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인식론 (認識論) - 2

2010. 1. 6. 16:13참사랑 영원까지/통일사상

一. 종래의 인식론

 


인식론에 관한 연구는 이미 고대로부터 행해져 왔으며, 그것이 철학의 중심과제(中心課題)로서 제기된 것은 근세(近世)에 들어오면서 부터이다. 인식론을 처음 체계적(體系的)으로 설명한 사람은 로크(J. Locke, 1632~1704)로서 그의 인간오성론(悟性論)은 획기적인 노작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상(對象)을 올바르게 인식하는데 있어서 종래의 인식론은 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측면에서 다루고 있는데, 그 측면이 바로 인식의 세 가지 논점(論點)이다. 그리고 하나의 논점에 각각 두 가지의 입장이 있다. 인식의 세 가지 측면의 논점(論點)이란 첫째로 인식의 기원(起源)에 관한 것이며, 둘째로 인식의 대상(對象)에 관한 것이며, 셋째로 인식의 방법(方法)에 관한 것이다. 그리하여 이 각각의 논점(論點)에 서로 대립하는 두 가지의 입장이 있다. 인식의 기원에 있어서는 인식이 감각(感覺)에 의해 얻어진다는 경험론(경험론)과 생득관념(生得觀念)에 의해 얻어진다는 이성론(理性論; 또는 合理論)의 두 입장이 대립해 왔고, 인식의 대상에 관해서는 대상이 객관적(客觀的)으로 실재한다는 실재론과 인식의 대상은 주관(主體)의 관념 또는 표상만이라는 주관적관념론의 두 입장이 대립해 왔으며, 인식의 방법에 있어서는 주로 선험적방법(先驗的方法)과 변증법적방법(辨證法的方法) 등이 주장되었다.


경험론(經驗論)과 이성론(理性論)의 대립에 있어서 경험론은 나중에 회의론(懷疑論)에 빠졌고, 이성론은 독단론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칸트는 이 양자를 비판적방법(批判的方法) 또는 선험적방법(先驗的方法)에 의해서 종합한다는 입장을 취하였다.1) 이것이 인식의 대상은 주관에 의해 구성(構成)된다고 하는 선천적종합판단(先天的綜合判斷) 이론이다.


그 후, 헤겔의 변증법을 유물론적으로 표절한 마르크스의 유물변증법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 유물변증법적 방법에 의한 인식론이 바로 마르크스주의 인식론 즉 변증법적 인식론이다. 이것은 인식의 내용과 형식(形式; 思考形式)이 외계의 사물의 반영이라고 보는 공산주의의 반영론(反映論) 또는 모사설(模寫說)이다.


여기서 특히 밝혀두고자 하는 것은, 본항목(本項目)에서 종래의 인식론을 다루는 것은 종래의 인식론의 내용을 구체적, 학술적으로 소개하고자 함이 아니다. 다만 통일인식론이 종래의 인식론이 지녔던 미해결(未解決)의 문제점(問題點)들을 해결해냈다는 것을 참고로 보이기 위해서, 그 문제점과 관련된 사항을 간단히 소개했을 뿐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본(本) 통일인식론 그 자체(自體)만을 이해하는 데는 종래의 인식론의 항목을 생략(省略)해도 좋을 정도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아울러 밝혀둔다.


 1. 인식(認識)의 기원(起源)


모든 지식(知識)은 경험에 의해서 얻어진다고 보는 것이 경험론이며, 거기에 비해서 참다운 인식은 경험으로부터 독립한 이성의 작용에 의해서 얻어진다고 보는 것이 이성론 또는 합리론(合理論)이다. 양자 모두 17~18세기(世紀)에 나타났는데, 영국의 철학자들은 경험론을 옹호하였고, 대륙의 철학자들은 이성론을 옹호하였다.


  (1) 경험론


   1) 베이컨

 

경험론의 기초를 확립한 사람은 프란시스 베이컨(F. Bacon, 1561~1626)이다. 그의 저명한 노작 노붐 오르가눔(Novum Organum, 1620)에서 그는 전통적인 학문은 무용(無用; 쓸데없는)한 말의 연속에 지나지 않으며, 내용적으로는 공허(空虛)하다고 하면서 올바른 인식은 자연의 관찰과 실험에 의해 얻어진다고 주장하였다. 그 때 올바른 인식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선인적(先入的)인 편견(偏見)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면서, 그 편견으로서 네 가지의 우상(偶像; Idola)을 들었다.

 

첫째는, 종족(種族)의 우상(偶像; Idola Tribus)이다. 이것은 사람의 지성(知性)은 평평하지 않은 거울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사물의 본성(本性)을 왜곡해서 반사하기 쉽다고 하는, 인간이 일반적으로 빠지기 쉬운 편견을 말한다. 예컨대 자연을 의인화(擬人化)시켜서 보는 경향이 그것이다.

 

둘째로, 동굴(洞窟)의 우상(偶像; Idola Specus)이다. 이것은 마치 동굴(洞窟)속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것과 같이, 개인(個人)의 독특한 성질이나 습관(習慣), 좁은 선입관(先入觀) 등에 의해서 생기는 편견을 말한다.

 

셋째는, 시장(市場)의 우상(偶像; Idola Fori)이다. 이것은 지성(知性)이 언어에 의하여 영향받는 데서 오는 편견을 말한다. 그 때문에 전혀 존재(存在)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말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공허(空虛)한 논쟁이 일어나는 수가 있다는 것이다.

 

넷째는, 극장(劇場)의 우상(偶像; Idola Theatri)이다. 이것은 권위나 전통에 의지하려는 데서 오는 편견(偏見)을 말한다. 예컨대 권위있는 사상이나 철학에 무조건 의지하려 하는 데에서 오는 편견(偏見) 따위가 그것이다.

 

이와 같은 네 가지 우상(偶像)을 제거한 후, 우리들은 자연을 직접 관찰하여 개개의 현상(現象)속에 있는 본질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면서 베이컨은 귀납법(歸納法)을 제시하였다.


   2) 로크


경험론을 체계화(體系化)한 사람은 로크(J. Locke, 1632~1704)이며, 그는 주저(主著; 주요저서) 인간오성론(人間悟性論에서 그의 주장을 상세히 전개하였다. 그는 먼저 인식에 있어서 생득관념(生得觀念)을 배격했다. 생득관념(生得觀念)이란, 인간이 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인식에 필요한 관념을 말한다. 그는, 인간의 마음은 본래 백지(白紙; tabula rasa)와 같은 것이며, 백지에 글씨나 그림을 그리면 그대로 남는 것처럼, 마음에 들어간 관념(觀念)은 마음의 백지(白紙)에 그대로 적혀진다(인식된다)고 하였다. 즉 그는, 인식은 외부에서 마음에 들어오는 관념(觀念)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이 관념은 두 가지의 방향에서 마음에 들어오게 되는데, 하나는 감각(感覺; sensation)의 방향이며, 또 하나는 반성(反省; reflection)의 방향이다. 이것이 로크의 인식의 기원(起源)이다. 즉 로크에 있어서는, 인식의 기원은 관념을 받아들이는 감각과 반성(反省)에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로크의 경험론은 감각이나 반성을 통한 경험이 인식의 기원(起源)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감각(感覺)이란, 감각기관(感覺器官)에 비치는 대상의 지각(知覺)을 말한다. 즉 황(黃), 백(白), 열(熱), 냉(冷), 유(柔), 견(堅), 고(苦), 감미(甘味) 등의 관념을 말한다. 반성이란, 마음의 작용을 말하며 생각한다, 의심한다, 믿는다, 추리한다, 의지한다 등이 그것이다. 이 반성(反省) 때에도 관념(觀念)이 얻어진다.

 

그런데 관념(觀念)에는 단순관념(單純觀念; simple idea)과 복합관념(複合觀念; complex idea)이 있다고 한다. 단순관념(單純觀念)이란 감각과 반성에 의해서 얻어진, 따로 따로 떨어진 관념(觀念)이며, 그것들이 오성(悟性)의 작용에 의해 결합(結合), 비교(比較), 추상(抽象)됨으로써 보다 고차적인 관념을 이룬 것이 복합관념(複合觀念)이다.

 

그리고 단순관념(單純觀念)에는 고체성(固體性; solidity), 연장(延長; extension), 형상(形象; figure), 운동(運動; motion), 정지(靜止; rest), 수(數; number)와 같이 대상자체(對象自體)에 객관적으로 구비(具備)되어 있는 성질과, 색(色; color) 냄새(smell) 맛(taste) 소리(sound)와 같이 주관적(主觀的)으로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성질이 있다고 하면서 전자(前者)를 제일성질(第一性質), 후자(後者)를 제2성질(第二性質)이라고 불렀다.

 

복합관념(複合觀念)에는 양상(樣相; mode), 실체(實體; substance), 관계(關係; relation)의 세 가지가 있다. 양상(樣相)이란, 공간의 양상(거리, 평면, 도형 등), 시간의 양상(계기, 지속, 영원 등), 사유(思惟)의 양상(지각, 상기, 추상), 수(數)의 양상, 힘의 양상 등, 사물의 상태나 성질 즉 속성을 나타내는 관념들이다. 실체란 단순관념을 일으키는 물자체(物自體)를 말하며, 여러 성질(性質)을 지니고 있는 기체(基體; substratum)에 대한 관념이다. 그리고 관계란, 인과(因果)의 관념과 같이 두가지의 관념을 비교함으로써 생기는 관념(동일, 차이, 원인, 결과 등)을 말한다.

 

로크는 인식(認識)이란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관념의 결합(結合)과 일치(一致) 또는 불일치(不一致)와 배반(背反)의 지각(知覺)'3) 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대개 진리(眞理)란 관념의 일치(一致), 불일치(不一致)를 그대로 언어로 표기한 것이다'4) 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관념을 분석함으로써 인식의 기원(起源)의 문제에 답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로크는 직각적(直覺的)으로 인식되는 정신과 논리적으로 인식되는 신(神)의 존재를 확실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외계(外界)에 있어서의 물체의 존재는 부정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감각적으로밖에는 알 수 없으므로 확실성을 지닐 수는 없다고 하였다.


   3) 버클리


버클리(G. Berkeley, 1685~1753)는 로크가 말한 물체(物體)의 제1성질(第一性質)과 제2성질(第二性質)의 구별을 부정하고, 제1성질도 제2성질과 마찬가지로 주관적이라고 하였다. 예컨대 거리(距離)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연장(延長)), 즉 第一성질(性質)의 관념처럼 보이지만 그것도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거리의 관념은 다음과 같이 얻어진다는 것이다. 즉 우리들은 일정한 거리의 저편에 있는 어떤 사물을 눈으로 보고, 다음에 그곳까지 발바닥으로 땅을 밟으며 걸어가서, 손으로 만져본다. 그러한 과정을 반복할 때, 어떤 종류의 시각(視覺)은 이윽고 어떤 종류의 촉각(觸覺; 예컨대 걸을 때의 발바닥의 촉각)을 수반한 것이라고 미리 예상하게 된다. 거기에 거리의 관념이 생긴다. 즉 우리들은 연장(延長)으로서의 거리를 그대로 객관적인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버클리는 로크가 말한 여러 성질(性質)의 담하체(擔荷體)로서의 실체를 부정하면서, 사물은 관념의 집합(集合; collection of ideas)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존재(存在)하는 것이란 지각되는 것이다(esse est percipi)라고 주장하였다. 이리하여 버클리는 물체라는 실체(實體)의 존재를 부정했으나, 지각(知覺)하는 실체로서의 정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4) 흄


경험론을 궁극에까지 추구한 사람이 흄(D. Hume, 1711~1776)이었다. 그는 우리의 지식(知識)은 인상(印象; impression)과 관념(觀念; idea)에 근거한다고 생각하였다. 인상(印象)이란 감각과 반성에 의한 직접적인 표현을 말하며, 관념(觀念)이란 인상이 없어진 후에 기억 또는 상상에 의해 마음에 나타나는 표상(表象)을 말한다. 그리고 인상과 관념의 양자를 총칭하여 지각(知覺; perception)이라고 불렀다.

 

그는 단순관념(單純觀念)의 복합에 있어서 유사(類似; resemblance), 접근(接近; contiguity), 인과성(因果性; cause & effect)을, 세 가지의 연상법칙(聯想法則)으로 들었다. 여기서 유사와 접근에 관한 인식은 확실한 것이어서 문제는 없으나 인과성에 관해서는 문제가 있다고 한다.

 

그는 인과성(因果性)에 관한 예로서, 번개가 친 뒤에 우레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면, 이때 보통 사람들은 번개가 원인이고 우레 소리는 그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흄은 단순한 인상(印象)으로서의 양자를 원인과 결과로서 결합시킬 이유는 아무 데도 없다고 하면서, 인과성(因果性)의 관념은 주관적인 습관이나 신념에 의해 성립(成立)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또 닭이 울고 난 후 잠깐 있다가 태양이 뜬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누구나 알고 있는 현상이지만, 이 때 닭이 우는 것이 원인이고, 태양이 올라오는 것이 그 결과라고 할 수는 없다. 인과성이라고 생각되어지는 인식은 그와 같이 주관적인 습관이나 신념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경험론은 흄에 이르러 회의론(懷疑論)에 빠져 버렸다. 그는 또 실체성(實體性)의 관념에 대해서도 버클리와 마찬가지로 물체라는 실체의 존재를 의심(疑心)하였다. 또한 그는 정신(마음)이라는 실체의 존재까지도 의심하였으며, 정신이란 지각(知覺)의 묶음(束 : bundle of perceptions)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2) 이성론

 

이와 같은 영국의 경험론에 대해서, 감각(感覺)에 의해서는 올바른 인식(認識)이 불가능하며 이성에 의한 연역적(演繹的), 논리적(論理的)인 추리에 의해서만 올바른 인식이 얻어진다고 보는 입장이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볼프 등을 중심한 대륙의 이성론(合理論)이다.


   1) 데카르트


이성론의 시조(始祖)로 알려지고 있는 데카르트(R. Descartes, 1596~1650)는 참된 인식에 이르기 위하여 모든 것을 의심(疑心)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였다. 그것이 소위 그의 방법적 회의(方法的 懷疑; methodical doubt)이다.

 

그는 먼저 감각이 우리들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고 모든 감각적(感覺的)인 것을 의심하였다. 왜 이러한 방법을 취하였을까. 그것은 참된 진리를 얻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즉 이 세계의 모든 것을 의심하고,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도 의심해 보고, 그리고서도 의심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진실(眞實)이며, 진리(眞理)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가능한한 모든 것을 의심(疑心)해 보고 또 의심해 보았다. 그 결과 한가지 사실만은 의심할 수 없음을 그는 깨달았다. 그것이 내가 의심한다(思惟한다)고 하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存在)한다(cogito ergo sum)라는 유명한 명제(命題)를 세웠던 것이다. 이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存在)한다라는 명제는 데카르트가 말하는 철학의 제1원리(第一原理)로서,5) 이 명제(命題)가 틀림없이 확실한 것은 이 인식이 명석(明晳; clear)하고 판명(判明; distinct)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여기에서 우리들이 극히 명석하고 판명하게 이해되는 것은 모두 참(眞)이다'6) 라는 일반적규칙(一般的規則)(第二原理)이 도출된다.

 

여기에서 명석(clear)이란, 사물이 정신에 명확하게 떠오르는 것을 의미하고 판명(判明; distinct)이란 명석하면서 다른 사람과 확실히 구별되어 혼동함이 없는 것을 말한다.7) 명석의 반대가 애매(曖昧; obscure)이며, 판명의 반대가 혼동(混同; confused)이다. 이 규칙에 따라 사유를 속성으로 하는 정신과, 연장을 속성으로 하는 물체의 존재가 확실한 것으로서 인정되는 것이다. 이 제1원리와 제2원리에서 데카르트의 물심이원론(物心(二元論)이 성립된다. 그것은 제1원리에서 마음(思惟)의 실제(實在)가, 그리고 제2원리에서 물질(연장)의 실재가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명석하고 또 판명한 인식이 확실한 것으로 보증되기 위해서는, 악령(惡靈)이 몰래 사람을 속이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존재가 필요하다. 성실한 하나님이 인간을 속인다는 일은 있을 수 없으므로,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하면 인식에 잘못이 생길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신(神)의 존재를 증명하였다.

 

첫째, 하나님의 관념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생득관념(生得觀念; 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관념, 本有觀念)이지만, 그 관념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원인이 없어서는 안 된다.

 

둘째, 불완전한 우리가 완전한 존재(存在)(하나님)의 관념을 가진다는 사실에서 하나님의 존재가 입증된다.

 

셋째, 가장 완전한 존재자(하나님)의 개념은 그 본질로서의 실체가 필연적(必然的)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포함(包含)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가 입증된다.

 

이와 같이 하여 하나님의 존재는 증명되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본질인 무한(無限), 전지(全知), 전능(全能)이 명백하게 되고, 또한 하나님의 속성의 하나로서 성실성(誠實性; veracitas)이 보장되는 것이다. 그리고 명석-판명한 인식에 확실한 보증이 주어지게 되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하나님과 정신(精神)과 物體(물질)의 존재를 확실한 것으로 인정했지만 그 중에서 참다운 의미에서의 독립적인 존재는 하나님뿐이며, 정신과 물체(物體)는 하나님에 의존하고 있는 존재이다. 그리고 정신과 물체는 각각 사유와 연장을 그 속성으로 하는, 서로 전적으로 독립한 실체라고 하면서 그는 이원론(二元論)을 주장하였다.

 

이상과 같이 데카르트는 명석-판명한 인식이 틀림없이 확실하다는 것을 논증하였는데, 그는 그것으로써 수학적 방법을 터로 하는 합리적인 인식의 확실성까지도 주장하였던 것이다.

 

   2) 스피노자


스피노자(B. de Spinoza, 1632~1677)도 데카르트와 마찬가지로 엄밀한 논증(論證)에 의해서 진리를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특히 기하학적 방법(幾何學的 方法)을 철학에 사용하여 논리적인 이론전개(理論展開)를 하려고 하였다.

 

이성에 의해서 일체의 진리를 인식할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이 스피노자 철학의 전제(前提)이다. 즉 이성에 의해 영원(永遠)한 상(相) 아래에서 사물을 파악하고 또한 하나님과의 필연의 관계에서 전체적, 직각적(直覺的)으로 사물을 파악할 때 참다운 인식이 얻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영원한 상(相) 아래서 사물을 본다는 것은 모든 것을 그 필연(必然)의 과정에서(필연의 연속에서) 이해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모든 사물을 바라볼 때 인간은 덧없는 사물(事物), 흘러가는 현상에 집착해서 마음을 쓰지 않아도 좋게 되며, 오히려 지금까지 덧없는 것으로 알았던 사물이나 현상, 더 나아가서 우리 자신들까지도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의 표현으로서 귀(貴)한 것으로 파악되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 참다운 생명(生命)을 얻게 되고 완전에 도달하며, 무한(無限)한 기쁨, 참다운 행복(幸福)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영원의 상(相) 아래에서 사물을 파악한다는 말의 뜻이다.

 

또한 이것은 명석-판명한 이성과 영감(靈感)에 의하여 얻어지는 자각(自覺)이라는 것이다. 그는 인식을 감성지(感性知), 이성지(理性知), 직각지(直覺知)의 셋으로 나누었다. 그 중, 지성(知性)에 의한, 질서가 없는 감성지(感性知)는 불완전한 것이며, 이성지(理性知)와 직각지(直覺知)에 의해서 참다운 인식이 성립된다고 생각했다. 여기에서 스피노자가 말하는 직각지(直覺知)란, 어디까지나 이성(理性)에 근거한 것이었다.

 

데카르트는 정신과 물질을 각각 사유(思惟)와 연장(延長)을 그 속성으로 하는, 서로 독립된 실체라고 생각한데 대하여, 스피노자는 실체는 하나님 뿐이며, 사유(思惟)와 연장(延長)은 하나님의 속성이라고 하였다. 그는 하나님과 자연의 관계를 능산적(能産的) 자연(自然; natura naturans)과 소산적(所産的) 자연(自然; natura naturata)의 관계로 보았으며, 양자는 분리할 수가 없다고 하면서, 하나님은 자연이다라고 하는 범신론적(汎神論的) 사상(思想)을 전개하였다.

 

   3) 라이프니츠

 

라이프니츠(G. W. Leibniz, 1646~1716)도 수학적방법(數學的方法)을 중요시하고 소수의 근본원리에서 모든 명제(命題)를 이끌어 내는 것을 이상으로 생각했다. 그는 인간이 인식하는 진리(眞理)를 두 가지로 나누었다. 즉 첫째로, 순수(純粹)하게 이성에 의해 논리적으로 파악(把握)되는 것, 둘째로 경험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으로 나누어서 전자(前者)를 영원의 진리 또는 이성의 진리라고 부르고, 후자를 사실의 진리 또는 우연의 진리라고 불렀다. 이성의 진리를 보증하고 있는 것은 동일률(同一律)과 모순률(矛盾律)이며, 사실의 진리를 보증하는 것은 어떠한 것도 충분한 이유(理由)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하는 충족이유률(充足理由律)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이와 같은 진리의 구별은 인간의 지성(知性)에 대해서만 해당되며, 인간에 있어서 사실의 진리로 간주되는 것도, 하나님은 논리적(論理的) 필연성에 의해 인식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라이프니츠에 있어서는 궁극적(究極的)으로 이성적인 인식이 이상적인 인식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는 또 참다운 실체는, 우주를 반영하는 우주(宇宙)의 살아있는 거울(鏡)로서의 모나드(monade, 單子)라고 하였다. 모나드는 지각(知覺)과 욕구의 작용을 가진 비공간적인 실체이며, 무의식적인 미소지각(微小知覺; petite perception)에서 그 집합(集合)으로서의 통각(統覺; apperception)이 생긴다고 하였다. 그리고 모나드에는 물질적 차원의 잠든 모나드, 감각과 기억을 가진 동물차원의 혼(魂)의 모나드(또는 꿈꾸는 모나드), 보편적인식을 가진 인간 차원의 정신(精神)의 모나드라는 3단계의 모나드가 있으며, 최고 차원의 모나드는 하나님이라고 하였다.


   4) 볼프


라이프니츠의 철학을 기조(基調)로 하면서, 이에 더하여 이성적(理性的)인 입장을 체계화한 사람이 볼프(C. Wolff, 1679~1754)이다. 그런데 그의 이론의 체계화 과정에서 라이프니츠의 참정신이 희미해졌거나 왜곡되었으며, 또한 라이프니츠의 주요 부분이 그의 이론체계에서 빠졌던 것이다. 특히, 라이프니츠의 모나드論이나 예정조화론은 왜곡(歪曲)되었다. 칸트는 처음에 이 볼프학파에 속해 있었지만 후에 그를 합리주의적(合理主義的)인 독단론의 대표자라고 하면서 예리하게 그를 비판했다. 또한 볼프는 근본원리에 있어서 논리적 필연성에 의해 인도되는 이성적(理性的)인 인식이야말로 참다운 인식이라고 하면서, 모든 진리는 同一律(모순율(矛盾律))에 의해서 성립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실에 관한 경험적 인식의 존재도 인정하고 있으나, 이성적인식(理性的認識)과 경험적인식(經驗的認識)과의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으며, 경험적인식은 참다운 인식이 되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리하여 대륙의 이성론은 사실에 관한 인식을 경시(輕視)하고, 모든 것을 이성에 의해서 합리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함으로써 결국 볼프에 이르러 독단론에 빠지게 되었다.


 2. 인식대상(認識對象)의 본질(本質)


다음은 인식대상의 본질을 무엇으로 보는가 하는 문제이다. 인식의 대상은 주체에서 독립하여 객관적(客觀的)으로 존재한다는 주장이 실재론(實在論)이며, 인식의 대상은 객관세계(客觀世界)에 있는 것이 아니고 주체의 의식속에 관념으로서만 존재한다는 주장이 주관적관념론(主觀的觀念論)이다.


  (1) 실재론


실재론에는 다음과 같은 종류가 있다. 즉 소박실재론(素朴實在論), 과학적실재론(科學的實在論), 관념적실재론(觀念的實在論), 그리고 변증법적(辨證法的) 유물론(唯物論)등이 그것이다. 첫째의 소박실재론(素朴實在論)은 자연적 실재론이라고도 하며, 물질로 되어 있는 대상이 주관에 대하여 독립해 있다는 입장으로서, 우리들의 눈에 보이는 그대로 사물이 존재한다는 상식적인 견해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들의 지각(知覺)은 대상을 정확하게 모사(模寫)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두 번째의 과학적실재론(科學的實在論)은 다음과 같다. 즉 대상은 주관과 독립하여 존재하고 있지만, 감각적인식 그대로는 객관적인식이 될 수 없으며, 감각(感覺)을 초월한 오성(悟性)의 작용에 의해서 대상으로부터 얻은 경험적 사실에 과학적인 반성을 가함으로써 실재를 바르게 알 수 있다는 견해이다. 예를 들면, 색채는 시각적 현상이지만, 과학은 여기에 과학적 비판을 가하여 색채(예를 들면 빨강)는 일정(一定)한 파장을 가진 전자파(광선)에 대한 주관적 감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또 시각상의 번갯불과 청각상의 천둥은, 과학적으로는 공중에서 일어나는 방전현상에 불과하다. 이와 같이 상식적인 실재관에 과학적인 반성을 가한 이론이 과학적 실재론이다.


세 번째의 관념론적실재론(觀念論的實在論)은 객관적관념론이라고도 한다. 대상의 본질은 인간의 의식을 초월한 정신적, 객관적인 것이라는 견해를 말한다. 즉 정신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출현하기 전부터 세계의 근원(根源)으로서 존재하였으며, 이 근원적인 정신이야말로 세계의 참된 실재(實在)로서 우주의 원형이며, 만물은 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입장이다. 예컨대 플라톤은 사물의 본질인 이데아를 참된 실재(實在)로 생각하면서 세계는 이데아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또 헤겔은 세계는 절대정신의 자기전개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변증법적유물론(辨證法的唯物論)에 있어서, 대상은 의식에서 독립하여 존재하며, 의식에 반영된 객관적실재라고 보기 때문에 역시 실재론이다. 이것은 사물이 거울에 비치는 것과 같이, 외부의 만물이 인간의 의식(뇌수(腦髓)에 반영된 것이 인식이라고 보는 입장으로서, 공산주의의 인식론이다. 그러나 반영된 내용 그 자체가 반드시 그대로는 진실(眞實)이 아니며, 실천(實踐)(검증)에 의해서 그 진실성이 확인될 때 비로소 객관적으로 진실이 된다. 이와 같이 검증에 의해서 확인될 때 비로소 진리가 된다고 보는 입장을 변증법적 인식론이라고 한다.


  (2) 주관적(主觀的) 관념론(觀念論)

 

실재론은 상술한 바와 같이 인식의 대상이 물질이냐 관념이냐 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주관과 독립해서 존재한다고 보고 있는 반면에, 인식대상이 인간의 의식으로부터 독립해서는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의 의식에 나타나는데 있어서만 그 존재가 인정된다고 보는 것이 주관적관념론(主觀的觀念論)이다. 버클리가 그 대표자이며, 실재(實在)는 곧 지각(知覺)이다(esse est percipi)라는 명제(命題)가 그 주장을 잘 나타내고 있다. 또 자아(自我)의 작용을 떠나서 비아(非我; 대상)가 존재하는지 어떤지는 전혀 말할 수 없다고 한 피히테(J. G. Fichte, 1762~1814)나, 세계는 나의 표상(表象)이다(Die Welt ist meine Vorstellung)라고 말한 쇼펜하우어(A. Schopenhauer,1788~1860)도 똑 같은 주관적 관념론의 입장이다.


 3. 방법(方法)에서 본 인식론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인식의 기원(起源)을 경험으로 본 경험론은 나중에 회의론(懷疑論)에 빠지게 되었고, 인식의 기원을 이성에 있다고 본 이성론은 나중에 독단론(獨斷論)에 빠졌다. 그와 같은 결과가 벌어지게 된 이유는 경험이 어떻게 해서 인식되어지는가, 그리고 이성에 의해서 어떻게 인식이 성립되는가 하는 문제, 즉 인식의 방법을 고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인식의 방법을 중시(重視)하고 이것을 본격적으로 다룬 것이 칸트의 선험적방법(先驗的方法)과 헤겔?마르크스의 변증법적방법이다. 여기서는 칸트와 마르크스의 방법에 대해서 그 요점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칸트의 선험적방법(先驗的方法)


영국의 경험론은 회의론(懷疑論)에, 대륙의 합리론(合理論)은 독단론에 빠졌지만 이 두 가지 입장을 종합하여 새로운 견해를 세운 사람이 칸트(I. Kant, 1724~1804)이다. 경험론은 인식의 기원(起源)을 경험으로 보고 이성의 작용을 무시함으로써, 그리고 이성론은 이성을 만능의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양자가 모두 오류에 빠졌다고 칸트는 생각했다. 그래서 칸트는 올바른 인식을 얻기 위해서는, 경험이 어떻게 해서 인식이 될 수 있는가 하는데 대한 분석(分析)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이성작용의 검토, 즉 비판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純粹理性批判), 실천이성비판(實踐理性批判), 판단력비판(判斷力批判)의 세가지 비판서를 저술하였는데, 각각 진리는 어떻게 해서 가능한가, 선(善)은 어떻게 해서 가능한가, 미(美)는 어떻게 해서 가능한가 라는 진(眞)-선(善)-미(美)의 가치의 실현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중 인식론에 관한 것을 다룬 부분이 순수이성비판(純粹理性批判)이다.


   1) 순수이성비판(純粹理性批判)의 요점


칸트는, 지식(知識)은 경험을 통하여 증대한다는 사실(事實)과, 올바른 지식은 보편타당성을 지니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사실을 근거로 하여 경험론과 이성론을 통일하려고 하였다. 경험에 의해서 비로소 인식능력이 작용하는 것은 자명(自明)하지만, 여기에서 칸트가 찾아낸 것은 인식하는 주관속에 선천적(先天的)인 인식의 형식(관념(觀念))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즉 대상에서 오는 감성적(感性的)내용(감각적질료, 감각의 다양, 감각적소재라고도 한다)이 주관의 선천적형식(先天的形式)에 의해서 질서가 세워짐으로써 인식의 대상(경험의 대상)이 성립된다는 것이다. 종래의 경험론이나 이성론이 모두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한다고 한 데 대하여, 칸트는 인식의 대상이 주관에 의해 구성(構成)된다고 하였으며, 자신의 이러한 착상을 그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轉回)라고 자찬하였다. 칸트의 인식론은 이와 같이 대상 그 자체의 인식을 목표로 삼지 않고 객관적 진리성은 어떻게 해야 얻어지는가를 명백히 하고자 한 것으로서, 이것을 선험적(先驗的; 또는 초월적, transzendental)방법(方法)이라고 불렀다.


칸트에 의하면, 인식(認識)은 판단이다. 판단은 명제(命題)인 것으로서 거기에는 주어와 술어가 있다. 따라서 인식을 통하여 지식이 증가한다는 것은, 판단(命題)에 있어서 주어의 개념 속에 없던 새로운 개념(槪念)이 술어 속에 포함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칸트는 그와 같은 판단을 종합판단(綜合判斷)이라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주어의 개념 속에 술어의 개념이 이미 포함되어 있는 판단을 분석판단(分析判斷)이라고 한다. 결국, 종합판단에 의해서만 새로운 지식(知識)이 얻어지는 것이다.


칸트가 들고 있는 분석판단(分析判斷)과 종합판단(綜合判斷)의 예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물체(物體)는 연장을 가지고 있다라는 판단은 물체의 개념 속에 이미 연장의 뜻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분석판단(分析判斷)이다. 한편 직선(直線)은 두점간(二點間)의 최단의 선(線)이다라는 판단은 종합판단(綜合判斷)이다. 직선이라는 개념은 장단(長短)이라는 양(量)을 포함하지 않고 단지 똑바르다는 성질을 가리키고 있는데 불과하기 때문이다. 즉 최단이라는 개념은 전혀 새로이 첨가(添加)된 것이다.


그러나 종합판단(綜合判斷)에 의해서 새로운 지식을 얻는다고 하여도 그 지식이 보편타당성(普遍妥當性)을 갖지 않으면, 그것은 올바른 지식이 될 수 없다. 지식이 보편타당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그것은 단순한 경험적인식(經驗的認識)이어서는 안되며, 경험에서 독립된 先天的(아프리오리)인 요소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종합판단(綜合判斷)이 보편타당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그것은 선천적(先天的)인 인식 즉 선천적 종합판단(先天的 綜合判斷)이 아니면 안 된다. 그래서 칸트가 부딪혔던 문제는선천적(先天的)인 종합판단은 어떻게 해서 가능한가'9)하는 것이었다.


   2) 내용과 형식(形式)


칸트는 내용과 형식의 통일로써 경험론과 이성론을 종합하려고 하였다. 내용이란, 외계의 사물로부터의 자극에 의해 우리의 감성(感性)에 주어지는 표상(表象) 즉 의식 내용을 말한다. 내용은 인식의 소재(Stoff) 또는 질료(質料; Materie)로서 외래적인 것이므로 후천적(後天的), 경험적(經驗的)인 요소이다.


한편 형식(形式)이란 질료(質料) 즉 다양한 감각의 내용을 종합 통일하는 한정성(限定性)이며 테두리이다. 즉 감각적 단계에서 형성된 각종의 질료를 통일하는 뼈대이다. 이 형식이야말로 선천적인 것이며, 그 감성적 내용에 통일성을 주는 테두리이다. 이 선천적(先天的)인 형식(形式)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감각의 다양(多樣)한 내용을, 직감적으로 시간적*공간적으로 한정(限定)하는 테두리로서의 직관형식(直觀形式)이며, 또 하나는 오성(悟性)의 사유(思惟)를 한정(限定)하는 사유형식(思惟形式)이다. 이러한 후천적(先天的)인 형식(形式)에 의해서 보편타당성을 지닌 종합판단이 가능하게 된다고 하였다.


시간적(時間的), 공간적(空間的) 개념으로서의 직관형식(直觀形式)은 감성적 단계에서 감각의 다양한 내용을 시간적, 공간적으로 파악하는 직감적(直感的)인 틀(形式)이다. 그러나 감성적(感性的) 단계에서의 직감만으로는 인식이 성립(成立)되지 않는다. 인식이 성립(成立)되려면 대상이 오성(悟性)에 의해 사유(思惟)되는 과정이 필요하며, 따라서 오성단계에 있어서의 사유(思惟)를 한정하는 테두리로서의 선천적인 형식(形式), 즉 선천적인 개념으로서의 사유형식(思惟形式)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직관형식(直觀形式)으로 포착한 내용과 사유형식(개념)의 결합에 의해 인식이 성립한다고 하였다. 그것을 칸트는 내용 없는 사유(思惟)는 공허하며, 개 념없는 직관은 맹목이다'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칸트는 오성(悟性)에 있어서의 선천적인 개념(思惟形式)을 순수오성개념(reiner Verstandesbegriff) 또는 카테고리(Kategorie, 범주(範疇))로 불렀다. 그리고 칸트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의 일반논리학에 있어서의 판단(判斷)의 형식(悟性形式)을 정리해서 다음과 같은 12가지 카테고리를 도출(導出)하였다.


1.분량(分量; Quantitat)... ... ... 단일성(單一性; Einheit) 다수성(數多性; Vielheit) 총체성(總體性; Allheit)


2.성질(性質)(Qualitat)... ... ... 실재성(實在性; Realitat) 부정성(否定性; Negation) 제한성(制限性; Limitation)


3.관계(關係)(Relation)... ... ... 실체성(實體性; Substanz) 인과성(因果性; Kausalitat) 상호성(相互性; Gemeinschaft)

 

4.양상(樣相; Modalitat)... ... ... 가능성(可能性)(Moglichieit) 현실성(現實性; Wirklichkeit) 필연성(必然性; Notwerdigkeit)


이와 같이 칸트는 대상의 감성적 내용(感性的內容)이 직관형식을 통하여 직감되고 사유형식(思惟形式)(카테고리)을 통하여 사유됨으로써 인식이 가능해진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감각적 단계에 있어서의 감성적(感性的)내용(직관적 내용)과 오성적 단계에 있어서의 사유형식(思惟形式)은 자동적으로 종합되는 것이 아니다. 감성과 오성은 같은 인식능력의 일부분이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이질적인 것이다. 여기에 兩요소(要素)를 공유하는 제3의 힘이 필요하다. 그것이 구상력(構想力; 想像力, Einbildungskraft)이며, 이 구상력에 의해서 직관적(直觀的) 내용과 사유형식(思惟形式)이 통일되어서 다양한 질료의 단편(端片)들이 종합-통일되게 된다. 이와 같이 감각적(感覺的)단계의 직관적(直觀的)내용과 오성적(悟性的)단계의 사유형식(思惟形式)이 구상력에 의해 종합-통일되어 생긴 구성물(構成物)이 바로 칸트에 있어서의 인식(認識)의 대상(對象)이다. 따라서 칸트에 있어서의 인식의 대상은 객관적으로 외계(外界; 외부세계)에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의 과정에서 구성되는 것이다.


여기서 칸트의 인식의 대상은 경험론의 후천적인 요소와 이성론의 선천적인 요소가 하나로 통일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때 인식하는 우리들의 의식(意識)은 경험적, 단편적인 의식이어서는 안 되며, 경험적인 의식의 근저(根底)에 통일력을 지닌 순수의식(純粹意識)이어야 한다. 칸트는 그것을 의식일반(意識一般; Bewusstsein Uberhaupt), 순수통각(純粹統覺; reine Apperzeption) 또는 선험적통각(先驗的統覺; transzend entale Apperzeption)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감성(感性)과 오성(悟性)의 작용이 어떻게 결부되는가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칸트는 구상(構想)力이 그 매개의 역할을 한다고 하였다.


   3) 형이상학(形而上學)의 부정과 물자체(物自體)


이리하여 현상세계에 있어서의 인식, 즉 자연과학이나 수학에 있어서, 어떻게 해서 확실한 인식이 성립(成立)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을 논한 후에, 칸트는 형이상학(形而上學)이 과연 가능한가 가능하지 아니한가를 검토하였다. 감각적(感覺的)인 내용이 없는 형이상학은 감성적직관(感性的直觀)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따라서 인식될 수가 없다. 그런데 인간의 이성작용(作用)은 悟性만에 관한 것이어서 감성과는 직접 관계하지 않으므로, 현실로 존재하지 않은 것을 마치 존재하고 있는 것같이 착각(錯覺)하는 경우가 있다. 그와 같은 착각을 칸트는 선험적가상(先驗的假象; transzendentaler Schein)이라고 불렀다. 선험적가상(先驗的假象)에는 영혼(靈魂)의 이념(理念), 우주(세계)의 이념(理念), 그리고 신(神)의 이념(理念)11)의 세 가지가 있다.


그 중 우주의 이념 즉 우주적가상(宇宙的假象)을 순수이성의 이율배반(二律背反; Antinomie)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이성이 무제약자(無制約者; 무한한 우주)를 추구할 때, 동일한 논거에서 두 개의 전혀 相反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세계는 시간적으로 시작이 있고, 공간적으로 한계가 있다(定立), 세계는 시간적으로 시작이 없고, 공간적으로 한계가 없다(反定立)라는 두 개의 상반되는 명제(命題)가 그 예이다. 이것은 감성(感性)에 주어진 내용을 그대로 세계 전체로서 파악하려고 하는 데서 오는 오류라고 하였다.


칸트는 대상에서 오는 감성적(感性的)내용이 주관의 선천적인 형식에 의해서 구성되는 한에 있어서 인식이 성립되는 것이며, 대상 그 자체, 즉 물자체(物自體; Ding an sich)는 결코 인식될 수 없다고 하였다. 물자체의 세계란 현상적(現象的) 세계의 배후에 있다고 보는 세계이며, 예지계(叡智界)라고도 한다. 그러나 칸트가 물자체의 세계를 부정(否定)해 버린 것은 아니었다. 실천이성비판(實踐理性批判)에서 그것은 도덕을 실현하기 위하여 요청되는 세계라고 하였다. 그리고 예지계(叡智界)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자유와 영혼의 불사(不死)와 신(神)의 존재가 요청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2) 마르크스주의(主義)의 인식론(認識論)


다음은 유물변증법에 근거한 인식론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유물변증법에 의한 인식론은 마르크스主義 인식론 또는 변증법적유물론의 인식론이라고 불려진다.


   1) 반영론(反映論, 模寫說)


유물변증법에 의하면, 정신의식(精神意識)은 뇌의 산물 또는 기능이다.12) 그리고 객관적 실재가 의식에 반영됨(模寫됨)으로써 인식이 이루어 진다고 보고 있다. 이것을 반영론 또는 모사설(teoriya otrazhenia, copy theory)이라고 한다. 그것을 엥겔스는 우리들은……… 다시 유물론적으로, 우리들의 두뇌(頭腦) 속의 개념을 현실의 사물의 모사라고 이해하였다'13)고 말하고, 레닌은 인간의 의식은(인간의 의식이 존재하고 있는 경우에) 거기에서 독립하여 존재하고 있고, 또 발전하고 있는 외계(外界)를 반영한다'고 하였다. 마르크스주의 인식론에 있어서는 칸트가 말하고 있는 감성적내용이 그대로 객관적실재의, 의식에의 반영일 뿐만 아니라 사유형식(思惟形式)도 객관세계의 실재형식의 의식에의 반영이라고 보고 있다.


   2) 감성적인식(感性的認識), 이성적인식(理性的認識), 실천(實踐) p. 544


인식은 단순히 객관적세계의 반영이 아니다. 반영된 내용은 반드시 실천을 통하여 검증되지 않으면 안 된다. 레닌은 그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생생한 직관(直觀)으로부터 추상적사고(抽象的思考)로, 그리고 이것에서 실천으로…… 이것이 진리인식의, 즉 객관적실재의 인식에 대한 변증법적인 과정이다'.


유물변증법적 인식의 과정을 더욱 구체적(具體的)으로 설명한 것이 모택동(毛澤東, 마오쩌뚱)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식은 실천을 터로 하고 얕은 곳으로부터 깊은 곳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인식의 발전과정에 관한 변증법적유물론의 이론이다……… 즉 인식은 낮은 단계에서는 감성적인 것으로서 나타나며, 높은 단계에서는 논리적인 것으로 나타나지만, 어느 단계거나 모두 하나의 통일적인 인식과정의 단계이다. 감성(感性)과 이성이라는 두 가지 성질은 다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의 기초 위에서 통일되고 있는 것이다.16)


인식과정의 제1보(第一步)는 외계의 사물에 접촉하기 시작하는 것으로서, 그것은 감각(感覺)의 단계이다 [감성적인식의 단계]. 제2보(第二步)는 감각된 재료를 종합하여 정리하고 개조하는 것으로서 그것은 개념(槪念), 판단(判斷) 및 추리(推理)의 단계이다 [이성적(理性的) 인식(認識)의 단계].


이와 같이 인식은 감성적인식에서 이성적인식(또는 논리적인식)으로, 그리고 이성적인식에서 실천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인식과 실천은 일회만(一回限)의 것이 아니다. 실천, 인식, 재실천(再實踐), 재인식(再認識)이라는 형식이 순환왕복(循環往復)하여 무한히 반복되며, 그리고 각 순환마다 실천과 인식의 내용이 보다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간다'18)는 것이다.


칸트는 주관(主觀)이 대상을 구성하는 한에 있어서만 인식이 이루어지는 것이어서, 현상의 배후에 있는 물자체(物自體)는 인식이 불가능하다고 함으로써 불가지론(不可知論)을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마르크스주의는 현상(現象)을 통해서만 사물의 본질이 인식되어지며, 실천에 의하여 사물을 완전히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현상에서 유리(遊離)된 물자체(物自體)의 존재는 부정했다. 엥겔스는 칸트에게 반론(反論)을 제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칸트의 시대에는 자연의 물체에 관한 우리들의 지식이 극히 단편적이었으므로, 칸트도 그 자연물에 대해서 우리들의 얼마 안되는 지식의 배후에 무엇인가 아직 신비한 물자체가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의 놀라운 진보(進步)에 의해서 이러한 알기 어려웠던 것들이 차례차례로 파악되고 분석되었다. 그뿐 아니라 재생산(再生産; reproduce)되기까지에 이르렀다. 적어도 우리들이 만들고자 하는 것을 우리들이 인식할 수 없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런데 인식과 실천의 과정에 있어서 실천이 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즉 모택동은 변증법적유물론의 인식론은 실천을 제일의 지위에 놓으며, 인간의 인식은 조금도 실천으로부터 떠날 수 없다'20)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실천이라고 할 때, 일반적으로는 인간의 자연에 대한 작용이나 인간의 여러가지 사회활동을 말하지만, 마르크스주의의 경우에는 그 중에서도 혁명을 최고의 실천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인식의 최종적인 목적은 혁명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모택동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식의 능동적 작용은, 감성적 인식으로부터 이성적 인식으로의 능동적인 비약에 나타날 뿐만 아니라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더욱 이성적 인식으로부터 혁명적 실천으로 라는 비약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논리적 인식(理性的認識)에 있어서의 사유형식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논리적인식은 개념을 매개로 하는 판단, 추리 등의 사유활동을 말하지만, 그 때 사유형식은 중요한 역할을 다 하고 있다. 반영론(反映論)을 주장한 마르크스주의는 사유형식이 객관세계에 있어서의 제과정의 의식에의 반영, 즉 존재형식의 의식에의 반영이라고 보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에 있어서의 카테고리(實在形式)?사유형식(思惟形式)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물질(物質)      한도(限度)

운동(運動)      모순(矛盾)

공간(空間)      개별(個別)과 보편(普遍)

시간(時間)      원인(原因)과 결과(結果)

의식(意識)      필연성(必然性)과 우연성(偶然性)

유한(有限)과 무한(無限) 가능성(可能性)과 현실성(現實性)

양(量)  내용과 형식(形式)

질(質)  본질(本質)과 현상(現象)


   3) 절대적진리(絶對的眞理)와 상대적진리(相對的眞理)


인식과 실천의 반복에 의해서 지식이 발전해 가는데, 지식의 발전이란 지식의 내용이 풍부(豊富_해지는 것과 지식의 정확도가 한층 더 높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여기에 지식(知識, 眞理)의 상대성과 절대성이 문제가 된다. 마르크스주의는 객관적실재(客觀的實在)를 정확히 반영한 것이 진리라고 한다. 즉 우리들의 감각, 지각, 표상, 개념, 이론이 객관세계와 일치하며, 그것을 올바르게 반영한다면 그것들은 참[眞]이다 라고 한다. 또 참된 언명(言明), 판단(判斷) 또는 이론을 진리라고 부른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또 마르크스주의는 실천-결국은 혁명적 실천-이 진리의 기준이라고 주장한다. 즉 인식이 참인가 아닌가는 실천을 통하여 현실과 비교하며, 인식이 현실에 일치하고 있는가 있지 않은가를 확인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마르크스는실천속에서 인간은 그 사고의 진리를, 다시 말하면 그 사고의 현실성과 힘(力), 차안성(此岸性)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24)고 했고, 모택동은 마르크스주의자는 사람들의 사회적 실천만이 외계에 관한 사람들의 인식이 진리인가 아닌가의 기준이라고 생각한다'25)고 하였다. 결국 혁명적실천이 진리의 기준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어떤 특정한 시대의 지식은 부분적(部分的)이고 불완전해서 상대적진리에 머물지만, 과학의 발전에 의해서 지식은 완전한 절대적진리에 한없이 가까워진다고 하면서 절대적진리의 존재를 승인한다. 그러므로 상대적진리(相對的眞理)와 절대적진리(絶對的眞理)의 사이에 넘기 어려운 경계는 존재하지 않는다'26)라고 레닌은 말했다. 그리고 상대적인 진리속에 절대적으로 참다운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서, 그것이 부단히 축적(蓄積)되었을때 절대적진리가 된다'27) 고 하였다. 以上으로종래의 인식론의 항목을 전부 마친다. 처음에 말한 바와 같이 이상(以上)은 종래의 인식론의 요점을 참고로 소개했을 뿐이며, 따라서 통일인식론의 이해를 위해서 꼭 필요한 부분(部分)은 아니라는 것을 거듭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