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6. 20:20ㆍ참사랑 영원까지/원리 본체론
1. 모세 중심한 복귀섭리이 개관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한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를 세우는 복귀섭리의 원칙은 이전과 똑같습니다. 그러나 복귀섭리의 원칙은 동일하지만, 모세를 중심한 복귀섭리는 이전 섭리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1) 이전 섭리와 다른 점
모세를 중심한 복귀섭리에서 이전의 섭리와 다른 점은 첫째, 아담·노아·아브라함 때에는 가정적인 섭리를 펼쳤는데, 모세부터는 민족적인 섭리를 펼치기 때문에 섭리의 범위가 가정에서 민족으로 넓어졌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아브라함의 제물 실수로 애급에서 고역살이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400년 만에 데리고 나왔습니다. 출애굽기 12장 37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에서 발행하여 숙곳에 이르니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요.’ 했으니 어린이까지 합치면 백만 명이 넘는 민족을 이룬 것입니다.
둘째, 아담부터 아브라함까지가 가정을 중심한 복귀기대 섭리시대였다면, 모세 이후부터는 본격적인 복귀섭리시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복귀기대라는 말은 집을 짓기 위해서 터를 닦는 것이고, 복귀섭리라는 말은 닦아놓은 터전 위에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우고 집을 짓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복귀기대 섭리시대는 가정적 시대이지만, 복귀섭리시대는 민족적 시대로 발전했다는 말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함으로써 가정적 섭리시대에는 말씀 대신 상징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담가정에서는 아벨이 양이라는 상징물로 제사를 드렸고, 노아가정에서는 방주라는 상징물로, 아브라함가정에서는 3제물로 헌제(獻祭)했고, 이삭도 양이라는 상징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셋째, 탕감조건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모세 때에 이르러서는 가정적 섭리에서 민족적 섭리로 범위가 넓어졌기 때문에 상징헌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탕감조건을 세우게 됩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에게서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이후에 그 십계명을 중심으로 구약의 말씀, 곧 구약성서가 세워지고, 그 터전 위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신약성서가 세워집니다. 모세노정부터는 양을 잡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사탄분립 기대 위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만 되면 섭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 모세의 위치
모세는 하나님의 대신자입니다.
출애굽기 4장 16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님 같이 되리라.’했고, 출애굽기 7장 1절에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찌어다 내가 너로 바로에게 신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代言者)가 되리니.’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대신해서 말씀한다는 것입니다.
또 모세는 예수님의 모의자(模擬者)입니다.
모세는 출생 때부터 예수님의 모의자로서의 단편을 보입니다. 모세는 바로 정권에서 이스라엘 민족으로 태어나 죽임을 당할 처지에서 모친의 협조로 살아납니다(출애굽기 2장 2절). 예수님도 죽이려 하는 헤롯 왕을 피하여 그를 데리고 애급으로 간 모친의 협조로 죽임을 면합니다(마태복음 2장 13절).
출애굽기 3장 8절을 보면, 모세는 애급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 가나안으로 복귀하는 노정을 걷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출생하자마자 애급으로 떠났다가 이스라엘로 돌아오십니다(마태복음 2장 19~21절).
사도행전 3장 22절에는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 모든 말씀을 들을 것이라.’고 한 것도 예수님이 모세와 같은 입장의 지도자임을 뜻합니다.
모세와 예수님의 주변을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모세 때에 12지파가 있었고(출애굽기 24장 4절), 예수의 노정에도 12제자가 있었습니다(요한복음 20장 24절). 또 모세 때 70장로(민수기 11장 16절)가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 때에도 70문도가 그 노정의 중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누가복음 10장 1절).
모세와 예수님의 시체를 놓고도 같은 양상을 보입니다. 유다서 1장 9절을 보면, ‘모세의 시체를 놓고 마귀와 다투었다.’고 했고, 마태복음 28장 12절과 13절을 보면, 예수님의 시체를 둘러싸고도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모세 노정은 예수님의 전형적인 노정입니다.
모세는 육신을 쓴 신으로 오신 예수님의 모의자(模擬者)입니다. 모세와 예수님은 태어난 환경이 유사하며 성장하고 서거한 상황도 비슷합니다.
모세는 바로의 양자와 같은 입장에서 자라 사탄 세계인 바로 궁에서 살게 됩니다. 모세는 120세가 되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아바림 산꼭대기에서 가나안 땅을 두루 둘러보게 하시지만 반석을 두 번 쳐서 물을 낸 것으로 인해 가나안에 못 들어가고 죽어 조상에게로 돌아가게 된다고 말씀했습니다(민수기 27장 12~14절).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사생아로 태어났고, 성장과정이 대단히 비참합니다. 마가복음 14장 36절을 보면, 마지막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때에도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면서 눈물로 통곡합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을 밟고 싶었듯이 예수님도 십자가의 길을 면하고 하나님의 창조이상인 영육(靈肉)을 아우른 인간 구원을 소망했던 것입니다.
모세노정은 예수님의 전형적 노정으로, 모세가 형상적(形象的) 노정을 걸었다면, 예수님은 실체적(實體的)노정을 걸으신 것입니다.
3) 민족이 모세를 불신한 결과
애급은 사탄 편 세계요, 가나안은 하나님 편 세계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노정은 전 인류가 하나님을 찾아가는 복귀노정과 같습니다.
모세는 3차에 걸쳐 가나안 복귀노정을 걸었습니다.
1차 노정에서 모세가 40년 동안 바로 궁중 노정을 거친 기대 위에서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 되었으면 21일 노정을 거친 다음 블레셋을 통해서 바로 가나안으로 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를 불신함으로써 가나안 복귀노정은 출발도 못하고 좌절되었습니다. 모세는 바로 궁에도 돌아가지 못하고 배신한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가지 못하기 때문에 미디안 광야로 도망쳐 나옵니다.
2차 노정에서는 미디안 광야로 쫓겨나온 모세가 거기에서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합니다. 그 후 다시 바로 궁을 찾아가 바로를 굴복시킨 다음 이스라엘 민족을 데리고 애급을 나옵니다. 그 때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와 하나가 되었다면 21개월 만에 가나안에 도착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나안으로 가던 도중에 또 불신함으로써 시내 광야에서 40년 간 광야생활을 하게 됩니다.
마지막에 모세는 시내 광야에서 40년을 지낸 다음 이스라엘 민족을 데리고 가데스바네아에 가서 반석 샘물을 먹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줘 제3차 출발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이번에도 불신했기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광야에서 독수리 밥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가 2세들을 데리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감으로써 메시아를 모실 수 있는 승리의 기대를 세우게 됩니다. 이처럼 민족이 한 번 불신하면 3차에 걸쳐서 섭리가 연장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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