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편 신앙생활과 수련 - 제1장 신앙생활은 무엇인가_ 2절

2013. 3. 6. 13:26참사랑 영원까지/천성경

2절 신앙생활의 목표

1 습관적인 신앙생활은 위험합니다. 그러한 신앙생활은 끊임없이 활동하는 사탄에게 참소조건을 제시하는 요인이 됩니다. 사람들이 복귀노정을 걸어감에 따라 한 사람도 잃지 않으려는 사탄은 온갖 방법을 통하여 재침범의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사탄은 개개인이 세운 탕감조건에 의해 한 개인에서 떨어져 나가야 하지만, 또다시 가정적 차원, 민족적 차원에서 침범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엄격한 계율이 신앙생활에 유익합니다. 습관에 의존한 세속적 생활은 여러분 자신의 과거생활에 쉽게 말려드는 경향이 있으므로 참된 생활의 방도가 되지 못합니다. 인간은 오직 참사랑과 지속적 자기 희생의 생활을 할 때 비로소 사탄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려울지라도 공의를 실행할 때 인간의 위대한 만족도 얻어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러한 삶을 영위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
2 사람은 양심과 몸이 있습니다. 몸이 끌어당기고 몸이 넓어지면, 욕망을 넓히면 중심이 줄어듭니다. 육신이 마음대로 하면 양심의 세계는 영으로 돌아갑니다. 잡아당겨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없애게 되면 종적으로 높아집니다. 종적인 기준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완성 기준을 못 이루었으니,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어떤 사랑보다도 최고의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세상의 사랑이상을 투입해야만 장성기 완성급이 완성기가 되어 직접주관과 간접주관의 일체권을 중심삼고 책임분담 완성권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리관입니다.

3 순수한 종교일수록 몸을 치는 것입니다. 특히 기독교인들이 독신생활을 많이 하는데, 사회와 만민을 위해서 희생봉사하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성의 윗돌이 되지 말고 맨 아래의 고임돌이 되어라.’ ‘기둥 중에서도 정문 기둥이 되지 말고 울타리 기둥이 되어라.’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전부 몸이 원하는 것과 반대입니다. 타락한 몸과 마음을 둘 다 그냥 두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에 몸이 좋아하는 것의 반대편으로 모는 것입니다. 그래야 몸이 원하는 것이 제거되기 때문입니다. 순수하고 제일 고차적인 종교는 몸이 원하는 편과 반대편으로 제일 잘 모는 종교입니다.

4 신앙길에서는 자기주장, 자아관념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절대적 신앙은 자아관념이 하나도 남지 않는 신앙을 말합니다. 절대적으로 믿는다고 할 때는 나 자체에 절대적으로 반대되는 요인이 하나도 없어야 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되겠다고 하는 거기에는 자기주장이 있을 수 없습니다. 주체가 요구하는 대로 완전히 일치해야 됩니다. 완전히 일치한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 주장할 수 있는 일편의 마음도 없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주장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그 자리는 천국이 아닙니다. 자기 마음대로 소원하는 자리는 아무리 잘 믿었다 하더라도 거기는 천국이 아닙니다. 이런 근본문제를 중심삼고 여러분은 심각하게 생각해야 됩니다. 선생님도 역시 그런 문제를 중심삼고 심각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5 개인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일에 부닥친 사람은 자기보다도 신앙면에 있어서 높은 사람, 자기보다도 위에 있는 사람을 찾아가서 솔직히 터놓고 이야기해야 됩니다. ‘나는 나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를 따라가는 사람으로 있겠다.’라고 해야 됩니다. 그가 우로 가라 하면 우로 가고, 좌로 가라 하면 좌로 가는 것입니다. 또 올라가라 하면 올라가고, 내려가라 하면 내려가는 것입니다. ‘나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지도하는 사람을 대신하여 있겠다.’라고 하면 그 환경을 피해 나갈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에 있어서 동지가 필요합니다. 동지가 없는 사람은 외로운 사람입니다. 동지가 있으면 서로 보충하고 보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환경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길도 생깁니다. 만약에 동지가 없으면 독단적으로 다 해결해야 되는데, 전후관계를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자기로서는 심히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6 타락한 인간은 생명이 사탄으로 말미암아 시작되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생명과 연결지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을 내놓고 하는 방법 외에는 없습니다. 생명의 통일은 어디에서 벌어지느냐? 타락한 생명을 버리는 자리, 즉 자기 생명을 희생하는 자리의 끝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생명이 인연맺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신앙길은 뜻을 위해 가는 길이요, 하나되기 위한 길이요, 생명을 걸고 가는 길입니다.

7 선생님은 여러분이 방 안에서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더라도 벌써 그 느낌이 들어옵니다. 이 웃음이 하나님 앞에 플러스되는 웃음이냐, 마이너스되는 웃음이냐? 그 느낌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습관화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중심삼고 이뤄지는 주위의 모든 요건들은 무의미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나를 개발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하나의 교재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활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러기에 혼자 있다고 해도 마음대로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활태도를 중심삼고 살게 되면 처음 보는 사람이든 안면이 있는 사람이든 누구든지 소홀히 대할 수 없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니까 아무렇게나 대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모든 심정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체휼적인 환경을 개발하는 생활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사사건건에 있어 틀림없이 효과적인 가치를 발견하고 기쁨을 느꼈다면, 그 사람의 신앙생활은 관념적인 신앙이 아니라 실질적인 신앙생활이요,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신앙생활입니다.

8 신앙생활은 간절해야 합니다. 배고픈 사람이 밥을 그리워하는 것, 어머니를 잃은 아이가 어머니를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 간절한 마음이 앞서야 합니다. 신앙의 길, 신앙의 목적이라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보입니까? 하나님의 뜻은 사람을 통해서 이룰 수 있는 자리까지 가기 전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세상에서는 전부 계획을 하고 설계를 하고 예산을 편성해서 펼쳐 나가지만, 하나님의 뜻은 눈으로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보이지 않는 세계를 추구하고 거기에 대한 목적을 현실에서 이루어 나간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과제입니다. 여러분의 눈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을 보게 돼 있습니다. 또 느끼는 것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듣고 느끼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을 보고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반드시 오관의 작용은 보이는 세계를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9 신앙의 길은 무엇이냐? 보이는 세계에서 느끼는 감각보다도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더 강한 감각을 느끼게 된다면 그 사람은 절대 지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외적인 세상의 일은 전부 보이는 것을 따라 움직이지만, 신앙길은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해 가기 때문에 그 목적이 막연하게 될 때는 힘이 안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부자관계 회복
10 통일교회 사람들은 무엇을 신앙생활의 목표로 해서 살아야 하겠습니까?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몸을 쓰고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을 목표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종의 몸이라고 하는 것도 과분한 말입니다.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의 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탕감하기 위한 길을 가야 됩니다. 예수님은 죄 없이도 그 길을 갔는데 아버지를 죽인 죄인인 우리는 백번 천번이라도 이 길을 가야 됩니다.

11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으로 사무치게 호소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은 인간이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과 부자관계가 맺어지지 않았고, 천륜적인 사랑의 인연이 맺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이러한 입장으로 떨어지게 된 원인과 내용을 알아야 하고, 사탄의 진상을 확실히 밝혀 본래의 입장을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말로써 맺어지는 부자의 관계, 예약만으로써 맺어지는 부자관계는 필요 없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아버지의 뜻을 위하고, 뼈 살이 녹아나는 고통 속에서도 참고 승리하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과 부자관계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12 하나님의 손길로 지어진 만물, 하나님의 말씀으로 실현된 만물, 그 영광을 상상해 보십시오. 오늘의 하늘과 땅은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원통하고 분한 일입니다. 창조의 동기와 목적도 이러한 것이 아니었는데, 뜻하지 않은 인간의 타락으로 창조의 동기와 목적을 유린한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타락은 고통과 슬픔과 불행의 원천이 되었고, 인간이 싫어하는 모든 것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원수란 칼을 든 사람만이 아닙니다. 타락, 이것이야말로 인류의 원수요, 만물의 원수요, 창조주의 원수입니다. 이 원수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수천년 전 인간조상에게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니 결사적인 투쟁도 물론 필요하지만, 이 죄악의 뿌리를 뽑아 버리기 위해서는 타락의 본거지를 발본색원하여 폭파하고 잘라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지상 인간과 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그것이 아직까지 남아 있기 때문에 세상에 죄악이 만연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결과적인 것을 두고 투쟁할 것이 아니라 타락의 본거지를 찾는 데에 제1의 목표를 두어야 합니다. 원수의 근거지, 타락의 원천을 찾아 하나님과 인간과 사탄의 3자 사이에서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불행의 실마리는 풀리지 않습니다

13 인간이 참아들딸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인류의 소망이요, 모든 만물의 소원이며,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의 참아들딸로서 복귀의 운명을 타개해 나가야 되는데, 여기서 우리가 단 하나 바랄 것이 있다면 참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부자의 인연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14 기쁨과 슬픔은 천국과 지옥이라는 이름으로 대표됩니다. 선생님은 이 길을 처음 나설 때 우주의 근본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파고들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입니다. 따라서 복귀의 근본 내용은 부자의 인연입니다. 역사는 이 관계를 복귀시켜 놓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복귀역사는 본연의 아버지와 아들딸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15 우리는 절대적인 아버지 앞에 참아들딸로 서기 위하여 새로운 신앙으로 모든 의심의 세계, 사망의 세계, 죄악의 세계, 공포의 세계를 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늘이 요구하는 신앙의 내용을 안다면 그것을 입증시킬 수 있는 기준을 세워 하늘 앞에 나서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하나님의 참아들딸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런 신앙을 갖고 나설 때 여러분은 하나님과 영원한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영원한 선과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고, 고통으로부터 영원한 해방을 받을 수 있어 영원한 천국권 내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됩니다.

16 인간은 부모의 인연이 없으면 서러워하고, 부부의 인연이 없으면 서러워하며, 자기와 자기 가정을 보호해 주는 국가가 없으면 서러워합니다. 이것이 인간 서로서로의 정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같이 변할 수 있는 인연이라도 서러워하는데, 영원한 이념을 중심삼은 인연을 갖추지 못한 것을 서러워하지 않겠습니까? 이같이 인간은 땅 위에서 모든 조건을 갖추어도 거기에 가중하여 천륜의 영원한 인연을 또 바라게 되어 있습니다.

17 신앙자들은 변하는 이념적인 조건을 갖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변하지 않는 불변의 인연을 회복하되, 그 인연은 따로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자기가 사는 생활권 내에서 전체가 하나의 인연으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스스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그것이 실증적인 가치를 회복하고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즉 하나님과 일체적인 인연 가운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생활을 하게 해주는 신의 실체를 느낀다면 그 가치는 부분적인 가치가 아닙니다. 그렇게 전체적인 가치가 실현될 수 있는 환경을 회복하게 될 때, 개체와 전체의 가치는 자기를 중심삼고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18 통일교회의 신앙관은 지금까지의 신앙관과는 다릅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과 성경을 중심삼고, 즉 구주라는 명사를 중심삼고 막연하게 믿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모라는 명사를 중심삼고 하나님과 부자의 관계를 갖추어서 자녀의 입장에서 믿고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날 때부터도 그렇고, 살면서도 그렇고, 죽을 때까지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부모를 떠나 가지고는 생활할 수도 없고 활동할 수도 없습니다. 우주사적인 중심인 그 부모는 부모 자신만의 인연을 갖고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은 절대적인 인연을 갖고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하나님과 그 부모가 일치된 자리에 연결되지 않고는 책임을 완수할 수 없고 목적을 달성할 수 없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부모와 내가 언제든지 일치하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19 인간의 탄식은 무엇이며 온 피조만물의 탄식은 무엇입니까? 인간이 하늘 가정의 식구로서 참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주의 탄식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목표는 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대해서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참자녀로서 인류 전체가 형제가 되어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그 한 날을 맞기 위해 하나님이 6천년 동안 복귀섭리를 해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영적 성숙을 위해
20 예수님은 어찌하여 스스로를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하셨는가? 예수님이 이와 같이 인간이 도저히 믿기 어려운 조건을 제시하신 것은, 그들에게 이것을 믿으면 순간적으로 비약할 수 있는 혜택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인간이 무한한 믿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진심으로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게 되면 비약적으로 신앙이 성장하게 됩니다. 천국의 중심을 향한 여러분의 신앙의 정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만큼 영계도 여러분을 통해 더 크게 역사할 수 있고, 여러분이 무한한 신앙심을 소유한다면 여러분의 그 인격을 통해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정도의 초감각적인 세계의 사실과 우주의 사실을 일시에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이런 놀라운 것들을 잃어버렸습니다. 가고 가고 또 가야 하는 것이 무한한 세계를 지향하고 있는 신앙자의 자세라고 한다면, 어떤 한계권 내에 머물게 하는 신앙을 부르짖고 있는 무리를 물리치기 위해 끝날에는 우주적인 큰 싸움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21 본래 인간은 영육을 통하여서만이 완전한 인간이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영적 부모의 자리에만 계시면 영적 구원밖에, 반쪽의 구원밖에 할 수 없는 입장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머지 반쪽 구원, 즉 육적 구원을 해주기 위해서 재림주님이 이 땅에 오셔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재림주님이 예수님을 믿다가 간 영인들과 전 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을 하나로 통일시켜 하나님 앞에 바침으로써 제3 이스라엘의 출발을 볼 수 있습니다. 영적인 제2 이스라엘 민족이 되기 위해서는 세례를 통해야 했지만, 앞으로 오시는 주님을 중심삼고 제3 이스라엘이 되기 위해서는 축복의 문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22 아담 해와의 잘못된 사랑으로 말미암아 타락했기 때문에 이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축복의 관문을 통하여 신랑 신부의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천국에 못 갑니다. 예수님도 이 같은 책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이 일을 구세주가 다시 나타나 행하지 않고는, 땅 위의 모든 것들의 뿌리를 통하지 않고는 이 땅 위의 엉클어진 것을 수습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그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됩니다.

23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혔기 때문에 육신을 가진 참부모는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즉 하나님의 혈통은 세워졌지만, 영육을 함께한 참부모의 현현은 실현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영계에만 한정되어 있고 영적 구원만 이루어 온 것이며, 육적 구원, 즉 육신의 속죄는 실현되지 않은 것입니다. 결국 오늘날까지 기독교에는 영적인 아버지와 영적인 어머니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부모가 오시면 우리는 모두 그 부모에 의해 영육이 함께 다시 태어나기 위해 조건적, 혹은 상징적으로 어머니의 태내에 들어갔다가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피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위한 노정을 더듬으면서 걷고 있습니다.

24 육신과 영인체를 중심삼고 볼 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육이 아니라 영이라는 것입니다. 육은 70, 80년의 시간권, 한계권 내에서 살다가 사라지고 말지만 영은 시간권을 초월하고 공간권까지 초월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역사적인 책임을 깨닫고 책임을 다하는 것이 인간의 본의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육신을 중심삼고 잘살더라도 결국은 죽게 됩니다. 어차피 육신은 죽게 되어 있습니다.

25 예수님 당시 세례 요한이 가정적으로 예수님을 모시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대신 탕감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기독교 문화권이 재림주를 모시지 못함으로써 세례 요한적인 기독교 대신 통일교회를 만들어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재림시대에 있어서 세계적인 판도의 유태교와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와 마찬가지 입장에 있는 미국이나 자유세계가 하나되어야 할 텐데 그들이 모두 반대한 것입니다. 한국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신약시대에 예수님을 통해 영적 구원섭리를 해오던 것과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는 나라 없이 영적 구원섭리를 해 나온 것입니다. 끝날을 맞아 세계적인 판도의 영적 기반을 가진 기독교가 선생님과 완전히 하나되면 육적 기반이 연결되는 것은 문제없습니다.

26 우리는 먼저 사탄세계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바깥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감정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탄이 사랑하는 것을 증오해야 됩니다. 그리고 전 세계를 위하여 우리 자신을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선생님을 중심삼고 여러분이 개인·가정·종족·국가, 그리고 세계적으로 승리하게 되면, 우리는 제3 이스라엘, 이스라엘 선민, 또는 영적인 이스라엘을 다시 건설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온 인류를 영육 양면으로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27 영적인 기준과 육적인 기준 중에 어느 것이 보다 중요한 것이냐? 육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육은 영을 위하여, 영은 육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과 같은 입장에 매달려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영육이 합한 실체를 갖추어 보다 보람 있는 자리에서 출발해야 됩니다. 이것이 통일이념을 가진 여러분이 가야 할 길인데도 불구하고 육신을 중심삼고 먹고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부 조건에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참부모님 삶 안에서 성장
28 하나님의 소원과 인류의 희망의 귀착점이 되고, 신앙자가 승리할 수 있는 기점이 되는 하나의 터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한의 기원은 인류가 거짓 부모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참부모의 거룩한 인연을 중심삼고 그 앞에 순응하는 무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천지가 해방될 수 있고 천국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29 참가정은 참부모가 있어야 하고 참남자와 참여자, 참부부, 참자녀가 있어야 됩니다. 제일 중심이 뭐냐? 개인의 목적도 참부모이고, 남자 여자의 목적도 참부모입니다. 참부모가 되어 아들딸을 갖고 가정을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참부모를 신앙하자.’ ‘참부모를 믿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믿는 것은 확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확실하지 않으니까 믿는 것입니다. 확실하면 믿는 자리를 넘어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확실히 몰랐기 때문에 믿었지만 확실히 알고 나면 믿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왜 태어났는지, 우리 부부가 무엇인지, 자녀가 무엇인지, 가정이 무엇인지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참부모의 가정을 믿는 것이 아니고 참부모님의 가정을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참부모를 안다는 것입니다. 믿는 것이 아닙니다. 참부모를 믿는다고 생각하지 말고 안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그다음에는 참부모와 생활을 해야 됩니다. 참부모와 같이 살아야 됩니다.

30 메시아가 타락하지 않은 완성한 참부모입니다. 참부모가 나타나야 하나의 축이 되어 하나님과 인간이 연결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적인 참부모요, 아담 해와가 완성되면 실체적인 땅의 참부모가 됩니다. 이 축이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종교는 참부모의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지상에서 연결할 길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정성을 들이고 들여서 하늘과 상대적 기준을 맞춰 공중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신앙자들이 정성을 들이고, 들이고, 들이는 계속적인 수도의 생활을 통해 자기가 점점 영적으로 다리를 놓아 하늘과 만나는 생활을 해 나온 것입니다.

31 거짓 사랑, 거짓 생명, 거짓 혈통으로 태어난 것을 잘라 버리고 참사랑·참생명·참혈통에 접붙여 다시 살아나야 하는 것이 인류가 가야 할 길이요, 개인 전체가 가야 할 길입니다. 종교가 나온 것은 몸을 정복해서 하나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참사랑과 하나되어 이 땅 위에서 살다가 천국 갈 수 있는 아들딸들을 여러분이 낳아야 됩니다. 종교를 믿지 않고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참된 아들딸을 낳을 수 있는 사람이 못 돼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가 나와 몸을 정복해서 하나 만들고 참부모와 하나되어 접붙여야 됩니다. 돌감람나무가 참감람나무로 되어서 참아들딸을 낳아 이 땅 위에서 살다가 영원한 저나라로,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창조이상입니다.

32 참부모는 지옥 밑에서부터 천상 자리까지 가는 것입니다. 그 참부모의 뜻을 따라서 참부모와 심정일체 되고, 생활이상 일체 되고, 참사랑을 중심삼고 가는 참부모와 사람은 거리가 없습니다. 종적으로 세워 탕감한 것이 횡적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개인복귀 가정복귀, 종족·민족·국가·세계·천주복귀와 하나님 해방권까지 가야 8단계의 기준이 전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횡적으로 됨으로써 개인이 가정·종족·민족에 다 갈 수 있습니다. 개인은 가정으로 마음대로 갈 수 있고, 가정은 종족으로, 종족은 민족으로 마음대로 갈 수 있기 때문에 개인에서 출발하여 세상 끝까지 가서 돌아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