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사상 - 제1장 원상론 (原相論) - 12

2010. 1. 6. 16:57참사랑 영원까지/통일사상

3) 사위기대(四位基臺)의 종류


1) 사위기대(四位基臺)의 구성요소


이미 앞의 (1)성상과 형상의 수수작용의 항목에서 지적한 것처럼, 성상과 형상의 수수작용은 중심에 따라서 두 가지 결과를 낳는다. 그 하나는 합성체(合性體)이며, 또 하나는 신생체(新生體)이다. 즉 심정(心情)이 중심일 때는 합성체를 나타내고, 목적(창조목적)이 중심일 때는 신생체를 낳는다. 이러한 두 가지의 결과는 피조물 상호간의 수수작용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피조물의 수수작용이 원상(原相)內의 수수작용을 닮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수수작용에 두 가지의 종류가 있음을 뜻한다. 즉 성상-형상의 수수작용은 중심의 종류(심정, 목적)와 결과의 종류(합성체, 신생체)에 따라서 두 가지 종류로 나뉘게 된다. 즉 심정이 중심이 되고 결과가 합성체(合性體)인 경우의 수수작용과, 목적이 중심이 되고 결과가 신생체인 경우의 수수작용이 그것이다. 전자(前者)는 성상과 형상이 수수작용을 하여 중화체(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 원리강론, 1987, p. 35)를 이루는 경우이며, 후자(後者)는 성상-형상(이성성상)이 수수작용을 하여 하나님의 실체대상을 번식하는 경우(同上, p. 42), 즉 만물을 창조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것을 도표로 나타내면 그림 1-7과 같다.

 


이같은 수수작용은 피조물 특히 인간에 있어서도 나타난다. 우리는 인체가 마음과 몸의 통일체(統一體)인 것을 잘 알고 있다. 이것을 원리(창조원리)로 보면, 목적(창조목적)을 중심하고 성상(마음)과 형상(몸)이 수수작용에 의해서 합성체(合性體)를 이루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가끔 마음으로 구상(構想)(성상)하고, 이에 따라서 손 또는 도구(형상)를 움직여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한다. 이것을 원리로 표현하면, 목적(新作品을 만들려는 목적)을 중심하고 성상과 형상이 수수작용을 하여 신생체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합성체(合性體)를 이루는 경우의 수수작용에 있어서, 인간의 예에서와 같이 수수작용을 하기 전이나 한 이후, 성상과 형상의 결과에 있어서는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다. 성상도 형상도 수수작용을 하기 전이나 후나 마찬가지이다. 다만 그 양자가 결합해서 하나로 통일되어 있을 뿐이다. 이를 비유하면 남녀의 결혼과 마찬가지이다. 남자는 결혼 전이나 후나 내내 그 남자요, 그 여자도 결혼전이나 후나 내내 그 여자이다. 다만 다른 것은 결혼 후의 부부는 일체가 되었다는 점이다. 결과가 합성체(合性體)인 경우의 성상과 형상도 마찬가지이다.


다음 신생체를 이루는 경우의 수수작용에 있어서, 수수작용을 하기 전의 성상-형상과 수수작용을 한 후에 나타난 결과와는 본질적으로 전연 다르다. 즉 수수작용의 결과, 새로운 신생체(新生體)(作品)가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서 전자(前者) 즉 합성체를 이루는 경우의 수수작용을, 자기동일적(自己同一的) 수수작용, 또는 간단히 자동적(自同的)수수작용이라 하고, 후자(後者) 즉 신생체(新生體)를 산출하는 경우를 발전적(發展的)수수작용이라고 한다. 이 양자를 변화, 운동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전자(前者)는 수수작용의 전과 후에 있어서 성상-형상이 무변화이기 때문에 이것을 정적수수작용(靜的授受作用)이라고 하고, 후자는 수수작용에 의해서 변화된 결과로서 신생체(新生體)가 출현하였기 때문에 이것을 동적수수작용(動的授受作用)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성상-형상의 수수작용은 위치라는 관점에서 볼 때, 실은 주체와 대상간의 수수작용이며, 중심과 결과의 위치를 포함하면 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은 결국 사위기대(四位基臺)의 형성(形成)인 것이다. 따라서 위치로 볼 때, 자동적수수작용(授受作用)은 자동적(자기동일적)사위기대(四位基臺)임을 뜻하며, 발전적수수작용(授受作用)은 발전적사위기대(發展的四位基臺)임을 뜻한다. 이리하여 사위기대에는 우선 합성체(合性體)를 이루는 자동적사위기대와, 신생체를 이루는 발전적사위기대의 두 가지의 종류가 있음을 알게 된다.


2) 내적사위기대(四位基臺)와 외적사위기대(四位基臺)


그런데 사위기대(四位基臺)에는 이 외에 또 다른 두 종류의 사위기대가 있다. 그것이 내적사위기대(四位基臺)와 외적사위기대(四位基臺)이다. 이에 관해서 다시 설명하고자 한다. 이 두 가지의 사위기대를 알아보려면 위에서 처럼 먼저 수수작용에 내적수수작용과 외적수수작용이 있음을 이해하면 된다. 우리는 위에서 성상과 형상이 상대적관계를 맺어서 상대기준을 조성하면 반드시 수수작용이 벌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원상(原相)의 내용중의 신상의 항목에서, 하나님의 성상(본성상(本性相))은 기능적부분과 대상적부분의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는 것과, 기능적부분을 내적성상(內的性相), 대상적부분을 내적형상(內的形狀)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밝힌 바 있다.


즉 본성상(本性相) 내부에 다시 성상과 형상이 있는 것이다. 본성상을 중심하고 볼 때 내부에도 성상(내적性相)과 형상(내적형상(內的形狀))이 있고, 외부에도 성상(본성상(本性相))과 형상(본형상(本形狀))이 있다. 내부이거나 외부이거나 성상-형상이 공통요소를 중심하고 상대적 관계를 맺으면 반드시 수수작용이 벌어진다. 즉 외부의 본성상과 본형상 사이뿐 아니라, 내부의 내적성상과 내적형상 사이에도 수수작용이 벌어진다. 전자(前者)를 외적수수작용이라 하고, 후자(後者)를 내적수수작용이라고 한다. 이 내적수수작용에도 중심(심정(心情) 또는 목적)과 결과(합성체(合性體) 또는 신생체(新生體))가 포함됨은 물론이다. 이것을 도표로 나타내면 그림 1-8과 같다. 

  


이것은 본성상(本性相)만을 중심하고 볼 때, 안팎(內와 外)으로 수수작용이 벌어지고 있음을 뜻한다. 이것을 인간에 비유하면 인간이 내적 생활과 외적생활을 동시에 행하는 것에 해당한다. 내적생활이란 내면생활 즉 정신생활을 뜻하며, 외적생활이란 다른 사람과 접촉하면서 하는 생활을 말한다. 그런데 사실은 인간의 이 내적 생활도 수수작용이며, 외적생활도 수수작용으로서, 내적 생활은 마음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수수작용(내적授受作用)이요, 외적생활은 타인과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수수작용(외적授受作用)인데, 그 기원이 바로 원상(原相)의 본성상의 내적 및 외적수수작용인 것이다. 이와 같이 본성상으로부터 유래된 내적 및 외적수수작용은 인간뿐만 아니라 피조물의 모든 개체에도 예외 없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상술한 바와 같이 성상과 형상의 관계는 위치로 볼 때 주체와 대상의 관계이며, 따라서 중심과 결과를 포함한 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은 바로 사위기대의 형성인 것이다. 따라서 위치로 볼 때, 내적수수작용은 내적사위기대를 뜻하며 외적수수작용은 외적사위기대를 뜻한다. 즉 본성상(本性相)은 안팎으로 사위기대를 형성하고 있다. 원상내의 본성상을 중심한 이같은 내적사위기대와 외적사위기대를 특히 원상(原相)의 2단구조(構造)라고 부른다. 그리고 피조물도 원상의 구조를 본떠서 개체마다 안팎으로 사위기대(四位基臺)를 형성하고 있어서 이것을 존재의 2단구조(構造)라고 한다.


3) 원상(原相)의 2단구조(構造)와 존재의 2단구조(構造)


그러면 다음에 원상(原相)의 2단구조(構造)와 존재의 2단구조(構造)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인간을 포함해서 모든 피조물이 예외없이 본성상(本性相)으로부터 유래된 내적 및 외적수수작용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인간뿐만 아니라 피조물 전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예외 없이 내적사위기대 및 외적사위기대를 형성하고 있음을 뜻한다. 수수작용이란 심정(心情) 또는 창조목적을 중심한 원만하고 조화로운 상호작용이기 때문에, 만물은 예외 없이 이같은 창조목적을 중심으로 내적 및 외적인 수수작용 즉 내적 및 외적인 사위기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만이 타락으로 내적생활(精神생활) 즉 내적사위기대와, 외적생활(사회생활) 즉 외적사위기대가, 심정(心情)(사랑)이나 창조목적을 중심하지 못하고 자기중심이 되어버려서 상충, 갈등, 대립, 투쟁, 분규 등의 사회혼란을 야기(惹起)시키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성격의 사회적 혼란(현실문제)을 근본적으로 수습하는 길은, 인간이 내적 및 외적으로 본연의 사위기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본성상 중심의 내적사위기대 및 외적사위기대의 이론도 또한 현실문제 해결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원상내의 내적사위기대 및 외적사위기대는 피조만물의 존재방식(存在方式)의 기준이 되고 있다. 원상(原相)의 내적 및 외적사위기대가 바로 위에서 말한 바의 원상(原相)의 2단구조(構造)이다. 그리고 이것을 닮은 피조물의 안 밖의 사위기대를 존재의 2단구조(構造)라고 부른다. 이 존재의 2단구조(構造)는 창조의 닮기의 법칙에 의해서 원상의 이단구조를 닮아난 것이다. 이것을 도표로 나타내면 그림 1-9 및 그림 1-10과 같다.


4) 사위기대(四位基臺)의 종류


그러면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사위기대의 종류를 다루고자 한다. 이상의 설명에서 사위기대에는 자동적사위기대(四位基臺) 및 발전적사위기대(四位基臺) 외에, 내적사위기대(四位基臺) 및 외적사위기대(四位基臺)의 또 다른 두 종류의 사위기대가 있음을 알게되었다. 따라서 사위기대에는 원리적으로 4종류가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된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들이 서로 조합(組合)되어서 다음과 같은 현실적인 사위기대가 형성된다. 즉 내적자동적사위기대(內的自同的四位基臺), 외적자동적사위기대(外的自同的四位基臺), 내적발전적사위기대(內的發展的四位基臺), 외적발전적사위기대(外的發展的四位基臺)가 그것이다. 이것을 도표로 나타내면 그림 1-11과 같다. 다음에 이에 대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① 내적자동적사위기대(四位基臺)


이것은 내적사위기대와 자동적사위기대가 조합(組合)된 것이다. 즉 본성상 내부의 내적사위기대(내적수수작용)가 자기동일성 즉 불변성을 지니게 된 것을 말한다. 자동적사위기대란 성상(주체)과 형상(대상)이 수수작용을 한 후, 그 결과로서 합성체 또는 통일체를 이루는 사위기대를 뜻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위기대가 실제에 있어서는 안팎에서 동시에 형성된다. 예컨대 인간의 경우, 인간은 누구나 생각(사고(思考))하면서 생활하고 있는데, 생각한다는 것은 내적으로 내적성상과 내적형상이 수수작용을 하는 것, 즉 내적사위기대(의 형성(形成))를 의미하며, 생활한다는 것은 외적으로 타인과 수수작용하는 것, 즉 외적사위기대(의 형성(形成))를 의미한다.


이때의 생각은 막연하고도 비생산적인 생각으로서, 그 생각의 결과는 다만 마음의 한 상태일 뿐이다. 즉 내적성상과 내적형상의 합성체일 뿐이다. 이러한 합성체를 이루는 사위기대가 자동적사위기대이다. 그런데 그것이 내적으로 마음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내적자동적사위기대가 된다. 내적자동적사위기대도 그 중심은 심정 또는 창조목적20)이며, 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도 역시 원만하고 조화롭게 이루어지며, 그 결과 역시 합성체(통일체)이다. 모든 피조물은 예외 없이 다른 사람과 더불어 수수작용을 하게 되어 있는데, 그 때 반드시 그 내부에서도 수수작용 즉 사위기대가 형성된다. 이러한 내적사위기대의 원형이 바로 본성상(本性相)內의 내적사위기대이다. p. 100


② 외적자동적사위기대(四位基臺)


이것은 외적사위기대와 자동적사위기대가 하나로 조합된 것이다. 즉 본성상 외부(즉 본성상과 본형상간)의 외적사위기대가 자기동일성(불변성)을 띠게 된 것을 말하며,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기 직전의 속성의 상태 즉 성상과 형상이 중화를 이룬 상태를 뜻하는 것이다. 인간들은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은 후, 서로 돕고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수가 많다. 이때의 사위기대(四位基臺)(授受作用)가 바로 외적자동적사위기대이다. 단 이때에는 내적자동적사위기대가 동반되게 된다. 그 좋은 예가 부부생활이다. 남편이나 아내는 각각 내적생활(정신생활), 즉 내적자동적사위기대를 조성해 가면서, 그 터 위에서 서로 협조하고 화합하여 부부일체(夫婦一體; 合性體)를 이룬다. 이것이 외적자동적사위기대의 형성인 것이다.


이와 같이 외적자동적사위기대는 내적자동적사위기대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으며, 내적인 자동적사위기대의 터 위에서 외적자동적사위기대가 성립된다. 원상에 있어서의 이와 같은 내적 및 외적사위기대의 불가분리성(不可分離性, 떼려야 뗄 수 없는)은, 피조물 및 인간 상호간의 사위기대(외적자동적사위기대) 형성의 기준이 된다.


다음에 만물 상호간의 실례로서 태양과 지구를 예로 들어보자. 태양과 지구는 만유원력(萬有原力)을 주고 받으며 수수작용을 한다. 이때 태양은 주체이고 지구는 대상이다. 태양이 주체이기 때문에 지구에 대해서 중심적이며, 이에 대하여 지구는 대상이기 때문에 태양에 대하여 의존성(依存的)이다. 그런데 피조세계에 있어서의 수수작용은 원칙적으로 대상이 주체의 주위를 반드시 도는 원환운동으로서 나타난다. 그것은 원상내의 성상-형상의 수수작용의 원화성, 원만성의 상징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피조세계에 있어서 일정한 원환운동(圓環運動)이 벌어지면, 그것은 거기에 반드시 주체와 대상간의 수수작용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태양과 지구의 관계를 볼 때, 지구가 태양을 돌면서(公轉) 지구 자체도 돈다(自轉). 이것은 지구와 태양계의 자기동일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즉 지구는 자전을 통해서 자체의 존립(存立)(自己同一性)을 유지하고, 공전을 통해서 태양과 더불어 태양계 전체의 존립(存立)(自己同一性)을 유지한다. 지구의 이같은 자전과 공전은, 지구 내부에도 자동성 유지를 위한 수수작용(내적수수작용)이 벌어지고, 지구 외부에도(태양과의 사이에) 자동성 유지를 위한 수수작용이 벌어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태양은 태양대로 자전하면서 자체의 자동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동시에 지구에 대해서는 주체로서 지구의 의존의 중심이 되어 지구를 주관한다. 즉 지구에 만유원력과 빛을 준 후 지구의 공전을 도우면서 지구의 생물을 살린다. 뿐만 아니라 은하계의 중심에 대하여 대상이 되어서 은하계의 주변을 공전한다.


이와 같이 태양과 지구의 예로 볼 때, 거기에 내적자동적사위기대와 외적자동적사위기대가 동시에 조성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이 양 기대(兩 基臺)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내적자동성 유지와 외적자동성 유지를 나타내는 원환운동(자전, 공전)은, 본연의 인간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단 인간생활은 정신과 정신의 관계를 터로 한 생활이기 때문에, 원환운동은 물리적인 원환운동이 아니라 원상에서와 마찬가지로 사랑을 중심한 원만성, 조화성, 원활성을 띤 수수작용을 뜻한다. 따라서 내적자동성(내적자동적사위기대)의 유지는 사랑을 중심하고 타인과 화해하면서, 보다 더 효과적으로 타(他)에 봉사하려는 심적자세의 유지로 나타나며, 외적자동성(외적자동적사위기대)유지는 특히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상하간(上下間)일 때는, 대상의 주체에 대한 공전운동이 상위자(主體)에 대한 감사에 찬 순종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주체의 대상에 대한 주관은 진리의 힘과 사랑의 빛의 시여(施與; 베품)로서 나타난다. 즉 주체(上位者)는 대상을 잘 가르치면서 계속해서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이상이 본연의 세계에 있어서의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조성하게 되는 내적자동적사위기대와 외적자동적사위기대로서, 오늘의 타락한 사회에서는 그 모범적 실례를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이 오늘날의 가치관의 총체적인 붕괴와 사회적 범죄의 증대의 또 하나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원상의 내적 외적인 자동적사위기대이론은 단순한 신관(神觀)이 아니라 현실문제 해결의 또 하나의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이다.


③ 내적발전적사위기대(內的發展的四位基臺)


다음은 내적발전적사위기대에 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이것은 내적사위기대와 발전적사위기대가 조합된 것이다. 즉 본성상내의 내적사위기대가 발전성, 운동성을 띠게 된 것을 말한다.22) 발전적사위기대란 창조목적을 중심하고 주체와 대상이 수수작용을 하여 신생체(新生體)를 산출할 때의 사위기대를 뜻한다. 그런데 이러한 사위기대도 실제에 있어서는 안팎에서 형성된다. 그러나 자동적사위기대 때와는 달리, 동시적(同時的)이 아니고 계시적(繼時的)이다. 즉 내적인 발전적사위기대가 먼저 형성되고, 이어서 나중에 외적인 사위기대가 형성된다.


이러한 내적인 사위기대는 창조에 있어서 제일 먼저 형성되는 사위기대이다. 예컨대 인간이 제품을 만들거나 작품을 창작할 때에, 먼저 마음으로 구상해서 계획(청사진)을 세우고 나중에 그 구상, 계획에 의해 도구 또는 기계를 사용하여 물품을 제작(창작)한다. 즉 구상의 단계가 먼저이고 제작의 단계가 나중이다. 그리고 구상은 마음으로 하기 때문에 내적이요, 제작은 외부의 도구나 기계를 사용하면서 하기 때문에 외적이다. 그리고 구상도 수수작용 즉 사위기대 조성이요, 제작도 사위기대 조성이다. 그리고 구상한 결과도 신생체요, 제작한 물품도 신생체이다. 그리고 또 구상은 막연한 구상이 아니라, 일정한 물품을 제작하겠다고 하는 뚜렷한 목표를 세워놓고 한 구상이며, 제작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구상단계의 사위기대나 제작단계의 사위기대는 모두 목적을 중심한 사위기대인 것이다. 목적과 신생체를 포함한 사위기대는 발전적사위기대이다. 이것이 안팎의 두 단계에 걸쳐서 형성되었으니 처음 구상단계의 것이 내적발전적사위기대요, 다음의 제작단계가 외적발전적사위기대의 단계이다.


인간의 제작의 경우, 이처럼 구상(構想)(내적발전적사위기대)이 먼저 이루어지고, 이어서 제작(외적발전적사위기대)이 이루어지는 것은, 그 원형(原型)이 하나님의 원상의 구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본성상내의 내적성상과 내적형상간의 목적 중심한 수수작용으로서, 신생체인 구상(로고스, 말씀)이 형성되는 내적발전적사위기대이다. 이것이 피조물의 모든 유형의 내적발전적사위기대의 원형이다.


그러면 피조세계에서 나타나는 내적발전적사위기대의 원형으로서의, 본성상내의 내적발전적사위기대에 관하여 좀 더 상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 중심=목적, 주체=내적성상(내적성상), 대象=내적형상(內的形狀), 내적수수작용, 결과=구상(構想) 등의 소항목을 가지고 설명키로 한다.


i) 중심=목적


내적발전적사위기대의 중심은 두말 할 것도 없이 목적 즉 창조목적이다. 그런데 이 목적은 사랑하고자 하는 정적충동(情的衝動)인 심정을 터전으로 한 창조목적이다. 하나님의 창조는 심정을 동기로 한 창조이기 때문에 창조목적 그 자체는 어디까지나 사랑의 대상을 세워서, 그를 통하여 피조세계에 사랑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결국 하나님께서 기쁨과 위로를 받고자 하심이었다. 인간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사랑의 대상으로 지음 받았고, 만물은 인간의 사랑의 대상으로 지음 받았다. 따라서 인간의 피조목적은 인간이 서로 사랑하고 만물을 사랑함으로써, 하나님께 기쁨과 위로를 돌려드리는 것이요, 만물의 피조목적은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인간에게 美와 기쁨을 돌려드리는 것이다. 그러나 타락 때문에 인간은 서로 사랑할 수 없게 되고, 만물을 사랑할 수 없게 되고, 만물로부터의 아름다움마저 전면적으로는 수용할 줄을 모르게 되었다. 이 때문에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고 만물을 괴롭게 하는(로마서 8:22) 결과를 낳고만 것이다.


인간은 창조의 닮기의 법칙에 따라서 하나님을 닮아나도록 지음 받았다. 창조목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즉 인간은 모든 창조활동(제작, 생산, 창작 등의 활동)에 있어서, 그 목적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락으로 인하여 자기중심주의(中心主義), 이기주의(利己主義)로 흘러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현할 수 없게 되었다. 이리하여 천도(天道)를 어긴 결과가 되어서 인간사회는 혼란에 빠지게 된 것이다. 따라서 오늘의 세계적 대혼란을 수습하는 방안의 하나는, 모든 창조활동에 있어서 각양의 창조목적을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일치시키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따라서 내적발전적사위기대의 중심인 목적에 관한 이론까지도 현실문제 해결의 또 하나의 기준이 된다.


ii) 주체=내적성상(內的性相)


ㄱ) 내적성상(內的性相)이란 무엇인가


내적발전적사위기대에 있어서 주체의 입장에 있는 요소는 물론 내적성상이다. 내적성상이란 지(知)-정(情)-의(意)의 세 가지의 심적기능(心的機能)이다. 그런데 이 3기능은 각각 별개의 독립된 기능이 아니고 서로 연관되어 있다. 지적기능(知的機能)에도 情과 意가 포함되어 있으며, 정적(情的)기능에도 지(知), 의(意)가 포함되어 있고, 의적(意的)기능에도 지(知), 정(情)이 포함되어 있다. 즉 3기능은 서로 통일되어 있어서 그 통일체가 때로는 지적기능을 더 많이 발휘하기도 하고, 때로는 정적기능을 더 많이 발휘하기도 하고, 때로는 의적기능을 더 많이 발휘하기도 한다.


지정의(知情意)의 기능(機能)이란 이러한 성격의 세 기능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내적발전적사위기대 형성에 있어서, 하나님은 이와 같은 성격의 3기능을 발휘했다고 본다. 지정의(知情意)의 3기능의 성격을 이렇게 이해하게 될 때, 현실세계에 있어서 이에 대응하는 본연의 가치, 즉 眞-美-선(善)도 공통요소를 갖고 있음을 알게 되고, 더 나아가서 이 3가치에 대응하는 3대문화 영역(領域; 과학-철학 등의 학문분야, 예술분야, 종교-도덕분야)도 상호 공통요소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중간 영역도 있게 됨을 또한 알게 된다.


이 사실은 창조와 관련해서 현실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즉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에 있어서 먼저 심정을 동기로 하여 창조목적을 세우고, 그 목적을 중심하고 지정의의 3기능을 총동원시켜서, 즉 '전력투입(全力投入)'하여 ('하나님은 천지 창조에 있어서 자신을 전력 투입하셨다':선생님 말씀) 창조를 개시(開始)하고 추진하였음을 뜻하며, 뿐만 아니라 재창조에 있어서도 지정의(知情意)의 기능을 총집중시켜 왔음을 뜻한다. 그리고 다시 이 사실은 복귀역사에 있어서, 특히 말세적인 혼란이 계속되는 오늘에 있어서, 이 지(知)-정(情)-의(意)에 대응하는 과학, 철학 등의 학문분야와 음악, 무용, 회화, 조각, 문학, 시 등의 예술분야와 종교, 도덕윤리 등의 규범분야 등의 3대 문화분야는 하나님의 창조이상세계의 실현에, 즉 통일문화세계, 심정문화세계의 창건에 총동원되어야 함을 뜻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현실을 바라볼 때, 모든 문화분야는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갈팡질팡하고 있으며, 뿐만 아니라 점점 더 저속(低俗)한 방향으로 타락해 가고 있다. 여기에 공산주의와 김일성주체사상과 같은 사이비(似而非) 개혁사상이 침투하여, 모든 문화영역 특히 예술분야를 프롤레타리아예술이니, 민중예술이니 하면서 더욱 저속화시키고 있고 더욱 불모화(不毛化)시키고 있다. 이것은 사탄이 그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문화영역에 종사하고 있는 모든 지성인, 학자들의 사명은 자명해진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 창조목적 실현과 창조이상세계의 건설을 위하여, 그리고 통일문화(심정문화(心情文化))세계의 창건을 향하여, 총궐기하며 총진군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창조시에 원상(原相)의 본성상내의 내적발전적사위기대가 형성됨에 있어서, 내적성상인 지정의(知情意)의 3기능이 목적 중심으로 총동원되었다는 사실까지도, 현실문제 해결에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ㄴ) 내적성상(內的性相)은 육심(肉心)과 생심(生心)의 통일체이다.


끝으로 여기에 한가지 첨부할 것은, 인간의 지정의(知情意)에는 영인체의 지정의가 함께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육신과 영인체의 二重體(통일체)이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本心)도 육심과 생심의 통일체이다. 따라서 내적성상도 육신의 지정의의 기능과 영인체의 지정의의 기능이 복합적으로 통일되어 있다.


육심의 지적기능은 감각과 지각정도이며, 기껏해야 약간의 오성적기능(悟性的機能)을 나타내는데 불과하다. 그러나 생심의 지적기능은 감성(感性), 오성(悟性), 이성(理性)을 전부 갖고 있어서 보편적 진리를 체득할 수도 있다. 생심(生心)은 또 자아(自我)를 인식하고 반성(反省)하는 능력 즉 자아의식(自我意識)(self-consciousness)도 갖고 있다. 과학자들(예:대뇌생리학자 존 엑클스, 생물학자 앙드레 구도페로 등)이 인간에게만 자아의식(自我意識)이 있고, 동물에게는 그것이 없다고 한 것은, 인간에게는 생심이 있기 때문이다.


육심의 정적(情的)기능은 생심의 그것에 비하여 저차원이다. 생심과 마찬가지로 희로애락을 느끼며 제한된 범위내에서는 애타심(愛他心)도 발휘한다. 그러나 생심의 정적기능은 고차원적이어서 인간이 예술생활을 할 수 있고, 자신의 목숨까지 버리면서 민족이나 인류를 사랑하는 것은 인간이 생심(生心)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육심의 의적(意的)기능도 생심의 그것에 비하여 역시 저차원이다. 통일사상에 있어서의 의적기능은 의욕성(意欲性)으로서, 창조목적(創造目的; 개체목적, 전체목적)을 달성하려는 실천심(實踐心; 실천(實踐)力) 또는 결단심(決斷心; 決斷力)을 말한다. 동물의 창조목적은 주로 물질생활(육체 중심의 먹기, 살기, 새끼낳기 등)을 통해서 달성되지만, 인간의 창조목적은 육신생활을 터로 한 정신생활(眞?美?선(善)의 가치의 생활)을 통해서 달성되기 때문에, 의적기능에도 동물과 인간 사이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게 된다. 즉 동물의 의적기능은 의(衣)?식(食)?주(住)?성(性)에 관한 것이지만, 인간의 의적기능은 육심의 의적기능과 생심의 의적기능이 복합되어 있으며, 본연의 인간에게는 생심의 기능(가치의 실현 및 추구의 기능)이 육심의 기능보다 우위(優位)에 있기 때문에, 인간의 의적기능이 선차적으로는 가치(정신적가치)를 추구하며, 후차적으로는 물질생활을 추구한다.


이상으로 인간의 지(知)-정(情)-의(意)의 기능은 육심의 지정의와, 생심의 지정의와의 통일임을 밝혔다. 즉 지적기능도 두 마음(육심, 생심)의 지적기능의 통일이요, 정적기능도 의적기능도 각각 두 마음의 기능의 통일이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통일된 지적기능, 정적기능, 의적기능 등 3기능마저도, 서로 분리(分離)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상술한 바와 같이 통일되어 있는 것이다. 통일사상의 인식론(認識論)에는 이 내적성상의 통일된 측면을 특히 부각시켜서 이것을 영적통각(靈的統覺)이라고 부른다. 생심 중심의 통일된 인식능력(認識能力)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볼 때, 내적성상(內的性相)을 지(知)-정(情)-의(意)의 통일체로 보는 관점은 자유의 문제에 대해서, 전통적인 미해결문제를 해결해 주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iii) 대상(對象)=내적형상(內的形狀)


ㄱ) 내적형상(內的形狀)이란 무엇인가


다음은 내적발전적 사위기대(內的發展的 四位基臺)에 있어서의 대상의 입장인 내적형상에 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내적형상은 본성상 내에 있는 꼴의 부분으로서 관념, 개념, 원칙, 수리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관념은 이미 창조되었거나 또는 장차 창조되어질 피조물 하나하나의 구체적인 표상(表象) 즉 영상(映像)이며, 개념은 일군(一群, 한 무리)의 관념에 공통적으로 포함된 요소를 마음속에 영상화(映像化)한 것이다. 그리고 원칙은 피조세계의 자연법칙과 규범법칙 등의 근본원인이 되는 법칙이며, 수리(數理)는 수적(數的) 원리로서 자연계의 수적현상(數的現象)의 궁극적 원인이다.


그러면 내적형상을 이루고 있는 유형(有形)의 요소를 창조와 관련시켜서 보자. 이 내적형상은 하나님의 우주창조에 있어서 어떠한 역할을 하였을까. 그것은 비유컨대 주형(鑄型)의 역할을 다한 것이다. 주형이란 쇠붙이를 녹인(融解한) 액체를 부어서, 물건을 만드는 거푸집을 뜻한다. 창조에 있어서 이 융해액(融解液)에 해당한 것이, 본형상 즉 전에너지(前에너지, 에너지로 변환되기 전의 상태)(Pre-Energy; 무형의 에너지)이다. 마치 인간이 주형에 철(鐵)의 융해액을 부어서 철물을 만들듯이, 하나님은 이 내적형상이라는 영적(靈的) 주형에 본형상(本形狀)이라는 영적액체(靈的 液體)를 부어 넣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만물을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다.


ㄴ) 내적형상(內的形狀)은 일종의 주형(靈的鑄型)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내적형상(內的形狀)內의 주형은 인공주형(人工鑄型)과 달라서 겉모양만의 주형이 아니라, 내용 즉 세밀한 내부 구조까지를 갖춘 주형(영적주형)이다. 인간의 경우, 오장육부(五臟六腑)를 위시한 각종의 기관, 조직, 세포에 이르기까지 세밀한 구조를 갖춘 주형이며, 창조에 있어서 이러한 주형의 역할을 다한 것이 내적형상내의 여러 관념(단순관념(觀念), 복합관념(觀念))이라고 본다. 우리가 만물을 바라볼 때, 大小를 막론하고, 또 종류별을 막론하고 만물은 반드시 일정한 꼴을 갖고 있고, 일정한 종류에 걸쳐 공통성을 지니고 있으며, 또 일정한 법칙이 작용하면서 일정한 수적(數的)내용을 갖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마치 철물의 모양이 그 주형의 꼴을 닮아난 것처럼, 모두 주형(영적주형)인 내적형상(복합관념)을 닮아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끝으로 또 하나 분명히 해둘 것은, 이상에서 설명한 내적형상이 모두 창조에 직접 관련된 것, 즉 피조물의 직접적인 모형이 된 것 뿐이었다는 점이다. 그 외에 창조의 모형(模型)과는 무관한 관념, 개념, 원칙, 수리 등이 얼마든지 있다. 예컨대 '하나님', '나', '부모', '美', '이상', '목적' 등의 관념(觀念)이나 개념(槪念)은, 시공의 세계에 만물로서 지음받을 수는 없는 것들이다. 이들은 창조와 간접적인 관련은 있어도, 직접적으로 피조물이 되지는 못한다. 이상으로 내적형상에 대한 설명을 마친다.


iv) 내적수수작용(授受作用)


ㄱ) 내적수수작용(授受作用)이란 무엇인가


다음은 내적수수작용에 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내적발전적사위기대가 본성상 내부에서 신생체의 형성을 위한 수수작용에 의해 벌어지는 사위기대(四位基臺)이기 때문에 이 수수작용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이 수수작용 역시 주체와 대상간의 수수작용인데 이것은 바로 내적성상인 지(知)-정(情)-의(意)의 통일적기능과 내적형상간의 수수작용을 뜻한다. 물론 위에서 밝힌 창조목적을 중심한 수수작용이다. 그런데 이 내적수수작용은 요컨대 생각, 사고(思考), 구상(構想)을 뜻한다. 왜냐하면 본성상은 하나님의 마음이며, 그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수수작용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생각하는 것을 왜 수수작용(授受作用)으로 보느냐 하는데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우선 생각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생각은 다음과 같은 기능을 다한 마음의 작용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기억, 회상, 판단, 관심, 계획, 의견, 이해, 상상, 추측, 추리, 희망, 사색, 명상, 해석 등을 하는 마음의 작용이다. 심지어 망상(妄想)까지도 생각의 개념에 포함된다. 이것들은 마음에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음의 현상(現象)(생각)은 과거에 경험한 것에 대한 생각과, 현재의 상황(狀況)에 대한 생각, 그리고 앞으로의 일에 대한 생각의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과거에 경험한 것에 대한 생각이란 기억에 관한 것이며, 현재의 상황에 대한 생각이란 의견, 추측, 이해 등에 관한 것이며, 미래의 일에 대한 생각은 계획(計劃), 희망(希望), 이상(理想) 등에 대한 것을 말함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여기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어떠한 생각도 미리 마음속에 일정량(一定量)의 관념(일종(一種)의 마음의 영상(映像))이 들어 있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마치 텔레비전의 시청(視聽)은 형광판(螢光板)에 영상이 비쳐질 때에만 가능하며, 영상이 형광판에 비쳐지지 않으면 시청이 불가능한 것과 같다. 그런데 이러한 마음의 관념(영상(映像))은 오로지 경험을 통해서만 형성된다. 우리가 눈을 감고도 마음속에서 새를 생각하고 꽃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실지로 과거에 새나 꽃을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ㄴ) 관념(觀念)의 조작(操作) 생각하는데 일정량(一定量)의 관념이 필요하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것은 과거의 일을 되새기는 생각뿐만 아니라 현재의 일을 살피고, 앞날의 일을 내다보는 생각까지도 모두, 과거에 일단 경험한 관념을 가지고서만 가능함을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의 경험이 풍부할수록 즉 경험한 관념이 많을수록 생각을 많이 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저축(貯蓄)을 많이 해두면 필요할 때에 찾아내서 언제든지 살림을 늘릴 수 있는 것과 같다. 또 우리가 가재도구를 창고에 많이 저장해 두면, 언제든지 필요할 때에 꺼내어 쓸 수 있는 것과도 같다. 인간이 지식(知識)을 배우고 견문(見聞)을 넓히는 것도, 결국은 기억의 창고에 여러 가지 관념(觀念)을 많이 저장하기 위한 것이며, 실제로 많이 저장된다. 즉 생각이란, 창고에서 저장물을 끄집어내어 필요할 때마다 적절히 사용하듯이, 기억의 창고에서 관념을 끄집어내어 여러 가지로 다루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하는 것을 통일사상에서는 관념(觀念)의 조작(操作)(Operation of Ideas)이라고 한다. 그러면 이제부터 관념의 조작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관념이란 마음속에 간직되어 있는 표상(表象) 또는 영상(映像)을 말하며, 사물 하나하나의 영상과 같이 간단한 것을 단순관념(單純觀念)이라 하고, 이 단순관념이 2개이상 복합(複合)된 것을 복합관념(複合觀念)이라 한다(단 이것은 비교상의 상대적 개념이다). 그리고 조작이란, 기계같은 것을 이리 저리 다루는 것을 뜻한다. 특히 여기서의 조작의 뜻은 예컨대 필요한 여러 부품이나 기계를 저장소에서 끌어내는 것(인출(引出)), 또는 필요한 기계와 기계를 연결시키는 것, 또 필요에 따라서 기계를 구성부분(構成部分)으로 분해하는 것, 혹은 부품을 모아서 새로운 기계를 조립하는 것, 기계의 몸체는 그냥 두고 두 개의 부품의 위치를 교환하는 것, 또는 여러 기계를 연결시켜서 하나로 통일하는 것 따위의 작업을 의미한다.


ㄷ) 관념(觀念)의 조작(操作)은 수수작용(授受作用)이다.


동일한 방식으로 관념을 다루는 것이 관념(觀念)의 조작(操作)이다. 즉 첫째로, 기계의 인출(引出)에 해당하는 관념의 조작이 상기(想起(記憶), 기억을 떠올림)이며, 기계의 연결의 조작에 해당하는 것이 관념과 관념의 연합(聯合) 또는 복합(複合)이요, 기계의 분해에 해당하는 것이 관념의 분석(分析)이요, 새 기계의 조립에 해당하는 것이 신관념의 구성(構成)이요, 부품의 위치 교환에 해당하는 관념조작이 환위(換位)요, 여러 기계의 연결, 통일에 해당하는 것이 관념의 종합(綜合)이다. 그 외에 또 중요한 관념조작의 하나로, 일정(一定)한 관념(觀念)을 아니다라고 부정하는 일도 있는데, 이것을 환질(換質)이라고 한다. 이상을 요약하면 관념의 조작(운용 operating system)이란, 과거에 경험한 여러 관념들 중에서 필요한 것을 가지고 상기, 연합, 분석, 구성, 종합, 환위, 환질 등을 행하는 것을 말한다.


상기(想起; 회상 anamnesis)는 과거의 경험중에서 필요한 관념을 이끌어내는 것이요, 연합(聯合)은 한 관념을 생각할 때, 그로 말미암아 다른 관념이 연상되는 것이며(예:아버지를 생각할 때에 어머니가 연상됨과 같은), 여러 작은 관념들이 모여서 큰 관념을 이루는 것이 구성(構成)이요(예:토대, 주춧돌, 기둥, 도리, 들보, 대들보, 서까래, 지붕, 방 등의 관념이 모여서 집이라는 큰 관념이 구성되는 것), 어떤 관념을 작은 관념으로 나누는 것이 분석이며(예:인체는 신경계통, 소화기계통, 감각기관, 순환기계통, 호흡기계통, 근육조직, 비뇨기, 내분비선, 임파계통으로 되어 있다고 할때의 세분하는 방식), 분석한 여러 관념을 다시 하나의 큰 관념으로 總合하는 방식이 종합이다(예:신경계통, 순환기계통, 호흡기, 소화기, 감각기관, 비뇨기 등이 합해서 된 것이 인체이다 라고 할때의 생각(思考方式).


그리고 하나의 판단의 뜻을 변치 않게 하면서 주어와 술어를 바꾸는 조작을 환위(換位; 위치 바꿈)라 하고(예:모든 A는 B이다를 어떤 B는 A이다라고 하는 따위), 하나의 긍정판단을 부정판단(否定判斷)으로 하되 그 술어를 모순(矛盾)관념(觀念)으로 바꿔서 의미를 변하지 않게 하는 조작을 환질(換質)이라고 한다(예:A는 B이다를 A는 非 B가 아니다라는 따위의 사고방식). 설명이 조금 장황했지만, 생각이 내적수수작용이라는 것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ㄹ) 수수작용(授受作用)의 유형


앞에서 말한 여러가지 종류의 사고(思考):예컨대 회상, 판단, 의견, 상상, 이해, 추리 등)이 여러 가지 방식의 관념(觀念)조작(操作)에 불과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관념조작이 바로 수수작용이다(그림 1-12 참조(參照)).

 


이제부터 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관념의 조작이 수수작용이라는 것을 이해하려면 먼저 수수작용의 유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 유형이란 양측의식형(兩側意識型(第一型)), 편측의식형(片側意識型(第二型)), 무의식형(無意識型(第三型)), 타율형(他律型(第四型)), 대비형(對比型(조합(組合)型: 第五型))의 5형의 수수작용을 말한다.


양측의식형은 주체와 대상이 모두 의식을 지니고 수수작용을 하는 경우를 말하며, 편측의식형은 주체만이 의식을 갖고 있고 대상은 무기물이거나 무기물과 같은 無생명(生命)의 입장에 있는 존재 사이에서 벌어지는 수수작용을 말한다. 또 무의식형(無自覺型)은 주체와 대상이 전연 알지 못하는 사이에서 벌어지는 수수작용(예: 동물과 식물사이에 CO₂와 O₂의 교환)을 말하며, 타율형은 양측이 모두 무생명인 채 제3자(第三者)로부터 주어진 힘에 의해서 이루어진 수수작용의 경우(예: 제작자의 의도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의 경우)를 말한다.


그리고 대비형은 인식 또는 판단하는 경우에 형성되는 것으로서, 편측의식형과 같으면서도 대상이 한몫에 두 개 또는 두 개 이상일 때, 혹은 대상의 속성이 두 개 또는 그 이상일 때, 이들의 요소를 비교해서 인식(認識)(判斷)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길을 걸어가는 한 쌍의 남녀(男女)를 멀리서 바라보고 두 사람의 연령, 태도 등을 비교 혹은 대조해서 그들이 부부라는 것을 판단하는 따위, 또는 가게에서 상품을 바라보고 비교한 후 좋은 것을 택하는 것, 혹은 푸른 숲속에 붉은 기와집의 지붕이 있음을 보고 그 녹색(綠色)과 적색(赤色)을 대조해서 조화의 미(美)를 느끼는 따위가 모두 대비형의 수수작용이다.


이때 이 대비에 의한 판단은 비록 그것이 수수작용이라 하더라도 주체가 일방적으로 행한다. 주체가 일방적으로 대비 및 판단하는 것이 수수작용이 되는 이유는, 주체는 대상에게 관심을 주고 대상은 주체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것이 주고 받는 작용의 형식이 되기 때문이다.


ㅁ) 생각(思考)도 대비형의 수수작용이다.


앞에서 생각(思考)이 수수작용이라고 했는데, 그것이 실은 이 대비형의 수수작용이다. 즉 인간의 경우 마음(성상(性相)) 내부의 영적통각(靈的統覺, 내적성상), 즉 지(知)-정(情)-의(意)의 통일체가 주체가 되어서 내적형상 속에 있는, 그리고 경험에서 얻어진 여러 관념(영상)들을 먼저 대비(對比, 또는 對照)한다. 이 대비작용 자체도 좁은 의미의 대비형수수작용이다. 대상의 두 요소중의 하나를 주체로, 다른 하나를 대상으로 삼고 양자를 대비하는 것으로서, 대비는 비록 영적통각이 하는 것이지만, 영적통각의 관심이 양자사이를 왕래하기 때문에 내적형상내에서 대비되는 임의의 두 요소 사이의 작용도 일종의 수수작용이다. 좁은 의미의 대비형(對比型)수수작용(授受作用)인 것이다. 결국 영적통각과 내적형상과의 수수작용도 대비형수수작용이요, 내적형상내의 대비되는 임의의 두 요소 사이의 작용도 대비형수수작용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수수작용(對比)의 결과이다. 그 결과는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양자가 완전히 일치할 때도 있고, 비슷할 때도 있지만 일치하지 않을 때도 있다. 때로는 정반대일 경우도 있다. 또 양자가 대응관계(對應關係)에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수수작용은 목적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목적에 따라서도 결과가 달라진다. 이러한 다양한 결과를 예상하면서 영적통각은 가급적 일정한 방향으로 이 수수작용을 조정해 나아간다. 이것이 바로 생각의 내용이다. 생각에 회상, 이해, 판단, 추리, 희망 등 여러 가지가 있게 된 것은 이 수수작용의 목표(目的)와 대비방식의 차이에서 연유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리하여 다양한 생각이 계속되면서 물 흐르듯 이어져 나아간다.


그런데 물건을 창조할 때에는 이 생각의 흐름에 일단 매듭이 지어진다. 즉 창조코자 하는 주형(鑄型(模型))이 될 관념(단순관념, 복합관념 등)이 정해진다(이것을 주형성관념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이것은 대비형의 수수작용에 의해서 신생체가 형성됨을 뜻한다. 즉 창조에 관한한 그 주형은 신생체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로고스(말씀, 구상)로서의 신생체가 아니며, 그 전단계인 것이다. 따라서 이것을 前로고스(PreLogos), 또는 전구상(前構想)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때의 신생체인 신생관념(新生觀念; 주형성관념)은 그 속에 그 관념에 필요한 개념, 원칙, 수리 등의 요소를 다 갖춘, 그리고 치밀한 내부구조까지를 갖춘, 보다 더 구체화된 관념이다. 창조에 있어서 이와 같이 내적수수작용을 통해서 신생관념이 형성되는 단계가 내적수수작용의 초기(初期)단계이며, 실제의 피조물에 대한 구상(構想)(로고스)은 후기(後期)단계에서 이루어진다.


ㅂ) 목적이 중심(中心)이다.


이상으로 생각이란 마음(性狀)속에서 벌어지는 내적수수작용(授受作用)임을 밝혔는데, 이것이 수수작용이기 때문에, 목적이 중심이 되고 있다는 데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인간이 체험하는 생각에는 목적이 없는 막연한 생각도 적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각(구상)은 처음부터 목적 중심이었다. 그것이 바로 심정을 터전으로 한 창조목적이었다.


하나님이 창조를 생각하기 前단계, 즉 심정 중심의 사위기대(四位基臺)(自同的四位基臺)만의 단계도 있었다고 보지만, 그 심정도 억제하기 어려운 정적인 충동이기 때문에 자동적사위기대의 터 위에서 필연적으로 창조목적이 세워져서 발전적사위기대가 세워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며, 그것은 창조 후에도 이 자동적사위기대가 발전적사위기대의 터전이 되고 있다는 사실(하나님의 不變性, 絶對性)이 이것을 더욱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구상이 목적(심정을 터로 한 창조목적)없이는 세워질 수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사실을 시사(示唆)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것 또한 중요한 현실문제 해결의 또 하나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이 아무렇게나 생각하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 본연의 인간에게 있어서는 반드시 사랑(心情)을 동기로 하고 피조목적(전체목적과 개체목적)의 달성을 위해서만 생각하게 되어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의 사회적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자기 중심적인, 자의적(恣意的)인 생각 패턴을 버리고 본연의 사고 패턴으로 돌아와서 사랑을 동기로 한 창조목적 실현(實現(地上天國實現))을 위하여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26) 이상으로 내적수수작용에 대한 설명을 마친다. p.118


v) 결과=구상(構想)


ㄱ) 결과란 무엇인가


다음은 결과 즉 구상(構想)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즉 내적발전적사위기대의 결과의 위치에 세워지는 구상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를 설명하려는 것이다. 앞의 항목(내적수수작용)에서 다룬 구상은 생각한다는 뜻의 구상, 즉 내적수수작용과 같은 뜻의 구상이었지만 여기서의 구상은 생각한 결과로서의 구상으로서, 요한복음(1:1)에 있는 말씀 즉 로고스를 뜻하며, 바로 本원상론의 신성(神性)(심정, 로고스, 창조성)중의 하나인 로고스이다. 따라서 신성(神性)의 항목에서 로고스라는 소제목하에 구상(말씀)과 이법(理法)에 관한 설명을 이미 마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재론하는 것은, 신성(神性)의 항목에서 다룬 로고스는 구상 즉 말씀으로서의 로고스라기 보다는, 이법으로서의 로고스여서, 여기에 더 보충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앞에서 설명했던 로고스에 관한 요점을 다시 간단히 소개하고 이어서 약간의 보충을 가하려고 한다.


로고스는 원리강론의 해석에 따라서 말씀 또는 이법(理法)이라고 보는데, 말씀이 바로 구상, 사고, 계획 등이고 이법(理法)은 이성과 법칙의 통일이다. 그리고 이성은 자유성과 목적성이기도 하고, 법칙성(法則性)은 필연성과 기계성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성과 법칙의 통일인 이법은 동시에 자유성과 필연성의 통일, 목적성과 기계성의 통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법에 의해서 우주만물이 창조되었기 때문에 만물속에 이법(理法)(이성과 法則)이 들어있고, 만물 상호간에도 이 이법이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자연계에 작용하고 있는 이법이 바로 자연법칙이요, 인간생활에서 지켜져야 하는 것이 가치법칙(價値法則, 規範法則)이다.


그리고 자유성(性)과 필연성(必然性)의 통일이 이법이라는 말은, 자유는 필연 즉 법칙속에서의 자유이며, 원리속에서의 자유 즉 원리안에서의 이성의 선택의 자유임을 뜻하며, 따라서 원리나 법칙을 무시한 자유는 사실은 방종(放縱)이다. 그리고 이법은 말씀과 별개의 것이 아니고 모두 로고스이며, 도리어 말씀의 일부가 이법이라는 것과, 말씀과 함께 이법은 하나님의 이성성상을 닮은 하나님의 대상(1987, p. 220)이기 때문에 일종의 신생체요, 일종의 피조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창조는 심정을 동기로 하였기 때문에 로고스(理法)도 사랑이 그 터전이 되고 있다는 것, 따라서 자연법칙, 가치법칙의 배후에도 사랑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도 밝혔던 것이다. 따라서 일상생활에 이법(價値法則)이 반드시 지켜져야 하겠지만, 그러나 그 생활은 따뜻한 사랑속에서 지켜지는 생활이어야만 거기에 비로소 백화가 만발하는 봄 동산과 같은 평화가 찾아온다는 것도 아울러 밝혔던 것이다.


ㄴ) 구상(構想)으로서의 로고스


이상이 앞의 신성(神性)의 항목에서 다룬 로고스의 내용의 요점이다. 그러나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앞에서는 주로 이법(理法)으로서의 로고스만을 다루었으며, 말씀 즉 구상으로서의 로고스는 상세히 다루지 않았다. 이제부터 그 구상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이미 앞의 내적수수작용의 설명에서도 구상을 다루기는 했지만, 그것은 신생체 즉 결과물로서의 구상이 아니고 주로 생각한다는 뜻의 구상, 즉 수수작용으로서의 구상, 관념의 조작으로서의 구상이었다. 그런데 내적수수작용의 단계에서도 관념(觀念)의 조작의 의미를 갖는 구상 외에, 신생체의 뜻을 갖는 前구상(構想)이라는 개념이 쓰여진 바가 있었다. 즉 창조를 목적으로한 대비형의 수수작용의 결과 형성된 신생체로서 개념, 원칙, 수리 등을 갖춘, 그리고 치밀한 내부구조를 지닌 보다 더 구체화된 鑄型(靈的鑄型) 곧 모형(模型)으로서의 신생관념 즉 주형성관념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상은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한 말씀으로서의 구상이 아니며 다만 그 前단계에 불과한 것이다. 그것은 영상으로 말하면 사진과 같은 정적(靜的)영상(映像)에 불과하며, 영화에서와 같은 생동력있는 영상 즉 동적영상(動的映像)이 되지는 못한다. 문자 그대로의 설계도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한 말씀인 로고스는 생명이 들어있는 산 신생체(新生體)이며, 산 구상(構想)인 것이다. 요한복음 1장은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적고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그 안에 생명(生命)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1:1-4).


ㄷ) 로고스는 구상체(구상(構想)體)이다.


이와 같이 만물을 창조한 말씀(로고스)은 생명을 지닌 생동(生動)하는 구상체였다. 이것은 前단계인 관념의 조작단계에서 형성된 신생체로서, 치밀한 내부 구조를 갖춘 신생관념(주형성관념)에 생명이 부여되어 그것이 동적(動的) 성격을 띠게 된 것을 뜻한다. 그런데 어떻게 되어서 정적(靜的)인 성격을 지닌 신생관념이 동적 성격을 띠게 되었을까? 그것은 바로 내적수수작용의 초기와 후기의 2단계(二段階) 과정에 의해서인 것이다. 즉 영적통각(靈的統覺, 지(知)-정(情)-의(意)의 통일체))과 내적형상과의 수수작용에는 초기단계와 후기단계의 두 단계가 있는데, 그 초기단계에서는 관념의 조작에 의해서 신생관념(前構想)이 형성되고, 그것이 후기단계에서는 심정(사랑)의 힘에 의해서 지정의의 기능이 주입된 후 活力을 얻게 됨으로써, 즉 생명을 얻게 됨으로써 완성된 구상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밝혀둘 것은 지정의 속에 가능성으로서만 포함되어 있던 양성, 음성이 이 후기단계에서 표면화되기 시작하여, 지정의의 기능의 발현에 조화로운 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하여 완성된 구상이 바로 하나님의 대상인 로고스이며, 이성성상을 통일적으로 지닌 로고스 즉 로고스의 이성성상(원리강론 1987, p. 222)이다. 이것이 바로 이령(裡寧, 속에서 편안하게 거함) 창조한 말씀으로서의 로고스이며, 내적발전적사위기대의 결과인 구상이다.


로고스의 이성성상이란 로고스속에 내적성상과 내적형상의 두 요소가, 로고스의 차원과 종류에 따라서 필요한 만큼 내포되어 있음을 뜻한다. 즉 내적성상(內的性相)인 지적기능, 정적기능, 의적기능과 내적형상인 관념, 개념, 원칙(법칙), 수리 등이 창조될 만물의 차원(광물, 식물, 동물, 인간 등)과 종류에 따라서 각양각색으로, 그 로고스에 내포되어 있다. 이것은 내적수수작용의 후기의 단계에서 이미 관념조작(觀念操作)에 의하여 형성된 초구상(新生觀念)속에 지적, 정적, 의적기능이 심정(사랑)의 충동력에 의해서 차원을 달리하면서 주입된 후, 前구상(構想)을 활성화시킨 것이다.27) p.122


vi) 내적발전적사위기대(內的發展的四位基臺)


설명의 요약 이상으로 내적발전적사위기대에 관한 설명을 일단 마치고자 한다. 그러나 설명의 어떤 부분은 장황하고 부드럽지 못한 점이 없지 않았기 때문에, 이해를 돕기 위해서 이상의 설명의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해서 다시 소개(紹介)하고자 한다.


ㄱ) 내적발전적사위기대의 중심


내적발전적사위기대는 창조에 있어서 외적발전적사위기대보다 먼저 조성되는 사위기대로서, 이 사위기대의 중심인 목적은 심정을 터전으로 하고 세워졌기 때문에, 사랑의 대상으로 인간을 세워놓고 그를 통해서 사랑을 실현하는데 있다. 따라서 인간의 피조목적은 서로 사랑함은 물론, 하나님을 사랑하고 만물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인간이 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오늘의 대혼란이 야기되었으니, 이 혼란을 수습하는 길의 하나는 만인간의 모든 목적을 인간 본연의 피조목적으로 일치화시키는데 있다.


ㄴ) 내적발전적사위기대의 주체


내적발전적사위기대의 주체의 입장은 내적성상인 지(知)-정(情)-의(意)의 三기능(機能)으로서, 이 세 기능은 서로 통일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경우 이 3기능에 대응해서 진(眞)-미(美)-선(善)의 3가치(三價値)가 세워지고 이 3가치에 대응해서 3대문화 영역(領域)이 세워진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주창조에 있어서 창조목적을 실현하고자 全力(지(知)-정(情)-의(意)의 총기능)을 투입하였다. 그러므로 오늘날 위기에 처해 있는 문화를 구제함과 아울러 신문화를 창조하기 위해서도 3대 문화영역의 지성인, 학자들은 통일된 理念(目的)을 중심하고 총궐기해야 된다. 한편 인간의 지(知)-정(情)-의(意)는 肉心의 그것과 생심(生心)의 그것이 통일된 통일心인 동시에 지?정?의도 통일되어 있어서, 이 통일의 면을 특히 부각시킨 지정의의 통일체를 영적통각(靈的統覺)이라 한다. 이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영적존재가 되게 하였으며, 아울러 자아의식(自我意識)을 갖게 하고 있다.


그리고 육심(肉心(지(知)-정(情)-의(意))의 기능은 의식주(衣食住) 및 성(性)의 생활 즉 물질생활을 추구하는 것이고, 생심의 기능은 진(眞)-선(善)-미(美)의 가치생활을 추구한다. 여기에서 생심에 의한 가치생활의 추구를 선차적으로 하고, 육심에 의한 물질생활의 추구를 후차적으로 하는 것이 본연의 인간의 생활자세(생활姿勢)인 것이다.


ㄷ) 내적발전적사위기대의 대상(對象)


내적발전적사위기대의 대상의 위치는 내적형상이다. 즉 관념, 개념, 원칙, 수리 등의 꼴의 요소들이다. 그 중 개념, 원칙, 수리 등은 창조에 있어서는 모두 관념속에 통일되어 있고, 그 관념(觀念)은 주형(鑄型)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때 단순관념이 주형(영적주형)이 되기도 하고 복합관념이 주형이 되기도 한다. 창조에 있어서 이 주형(영적주형)은 치밀한 내부구조를 갖는다. 그리고 여기의 融液(영적융액)에 해당하는 것이 전에너지(前에너지, 에너지로 변환되기 전의 상태)인 본형상(本形狀)이다. 그리고 창조에 관련되는 주형의 수(數)는 무수히 많으며 각각 그 꼴이 다르다. 그 하나 하나가 개별상인 것이다. 이 개별상이 인간에 있어서는 개인별(個人別)의 개별상(個別相)이기 때문에 주형의 역할은 일회한(一回限, 한번 만)으로 끝난다. 그러나 만물의 개별상은 종류별이기 때문에 하나의 주형은 한 종류 전체의 창조를 망라한다.


ㄹ) 내적수수작용(授受作用)


내적발전적사위기대의 내적수수작용은 상기(上記)의 목적 중심한 내적성상(靈的統覺)과 내적형상과의 수수작용인데, 이것은 생각, 구상을 뜻한다. 즉 내적수수작용을 한다는 것은 생각하는 것, 구상하는 것을 뜻한다. 생각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만 크게 나누어서 과거에 관한 생각(기억, 회상 등)과 현재에 관련된 생각(의견, 판단, 추리 등)과 미래에 관한 생각(계획, 희망, 이상 등)으로 유별(類別, 분류하여 구별함)할 수 있다. 그런데 생각의 가장 기본요소는 관념 즉 마음속에 간직된 영상으로서, 생각이란 이 관념을 여러가지로 조작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관념의 조작에는 상기(想起), 연합(聯合(複合)), 분석(分析), 종합(綜合), 구상(構成), 환위(換位), 환질(換質) 등의 여러 방식이 있다. 내적발전적사위기대의 내적수수작용이란 요컨대 이러한 관념의 조작이다. 그런데 그 수수작용은 물론 주체인 영적통각(내적성상)과 대상인 내적형상과의 사이에서 벌어지지만, 실제의 내용은 대상내의 여러 관념들을 여러 방식으로 조작한 것에 불과하다. 이 조작은 관념과 관념의 대비(對比)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이 수수작용은 대상내의 관념과 관념의 대비가 병행되는, 주체(主體(영적통각))와 대상(對象(내적형상))간의 수수작용이기 때문에 대비(對比) 성격을 띤 편측의식형(片側意識型)의 수수작용으로서, 일종의 대비형의 수수작용이다.


ㅁ) 내적발전적사위기대의 결과


끝으로 결과의 위치에 세워지는 구상에 관한 설명을 요약한다. 결과로서의 구상은 내적수수작용에서 다룬 구상과 다르다. 후자는 생각한다는 것 즉 작용을 뜻하며, 전자는 수수작용의 결과로 나타난 신생체를 뜻한다. 신생체로서의 이 구상은 바로 로고스이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내적수수작용에는 초기, 후기의 2단계가 있는데 초기의 단계에서는 내적형상 내의 관념조작(觀念操作)에 의해서 신관념(新觀念)이 형성된다. 이것도 일종의 신생체이며 구상(前構想)이다. 그러나 이것은 말씀으로서의 구상의 전단계에 불과하며, 생동성(生動性, 살아서 움직이는 성질)이 없는 정적영상(靜的映像)에 불과하다.


우주를 창조한 말씀인 구상(로고스)은 생명이 들어 있는 산 신생체(新生體)로서, 이것은 내적수수작용의 후기단계에서 영적통각인 지(知)-정(情)-의(意)의 기능이 심정의 충동력에 의하여 신생관념에 주입된 후 同관념(觀念)이 활성화됨으로써, 즉 생명을 얻게됨으로써 완성된 구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때의 구상이 바로 이성성상을 지닌 로고스이다. 그리고 이 구상(構想)中에는 이법의 요소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 이법은 이성과 법칙의 통일이며 자유성과 필연성의 통일인 것으로서,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신성(神性)의 항목에서 로고스라는 소제목하에 비교적 상세히 다뤘으므로 여기서는 생략(省略)하고자 한다.


④ 외적발전적사위기대(發展的四位基臺)


i) 외적발전적사위기대(發展的四位基臺)란 무엇인가


네 종류의 사위기대(四位基臺)中에서, 끝으로 외적발전적사위기대에 관해서 설명코자 한다. 이것은 외적사위기대와 발전적사위기대가 조합된 것으로서 본성상(本性相)의 외부에서의 수수작용, 즉 본성상과 본형상의 수수작용의 터전이 되고 있는 외적사위기대가 발전성, 운동성을 띠게 된 것을 말한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통일사상에서 볼 때, 발전이란 새로운 성질의 개체 즉 신생체가 생겨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창조를 결과의 면에서 파악한 개념이다. 따라서 발전적사위기대란 창조목적을 중심하고 주체와 대상이 수수작용을 한 후, 신생체를 낳을 때의 사위기대(四位基臺)를 뜻한다.


그리하여 외적발전적사위기대는 본성상의 외부에 형성된 외적사위기대가 발전성을 갖추게 되어서, 발전적사위기대가 된 것이다. 이미 내적발전적사위기대의 설명에서 언급했듯이, 외적발전적사위기대는 내적발전적사위기대가 형성된 뒤를 이어서, 그 다음 단계의 사위기대로 형성되는 것이다. 즉 본성상을 중심하고 볼 때, 자동적사위기대 때와 마찬가지로 발전적사위기대도 본성상의 안팎에서 형성되는데, 자동적사위기대 때처럼 동시적(同時的)이 아니고 계속적(繼續的)이어서 내적인 기대가 먼저 형성된 후 그 다음에 외적인 기대가 형성된다.


ii) 내적발전적사위기대(內的發展的四位基臺)의 기반위에 형성된다.


이 외적발전적사위기대(發展的四位基臺)에 관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자. 누차 말한 바와 같이 사위기대란 요컨대 심정 또는 목적을 중심하고 수수작용을 한 후, 그 결과를 맺는 현상을 공간적 개념으로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내적 및 외적발전적사위기대(發展的四位基臺)도 수수작용으로써 설명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발전이란 창조를 결과의 면에서 파악한 개념이기 때문에, 발전적사위기대를 바로 이해하려면 창조나 제작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알아보면 된다. 이것을 인간의 경우를 비유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사람은 무엇을 만들려 할 때, 먼저 마음으로 반드시 구상을 한다. 가령 집을 지으려면 일정한 목적을 세우고, 깊이 구상을 하여 계획서(計劃書)나 청사진을 만든다. 계획서나 청사진은 그 구상을 잊지 않기 위해서 지면에 나타냈을 뿐, 그대로가 마음의 구상인 것이다. 이 구상이 위에서 말한 내적수수작용이며 곧 창조의 第一단계이다. 이어서 창조의 제2단계(第2段階)가 시작된다. 이것은 여러가지 건축재료를 가지고 인간들이 그 구상(청사진)에 따라서 창조작업 즉 건축공사를 진행한다.


그리하여 드디어 일정한 시간후에 목적했던 대로의 건물을 완성한다. 여기서 마음의 구상은 성상내의 수수작용 즉 내적수수작용이다. 그리고 사람이 건축자재를 가지고 그 구상대로 집을 짓는 것도 수수작용이다. 이것은 마음(性相)의 밖에서 벌어진 수수작용이기 때문에 외적수수작용이라 한다. 그런데 구상(構想)(청사진)도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이요, 건물도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이기 때문에 모두 신생체(新生體)이다. 따라서 이 신생체의 출현은 동기로 보면 창조요, 결과로 보면 발전이다. 이 수수작용에서 주체는 구상(현실적으로는 구상을 지닌 인간, 또는 그 인간을 대리한 다른 인간들)이요, 대상은 건축자재 등이다. 그리고 이 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이 바로 건축공사의 진행인 것이다. 그리고 이 수수작용의 결과인 신생체가 바로 완성된 건물인 것이다.


또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이때에도 화가는 일정한 목적을 먼저 세워놓고 구상을 한다. 그리고 때로는 그 구상을 소묘로 나타내기도 한다. 이것이 제일(第一)단계이다. 구상이 끝나면 제2단계(第2段階)의 작업이 개시된다. 즉 화폭, 붓, 채료(彩料(물감)), 화가(畵架) 따위의 화구(畵具)를 써가면서 화가(畵家)는 구상한 대로의 그림을 그린다. 그리하여 드디어 그림이 완성된다. 이때 제일(第一)단계의 구상도 수수작용이요, 제2단계(第2段階)의 그림 그리기도 수수작용이다. 그리고 제일(第一)단계의 구상도, 제2단계(第2段階)의 완성한 그림도, 모두 전에 없었던 새로운 결과이므로 신생체(新生體)들이다. 따라서 이 그림 그리기도 또한 창조요, 발전인 것이다.


iii) 모든 창조는 2단계의 발전적사위기대(發展的四位基臺)에 의해서


여기서 다음과 같은 사실이 분명해 진다. 첫째로, 창조에는 반드시 두 단계의 과정이 있으며 둘째는, 첫단계는 내적인 구상의 단계요 다음 단계는 외적인 작업의 단계라는 것이며, 셋째는 두 단계의 수수작용(授受作用)이 모두 동일한 목적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서 반드시 그 결과로서 신생체를 만든다는 것이다. 여기의 첫단계가 바로 내적발전적수수작용의 단계요, 둘째 단계가 외적발전적수수작용의 단계이다. 이 일련(一聯)의 원칙은 모든 창조활동에 적용된다. 생산, 제작, 발명, 예술 등 어떠한 유형의 창조활동에도 예외없이 적용된다. 그 이유는 이 원칙의 기준이 하나님의 원상(原相)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본성상의 안팎의 수수작용 즉 내적발전적수수작용과 외적발전적수수작용인 것이다. 알기 쉽게 말해서 하나님이 먼저 일정(一定)한 목적을 세워 놓고 만물 창조를 구상한 다음, 재료에 해당하는 형상(전에너지(前에너지, 에너지로 변환되기 전의 상태))을 사용해서 구상한 대로의 만물을 실제로 만들었던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이 구상하는 단계가 내적발전적수수작용의 단계요, 실제로 만물을 만드는 단계가 외적발전적수수작용의 단계이다.


이상의 설명으로 인간의 창조나 제작에는 반드시 그 전에 구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 따라서 외적발전적수수작용에는 반드시 그 전에 내적발전적수수작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밝혔다. 그런데 이 인간의 구상 때의 수수작용(授受作用)의 원형은 하나님의 원상내의 수수작용이었다. 즉 원상(原相)內의 수수작용은 반드시 사위기대를 터로 하고서만 행해진다. 사위기대의 별명이 수수작용이요, 수수작용의 별명이 사위기대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에 있어서 내적발전적수수작용이 반드시 외적발전적수수작용에 先行한다는 것은 내적발전적사위기대가 반드시 외적발전적사위기대에 선행(先行)해서 형성(形成)됨을 뜻한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창조에 있어서는 반드시 내적발전적사위기대와 외적발전적사위기대가 연속적(連續的)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을 원상(原相)의 창조(創造)의 2단구조(構造)라고 한다. 이것을 도표로 표시하면 그림 1-13과 같다. 인간의 경우의 현실적인 창조활동 때에도 내적 및 외적인 사위기대(四位基臺)가 연속적으로 형성된다. 이와 같이 현실적인 창조활동에 있어서 연속적으로 형성되는 2단계의 사위기대를 현실적인 창조(創造)의 2단구조(構造)라고 한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의심(疑心)이 생길는지 모른다. 즉 실제(實際)의 창조에는 반드시 구상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알기 쉽게 표현하면 될 것을, 왜 내적발전적사위기대니 외적발전적사위기대니 이단구조니 하는 어려운 표현을 쓰느냐, 통일사상은 왜 쉬운 말도 어렵게만 표현하려고 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 의문에 대해서 답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통일사상은 천주(天宙, 영계와 지상세계)의 근본원리(根本原理)를 다루기 때문이다. 근본원리란 영계(靈界)와 지상세계(地上世界)를 막론하고 존재세계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근본이치이다. 이 근본이치(根本理致(原理))는 깊고 넓은 내용을 함축하면서도 그 이치를 나타내는 용어는 될 수 있는 대로 간단한 용어여야 한다. 그 예의 하나가 통일원리의 이성성상 또는 성상(性相)과 형상(形狀)이다. 이 용어는 인간의 마음과 몸을 나타내는 용어일 뿐 아니라, 동물, 식물, 광물 더 나아가서 영인체와 영계의 모든 존재가 가지고 있는 상대적 속성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즉 이성성상의 뜻의 내용은 대단히 깊고 넓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이성성상의 용어 그대로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려우며 따라서 쉽고도 상세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설명에는 때때로 예화(例話)나 비유(比喩)도 필요하다. 통일사상에서 다루는 근본원리는 오관(五官)으로 느낄 수 없는, 하나님과 영적세계(靈的世界)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여기서 예화(例話)나 비유(比喩)를 들면서 행하는 설명은, 다만 그 근본원리를 밝히는 수단에 불과하며, 근본원리 그 자체는 아니다. 근본원리 그 자체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이성성상 또는 성상(性相)과 형상(形狀)이다. 마찬가지로 수수작용(授受作用), 사위기대(四位基臺), 2단구조(構造) 등도 근본원리에 관한 개념(槪念) 즉 기본개념들이어서 이 용어들을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내적발전적사위기대(內的發展的四位基臺), 외적발전적사위기대(外的發展的四位基臺), 창조(創造)의 2단구조(構造)도 그러한 근본원리를 함축한 개념들이다. 여기서 다시 분초(分秒)를 다투면서 살아야 하는 이 바쁜 시기에, 그런 어려운 기본개념을 우리가 꼭 배워야 할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하는 의문도 있겠지만, 그것은 이 기본개념들을 바르게 파악함으로써만 현실의 여러가지 난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준이 명백해지기 때문이다. 이상으로 통일사상에 있어서의 기본개념의 중요성에 관해서 설명하였다.


iv) 외적발전적사위기대(發展的四位基臺)의 구성요소(構成要素)


다시 본론에 돌아와서 본(本) 소제목인 외적발전적사위기대의 설명을 계속코자 한다. 앞에서 외적발전적사위기대는 반드시 내적발전적사위기대의 다음 단계로서 형성되기 때문에, 이러한 2단계(二段階) 과정을 현실적 창조의 2단구조(構造)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창조에 있어서 원상(原相)內에서도 동일한 창조의 2단구조가 형성된다. 위에서 본성상의 안팎에서 형성된다고 한 사위기대 즉 내적발전적사위기대 및 외적발전적사위기대가 그것이다. 이것은 원상내에서 창조때에 형성되는 사위기대이기 때문에 이것을 원상(原相)의 창조(創造)의 2단구조(構造)(前述)라고 한다.


원상(原相)內의 내적발전적사위기대는 이미 내적발전적사위기대의 소항목에서 상세히 설명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 설명을 약하기로 하고, 다만 그 내적발전적사위기대의 4위치중 중심의 위치에는 목적이 세워지며, 주체의 위치에는 내적성상(內的性相)(靈的統覺: 知-情-意의 통일체)이 세워지고, 대상의 위치에는 내적형상이, 그리고 결과의 위치에는 구상이 신생체로서 세워진다는 것과, 그리고 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은 생각하는 과정 즉 관념조작(觀念操作)의 과정이라는 것만을 상기(想起)시켜 둔다.


그런데 원상내의 외적발전적사위기대도, 4개의 위치 즉 중심, 주체, 대상, 결과로서 이루어짐은 물론인데 이때의 중심(中心)은 내적인 사위기대 때와 마찬가지로 심정을 터로 하는 창조목적이요, 주체(主體)는 여기서는 본성상(本性相)이며 대상(對象)은 본형상(本形狀)이다. 그리고 수수작용에 의해서 형성되는 결과는 신생체로서의 피조물(被造物)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4위치 즉 중심, 주체, 대상, 결과의 위치에 각각 세워지는 목적, 본성상, 본형상 및 피조물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그런데 목적은 내적발전적수수작용때의 목적, 즉 창조목적과 동일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약하기로 하고 주체(主體)=본성상(本性相), 대상(對象)=본형상(本形狀), 외적수수작용, 결과=피조물(被造物) 등의 소항목을 가지고 설명하고자 한다.


ㄱ) 주체(主體)=본성상(本性相)


원상내의 외적발전적사위기대는 본성상(本性相)과 본형상(本形狀)과의 수수작용의 기대(基臺)이기 때문에 주체의 입장이 본성상임은 두 말할 필요조차 없지만, 그 본성상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그것이 바로 앞에서 말한 내적발전적사위기대의 결과의 입장인 구상(構想)이다. 즉 목적을 중심하고 내적성상과 내적형상이 수수작용을 한 후 신생체(新生體)로서 나타난 말씀이요, 로고스요, 구상이다. 그런데 이 내적수수작용이란 생각하는 것, 즉 사고(思考)의 과정이다.


이러한 내적수수작용의 과정에는 前단계와 後단계의 두 단계가 있는데(前述), 전단계는 관념(觀念)조작(操作)이 진행되는 과정이어서, 이 단계에서 新관념(觀念) 즉 前구상(構想)이 형성된다. 그리고 다음 단계는 영적통각에서 지(知)-정(情)-의(意)의 기능이, 그 속성인 양성-음성의 영향을 받으면서 前구상(構想)에 주입된 후, 그 前구상(構想)이 생명을 지닌 완성된 구상(構想), 즉 로고스로서 나타나게 되는데 이렇게 완성된 로고스가 바로 이성성상을 지닌 로고스이다. 그런데 구상으로서의 로고스는 비록 신생체이기는 하지만, 본성상의 내부에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주체(本性相)와 대상(本形狀)의 수수작용에 있어서는 영적통각(靈的統覺)에 파지(把持; 파악이 지속)되어 주체로서 작용한다. 여기서 밝혀둘 것은, 내적수수작용에 의해서 내적성상인 영적통각에서 지-정-의가 내적형상내에 형성된 신생관념(新生觀念)에 주입되었다 하더라도, 영적통각 자체는 본래 무한성을 띤 기능이기 때문에, 그것의 일부가 신생관념 속에 주입된 뒤에도 여전히 내적성상으로서의, 지(知)-정(情)-의(意)의 통일적 기능은 그대로 지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본성상과 본형상간의 수수작용에 있어서 주체로서의 본성상은 영적통각(靈的統覺)에 파지(把持)된 상태에 있는 로고스이다. 이상으로 외적발전적사위기대의 주체(主體)=본성상(本性相)에 관한 설명을 마친다.


ㄴ) 대상(對象)=본형상(本形狀)


이미 원상(原相)의 내용의 부분 중 신상의 제목 하에, 형상(본형상(本形狀))의 소항목에서 설명한 것처럼, 본형상은 무한응형성(無限應形性)의 궁극적(窮極的)-질료적(質料的) 요소이다. 질료적 요소란 피조물의 유형적(有形的)要素(물질)의 근본원인을 뜻하며, 무한응형성(無限應形性)은 마치 물(水)과 같이 어떠한 형태라도 취할 수 있는 가능성을 뜻한다.


그런데 질료적요소는 물질의 근본원인이면서도 과학의 대상의 한계를 훨씬 넘어선 궁극적 원인으로서 통일사상은 이것을 前단계에너지 또는 간단히 전에너지(前에너지, 에너지로 변환되기 전의 상태; Pre-Energy)라고 부른다. 이 본형상에서 후술하는 바와 같이, 마치 물이 용기에 부어 넣어져서 용기의 형태를 취하듯이, 본성상의 구상(로고스)의 주형(鑄型; 영적주형)속에 부어 넣어져서 현실적인 만물로서 지음받게 된다. p.134


ㄷ) 외적수수작용(授受作用)


다음은 외적수수작용에 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만물이 하나님의 성상과 형상의 수수작용에 의해서 창조되었다28)는 통일원리나 통일사상의 주장이 참된 내용임을 밝히려는 것이다. 외적수수작용도 사위기대를 터로 하고 행해지기 때문에, 공간적으로 주체와 대상이 떨어져 있다가 다시 합해져서 하나의 신생체(新生體) 즉 만물이 되는 것으로 설명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해를 돕기 위한 방편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속성의 세계에는 內와 外, 上과 下, 원근(遠近), 광협(廣狹, 넓고 좁고)이 없다. 大-中-小가 없으니 무한대(無限大)와 무한소(無限小)가 같다. 또 선후(先後)가 없으니 과거(過去)-현재(現在)-미래(未來)가 없으며 영원과 순간이 동일하다.


따라서 시공(時空)을 초월한 하나님의 세계에서 이러한 수수작용이 벌어지기 때문에 설명의 편의상(또는 이해의 편의상(便宜上)), 주체와 대상이 동일 공간을 중첩적(重疊的)으로 차지하면서 수수작용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비유컨대 인간의 영인체(주체)와 육신(대상)이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다가 합해져서 하나가 된 것이 아니고, 본래부터 동일한 공간을 중첩적(重疊的)으로 차지하면서 수수작용을 하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원상내의 외적수수작용을, 동일공간을 중첩적으로 차지한 주체와 대상간의 수수작용으로 보고, 또 수수작용에 의해서 산출된 신생체(新生體)인 피조물도 역시 동일 공간을 중첩적으로 차지하고 있다는 입장에서 논리(論理)를 전개해 보자.


이미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외적발전적사위기대의 주체인 본성상은 영적통각(靈的統覺)에 파지(把持)된 상태에 있는, 신생체(新生體)인 로고스이며, 대상인 본형상은 무한응형성(無限應形性)을 지닌 전에너지(前에너지, 에너지로 변환되기 전의 상태)였다. 이러한 주체와 대상이 중첩되어서 동일공간을 차지한 채 수수작용하여 신생체인 피조물(예컨대 말과 같은 동물)을 산출(産出(創造))하게 되는데, 이때 산출된 피조물도 동일한 공간을 중첩적으로 차지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상으로 수수작용이 행해지는 기대의 4위치는 문자 그대로 떨어져 있는 4위가 아니라 4개의 정착물(定着物)이 함께 겹쳐 있는 하나의 위치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하나의 위치에서 서로 겹쳐진 채로 목적을 중심하고 주체와 대상이 수수작용을 한 후, 그 결과물로서 피조물이 생겨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면 그 수수작용의 구체적인 내용이란 무엇인가. 중첩된 상황속에서의 수수작용이란, 본형상인 전에너지(前에너지, 에너지로 변환되기 전의 상태)가 본성상내에 형성된 구상(構想)(로고스)의 주형(鑄型(영적주형))속에 스며드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본성상내의 내적수수작용의 첫단계에서 형성된, 치밀한 內部구조(構造)를 갖춘 신생관념(新生觀念) 즉 주형성관념(鑄型性觀念)이 다음 단계에서 심정의 충동에 의하여 생명이 부여(賦與)된 후 나타난 것이 완성된 구상이다. 따라서 이 완성된 구상은 바로 생명을 얻은 주형성관념이요 살아있는 주형이다.29)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이 주형(鑄型)은 초기(初期)단계에서 형성된 신생관념(新生觀念)으로서, 치밀한 내부구조를 갖춘 주형성관념이 후기(後期)단계에서 활력이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활력이 주어졌다 하더라도, 그리고 또 아무리 내부 구조가 치밀하다 하더라도 주형(영적주형)임에는 틀림없기 때문에, 거푸집에 쇠(鐵)의 융액(融液)을 부어 넣어 철물을 만들 때와 같이, 이 주형성관념속에도 반드시 융액에 해당하는 본형상(本形狀)의 질료 즉 전에너지(前에너지, 에너지로 변환되기 전의 상태)가 부어 넣어질 수 있는 공간이 있게 마련이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주형의 공간은 반드시 융액이 넣어져서 채워지기 마련이다. 본성상과 본형상 사이에 이러한 현상이 벌어질 때 그것이 바로 수수작용이다. 즉 본성상의 주형성관념내의 치밀한 공간에 본형상의 질료적 요소가 삼투(渗透)하여 채워지는 것이 바로 수수작용(授受作用)이다(이때 본형상 속에 가능성으로만 잠재하고 있던 속성(屬性)인 음성-양성(陽性-陰性)이 표면화(表面化, 겉으로 드러남)되기 시작하여 질료적 요소의 삼투(渗透, 스며듬)의 흐름에 조화로운 변화를 일으킨다). 왜 이 현상이 수수작용이 되느냐 하면, 본성상(주체)은 주형의 공간을 가지고 본형상(대상)에게 질료의 삼투(渗透, 스며듬)의 기회를 제공하고, 본형상은 질료로 공간을 채움으로써 그 공간의 존재목적을 이루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약간 모형적으로 표현했지만, 이러한 작용이 동일 위치의 주체와 대상이 중첩(重疊)된 상황하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우주창조에 있어서 원상내부에서 이루어진 외적발전적수수작용의 참 내용이다. 여기에서 한가지 첨가할 것은, 이 수수작용은 형(型)으로 봐서 편측의식형(片側意識型)의 수수작용이다. 왜냐하면 이 수수작용때의 주체는 지(知)-정(情)-의(意)의 통일체인 영적통각(靈的統覺)(鑄型性觀念을 포함)이고, 대상은 본형상 즉 질료이기 때문이다.


ㄹ) 결과=피조물(被造物)


a) 결과란 무엇인가


다음은 외적발전적(發展的)사위기대(四位基臺)의 결과의 위치에 세워지는 피조물에 관해서 살펴보자. 우선 이 결과로서의 피조물은 상술한 바와 같이 창조목적을 중심하고 본성상과 본형상이 수수작용함으로써 형성된 신생체(新生體)이다. 이것이 원리해설(原理解說)(1957년판)에 적힌 피조세계는 이성성상의 주체로 계시는 하나님의 본성상과 본형상이 창조원리에 의해서 형상적 또는 상징적인 실체로 전개된...... , 하나님의 실체대상이다(同上 p. 25)라는 문장중의 하나님의 실체대상(實體對象)이며, 하나님의 이성성상을 닮은 개별진리체(個性眞理體)(同上, p. 25)이며, 주체와 대상의 이성성상의 실체적 전개에 의하여 창조된 피조물(同上 p. 24)이다.


그리고 또 원리강론(1966년판)에 적힌 피조물은 모두 무형(無形)의 주체로 계시는 하나님의 이성성상을 닮아 실체로 分立된 하나님의 실체대상이라는 것을 알았다(p. 26) 라는 문장의 실체대상(實體對象)이며, 이러한 실체대상을 우리는 개성진리체(個性眞理體)라고 한다(同上)의 개성진리체(個性眞理體)이다. 이와 같이 통일원리(원리해설(原理解說), 원리강론)에서 말하고 있는 실체대상이니 개성진리체이니 하는 개념은 모두 피조물을 보는 관점에 따라서 표현을 달리한 개념들이다. 실체대상은 객관적(客觀的), 물질적(物質的) 측면을 부각(浮刻)시킨 개념으로서 로고스에서와 같이 마음에만 그려진 관념적인 대상이 아니라, 3차원의 공간적 요소를 갖춘 물질적 대상이라는 뜻이며, 개성진리체는 피조물이 하나님의 이성성상을 닮았다는 측면을 부각시키는 개념으로서 피조물은 모두 닮기의 법칙에 의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에 예외없이 개성진리체(個性眞理體)인 것이다.


b) 닮음과 외적수수작용(授受作用)


여기서 특히 밝히고자 하는 것은, 피조물(被造物)이 하나님의 이성성상을 닮았다고 할 때의 그 닮음의 내용이, 외적(발전적)수수작용의 관점에서 볼 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미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피조물은 본성상과 본형상이 창조목적을 중심하고 수수작용을 한 결과로서 나타난 신생체(新生體)였다. 그런데 이때의 본성상은 살아 있는 주형적(鑄型性)관념(觀念)을 파지(把持)한 영적통각, 또는 영적통각에 파지된 살아 있는 주형성관념이며, 본형상은 질료적요소(質料的要素)였다. 그리고 이 살아있는 주형성관념이 바로 로고스 즉 이성성상을 지닌 로고스이다.


이 이성성상은 내적성상과 내적형상의 두 요소를 말하는 것으로서 이때의 내적성상은 지(知)-정(情)-의(意)의 기능이며, 내적형상은 관념조작(觀念操作)에 의해서 형성된 신생관념(新生觀念)(주형성관념)을 뜻한다. 즉 로고스는 지정의의 기능과 신생관념(주형성관념)이 복합된 신생체였던 것이다. 따라서 최종의 신생체인 피조물속에 포함된 본성상의 부분은 내적성상에 해당하는 영적통각의 일부로서의 지정의의 기능과, 내적형상에 해당하는 신생관념(주형성관념)이었다.


그리고 본형상인 질료적요소는 그대로 몽땅 신생체(新生體)(被造物)에 포함되어 있다. 주형성관념의 치밀한 공간속에 본형상의 질료적요소가 삼투(渗透)하였다는 표현이 바로 그것을 뜻한다. 이리하여 외적수수작용에 의해서 본성상의 요소와 본형상의 요소 전체가 피조물을 구성하였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밝혀 두고자 하는 것은 본성상과 본형상이 각각 그 속성인 양성(陽性(本陽性))과 음성(陰性(本陰性))을 함께 지닌채로 피조물을 구성했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피조물은 모두 하나님의 본성상과 본형상의 요소 및 본양성과 본음성의 요소를 모두 지니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본성상속에 포함된 신생관념 즉 주형성관념은 그대로가 개별상(個別相)이기도 하다. 결국 피조물은 하나님의 속성(본성상-본형상, 본양성-본음성, 그리고 개별상)을 모두 이어 받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와 같은 피조물(個體)을 개성진리체(個性眞理體)라고 한다. 이것이 통일원리에 피조물을 하나님의 이성성상을 닮은 개성진리체라고 한 말의 내용인 것이다.


c) 로고스와 피조물(被造物)의 관계


다음은 로고스와 피조물과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성경(聖經)에는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함에 있어서 말씀으로써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요한 1:1~3) 이 말씀이 바로 로고스였다(원리강론 1988, p. 222). 그런데 통일원리에는 로고스는 하나님의 대상이며 주체이신 하나님이 이성성상이시므로 그 대상인 로고스도 역시 이성성상이 아닐 수 없다(同上). 만일 로고스가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지 않다면 로고스로 창조된 피조물이 또한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을 수가 없다(同上)는 기록도 있다. 이것은 피조물의 이성성상은 로고스의 이성성상을 닮은 것이요, 로고스의 이성성상은 하나님의 이성성상을 닮은 것임을 뜻하는 것으로서 로고스의 이성성상과 하나님의 이성성상이 완전히 동일한 것인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통일사상으로 볼 때 하나님의 이성성상은 물론 본성상과 본형상이지만 로고스의 이성성상은 내적성상과 내적형상이다. 즉 하나님의 이성성상과 로고스의 이성성상은 일치(一致)하지 않는다. 따라서 피조물이 하나님의 이성성상을 닮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본성상과 본형상을 닮았다는 뜻이요, 로고스의 이성성상을 닮았다는 것은 로고스의 내적성상과 내적형상을 닮았다는 뜻이다. 그러면 만물이 닮은 로고스의 내적성상과 내적형상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로고스는 내적수수작용의 後期단계에서 영적통각(지(知)-정(情)-의(意)의 통일체)의 일부가 전단계에서 형성된 신생관념(新生觀念)(주형성관념)에 주입(注入)됨으로써 생겨난 완성된 구상(構想), 산 구상(構想)이었다. 따라서 로고스의 내적성상은 주형성관념속에 주입된 일부의 지정의의 기능이며 내적형상은 주형성관념 바로 그것이다.30) 이러한 내용을 지닌 내적성상과 내적형상이 바로 로고스의 이성성상이었다.


통일원리에서 피조물의 이성성상이 로고스의 이성성상을 닮았다.고 할 때의 로고스의 이성성상이란 바로 이러한 내용의 이성성상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특히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공간적-삼차원적 실체(三次元的 實體)인 피조물의 모습 그대로가 로고스의 이성성상을 닮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위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로고스는 산 구상이며 활력(活力)을 띤 관념(觀念)(주형성관념)에 불과했다.


비유컨대 움직이는 영상과 같은 것이며 꿈속에서 만난 사람과 같은 것이다. 인간을 포함한 만물이 모두 로고스의 이성성상을 닮았다는 것은, 이같은 살아 있는 영상을 닮았음을 뜻하는 것이다. 꿈속의 사람은 다른 모든 면에서 현실의 인간과 같지만 물질적(物質的)인 체(體(肉體))를 갖추지 않았다는 점에서만은 다른 것이다. 다른 만물도 마찬가지이다. 이 물질적(物質的) 체(體)까지를 갖춘 만물이 되려면, 만물은 하나님의 이성성상을 닮아야 한다. 즉 하나님의 본성상과 본형상을 닮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본성상과 본형상을 닮게 될 것인가? 그것은 창조 때의 외적수수작용에 의하여 본성상인 완성된 구상(構想) 즉 살아 있는 주형(鑄型(觀念))의 그 치밀한 공간속으로 본형상인 질료적요소(質料的要素(前에너지, 에너지로 변환되기 전의 상태))가 삼투함으로써(즉 스며듦으로써) 닮게 된다. 이러한 수수작용을 통하여 움직이는 영상(映像)이 물질적인 체(體)를 갖추게 되어서 현실적인 실체가 되는 것이다. 이때의 만물이 바로 하나님의 이성성상을 닮은 피조물이다. 이것으로 하나님의 이성성상과 로고스의 이성성상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가가 밝혀졌을 것이며, 아울러 피조물이 하나님의 이성성상을 닮았다고 할 때의 닮음과 로고스의 이성성상을 닮았다고 할 때의 닮음이 다르다는 것도 명백해졌으리라 믿는다. 다음은 수수작용과 관련된 정분합작용(正分合作用)에 관하여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