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참사랑 - 제2장 참사랑의 유형_ 2절 부모의 사랑

2013. 3. 6. 14:48참사랑 영원까지/천성경

2절 부모의 사랑

1 자식은 어머니 아버지 사랑의 실현체요 투입체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생명의 연장체입니다. 또한 어머니 아버지 이상의 구현체입니다. 자식을 낳아서 사랑해 본 사람들은 압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아들에 대해 ‘이는 내 사랑의 실체요, 생명의 연장체요, 이상의 구현체다. 제2의 나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식은 사랑과 생명과 이상적 기반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부모는 그 자식을 보면 볼수록 사랑스럽고, 보면 볼수록 생명이 약동하고, 보면 볼수록 이상적인 상대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변할 수 없는 부모의 사랑

2 전통적인, 종적인, 표본적인 사랑이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이것은 종적입니다. 종은 변할 수 없습니다. 부부의 사랑은 이 종적 사랑을 횡적으로 잇기 위한 사랑이기 때문에 부부는 이혼할 수 있더라도 부자의 관계는 끊을 수 없습니다. 천지이치가 그렇습니다. 종적인 사랑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횡은 사방이 있으니까 360도를 돌아갈 수 있지만 종은 한 자리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옮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3 사랑 중에서 제일 귀한 사랑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참된 사랑은 직단거리를 통하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참사랑을 중심한 종적인 사랑입니다. 종적인 사랑은 머무르는 자리가 하나밖에 없고 가를 수가 없습니다. 그 위치를 바꾸었다가는 천지가 뒤넘기칩니다. 제아무리 능력이 많고 제아무리 수단이 좋다 하더라도 수직으로 찾아오는 종적인 사랑을 옮겨 놓았다가는 천지가 암흑천지, 지옥이 되는 것입니다. 직단거리를 통하니 이것이 수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을 상처 입힐 수 없고, 이것을 옆으로 비키게 할 수 없습니다.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절대적입니다. 부자관계는 종적 관계이기 때문에, 수직적 사랑이기 때문에 가를 수 없습니다.


4 부모는 유일하고, 그다음에는 불변하고 영원합니다. 부모는 변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사랑도 혁명을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혁명이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사랑을 혁명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랑은 영원히 존속됩니다. 그러한 부모, 그러한 사랑의 주체 되는 부모가 나를 절대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유일적으로 필요로 하고, 불변적으로 필요로 하고, 영원히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5 어머니 아버지는 아들딸을 위해서 희생한 것을, 밤을 새워 일해서 벌어 먹이고 학교에 보내 공부시키는 것을 수첩에 치부해 두지 않습니다. ‘얼마를 썼으니까, 이것이 10년 지나면 은행 이자가 얼마 된다.’라고 계산해서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투입하고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좋다는 것입니다. 제일 좋은 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부모가 없는 사람을 고아라고 하는데, 고아는 비참한 것입니다. 뿌리를 못 갖고 있기 때문에 방향도 못 갖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희생하는 데서만이 참사랑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우주 창조의 원칙인 것입니다.


6 부모가 자식을 키울 때, 젖먹이 때부터 ‘네가 이다음에 커서 철이 들게 되면, 내가 너를 키워 준 것을 알아야 돼.’라고 교육하는 부모가 있다면 그 부모는 정상적인 부모가 아닙니다. 그렇게 하려면 소를 키워서 일을 시켜 먹는 것이 낫습니다. 자기 자식에게 내가 이렇게 사랑해 주었으니 너는 이 이상으로 해 달라고 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희생하는 것입니다. 주고 또 주어도 부족함을 느끼고, 또 주어도 주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가치의 궁극을 영속적으로 자극시킬 수 있는, 미래의 소망을 계속해서 보충해 줄 수 있는 길이 사랑의 길입니다.


7 타락한 세상에서도 어머니의 사랑은 자식들을 위해서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또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봉사하고 희생해서 잘되기를 바라지만 그런 자식이 안 되어 늙어 죽도록 고생하면 늙어 죽을 때까지 또 투입하고 투입하는 것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타락한 세계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돌아간 부모임을 알게 될 때는 무덤에 가서 불효자식을 용서해 달라고 통곡하며, 늦었지만 이제라도 몇 배 효도하겠다고 180도 돌아서서 효자의 길을 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통한 길이 아닙니다. 이것은 진정한 피 살을 짜내는 사랑의 길에서만 가능합니다.


8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그냥 그대로 생활적인 인연만을 통해서 하는 사랑이 아니라 뼛골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입니다.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고, 끊으려 해도 끊을 수 없는 사랑의 마음을 부모는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여력이 있는 한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식과 생명의 인연이 맺어져 있다는 것을 느낄 때, 부모에게서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자연히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저애는 내 아들이니까 사랑하겠다.’라는 의식적인 마음이 앞서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보다도, 그 인연보다도 앞선 자기의 생명력이 자식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습니다.


9 참사랑은 뭐냐? 위하는 사랑인데, 얼마든지 주고 천년 주고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천년을 주고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기억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세계에서는 입력보다 출력이 큽니다. 부모는 일흔 살 된 아들이라 할지라도, 그 아들이 어디 나갈 적에 ‘애야, 오늘 차 주의해라.’라는 말도 할 수 있습니다. 90세 노년이 되도록 매일같이 되풀이했어도 지칠 줄 모릅니다. 그것은 영원히 계속해도 지치지 않습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타락한 세계의 부모사랑도 그런데 본연의 본질세계인 하나님의 사랑에 속해 있을 때 지치겠습니까? 여기서 비로소 우리 인생의 참다운 하나님의 대상권을 확정지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불변한 것을 알게 될 때, 우리 인간의 사랑을 중심삼고 영생의 논리를 타당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보니 영생하는 것입니다.


10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부모는 이래야 된다.’라는 어떠한 고착된 형태를 가지고 자기를 주장하는 자리에서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주장하지 않고 자기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즉 자기가 없는 자리에서 자식을 사랑합니다. 다시 말하면 부모는 부모의 권한을 가지고 언제나 당당한 자리에서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권한을 망각한 자리, 그 이상의 자리에서까지 자식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을 가지고 자식 앞에 임하는 것이 부모입니다.


11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 아기는 어머니의 젖가슴을 헤치고 파고드는데, 사랑을 빼놓고 보면 그럴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아기에게 부모의 사랑을 느끼게 하고 아기를 품음으로써 자기가 행복하다는 것보다도 천지가 모두 평화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을 느끼고, 전체 분위기에 좋은 것이 싹튼다는 것을 느끼게 될 때에는, 그 아기가 아무리 자기 가슴을 파고든다 하더라도 그것을 용서하고 ‘어서 해라, 어서 해라.’라고 할 수 있는 아량의 마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들은 자식을 무한히 사랑할 수 있습니다.


 부모 사랑은 참사랑의 전형

12 부모들은 자식을 무한히 사랑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기는 부모의 원수입니다. 호스를 갖다 대고 자기 피와 살을 빨아가는 원수입니다. 그러나 어머니로서의 새로운 소망의 자극, 남편에 대한 새로운 자극이 그 아기로 말미암아 찾아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경지에서는 통하는 무엇이 있습니다. 그 경지는 누가 좌지우지할 수 없습니다. 절대적인 사랑에 결부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자기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고 전체를 위하는 사랑을 중심삼고 맹세하는 그 자리는 무엇보다도 강한 기준이 세워지게 됩니다. 그러한 기준 위에 서지 않고 그저 말로만, 또는 보고 듣고 약속하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것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습니다.


13 부모는 자식을 떼어 버릴 수 없습니다.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사랑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열매를 이룹니다. 모든 것은 열매를 찾아갑니다. 열매를 부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나무도 열매를 부정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영원을 지속시키는 것입니다. 여기 열매는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의 요소를 다 끌어오는 것입니다. 다 동원시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보게 되면 좋다는 것입니다. 내 속에 영원한 내가 있고 역사가 있고 발전하는 내가 있습니다. 현재와 미래의 사랑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칠 법이 없습니다. 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주가 보호하게 돼 있습니다.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을 안고 좋아하는 그 자리는 이 우주의 법이 공격할 수 없고 보호하게 되어 있습니다.


14 아기가 배가 고파 오면 어머니의 젖이 불어납니다. 젖이 불어 아파 오면 안 조이는 데가 없습니다. 배고파하는 아이를 안고 젖을 먹이는 어머니의 기분이란 말로는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불었던 젖이 줄어들면 어머니는 시원하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젖 먹이는 맛은 아기 어머니 아니고는 모릅니다. 또 아기가 쪽쪽 빨아 먹으면서 젖을 만지는 걸 볼 때 어머니의 사랑이 거기에서 우러나옵니다. 그러니 모든 희로애락의 쌍곡선이 전부 부딪치는 어머니의 마음은 체험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입니다.


15 본연의 사랑은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생명을 바칠 수 있는 그 사랑입니다. 자기 생명을 넘어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본래 이 우주가 창조된 것은 생명 때문이 아닙니다. 사랑 때문에 지어졌기에 사랑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에 부합될 수 있는 생명이지, 생명에 사랑이 부합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은 생명을 희생해서, 생명을 넘어서 하는 사랑입니다. 그것이 하늘의 사랑이요, 우주와 통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자기 자식을 위하여 생명을 바칠 수 있는 부모일 때 그 부모는 이 우주상에 둘도 없는 참된 부모라는 것입니다.


16 자식을 많이 키워 본 부모는 무엇인지 모르게 사랑의 심정이 넓고 크고 깊은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자식을 많이 길러 낸 사람은 악한 원수도 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무엇인지 모르지만 넓은 터전에 서 있고 넓은 법도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17 아기가 태어나면 어머니의 사랑의 전파를 따라 자동적으로 젖꼭지를 찾아갑니다. 추녀든 미녀든 상관없이 어머니이면 그만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조화무쌍하고 거룩한 모습입니다. 사람은 사랑으로 태어나서 사랑을 받으면서 큽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나’란 부모의 사랑의 열매입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이 어떻다는 것을 실제 열매로 보여 준 것이 ‘나’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열매이기 때문에 부모는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열매를 통해서 무한한 사랑이 다시 열매맺는 것입니다. 개인적 사랑, 가정적 사랑, 종족적 사랑, 민족적 사랑, 국가적 사랑, 세계적 사랑, 우주적 사랑, 그리고 본질적 하나님의 사랑까지 연결될 수 있는 길이 여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18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은 부모로부터 옵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습니다. 부모가 생존해 계시는 한 소년시대·청년시대·장년시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사랑을 받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고 성장하여 횡적인 부부의 사랑이 각자에게 벌어지게 마련입니다. 부부의 사랑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자녀를 낳아 사랑해야 됩니다. 부모는 자녀가 없으면 참된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대상이 있어야만 참된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형제끼리는 부모의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모르고 자라지만, 성장해서 결혼을 하여 자녀를 가지게 되면 부모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부모로 시작해서 한 바퀴 돌아 부모로 돌아가 봐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녀를 낳아 봐야 성숙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 부부의 사랑을 통해 하나됨으로써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서 창조 능력을 갖춘 것이 자녀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고 얼마나 기뻤다는 것을 우리에게 느끼게 하기 위해서 자녀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은 제일 좋은 것을 우리 인간 앞에 다 퍼부어 주었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되어 행복과 만족 가운데 평화스러운 에덴에서 살게끔 인간을 지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됨으로써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영원히 상대 되는 입장에서 갈라지려야 갈라질 수 없는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야 할 것이 인간 본연의 모습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