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사상 - 제1장 원상론 (原相論) - 8

2010. 1. 6. 17:02참사랑 영원까지/통일사상

2. 신성(神性)


하나님의 속성(屬性)(원상(原相))에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꼴의 측면뿐만 아니라 기능, 성질, 능력의 측면도 있다. 이것이 신성(神性)이다. 종래의 기독교나 이슬람교에서 말하는 전지(全知), 전능(全能), 편재성(遍在性), 至선(善), 至眞, 至美, 공의(公義), 사랑, 창조주(創造主), 심판주(審判主), 로고스 등은 그대로가 신성(神性)에 관한 개념들이며 통일사상도 물론 이러한 개념(槪念)들을 신성(神性)의 표현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문제의 해결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개념(槪念)들은 꼴(신상)의 측면을 함께 다루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이러한 개념(槪念)들은 꼴(신상)의 측면을 함께 다루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뿐만 아니라, 대부분이 창조와 직접 관련된 내용을 포함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그대로는 현실문제 해결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통일사상은 현실문제 해결에 직접 관련되는 신성(神性)으로서 심정(心情), 로고스, 창조성(創造性)의 세 가지를 꼽고 있다. 이 중에서 특히 심정(心情)이 가장 중요하며, 이것은 이때까지 어느 종교도 다루지 않았던 신성(神性)이다. 다음에 이들의 신성의 개념을 설명하고 그것이 어떻게 현실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를 밝히고자 한다.


(1) 심정(心情)


1) 심정(心情)이란 무엇인가?


심정(心情)은 하나님의 속성 특히 성상(性相)의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으로서, 사랑을 통해서 기쁘고자 하는 정적(情的)인 충동(衝動)이다. 심정의 이와 같은 개념(槪念)(뜻)을 바르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인간의 경우를 例로 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인간은 누구나 생래적(生來的; 태어나면서부터)으로 기쁨을 추구한다. 즉 기뻐하고자 하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고 싶어하는 것이 바로 그 증거이다. 이것은 인간이 언제나 기쁨을 얻고자 하는 충동(衝動), 또는 기쁘고자 하는 충동(衝動)을 갖고 살고 있음을 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때까지 대부분의 인간들은 참 기쁨, 영원한 기쁨을 얻지 못하고 있음도 또한 사실이다.


그것은 인간들이 대부분 기쁨을 금전이나 권력, 지위나 학식속에서 찾고자 했기 때문이다. 참된 기쁨, 영원한 기쁨은 사랑(참사랑)의 생활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이다. 사랑의 생활이란 남을 위해서 사는 생활, 애타적(愛他的)인 봉사생활, 즉 남에게 온정을 베풀어서 남을 기쁘게 하고자 하는 생활을 말한다.


2) 심정(心情)은 정적충동(情的衝動)이다.


여기서 정적(情的)인 충동(衝動)에 대해서 설명한다. 정적인 충동이란, 내부로부터 솟아오르는 억제(抑制)하기 어려운 소원 또는 욕망을 뜻한다. 보통의 소원이나 욕망은 의지(意志)로써 억제할 수 있으나, 정적(情的)인 충동은 인간의 의지로써 억제할 수 없는 원망이요 욕망(欲望)이다.


우리들은 기쁘고자 하는 충동(욕망(欲望))이 이와 같이 억제하기 어려운 것임을 일상 체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인간이 돈을 벌려 하고, 지위를 얻으려 하고, 학식을 넓히고, 권력을 차지하려는 것도 기쁘고자 하는 충동때문이요, 어린 아이들이 무엇이든지 호기심(好奇心)을 가지고, 열심히 배우려고 하는 것도 기쁘고자 하는 충동때문이요, 심지어 범죄행위(犯罪행위)마저도 다만 방향이 그릇되었을 뿐, 그 동기는 역시 기쁘고자 하는 충동인 것이다.


이와 같이 기쁘고자 하는 충동(욕망(欲望))은 억제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욕망은 달성되어야만 充足이 된다. 대부분의 인간들에 있어서 기쁘고자 하는 욕망이 충족되지 않고 있는 것은, 기쁨이 사랑을 통해서만 얻어짐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기쁨이 사랑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은, 그 기쁨의 근거(根據)가 하나님에 있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은 심정(心情)이시다.


하나님은 심정(心情) 즉 사랑을 통해서 기쁘고자 하는 정적(情的)인 충동을 지니고 있는 바, 이같은 하나님의 충동은 인간에 있어서의 충동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억제(抑制)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인간은 닮기의 법칙에 따라서 이같은 하나님의 심정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비록 타락(墮落)하여 사랑은 상실(喪失)되었지만 기쁘고자 하는 충동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것으로 정적(情的)인 충동을 억제하기란 어렵다는 것이 밝혀졌으리라 믿는다.


그런데 하나님에 있어서 이 기쁘고자 하는 정적인 충동은, 사랑하고자 하는 충동에 의해서 뒷받침되고 있다. 즉 참 기쁨은 참사랑을 통해서만 얻어지기 때문에, 사랑하고자 하는 충동이 기쁘고자 하는 충동보다 더 강력한 것이다. 그리하여 사랑의 충동은, 사랑하고 싶어서 견딜 수 없는 욕망(欲望)을 뜻하게 된다. 사랑하고 싶어서 견딜 수 없다함은, 사랑의 대상을 갖고 싶어서 견딜 수 없음을 또한 뜻한다.


이러한 사랑의 충동에 의해서 기쁘고자 하는 충동이 촉발(觸發)된다. 따라서 사랑의 충동이 1차적인 것이요, 기쁨의 충동은 2차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기쁨을 위한 수단이 결코 아니며, 다만 무조건적인 충동일 뿐이다. 그 사랑의 필연적(必然的)인 결과가 기쁨이다. 따라서 사랑과 기쁨은 표리(表裏; 겉과 속)관계에 있으며, 기쁘고자 하는 충동도 실은 사랑하고자 하는 충동이 표면화(表面化)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정(心情)은 한없이 사랑하고 싶은 정적(情的)인 충동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에는 반드시 그 사랑의 대상이 필요하다. 더욱이 하나님의 사랑은 억제할 수 없는 충동이기 때문에, 그 사랑의 대상이 또한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따라서 창조는 필연적(必然的), 불가피적(不可避的)이었으며 결코 우발적인 것이 아니었다.


4) 우주(宇宙) 창조(創造)와 심정(心情)


이와 같이 심정(心情)이 동기가 되어, 사랑의 대상으로서 인간과 만물을 창조하셨다. 인간은 하나님의 직접적(直接的)인 사랑의 대상으로, 만물은 하나님의 간접적인 사랑의 대상으로 창조되었던 것이다. 만물이 간접적인 대상이라 함은, 직접적으로는 만물이 인간의 사랑의 대상임을 뜻한다. 그리고 창조의 동기로 볼 때의 인간과 만물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지만, 결과로 볼 때의 인간이나 만물은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인 것이다.


이와 같이 심정(心情)이 동기가 된 우주 창조의 이론 즉 창조의 심정동기설(心情動機說)은 또 하나의 현실문제(창조설(創造說)이 참이냐, 생성설(生成說)이 참이냐의 문제)를 해결한 결과가 되었다. 즉 우주의 발생에 관한 종래의 창조설과 생성설의 논쟁에 종지부를 찍은 결과가 된 것이다. 그것은 생성설〔예:플로티노스의 유출설(流出說), 헤겔의 절대정신의 자기전개설(自己展開說), 가모브(Gamov)의 대폭발(Big Bang)설, 유교의 천생만물설(天生萬物說) 등〕로서는 현실의 죄악이나 혼란 등의 부정적 측면까지도 자연발생에 의한 것으로 다루어져서 해결할 길이 막혀 있었으나, 정확한 창조설(創造說)로서는 그러한 부정적 측면을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5) 심정(心情)과 문화


다음은 심정(心情)이 하나님의 성상의 핵심(위에서 말)이라는 명제가 의미하는 또 하나의 사실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그것은 심정과 문화의 관계에 관한 설명이다. 하나님의 성상(본성상(本性相))은 내적성상과 내적형상으로 되어있는 바, 내적성상이 내적형상보다 더 내적이며 심정은 그 내적성상보다도 더 내적인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창조 본연의 인간의 성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을 도표로 나타내면 그림 1-5와 같다.

 


이 사실은 심정(心情)이 인간의 지적활동(知的活動), 정적활동(情的活動), 의적활동(意的活動)의 원동력이 됨을 뜻한다. 심정은 정적인 충동력으로서 이 충동력이 지적기능, 정적기능, 의적기능을 부단히 자극하여 나타나는 활동이 바로 지적활동, 정적활동, 의적활동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지적활동(知的活動)에 의해서 철학, 과학을 위시한 여러 학문분야가 발달하게 되고, 정적활동(情的活動)에 의해서 회화(繪畵), 음악(音樂), 조각(彫刻), 건축(建築) 등의 예술분야가 발달하게 되고, 의적활동(意的活動)에 의해서 종교, 윤리, 도덕, 교육 등의 규범분야(規範分野; 當爲의 分野)가 발달하게 된다.


따라서 창조본연의 인간들로 구성되는 사회에 있어서는 지적, 정적(情的), 의적활동(意的活動)의 원동력이 심정이요, 사랑이기 때문에 학문도 예술도 규범도 모두 심정이 그 동기가 되고 사랑의 실현이 그 목표가 된다.8) 그런데 학문분야, 예술분야, 규범분야의 총화(總和) 즉 인간의 지적(知的), 정적(情的), 의적활동(意的活動)의 성과의 총화가 바로 문화(文化, 문명(文明))인 것이다.


따라서 창조본연의 문화는 심정을 동기로 하여 사랑의 실현(實踐)을 목표로 하고 성립하며, 이러한 문화는 영원히 계속된다. 이러한 문화를 통일사상은 심정문화(心情文化), 사랑의 문화 또는 중화문화(中和文化)라고 부른다. 그러나 인간 조상의 타락(墮落)으로 인하여, 인류문화는 여러 가지 부정적인 측면을 지닌 비원리적(非原理的)인 문화로서, 흥망을 거듭하면서 오늘에 이르른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성상의 핵심인 심정이 이기심(이기심(利己心))에 의해서 가려져 버렸기 때문이며, 따라서 심정(心情)의 충동력이 이기심을 위한 충동력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오늘날의 혼란(混亂)이 거듭되는 문화를 바로잡는 길은, 이기심을 추방하고 성상의 핵심의 자리에 심정의 충동력을 다시 활성화(活性化)시킴으로써, 전문화분야를 심정을 동기로 하고 사랑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문화영역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즉 심정문화(心情文化), 사랑의 문화를 창건하는 것이다. 이 사실은 심정(心情)은 하나님의 성상의 핵심(核心)이라는 명제가, 오늘날의 위기(危機)에서 문화를 어떻게 구출할 것인가 하는 또 하나의 현실문제 해결의 기준이 됨을 뜻하는 것이다.


6) 심정(心情)과 원력(原力)


끝으로 심정(心情)과 원력(原力)에 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우주 만물은 일단 창조된 뒤에도 부단히 하나님으로부터 일정한 힘을 받고있다. 피조물(被造物)은 이 힘을 받아 가지고 개체간에도 힘을 주고 받는다. 따라서 전자(前者)는 종적(縱的)인 힘이요, 후자(後者)는 횡적(橫的)인 힘이다. 통일사상은 전자를 원력(原力)이라 하고 후자(後者)를 만유원력(萬有原力)이라고 한다.9)


그런데 이 원력(原力)도 실은 원상내의 수수작용(授受作用), 즉 성상과 형상의 수수작용에 의해서 형성된 신생체(新生體)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성상내의 심정(心情)의 충동력과 형상내의 전에너지(Pre-Energy)와의 수수작용에 의해서 형성된 새로운 힘이 원력(原力; Prime Force)이다. 이것이 만물에 작용하여 횡적(橫的)인 만유원력(萬有原力)(Universal Prime Force)으로 나타나면 만물(萬物, 자연) 상호간의 수수작용을 일으킨다. 따라서 만유원력(萬有原力)은 하나님의 원력의 연장인 것이다.


만유원력(萬有原力)이란, 물리학에서 말하는 만유인력(萬有引力)에 해당하는 개념(槪念)인 바, 만유원력이 심정(心情)의 충동력과 전에너지(前에너지, 에너지로 변환되기 전의 상태)에 의해서 형성된 원력의 연장이란 말은, 우주내의 만물 상호간에 물리학적인 힘 뿐 아니라, 사랑의 힘도 작용하고 있음을 뜻한다.10) 따라서 인간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해도 좋고 안해도 좋은 자의적(恣意的)인 것이 아니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따라야 하는 천도(天道)인 것이다.


이리하여 심정(心情)과 원력(原力)과의 관계에 관한 이론도 또 하나의 현실문제 해결의 기준이 됨을 알게 된다. 즉 인간은 남을 반드시 사랑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 때에 따라서는 투쟁(폭력)이 필요할 때도 있지 않는가, 적을 사랑할 것인가, 타도(打倒)할 것인가 하는 현실적 문제에 대한 해답이 이 이론속에 있음을 알게 된다. 이상으로 심정(心情)에 관한 설명을 전부 마친다. 다음은 로고스에 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