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사상 - 제7장 예술론 (藝術論) - 3

2010. 1. 6. 16:29참사랑 영원까지/통일사상

二. 예술(藝術)과 미(美)

 


  (1) 예술(藝術)이란 무엇인가

 


예술(藝術)이란 미(美)를 창조하거나 감상하는 인간 활동이다. 인간의 마음에는 지(知)-정(情)-의(意)라는 세 가지 기능이 있는데, 그 각각의 기능에 의한 활동으로 인하여 문화활동의 여러 분야가 형성(形成)된다. 지적(知的)인 활동에 의하여 철학이나 과학 등의 분야(分野)가 형성되고, 의적(意的)인 활동에 의하여 도덕과 윤리 등의 실천적 분야(分野)가 형성되고, 정적(情的)인 활동에 의하여 예술분야가 세워진다. 따라서 예술이란 미(美)를 창조하고 감상하는 정적(情的)인 활동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면 예술의 목적은 무엇일까. 하나님이 인간과 우주를 창조하신 목적은 대상을 사랑함으로써 기쁨을 얻기 위해서였다. 마찬가지로 예술가의 대상인 작품을 창작 또는 감상하는 것도 기쁨을 얻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예술이란 미(美)의 창작과 감상에 의한 기쁨의 창조활동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영국의 미술평론가(美術評論家) 허버트 리드(H. Read, 1893~1968)는 모든 예술가는...... 사람을 기쁘게 하고자 하는 의욕(意欲)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예술이란...... 마음의 즐거움의 형식을 만드는 시도이다.' 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통일사상의 예술의 정의(定義)와 거의 같은 예술관인 것이다.

 


  (2) 예술(藝術)과 기쁨

 


앞에서 말한대로 예술(藝術)이란 미(美)의 창조(創造), 곧 기쁨의 창조(創造)이다. 그러면 기쁨이란 어떤 것일까? 원리강론(原理講論)에 「무형(無形)이거나 실체(實體)이거나 자기의 성상(性相)과 형상(形狀)대로 전개된 대상(對象)이 있어서 그것으로부터 오는 자극(刺戟)으로 말미암아 자체의 성상(性相)과 형상(形狀)을 상대적으로 느낄 때 비로소 기쁨이 생기는 것이다](1987, p. 52)라고 기록되어 있듯이 성상(性相)과 형상(形狀)에 었어서, 대상(對象)의 성상(性相)-형상(形狀)과 주체(主體)의 성상(性相)-형상(形狀)이 서로 닮았을 때에 기쁨이 생기는 것이다.

 


존재론(存在論)과 인식론(認識論)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인간은 우주를 총합(總合)한 실체상(實體相)이므로 그 몸 안에는 우주의 모든 성상(性相)과 형상(形狀)을 잠재적(潛在的)으로 지니고 있다. 가령 꽃의 경우 그 꽃의 色, 形, 부드러움 등의 원형(原型)이 內界(몸속)에도 있는 바, 그 원형(原型)과 현실의 꽃에 수수작용(授受作用)을 통하여 합치(合致)되는 체험이 바로 인식(認識)이며 그 일치에서 기쁨의 감정은 솟아난다. 따라서 대상(對象)의 미(美)를 감지(感知)하려면 먼저 그 원형(原型)이 마음속에 떠오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 그 원형(原型)이 어떻게 하면 떠오르는가? 첫째로 필요(必要)한 것은 심령(心靈)의 맑음이다. 심령(心靈)이 맑아지면 원형(原型)은 스스로 직관적(直觀的)으로 떠오른다. 다음은 교양(敎養)이다. 미(美)의 여러 가지 형태를 체험으로나 이론적으로 배움으로써 잠재의식(潛在意識)속에 있던 원형(原型)이 인식할 때에 쉽게 자극되어서 표면화되기 쉽게 된다.

 


   l) 성상(性相)의 상사성(相似性)

 


이러한 「닮음」에 있어서 성상적(性相的)으로 닮는다는 것은 사상, 구상, 개성, 취미, 교양, 심정 등의 일부 또는 전부가 주체(主體) 및 대상(對象)간에 서로 닮는것을 뜻한다. 그 중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사상(思想)이다. 대상(對象) 속에서 자기와 같은 사상(思想)을 발견할 때 아름답게 보인다. 따라서 사상(思想)을 풍부하고 깊게 찾고 있으면 그만큼 기쁨의 법위가 넓어지고 또한 깊은 감동을 받게된다.

 


그러므로 사(思)상을 넓고 깊게 가진다는 것은 미(美)를 감(感)수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이와 같이 성상(性相)의 상사성(相似性)이란 대상(작품)속에 있는 작자의 심정, 사상 등의 성상적(性相的)인 측면과 주체(主體)(감상者)의 심정 사상 등의 성상적인 측면이 서로 닮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2) 형상(形狀)의 상사성(相似性)

 


형상(形狀)에 속하는 것은 事物의 형태, 色, 音, 냄새 등 오관으로 느끼는 요소들이다. 이리한 것이 우리들의 몸속에 있는 원형(原型)과 일치될 때 아름다음이 느껴지면서 기쁨의 감정이 솟아난다.

 


인식론에서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외적 세계(世界)는 인간의 몸을 확대시켜 전개한 것이어서, 외계(外界)의 모든 요소들은 원형적(原型的)으로 內界(인간의 몸)에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즉 事物(만물, 작품)의 모양, 색, 소리, 냄새 등의 형상적(形狀的) 요소는 원형적으로 즉 축소된 형태로서 인체속에 이미 갖추어져 있는 바, 이것이 곧 형상(形狀)의 상사성(相似性, 서로 닮음)이다. 이 닮은 요소들이 인식에 있어서 서로 일치하면서 情을 자극(刺戟)할 때 기쁨이 오는 것이다.

 


그리고 기쁨의 내용인 상이성(상사성(相似性, 서로 닮음))에는 상보성(相補性)이란 일면도 있다. 즉 주체는 대상 속에서 자기에게 부족된 특성을 보고 기뻐하는 일면이 있다. 男性은 女性속에서 자기에게 부족된 부드러움이나 아름다움을 보고 기뻐한다.

 


그것은 첫째, 인간은 단독으로는 전일자(全一者)가 아니며, 신(神)의 양성(陽性)을 그 속성(屬性)으로 지니는 남성(男性)과, 신(神)의 음성(陰性)을 그 속성(屬性)으로 지니는 여성(女性)으로 분립(分立)되었다가, 그 양자가 합성일체화(合性一體化)함으로써 신의 이성성상의 중화(中和)의 모습을 완전히 닮도록 만들어진 까닭이다. 그런데 이 상보성(相補性)이 一종의 상사성(相似性, 서로 닮음)으로 보는 것은 인간은 누구나 마음의 잠재의식(潛在意識)속에 자기의 부족(不足)한 부분이 채워지기를 바라는 영상(映像)올 찾고 있어서 현실적으로 그 映상대로의 대상올 다하게 될 때 그 부족(不足)한 부분이 실제로 채워져서(相補性) 기쁨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그 때의 그 대상(對象)은 감상자의 마음속에 지녔던 영상(映像)과 같기 때문에 그 점에 있어서 상보성(相補性)은 상사성(相似性, 서로 닮음)의 성격도 지니게 된다.

 


그리고 둘째는 신(神)의 하나 하나의 개별상(個別相)을 나누어 갖고 있어서 자기(自己)에게 부족한 면을 서로 타인을 통하여 발견하여 그것을 서로 주고 받음으로써 기뻐하도록 창조된 까닭이다. 미(美)의 이러한 측면도 상보성(相補性)이라고 하며, 넓은 의미의 상대성(相對性)에 포함되는 개념이다. 그것은 인간이 본래 신(神)에 있어서 하나인 것이 둘(陽과 陰) 혹은 다수의 개별성(個別性)으로 분립, 전개된 것이어서 그들이 합하여 보다 완전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책상과 의자와 같이 서로 상보(相補)함으로써 둘이 하나의 완전한 것으로 되는 경우도 허다(許多)하다. 보다 완전한 것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창조목적(創造目的)이 보다 더 많이 실현됨을 의미하므로 거기에 만족과 기쁨이 생겨나는 것이다. 단 상보성(相補性)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그 근저(根底)에 보다 깊은 차원에서의 상대성(相對性)이 있어야 한다. 공동(共同)목적이나 상사성(相似性, 서로 닮음)과 같은 공통성(共通性)이 없는 단순한 차이(差異)에서는 미(美)나 기쁨은 생겨날 수 없기 때문이다.

 


  (3) 미(美)란 무엇인가

 


「원리강론(原理構論)」에 의하면, 사랑이란 「주체가 대상에게 주는 정적(情的)인 힘」이고, 美란 「대상이 주체에게 주는 정적(情的)인 힘(자극)이다. 대상이 광물이나 식물일 경우 대상으로부터 오는 것은 물질적인 힘이지만, 주체(인간)는 그것을 정적(情的)인 자극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비록 대상이 주체에게 자극(힘)을 주었다고 하더라도 주체가 그것을 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 경우 이러한 자극은 정적인 자극이 될 수 없다. 문제는 주체가 대상으로부터 오는 요소(要素)를 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느냐 혹은 받아들이지 않느냐하는 점에 있다. 대상으로부터 오는 요소를 주체가 정적으로 받아들이면 그 자극은 정적인 자극이 된다. 따라서 미(美)란 대상이 주체에게 주는 정적(情的)인 힘인 동시에 정적인 자극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미(美)는 진(眞)이나 선(善)과 더불어 가치의 하나이므로 이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미(美)는 정적(情的) 자극으로서 느껴지는 대상가치(對象價値)인 것이다.

 


그런데 위에서 주체가 대상에게 주는 힘을 사랑이라 하고, 대상이 주체에게 주는 정적인 자극을 미(美)라고 했는데, 실제의 경우 인간끼리는 주체와 대상이 다 같이 사랑과 미를 서로 주고 받는다. 즉 대상도 주체를 사랑하고, 또 주체도 대상에게 미를 준다. 왜냐하면 주체와 대상이 합성일체화(合性一體化)하면 미(美)에도 사랑이, 사랑에도 미(美)가 내포되기'때문이다. 주체에서 대상으로 혹은 대상에서 주체로 정적(情的)인 힘이 전달될 때, 보내는 측에서는 그것을 사랑으로서 보내고, 받는 측에서는 정적(情的)인 자극 즉 미(美)로서 받아들이게 된다. 이상으로 통일사상의 입장에서 미(美)를 정의했는데 종래의 철학자(플라톤과 칸트)들에 의한 미(美)의 정의를 다음에 소개한다.

 


플라톤은 대상속에 존재하는 미(美) 그 자체 즉 미(美)의 이데아를 미(美)의 본질로 보았으며, 인간이 느끼는 미(美)에 대해서는 미(美)란 청각과 시각을 통하여 주어지는 쾌감(快感)이다'라고 하였다. 칸트는 미(美)를 대상의 주관적 합목적성(合目的性) 혹은 대상의 합목적성(合目的性)의 형식이라고 설명하였다. 이것은 자연의 대상에는 만들어진 목적이 없지만, 인간이 주관적으로 거기에 목적이 있는 것처럼 생각한 후, 그것으로부터 쾌감이 얻어지면 인간에게 그 쾌감을 주는 것이 미(美)라는 의미이다.

 


  (4) 미(美)의 결정(決定)

 


미(美)는 어떻게 해서 결정되는 것일까. 원리강론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어떤 개성체(個性體)의 창조본연의 가치는 그 자체내에 절대적인 것으로 내재(內在)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개성체가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중심하고 어떠한 대상으로 존재하는 목적과 그것을 대하는 인간 주체의 창조본연의 가치추구욕(價値追求欲)이 상대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결정된다…… 예를 들면, 꽃의 미(美)는 어떻게 결정되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그 꽃을 창조하신 목적과 인간의 미(美)에 대한 창조본연의 추구욕이 합치(合致)될 때,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창조이상에 입각(立脚)한 인간의 미(美)에 대한 추구욕이 그 꽃으로부터 오는 정적(情的)인 자극으로 말미암아 충당(充當)되어 인간이 완전한 기쁨을 느낄 때, 그 창조본연의 미(美)가 결정된다.

 


미(美)는 객관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며, 가치추구욕을 가진 주체가 대상과 수수작용할 때에 결정된다. 즉 대상으로부터 오는 정적인 자극을 주체가 정적(情的)으로, 주관적으로 판단함으로써 미(美)가 결정되는 것이다.

 


  (5) 미(美)의 요소(要素)

 


미(美)는 객관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고 느껴지는 것이다. 대상 속에 있는 요소가 주체에게 정적인 자극을 주어서 그것이 미(美)로서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면 주체를 정적으로 자극하는 요인이 된 것, 즉 미(美)의 요소는 무엇일까. 그것은 대상의 창조목적과 물리적 제요소간(諸要素間, 여러 요소)의 조화이다. 즉 회화(繪畵)에 있어서 선(線), 형(形), 색채(色彩), 공간(空間)과, 음악(音樂)에 있어서 음(音)의 고저(高低), 장단(長短) 등의 물리적 제요소가 창조목적을 중심으로 잘 조화하고 있을 때에, 목적중심(目的中心)의 조화(調和)가 주체에게 정적인 자극을 주게 되면, 주체는 그것을 주관적으로 판단하여 미(美)로서 느끼게 된다. 주체에 의해 판단된 미(美)가 바로 현실적인 미(美)이다.

 


조화에는 공간적(空間的) 조화(調和)와 시간적(時間的) 조화(調和)가 있다. 공간적 조화란 공간적인 배치(配置)에 의한 조화이고, 시간적 조화란 시간적 흐름을 통하여 생기는 조화이다. 공간적 조화를 지닌 예술에는 회화(繪畵), 건축(建築), 조각(彫刻), 공예(工藝) 등이 있고, 시간적 조화를 가진 예술에는 문예(文藝), 음악(音樂) 등이 있다. 이것들을 각각 공간예술, 시간예술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연극, 무용 등의 예술이 있는 바, 이러한 예술은 시간적 조화와 공간적 조화를 함께 나타냄으로써 시공간적(時空間的) 예술(藝術) 혹은 종합예술이라고도 한다. 여하간에 조화가 미(美)의 감정을 일으키는 요인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形而上學)에서 미(美)란, 질서와 균형과 피한정성(被限定性; 한정된 크기를 갖는 것) 속에 있다고 하였으며,11) 리드는 예술작품에는 중력(重力)의 중심으로 비유할 만한 상상적(想像的)인 어떤 조합점(照合點)이 있어서 이 점을 둘러싸고 선(線), 면(面), 부피가 완전한 균형을 이루고 안정되도록 배정되어 있다. 모두 이와 같은 방식의 구성상(構成上)의 목적은 조화이며, 조화는 바로 우리들의 미감(美感)의 만족이다'12)라고 하였다. 양자 모두가 미(美)의 요소가 조화에 있다는 점(點)에서 일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