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사상 - 제3장 본성론(本性論) - 1

2010. 1. 6. 16:50참사랑 영원까지/통일사상

제3장 본성론

( Theory of the Original Human Nature )


본성론(本性론)이란 인간의 본연의 모습 즉 타락하지 않은 본성적(本性的) 인간을 다루는 철학부문이다. 이미 원상론과 존재론(存在論)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간은 오랜 역사의 기간을 두고 인생과 우주의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해 왔다. 특히 오늘날 우리들은 공산주의 소멸후의 새로운 혼란과, 남북문제(南北問題, 선진국과 개도국의 격차문제)를 위시하여 인종분쟁, 종교분쟁, 영토분쟁, 부정부패의 확산, 전통적 가치관의 붕괴로 인한 각종 범죄의 만연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문제들이 대립과 갈등, 투쟁과 전쟁으로 연결되면서 혼란의 와중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는 역사의 현실을 보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들은 결국 존재(存在)의 문제(問題)와 관계(關係)의 문제(問題)로 대별(大別)되게 된다. 인간이 안고 있는 이러한 존재(存在)의 문제(問題)와 관계(關係)의 문제(問題)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한편 역사 속에 왔다간 많은 성현(聖賢)들이나 사상가(思想家)들은 `현실인간(現實人間)'의 모습에 만족하지 않고 막연하게나마 인간의 본래적인 모습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나름대로의 해답을 찾아보곤 했다. 그들이 바로 종교가((宗敎家)요 철학자(哲學者)들이었다. 그들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어떻게 해야 본래의 인간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는가를 추구(追求)해 왔던 것이다.


기원전(紀元前) 5세기경 인도의 가비라성에서 태어난 석가는 수도(修道)와 고행(苦行)의 생활을 통하여 득도(得道)함으로써 인간은 본래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명(無明)으로 말미암아 번뇌(煩惱)에 싸여서 고통에 빠지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수도생활을 통하여 본성(本性)을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예수님도 30여 생애동안 인생문제(問題)를 깊이 탐구한 결과 인간은 죄인(罪人)이며,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예수자신)을 믿음으로써 거듭나야 한다고 설파하면서, 유대민족을 향해 천국이 가까왔으니 회개하라고 외쳤던 것이다. 그는 팔레스타인 객지(各地)를 돌면서 가르침을 펴기에 全力을 다했으나 기득권을 쥐고 있던 당시의 정치, 종교계의 벽을 넘지 못하고 결국 십자가형을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당시의 폴리스(polis)사회(社會)의 말기적(末期的)인 혼란상을 직시하다가, 참된 知를 사랑하는 것이 인간의 참된 생활이라고 하면서 너 자신(自身)을 알라!고 외쳤다. 그리고 플라톤은 선의 이데아를 인식하는 것이 최고의 생활이라고 주장하였다. 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인간되게 하는 것은 이성이며 인간의 덕(德)은 폴리스에서의 공동생활(共同生活)에서 실현(實現)된다고 생각하고 인간을 사회적동물(폴리스的 動物)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그리스 철학자들의 인간관(人間觀)은 대체적으로 인간의 본질은 이성이며 인간의 이성을 충분히 활용(活用)하면 인간은 이상적(理想的)인 모습이 된다는 것이었다.


중세시대(中世時代)는 기독교(基督敎)가 서구사회의 인간 정신을 지배하던 때였다. 이 기독교(基督敎)의 인간관은 인간을 죄인으로 보았으며 예수를 믿음으로써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인간의 이성은 인간의 구원과 참된 평화의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近代에 이르러 다시 인간의 이성을 중시하는 사조가 나타났다. 데카르트는 인간은 이성적존재이기 때문에 이성으로써만 올바른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유명한 명제(命題)를 남겼다. 그리고 칸트는 인간을 실천이성(實踐理性)이 명하는 도덕적 의무(義務)의 소리(聲)를 따라서 사는 인격적 존재(存在)로 보고, 인간은 유혹(誘惑)이나 욕망(欲望)에 사로잡히지 말고 이성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설(說)하였다.


헤겔도 역시 인간을 이성적(理性的) 존재(存在)로 보았다. 그에 의하면 역사는 이성이 세계속에서 자신을 실현해 가는 과정이며, 역사의 발전과 더불어 이성의 본질인 자유가 실현된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헤겔의 논리에 의하면 근대국가(近代國家, 理性國家))의 성립과 더불어 인간과 세계는 합리적(合理的)인 모습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에 있어서의 실제의 인간은 인간다움을 도리어 상실(喪失)한 상태(狀態)에 머물러 있고 세계도 그대로 비합리적(非合理的)인 모습을 지속(持續)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헤겔의 극단적(極端的)인 이성주의(理性主義)에 반기를 든 사람이 키에르케고르였다.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이 세계의 발전과 더불어 합리적(合理的)인 존재(存在)가 된다는 설(說)을 반대했으며, 인간은 현실사회(現實社會)에서 참다운 인간성을 잃어버린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인간은 대중으로부터 떠나서, 단독자(單獨者)로서 주체적으로 인생을 헤쳐 나갈 때 비로소 참다운 인간성이 회복(回復)된다고 보았다. 이와 같은 현실적 인간을, 본성(本性)을 잃어버린 인간으로서 파악하고 주체적(主體的)으로 인간성을 되찾으려고 하는 생각(思考方式)이 그 이후 실존주의사상(實存主義思想)으로서 전개되었다. 이에 관하여는 나중에 다시 설명하기로 한다.

 

또 헤겔의 이성주의(理性主義)에 반대하고 인간을 감성적(感性的) 존재로서 파악한 사람이 포이엘바하(L. A. Feuerbach(1804~72)독일의 유물론 철학자)였다. 포이엘바하에 의하면 인간은 유적본질(類的本質)인 이성과 의지(意志)와 心情(사랑)을 가진 유적존재(類的存在)로서, 이 유적본질(類的本質)을 자기로부터 분리(分離)한 후 대상화(對象化)해서 그것을 하나님으로 숭배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인간이 인간성을 상실하게 되었다고 그는 보았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인간이 인간의 본성(類的本質)을 되찾는 길은 대상화(對象化)한 하나님을 부정할 때, 즉 종교를 부정할 때에만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헤겔의 자유의 실현(實現)의 사상(思想)에서 출발하여, 인간의 진정한 해방(解放)을 주장한 사람이 마르크스였다.


마르크스 당시의 초기 자본주의사회(社會)에 있어서의 노동자의 생활은 비참하였다. 그들은 장시간의 노동을 강요당했으며 게다가 최저(最低)의 생활을 유지하기도 힘들 정도의 임금(賃金)밖에 받지 못했다. 노동자들 사이에는 질병과 범죄가 만연(蔓然)하게 되었고 그들의 인간성은 박탈당하고 있었다. 한편 자본가(資本家)는 풍족(豊足)한 생활을 유지하면서도 노동자를 무자비하게 착취하고 억압(抑壓)함으로써 그들도 본래의 인간성을 상실하고 말았다고 마르크스는 생각하였다. 인간 해방을 부르짖던 마르크스가 처음에는 인간에 의한 인간성의 회복이라는 포이엘바하의 인간주의(人間主義)에서 출발하였으나, 얼마 안가서 인간은 유적존재(類的存在)일 뿐만 아니라, 생산활동을 하는 사회적, 물질적, 역사적존재이며, 인간의 본질은 노동의 자유라고 파악하게 되었다. 자본주의(資本主義)사회(社會)에 있어서 노동자는 노동생산물을 모두 자본가에게 빼앗겼으며, 노동 그 자체가 자기의 의지에서가 아니라 자본가의 뜻에 따라서 좌우(左右)되고 있었다. 여기에 노동자의 인간성 상실(喪失)이 있다고 마르크스는 생각했던 것이다.


노동자(勞動者)를 해방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주의사회(資本主義社會)를 타도(打倒)하지 않으면 안되며, 그렇게 함으로써 자본가도 인간성을 회복(回復)할 수 있다고 마르크스는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유물론(唯物論)의 입장에서, 인간의 의식(意識)을 규정(規定)하고 있는 것은 사회의 토대(土臺)인 생산관계라고 주장하고, 자본주의의 경제체제를 폭력적(暴力的)으로 변혁(變革)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결론지었던 것이다. 그런데 마르크스의 이론에 따라 혁명을 일으켜서 세운 공산주의 국가(國家)는 자유의 억압(抑壓)과 인간성(人間性)의 유린이 심한 독재주의사회가 되었고, 인간은 더욱 더 본래의 모습을 상실(喪失)하고 말았다. 이것은 마르크스가 인간소외의 원인의 파악에 있어서, 그리고 인간소외를 해결하는 방법에 있어서 큰 오류를 범하였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인간소외는 지난날의 공산주의(共産主義)社會의 문제였을 뿐 아니라, 자본주의사회에 있어서도, 개인주의(個人主義)와 물질(物質)중심주의(中心主義)가 만연함으로써 인간은 스스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도 된다는 이기적인 사고방식이 만연되어서 더욱 더 인간성(人間性)이 상실되어가고 있다.


한편 인간학이 모든 학문(學問)과 사상(思想)의 근본(根本)이라고 생각한 막스셀러는 인간과 역사속에서 제시한 인간관 중에서 인간은 사고(思考)하는 인간 (homo sapiens), 도구(道具)를 제작하여 사용하는 공작인(工作人; homo faber)으로 표현하였다. 그 외에 인간은 경제인(homo economicus), 종교인(homo religious), 자유인(homo liberalis), 국가인(homo nationalis)등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떠한 표현도 인생의 참된 의미를 나타내지는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인간이란 무엇이며 人生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인류역사 개시 이래 수많은 종교가나 철학자들에 의해서 그 해석이 시도(試圖)되었으나 모두가 실패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인생을 바르게 살려다가 인생의 의미를 몰라서 허무(虛無)한 인생을 비관(悲觀)하고 자살한 사람도 허다(許多)하다. 한국의 윤심덕(尹心悳), 일본의 후지무라(藤村操夫) 등이 그 예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역사적으로 미해결된 인간의 문제를 근본적(根本的)으로 해결(解決)하려고 생애를 바쳐 걸어오신 분이 계신다. 그 분이 바로 문선명 선생(文鮮明 先生)이시다. 그 분은 통일원리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인간이 비록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하찮은 존재처럼 되어 버렸지만 본래의 인간은 모두 하나님의 참자녀라고 선언(宣言)하신 것이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을 닮도록 창조되었다. 그런데 인간시조(人間始祖)의 타락에 의해서, 하나님과는 무관(無關)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면,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가 있는 것이다. 본장(本章)에서는 인간의 타락의 문제나 인간성 회복의 방법에 대해서는 論하지 않고(그것에 관해서는 원리강론의 타락론과 복귀원리의 項目을 參照) 다만 본래의 인간은 어떠한 모습인가 하는 것만을 논(論)하고자 한다. 인간의 본래의 모습은 신상을 닮은 신상적존재(神相的存在)이며 신성(神性)을 닮은 신성적존재(神性的存在)이다. 그리고 또 원상의 격위성(格位性)을 닮은 격위적존재(格位的存在)이다. 다음에 이에 관하여 상론(詳論)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