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본체론 - 후편 - 제4장 아브라함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 - 1

2013. 1. 6. 20:24참사랑 영원까지/원리 본체론

제4장 아브라함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   

 

아브라함가정은 아담가정이나 노아가정과는 다릅니다.

아담가정의 메시아를 위한 기대에서 중심인물은 하나님 편에 있는 아담의 둘째아들 아벨이었고, 노아가정에서는 중심인물이 노아였습니다. 아벨은 타락한 아담을 대신하여 하나님 편에 세운 차자이고, 노아는 아담의 셋째아들 셋의 후손으로 하나님 편 혈통입니다.

 

                                서론             

 

노아가정에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실패했기 때문에 복귀섭리는 아브라함가정으로 옮겨갑니다. 아담가정, 노아가정, 아브라함가정까지 가정을 중심한 섭리는 3차에 걸쳐서 완결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는 아담가정이나 노아가정과 다른 면이 있습니다.

 

함의 타락 행위로 인해 노아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창조목적을 완성하겠다는 뜻을 절대적인 것으로 예정하고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120년 동안 방주를 지으면서 하나님을 대하여 충성했던 그 심정의 터전 위에 하나님은 사탄이 가장 사랑하는 우상 장사 데라의 아들 아브라함을 불러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를 다시 하시게 됩니다.

 

                    1. 메시아를 위한 기대

 

아브라함가정은 아담가정이나 노아가정과는 다릅니다. 아담가정의 메시아를 위한 기대에서 중심인물은 하나님 편에 있는 아담의 둘째아들 아벨이었고, 노아가정에서는 중심인물이 노아였습니다. 아벨은 타락한 아담을 대신하여 하나님 편에 세운 차자이고, 노아는 아담의 셋째아들 셋의 후손으로 하나님 편 혈통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때에 와서 하나님은 이전과는 달리 사탄이 가장 사랑하는 가정을 택하시고 그 가정에서 장자를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우상(偶像)을 만들어 파는 데라의 장자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편 혈통이 아니고 사탄 편 장자입니다.

 

이전까지 하나님은 모두 차자를 중심한 섭리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가정에서는 차자가 아니고 장자를 불렀고, 하나님과 전혀 상관이 없는 사탄의 실체, 즉 사탄이 가장 사랑하는 우상 장사 데라의 장남을 부른 것입니다. 그것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사랑한 장자 아담을 사탄이 취해 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탕감복귀 원칙에 따라서 3대째에 와서 사탄이 사랑하는 장자를 취해 와서 뜻을 이루려고 하신 것입니다.

 

가정을 중심한 섭리는 3수를 거쳐서 완성되기 때문에 아담가정에서 잃어버린 전체를 노아가정을 거쳐 아브라함가정에서 모두 찾아와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상 장사 집안에서 차자가 아닌 장자를 중심인물로 내세우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가정에서 믿음의 기대의 중심인물은 아브라함입니다.

조건물은 비둘기·양·암소의 3대 제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편과 사탄 편을 분립하기 위해 비둘기·양·암소를 둘로 쪼개야 합니다.

 

아브라함가정에서 실체기대의 중심인물은 이삭 또는 야곱입니다. 실체기대의 중심인물은 차자가 됩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100세 때 낳은 자식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식을 낳지 못해서 언제나 조카 롯을 데리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100세 때 부인 사라에게서 이삭을 얻었습니다. 사라는 이삭을 낳기 전 아브라함이 자식을 간절히 원하므로 자기의 몸종 하갈을 남편에게 줍니다. 아브라함과 하갈 사이에서 난 자식이 장자 이스마엘입니다. 나중에 사라가 자식을 낳았는데, 그가 차자 이삭입니다.

 

실체기대의 중심인물은 마땅히 차자인 이삭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제물을 드릴 때 비둘기를 둘로 쪼개지 않은 실수를 범하여 이삭은 제물이 되고, 야곱이 가정의 이상을 이루게 됩니다. 따라서 믿음의 기대는 중심인물은 아브라함이고, 실체기대의 중심인물은 이삭 또는 야곱이 됩니다.

 

        1) 믿음의 기대

 

(1) 중심인물 : 아브라함           

 

아브라함가정에서 믿음의 기대의 중심인물은 아브라함입니다. 아담가정에서 실패한 것은 노아가정이 탕감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담가정에서 있었던 일을 노아가정에서 재현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은 하나님 말씀을 절대 믿고 실천하여 완성하여야 하는데 말씀을 불신하고 타락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가정의 불신을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노아에게 방주를 산에다 짓도록 하셨습니다. 믿을 수 없는 자리에서 믿음을 찾는 섭리를 하신 것입니다. 또 아담이 벌거벗고 있던 것처럼 노아도 벌거벗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것은 노아가정에서 아담가정의 실패를 탕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가정은 노아가정도 탕감복귀하고, 아담가정도 탕감복귀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가정은 앞의 두 가정을 모두 탕감복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타락한 이후 10대를 거쳐서 1600년이 지나 하나님은 노아를 불렀습니다. 당시에는 사람의 수명이 무척 길었습니다. 아담은 930년을 살았습니다. 보통 900년 이상을 살았으니, 10대면 9000년이 넘습니다. 그렇게 인간의 수명이 길면 하나님 섭리가 지금도 아담가정권으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섭리를 단축하기 위해 조건을 세워 넘어갑니다. 아담부터 노아까지 10대를 거쳤는데, 1대를 160년으로 하여 1600년이 된 것입니다.

 

160년은 40수를 중심한 사위기대입니다. 아담이 완성하면 40수의 수리적 실체가 됩니다. 거기에 사위기대의 4수가 입체적으로 되면 160수가 나옵니다. 그래서 160년을 1대로 잡은 것입니다. 160년은 실제적인 나이와는 상관없이 사위기대를 모두 완성하는 기간입니다. 1대 160년을 기점으로 10대를 거치니까 1600년이 된 것입니다.

 

10수는 귀일수(歸一數)입니다. 그러므로 10대는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노아는 아담이 이루지 못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고 10대 만에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10대 만에 노아를 불러서 40일 홍수심판을 했습니다. 노아는 120년 동안 방주를 지었기 때문에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실체기대의 중심인물로 차자인 함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함이 실수함으로써 다시 10대를 연장해서 400년 만에 아브라함을 세웁니다.

 

400년은 40일 홍수심판의 하루를 1년으로 쳐서 400년이 된 것입니다. 40일 가지고는 1대가 안 되기 때문에 40일이 40년이 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1대의 수명도 40년으로 단축됩니다. 하루가 1년으로 바뀌어서 1대가 40년인데, 10대니까 400년입니다.

하나님은 노아부터 10대를 거쳐 400년 만에 아브라함을 부릅니다. 아브라함은 제1의 믿음의 조상 노아부터 10대를 지나 제2의 믿음의 조상이 됩니다. 그때에는 아브라함이 차자가 아니라 장자였습니다. 그것이 아담가정, 노아가정과 다른 점입니다.

 

창세기 1장 28절을 보면, 하나님은 아담에게 ‘생육하고 번식해서 땅에 충만하라.’는 삼대축복을 주었습니다. 창세기 9장 7절을 보면, 하나님은 노아에게도 똑같이 삼대축복을 해주었고, 창세기 12장 2절을 보면, 아브라함에게도 똑같이 삼대축복을 주었습니다. 가정을 중심한 섭리가 아담·노아·아브라함 3대에 걸쳐서 완성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귀섭리의 중심으로 세우기 위해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아브라함은 당시 나이가 많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 입장인데 하나님은 그를 불러서 고향을 떠나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젊었을 때는 고향을 떠나지만, 나이가 들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고향에서 살다가 죽는 것이 인생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정반대로 고향을 떠나라고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아들 아브라함과 하란의 아들인 손자 롯을 데리고 갈대아 우르(이라크)를 떠나 가나안으로 가다가 하란(시리아) 땅에 머물렀습니다(창세기 11장 31절). 그 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조카 롯을 데리고 부인과 함께 정든 땅인 하란을 떠나 마침내 가나안땅으로 들어갑니다(창세기 12장 4~5절).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한 노아와 같은 길을 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간 노정은 노아가 120년 동안 방주를 지은 것과 같습니다.

 

아담가정의 입장                 

 

아브라함가정은 아담가정의 잘못을 탕감합니다. 창세기 12장 10절에서 20절까지를 보면, 아브라함은 기근이 들어 곡식을 구하러 애급에 들어갑니다. 애급 왕을 ‘바로(파라오)’라고 합니다. 과거 왕들이 여자들을 좋아했듯이 바로도  예쁜 여자를 보면 취해 갔습니다. 아브라함의 부인 사라는 미모가 출중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애급 땅으로 가서 부부라고 한다면 바로가 사라의 미모를 보고 남편 아브라함을 죽이고 사라를 취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사라와 남매간이라고 하자며 약속하고 애급 땅으로 들어갔는데, 바로의 대신들이 사라를 바로 앞으로 데려갑니다. 그러자 바로는 자신의 궁으로 사라를 들여 취하려고 합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은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립니다. 바로는 사라를 취하지 못하고 아침이 되어서 아브라함을 불러서 ‘네가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대접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느냐?’(창세기 12장 18절) 하고 아브라함을 책망합니다. 그러고 나서 아브라함에게 아내와 소유물을 다 돌려주며 보냅니다.

 

아브라함의 부인 사라가 바로에게 가서도 자신의 몸을 지키고 돌아왔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왕이 가지고 있는 금은보화와 부귀영화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정조를 지킨 것이 귀하다는 말입니다. 보통 여자 같으면 ‘우리 남편은 형편이 없는데, 왕이 가지고 있는 금은보화가 모두 나의 것이 되니 왕비가 되어 아예 왕궁에 눌러 살자.’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라는 금은보화와 왕관이 문제가 아니고, 정조를 지키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습니다.

 

왕이 왕권으로 강제로 취하려고 할 때 사라가 스스로 정조를 지켜야겠다고 굳게 결심하고 행동하니까 하나님이 지켜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사라가 살아서 할 수 있는 인간책임분담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할 수 있는 일을 다해놓고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 하나님이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상이 아브라함가정의 아담가정을 탕감복귀하는 노정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담을 상징했고, 사라는 해와를 상징했고, 바로는 천사장을 상징했습니다. 아담과 해와는 남매와 같이 컸습니다. 그런데 해와가 남편이 되어야 할 아담이 아니라 종인 천사장에게 끌려가 정조를 빼앗겼고, 그 후에는 아담까지 타락시켰습니다. 그러나 사라는 아브라함의 부인으로서 남매의 입장이 되어 애급 땅에 들어가서 바로에게 정조를 빼앗기지 않고 돌아왔습니다. 아담가정에서 해와가 하지 못한 사랑의 질서를 복귀하여 돌아온 것입니다.

 

노아가정의 입장

 

아브라함가정은 노아가정의 실패도 탕감합니다. 노아는 120년 동안 방주를 지어서 부인과 자녀와 동물을 방주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노아가정은 자신이 살고 있는 땅을 떠나 방주로 들어간 것입니다. 땅은 사탄세계를 상징하고, 방주는 하늘세계를 상징합니다. 땅에서 방주로 들어갔다는 말은 사탄세계에서 하늘세계로 옮겨갔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부인과 조카 롯을 데리고 애급에서 가나안으로 들어갑니다. 애급은 사탄세계를 상징하고, 가나안은 하늘세계를 상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급에서 가나안으로 갔다는 말은 노아가 땅에서 방주 안으로 들어간 것과 같은 입장을 취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아담가정의 입장을 탕감복귀한 데 이어 노아가정의 입장을 탕감복귀합니다.

 

(2) 상징헌제

 

하나님은 아담가정의 입장과 노아가정의 입장을 탕감복귀한 아브라함을 비로소 믿음의 기대의 중심인물로 확정하고 3제물로 상징헌제를 드리도록 하셨습니다.

 

3제물의 뜻

아브라함이 상징헌제로 드린 3제물은 3단계로 완성하는 천주를 상징합니다. 아담이 소생·장성·완성 3단계를 거쳐 완성해야 하는데, 도중에 타락했습니다. 그래서 노아가정에서도 방주를 3층으로 지었습니다. 방주는 3단계로 완성하는 신천주(新天宙)를 상징합니다.

 

아브라함가정에서는 비둘기·양·암소 등 3제물을 놓고 제사를 드립니다. 3제물은 3단계로 완성하는 천주를 상징합니다. 아브라함이 제단위에 비둘기·양·암소를 놓고 제사를 지낸 것은 아담·노아·아브라함 3시대의 잘못을 한꺼번에 탕감복귀하기 위해서입니다.

 

3제물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이냐?

비둘기는 소생기를 상징합니다. 그것은 곧 소생구약섭리 완성자로서의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마태복음 3장 16절을 보면,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성령이 내리는 모습을 비둘기가 내려앉는 것으로 묘사했습니다. 예수님을 비둘기로 비유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17절에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소생구약섭리의 완성자라는 뜻입니다.

 

아무 동물이나 제물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비둘기가 3대제물의 하나가 된 것은 주인과 아주 가깝게 지내고, 평화를 상징하며,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둘기는 알을 꼭 두 개만 낳는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둘기는 특별한 제물이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양은 장성기를 상징합니다. 그것은 곧 장성신약섭리 출발자로서의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장성신약섭리의 출발자라는 뜻입니다.

비둘기는 소생기의 상징으로 소생구약섭리시대의 완성자를 의미하며, 양은 장성기의 상징으로 장성신약섭리의 출발자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소생구약섭리시대의 완성자로 와서 장성신약섭리의 출발자로서 장성신약섭리를 걷다가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양이 3대제물의 하나가 된 것은 온순하고 털도 주인에게 주고, 뼈도 주인이 삶아먹게 하는 순종의 미덕을 갖춘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양은 잡을 때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죽습니다. 보통 돼지나 개를 잡으면 온통 난리가 나는데 양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처럼 양은 아주 온순하고, 주인의 말을 잘 따릅니다. 양떼를 몰고 다니는 것을 보면 양은 주인이 가는 대로 반항 없이 따라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이 제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암소는 완성기를 상징합니다. 그것은 곧 완성성약섭리의 주관자인 재림주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사기 14장을 보면, 암소와 완성성약섭리 시대의 관계를 알 수 있습니다.

단 지파의 후손 중에 누구도 당할 자가 없을 만큼 힘이 무척 센 삼손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딤나에 사는 블레셋 사람의 딸 중에서 한 여자를 보고 반해서 자기의 부모에게 그 여자와 결혼하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간청했지만, 그 부모는 ‘네 형제들의 딸 중에서나 이스라엘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의 딸을 아내로 취하려 하느냐?’(사사기 14장 3절)며 반대했습니다. 당시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지배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삼손을 시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했는데 그런 하나님의 뜻을 삼손의 부모가 알아차리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 삼손이 부모와 함께 딤나의 포도원에 이르렀을 때 사자 한 마리가 소리를 지르며 앞서가는 삼손의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힘이 센 삼손이 맨손으로 그 사자를 죽여서 구렁텅이에 던져놓고 집으로 돌아와서 그 사실을 부모에게 말하지 않고 사랑하는 아내에게 말하고 기뻐했습니다.

 

얼마 후 삼손이 그 여자와 결혼하기 위하여 다시 여인의 집으로 가다가 딤나의 포도원에 이르러 사자를 버린 곳에 가보니 사자의 시체를 벌떼가 에워싸고 있어서 자세히 보니 그곳에 꿀이 있었습니다. 삼손이 꿀을 손으로 떠서 먹고 부모에게도 갖가드리면서 사자의 시체에 있는 것을 가져왔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삼손이 장가를 갑니다. 그곳의 풍습에 따라 삼손이 거기에서 7일 동안 잔치를 벌이는데 동네에서 30여 명의 청년이 와서 그의 친구가 됩니다. 그 때 삼손이 그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주겠다면서 ‘잔치하는 7일 동안에 이 문제를 풀면 내가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너희에게 주고, 풀지 못하면 너희가 나에게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주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12~13절). 그러자 그들이 문제를 말하라고 해서 삼손이 문제를 냈습니다.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다 그것이 뭐냐?’(14절)하고 수수께끼를 냅니다.

 

그들이 3일을 생각해도 알 수 없었습니다. 문제를 풀려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다가 할 수 없이 삼손의 아내를 찾아갑니다. ‘네가 우리의 재산을 빼앗으려고 우리를 청한 것이 아니지 않느냐? 그렇다면 네 남편을 꾀어 답을 알아낸 다음 우리에게 알려 달라. 그렇지 않으면 너와 네 아비의 집을 불사르겠다.’(15절)고 협박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삼손의 아내가 울면서 애원합니다. ‘당신이 우리 민족에게 수수께끼를 내고 그 답을 나한테 말하지 않은 것을 보면 나를 미워하고 사랑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그것이 아니라면 나에게 알려 달라.’ 삼손이 그 말을 듣고, ‘그것을 나의 부모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는데 어찌 그대에게 말하겠느냐?’하며 거절합니다(16절). 그러자 그 아내가 잔치하는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울면서 애원하는 바람에 마지막 날 삼손이 딤나의 포도원에서 벌어진 자기의 경험을 문제로 낸 것이라고 그 비밀을 털어놓습니다.

 

삼손의 아내는 그것을 자기 민족에게 알려주었습니다. 마지막 날 해지기 전에 성읍 사람들이 삼손에게 와서 ‘무엇이 꿀보다 달겠으며 무엇이 사자보다 강하겠느냐?’며 답을 맞혔습니다. 그 말을 듣고 삼손이 ‘너희가 내 암소로 밭 갈지 아니했으면 내 수수께끼를 능히 풀지 못했으리라.’(18절)고 했습니다.

 

암소는 삼손의 부인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인간 타락의 문제를 푸는 분은 암소로 상징되는 실체 성신을 맞이한 메시아임을 예시한 것입니다. 마지막 제물 암소는 완성기의 재림주를 상징하고 완성신약섭리를 상징하는데, 성약이라는 말은 축복받는 것을 말합니다. 축복은 남자와 여자가 있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19잘 7절을 보면,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혼인잔치가 이루어지면 어린양의 시대가 끝나고 암소의 시대, 곧 메시아가 암소로 상징되는 실체 성신을 맞이하여 참부모로 등장하는 완성성약섭리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암소는 신부시대, 즉 아내시대를 상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