 없습니다. 이런 심정이 마음을 격동시키고 그 마음이 몸을 재촉하여 사지를 움직이게 함으로써,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한한 경지를 향하여 걸어 나가게 되는 생활의 일편 일편을 체휼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바로 오늘날 속세에 살고 있는 신앙자의 생활입니다.

7 하나님은 자기 교단을 위주로 신앙생활을 하는 기독교인은 원하지 않습니다. 선생님도 통일교회라는 간판을 붙이고 있지만, ‘이 간판을 언제 떼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 사람들이라고 주목을 받고 있겠지만, 그 주목이 삼천리반도에서 언제 사라지겠느냐는 것입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교회 식구들은 하나님의 맺힌 한을 풀고자 이를 악물고 노력하고 있고, 하나님의 고난길을 대신하여 나서겠다고 충효의 심정으로 뛰고 있습니다. 이 일을 하다가 쓰러지는 것을 최고의 기준으로 결의하고 나가고 있는 무리가 통일교회 식구들입니다. 이렇게 가는 길이 복된 길입니다.

8 하나님이 바라보는 여러분의 신앙 관념은 너무나 염려스럽습니다. 지금 선생님이 이 땅에 없다면 여러분 가운데 몇 사람이나 남아질지 의문입니다. 모르긴 해도 싸움이 벌어질 것입니다. 지금 선생님은 뜻을 위해 죽겠다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이냐 하는 점에서 여러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심각한 자리에 들어가야 됩니다. 가정에서는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서, 교회에서는 식구들을 위해서 내가 얼마나 정성 들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9 자기 신앙생활에 동정을 남기고 가지 못하는 사람은 그것으로 끝장이 납니다. 지금 선생님 자신도 그렇습니다. 선생님 자신이 물론 공적인 입장에서 어디를 갔다가 예배시간에 늦게 되면 나오기 전에 기도합니다. 또 어떤 주일에는 예배시간이 됐는데 못 가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도 반드시 회개의 기도를 합니다. 주체적 책임을 짊어진 자로서 식구들이 나를 걸고 복 받겠다고 하고 생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성 들이고 있는데, 그 시간에 가지 못한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10 세계를 위해 가야 합니다.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입니다. 목적을 성사하려고 하는 사람이 그 목적을 위해서 얼마만큼 희생의 대가를 치르느냐, 상대적 권내에 그것이 얼마만큼 흘러들어 가게 하느냐에 따라서 목적 성사의 기일이 단축됩니다. 세계를 위해서 살려면 대한민국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세계를 위하지 않으면 우리가 세계를 위해 살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고스란히 나와 같은 신앙적인, 사상적인 사람을 만들어서, 혹은 그런 후손을 만들어서 천년만년 후대에 이와 같은 사상을 남겨 줄 수 있는 터전이 남아지는 한 통일사상은 세계에 새로운 문화세계를 창조할 사상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것이 선생님의 관이요 하나님의 관입니다.

11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맛이 있어야 합니다. 선생님은 옛날에 여러분을 전도하라고 지방으로 보내고, 통일산업에 매일같이 하루에 두세 번 왔다 갔다 했습니다. 또한 청평을 하루걸러 왔다 갔다 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랬겠습니까? 맛이 있다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은 느끼지 못하는 맛을 압니다. 정성을 들이고 왔다 갔다 하는 그 세계에 있어서 심령의 모든 세포가 발전하고, 그 발전의 힘이 자기 내적 자체에서 운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무엇인가가 있어야 합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맛을 느껴야 됩니다.

12 주님이 이 땅에 오시는 목적은 지상에 천국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천국은 어떠한 곳입니까? 모시기 위한 준비에 합격한 자와 모시는 생활에 합격한 자가 가는 곳입니다. 모심을 위한 준비와 모심의 생활을 만우주에 영원히 자랑할 수 있는 세계가 천국입니다. 천국 가서는 무엇을 하는지 압니까? 그저 놀고 다니는 곳인 줄 알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놀고 다니려면 놀고 다닐 수 있는 과거의 준비해 온 조건과 생활적인 조건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하고 복 달라고 기도만 합니다. 신령한 사람들이 가다가 힘들어하는 주된 원인이 거기에 있습니다. 아무리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도 7년을 넘기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13 무조건 복 달라고 하는 것은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그러한 자리에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오늘날 이 땅에 있는 인류는 6천년 동안 내려온 아담의 후손입니다. 그러므로 인류를 붙들고 통곡할 수 있는 마음의 기준이 잡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세계와 절대 인연지을 수 없습니다. 불쌍한 거지를 보고 가슴이 아파 견디지 못하고, 옷을 입지 못한 사람을 보면 자기가 잘 입고는 못 견디고, 못 먹는 것을 보면 자기도 못 먹고, 자기 일신이 어떤 편한 자리에 있을 수 없다는 마음을 여러분이 가져야 합니다.

14 세계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고, 종교인 가운데도 두 종류가 있습니다. 덮어놓고 나 편히 잘살고 복 받겠다고, 내 교단 잘살고 우리 민족 잘살겠다고 비는 기복종교는 사라져 가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알았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내 일신을 희생해서라도 하나님을 도와주고 하나님을 해방하자는 것입니다. 통일해서 무엇을 하느냐? 하나님을 해방하자는 것입니다. 참된 하나님의 권위를 중심삼고 이상경에서 인류시조와 함께 무한한 행복을 찬양하면서 살 수 있는, 모심을 받으면서 지내실 수 있는 하나님이 이렇게 비참하게 됐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우리 손으로 해방시키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제언입니다. 그러한 내용이 종교계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하나님에게 지극히 기쁜 소식입니다.

15 신앙생활은 살아서 죽음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형수들에 대해서 모르겠지만, 선생님은 사형수들과 같이 지내 봤기 때문에 잘 압니다. 그 사람들은 자기가 죽는 그 형(刑) 앞에 얼마나 심각한지 모릅니다. 추석 같은 날이 되면, 그 추석의 달을 역사에 없는 마지막 달로서 감상하는 것입니다. 바람이 불고 태풍이 불어와도 그것을 감상한다는 것입니다. ‘아, 내 살아생전에 이 태풍이 마지막이 되겠구먼.’ 하면서 말입니다. 모든 만상을 새로이 감정할 수 있는 심각한 심정에서 지냅니다. 신앙길을 가는 사람 중에 이와 같이 심각한 자리에서 하늘의 생명을 가치 있게 저울질하면서 하루의 생활을 다짐해 나가는 자가 얼마나 될 것이냐?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선생님도 그런 심각한 자리에 있기 때문에 이런 길을 계속해 나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모시는 생활
16 신앙은 하나님을 모시는 생활, 모시면서 같이 사는 생활입니다. 그 길을 가지 않으면 편안하지 않습니다. 벌써 몸에 지장이 옵니다. 환경에 지장이 온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늘을 모시고 같이 사는 생활입니다. 아침에 해가 뜨고, 점심때가 되고 저녁이 되어 해가 지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천년만년 다르지 않습니다. 그 궤도가 틀리게 되면 모든 것이 틀어져 나갑니다. 사랑의 마음, 참사랑의 길을 찾아가야 됩니다. 참생명·참혈통을 이어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권속이 되어서 언제나 하나님과 같이 산다는 것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기뻐하며 살고 자기가 오고 가는 생활을 기쁘게 하는 것이 하나님과 같이 사는 것입니다.

17 신앙생활은 단체가 하는 신앙생활도 있지만 개인의 신앙생활도 있습니다. 단체 신앙생활을 하면 평균적인 은혜는 받을 수 있지만 개개인의 은혜는 받기 힘듭니다. 개개인의 은혜를 받기 위한 생활은 하늘과 가깝게 사는 생활입니다. 깊은 기도와 자기 스스로의 생활 가운데 얼마만큼 하늘과 가깝게 사느냐에 따라 개개인의 신앙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18 여러분이 통일교회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새로이 신앙자의 각오를 가져야 됩니다. 중심에 대한 확실한 신념을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중심을 세계 이상의 중심으로 알기 전에는 세계를 요리할 수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신앙의 인격을 가려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신앙의 중심에 대해 확실한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산의 정상에 올라가기를 바란다면 밤이나 낮이나 가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의 세계에서 천번 만번 가 보고 옳은 길이라고 느꼈을 때 비로소 행동할 수 있습니다. 마음속으로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행동이 안 됩니다. 마음속으로 천번 만번 다짐하고 나서 가야 합니다. 스스로 다짐하고 나섰기 때문에 가다가 어떠어떠한 위험이 닥칠 때 그 위험을 해결하기 위해 재료를 수습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19 신앙생활은 그냥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정상이면 정상을 정복하기 위하여, 상상봉이면 상상봉을 정복하기 위하여 거기에 필요한 재료를 수습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려운 고비가 닥치면 그 고비를 피해 돌아갈 것이 아니라 헤치고 나아가야 됩니다. 지금 당하고 있는 어려운 일보다도 더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될지라도, 나는 거기서 망하지 않는다고 하는 진지한 입장에서 그 어려움을 내 것으로 소화할 수 있는 주체적인 자아를 발견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됩니다.

20 악한 분야를 방지하고 선한 분야를 생애노정에 남기려고 하는 것이 인간이 믿고 나아가는 신앙생활입니다. 인간이 바라는 최고의 희망은 무엇이냐? 완전히 선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48절에 ‘하나님의 온전함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라고 했습니다. 절대적이요 선의 주체이신 하나님은 그 사랑의 대상 자리에 인간이 서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도 절대적인 하나님의 상대적인 선의 존재로 서는 것을 최고로 바랄 것입니다. 그 상대적인 존재가 악한 입장에 서서 신음하고 사탄 앞에 참소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 있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이 선한 주체로서 소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말할 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한 선의 주체로 계시는 하나님은 인간에 대하여 완전한 대상적인 선의 실체이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면 태어나면서부터 그러기를 바라느냐? 물론 그럴 것입니다. 또 태어나서 일생 동안 그렇게 살기를 바랄 것이냐? 물론 그럴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랬지만, 미래에 있어서도 선하기를 바라는 하나님이 아닐 수 없습니다.

21 신앙은 믿고 우러러 모시는 것입니다. 그 믿음의 한계가 어디입니까? 인내적인 믿음, 극복적인 믿음의 한계가 어디까지입니까? 하나님을 타고 앉는 자리까지입니다. 하나님을 모시는 것보다 하나님의 상투 끝에 올라가 춤을 추더라도 하나님이 좋아하며 어서 춤추어라 할 수 있는 자리까지입니다. 그 자리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내용만 뒷받침된다면 믿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22 통일교회는 생활적인 하나님을 신앙의 대상, 모심의 대상으로 삼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에서부터 결속과 통일을 주장하고 나가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출발의 동기입니다. 가장 이론적인 터전 위에서 출발한 종교입니다. 망상적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해서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23 모심의 생활은 천년이 가도 자신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통일교회에서 수십년 동안 선생님을 모셨다.’라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을 선생님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해온 일을 다 잊어버렸습니다. 잊어버리고 가게 될 때 더 큰 모심의 생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믿고 소망을 찾아가는 생활
24 신앙자는 보다 큰 것을 위하여 공적인 기도를 해야 됩니다. 그래서 이것을 횡적으로 어떻게 전개시킬 것이냐? 그것을 공상하는 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행동의 결실로 나타내기 위해 창조적인 모험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신앙자는 현실의 환경과 부단히 투쟁해서 이상을 현실화시키기 위한 모험의 생활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최고 개척자의 생활이요, 최고 투쟁자의 생활이요, 최고 전도자의 생활입니다. 그런 결과로 나타나야 최고의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신앙생활을 해야 됩니다.

25 영원히 내가 나를 믿고, 내가 나 자신을 소망으로 삼고,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면서 ‘하나님, 저의 사랑을 받으시옵소서. 하나님, 저의 소망을 보시고 즐거워하시옵소서. 하나님, 저의 믿음을 보시고 즐거워하시옵소서.’라고 할 때, 하나님이 ‘오냐!’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을 세운 목적이 그것이요, 소망을 찾는 목적이 그것이요, 사랑을 그리워한 목적이 그것이니, 그렇게 되면 거기에서 주님을 상봉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주님과 같이 사는 것입니다.

26 여러분의 잘잘못이 문제가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 앞에 순응할 수 있는 절대적인 신앙을 갖고 나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실적을 못 갖고 있으면 희망이라도 가지라는 것입니다. 희망을 갖기 위해서는 절대신앙을 갖는 것은 물론이요, 실천적 과정을 닦아 나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선생님은 이 땅 위의 남성을 대표하고 그 누구보다 더한 투쟁의 역사를 거쳐 나가야 됩니다. 선생님은 영계와 육계로부터 공인받을 수 있는 권한을 갖고 나왔지만 여러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실적이 없으면 믿음으로 넘어가면 됩니다. 그 믿음은 어떠한 믿음이어야 되느냐? 나 좋을 수 있는 믿음으로는 안 됩니다. 그런 믿음으로는 뜻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자기만이 좋아하는 뜻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는 일은 하면 할수록 하나님과도 선생님과도 멀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야 하지 싫으면 안 한다.’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셔야 됩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선생님 자신도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실천적인 생활을 못하더라도 절대 믿으라는 것입니다. 믿으면 됩니다.

27 통일교회 교인들은 선생님의 말을 절대적으로 믿어야 됩니다. 소망을 찾아서 옛날과 같이 믿어야 됩니다. 옛날에 뜻을 알지 못할 때에도 어떤 소망을 품고 사랑을 그리워하며 나갔습니다. 하물며 여러분이 찾은 길을 가면서도 그런 자리에 못 서 있겠거든, 선생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그것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이런 길을 거쳐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일 여러분이 개인적인 승리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가정적인 자리에서 축복을 받았다 하더라도 가정을 지나 종족·민족·국가·세계·천주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7단계가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까지 가려면 7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일곱 고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절대 믿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무슨 명령을 하든지 거기에 절대복종해야 됩니다.

회개하여 새 생명을 얻는 생활
28 어떤 사람은 신앙생활은 나이가 많이 들어서 하겠다, 죽을 때가 다 되어서 믿고 천국 가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래서는 천국 갈 수 없습니다. 언제 하나님을 중심삼고 출발하겠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죽을 때가 다 되어서 출발했다면 전 생애의 대부분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비례하여 그 이상의 회개를 해야 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이 들어서 믿고 천국 가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29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뜻을 안 그날부터 지금까지의 생활이 어떤 사람은 1년이 되었고, 어떤 사람은 10년이 되었고, 혹은 반평생을 뜻과 더불어 살아온 사람도 있을 텐데, 그동안의 생활이 정지된 입장이었는가 아니면 전진한 입장이었는가, 그렇지 않으면 후퇴한 입장이었는가 하는 것이 문제 됩니다. 여러분은 이 가운데 어디에 속하는지를 반드시 명시하고 넘어가야 됩니다. 아무리 과거에 전진했다고 하더라도 오늘 정지해 있으면 거기에 하나님의 생명력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인연이 있을 수 없습니다. 과거에는 전진하면서 무한한 가치와 무한한 생명력과 무한한 사랑의 힘을 지니고 살았다고 해도 현재 정지된 자리에 있다면 하나님과 이별한 것입니다.

30 타락한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권과 사랑권 내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회개가 필요합니다. 선조로부터 지금까지 백이라는 양의 죄를 지었으면 그 이상의 노력을 하고 회개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에서 회개는 빼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천대만대의 선조들을 통해서 태어났습니다. 그 선조들이 선한 선조들이면 나는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생명권 내에 접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한 선조들이라면 하나님의 생명권과 먼 거리에 있습니다. 먼 거리에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권과 인연을 맺으려면 선조들이 악하였던 모든 양을 넘어설 수 있는 회개의 기간이 절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채우지 않고는 자기 이상의 생명력의 세계에 접촉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길에는 반드시 회개의 눈물이 필요한 것입니다.

말씀대로 이루는 생활
31 10년 신앙생활을 했으면, 그 10년의 신앙생활이 하나님의 심정과 하나되기 위해 싸운 것이어야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어떤 일을 대했을 때 커다란 기쁨을 느꼈으면, 그 자극을 중심삼고 반드시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날이 와야 됩니다. 그러한 생각이 언제나 끊임없이 여러분의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어려운 환경에 에워싸인 입장에 서거든 ‘봄이 오면 내가 이것을 다시 한 번 발휘하여 하늘 끝까지 뻗어 나간다. 어느 한때 두고 봐라. 그때가 오거든 나는 이렇게 간다.’라고 할 수 있는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32 믿음은 어디까지나 실천을 위한 동기를 마련하는 데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천국이 어디에 있느냐고 할 때, 천국은 믿는 데 있다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천국은 나에게 있다고 했습니다. 나에게 있다는 말은 주체적 입장이 상대적 세계에 달려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주체적인 내용을 내가 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결정할 수 있는 동기가 인간에게 있다는 사실을 나타낸 것입니다.

33 여러분이 영적으로 체휼한 것을 실천무대에 적용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반드시 천국이 벌어집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내가 둘째 번이면 실천 환경은 셋째 번입니다. 소생·장성·완성입니다. 나는 중심자리에 서 있기 때문에 내가 하늘도 완성시킬 수 있고 세상도 완성시킬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보더라도 언제나 둘째 번이 문제가 되어 있습니다. 그 둘째 번 자리는 어떤 자리냐? 하나님과 우주를 두고 볼 때, 사람은 둘째 번 자리에 있습니다.

34 사람은 하나의 선을 중심삼고 보면 3점을 연결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완성함으로써 하나님의 완성을 볼 수 있고, 인간의 완성을 봄으로써 우주의 완성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내가 지금 개척하는 도상에서 절대 필요한 것은 이 두 세계를 조정하기 위한 체휼과 실천입니다. 체휼이 영적인 면을 말한다면 실천은 진리적인 면을 말하고, 체휼이 오른쪽이라면 실천은 왼쪽입니다. 이것이 일치되는 평행선을 그리고 내 인격 기준 앞에 완결시킴으로써 우주를 대표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35 실적이 없으면 안 됩니다. 싸움터에 나가 한 사람이라도 승리의 전과를 가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실천은 데데한 실천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무개 대신자로서 일가를 대표하고, 일국을 대표해 머리 숙일 수 있는 실천 과정을 거치는 데는 피어린 투쟁이 있어야 됩니다. 웃으면서 해서는 안 됩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심각한 입장에서 실천함으로써 거기에 비례한 실적이 자연히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최고의 실력을 다해서 실적을 남겨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