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본체론 - 후편 - 제5장 모세 중심한 복귀섭리 -

2013. 1. 6. 20:21참사랑 영원까지/원리 본체론

제5장 모세 중심한 복귀섭리                  

 

하나님이 성서에 숨겨 놓은 구원섭리의 비밀은 타락한 인간이 가야 할 길을 보여주는 것인데, 그것을 알면 사탄을 굴복시키는 길이 열립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에게 사탄을 굴복시키는 방법을 보여주기 위해 선지자로 하여금 먼저 그 길을 걷게 하셨습니다.

 

                                서론

 

        1) 모세와 예수님을 중심한 복귀섭리 

 

성서에는 하나님의 구원섭리에 관한 수많은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그 이유는 사탄이 먼저 알고 하나님이 하고자 하는 일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성서는 하나님만이 아시고 사탄이나 인간은 모르도록 비유와 상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깨어 있거나 지혜 있는 자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성서에 숨겨 놓은 구원섭리의 비밀은 타락한 인간이 가야 할 길을 보여주는 것인데, 그것을 알면 사탄을 굴복시키는 길이 열립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에게 사탄을 굴복시키는 방법을 보여주기 위해 선지자로 하여금 먼저 그 길을 걷게 하셨습니다.

 

아모스 3장 7절을 보면,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대로 하나님 편 야곱이 사탄 편 에서를 굴복시킴으로써 야곱은 가정적으로 사탄 굴복의 본보기 노정을 보여주었습니다. 야곱노정은 상징노정(象徵路程)에 해당합니다.

 

사도행전 3장 22절을 보면,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씀을 들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야곱노정을 따라 민족적인 사탄 굴복의 노정을 보여준 것입니다. 모세노정은 형상노정(形象路程)에 해당합니다.

 

예수님은 모세노정을 따라 사탄을 실체적으로 굴복시키는 길을 개척합니다. 요한복음 5장 19절을 보면,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고 했듯이, 예수님은 사탄을 실체적으로 굴복시키는 노정을 걸어가심으로써 만민이 그 길을 가도록 한 것입니다. 예수노정은 실체노정(實體路程)에 해당합니다.

 

        2) 사탄 굴복의 본보기 노정       

 

(1) 예수님이 전형노정으로 야곱노정과 모세노정을 세우신 이유 

하나님은 아버지(=天父)이시고,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子女)이며, 천사는 종입니다. 그런데 종인 천사가 자기 존재 위치를 떠나서 사탄이 되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 앞에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에게 순종·굴복하지 않는 사탄이 하나님이 아들 예수님에게 굴복할 리 없고, 성도들 앞에는 더더욱 굴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원리적 책임을 지시고 사탄 굴복의 전형노정(典型路程)인 야곱노정과 모세노정을 하나님 책임분담으로 부모의 입장에서 보여주십니다.

 

(2) 야곱노정을 본보기로 하여 걸은 모세노정과 예수님노정  
아담이 타락함으로써 사탄의 침범을 받았습니다. 사탄 굴복의 본보기 노정은 아담의 타락 경로에 따라서 야곱노정·모세노정·예수노정을 거치면서 사탄을 분립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가정적으로 상징적인 사탄 굴복의 본보기 노정을 걸었고, 모세는 상징적으로 형상적인 사탄 굴복의 본보기 노정을 걸었고, 예수님은 국가적으로 실체적인 사탄을 굴복시키는 본보기 노정을 걸었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야곱을 세워서 사탄 굴복의 본보기 노정을 보여주었는데, 모세는 야곱이 간 길을 그대로 가고, 예수님은 모세가 간 길을 보여주었는데, 모세는 야곱이 간 길을 그대로 가고, 예수님은 모세가 간 길을 그대로 가고, 우리 인류는 예수님께서 걸어간 길을 그대로 감으로써 사탄을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아담에게 침범한 사탄을 굴복시키기 위한 야곱의 노정을 본보기로 하여 걸은 모세와 예수의 노정을 성서의 기록에 따라 비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시험               

 

에덴동산에서 천사장이 아담과 해와를 타락시키기 위해 시험을 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어도 된다.’고 한 것입니다. 그때 아담과 해와는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죽기를 각오하고 지킴으로써 그 시험에서 이겨야 했는데 지키지 못하고 그만 타락해 버렸습니다. 말하자면 사탄의 시험에 걸려든 아담과 해와가 사탄에게 굴복한 것입니다.

 

창세기 32장 24절과 25절을 보면,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천사와 날이 새도록 씨름을 했는데, 천사가 야곱을 이기지 못하자 야곱의 환도뼈를 칩니다. 환도뼈는 아담이 사탄의 시험을 이기지 못하고 타락한 다음에 가렸던 하체를 의미합니다. 야곱이 환도뼈에 손상을 입고도 천사에게 굴하지 않고 승리함으로써 아담의 타락을 상징적으로 탕감복귀한 것입니다.

 

거기에서 야곱은 천사에게 축복을 받고 이스라엘이라는 칭호를 받습니다. 야곱이 천사를 굴복시키고 승리했다는 증표(證票)를 받아낸 것입니다. 그것은 야곱을 통해 가정적인 사탄 굴복노정의 승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민족적으로, 형상적으로 사탄 굴복노정을 걷는 모세도 하나님으로부터 시험을 당합니다. 출애굽기 4장 24절에서 26절을 보면, 하나님은 모세에게 미디안에서 애급으로 돌아가라고 해놓고 아침에 길이 숙소(장막)에서 갑자기 그를 죽이려고 합니다. 그때 모세의 부인 십보라가 보니 아들이 할례를 하지 않았습니다. 십보라가 날카로운 차돌로 아들의 양피를 베어 할례를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십보라는 죽을 수밖에 없는 모세를 살렸고, 모세는 아내 십보라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시험에서 승리했습니다.

 

모세를 사탄에게 맡기면 사탄이 더 혹독한 시험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미리 시험을 거치도록 하셨다고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탄이 굴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모세를 사탄에게 내주지 않고 직접 모세에게 채찍을 가하신 것입니다. 그 후 모세는 애급으로 돌아가서 바로를 굴복시키고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급시킵니다.

 

실체적으로 사탄 굴복노정을 걷는 예수님은 40일 동안 금식기도를 하는 도중에 사탄의 3대 시험을 받게 됩니다(마태복음 4장 1~11절). 그리고 사탄의 3대 시험에 승리하게 됩니다.

 

영과 육           

 

하나님은 아담의 영과 육을 창조하셨습니다. 아담의 영과 육은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것이 타락으로 사탄의 것이 되었습니다. 아담이 타락함으로써 영육(靈肉)이 사탄에게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가정에서 창세기 25장 34절을 보면, 야곱이 떡과 팥죽으로 형님 에서로부터 장자의 자리를 빼앗습니다. 영과 육을 상징하는 떡과 팥죽으로 사탄 편에 있는 에서의 육신을 살리고, 장자의 명분을 하나님 편으로 찾아와 야곱의 영을 살린 것입니다.

 

모세를 따르던 이스라엘 민족은 신 광야에서 먹을 것과 마실 것 때문에 늘 모세를 불신했습니다. 그때 모세는 만나와 메추라기로 이스라엘 민족을 살려냅니다.

출애굽기 16장 13절에서 15절을 보면, 모세가 출애급해서 신 광야로 가는 동안 하나님께서 매일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어 이스라엘 민족을 데려가도록 합니다. 만나는 장차 오실 예수의 육신이고, 메추라기는 영인체를 뜻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영과 육을 다 바쳤습니다. 마태복음 26장 26절에서 28절을 보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날 밤 제자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건네면서 ‘이것은 내 몸이요, 이것은 내 피다.’고 했습니다. 떡과 포도주는 예수님의 육신과 영인체를 의미합니다.

 

시체                         

 

아담이 타락함으로써 시체까지도 사탄에게 넘어갔습니다. 원래 아담이 완성했으면 그의 몸과 마음은 하나님의 성전으로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아담은 영적·육적으로 다 사탄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사탄과 싸워 승리했습니다. 승리한 야곱의 시체는 사탄에게 내주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50장 1절에서 3절을 보면, 야곱이 죽자 ‘요셉이 아비 얼굴에 구푸려 울며 입맞추고 그 수종 의사에게 명하여 향재료를 아비의 몸에 넣게 하매 의사가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하되 사십 일이 걸렸으니 향 재료를 넣는데는 이 날수가 걸림이며···.’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야곱은 죽은 후에 시체를 놓고 40일 동안 사탄을 분립했습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다서 1장 9절에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하지 못하고···.’ 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또 신명기 34장 5절에서 8절을 보면, 모세는 모압 땅에서 120세로 생을 마감하여 모압땅 골짜기에 장사되었는데, 그 묘를 아는자가 없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의 시체를 놓고도 사탄과 싸웠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대목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2절과 13절을 보면, 예수님의 시체를 놓고 둘러싸고도 다툼이 벌어졌습니다.

 

수의 복귀(3수 12수 7수)         

 

아담은 소생기·장성기·완성기 3단계를 거쳐서 완성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타락하여 3단계의 완성기간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잃어버린 완성기간은 아담부터 노아까지 10대에 거쳐 복귀할 수 있는 기대를 마련하고, 노아에서 아브라함까지 10대를 거쳐 탕감복귀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제물 실수로 이삭과 야곱까지 2대가 연장되어 12대에 걸친 탕감복귀의 기간을 거치게 됩니다. 또 하나님의 제6일, 6수에서 인간을 창조했는데, 인간이 성장해서 완성하면 7일을 통해 창조이상이 완성됩니다.

 

아담의 타락으로 3수·12수·7수를 모두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 잃어버린 수들을 탕감복귀해야 합니다.

야곱은 아담의 잃어버린 3단계 완성기간을 탕감하기 위하여 3일 간의 사탄분립 노정을 걷습니다. 창세기 31장 22절을 보면,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네 명의 부인과 열한 명의 자식들과 재물을 챙겨서 아버지 이삭에게 가려고 가만히 길을 떠났는데 외삼촌에게 3일 만에 도망한 것이 들통납니다.

 

모세도 3일 노정을 걷습니다. 출애굽기 5장 3절을 보면, 모세는 바로에게 ‘우리가 사흘 길쯤 광야에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 하오니.’ 하며 간청합니다. 모세는 그 3일 노정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데리고 애급을 탈출하려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8장 33절을 보면, 예수님도 돌아가신 후 3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예고하십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돌아가신 지 3일 만에 부활하셔서 40일 동안 제자들을 만나 활동하십니다. 40수는 사탄분립 수이고, 3일 노정은 사탄분립기간입니다.

 

그다음에 12수와 70수를 찾아야 합니다. 야곱은 열두 자식(창세기 35장 22절)과 70가족(창세기 46장 27절)을 데리고 애급에 갔습니다. 모세는 12지파장(출애굽기 24장 4절)과 70장로(출애굽기 24장 1절)를 데리고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출애급했습니다. 예수님 때는 12제자(마태복음 10장 1절)과 70문도(누가복음 10장 1절)가 예수님을 모시고 실체 제물을 드리지 못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에 로마 박해를 당하게 됩니다.

 

지팡이                  

 

야곱은 얍복 강가에서 천사와 싸우다가 환도뼈가 부러져 지팡이를 짚고 얍복 강을 건넙니다. 창세기 32장 10절을 보면, 야곱은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라고 합니다.

 

모세는 애급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나와 홍해를 건너기 전 바로의 군사들에게 쫓깁니다. 출애급기 14장 16절을 보면, 모세는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홍해를 갈라지게 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도록 합니다.

 

또 예수님은 고해(苦海)를 건너는데 요한계시록 12장 5절과 요한계시록 2장 27절에 나오는 철장(鐵杖)으로 인도합니다.

야곱과 모세와 예수가 든 지팡이는 메시아를 상징합니다. 지팡이는 사람을 인도하고, 힘없는 사람이 의지하고, 불의가 나타나면 그것을 치는 사명도 합니다. 그런 사명을 지닌 사람이 바로 메시아입니다. 메시아는 이 땅에 지팡이의 사명을 하기 위해서 오십니다. 야곱도, 모세도, 예수님도 실체로 오신 당시의 메시아이기 때문에 사막에서 인류를 데리고 고해(苦海)를 넘어가는 것입니다.

 

모자 협조              

 

창세기 27장을 보면,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의 협조를 얻어 형 에서로부터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빼앗고, 어머니의 친정인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신합니다.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의 협조가 없었다면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장자권과 축복을 빼앗아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자협조(母子協助)가 필요합니다.

 

모세도 어머니의 협조로 구사일생합니다. 모세가 태어날 무렵, 애급의 바로는 이스라엘 민족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것에 겁을 먹고, 칙령을 내려 히브리 여인이 잉태하여 남자아이를 낳으면 산파들로 하여금 다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애급 민족은 인구가 적은데 반해 이스라엘 민족은 인구가 급속도로 불어났기 때문입니다(출애굽기 1장 18~22절).

 

출애굽기 2장을 보면, 레위 족속의 한 여자가 아기를 낳았는데 그 준수함을 보고 차마 죽일 수가 없어 석 달 동안 몰래 숨겨놓고 키웁니다. 아기가 자라 울음소리도 커지고 더 이상 아기를 숨겨 키울 수 없게 되자 아기의 어머니는 갈대를 잘라 상자를 만들고 물이 새어들지 않도록 역청과 나무진을 칠한 다음 하수 건너편에 바로의 공주가 나와서 목욕하는 것을 보고 갈대상자에 아기를 담아서 물길을 따라 공주 앞에 다다를 수 있도록 합니다(1~4절).

 

목욕하러 왔던 공주 일행은 예쁜 상자를 보고 건졌는데, 그 안에 아기가 들어 있습니다. 갈대상자에 담긴 아기가 참 잘생겼고, 아기를 싼 보자기를 보니 아기가 애급 백성이 아니고 히브리 백성인 것을 알았습니다. 공주는 ‘이 아기는 히브리 사람이 낳아서 이곳으로 보냈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5~6절).

 

애급의 공주는 잘생긴 아기를 데리고 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것을 지켜본 아기의 누이가 공중에게 유모가 필요하지 않으냐면서 산모를 천거했습니다. 그때부터 그 아이의 진짜 어머니가 궁중에 유모로 들어가서 아이를 키웁니다(7~9절).

 

어머니는 아이에게 젖을 먹이면서 ‘너는 바로 궁중에 살지만 바로의 왕자가 아니라 히브리 족속이다.’고 교육시킵니다. 만일 그것이 발각되면 어머니와 아들 둘 다 죽게 됩니다. 아이는 지혜로운 어머니 덕분에 바로 궁전에서 잘 성장했습니다.

 

그 아이가 성장하여 공주에게로 데려갔는데 공주가 그 아이를 아들로 삼고 이름을 모세라 지었습니다(10절). 모세는 40세가 될 때까지 궁중에서 지냈습니다. 모세도 죽을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 어머니의 협조로 살아났습니다.

 

모세는 장성한 후에 궁중을 나가서 이스라엘 사람과 애급 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고 애급 사람을 돌로 쳐 죽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자기를 믿게 하여 데리고 가려고 그랬는데, 이스라엘 민족은 오히려 모세를 믿지 않고 배신합니다(11~14절). 그로 인해 가나안 1차 복귀노정은 출발도 못했습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마태복음 2장을 보면,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 별을 보고 점을 치는 동방박사 셋이 별의 움직임을 따라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이스라엘로 갔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2절)고 말합니다.

 

헤롯 왕은 자기가 왕인데 유대 나라의 왕이 태어났다는 소식에 깜짝 놀랍니다. 헤롯 왕은 동방박사에게 ‘왕으로 태어난 아이를 찾거든 돌아갈 때 자기에게 알려주고 가라.’(8절)고 부탁합니다.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께 경배하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는데,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12절)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돌아갔습니다.

 

헤롯 왕은 동방박사를 기다려도 안 오니까 두 살 이하의 남자 아기를 모두 죽이라는 칙령을 내립니다. 예수님도 모세와 마찬가지로 죽을 운명에 놓였습니다. 어머니 마리아가 그 아기를 업고 애급으로 피난을 떠납니다. 보통 인간 같으면 다 죽었을 텐데, 어머니의 협조에 의해서 예수님도 살아남은 것입니다.

 

가나안 복귀             

 

창세기 33장 18절을 보면, 야곱은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오고, 출애굽기 3장 8절을 보면, 모세는 애급에서 가나안을 향해 진군합니다. 또 예수님은 낳자마자 죽이려 하는 헤롯을 피하여 애급으로 갔다가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옵니다(마태복음 2장 21절). 야곱·모세·예수님 모두 가나안 복귀노정을 걸은 것입니다.

 

사탄 괴멸              

 

아담이 타락함으로써 아담가정에 사탄이 들어갔습니다. 그 사탄을 괴멸해야 합니다. 야곱은 사탄을 괴멸하기 위해 외삼촌 집을 나오면서 사탄을 상징하는 우상을 가지고 나옵니다. 야곱의 둘째 부인 라헬이 우상을 숨기고 나왔는데 그것을 야곱이 다른 이방의 신상과 함께 세겜 근처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창세기 35장 4절).

 

모세도 사탄 괴멸의 길을 걸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받아서 돌아와 보니 이스라엘 민족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자기들을 애급에서 인도한 신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모세가 화가 나서 두 석판을 던져 깨뜨리고 금송아지를 불살라 가루로 만들었습니다(출애굽기 32장 16~20절). 모세는 그 가루를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마시게 하여 희생시키고 다시 시내 산에 올라가 처음과 같은 반석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오시면 말씀과 권능(權能)으로 사탄을 괴멸할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으로 하여금 사탄 굴복의 본보기 노정을 걷게 하고, 모세와 예수에게 그 노정을 따라 걷게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