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본체론 - 전편 - 제1장 창조원리 - 9

2013. 1. 6. 20:58참사랑 영원까지/원리 본체론

4. 만유원력과 수수작용 및 사위기대           

 모든 존재는 반드시 관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철학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고민해온 것이 존재와 관계에 대한 문제입니다. 모든 존재는 무형이든 유형이든 간에 관계성을 갖고 존재합니다. 관계성을 정리해놓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에너지로부터 나오는 힘도 관계성에 의해 존재합니다.

 

1) 만유원력

 하나님은 모든 존재의 창조주로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스스로 계시는 절대자입니다. 하나님이 그러한 존재로 계시기 위한 근본적인 힘도 절대적입니다. 그 힘은 모든 피조만물이 존재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합니다. 그러한 근본된 힘을 만유원력(萬有原力)이라고 합니다. 출애굽기 3장 14절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유원력은 원리의 본체되시는 하나님의 형상에 속합니다.

 

존재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합니다. 만유원력은 하나님이 존재하기 위한 근본된 힘입니다. 하나님이 지어 놓은 피조만물도 존재하려면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피조만물은 자기 스스로 힘을 갖지 못하므로 힘을 발생케 하는 원인적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 힘이 바로 만유원력입니다. 그래서 모든 피조물은 만유원력에 의해서 존재합니다.

 

인간의 마음과 몸은 하나님의 성상과 형상의 실체입니다. 하나님의 성상적인 부분이 심정과 참사랑과 인격이며 신성(神性)이라면, 하나님의 형상적인 부분이 만유원력이며 능력(能力)입니다. 따라서 만유원력은 낮의 하나님, 즉 창조주인 하나님의 몸에 해당하고, 만유원력의 근본적인 힘인 심정은 밤의 하나님, 즉 하나님의 마음에 해당합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마음인 심정과 참사랑과 인격을 닮고 하나님의 몸인 원리와 법도와 질서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야 하나님이 찾아올 수 있는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에 의해서 살고 있습니다. 햇빛도, 공기도, 비도 하나님에 의해서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사는 인간인데도 하나님을 부정하고 있는 자체가 인간의 비극입니다.

 

만유원력은 하나님이 존재하기 위한 근본된 힘인 동시에 모든 피조물이 존재하기 위한 힘을 발생케 하는 원인적인 힘입니다. 결론적으로 만유원력이 없으면 하나님이 존재할 수 없고, 피조물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2) 수수작용      

 주고받는 작용을 수수작용(授受作用)이라고 합니다. 수수작용은 잘 주고 잘 받는 작용입니다. 수수작용은 만유원력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앞에 쓰는 ‘授(수)’자는 줄 수(授)자 입니다. 그리고 뒤에 쓰는 ‘受(수)’자는 받을 수(受)자 입니다. 먼저 받고 나중에 주는 것이 아니라 먼저 주고 나중에 받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질서가 있습니다. 먼저 주어야 합니다. 주고받는 것이지 받고 주는 것이 아닙니다.

 

주고받는 작용을 하려면 그렇게 만드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하는 힘의 근원이 만유원력입니다. 만유원력이 작용하려면 상대기준(相對基準)이 세워져야 합니다. 상대기준이란 말은 두 존재가 서로 주고받을 수 있도록 기대를 조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상대기준이 조성되고 만유원력이 작용하면, 성상·형상과 양성·음성이 실체화하기 위해서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창조도 당신 속에 있는 본성상과 본형상이라는 두 요소가 상대기준을 조성한 다음 만유원력에 의해 주고받아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성상과 형상이 수수작용을 하는 데는 만유원력이 중심이 됩니다.

 

상대기준이 조성되면 수수작용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주고받는 존재가 셋이 있을 때는 삼대상(三對象)을 위해서 존재하는 기대를 세워야 합니다. 그것을 삼대상기준(三對象基準)이라고 합니다. 존재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존재기대를 세우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둘이 있을 때는 간단한데, 셋이 있을 때는 셋이 맞아야 합니다.

 

상대기준의 중심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이 동기가 되고 목적이 되지만, 주고받는 힘은 만유원력입니다. 하나님 속에 있는 두 요소가 상대기준을 조성해서 만유원력에 의해서 수수작용을 하게 되면 분립되어 나옵니다. 그것이 주체와 대상입니다. 하나님 안의 성상이 주체라면, 형상은 대상입니다. 하나님 안의 양성이 주체라면, 음성은 대상입니다.

 

본체 속에 있는 두 요소가 만유원력에 의해서 분립되어 나온 실체가 주체와 대상입니다. 주체와 대상이 다시 만유원력에 의해서 상대기준을 세워 수수작용을 하면 거기에 힘이 생깁니다. 그리고 합성체가 생깁니다. 그 힘에 의해서 모든 존재는 생존하고 번식하고 작용하는 것입니다. 수수작용을 하지 않는 생존·번식·작용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 활동도 없습니다.

 

수수작용의 힘은 만유원력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힘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만유원력이고, 하나는 만유원력에 의해서 나오는 수수작용의 힘입니다. 서로 하나 되기 위해 잘 주고 잘 받는 작용을 하면서 발전과 번식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만유원력과 수수작용의 힘의 관계는 원인과 결과, 주체와 대상, 내적(內的)과 외적(外的)인 관계입니다.

 

(1) 모든 존재는 상대적 존재(상응적 존재)  

 모든 존재는 하나님 안에서 수수작용에 의해서 번식해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존재하는 것들은 전부 수수작용을 하지 않고서는 생존도, 번식도, 작용도, 활동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수수작용이 중요합니다. 모든 존재는 상응적(相應的) 또는 상대적(相對的)으로 존재하며 이 세계에 상극적인 요소는 없습니다. 모든 존재가 상대적으로 되어 있는 이유는 수수작용을 하기 위해서이며, 수수작용을 하는 이유는 발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주고받지 않으면 절대로 발전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이 다 상대적인 것만이 아니라 상극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위(上)가 있으면 아래(下)도 있고, 우(右)가 있으면 좌(左)도 있고, 전(前)이 있으면 후(後)도 있고, 남자가 있으면 여자도 있고, 부모가 있으면 자식이 있고, 전부 상대적인 개념이라고 죽 설명해 놓고, 악이 있으니까 선도 있다고 지적합니다. 악이 있기 때문에 선이란 개념을 쓸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은 틀렸습니다. 선과 악은 상대적 개념이 아니고 상극적인 개념입니다. 상극이란, 한 점에서 출발하더라도 동기와 목적과 방향이 다른 것을 말합니다.

 

상대란 말은 한 점에서 출발하되 동기와 목적과 방향이 같은 것을 뜻합니다. 일본 여자와 한국 남자는 문화가 다르고 국적도 다르지만, 사랑을 중심해서 가정을 이룬다는 하나의 목적과 이상을 가졌기 때문에 결혼해서 하나되는 것입니다.

 

선과 악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극적이기 때문에 서로 만나면 부딪치고 깨지고 파괴됩니다. 한 점에서 출발했지만 동기가 다르고, 목적이 다르고, 방향성이 다르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서로 갈라지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는 상대적 존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모든 요소도 상대적 존재입니다. 상극적인 개념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는 상극적인 요소 자체가 없습니다. 상대적 존재란 서로 응하는, 상응적 존재라는 말입니다. 모든 피조물은 수수작용을 하기 위해서 상대적으로 존재합니다. 상극적 존재는 수수작용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만나면 싸움만 벌어집니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사랑(愛)과 미(美)를 주고받습니다. 예들 들어 냉수 한 그릇을 상대에게 준다면, 보이는 것은 냉수지만 거기에는 사랑과 미가 들어 있습니다. 냉수 한 그릇에는 주는 사랑과 받는 아름다운 마음이 있습니다. 물건을 선물했다면 보이는 것은 물건이지만, 그 속에는 주는 자의 마음과 받는 자의 마음이 있습니다. 사랑과 미가 들어 있다는 뜻입니다.

 

모든 존재는 수수작용을 통해 사랑과 미를 주고받습니다. 주체는 대상에게 사랑을 주고, 대상은 그 주체로부터 오는 사랑을 받고 주체에게 정적인 힘인 미를 돌립니다. 사랑과 미를 주고받으면 기쁨이 나옵니다. 사랑 속에도 미가 있고, 미 속에도 사랑이 있기 때문에 주는 자도 기쁘고 받는 자도 기쁩니다. 주체와 대상이 이처럼 수수작용을 통해 사랑과 미를 주고받으면 기쁨이 오고 그 결과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기쁨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모든 존재는 상대적으로 존재하고 수수작용을 하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인간은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부모는 주체고 자녀는 대상입니다. 부모도 아버지가 주체이고 어머니는 대상입니다. 형님이 주체이고 동생은 대상입니다. 남편이 주체면 아내는 대상이고, 스승이 주체면 제자는 대상입니다. 상관(上官)이 주체면 부하(部下)는 대상이 됩니다. 자신이 아무리 똑똑해도 상관 아래 있을 때는 부하로서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부하가 아무리 똑똑하더라도 상관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자기의 이상이 전체 앞에 플러스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자기가 하는 것처럼 나서서 드러내면 안 됩니다. 대상은 반드시 주체를 동기로 삼아 나타나야 합니다. 대상이 동기가 되면 안 됩니다.

 

그 다음에 고용주가 있고 고용인이 있습니다. 또 정부가 있고 국민이 있습니다. 국가는 가정의 이상이 확대된 것이기 때문에 정부에서도 가정의 체제가 그대로 확대 적용됩니다. 그래서 대통령은 가정의 아버지와 같습니다. 대통령의 부인은 가정의 어머니와 같습니다.

 

장관들이 부모를 모시고 가정의 살림을 책임지는 가정의 형님들과 같습니다. 모든 국가의 일은 가정의 일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국민들이 기아에 허덕이거나 공부를 못하거나 질병으로 고생하는 것은 자기의 아들딸이 굶고 있다든가, 공부를 하고 싶은데 못 한다든가, 질병에 걸려서 고통을 당하는 것과 똑같은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국가의 주권자는 그런 심정을 가지고 국민을 돌봐야 합니다. 가정의 부모가 자식들을 생각하는 것처럼 나라의 주권자는 국민에게 심정적인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실천하는 지도자라면 국민이 그 지도자를 쫓아내거나 그가 하는 말을 싫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부모는 가정의 자식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가정을 보다 더 발전시키려는 비전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있는 지도자입니다. 대통령이 주체라면 국민은 자녀와 같은 자리, 대상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동물도 수컷과 암컷, 식물도 수술과 암술, 광물도 양과 음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어 놓은 존재세계는 소립자부터 최고의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두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상극적인 존재가 없고 전부 상대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주체 없는 대상도 없고, 대상 없는 주체도 없습니다.

 

천체에도 주체와 대상이 있습니다. 태양을 중심해서 아홉 개의 행성이 돌고 있는데 그 궤도와 질서는 영원합니다. 만일 수십 년이 지나서 우주의 질서와 궤도가 변경된다면 지구는 대변화가 일어납니다. 존재성에 대변형이 옵니다. 수억 년이 지났어도 태양계의 행성들도 변함없이 자기의 궤도를 돌고 있습니다.

 

지구는 자전도 하고 공전도 합니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돌면 1년이 되고, 자전을 하면 하루 24시간이 됩니다. 달은 지구를 중심해서 돌고 있습니다. 달의 자전과 공전에 따라서 바닷물, 조수(潮水)가 하루에 두 번씩 들어왔다 나갔다 합니다. 거대한 바닷물이 하루에 두 번씩 꼬박꼬박 만조가 되었다가 썰물이 됩니다. 여자들은 달을 대표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번씩 월경(月經)을 합니다.

 

위의 예처럼 모든 것이 상대적으로 되어 주고받습니다. 그 작용을 수수작용이라고 합니다. 우주도 수수작용을 하면서 질서를 유지하고 존재합니다. 동물과 식물도 마찬가지입니다.

 

꽃은 자기 위치를 떠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씨를 맺고 결실하기 위해서는 꽃가루받이를 해야 합니다. 식물은 스스로 움직일 수 없으니 꽃은 향기를 퍼뜨립니다. 꽃이 향기를 풍기면 벌과 나비는 향기를 따라 깊은 산속 바위틈에 피어 있는 꽃 한 송이를 찾아갑니다. 꽃은 꿀을 주고, 나비는 꿀을 빨고 이 꽃 저 꽃을 날아다니며 꽃가루받이를 해줍니다. 그것이 수수작용입니다.

 

인간도 동맥과 정맥이 있어서 서로 수수작용을 합니다. 심장에서 동맥을 통해 기능성 혈액을 조직으로 공급하고, 조직에서는 정맥을 통해 기능을 마친 혈액을 심장으로 보냅니다. 그 과정에서 혈액이 정화되는 것입니다. 피가 맑고 깨끗하면 건강한 사람이 됩니다. 수수작용이 잘 안 되면 피가 탁하고 병이 나는 것입니다. 식물도 물관과 체관이 있습니다. 물관과 체관을 통해서 서로 영양분과 수분을 주고받습니다.

 

성서를 보면,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받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태복음 7장 1~2절)고 했습니다. 내가 행한 대로 돌아온다는 말입니다. 또 마태복음 7장 12절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했습니다.

 

주지도 않고 받으려고만 하는 사람은 영원히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12장 8절에는 예수님께서 ‘내가 또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 구절들이 모두 수수작용에 대한 말씀입니다.

 

또 우리가 어떤 사물을 보고 인식하는 것도 수수작용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공책에 글씨를 쓰고 있다면 볼펜과 나의 두뇌가 수수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는 수수작용에 의해서 존재하고, 번식하고, 활동하고, 자기 의사도 표출합니다. 수수작용은 바꾸어주는 작용이 아니라 잘 주고 잘 받는 작용입니다.

 

수수작용은 이와 같이 존재의 발전 법칙입니다. 공산주의 이론은 계급투쟁으로 발전한다고 하는데, 계급투쟁은 발전 법칙이 아닙니다. 서로 만나서 싸우면 없어지고 깨지게 됩니다. 투쟁에는 발전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주의 이론은 잘못된 이론입니다. 심정을 바탕으로 한 진리가 아닙니다. 공산주의는 혁명을 하기 위한 이론이지, 인류가 그토록 염원한 진리를 추구하고 실현하기 위한 이론이 아닙니다.

 

(2) 수수작용으로 본 양심작용

 양심의 힘은 수수작용에 의해서 생깁니다. 양심은 모든 사람에게 작용하고 있으며 사람을 선(善)으로 인도합니다. 본연의 양심의 주체는 하나님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선의 본체이기 때문입니다. 양심은 선을 지향하기 때문에 그 양심이 주고받는 주체는 선의 본체인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곧 진리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 1절에서 3절에 ‘말씀이 곧 하나님이고 만물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다.’고 했으며, ‘하나님은 곧 말씀으로 계시고 말씀으로 모든 만물이 생성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진리와 하나 되어 있습니다. 말씀 자체가 곧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없지만, 하나님이 주신 진리를 통해서 원리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성경 요한복음 8장 32절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양심은 진리와 주고받습니다. 하나님과 직접 주고받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와 주고받을 때 양심의 힘은 선으로 향하게 됩니다. 양심이 진리와 주고받으면서 우리의 본심은 성장합니다. 본심은 양심을 통해서 진리와 하나 되어 성장하고 성숙되어 가는 것입니다. 인간이 완성하면 본심이 완성되고, 그때 하나님이 인간의 본심 속으로 들어가서 존재하게 됩니다. 그래서 본심을 주체라고 한다면 양심은 대상입니다. 본심이 성상이라면 양심은 현상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본연의 자리에서 진리와 수수작용을 하지 못합니다. 진리는 하나님과 일체가 되었지만,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거짓을 진리라고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타락한 인간이 진리라고 잘못 생각하는 것을 양심은 진리인 줄 알고 대하다 보면 양심이 지향하는 선도 때로는 방향이 삐뚫어지게 됩니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양심대로 살고 있으니 선한 사람이다.’하는 생각을 하더라도 그것으로 온전히 선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 스스로가 진리의 근본을 잃어버린 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연의 인간의 양심작용과 타락한 인간의 양심작용은 다릅니다. 원리본체 안에 들어가면 진리의 본체를 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