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 섭리역사의 각 시대와 그 연수의 형성

2013. 2. 8. 10:50참사랑 영원까지/원리강론

제 3 장 섭리역사의 각 시대와 그 연수의 형성

 

제 1 절 섭리적 동시성의 시대

 

동시성(同時性)의 시대(時代)란 무엇인가? 인류역사의 과정을 살펴보면 비록 그 정도와 범위의 차이는 있지만, 지나간 어느 시대에 있었던 것과 흡사한 형의 역사적 과정이 뒷시대에 반복되고 있는 사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사가(史家)들은 이러한 역사적인 현상을 보고 역사노정(歷史路程)은 어떠한 동형(同型)의 나선상(螺線上)을 돌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이 어떤 시대가 그 전시대(前時代)의 역사노정과 흡사한 모습으로 반복되는 경우, 그러한 시대들을 말하여 ‘섭리적 동시성의 시대’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동시성의 시대를 일러 섭리적 동시성의 시대라고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더욱 자세히 설명하겠거니와, 이 현상이 본래 하나님의 탕감복귀섭리(蕩減復歸攝理)에 기인(基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섭리적 동시성의 시대는 어찌하여 생기게 되는가? 우리는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목적을 이루어 나오는 과정에서 되어진 모든 사실들이 역사를 형성해 나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는 섭리노정을 걸어가던 어떠한 중심인물(中心人物)이 자기의 책임분담(責任分擔)을 다하지 못할 때에는, 그 인물을 중심한 섭리의 한 시대는 끝나고 만다.

 

 

그러나 그 ‘뜻’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豫定)은 절대적이기 때문에(전편 제6장), 하나님은 다른 인물을 그의 대신으로 세워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탕감복귀(蕩減復歸)하는 새 시대를 다시 세워 나아가시는 것이다. 따라서 이 새 시대는 전시대의 역사노정을 탕감복귀하는 시대가 되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똑같은 노정의 역사를 반복하게 되어 섭리적인 동시성의 시대는 형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복귀섭리(復歸攝理)를 담당한 인물들은 그 전 시대의 종적인 탕감조건(蕩減條件)들을 횡적으로 일시에 탕감복귀해야 되므로, 복귀섭리가 연장되어 종적인 탕감조건이 부가되어 갈수록 횡적으로 세워야 할 탕감조건도 점차로 가중되어 가는 것이다. 따라서 동시성의 시대도 점차로 그 내용과 범위를 달리하게 된다. 동시성의 시대의 형태가 완전한 상사형(相似形)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한편 성장기간(成長期間)의 3단계를 그 형으로써 분류해 본다면 소생(蘇生)은 상징형(象徵型), 장성(長成)은 형상형(形象型), 그리고 완성(完成)은 실체형(實體型)으로 나누어지게 되므로, 복귀섭리노정(復歸攝理路程)에서 이러한 형들을 동시성으로 반복해 온 시대들도 역시 그러한 형의 역사를 재현시켜 나왔던 것이다. 즉 복귀섭리역사의 전기간을 형으로 본 동시성의 관점에서 갈라 본다면, 복귀기대섭리시대(復歸基臺攝理時代)는 상징적 동시성의 시대요, 복귀섭리시대(復歸攝理時代)는 형상적 동시성의 시대이며, 복귀섭리연장시대(復歸攝理延長時代)는 실체적 동시성의 시대인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동시성의 시대를 형성하는 요인(要因)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겠다.

이처럼 동시성의 시대가

 반복되는 이유는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려는 섭리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시성의 시대를 형성하는 요인으로, 첫째는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세 가지의 조건을 들 수 있는 것이니, 그것은 이 기대를 위한 중심인물(中心人物)과 조건물(條件物)과 수리적(數理的)인 기간(期間) 등이다. 그리고 그 둘째는 ‘실체기대(實體基臺)’를 복귀하기 위한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이다.

 

이러한 요인들로써 이루어지는 섭리적 동시성의 시대에는 아래와 같은 두 가지 성격의 것이 있다.
그 첫째는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수리적 탕감기간(蕩減期間)인 대수(代數)나 혹은 연수(年數)를 요인으로 하여 섭리적 동시성이 형성되는 것이다.


복귀섭리역사(復歸攝理歷史)는 그 섭리를 담당한 중심인물들이 책임분담(責任分擔)을 다하지 못함으로써 그 뜻이 연장됨에 따라 상실되었던 ‘믿음의 기대’를 끝내 반복하여 탕감복귀해 나오신 섭리역사(攝理歷史)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여기에서 필연적으로 수리적인 ‘믿음의 기간’을 탕감복귀하는 섭리도 반복하게 됨으로써, 결국 섭리적 동시성의 시대는 어떠한 연수나 혹은 대수의 반복에 의하여 동일한 형을 거듭 형성해 나온 것이었다. 본장의 목적은 바로 이에 관한 문제를 다루려는 데 있다.


둘째로는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중심인물과 그 조건물, 그리고 ‘실체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 등의 섭리적인 사실을 요인으로 하여 동시성이 형성되는 것이다.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목적은 결국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려는 데 있으므로, 그 섭리가 연장됨에 따라 이 기대를 복귀하려는 섭리도 반복된다. 그런데 ‘메시아를 위한 기대’는 먼저 ‘상징헌제(象徵獻祭)’로써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고 다음에 ‘실체헌제(實體獻祭)’로써 ‘실체기대(實體基臺)’를 복귀해야만 비로소 그것이 세워지는 것이다.

 따라서 복귀섭리의 역사는 ‘상징헌제’와 ‘실체헌제’를 복귀하려는 섭리를 반복하여 왔기 때문에, 섭리적 동시성의 시대는 결국 이 두 헌제를 복귀하려 했던 섭리적인 사실을 중심하고 형성되는 것이다. 이에 관한 문제는 다음 장에서 상론(詳論)하기로 하겠다.

 

 제 2 절 복귀기대섭리시대의 대수와 그 연수의 형성

 

Ⅰ. 복귀섭리는 왜 연장되며 또 어떻게 연장되는가

 

우리는 위에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이루어 가지고 메시아를 맞음으로써 복귀섭리의 목적을 완성하려는 섭리가 아담으로부터 노아, 아브라함, 모세 등으로 연장되어 예수님 때까지 이르렀고, 또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예수님도 이 목적을 완전히 달성하지 못하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복귀섭리는 다시 그의 재림기(再臨期)까지 연장되어 나온다는 사실을 논술하였다.

 

그러면 복귀섭리는 왜 연장되는가? 이것은 예정론(豫定論)에 의하여서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예정론에 의하면 하나님의 뜻은 절대적인 것으로 예정하시고 이루시는 것이므로 한번 세우신 뜻은 반드시 이루셔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인물을 중심한 그 뜻 성사(成事)의 여부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이어서, 그것은 하나님의 책임분담(責任分擔)에 그 인물의 책임분담이 합해져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그 뜻 성사의 사명을 띤 인물이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함으로써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는, 시대를 달리하여 다른 사람을 그 대신으로 세워서라도 반드시 그 뜻을 이루시는 섭리를 하시는 것이다. 이와 같이 되어 복귀섭리는 연장되어 나아간다.

 

다음으로 우리는 복귀섭리(復歸攝理)는 어떻게 연장되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창조원리(創造原理)에 의하면 하나님은 3수적인 존재이시기 때문에, 그를 닮은 모든 피조물은 그 존재양상(存在樣相)이나 그 운동이나 또는 그 성장과정 등 모두가 3수 과정을 통하여 나타난다.

 

그러므로 사위기대(四位基臺)를 조성하여 원형운동(圓形運動)을 함으로써 창조목적을 이루는 데 있어서도, 정(正)·분(分)·합(合)의 3단계의 작용에 의하여 삼대상목적(三對象目的)을 이룸으로써 3점을 통과해야 되는 것이다. 그런데 창조목적을 복귀해 나아가는 섭리는 말씀에 의한 재창조(再創造)의 섭리이기 때문에, 이 복귀섭리가 연장됨에 있어서도 창조원리에 의하여 3단계까지 연장될 수 있는 것이다.

 

아담가정에서 가인 아벨의 ‘실체헌제(實體獻祭)’가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에 이 뜻은 노아를 거쳐 아브라함에까지 3차로 연장되었었고, 아브라함이 ‘상징헌제(象徵獻祭)’에서 실수하자 그 뜻은 이삭을 거쳐 야곱에까지 연장되었으며, 또 모세나 예수님을 중심한 가나안 복귀노정도 각각 3차로 연장되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성전 건축(聖殿建築)의 이상(理想)은 사울왕의 잘못으로 인하여 다윗왕 솔로몬왕에까지 연장되었고, 또 첫 아담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하나님의 창조이상(創造理想)은 후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을 거쳐 그의 재림기(再臨期)까지 3차로 연장되어 가는 것이다.

 

우리의 격언에 ‘초부득삼(初不得三)’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바로 이러한 원리를 현실생활 속에서 찾아낸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Ⅱ. 종적인 탕감조건과 횡적인 탕감복귀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뜻을 담당한 중심인물(中心人物)은, 자기가 세워질 때까지의 섭리노정(攝理路程)에 있어서 자기와 동일한 사명을 담당했던 인물들이 세우려 했던 모든 탕감조건(蕩減條件)들을 자기를 중심하고 일시에 탕감복귀(蕩減復歸)하지 않으면 그들의 사명을 계승 완수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인물이 또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할 때에는, 그가 세우려 했던 탕감조건들은 모두 그 다음에 그의 대신 사명자(使命者)로 오는 인물이 세워야 할 탕감조건으로 넘겨지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복귀섭리노정에서 그 섭리를 담당했던 인물들이 책임을 다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으로 가중되어 내려온 조건들을 종적(縱的)인 탕감조건이라 하고, 이러한 모든 조건들을 어떤 특정한 사명자를 중심하고 일시에 탕감복귀하는 것을 횡적(橫的)인 탕감복귀라고 한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이 그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는 아담가정과 노아가정이 세우려 했던 모든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일시에 횡적으로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3제물(三祭物)을 한 제단에 놓고 일시에 헌제(獻祭)한 것은 아담, 노아, 아브라함의 3단계로 연장되어 내려온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아브라함의 헌제를 중심하고 일시에 횡적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 3제물은 일찍이 아담과 노아가 세우려다 못 세운 여러 조건들과 또 아브라함이 중심이 되어 세우려 하였던 모든 조건들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야곱은 노아로부터 그 자신에 이르는 12대(代)의 종적인 탕감조건을 일시에 횡적으로 탕감복귀(蕩減復歸)하는 조건을 세워야 했기 때문에, 12자식(子息)을 세워 12지파(支派)에로 번식시켜 나아갔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역시 4천년 섭리역사노정(攝理歷史路程)에서 복귀섭리를 담당했던 수많은 선지자(先知者)들이 남겨 놓은 종적인 탕감조건(蕩減條件)들을 그 자신을 중심하고 일시에 횡적으로 탕감복귀하셔야 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예수님이 12제자(弟子)와 70문도(門徒)를 세우신 것은, 12자식과 70가족을 중심하고 섭리하셨던 야곱의 노정과 12지파(支派)와 70장로(長老)를 중심하고 섭리하셨던 모세노정 등의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예수님을 중심하고 일시에 횡적으로 탕감복귀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또 예수님이 40일 금식기도(禁食祈禱)를 하신 것은, 복귀섭리노정(復歸攝理路程)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믿음의 기대’를 세우는 데 필요했던 ‘40일 사탄 분립’의 모든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예수님을 중심하고 일시에 횡적으로 탕감복귀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복귀섭리(復歸攝理)를 담당한 인물은 단순히 그 한 개체로서만이 아니고 그에 앞서 동일한 사명을 가지고 왔다 간 모든 선지선열(先知先烈)들의 재현체(再現體)이며, 또한 그들의 역사적인 결실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Ⅲ. 종으로 된 횡적인 탕감복귀

 

다음으로는 종(縱)으로 된 횡적(橫的)인 탕감복귀(蕩減復歸)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이미 아브라함을 중심한 복귀섭리에서 상술(詳述)한 바이지만, 아브라함 때는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섭리에 있어서 제3차에 해당하는 때였다. 따라서 그때에는 기필코 그 뜻을 이루어야 할 원리적(原理的)인 조건하(條件下)에 있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아담가정과 노아가정의 실수로 말미암아 중첩(重疊)되어 왔던 모든 종적인 탕감조건(蕩減條件)들을 일시에 횡적으로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상징헌제(象徵獻祭)’에서 실수하였기 때문에 그 사명을 다음으로 연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었다. 거기에서 하나님은 이미 실패한 아브라함을 실패하지 않은 것과 같은 입장에 세우시고, 또 그로부터 종적으로 연장되는 복귀섭리도 연장되지 않고 횡적으로 탕감복귀한 것과 같은 자리에 세우셔야 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섭리를 하시기 위하여 이미 아브라함을 중심한 복귀섭리에서 상론한 바와 같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각각 그 개체는 서로 다르지만 뜻을 중심하고 보면 완전한 일체로서 탕감조건을 세우도록 섭리하셨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뜻으로 보면 완전히 일체가 되었었기 때문에 야곱의 성공은 곧 이삭의 성공이었고, 또 그것은 곧 아브라함의 성공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을 중심한 뜻은 종적으로 이삭과 야곱으로 연장되었으나, 결국 뜻을 중심하고 보면 그것은 연장되지 않고 아브라함을 중심하고 횡적으로 탕감복귀한 것과 같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뜻을 중심한 면에서는 아브라함 한 사람과 같이 보아야 하며, 따라서 그 뜻은 아브라함 1대(一代)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은 입장이었던 것이다. 출애굽기 3장 6절에 하나님을 일러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신 것은, 이러한 견지에서 그들 3대(三代)는 일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이 그의 ‘상징헌제(象徵獻祭)’ 실패로 말미암아 그 자신을 중심하고 횡적인 탕감조건(蕩減條件)을 세우지 못하게 되었을 때, 종적으로 이삭과 야곱의 3대로 연장해 가면서 세운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결국 아브라함을 중심하고 1대에서 횡적으로 탕감복귀한 것과 같은 입장에 세우셨기 때문에, 이것을 종(縱)으로 된 횡적 탕감복귀(橫的 蕩減復歸)라고 하는 것이다.

 

Ⅳ.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수리적인 탕감기간

 

우리는 이미 후편 서론(緖論)에서, 믿음을 세우는 중심인물(中心人物)이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려면 그를 위한 수리적인 탕감기간(蕩減期間)을 복귀해야 된다는 것을 논술한 바 있는데, 이제 그 이유를 알아보기로 하자.

하나님은 수리적(數理的)으로도 존재하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인간을 중심한 피조세계(被造世界)는 무형의 주체로 계시는 하나님의 이성성상(二性性相)의 수리적인 전개에 의한 실체대상(實體對象)인 것이다. 그리고 피조물(被造物)의 평면적인 원리를 찾아 나아가는 과학의 발달이 수리적인 연구에 의하여서만 가능한 것도 여기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창조된 인간 시조는 수리적인 성장기간(成長期間)을 거친 후에야 ‘믿음의 기대’를 세워 가지고 수리적인 완성실체(完成實體)가 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피조세계(被造世界)가 사탄의 주관권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하기 위하여는 그것을 상징하는 어떠한 조건물(條件物)을 세워 놓고, 사탄의 침범을 당한 수를 복귀하는 수리적(數理的)인 탕감기간(蕩減期間)을 세움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이다.

그러면 원래 타락 전 인간 시조(始祖)는 어떠한 수에 의한 ‘믿음의 기대’를 세워서 어떠한 수리적인 완성실체가 되었어야 했던가?
창조원리(創造原理)에 의하면, 무릇 모든 존재물 가운데 사위기대(四位基臺)를 조성하지 않고 존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따라서 미완성기에 있었던 아담과 해와도 사위기대 조성에 의하여 존재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사위기대는 그 각 위(位)가 각각 성장기간의 3단계를 거치어 도합 12수의 수리적인 성장기간을 완성함으로써, 12대상 목적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아담이 ‘믿음의 기대’를 세우는 기간이었던 성장기간은 바로 12수 완성기간인 것이다. 그러므로 첫째로, 미완성기에 있었던 인간 시조는 12수에 의한 ‘믿음의 기대’를 세워 가지고, 12대상 목적을 완성함으로써 12수 완성실체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타락됨으로 인하여 이것이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기 때문에, 복귀섭리역사노정(復歸攝理歷史路程)에 있어서 이것을 탕감복귀하는 중심인물은 12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을 세움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12수 완성실체의 복귀를 위한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조성할 수 없게 되었다.

예를 들면, 노아가 방주(方舟)를 짓는 기간 120년, 모세를 중심한 가나안 복귀섭리기간 120년, 아브라함이 소명(召命)된 후 야곱이 에서에게서 장자(長子)의 기업(基業)을 복귀할 수 있는 탕감조건(蕩減條件)을 세울 때까지의 120년, 또 이 기간을 탕감복귀하기 위한 구약시대(舊約時代)에 있어서의 통일왕국시대(統一王國時代) 120년과 신약시대(新約時代)에 있어서의 기독왕국시대(基督王國時代) 120년 등은 모두 이 12수를 복귀하기 위한 탕감기간이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타락 전 미완성기의 아담과 해와는 성장기간의 3단계를 거쳐 제4단계인 하나님의 직접주관권 내(直接主管圈內)에 들어감으로써 비로소 사위기대(四位基臺)를 완성하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그들이 ‘믿음의 기대’를 세워 나아가던 성장기간은 4수 완성기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둘째로, 미완성기에 있었던 인간 시조는 4수에 의한 ‘믿음의 기대’를 세워 가지고 사위기대를 완성함으로써 4수 완성실체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타락됨으로 인하여 이것 또한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기 때문에, 복귀섭리역사노정(復歸攝理歷史路程)에 있어서 이것을 탕감복귀하는 중심인물(中心人物)은 4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을 세움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4수 완성실체의 복귀를 위한 ‘실체기대’를 조성할 수 없게 되었다.

이미 후편 제1장 제2절 Ⅰ의 2에서 상세히 논술한 바, 노아의 방주를 중심한 심판 40일을 비롯한 모세의 금식 40일, 가나안 정탐기간(偵探期間) 40일, 예수님의 금식(禁食) 40일과 부활(復活) 40일 등은 모두 이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4수 복귀의 탕감기간(蕩減期間)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성장기간(成長期間)은 21수 완성기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셋째로, 미완성기에 있었던 인간 시조는 21수에 의한 ‘믿음의 기대’를 세워 가지고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완성함으로써 21수 완성실체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타락됨으로 인하여 이것 또한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기 때문에, 복귀섭리역사노정(復歸攝理歷史路程)에 있어서 이것을 탕감복귀(蕩減復歸)하는 중심인물은 21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을 세움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21수 완성실체의 복귀를 위한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조성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면 어찌하여 성장기간(成長期間)이 21수 완성기간이 되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21수의 뜻을 알려면 먼저 3수와 4수와 7수에 대한 원리적인 뜻을 알아야 한다. 이성성상(二性性相)의 중화적 주체(中和的 主體)이신 하나님은 3수적인 존재이시다. 그리고 피조물(被造物)의 완성은 곧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어 사위기대(四位基臺)를 조성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인간의 개체가 완성되려면 하나님을 중심하고 마음과 몸이 삼위일체(三位一體)를 이루어 사위기대를 조성해야 하고, 부부로서 완성되려면 하나님을 중심하고 남성과 여성이 삼위일체를 이루어 사위기대를 조성해야 하며, 또 피조세계(被造世界)가 완성되려면 하나님을 중심하고 인간과 만물세계가 삼위일체를 이루어 사위기대를 조성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피조물이 이와 같이 하나님을 중심하고 일체를 이루어 사위기대를 조성하기 위하여는 성장기의 3기간을 거쳐서 삼대상목적(三對象目的)을 완성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써 3수를 하늘수 또는 완성수라고 부른다.

이렇듯 어떠한 주체(主體)와 대상(對象)이 하나님을 중심하고 합성일체화(合性一體化)하여 삼위일체를 이룰 때에, 그 개성체는 사위기대(四位基臺)를 조성하여 동서남북의 4방성을 갖춘 피조물(被造物)로서의 위치를 결정하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4수를 땅수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와 같이 피조물이 3단계의 성장과정을 거쳐서 사위기대를 조성하여 시간성과 공간성을 가진 존재로서 완성되면, 하늘수와 땅수를 합한 7수 완성의 실체가 된다. 천지창조(天地創造)의 전기간이 7일이 된 원인도 여기에 있다. 그리고 창조의 전기간을 한 기간으로 볼 때에는 7수 완성기간이 되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완성되는 한 기간을 7수 완성기간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장기간(成長期間)을 형성하는 3기간을 각각 소생단계(蘇生段階)가 완성되는 한 기간, 장성단계(長成段階)가 완성되는 한 기간, 완성단계(完成段階)가 완성되는 한 기간으로 본다면, 그 기간들도 역시 각각 7수 완성기간이 되므로 전성장기간(全成長期間)은 21수의 완성기간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믿음의 기대’를 위한 중심인물(中心人物)들이 세웠던 21수 탕감기간(蕩減期間)의 예를 들면, 노아 홍수(洪水)의 기간에 하나님이 3단계의 섭리를 예시(豫示)하시기 위하여 노아로 하여금 3차에 걸쳐 비둘기를 내보내게 하셨는데, 그 간격을 각각 7일간으로 하심으로써 뜻으로 본 그 전기간은 21일간이 되었던 것이다(창 7 : 4, 창 8 : 10, 창 8 : 12). 그리고 야곱이 가정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세우기 위하여 하란으로 갔다가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섭리의 기간을 세울 때에도 역시 7년씩 3차에 걸친 21년을 요하였던 것이다. 나아가 야곱의 이러한 21년을 탕감복귀하는 기간으로서 구약시대(舊約時代)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바빌론 포로(捕虜) 및 귀환기간(歸還期間) 210년이 있었고, 신약시대(新約時代)에는 교황 포로 및 귀환기간 210년이 있었던 것이다.

성장기간(成長期間)은 또한 40수 완성기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넷째로, 타락 전 미완성기에 있었던 인간 시조는 40수에 의한 ‘믿음의 기대’를 세워 가지고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완성함으로써 40수 완성실체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타락됨으로 인하여 이것이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기 때문에, 복귀섭리역사노정(復歸攝理歷史路程)에 있어서 이것을 탕감복귀(蕩減復歸)하는 중심인물은 40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蕩減期間)을 세움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40수 완성실체의 복귀를 위한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조성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면 어찌하여 성장기간(成長期間)이 40수 완성기간이 되는가를 알아보자.
이것을 알기 위하여는 먼저 10수에 대한 의의를 알아야 한다. 성장기간 3단계의 각 기간이 다시 각각 3단계로 구분되면 모두 9단계가 된다. 9수의 원리적 근거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무형(無形)의 이성성상(二性性相)의 수리적 전개에 의하여 그 실체대상(實體對象)으로 분립된 피조물은, 성장기간의 9단계를 지나서 제 10단계인 하나님의 직접주관권(直接主管圈)으로 돌아가 그와 일체를 이룰 때 비로소 창조목적을 완성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10수를 귀일수(歸一數)라고 한다. 하나님이 아담 이후 10대 만에 노아를 찾아 세우셨던 것은, 아담을 중심하고 이루시려다가 못 이루신 뜻을 노아를 중심하고 복귀하여 하나님에게로 재귀일(再歸一)하게 하시기 위한 10수 복귀의 탕감기간을 세우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담과 해와를 중심한 사위기대(四位基臺)는, 그 각 위(位)가 각각 성장기간의 10단계를 거치어 도합 40수의 수리적인 성장기간을 완성함으로써 40수 완성실체기대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장기간은 40수 완성기간이기도 한 것이다.

이제 복귀섭리(復歸攝理)의 역사노정에서 이 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 세워졌던 40수 탕감기간의 예를 들어 보면, 노아 때에 방주(方舟)가 아라랏산에 머문 후 비둘기를 내보낼 때까지의 40일 기간, 모세의 바로궁중 40년, 미디안광야 40년, 민족적 가나안 복귀의 광야(曠野) 40년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탕감복귀섭리노정(蕩減復歸攝理路程)에 있어서의 40수는 두 가지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는 타락인간(墮落人間)이 4수를 탕감복귀할 때 귀일수(歸一數)인 10수가 승(乘)해져서 된 40수이고, 또 하나는 바로 위에서 논술한 바 타락 전 아담이 세워야 했던 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한 40수이다.

그런데 민족적 가나안 복귀의 광야 40년은 모세의 바로궁중 40년과 미디안광야 40년을 탕감복귀(蕩減復歸)하는 기간인 동시에 정탐(偵探) 40일, 따라서 모세의 금식(禁食) 40일을 탕감복귀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40년 기간은 위에서 논한 바 서로 성격을 달리한 두 40수를 동시에 탕감복귀하는 것이 된다. 이것은 복귀섭리역사노정(復歸攝理歷史路程)에 있어서의 ‘믿음의 기대’를 세우는 중심인물이 모든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동시에 횡적으로 탕감복귀하는 데서 일어나는 현상인 것이다.

그리고 이 40수를 탕감복귀하는 섭리가 연장될 때에는 그것이 10단계 원칙에 의한 탕감기간(蕩減期間)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40수는 10배수 배가원칙(倍加原則)에 따라 400수 또는 4000수로 연장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예를 들면, 노아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400년, 애급 고역(埃及苦役) 400년, 아담으로부터 예수님까지의 4000년 등이 그것이다.

우리는 이제 위에서 논술한 바에 의하여, 복귀섭리(復歸攝理)의 중심인물(中心人物)이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는 어떠한 수리적(數理的)인 탕감기간(蕩減期間)들을 세워야 하는가를 종합해 보기로 하자.
원래 인간 시조(始祖)가 타락하지 않고 12수, 4수, 21수, 40수 등에 의한 ‘믿음의 기대’를 세워서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완성함으로써 이러한 수들의 완성실체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타락됨으로 인하여 이 모든 것들이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기 때문에, 복귀섭리역사노정(復歸攝理歷史路程)에 있어서 이것들을 탕감복귀하는 중심인물은 12수, 4수, 21수, 40수 등을 복귀하는 수리적인 탕감기간을 세우지 않으면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여 이러한 수들의 완성실체 복귀를 위한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조성할 수 없게 되었다.

 

Ⅴ. 대수를 중심한 동시성의 시대

 

하나님은 아담으로부터 10대 1600년 만에 노아를 택하시어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중심인물로 세우셨다. 우리는 여기에서 1600년과 10대는 어떠한 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으로서의 의의를 가지고 있는가를 알아야 하겠다.

우리는 바로 위에서 10수는 귀일수(歸一數)라는 것과 성장기간(成長期間)은 이 10수 완성기간이기도 하다는 것을 논하였다. 그러므로 인간 시조는 이 10수 완성기간을 그 자신의 책임분담(責任分擔) 수행에 의하여 통과함으로써 10수 완성실체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것들이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기 때문에, 이것들을 탕감복귀(蕩減復歸)하기 위한 중심인물을 찾아 세워 가지고 하나님에게 재귀일(再歸一)시키는 10수 완성실체의 복귀섭리(復歸攝理)를 하기 위하여는, 그 중심인물로 하여금 10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을 세우게 하시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은 이러한 10수 복귀의 탕감기간을 세우게 하시기 위하여, 아담으로부터 10대 만에 노아를 부르시어 복귀섭리의 중심인물로 세우셨던 것이다.

우리는 또 인간 시조가 40수 완성의 성장기간을 다 거쳐야만 40수 완성실체가 될 수 있었다는 것도 바로 위에서 논술하였다. 그런데 타락인간은 탕감복귀를 위한 사위기대(四位基臺)를 조성하여, 아담이 타락하지 않고 세워야 했던 40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을 세우지 않으면, 40수 완성실체의 복귀를 위한 중심인물로 세워질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사위기대의 각 위가 40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을 세워야 하기 때문에 그것들은 모두 160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이 되어야 하고, 이것을 귀일수로서의 10대에 걸쳐서 세워야 하기 때문에 그것들은 모두 1600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아담으로부터 10대 1600년 만에 노아를 택하셨던 것은 타락인간이 바로 이러한 1600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을 세워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노아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가 실패로 돌아간 후 10대 400년 만에 다시 아브라함을 택하시어 복귀섭리의 중심인물(中心人物)로 세우셨다. 따라서 노아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시대는 아담으로부터 노아까지의 시대를 대수(代數)를 중심하고 탕감복귀하는 동시성의 시대였다.

이 시대가 어찌하여 400년이 되었는가 하는 것은 이미 후편 제1장 제3절의 Ⅰ에서 논술하였다. 하나님이 노아로 하여금 40일 심판기간(審判期間)을 세우게 하셨던 것은 10대와 1600년에 의한 수리적인 탕감복귀의 전목적(全目的)을 성취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함의 실수로 인하여 이 40일 심판기간이 또다시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복귀섭리를 담당한 중심인물로 하여금 또 이것을 복귀하는 탕감기간(蕩減期間)을 세우게 하시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담 이후 각 대(代)마다 160수 복귀를 위한 탕감기간을 세우는 섭리를 하시어 이것이 노아 때까지 10대를 계속하여 내려오게 되었던 것과 같이, 그와 동시성의 시대인 노아로부터 아브라함에 이르기까지의 10대도 각 대를 심판 40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으로써 세워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1대의 탕감기간을 40일로써 세울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이 정탐(偵探) 40일의 실수를 광야 표류(曠野漂流) 40년 기간으로써 탕감복귀하였던 것과 같은(민 14 : 34) 탕감법칙(蕩減法則)에 의하여 심판 40일의 실수를 40년 기간으로써 탕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40년으로써 1대의 탕감기간으로 세우게 하셨던 것이다. 이와 같이 1대를 40년 탕감기간으로써 세우게 하시는 섭리가 10대에 걸치게 되었기 때문에, 그 전탕감기간(全蕩減期間)은 400년을 요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Ⅵ. 종으로 된 횡적 탕감복귀섭리시대

 

위에서 이미 밝혀진 바와 같이 복귀섭리(復歸攝理)를 담당한 중심인물은 종적인 탕감조건을 모두 횡적으로 탕감복귀해야 되기 때문에, 섭리역사가 연장될수록 복귀섭리를 담당하는 후대(後代)의 인물이 세워야 할 횡적인 탕감조건은 점점 가중되어 가는 것이다.

그런데 아담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에 있어서는 복귀섭리를 처음으로 시작하던 때였으므로 종적인 탕감조건은 아직 생기지 않았었다. 따라서 아담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에 있어서는 가인과 아벨이 ‘상징헌제(象徵獻祭)’를 하는 것과 가인이 아벨에게 순종굴복(順從屈伏)하여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서 ‘실체헌제(實體獻祭)’를 하는 것으로써 단순하게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수리적인 탕감기간도 그들이 상징과 실체의 두 헌제를 하는 기간으로써 탕감복귀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아담 이후의 믿음을 세우는 중심인물들이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 바로 위에서 논한 바 12, 4, 21, 40 등의 각 수를 복귀하는 수리적인 탕감기간을 세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은, 아담가정의 헌제(獻祭) 실패로 말미암아 복귀섭리(復歸攝理)의 기간이 연장됨으로써 그 수리적인 탕감기간들이 종적인 탕감조건으로 남아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아는 그 탕감조건(蕩減條件)을 횡적으로 탕감복귀해야 될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는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수리적인 탕감기간들로서 방주(方舟) 짓는 기간 120년, 홍수심판(洪水審判) 기간 40일, 비둘기를 3차 내보내기 위하여 세웠던 7일씩 3차를 합한 21일 기간(창 7 : 4, 창 8 : 10, 창 8 : 12),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문 후 비둘기를 내보낼 때까지의 40일 기간 등을 찾아 세워야 했던 것이다(창 8 : 6).

함의 실수로 말미암아 노아가 찾아 세웠던 이러한 수리적인 탕감기간들은 다시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어, 그것들은 다시 종적(縱的)인 탕감조건으로 남아지게 되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그 기간들을 다시 ‘상징헌제’로써 일시에 횡적(橫的)으로 탕감복귀(蕩減復歸)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도 역시 ‘상징헌제’에 실패하였기 때문에, 그 기간들을 탕감복귀하지 못하였었다. 그러므로 이 기간들을 다시 종으로 된 횡적 탕감기간으로써 복귀하기 위하여 뜻 성사를 이삭과 야곱에로 연장시켜 가면서 12, 4, 21, 40의 각 수에 해당하는 탕감기간들을 다시 찾아 세우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을 중심한 복귀섭리(復歸攝理)에 있어서, 그가 하란에서 떠난 후 야곱이 떡과 팥죽으로써 에서로부터 장자(長子)의 기업(基業)을 빼앗을 때까지의 120년, 그리고 그때로부터 야곱이 이삭에게 장자 기업의 축복을 받고 하란으로 가는 도중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때(창 28 : 10~14)까지의 40년, 또 그때로부터 하란에서의 고역(苦役)을 마치고 처자(妻子)와 재물(財物)을 취해 가지고 가나안으로 돌아올 때까지의 21년(창 31 : 41), 야곱이 가나안으로 돌아온 후 팔려간 요셉을 찾아서 애급(埃及)으로 들어갈 때까지의 40년 등은 모두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종으로 된 횡적 탕감기간들이었다. 이와 같이 되어 종으로 된 횡적 탕감복귀 기간의 연수(年數)가 결정되었던 것이다.

 

제 3 절 복귀섭리시대를 형성하는 각 시대와 그의 연수

 

 

복귀섭리시대(復歸攝理時代)는 상징적 동시성(象徵的 同時性)의 시대인 복귀기대섭리시대(復歸基臺攝理時代)를 형상적(形象的)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이다. 이제 이 시대를 형성한 각 시대와 그 연수(年數)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Ⅰ. 애급고역시대 400년

 

노아는 심판(審判) 40일의 ‘사탄 분립기대’ 위에서 ‘믿음의 기대’를 조성하였던 것인데 함의 실수로 그것이 무너지자, 하나님은 다시 아브라함을 그와 같은 입장에 세우시기 위하여 400년을 탕감복귀(蕩減復歸)한 기대 위에서 그로 하여금 ‘상징헌제(象徵獻祭)’를 하도록 명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헌제 실수로 말미암아 그 기대는 다시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되어 하나님은 사탄에게 내준 그 400년의 기대를 다시 찾아 세우시기 위하여,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사탄을 재분립(再分立)하는 애급고역 400년을 치르게 하셨던 것이니(창 15 : 13), 이 시대를 애급고역시대(埃及苦役時代)라고 한다(후편 제1장 제3절 Ⅰ). 이 시대는 상징적(象徵的)인 동시성(同時性)의 시대 중 아담으로부터 노아까지의 1600년을 형상적(形象的)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다.

 

Ⅱ. 사사시대 400년

 

열왕기상 6장 1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백팔십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사년 시브월 곧 이월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고 하신 말씀이 있다. 여기에서 사울왕의 재위 40년과 다윗왕의 재위 40년을 지난 후 솔로몬왕 4년이 바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급(埃及) 땅에서 나온 지 480년이라고 한 것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온 이후 사울왕이 즉위할 때까지는 약 400년 기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기간을 사사시대(士師時代)라고 한다.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은, 노아로부터의 400년 ‘사탄 분립기대’ 위에 세워졌던 아브라함의 입장을 민족적으로 복귀하기 위하여 애급고역(埃及苦役) 400년의 ‘사탄 분립기대’ 위에 섰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모세 대신 여호수아를 중심하고 가나안으로 돌아온 이스라엘의 불신으로 인하여 이 기대는 또다시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었었다. 이와 같이 되어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사탄에게 잃어버린 이 애급고역 400년 기대를 재탕감복귀(再蕩減復歸)하기 위한 사탄 재분립기간(再分立期間)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기간으로 다시 세워진 것이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온 후로부터 사울왕이 즉위할 때까지의 사사시대 400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는 상징적인 동시성의 시대 중 노아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400년을 형상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다.

 

Ⅲ. 통일왕국시대 120년

 

복귀기대섭리시대(復歸基臺攝理時代)를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복귀섭리시대(復歸攝理時代)가 있게 되었으므로 이 섭리노정(攝理路程)을 출발한 아브라함은 아담의 입장이었고, 모세는 노아의 입장이었으며, 사울왕은 아브라함의 입장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복귀기대섭리시대의 종결자(終結者)인 동시에 복귀섭리시대의 출발자(出發者)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를 세운 후에, 그 기대 위에서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를 세워야 했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 때는 하나님이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를 이루려 하시기 제3차로서 그때에는 그것을 기필코 이루셔야 했던 것과 같이,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를 이루시려던 섭리도 역시 사울왕 때가 그 제3차로서 그때에는 기필코 그것을 이루셔야 했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노아 때에 세워졌던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수리적(數理的)인 탕감기간(蕩減期間)인 120년, 40일, 21일, 40일 등을 ‘상징헌제(象徵獻祭)’를 중심하고 횡적으로 탕감복귀(蕩減復歸)하려다가 실수하여 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여기에서 아브라함은 이것들을 종으로 된 횡적 탕감기간으로 복귀하기 위하여 120년, 40년, 21년, 40년으로 다시 찾아 세웠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브라함의 입장을 민족적으로 탕감복귀한 사울왕도 역시 아브라함 때와 같이, 모세 때의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수리적인 탕감기간인 120년(모세의 40년씩 3차의 생애), 40일(금식기간), 21일(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기간), 40년(민족적 가나안 복귀의 광야기간) 등을 성전(聖殿)을 지음으로써 그를 중심하고 횡적으로 탕감복귀하려 하였다.

 

그러나 사울왕도 역시 불신으로 돌아갔기 때문에(삼상 15 : 11~ 23) 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아브라함 때와 같이 이것들을 종으로 된 횡적 탕감기간으로 복귀하기 위하여 통일왕국시대(統一王國時代) 120년, 남북왕조분립시대(南北王朝分立時代) 400년, 이스라엘 민족 포로(捕虜) 및 귀환시대(歸還時代) 210년, 메시아 강림준비시대(降臨準備時代) 400년을 찾아 세워 가지고 마침내 메시아를 맞이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므로 통일왕국시대는 모세가 민족적 가나안 복귀를 위하여 3차에 걸쳐서 ‘믿음의 기대’를 세웠던 120년을 탕감복귀하는 기간이었다. 이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고역(埃及苦役) 400년의 ‘사탄 분립기대’ 위에 선 후에, 모세는 바로궁중 40년으로 ‘믿음의 기대’를 세워 가지고 이스라엘 선민을 인도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가서 성전(聖殿)을 건축하려 하였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이 노정은 모세의 미디안광야 40년, 광야 표류기간(曠野漂流期間) 40년으로 연장되었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민족이 사사시대(士師時代) 400년으로써 애급고역(埃及苦役) 400년을 탕감복귀한 기대 위에 선 후, 사울이 유대민족의 첫 왕으로 즉위하여 그의 재위 40년으로 모세의 바로궁중 40년을 탕감복귀함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세워 가지고 성전을 건축해야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울왕이 불신으로 돌아감으로 말미암아(삼상 15 : 11~23) 모세 때와 같이 성전 건축의 뜻은 다윗왕 40년, 솔로몬왕 40년으로 연장되어 통일왕국시대(統一王國時代) 120년을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는 상징적 동시성의 시대 중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난 후 야곱이 에서에게서 장자(長子)의 기업(基業)을 빼앗을 때까지의 120년을 형상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다. 따라서 마치 아브라함의 뜻이 이삭을 거쳐 야곱 때에 이루어졌던 것과 같이, 사울왕의 성전이상(聖殿理想)도 다윗왕을 거쳐 솔로몬왕 때에야 이루어졌던 것이다.

 

Ⅳ. 남북왕조분립시대 400년

 

사울왕은 그의 40년 재위기간(在位期間)에 성전 건축의 이상(理想)을 이룸으로써 말씀(석판) 복귀를 위한 모세의 금식 40일 기간을 횡적으로 탕감복귀하려 하였었다. 그러나 그가 불신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이 기간을 다시 종으로 된 횡적 탕감기간(橫的 蕩減期間)으로 복귀해야 하였던 것이니, 그것이 바로 통일왕국시대가 북조(北朝) 이스라엘과 남조(南朝) 유대로 분립된 후 유대민족이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 갈 때까지의 400년 남북왕조분립시대(南北王朝分立時代)였던 것이다.

이 시대는 상징적 동시성(象徵的 同時性)의 시대 중 야곱이 에서로부터 떡과 팥죽으로 장자의 기업을 빼앗는 조건을 세운 후, 다시 이삭의 축복(祝福)과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가지고(창 28 : 13) 하란으로 들어갈 때까지의 40년 간을 형상적(形象的)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蕩減復歸)하는 시대였다.

 

Ⅴ. 유대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 210년

 

북조 이스라엘이 그들의 불신으로 인하여 앗시리아에 포로(捕虜)되어 간 후, 남조 유대도 역시 불신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에게 포로 되어 갔다. 이때부터 그들은 바빌론에서 70년 간 포로 되어 있다가 바빌론이 페르시아에게 망한 후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조서(詔書)에 의하여 마침내 해방되었다.

 

유대민족은 그 후 오랜 기간을 두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였는데, 느헤미야가 남은 유대인들을 영솔(領率)하고 환국(還國)하여 성벽을 재건한 후 그들은 선지자(先知者) 말라기를 중심하고 그의 예언에 의하여 (말 4 : 5) 메시아를 맞기 위한 준비기로 들어갔다. 이때가 그들이 바빌론에 포로 된 때로부터 210년이요, 해방되기 시작하고서부터 약 140년 된 때였다. 이 시대를 통틀어 유대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라고 한다.

사울왕은 성전이상(聖殿理想)을 이룸으로써, 모세가 제1차로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여 가지고 가나안 복귀를 하려 했던 21일 기간을 횡적으로 탕감복귀하려 하였다. 그런데 사울왕은 그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이에 실패하였으므로, 다시 이 기간을 종으로 된 횡적 탕감기간(橫的 蕩減期間)으로 복귀하기 위하여 찾아 세운 것이 유대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의 210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는 상징적 동시성의 시대 중 야곱이 이삭으로부터 장자 기업(長子基業)에 대한 축복을 받은 후, 그를 죽이려 했던 에서를 피하여 하란으로 가서 사탄편 인물인 라반의 요구에 의하여 레아를 맞이하기 위한 7년 간과 라헬을 취하기 위한 7년 간, 그리고 재물을 취해 가지고 가나안으로 돌아온 해까지의 7년 간을 합한 21년 간(창 31 : 41)을 형상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던 것이다.

 

Ⅵ. 메시아 강림준비시대 400년

 

유대민족이 바빌론에서 해방되어 가나안으로 귀향한 후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고 선지자 말라기의 예언에 의하여 메시아를 맞이할 민족으로 선 때부터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까지의 400년 기간을 메시아 강림준비시대(降臨準備時代)라고 한다.

사울왕은 그의 성전이상(聖殿理想)을 이룸으로써,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이 제3차 가나안 복귀노정(復歸路程)에서 소비한 광야 40년 기간을 횡적으로 탕감복귀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울왕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실패로 돌아갔으므로, 다시 이 기간을 종으로 된 횡적인 탕감기간으로 복귀하기 위하여 찾아 세운 것이 메시아 강림준비시대의 400년 기간이었다.

그리고 이 시대는 상징적 동시성(象徵的 同時性)의 시대 중 야곱이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복귀한 후 팔려간 요셉을 찾아 애급(埃及)으로 들어가기까지의 40년 간을 형상적(形象的)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蕩減復歸)하는 시대였던 것이다.

 

 

제 4 절 복귀섭리연장시대를 형성하는 각 시대와 그의 연수

 

복귀섭리연장시대(復歸攝理延長時代)는 형상적 동시성(形象的 同時性)의 시대인 복귀섭리시대를 실체적(實體的)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있어서는 복귀섭리시대(復歸攝理時代)를 형성하는 각 시대와 그의 연수(年數)를 그대로 탕감복귀하게 되는 것이다.

 

Ⅰ. 로마제국 박해시대 400년

 

예수님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뜻을 완성하러 오신 분이었다. 그러므로 마치 아브라함이 ‘상징헌제(象徵獻祭)’에 실수함으로 인하여 이루지 못하게 되었던 ‘믿음의 기대’를 민족적인 것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민족에게 애급고역(埃及苦役) 400년의 사탄 분립기간이 있었던 것처럼, 유대민족이 예수님을 산 제물로 바치는 헌제(獻祭)에 실수함으로 말미암아 이루지 못하게 되었던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기독교 신도들 앞에도 애급고역시대(埃及苦役時代)와 같은 시대가 오게 되었던 것이니, 이 시대가 바로 로마제국 박해시대 400년이었던 것이다.

로마제국의 혹심한 박해가 끝나고 콘스탄티누스대제가 기독교(基督敎)를 공인한 것이 서기 313년이었고, 테오도시우스 1세가 기독교를 국교(國敎)로 정한 것이 서기 392년이었다. 그러므로 이 시대는 형상적 동시성의 시대 중 이스라엘 민족의 애급고역시대 400년을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蕩減復歸)하는 시대였던 것이다.

 

Ⅱ. 교구장제 기독교회시대 400년

 

형상적 동시성의 시대인 복귀섭리시대(復歸攝理時代) 중에 사사(士師)를 중심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영도하여 나아가던 사사시대(士師時代) 400년이 있었기 때문에, 실체적 동시성의 시대인 복귀섭리연장시대(復歸攝理延長時代) 중에도 이 사사시대 400년을 탕감복귀하는 시대가 있어야 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로 공인된 후 서기 800년 카알대제가 즉위할 때까지 사사에 해당하는 교구장(敎區長)에 의하여 영도되었던 교구장제 기독교회시대(敎區長制基督敎會時代) 400년 기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는 형상적 동시성의 시대 중 사사시대 400년을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다.

 

Ⅲ. 기독왕국시대 120년

 

복귀섭리시대에 있어서 이스라엘 민족이 사울왕을 중심하고 처음으로 왕국을 세운 후, 다윗왕을 거쳐 솔로몬왕에 이르기까지 120년 간 통일왕국시대(統一王國時代)를 이루었었다. 따라서 이 시대를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서기 800년 카알대제가 즉위한 후로부터 후일 그의 왕통(王統)이 끊어지고 선거왕제(選擧王制)가 되어 919년 헨리 1세가 독일 왕위에 오를 때까지 120년 간에 걸쳐 기독왕국시대(基督王國時代)가 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는 형상적 동시성(形象的 同時性)의 시대 중 통일왕국시대 120년을 실체적(實體的)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다.

 

Ⅳ. 동서왕조분립시대 400년

 

복귀섭리시대(復歸攝理時代)에 있어서의 통일왕국시대에 성전이 뜻 가운데 서지 못하게 되었을 때, 이 왕국이 남조와 북조로 분열되어 400년 간의 남북왕조분립시대(南北王朝分立時代)가 왔었다. 그러므로 복귀섭리연장시대(復歸攝理延長時代)에 있어서도 이 시대를 탕감복귀하는 시대가 있어야 했다. 이것이 바로 기독왕국시대가 지나간 이후 서기 1309년에 교황청(敎皇廳)이 남불(南佛)의 아비뇽에 옮겨질 때까지의 동서왕조분립시대(東西王朝分立時代) 400년이었던 것이다.

 

기독왕국이 처음에 분열되었을 때는 동·서프랑크와 이태리의 세 왕조로 분립되었으나, 이태리는 신성(神聖)로마제국을 계승한 동프랑크의 지배하에 있었으므로 사실상 동서(東西)로 양분된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이 시대는 형상적 동시성의 시대 중 남북왕조분립시대 400년을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다.

 

Ⅴ. 교황 포로 및 귀환시대 210년

 

남북왕조분립시대에 있어서, 북조(北朝) 이스라엘은 우상숭배(偶像崇拜)로 인하여 앗시리아에게 망하고 남조(南朝) 유대마저 불신으로 돌아가 성전이상(聖殿理想)을 재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사탄세계인 바빌론으로 포로 되어 갔다가 귀환하여 다시 성전이상을 세울 때까지 210년 간이 걸렸던 것이다.

 

 따라서 이 시대를 탕감복귀(蕩減復歸)하기 위하여, 동서왕조분립시대(東西王朝分立時代)에 있어서 불신으로 돌아간 교황 클레멘스 5세가 서기 1309년에 로마로부터 남불 아비뇽에 교황청(敎皇廳)을 옮긴 후, 교황들이 포로와 같은 생활을 하다가 다시 로마로 돌아와 가지고 그 후 1517년 종교개혁(宗敎改革)이 일어날 때까지 약 210년 간에 걸친 교황 포로(敎皇捕虜) 및 귀환시대(歸還時代)가 있게 되었었다. 그러므로 이 시대는 형상적 동시성의 시대 중 유대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 210년을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다.

 

Ⅵ. 메시아 재강림준비시대 400년

 

바빌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유대민족이 예언자 말라기를 중심하고 정교(政敎)의 쇄신을 일으키고, 그의 예언에 의하여(말 4:5) 메시아를 맞기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하였을 때부터 메시아 강림준비시대(降臨準備時代) 400년을 지나고 나서야 예수님을 맞았었다.

 

그러므로 이 시대를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복귀섭리연장시대(復歸攝理延長時代)에 있어서도 남불(南佛) 아비뇽에 유수(幽囚)되었던 교황이 로마로 귀환한 후, 서기 1517년 루터를 중심으로 한 종교개혁이 일어난 때로부터 400년을 지남으로써 비로소 재림주(再臨主)를 맞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니, 이 시대가 바로 메시아 재강림준비시대(再降臨準備時代)인 것이다. 따라서 이 시대는 형상적 동시성의 시대 중 메시아 강림준비시대 400년을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