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사상 - 제4장 가치론(價値論) - 7

2010. 1. 6. 16:42참사랑 영원까지/통일사상

六. 종래의 가치관(價値觀)의 취약성(脆弱性)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오늘날의 가치관(價値觀)의 붕괴의 원인의 하나는, 종래의 가치관-주로 종교적 가치관-이 설득력을 상실(喪失)한 데에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종래의 가치관이 설득력을 잃어버렸는가, 여기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1) 기독교(基督敎) 가치관(價値觀)의 취약성(脆弱性)


기독교에는 다음과 같은 성구(聖句)를 통하여 훌륭한 덕목(德目)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태 22:39),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태 5:44),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태 7:12)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산상수훈, 마태 5장).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慈悲)와 선량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라디아 5:22~23).


그런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고전 8:1)라고 되어있는 바와 같이 덕목(德目)의 기초가 되는 것이 사랑이다. 그리고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다.(요한 4:7~8)라고 기록된 것과 같이 사랑의 기초는 하나님이다. 그런데 근대(近代)에 이르러 니체, 포이엘바하, 마르크스, 러셀, 사르트르 등에 의해서 하나님의 존재가 부정(否定)되었다. 하나님을 부정하는 이러한 사상에 대해서 기독교는 효과적으로 대처(對處)할 수 없었다. 즉 유신론(有神論)과 무신론(無神論)의 이론적 대결에 있어서 기독교는 패배(敗北)만을 거듭해 왔다. 그 결과 많은 젊은이들이 무신론의 포로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또 기독교 가치관(價値觀)에 대한 공산주의의 의도적인 도전이 있었다. 공산주의는 기독교가 말하는 절대적 사랑이나 인류애(人類愛)를 부정하고, 진정한 사랑은 계급애(階級愛) 또는 동지애(同志愛)라고 주장한다. 이해가 대립하고 있는 사회속에서 계급을 넘은 사랑은 있을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간은 프롤레타리아트 측에 서거나 부르주아 측에 서거나 양자택일(擇一)을 해야 한다. 따라서 인류애를 부르짖는 것은 말뿐이며, 실제로는 인류애(人類愛)를 실천할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 계급사회라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주장을 얼른 들으면 확실히 계급애가 현실적이고, 기독교의 사랑은 관념적(觀念的)인 것처럼 느껴진다. 특히 사랑의 원천인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확신을 가질 수 없는 상태에서, 종래와 같은 기독교의 신관(神觀, 사랑觀)에 설득력이 있을 수 없음은 너무도 당연하다 아니할 수 없다.


그리하여 최근에 이르러 제3세계(第三世界)에 해방신학(解放神學)과 종속이론(從屬이론)이 대두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해방신학에 의하면, 예수는 그 시대의 억압받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하여 오신 분이고, 혁명가였다는 것이며, 따라서 참다운 기독교인은 사회혁명을 위해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기독인의 가난한 사람에의 동정은 공산주의의 계급애(階級愛)와 부합하는 것이니, 현실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공산주의와 제휴(提携)할 필요조차 있다고 하는 주장까지 있었다.


종속이론(從屬理論)도 제3세계(第三世界)의 빈곤은 선진제국(先進諸國)과 제3세계(第三世界)와의 구조적 모순에서 오는 필연적인 결과이기 때문에, 제3세계(第三世界)가 빈곤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제3세계(第三世界)는 선진제국(先進諸國) 즉 자본주의 제국과 대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면서, 해방신학과 마찬가지로 종속이론도 공산주의와의 제휴를 도모했다.7) 해방신학(解放神學)이나 종속이론(從屬理論)은 공산주의와 같은 확고한 철학, 역사관, 경제이론이 없으므로 결국은 공산주의에 휩쓸려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기독교는 이와 같은 사태에 대하여 아무런 조치를 강구하지 못한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2) 유교(儒敎) 가치관(價値觀)의 취약성(脆弱性)


유교에는 다음과 같은 덕목(德目)이 있다.


① 오륜(五倫)……… 고래(古來)로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이 인륜(人倫)의 기초가 되었으며 맹자(孟子)에 의해 더욱 강조되었다.


② 4덕(四德)……… 맹자는 仁義禮智의 四德을 강조했다. 후에 한(漢)의 동중서(董仲舒)는 여기에 信을 더하여 仁義禮智信이라는 오상(五常)의 道를 세웠다.


③ 사단(四端)……… 맹자는 측은지심(惻隱之心; 불쌍히 여겨서 언짢아 하는 마음), 수오지심(羞惡之心; 불의를 부끄러워하고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 사양지심(辭讓之心; 사양할 줄 아는 마음), 是非之心; 시비를 가릴 줄 아는 마음)을 4단(四端)이라 하여 각각 인의예지(仁?義?禮?智)의 기본으로 삼았다.


④ 8조목(八條目)……… 격물(格物)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8)


⑤ 충효(忠孝)


그런데 유교(공자)의 덕목(德目)의 기초가 되는 것은 인(仁)이며, 仁의 기초는 天이었다.9) 그런데 유교에 있어서 天이란 무엇인가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공산주의자들은 토대(土臺)와 상부구조(上部構造)의 이론을 적용함으로써, 유교의 가르침은 봉건시대에 있어서 지배계급이 일반대중을 순순히 복종시키기 위하여 만들어낸, 계급지배(階級支配)의 합리화(合理化)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보았고, 따라서 오늘날의 권리(權利) 평등(平等)과 다수결원칙을 취지로 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적합하지 않다고 유교를 비판하였다. 그 결과, 유교의 덕목(德目)들은 오늘날 거의 사장되다시피 하였으며, 더구나 사회가 도시화되고 가정이 핵가족화 함으로써 유교적가치관은 더욱 붕괴해 가게 되었고, 그 결과 사회의 무질서(無秩序)와 혼란은 가중(加重)되어 갔던 것이다.


(3) 佛敎 가치관(價値觀)의 취약성(脆弱性)


불교의 근본적인 덕목(德目)은 자비이지만, 자비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수행(修行)생활이 필요하다고 한다. 인간은 수행생활을 통하여 성문(聲聞; 부처의 설법을 듣고 4제(四諦)의 이치를 깨달아 스스로 阿羅漢의 제자가 되기를 이상으로 하는 佛道修行者), 연각(緣覺; 부처의 가르침에 의하지 않고 홀로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진리를 깨달아 자유경에 도달한 성자)을 통과하고, 보살(성불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으로서 위로는 부처를 따르고 아래로는 일체의 중생을 교화하는 부처의 버금되는 성인), 佛陀(스스로 불교의 大道를 깨달은 성인)에 이르게 되며, 자비는 보살, 불타의 단계에서 이를 실천하게 된다. 성문(聲聞), 연각(緣覺)의 과정에서는 아직 자비를 실천하는 단계가 아니라고 한다.


인간은 세상의 모든 사물이 변화한다는 것, 즉 무상하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현실생활에 집착하고 있다. 이것이 苦의 원인이다. 따라서, 고(苦)를 없애기 위해서는 수행(修行)생활을 통하여 집착(執着)을 멀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집착에서 떠나고, 고(苦)에서 해방되는 것이 곧 해탈(解脫)이다. 이처럼 해탈하여 무아(無我)의 경지에 들어가야 비로소 참된 자비(慈悲)를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석가의 사상을 체계화한 것이 사제(四諦)와 팔정도(八正道)의 가르침이다. 사제(四諦)란 고제(苦諦), 집제(集諦), 멸제(滅諦), 도제(道諦)를 말한다. 고제(苦諦)란 현세에서의 삶은 모두 고통이다라는 가르침이다. 집제(集諦)는 고(苦)의 원인은 끝없는 집애(執愛, 渴愛)에 있다라는 가르침이다. 멸제(滅諦)는 열반의 경지를 이상으로 한다는 내용으로서 苦에서 해탈하기 위해서는 집착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가르침이다. 그리고 도제(道諦)는 열반에 이르는 데는 올바른 수행(修行)의 길이 있다고 하는 가르침이다. 그 길이 팔정도(八正道)인 바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여덟 가지의 항목(要目)이 있다. 사성제


① 정견(正見)... 모든 편견을 버리고 만물의 진상을 바르게 판단하라

② 정어(正語)... 바르게 말하라

③ 정업(正業)... 살생이나 도둑질을 하지 말라

④ 정명(正命)... 正法에 따른 바른 생활을 하라

⑤ 정념(正念)... 잡념을 떠나 진리를 구하는 마음을 언제나 잊지 말라

⑥ 정정(正定)... 번뇌로 인한 어지러운 생각을 털어버리고 바르게 정신을 집중시켜 마음을 안정시켜라

⑦ 정사유(正思惟)... 바르게 생각하라

⑧ 정정진(正精進)... 一心으로 노력하여 아직 발생하지 아니한 악을 낳지 못하게 하고 선(善)을 발생하게 하라.


그리고 인간에게서 괴로움이 생긴 원인을 추구하고, 12事項의 계열(系列)을 세운 것이 12인연(因緣; 12緣起)의 가르침이다. 그것에 의하면 인간에게 있어서 괴로움의 근본원인은 갈애(渴愛)로서 그 안쪽에 무명(無明)이 있다고 한다. 무명(無明)이란 진여(眞如)에 대한 무지를 말하는데, 고통이나 번뇌는 본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으로서, 이 無明에서 일체의 번뇌가 생긴다는 것이다. 대승불교(大乘佛敎)에서는 보살이 되기 위해서 지켜야 하는 여섯 가지의 덕목이 있는데, 그것이 다음과 같은 육바라밀(六波羅密)(六波羅密多)이다.


① 보시(布施)……… 자비심으로 남에게 조건없이 베풀어 주는 것

② 지계(持戒)……… 계율을 잘 지키는 것

③ 인욕(忍辱)……… 고통을 참는 것

④ 정진(精進)……… 불도(佛道)를 게을리 하지 않고 실천하는 것

⑤ 선정(禪定)……… 정신통일을 하는 것

⑥ 지혜(智慧)……… 옳고 그른 것, 선악(善惡)과 시비를 판단하는 것


이상의 팔정도(八正道)나 육바라밀(六波羅密) 등의 덕목의 근본이 되는 것은 자비(慈悲)이다. 그리고 자비의 기초가 되는 것이 우주의 본체로서의 진여(眞如)이다.10) 그런데 오늘날 이러한 불교의 가치관도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불교 가치관의 설득력이 약화(弱化)된 원인은 불교의 교리에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다.

 

즉 우주(宇宙)의 본체라고 하는 진여(眞如)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인가 하는 것이 분명치 않다는 것, 제법(諸法, 宇宙萬象)이 어떻게 생성(生成; 연기(緣起))되었는가 하는 것이 분명치 않다는 것, 무명(無明)은 왜 생겼는가에 대한 근본적 해명이 없다는 것, 현실문제(人生문제(問題), 사회(社會)문제(問題), 역사문제(問題))의 근본적 해결이 수도(修道)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 수도생활이 현실문제의 해결과 연결되어 있지않다는 것 등이다.


그 외에 공산주의에 의한 도전이 또한 있어 왔다. 공산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이 공격(攻擊)하곤 했다. 현실사회에는 착취, 억압, 빈부의 격차 등 사회악이 충만해 있는데 그 원인은 無明에 있는 것이 아니고 자본주의사회의 체제적(體制的) 모순(矛盾)에 있다. 불교의 수행은 개인의 구제(救濟)를 위한 현실로부터의 도피요, 문제해결의 회피인 것이다. 현실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수행하는 것은 위선일 뿐이다. 이와 같이 공격(攻擊)해 올 때 불교(佛敎)는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유효(有效)한 반론(反論)을 제시하지 못했다.


(4) 이슬람교(敎) 가치관(價値觀)의 취약성(脆弱性)


이슬람교에서는 예언자(豫言者) 중에서 마호멧이 가장 위대하며, 경전 중에서 코란이 가장 완전하다고 믿고 있으며, 아브라함, 모세, 예수 등을 마호멧과 같은 예언자로 믿고 있다. 그리고 코란 이외에 모세5경, 다윗의 시편(詩篇), 예수의 복음서(福音書)도 경전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이슬람교의 덕목에는 유대교나 기독교의 덕목과 공통되는 점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11) 이슬람교에는 6신(六信)과 5행(五行)이라는 믿음과 실천의 가르침이 있다.


육신(六信)이란 신(神), 천사(天使), 경전(經典), 예언자(豫言者), 말세(末世), 천명(天命)에 대한 믿음을 말하며, 오행(五行)이란 신앙고백, 예배, 금식, 희사(喜捨), 순례를 말한다. 신앙의 대상은 알라신(神)이며, 알라는 절대유일하며 창조주일 뿐만 아니라 지배자이다. 알라는 어떠한 신(神)인가 라는 물음에 대해서 이슬람교의 신학자들은 99가지의 속성을 들고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속성(屬性)으로서 깊은 자비(慈悲), 넓은 자애(慈愛)를 들고 있다.12) 따라서 이슬람교의 덕목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 자비(慈悲) 또는 慈愛라고 말한다. p. 318


이와 같이 이슬람교의 가치관에는 본래, 타종교의 가치관과의 공통성, 조화성(調和性)을 지니고 있으나 현실에 있어서는 오늘날까지 이슬람교 내부에서의 교파간의 싸움, 타종교와의 전쟁 등 심각한 대립을 많이 보여왔다. 그리고 그와 같은 대립에 편승(便乘)하면서 공산주의가 침투하곤 했다. 공산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이슬람교에서 말하는 인류애(人類愛)는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다. 이슬람 교파간의 싸움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계급사회에 있어서는 계급애(階級愛)가 있을 뿐이다. 이리하여 공산주의자들은 이슬람교와 타종교와의 대립을 이용하면서 이슬람교 국가의 일부(一部)를 친공(親共) 또는 용공(容共)으로 유도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슬람교는 내적으로 교파간에 대립을 보일 뿐 아니라 외적으로 他宗敎(예컨대 유대교, 기독교)와도 오래 전부터 심각한 대립관계에 있어 왔던 것이다. 같은 종교 내의 교파끼리, 그리고 다함께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를 믿는 타종교(他宗敎)와 이같은 심각한 대립을 보이고 있는 것은, 그 자체가 일반인(一般人)에게 대해서 이슬람교의가치관의 설득력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5) 인도주의(人道主義) 가치관(價値觀)의 취약성(脆弱性)


인도주의(人道主義)(humanitarianism)는 휴머니즘(humanism,人本主義)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인도주의(人道主義)와 휴머니즘은 구별된다. 휴머니즘이 인간의 해방을 목표로 삼고 인격(人格)의 자주성(自主性)을 추구해 온 사조(思潮)인데 비하여, 인도주의는 윤리적인 색채가 강하며, 인격의 존중(尊重), 박애주의(博愛主義), 사해동포주의(四海同胞主義) 등을 주장하고 있다. 인간에게는 동물과 다른 인간다움이 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이 존중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막연한 사고방식이 인도주의이다. 그러나 인도주의에서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기본문제가 명확히 해명되지 않고 있다.


그 때문에 인도주의(人道主義)는 공산주의의 공격에 대해서 약점을 노출시켜 왔던 것이다. 예컨대 인도주의적인 어느 경제인이 있다고 하자. 공산주의자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곤 할 것이다. 당신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즐길 수 있는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또 인간으로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식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청년이 있다고 하자. 그러면 공산주의자가 와서 그에게 말할 것이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공부하고 있는가. 자기의 출세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결국 부르주아를 위하여 봉사하는 결과만을 가져온다. 우리들은 人民을 위해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와 같이 비판할 때 양심(良心)的인 청년(靑年)들은 반론하기 어려울 것이며, 공산주의자가 되지 않더라도 마음 속으로는 공산주의 이론에 일리(一理)가 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인도주의(人道主義)的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공산주의자의 공격에 대하여 속수무책이었다. 이리하여 과거 적지 않은 인도주의(人道主義)者들이 공산주의로 넘어가기도 했다(공산주의가 무너진 오늘날에 와서 물론 그들은 공산주의가 결국 거짓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지만).


이상으로 종래의 여러 가치관들이 오늘날에 와서 그 설득력을 상실하게 된 경위를 살펴보았다. 그리하여 전통적인 가치관을 회복(回復)하는 길은, 확고(確固)한 신관(神觀)의 터 위에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定立)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