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사상 - 제2장 존재론(存在論) - 6

2010. 1. 6. 16:52참사랑 영원까지/통일사상

3. 존재양상(存在樣相)

 

다음은 존재자(存在者)가 어떠한 양식(樣式)으로 존재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즉 존재양상(存在樣相)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피조물의 존재양식은 운동이다. 이 운동은 물론 시간, 공간내에서의 물리적 운동을 말한다. 즉 존재양상(存在樣相)은 피조세계에만 성립(成立)하는 시공적(時空的)인 개념이다. 하나님은 절대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시공적(時空的) 성격을 띤 운동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원상(原相)내에 존재양상(存在樣相)이라는 개념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나 피조세계의 존재양상(存在樣相)에 대응하는 원형은 원상내(原相內)에 있는 것이다.


  (1) 원환운동(圓環運動)

 

피조세계에 있어서,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있는 두 요소 또는 두 개체(個體)가 목적을 중심으로 하여 수수작용을 하면, 그 결과로서 합성체(合性體)가 생김과 동시에 운동이 시작된다. 이때의 중심인 목적은 존재자(存在者)(만물)가 아니며, 또 합성체는 수수작용의 결과로서 생기는 상태에 불과하므로, 수수작용에 있어서 실제로 운동에 관여하는 것은 주체와 대상의 두 요소(개체) 뿐이다. 이 때의 수수작용의 중심(目的)은 주체와 대상의 중간에 있는 것이 아니고 주체 속에 있다. 따라서 수수작용에 의한 운동은 주체를 중심으로 한 원환운동(圓環運動)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것을 도표로 표시하면 그림 2-6과 같다.

그림 2-6 수수작용에 의한 원환운동

 

예컨대 원자(原子)에 있어서는 전자(電子)가 핵(陽子)을 중심으로 돌고 있고, 태양계에 있어서 혹성들은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 수수작용의 중심인 목적이 각각 핵과 태양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피조세계에 있어서 주체와 대상은 왜 이와 같은 운동을 하는 것일까. 하나님의 세계에는 시간도 공간도 없으니, 운동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비록 하나님에게 원환운동과 같은 존재양상은 없다 하더라도 피조세계의 원환운동의 원형(原型)은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다. 그것이 성상(性相)과 형상(形狀)의 수수작용의 원만성(圓滿性), 원화성(圓和性), 원골성(圓滑性; 원활성)이다. 원상에서는 성상과 형상이 심정(心情)(목적)을 중심으로 하여 원만한 수수작용을 하고 있는 바, 이 수수작용의 원만성 또는 원화성이, 시간과 공간의 세계에 상징적으로 전개된 것이 바로 원환운동(圓環運動) 다.


만물세계는 하나님의 속성의 상징적(象徵的)인 표현체이다. 예컨대 바다의 넓음은 하나님의 마음의 넓음을 상징하며, 태양의 열은 하나님의 사랑의 따뜻함을 상징하고, 태양의 빛은 하나님의 진리의 밝음을 상징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피조세계의 원환운동도 하나님의 무엇인가를 상징하는 것인 바, 그것이 곧 원상내의 수수작용의 원화성(圓和性)이다. 수수작용의 원화성의 표현인 원형은 동시에 사랑의 표현이기도 하다. 원상에 있어서 수수작용의 원화성(圓和性)은 심정을 중심으로 한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즉 사랑은 모서리가 없는 것으로서 원형(圓形)으로 표현될 수 있다. 따라서 원상(原相)도 도면으로 표시할 때, 원형(圓形) 또는 구형(球形)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무형(無形)이어서 일정한 모습은 없다. 그 대신 하나님은 어떤 모습으로도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 존재한다. 즉 하나님은 무형(無形)이며 무한형(無限形)으로서 이것을 물에 비유할 수 있다. 물에는 일정한 形이 없지만 사각의 용기에 넣으면 사각으로, 삼각의 용기에 넣으면 삼각으로, 둥근 용기에 넣으면 둥근 모습으로 나타난다. 용기에 따라 어떤 모양으로도 나타난다. 즉 무한형(無限形)이다. 그러나 물의 대표적인 모양이 있다면 그것은 구형(球形)이다. 그것은 물방울이 구형인 것으로써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때로는 파도와 같은 모습으로, 때로는 바람의 모습으로도 나타나며, 또 때로는 불꽃의 모습으로도 나타난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대표적인 모양이 있다면 그것은 구형(球形)일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도 원상(原相)은 원형(圓形) 혹은 구형(球形)으로 표시될 수 있다. 만물도 원상을 닮아서 모두 기본적인 형태는 구형을 이루고 있다. 원자나 지구, 달, 태양, 별 등은 모두 구형으로 되어 있다. 생물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식물의 씨(種子)나 동물의 알(卵)은 기본적으로는 모두 구형이다. 그리고 만물의 운동이 원환운동이라 함은 상술한 바와 같이 원상의 수수작용의 원화성(圓和性)을 닮은 때문임은 물론이지만 또 원상 자체의 구형성(球形性) 혹은 원형성(圓形性)을 닮은 때문이기도 하다.


주체와 대상이 수수작용을 할 때, 원환운동(圓環運動)이 벌어지는 데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그것은 원환운동이 수수작용의 표현 형태이기 때문이다. 만일 대상이 주체를 중심으로 돌지 않고 직선적으로 운동한다면, 결국은 주체를 떠나고 말기 때문에 주체와 대상은 수수작용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수수작용을 할 수 없다면 피조물은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오직 수수작용에 의해서만 생존(存續)과 번식(發展)과 통일의 힘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체와 대상이 수수작용을 하기 위해서는 대상은 주체와 관계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되며, 그러기 위해서는 대상이 주체의 주위를 돌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2) 자전운동(自轉運動)과 공전운동(公轉運動)

 

다음은 자전운동(自轉運動)과 공전운동(公轉運動)에 대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어떠한 개체든지 원환운동을 하는데 있어서는 반드시 자전운동과 공전운동이라는 두 가지의 운동을 동시에 행하게 된다. 모든 개체는 개성진리체(個性眞理體)이면서 연체(聯體)이기 때문이다. 즉 모든 개체는 내적으로 수수작용을 하면서 동시에 외적으로도 수수작용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때 이 두 가지 수수작용에 대응(對應)하는 두 가지의 원환운동이 벌어지게 된다. 내적수수작용에 의한 원환운동이 자전운동(自轉運動)이요, 외적수수작용에 의한 원환운동이 공전운동(公轉運動)이다.


예컨대 지구는 자전하면서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公轉)하고 있고, 전자(電子)도 자전하면서 원자핵을 중심으로 돌고(공전) 있다. 피조물에 있어서 이와 같이 자전운동과 공전운동이 동시에 벌어지는 것은 만물의 안 밖의 운동(수수작용)이 원상에 있어서의 내적수수작용(授受作用)의 원화성(圓和性)과 외적수수작용(授受作用)의 원화성(圓和性)을 닮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내적 및 외적수수작용(授受作用) 때에는 반드시 내적사위기대 및 외적사위기대가 목적을 중심으로 형성된다(피조물(被造物)은 원상과는 달리 어떠한 사위기대(四位基臺)든지 모두 그 중심에 목적이 세워진다). 그리고 이 내적 및 외적사위기대 형성에 있어서, 결과가 합성체(合性體)인 경우와 신생체(新生體)인 경우의 두가지가 있게 된다. 여기서는 결과가 합성체인 경우만을 살펴보자.

 

원상(原相)에 있어서, 결과가 합성체인 경우의 수수작용 즉 사위기대는 자동적사위기대(自同的四位基臺)였으며 여기에 다시 내적자동적사위기대(自同的四位基臺)와 외적자동적사위기대(自同的四位基臺)가 있었는 바, 이것이 원상(原相)의 2단구조(構造)였다. 피조물도 원상의 사위기대(수수작용)를 닮은 내적자동적사위기대와 외적자동적사위기대를 이루고 있는 바, 이것이 존재(存在)의 2단구조(構造)이다. 수수작용은 사위기대를 터로 하고서 벌어지며, 수수작용 때에는 반드시 원환운동(圓環運動)이 나타난다. 따라서 내적 및 외적사위기대에서 내적 및 외적수수작용이 벌어지는 동시에 내적 및 외적인 원환운동이 벌어진다. 이때의 내적원환운동이 바로 자전운동(自轉運動)이며, 외적원환운동이 공전운동(公轉運動)이다.

 

  (3) 원환운동(圓環運動)의 제형태(諸形態, 여러 형태)


그런데 피조세계에 있어서 실제로 공간적인 원환운동을 하고 있는 것은, 천체(天體)와 원자(原子) 내의 소립자뿐이며, 그 외의 만물은 문자 그대로의 원환운동을 하지 않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예컨대 식물은 일정한 위치에 고정되어 있으며, 동물도 비록 움직이고는 있지만 원환운동을 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러한 피조물들도 그 존재양상(存在樣相)의 기본형은 역시 원환운동이며, 다만 그것이 변형(變形)되어서 다른 형태를 취하게 된 것에 불과하다. 이와 같이 피조물의 원환운동이 변형된 이유는 각 피조물의 창조목적(創造目的) 즉 전체목적과 개체(個體)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함이다. 이리하여 실제로 나타난 원환운동의 형태에는 몇 가지의 유형이 있게 된다. 기본적 원환운동, 변형된 원환운동, 정신적 원환운동이 그것이다.


   1) 기본적(基本的) 원환운동(圓環運動)


여기에 다시 공간적 원환운동과 시간적 원환운동의 두 가지가 있다. ①공간적(空間的) 원환운동(圓環運動)...... 이것은 물리적, 반복적인 원환운동으로서 천체(天體)와 소립자의 자전운동 및 공전운동이 그 예이다. 즉 원상내의 자동적수수작용이 공간적성격을 띠고 나타난 것이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의 원환운동이지만 항상 거의 같은 궤도(軌道)를 돌고 있으므로 반복운동(反復運動)이기도 하다. ②시간(時間)的 원환운동(圓環運動)(螺旋形運動)... ... 이것은 生物(생명(生命))의 라이프 사이클(life cycle)의 반복과 계대현상(繼代現象)을 말하는 것으로서, 식물의 경우 한 알의 씨에서 싹이 난 후 성장하여 꽃을 피우고 열매(새로운 씨)를 맺는 바, 이 새로운 씨는 처음의 씨보다 수가 많으며, 이 씨가 또 땅에 심겨진 후 싹이 나고 성장하여, 또 새로운 열매(씨)를 맺는다. 동물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수정란(受精卵)이 성장하여 새끼가 되고, 새끼가 성장하여 어미 동물이 되면, 다시 새로운 수정란을 지니게 된다. 이 새로운 수정란이 다시 성장하여 어미가 된다. 이와 같이 식물도 동물도 라이프 사이클(生活史)을 반복(反復)하면서, 즉 대를 이어가면서 종족을 보존한다. 이와 같은 종족 보존을 위한 계대현상(繼代現象)도 일종의 원환운동인 바, 이 운동은 목적성(目的性), 시간성(時間性), 단계성(段階性)을 동반하고 있는 것이 그 특징이다. 이것을 특히 나선형운동(螺旋形運動)이라고 하며 도표로 표시하면 그림 2-7과 같다.

그림 2-7 나성형운동 

 

여기서 생물의 나선형운동(螺旋形運動), 즉 종족의 보존과 번식의 의미를 해명하고자 한다. 만물은 인간의 기쁨(美)의 대상인 동시에 주관(主管)의 대상(對象)이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만물의 종족 보존과 번식은 인간들의 부단한 계대(繼代; 대를 이음)와 번식(繁殖)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인간의 육신은 영원한 존재가 아니며, 영인체(靈人體)만이 영생(永生)한다. 즉 육신을 터로 하고 영인체가 완성하면 육신이 죽은 뒤 그 성숙(成熟)된 영인체가 영계에서 영원히 살게 되어 있다(단, 인간의 타락(墮落)에 의하여 오늘날까지 인간의 영인체는 미완성한 채로 영계에 가 있다). 영인체(靈人體)의 완성이란 창조목적을 완성하는 것으로서, 인간이 성장하여 인격을 완성하고 결혼하여 자녀를 번식(繁殖)하고 만물을 주관(主管)하는 것, 즉 삼대축복(三大祝福)의 완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지상에 사는 인간은 일정한 수명을 누리다가 영인체는 영계에 가고 육신은 번식을 통하여 다음 대로 이어진다. 만물들은 이와 같이 지상인의 기쁨과 주관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만물 역시 대를 이으면서 종자를 보존하고 번식하게 된다. 이상이 시간적(時間的) 원환운동에 관한 설명인데, 이러한 원환운동은 모두 원상 내의 발전적수수작용이 주로 시간적(時間的), 계기적(繼起的) 성격을 띠고 나타난 것이다.


   2) 변형(變形)된 원환운동(圓環運動)


여기에는 다시 고정성(固定性)운동과 대체성운동(代替性運動)의 두 가지 유형이 있다. ①固定性運動...... 이것은 원환운동이 한 개체의 창조목적 수행을 위해서 고정화된 것이다. 마치 정지위성(靜止衛星)이 그 목적수행을 위해서 일정한 위치에 고정되어 있는 것과 같다.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의 경우, 지구를 구성하고 있는 많은 원자가 마음대로 운동한다면 지구는 가스상태가 되어버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거기에서 살 수 없게 된다. 인간이 살 수 있는 지구가 되기 위해서는, 원자와 원자가 굳게 결합하고 고정되어서 굳은 지각을 형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지구를 구성하고 있는 원자는 인간이 사는 환경을 만들기 위하여(전체(全體)목적을 위하여) 원환운동의 형태를 변형시킨 후 고정화(固定化)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생물체의 각 조직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도 모두 서로 결합한 후 고정되어 있다. 예컨대 동물의 심장(心臟)을 이루고 있는 세포(細胞)는 서로 결합하고 있는 바, 이것은 심장의 기능인 신축작용(伸縮作用); 전체목적(全體目的)을 다하기 위해서이다. 만일 세포들이 서로 떨어져서 개별적으로 운동한다면, 심장은 그 기능을 다 할 수 없게 된다. ②대체성운동(代替性運動)... ... 그런데 동물에 있어서 육체를 구성하고 있는 세포들이 직접 원환운동을 하지 않는 대신, 혁액(血液)과 임파액(淋巴液)이 체내를 돌면서 세포와 세포를 연결시킴으로써, 세포들이 서로 원환운동을 하고 있는 것과 같은 효과(效果)를 나타내고 있다. 식물에 있어서도 도관(導管; 물관 [vessel])과 사관(篩管; 체관 [sieve tube])을 통하여 양분이 체내를 돌면서 세포와 세포를 연결시키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세포들이 원환운동을 하고 있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와 같이 혈액(血液)이나 임파액(淋巴液), 또는 양분(養分)이 유통하면서 세포의 원환운동을 대신하는 것을 대체성원환운동(代替性圓環運動) 혹은 대체성운동(代替性運動)이라고 한다. 지구에 있어서의 맨틀(mantle)의 대류(對流)라든지 플레이트(plate: 地球表面의 岩盤)의 이동 등도 대체성운동으로 볼 수 있으며, 경제생활에서의 상품이나 화폐의 유통도 역시 대체성운동에 속하는 원환운동으로 볼 수 있다.

 

   3) 정신적 원환운동(精神的 圓環運動)


인간에 있어서 생심(生心)과 육심(肉心)의 수수작용은 물리적인 원환운동이 아니며 생심(生心)이 원하는대로 육심(肉心)이 호응한다는 의미에서 정신적인 원환운동이다. 또 가정이나 사회에 있어서 인간과 인간의 원만한 수수작용은 주체의 마음이 원하는 대로 대상의 마음이 호응한다는 의미에서 역시 정신적인 원환운동이다. 예컨대 부모와 자녀의 수수작용에 있어서 부모가 자녀를 사랑으로 잘 지도하면 자녀는 부모의 뜻을 잘 따르게 된다. 이때 자녀가 부모의 뜻에 잘 따르는 것이 정신적인 원환운동이다.


  (4) 성장(成長)과 발전운동(發展運動)


   1) 통일사상의 발전관


여기서 성장과 발전의 개념을 설명하고자 한다. 이것은 통일사상의 발전관을 명백히 하기 위해서이다. 생물은 생명을 가지고 있는데, 생명이란 원리의 자율성(自律性)과 주관성(主管性)을 말하며, 생물체에 잠재(潛在)하고 있는 의식성(意識性)을 지닌 에너지(또는 에너지를 지닌 의식(意識))를 말한다. 생물의 성장은 이 생명(生命), 즉 원리의 자율성과 주관성에 기인하는 바, 그것은 생물체에 잠재하고 있는 의식(意識)과 에너지의 통일物(의식성 에너지)인 것으로서 이 의식성(意識性)에너지의 운동이 바로 생명운동(生命運動)이다.


자율성이란 외부로부터 강요받지 아니하고 자신이 스스로 결정하는 능력(能力)이다.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하여 돌고 있으나 그것은 단지 기계적(機械的)인 법칙에 따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생명은 기계적인 법칙에 따르면서도 때에 따라서는 자신을 조정(調整)하면서 여러 가지의 환경변화(環境變化)에 대처한다. 그렇게 해서 성 장하게 되는데 이것이 원리(原理)의 자율성(自律性)이다.


한편 원리의 주관성이란 주위에 대하여 영향을 주는 작용을 말한다. 식물에 있어서 그 씨를 땅에 심으면 발아한 후 줄기가 자라고, 잎이 나는 등 성장(成長)하게 되는데, 그러한 힘 그 자체는 원리(原理)의 자율성이지만 동시에 그 식물은 주위에 영향을 주면서 성장한다.11) 동물에 산소를 공급한다든지 꽃을 피워서 벌과 나비를 부르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것이 원리(原理)의 주관성(主管性)이다. 따라서 생명은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자율성이고, 주위에 영향을 준다는 측면에서 보면 주관성이다. 이와 같이 생명에 의한 생물의 성장운동이 바로 발전운동이다. 그런데 피조물에는 모두 創造目的(被造目的)이 주어져 있다. 생물에도 피조목적이 주어져 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生物(예컨대 식물(植物))에 피조목적이 주어져 있다는 것은 생물(生物) 속의 생명(生命)이 그 목적을 의식하고 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생물의 성장은 처음부터 목표(目的達成)를 지향하는 운동인 것이다.


따라서 발전에는 목표와 방향이 있게 마련이니 그것은 생명에 의해 정해지게 된다. 즉 식물의 경우 종자 속에는 생명이 있어서, 이 생명이 종자로 하여금 나무와 과실을 목표로 하여 성장하도록 작용하게 된다. 또 동물의 경우 알(受精卵)속에도 역시 생명이 있어서, 알로 하여금 성체(成體)를 목표로 하여 성장하도록 작용한다. 여기서 우주 발전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빅뱅이론에 의하면, 우주(宇宙)는 처음에는 극히 고온(高溫)으로서 고밀도(高密度)의 극히 작은 에너지 덩어리였으나 150~200억 년 전에 이 작은 덩어리가 대폭발(大爆發)과 함께 팽창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팽창하면서 소용돌이를 이룬 뜨거운 가스가 냉각(冷却)되고 응축(凝縮)되면서 여러 은하(銀河)가 형성되었으며, 각 은하속에 많은 별(恒星)들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별(恒星)의 대부분은 혹성에 둘러싸이게 되었는데, 그 혹성(惑星) 중의 하나가 지구(地球)이며 이 지구에 생명이 발생하고 드디어 인간이 나타났다. 이것이 오늘날 알려져 있는 과학적인 우주 발전관의 골자이다. 그런데 이 우주의 발전은 생물의 成長(발전)과 어떻게 다른가. 생물과는 달리 단순한 물리화학적 법칙에 의한 발전인가, 아니면 생물의 경우처럼 생명에 의한 발전인가.


이 우주(宇宙)의 발전을 비교적 단기간의 과정만으로 다룬다면, 우주의 발전은 단순한 물리화학적 법칙에 의한 발전으로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수십억 년의 오랜 기간을 하나의 발전과정으로 살펴 볼 때, 우주는 물리화학적 법칙에 따르면서도 일정한 방향을 향하여 진행해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우주의 발전에는 일정한 목표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목표(目標)란 우주의 주관주(主管主)인 인간의 출현을 뜻한다. 즉 인류의 출현을 향하여 우주가 발전해 온 것이다. 우주의 발전에 이와 같은 방향성을 제시해 준 것은 우주의 배후에 잠재(潛在)해 있던 어떤 의식(意識)의 힘이며, 이것을 `우주의식(宇宙意識)' 혹은 `우주생명(宇宙生命))'이라고 부른다. 식물의 종자(생명체(生命體))가 발아한 후 성장하여 열매를 맺는 것처럼, 우주의 발전에 있어서도 처음에 우주적인 종자(생명체(生命體))가 형성되어 그것이 오늘날까지 팽창하면서 성장해 왔으며, 그 성장의 최종적인 열매가 인간이라고 볼 수 있다. 즉 과실이 과수(果樹)의 목표인 것과 같이, 인간이 우주 발전의 목표였던 것이다. 앞에서 성장은 생물(有機體)에게만 있는 현상이라고 했지만 150~200억년이라는 장구한 시간의 안목으로 우주를 볼 때, 우주 전체는 하나의 거대(巨大)한 유기체로서 계속 성장해 왔다고 보는 것이다.

 

   2) 공산주의(共産主義)의 발전관(發展觀)


다음은 공산주의(共産主義)의 발전관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발전은 일정한 목표를 지향하는, 즉 목적성을 띤 불가역적(不可逆的)인 운동이다. 그런데 공산주의는 발전을 목적성을 띤 운동이라고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또한 공산주의는, 발전은 사물의 내부의 모순(矛盾)에 의해서 이루어지며 따라서 발전에는 법칙성(法則性)과 필연성(必然性)만이 인정될 뿐이라고 하면서 목적(目標)을 부정한다. 왜 그럴까. 만일 목적을 인정한다면 그 목적을 세운 근원자(根源者)가 누구인가 라는 문제가 제기되며, 목적을 세울 수 있는 것은 의지(意志)나 이성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주가 생겨나기 전에 목적을 세운 이성이 있다면 그 이성은 바로 신(神)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결국 신(神)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며, 신(神)을 인정하게 되면 무신론(無神論)인 공산주의는 파탄되므로, 그들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목적만은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이에 대하여 통일사상은 발전에 있어서 필연성과 법칙성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거기에 반드시 목적성(目的性)이 있음을 주장한다. 발전의 주체는 생명(生命)이며, 생명은 목적성을 지닌 의식성(意識性)의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발전에 있어서의 법칙성(法則性), 필연성(必然性)은 모두 이 목적의 실현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즉 법칙성과 필연성은 만물로 하여금 그 목적(創造目的)을 달성하도록 하기위해서 만물에 부여되었던 것이다.

 

원상론에 의하면 하나님의 성상에 있어서 內的性相(理性)과 內的形狀(법칙)이 목적을 중심으로 수수작용을 할 때 로고스가 형성된다. 로고스는 이성과 법칙(法則)의 통일체이다. 여기서 법칙은 하나님의 우주창조 이전부터 창조목적의 실현을 위해서 하나님의 내적형상(內的形狀) 內에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유물론자(唯物論者)들은 우주의 발전에 있어서 목적성을 부정했기 때문에, 인간은 다만 법칙(法則)의 필연성(必然性)에 의해서 탄생한 무목적적(無目的的)인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목적을 지니지 않았다는 점에서 인간은 우연적(偶然的) 존재(存在)에 불과하며 그런 인간에게는 가치(價値)의 생활이나 도덕적(道德的)인 생활 모두 무의미할 수밖에 없다. 그와 같은 세계는 힘이 강한 者만이 사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세계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3) 공산주의(共産主義)의 운동관(運動觀)

 

공산주의는 물질(物質)을 `운동(運動)하는 물질(物質)'로서 파악하고 있다. 예컨대 엥겔스(F. Engels, 1820~1895)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운동(運動)은 물질의 존재양식(存在樣式)이다. 운동이 없는 물질은 언제 어디에도 없었고 또 있을 수 없다....... 운동(運動)이 없는 물질이 있을 수 없는 것은 물질이 없는 운동이 있을 수 없는 것과 같다."12) 공산주의가 이와 같이 운동을 물질의 존재양식(存在樣式)이라고 주장한 것은 신(神)의 존재를 부정하기 위함이다.

 

우주(宇宙)를 거대한 기계로서 파악한 뉴톤은 그 기계를 만들고 가동시킨 존재로서 신(神)을 인정했다. 물질과 운동을 분리해서 생각해 보면 운동은 물질 이외의 다른 존재(存在), 예컨대 신(神)과 같은 존재에 의해서 작동되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산주의자들은 그와 같은 형이상학(形而上學)的인 운동관을 방지하기 위해서, 운동은 물질이 본래부터 구비(具備)하고 있는 존재양식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통일사상에서 보면 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에 의해서 사물은 존재하고 운동한다. 따라서 운동은 역시 만물의 존재양식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운동은 한 개체에만 속해 있는 존재양식이 아니라 주체와 대상이 수수작용을 할 때마다 나타나는 현상(現象)으로서, 수수작용 없이 만물은 존재할 수 없으므로 그런 의미에서 운동이 만물의 존재양식(存在樣式(樣相))인 것이다. 그런데 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은 창조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작용이다. 따라서 운동은 창조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있는 것이다. 예컨대 지구는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는 창조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내적수수작용(授受作用)과 외적수수작용(授受作用)을 하고 있고, 그 때문에 자전운동(自轉運動)과 공전운동(公轉運動)을 하게 된다.


공산주의는 운동이 물질의 존재양식이라고 하면서도 왜 물질이 그와 같은 존재양식을 갖는가, 그리고 그 운동의 형태는 어떠한가(直線運動인가 圓環運動)인가 등)에 대해서는 아무 설명도 없이, 다만 사물은 대립물(對立物)의 투쟁에 의해서 운동하고 있다고만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