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6. 20:23ㆍ참사랑 영원까지/원리 본체론
3제물의 의미
3제물은 3단계의 성장과정을 통해 완성하는 천주(天宙)를 상징합니다.
또 아담·노아·아브라함 3대에 걸친 복귀섭리의 과정을 의미합니다.
3제물을 드리도록 한 목적은 종적 섭리의 탕감조건을 일시에 횡적으로 복귀하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사탄이 침범한 3수(數)로 표시된 모든 조건을 일시에 탕감복귀함으로써 전체의 복귀섭리를 단번에 이루려는 뜻이 있었습니다.
3제물을 드리는 방법
아브라함은 상징헌제에서 3제물을 각각 둘로 쪼개어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양과 암소는 둘로 쪼갰으나 비둘기는 하찮게 여겨 쪼개지 않았고, 그로 인해 사탄을 상징하는 솔개가 비둘기에게 붙었습니다.
창세기 15장 10절에서 13절로 보면,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해질 때에 아브람이 깊이 잠든 중에 캄캄함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하더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400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게 하리니.’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쪼개는 뜻
제물을 쪼갠다는 것은 선과 악의 분립을 의미합니다. 아담가정에서는 가인과 아벨을 분립했고, 노아가정에서는 방주를 중심해서 세상과 노아가정을 분립했습니다. 또 아브라함가정에서는 3제물을 쪼개서 사탄이 주관하는 세계와 하나님이 주관하는 세계로 분립합니다. 거기에서 사탄과 혈연관계로 들어온 사망의 피를 뽑아 성별(聖別)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비둘기를 쪼개지 않아서 선과 악이 분립되지 않았습니다. 선과 악이 분립되지 않았으니 하나님이 제물을 취하지 못하고 사탄이 제물을 취하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구원섭리의 목적은 선주권(善主權)을 복귀하는 것인데, 사탄이 주관하는 악주권(惡主權)에 그대로 머물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쪼개지 않은 결과
3제물을 완전히 쪼개지 않은 결과 선악이 분립되지 않았고, 여전히 사탄의 주관권에 남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상징헌제 후에 나타난 솔개는 아담가정에서 가인과 아벨의 헌제에서 침범할 기회를 노리던 사탄과 같고, 노아가정에서 홍수심판 때 방주를 엿보던 사탄과 같습니다. 홍수심판 후 방주 안의 노아가정을 노리던 사탄이 까마귀로 표현됐고, 3제물 상징헌제 후에 아브라함가정을 노리던 사탄이 솔개로 표현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상징헌제를 통해 사탄 주관권에 있는 피조세계를 분립해야 하는데 비둘기를 쪼개지 않음으로써 모두 사탄 주관권에 두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도 사탄의 주관권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의 아들 이삭도 사탄의 주관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선과 악으로 분립해야 하는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사탄이 아브라함가정을 주관하게 된 것입니다.
상징헌제 실패의 결과
상징헌제를 실패한 결과 믿음의 기대 복귀가 좌절되었고, 아브라함의 후손은 400년 간 애급 고역을 받게 되었습니다.
야곱의 12자식과 70가족이 애급에 가서 400년 간 고역생활을 했습니다. 애급 고역기간은 노아에서 아브라함까지의 400년을 탕감복귀하는 기간입니다. 애급고역 400년은 형벌을 받는 기간이자 사탄을 분립하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상징헌제의 실패로 이스마엘과 이삭을 중심한 실체기대를 세우지 못했습니다.
(3) 아브라함의 이삭 헌제
아브라함은 상징헌제를 실패한 장본인으로 타락한 아담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원칙은 실패한 인간을 다시 불러서 중심인물로 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실패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다시 불러서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22장 2절을 보면,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며 하나님은 상징헌제에 실패한 아브라함에게 이삭 번제를 명합니다.
다시 상징헌제를 드릴 수 있는 근거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려는 하나님의 섭리는 3차에서 완성해야 하는 원리적 조건이 있습니다. 사탄은 아담가정을 아무런 이유 없이 아담과 가인 2대에 걸쳐 침범했습니다. 하나님의 장자인 아담과 아담가정의 장자인 가인을 사탄이 취해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편에서도 탕감복귀 원칙에 의해서 2대에 걸쳐 사탄이 가장 사랑하는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삭을 취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벨과 노아의 상징헌제 성공의 심정적 기대를 조건으로 하고 있습니다. 아벨이 양을 잘 드렸고, 노아도 방주를 중심으로 상징헌제를 잘 드렸습니다. 거기에서 아벨과 노아의 상징헌제 성공의 심정적 기대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 실패한 장본인이지만, 다시 이삭 번제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탄이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담과 가인 2대를 이유 없이 데려갔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 편에서는 탕감복귀 원칙에 따라 사탄이 사랑하는 아브라함과 이삭 2대를 복귀해 올 수 있습니다.
아담가정·노아가정에 이은 아브라함가정은 3차로 가정섭리의 마지막이기 때문에 더 이상 가정섭리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 때에는 반드시 가정섭리가 완결되어야 하는데, 이미 말씀드린 대로 아브라함이 비둘기를 둘로 쪼개지 않아 실패했습니다.
그러므로 섭리는 연장될 수밖에 없는데, 아브라함가정에서 헌제에 합당한 인물은 이삭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 번제를 명령합니다.
아브라함의 이삭 헌제를 위한 조건
1차 때에는 아브라함이 상징헌제를 드리기 위해서 부인 사라와 함께 애급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가데스와 술 사이에 있는 그랄왕국으로 갑니다. 그랄 왕국의 왕은 아비멜렉이었습니다. 거기에서도 아브라함은 아담가정의 입장과 노아가정의 입장을 탕감복귀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삭 번제를 드리기 위해서 1차 상징헌제 때와 똑같은 조건을 세웁니다.
창세기 20장을 보면, 아브라함과 사라는 애급에 갔을 때와 똑같이 다시 남매로 위장하여 그랄 왕국에 갔는데, 아비멜렉 왕도 여자를 좋아해서 사라를 취하려고 합니다. 아비멜렉 왕이 ‘너희들 사이는 어떤 관계냐?’고 묻자 아브라함 부부는 ‘우리는 남매지간이다.’고 했습니다(1~2절).
그 말을 듣고 아비멜렉 왕이 사람을 보내 사라를 데려갔는데,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여 경고합니다. 창세기 20장 3절에 ‘네가 취한 이 여인으로 인하여 네가 죽으리니 그가 남의 아내임이니라.’ 하며, 아비멜렉 왕에게 사라를 취하면 죽는다는 경고를 했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에 아비멜렉 왕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부부라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돌려보냅니다.
아브라함의 부인 사라가 1차 상징헌제 때와 마찬가지로 정조를 지킴으로써 아담가정에서 해와가 잘못해서 종인 천사장에게 정조를 빼앗기고 남편을 타락시킨 것을 탕감복귀했다는 조건이 세워집니다.
또 노아가 부인과 자녀와 동물을 데리고 사탄 편 세계를 상징하는 땅에서 하나님 편 세계를 상징하는 방주에 들어간 것처럼 아브라함은 부인과 조카 롯과 재물을 들고 사탄세계인 그랄 왕국에서 하늘세계인 가나안으로 들어감으로써 노아가정의 입장을 탕감복귀했다는 조건이 세워집니다.
아브라함은 그와 같은 승리의 조건을 세워서 비로소 이삭 번제를 드리기 위해서 모리아 땅으로 갑니다.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에서 번제를 드리기 위해 3일 노정을 갔습니다(창세기 22장 4절).
이삭 헌제
창세기 22장 3절 이하를 보면, 아브라함이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얹고 두 사환과 함께 아들 이삭을 데리고 3일 동안 모리아 산을 찾아갑니다. 3일 동안 새 출발을 위한 사탄분립 노정을 걸은 것입니다.
3일째 되는 날 멀리 목적지가 보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거기에서 두 사환을 떼어놓고 번제에 쓸 나무는 아들에게 짊어지우고 자신은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부자 두 사람이 동행합니다. 그런데 이삭이 뒤돌아보면서 ‘아버지!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7절)하고 묻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8절)고 대답합니다.
거기에서 아브라함이 충격을 받아 ‘하나님의 뜻이고 뭐고 내가 너를 죽일 수 없다.’고 했다면 사탄이 바라고 원하는 목적은 이루어지고, 하나님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인정(人情)을 버리고 천정(天情)을 택했습니다.
이삭은 제물도 없이 가는 데다가 아버지가 식음을 전폐하고 고민하는 것을 보고 제물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라는 것을 이미 알았을 것입니다. 이삭이 뒤돌아서서 ‘아버지! 제물이 어디 있습니까?’하는 말은 ‘아버지 제가 제물인 것을 아니까 한시라도 고민하지 말고 갑시다.’하는 뜻이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신 곳에 이르러 아브라함이 이삭을 묶어서 제단 나무 위에 올려놓고 칼을 들어 내리치려고 합니다(9~10절). 사탄을 분립하는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을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12절)하면서 칼을 거두도록 합니다. 하나님이 이삭 번제를 저지하신 것입니다.
사탄은 ‘아브라함이 백 살에 얻은 자기 자식을 차마 죽이겠느냐?’ 생각했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내 자식을 번제하라고 하셨는데, 진짜 죽이라는 건 아니겠지?’ 하거나 이삭이 ‘아버지가 설마 나를 죽이겠느냐?’ 했다면 사탄분립이 안 됩니다.
아브라함은 절대적인 믿음(충성심)으로 이삭을 번제하고, 이삭은 절대적인 믿음(순종심)으로 제물이 될 것을 결심했습니다. 거기에서 사탄이 분립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탄이 분립되는 순간 아브라함에게 칼을 거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이 당신의 말씀을 절대 믿고 절대 순종하자 이삭을 죽이지 않고 살렸습니다. 사탄이 분립됐기 때문에 죽일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할 줄을 아노라.’(12절)고 했습니다. ‘이제야’라는 말에는 상징헌제의 실패에 대한 책망과 지극히 하기 어려운 이삭 헌제의 성공에 대한 기쁨이 들어있습니다.
이삭 헌제 성공의 결과
이삭 헌제에 성공했을 때 아브라함은 상징적으로 죽었고, 이삭은 부활한 아브라함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입장에서 100세에 얻은 자식을 죽인다고 하는 것은 자신이 죽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하는 것은 자기의 죽음을 상징합니다. 또 이삭이 살아난 것은 아브라함의 부활과 같은 뜻입니다.
아브라함을 애벌레라고 한다면, 잠시 번데기로 변신했다가 허물을 벗고 성충(成蟲)으로 변태 한 것이 이삭입니다. 결국 아브라함과 이삭은 부자(父子)지만 한 몸입니다. 거기에서 사탄이 완전히 분립되었기 때문에 사탄이 떠난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은 믿음의 기대의 중심인물로 상징헌제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삭을 중심한 믿음의 기대
이삭을 중심한 믿음의 기대의 중심인물은 이삭입니다. 이삭이 중심인물이지만 사실은 아버지와 같이 협력했습니다.
창세기 22장 13절을 보면, 아브라함과 이삭 부자가 하나 되어 수풀에 뿔이 걸려 허우적거리는 숫양 한 마리를 잡아 아들 대신 번제로 드리고 모리아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상징헌제에 실패했지만 이삭헌제를 통해서 다시 상징헌제를 드릴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습니다.
이삭을 중심한 믿음의 기대에서 조건물은 바로 숫양입니다.
원래 믿음의 기대는 아브라함이 중심이 되어 이뤄져야 하는데, 아브라함이 비둘기를 쪼개지 않음으로써 이삭까지 연장된 것입니다. 이삭을 중심한 믿음의 기대가 조성됐기 때문에 다음에는 실체기대를 세워야 합니다.
2) 실체기대
아담에서 노아를 거치고, 노아로부터 아브라함 대에 이르러 아브라함이 믿음의 기대의 중심인물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3제물을 상징헌제로 드려서 성공했으면 이스마엘과 이삭이 장자와 차자로서 탕감복귀를 실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헌제에 실수함으로써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사탄이 침범했습니다.
다시 사탄을 분립하기 위해서 이삭번제를 하게 되고, 아브라함은 이삭과 같이 죽음의 자리에 갔다가 사탄을 분립하는데 성공하여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실체기대의 중심인물이 되지 못합니다. 이미 제물이 되었기 때문에 다시 중심인물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삭의 쌍둥이 아들 중에서 동생 야곱을 중심하여 형 에서를 굴복시킴으로써 실체기대를 세우게 됩니다.
(1) 중심인물 : 야곱
아브라함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의 실체기대에서 중심인물은 야곱입니다.
아담의 아들인 가인과 아벨 중에서 가인이 아벨을 죽였고, 노아가정에서는 함이 실수했기 때문에 실체기대를 이루지 못한 채 다시 10대를 거쳐서 아브라함 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아브라함이 책임을 다했으면 이스마엘과 이삭이 실체기대를 세웠을 것인데 아브라함의 제물 실수로 이삭이 제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이삭이 하나되어 믿음의 기대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이미 제물이 되었기 때문에 실체기대를 세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삭의 아들인 에서와 야곱을 중심해서 실체기대를 세웁니다. 노아부터 아브라함까지 10대, 노아부터 아브라함과 이삭을 거쳐 야곱까지가 12대입니다. 야곱은 열 두 아들을 중심하여 노아부터 야곱까지의 종적인 12대를 횡적으로 탕감복귀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차자인 야곱이 실체기대의 중심인물이 됩니다.
야곱은 중심인물이 되기 위해서 먼저 아담가정에서 아담이 잃어버린 삼대축복을 찾아와야 합니다. 거기에서 중요한 것은 장자기업(長子基業)의 복귀입니다. 하나님은 에서와 야곱, 두 사람을 놓고 아담가정이 잘못한 전체 역사를 탕감복귀하려고 했습니다.
개인 복귀
야곱은 쌍둥이인데 에서가 형님이고, 야곱은 동생입니다. 에서는 몸이 건강하고, 목소리도 우렁차고, 몸에 털도 많고, 사나이다웠습니다. 그는 활을 가지고 들에서 사냥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반면에 야곱은 몸이 연약하지만 지혜로웠습니다. 그는 언제나 부엌에서 일하는 어머니 리브가를 도왔습니다.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해서 에서를 사랑했고, 리브가는 자기를 도와주는 야곱을 사랑했습니다.
창세기 25장 29절에서 34절을 보면, 에서와 야곱은 장자기업을 놓고 싸웁니다. 어느 날 야곱이 팥죽을 쑤었는데, 들에서 돌아온 에서가 몹시 배가 고파서 야곱에게 팥죽을 달라고 합니다. 그때 야곱이 ‘장자의 명분을 내게 팔면 팥죽을 주겠다고.’고 합니다. 에서가 ‘내가 죽게 되었으니 장자의 명분이 배고픔을 면하는 것보다 중요하겠느냐?’하고 야곱의 요청을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진지했습니다. 그것을 맹세하라고 합니다. 그것은 농담 같지만 천지가 개벽할 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 동생 야곱의 요구대로 맹세하고 떡과 팥죽을 얻어먹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떡과 팥죽이지만 그것은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동생 야곱이 형 에서에게 형이라는 소리를 듣는 바람에 사탄이 처음으로 하나님 앞에 굴복하는 조건이 되었습니다. 동생 야곱은 형 에서로부터 개인적으로 장자기업을 복귀해 왔습니다.
가정복귀
개인적으로 장자기업을 복귀한 야곱은 이제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정식으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창세기 27장을 보면, 나이가 든 아버지 이삭은 눈이 어두워져서 잘 보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이삭이 장자 에서를 불러놓고 속삭이는 소리를 어머니 리브가가 들었습니다. ‘내가 이제 늙어 언제 죽을 지 모르니 네가 나를 위하여 사냥을 해다가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오면 내가 마음껏 먹고 너에게 축복을 해주마.’(2~4절)하는 얘기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에서는 신이 나서 활을 들고 사냥을 하러 들로 갔습니다.
한편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불러 ‘네 부친이 네 형 에서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내가 들으니 이르시기를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가져다가 별미를 만들어 나로 먹게 하여 죽기 전에 여호와 앞에서 네게 축복하게 하라 하셨으니 너는 염소떼에 가서 염소의 좋은 새끼를 잡아오면 내가 네 부친을 위하여 그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리니 네가 그것을 갖다드려 부친이 돌아가시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해 잡수시게 하라.’(6~10절)고 했습니다.
야곱은 그 말을 듣고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워졌습니다. 에서는 앞을 잘 못 보지만 음성은 구분할 수 있고 손을 만져보면 에서는 털이 있고, 야곱은 털이 없으니까 에서가 아닌 줄 압니다. 그래서 야곱이 리브가에게 ‘내 형 에서는 털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 즉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찐대 내가 아버지께 속이는 자로 뵈일찌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11~12절)하고 근심을 털어놨습니다.
리브가가 그 말을 듣고 ‘저주를 받으면 그것을 내게로 돌려라. 너는 걱정 말고 내 말만 따라 염소새끼를 잡아오라.’고 이릅니다. 야곱이 염소새끼를 잡아오자 리브가는 이삭이 즐기는 별미를 만들었습니다.
야곱이 음식을 가지고 이삭을 찾아가기 전에, 리브가는 염소새끼의 가죽으로 야곱의 매끈매끈 손과 목을 감싸고, 맏아들의 옷을 찾아 야곱에게 입혀주었습니다(15~16절).
야곱이 음식을 들고 이삭에게 가서 ‘내가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19절)하고 음식을 드렸습니다. 이삭이 들으니 야곱의 목소리였습니다. 이삭이 이상해서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하고 묻자, 야곱이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적(順適)히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20절)하고 대답했습니다.
이삭이 그 말을 듣고 야곱을 가까이 불러 목도 만져보고 손도 만져보았습니다. 이삭이 만져 보니 몸에 온통 털이 있었습니다. 이삭이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하며 야곱을 축복해 줍니다(22~23절).
이삭이 정말로 염소 털과 자기 아들의 털을 구분하지 못한 것이냐? 이삭은 알았지만 야곱이 축복을 받고 싶어 하는 간절한 마음을 알았을 것입니다.
하나님 편에 있는 이삭은 둘째아들 야곱이 하나님 편인 것을 알면서도 사탄이 있기 때문에 곧바로 축복을 해주지 못했습니다. 야곱의 축복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아버지보다 더 간절하다는 것을 조건으로 해서 축복을 해주는 것입니다. 사실 복을 주어도 그 복을 간직할 수 없는 사람에게 주면 오히려 사탄이 침범하기 더 쉬워집니다. 야곱은 그것을 알았고, 아버지보다 더 간절하게 축복을 원했던 것입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을 다 해준 다음에 에서가 집으로 돌아와 사냥한 고기를 잡아서 요리를 해왔습니다. 에서가 이삭에게 ‘아버지! 고기를 잡수시고 축복해주십시오.’ 하니까 이삭은 에서에게 ‘야! 이놈아! 너는 복을 몇 번이나 받으러 다니느냐?’고 책망합니다.
에서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얼마 전에는 동생 야곱이 떡과 팥죽으로 형의 자리를 빼앗아간 일이 떠올랐습니다. 오늘 또 아버지의 축복을 빼앗아간 사실을 알고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에서는 몇날 며칠이 지나도 화가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동생을 찾아 죽이려고 했습니다(30~41절).
에서가 동생 야곱을 죽이려고 한다는 사실을 안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숨겨놓고 있다가 결국에는 친정집으로 피신을 보냈습니다. ‘형이 아무리 봐도 너를 만나면 죽일 것 같으니 형이 화가 풀릴 때까지 외삼촌 집에 피신하라.’(42~45절)고 했습니다.
야곱이 어머니의 말을 따라서 하란에 사는 외삼촌 라반에게로 갔습니다. 오늘날 같으면 도로가 있고 자동차가 있지만, 그 때에는 그런 것이 없기 때문에 야곱은 산길, 오솔길을 가다가 밤이 되면 돌베개를 베고 누워서 찬송하며 잠을 잤습니다(창세기 28장 11절).
창세기 29장을 보면, 야곱이 외삼촌댁에 도착하여 한 달이 되도록 외삼촌 라반에게 무엇 때문에 왔는지, 언제까지 있을 것인지, 말을 안 하니까 외삼촌이 답답하여 야곱을 불러 물었습니다. ‘네가 비록 나의 생질이나 어찌 공으로 내 일만 하겠느냐? 무엇이 네 보수겠느냐? 네게 고하라.’(15절)고 말입니다.
야곱은 ‘외삼촌의 두 딸 레아와 라헬 가운데 둘째 딸 라헬을 사랑합니다. 그를 위하여 7년을 봉사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외삼촌이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하면서 허락했습니다. 그때부터 야곱은 7년 간 종살이를 하면서 착실하게 약속을 지켰습니다(16~24절).
드디어 7년이 되어 야곱은 라반에게 가서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네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라반은 두말 않고 잔치를 베풀어 결혼식을 올려주고 첫날밤을 치르게 해주었습니다(21~23절).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신부는 둘째 딸 라헬이 아니라 첫째 딸 레아였습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을 찾아가서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께 봉사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찜이니이까?’하고 따졌습니다. 라반이 말했습니다. ‘형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니라. 이를 위하여 7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그를 위하여 또 7년을 내게 봉사할찌니라.’(23~27절)고 약속했습니다.
7일이 지나 라반이 둘째딸 라헬을 야곱에게 주었고, 그 대가로 야곱은 다시 7년 동안 라반에게 봉사했습니다.(28~30절).
레아는 첫째부터 넷째 아들까지 아들 넷을 낳고 생산을 멈추게 됩니다(32~35절).
창세기 30장을 보면, 라헬은 자식을 낳지 못하자 자기의 몸종 빌하를 야곱에게 첩으로 주었습니다. 빌하가 야곱에게서 단과 납달리를 낳았습니다(3~8절).
그러자 레아가 자기의 출산이 멈춤을 보고 시녀 실바를 야곱에게 주었습니다. 레아의 시녀 실바가 야곱에게서 아들 갓과 아셀을 낳았습니다(9~14절).
그 후 하나님은 생산을 멈추었던 레아에게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낳게 하십니다(16~21절). 라헬은 하나님이 뒤늦게 태를 열어주셔서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 요셉을 낳고(22~24절), 임종이 가까워져 산고를 겪은 다음 야곱의 막내아들 베냐민을 낳고 죽습니다(창세기 35장 16~18절).
그러다 보니 야곱에게 부인이 모두 네 명이나 생겼습니다. 야곱은 레아(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블론), 라헬(요셉, 베냐민), 실바(갓, 아셀), 빌하(단, 납달리)와의 사이에 총 12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야곱은 하란 땅에 가서 가정을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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