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본체론 - 전편 - 제1장 창조원리 - 11

2013. 1. 6. 20:55참사랑 영원까지/원리 본체론

5. 창조목적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알아야 인간이 삶의 목표를 올바로 세울 수 있습니다. 앞에서 밝힌 것처럼, 하나님의 창조는 먼저 목적을 두고 구상하시고 그 구상에 따라 설계하신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설계도에는 성상과 형상, 양성과 음성의 이성성상이 들어 있고, 거기에는 전개된 상대적 관계와 사위기대 등 존재의 정적(정적(靜的)인 측면이 들어 있고, 수수작용·정분합작용 등 동적(動的)인 측면이 들어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원리본체의 자기전개(自己展開)인 동시에 완성을 향한 피조물의 표준입니다.

 

1) 창조의 동기와 목적           

 창조의 동기와 목적을 구분해야 합니다. 동기가 없이는 목적이 세워지지 않습니다. 또 목적이 있다는 말은 동기가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에도 동기가 있고, 목적이 있습니다. 무조건 만들다 보니까 피조세계가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피조세계는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닙니다.

 

(1) 창조의 동기

 하나님의 창조의 동기는 심정입니다. 심정을 동기로 해서 창조가 이루어졌습니다. ‘원리강론’에서는 심정이 동기화 되었다고 창조의 동기를 설명합니다. 심정은 하나님의 본질적 속성입니다.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가장 근본 되고 본질적인 속성이 심정입니다. 심정은 하나님의 참사랑의 뿌리이며, 인격의 핵입니다.

심정이란 대상을 사랑하면서 기뻐하고자 하는 억제할 수 없는 정(情)의 충동심입니다. 정의 충동심은 주고 싶고, 위하고 싶고, 사랑하고 싶어 견딜 수 없는 마음입니다. 그러니까 정의 충동심을 충족하기 위해서 대상을 창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실체 대상이 나타나면 사랑도 실체적으로 영원하게, 기쁨도 영원하게 나타납니다. 실체는 영원성을 갖지만 무형은 순간밖에 없습니다. 만일 꿈속에서 한 여인을 좋아하고 사랑하면 그 순간을 황홀할지 모르지만 꿈을 깨고 나면 즉시 사라집니다. 죽도록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을 꿈속에서 만날 때는 무척 반갑고 좋은데, 꿈을 깨고 나면 허전해집니다. 그 원인은 대상 자체가 무형이고 실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사랑하고 싶고 기쁘고 싶은 억제할 수 없는 정의 충동심이 있는데, 그것을 실현하려고 반드시 실체가 있어야 합니다. 실체가 없으면 하나님도 사랑과 기쁨을 실감할 수가 없습니다. 실체가 있어야 하나님은 사랑하면서 기쁘고, 대상은 사랑받으면서 기쁘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주는 주체는 사랑하면서 기쁘고, 사랑을 받는 대상은 사랑받으면서 기쁩니다. 사랑을 했을 때 주체에게 돌아가는 것은 대상이 주는 기쁨입니다. 심정은 사랑하면서 기뻐하고자 하는 정의 충동심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억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창조가 시작된 것입니다.

심정이라고 한 단어로 표현하지만, 심정에는 네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자녀의 심정·형제의 심정·부부의 심정입니다. 그 심정들이 성숙하는 것입니다. 자녀가 있을 때 부모가 되는데, 자녀를 낳기 위해서는 먼저 부부가 되어야 합니다.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아들딸 자리를 거쳐야 하고, 형제의 과정도 거쳐야 합니다. 자녀가 그런 과정을 통해 성장하면 다시 부부의 자리, 부모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성장과정은 그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원리본체 자체가 그런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인간도 그런 과정을 닮아서 완성해 가는 것입니다.

 

(2) 창조의 목적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목적은 기쁨입니다. 하나님은 기쁘기 위해서 대상을 창조했습니다. 그러므로 창조한 주체는 피조된 대상을 사랑하고 그 대상은 주체에게 사랑을 받으면서 기쁨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이요, 피조물의 존재목적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창조한 대상을 통해서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대상을 통해 기쁨을 느낄까요?

 

그 첫째가 닮은 대상입니다. 기쁨을 느끼려면 반드시 대상이 있어야 하는데, 주체가 기쁨을 느끼려면 그 대상이 주체를 닮아야 합니다. 하나님도 닮은 대상을 통해 기쁨을 느끼십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창세기 1장 27절)고 한 성서에도, 닮은 대상을 통해 기쁨을 느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이 나타나 있습니다.

 

둘째는 선(善)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은 선의 본체이기 때문에 그 대상은 반드시 선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4장 20절에 ‘그날에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뜯어보면 무언가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내가 너희 안에, 너희가 내 안에 있다,’고 했으니, ‘내가 하나님 안에 있다.’고 하려면 ‘하나님도 내 안에 있다.’고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일체성의 문제를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자신은 아들로서 아버지 안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아버지가 온전한 인간의 실체를 지니기 위해서는 남자만으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참된 아버지와 어머니의 실체로 지어놓은 아담·해와가 완성했을 때 하나님의 실체도 완성됩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하나님은 완성한 실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일체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창조이상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완전(完全)한 대상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니 대상도 완전해야 기쁨을 느낍니다. 마태복음 5장 48절에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심정의 대상입니다. 심정은 하나님의 본질적 속성이기 때문에 그 대상도 같은 심정을 지녀야 합니다. 그 심정이 창조의 동기입니다. 심정은 사랑하고 싶고 기뻐하고자 하는 억제할 수 없는 정의 충동심이기 때문에 창조의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 대상도 같은 심정으로 창조성을 지녀야 합니다. 심정의 대상이 되면 창세기 1장 28절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3대축복을 이루게 됩니다.

 

하나님을 닮은 대상·선의 대상·완전한 대상·심정의 대상 이 네 가지의 조건을 갖추지 않는 한 그 대상은 창조주인 하나님 앞에 온전한 기쁨의 대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 또 자녀로서 부모 앞에서도 기쁨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도 그렇습니다.

모든 관계가 하나님의 질서적인 법도에서 이루어진 실체이기 때문에 그 실체는 이 네 가지 조건을 갖추어 주체인 하나님에게 기쁨을 돌리며 살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의 기쁨을 위한 선의 대상      

 하나님은 창조된 대상을 통해 기쁨을 느끼기 위해 인간을 포함한 피조세계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피조물은 하나님에게 기쁨을 돌려야 합니다. 창조된 대상을 통해 기쁨을 느끼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이고, 하나님에게 기쁨을 드리는 것이 피조물의 존재목적입니다.

 

(1) 하나님의 운행,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은 사위기대 위에 운행하십니다. 하나님이 운행하시는 곳에 기쁨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기쁨을 위한 선(善)의 대상도 하나님이 운행하시는 사위기대에서 이루어집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 인간에게 하나님은 생육하고, 번성하고, 만물을 주관하라는 3대축복을 주셨습니다. 3대축복이 하나님의 뜻, 곧 하나님의 창조목적입니다.

성경 마태복음 7장 21절에는 ‘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 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했는데 지금까지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그저 십자가를 믿고 예수님을 믿으면 다 천국에 가는 줄 알고 있습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사위기대(四位基臺)입니다. 사위기대를 통해 하나님이 운행하실 수 있는 3대축복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3대축복은 생육하고(제1축복), 번성하고(제2축복), 만물을 주관하는 것(제3축복)입니다. 3대축복은 성경 창세기 1장 28절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합니다.

 

제1축복(生育)   

제1축복은 ‘생육(生育)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생육은 개성완성(個性完成)을 뜻하는데, 개성완성은 인격 완성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상을 닮아난 것이 마음이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난 것이 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닮은 마음과 몸을 지니고 나왔으니 마음도 몸도 하나님에게 기쁨을 돌리는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상 가운데 있는 심정과 참사랑과 인격을 닮은 마음이 되어야 하나님도 기뻐하십니다.

그런 마음은 없고, 시기·질투하고 남을 미워하고 원수시하고 남이 잘 되는 것을 싫어하는 마음만 있는 사람은 하나님에게 기쁨을 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우리의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 곧 본성상의 본질이 심정과 참사랑과 인격입니다. 그 심정과 참사랑과 인격이 우리 마음속에 차고 넘쳐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몸은 원리와 법도와 질서적인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과 몸을 가졌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온전히 하나님을 닮을 수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닮고 하나님이 내 속에 들어와서 사실 수 있도록 하려면 나 자신이 절대성(絶對性=絶對生殖器)을 지켜야 합니다. 심정도 절대성과 관계되어 있고, 몸도 절대성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내 마음 자체가 절대성 위에 세워져야 하고, 내 몸도 절대성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그 다음에 신인일체(神人一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서의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함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태복음 5장 48절)는 말씀은 인간의 완전성을 의미하고, ‘너희가 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린도전서 3장 16절)라는 말씀은 인간이 하나님의 성전임을 일깨워줍니다. 또 ‘그날에 내가 아버지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한복음 14장 20절) 하는 말씀은 신인일체를 의미합니다. 인간이 온전히 하나님을 닮은 모습을 갖추면 하나님이 들어가 살 수 있는 거룩한 성전이 된다는 뜻입니다. 모두가 신인일체를 의미합니다.

제1축복인 개성완성은 인간이 신성(神性), 하나님의 심정을 지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지닌 사람이 곧 천국인입니다. 그러므로 심정교육은 개성을 완성한 천국인을 만듭니다. 개성을 완성하는 첫 번째 단계인 생육은 천국사람, 하나님이 백성이 되는 것인데, 그 백성의 가장 근본적인 교육은 심정교육입니다.

심정의 완성은 절대성 위에 세워집니다. 절대성을 지키고 심정과 원리와 법도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은 천국생활을 하게 됩니다. 개성완성을 통해 하나님을 닮은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닮는다는 말은 성장기간에 책임분담을 통해 마음과 몸이 완성해가는 것을 뜻합니다. 창세기 1장 28절의 제1축복을 완성하기 위한 것이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창세기 1장 28절)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임분담의 핵심은 제1축복에 있습니다.

 

제2축복(繁殖)

제2축복은 ‘번성(繁盛)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것은 자손의 번식을 통한 가정완성(家庭完成), 곧 이상가정(理想家庭)을 이루는 것을 뜻합니다.

이상가정은 생육해서 절대성의 본체를 닮은 실체 남자와 절대성의 본체를 닮은 실체 여자가 되어 하나님에 의해 축복받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 축복은 생식기의 주인을 허락받는 것입니다.

횡적인 생식기의 주인은 상대이지만, 종적인 생식기의 주인은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절대성 생식기를 통해서 비로소 남녀가 하나 될 수 있고,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도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인일체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축복을 받고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사랑이고, 그 둘의 결혼은 하나님의 결혼이고, 그 둘이 사랑해서 태어난 아들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둘이 사랑해서 태어난 아들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둘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본질도 하나님이고, 그 요소도 하나님과 똑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이 가지고 있는 정자의 씨도 결국에 하나님의 생식기와 일체가 된 정자의 씨가 되고, 해와도 절대성 어머니의 난자를 가졌지만, 하나님 안의 절대성과 하나된 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개성을 완성한 남자와 여자입니다.

개성을 완성한 남자와 여자가 가정을 이루어 번식한 자녀를 선민(善民)이라고 합니다. 선민은 선의 세계, 즉 천국의 구성원입니다. 선민이 천국생활을 하려면 거기에 합당한 규범교육(規範敎育)이 필요합니다.

 

제3축복(萬物主管)          

제3축복은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입니다. 그것은 만물주관(萬物主管), 곧 주관성완성(主管性完成)을 의미합니다. 주관성을 완성한 선민들로 이루어진 세계가 이상세계(理想世界)입니다.

인간이 만물을 하나님과 같은 심정으로 대하면서 사랑하고 주관할 때, 비로소 제3축복이 이루어집니다. 제1축복, 제2축복과 함께 제3축복이 완성되면 선의 세계가 이루어집니다.

가정이 종족·민족·국가를 거쳐 확대된 것이 세계입니다. 선의 세계는 선민으로 구성된 가정이 확대되어 이루어진 세계입니다. 지상에서 이루어진 선의 세계가 그대로 천상까지 옮겨지면 비로소 이상세계가 실현되는 것입니다.

지상에서 이루어진 선의 세계만으로는 진정한 이상세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상세계라 부르려면 천상과 지상세계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 영역은 지상세계만이 아니라 천상세계를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이상세계는 곧 천국(天國)입니다. 천국도 지상과 천상을 포함하기 때문에 지상천상천국(地上天上天國)입니다. 그 세계를 ‘천일국(天一國)’이라고 합니다. 천일국은 두 사람이 하나된 가정을 단위로 이루어진 세계입니다.

한 가정의 구성원이 확대된 것이 세계와 천주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믿고 의지하고, 자식이 부모를 믿고 의지하고, 형님과 동생이 서로 믿고 의지하는 모델 가정이 천주의 중심이고 핵이 됩니다. 그런 가정을 확대하면 곧 이상세계가 되고 천일국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의 구성원이 그런 것처럼 단체를 이루고 사는 사람들은 어디에 가든지 그 자체에 규범이 있고, 질서가 있어서 그 규범과 질서를 지켜야 온전히 하나될 수 있습니다. 그런 세계에서는 기술도 필요하고, 지식도 필요하고 체력도 필요합니다. 규범교육과 함께 기술교육·지식교육·체육교육도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3대축복 중의 축복, 축복결혼

 3대축복 중에서 가장 중요한 축복은 축복결혼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절대성 위에서 하나님을 닮은 마음과 몸을 지닌 실체가 되면, 그들 스스로 생식기의 주인을 결정하지 않고 하나님이 생식기의 주인을 허락하게 됩니다. “아담이 지닌 생식기의 주인은 해와다. 해와가 지닌 생식기의 주인은 아담이다.” 이렇게 생식기의 주인을 원주인(原主人)인 하나님으로부터 허락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축복입니다.

축복을 받고 나면 비로소 하나님이 “나는 너희가 지닌 생식기의 주인이니 내가 너희 안에 들어가 살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시는 복 중에서 크고 귀한 복이 세 가지인데, 그 세 가지 복을 모두 인간에게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3대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첫 번째 축복은 육신을 주신 것입니다. 육신은 하나님이 찾아올 성전입니다. 하나님이 인간 속에 들어가서 함께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 이상 큰 복이 없습니다. 내가 보는 것이 하나님이 보는 것이고, 내가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는 곳이 곧 하나님이 가시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함부로 살 수가 없습니다.

 

두 번째는 절대성의 사랑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고 싶은데 육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육신을 지닌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아무리 못났더라도 당신이 허락해준 남자와 여자의 육신을 통해 사랑을 체휼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실체의 사랑을 하고 아들딸을 낳는 것입니다. 그것이 3대축복 가운데 두 번째 축복입니다.

 

세 번째는 만물 주관권(萬物主管圈)을 주신 것입니다. 인간이 절대성 위에서 책임분담을 완성하면 하나님도 인간도 함께 해방권(解放圈)을 완성하게 됩니다. 그래서 절대성을 중심한 책임분담해방권완성(責任分擔解放圈完成)입니다. 하나님도 책임분담에서 해방되고, 인간도 책임분담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책임분담에서 해방되기 때문에 해방권이라고 한 것입니다. 절대성 위에서 책임분담 해방권을 완성해야 합니다.

 

요약하면, 첫 번째 축복은 하나님이 인간 안에 들어가서 하나님 아버지와 인간이 일체화하는 것이고, 두 번째 축복은 인간에게 절대성을 허락해서 하나님이 인간을 통해 사랑과 기쁨을 느끼고 인간을 통해서 당신의 아들딸들을 번식하는 것이고, 세 번째 축복은 당신이 지어 놓은 만물세계를 인간이 대신 주관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닮은 제2의 창조주로서 만물을 주관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3대축복 중에서 가장 귀한 축복이 축복결혼(祝福結婚)입니다. 결혼축복이 아니라 축복결혼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기쁨을 위한 선의 대상이 되는 일은 3대축복을 이루면 실현됩니다. 그런 자리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시험도 많이 받습니다. 완성이 안 된 상태에서는 언제나 사탄이 가로막기 때문에 마음은 복을 받고 싶고 더 사랑하고 싶고 더 좋은 곳으로 가고 싶은데, 사탄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해서 사탄이 허락지 않는 것을 주면 그것은 참소의 대상이 됩니다. “자격도 없는 사람에게 그것을 주시면 안 됩니다.” 하고 참소하면서 사탄이 그것을 가져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시험하고 그 시험에 합격한 만큼 주고, 성장하면 성장한 만큼 더 주는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다 자라는 나무는 없습니다. 그래도 대나무는 싹이 나면 순식간에 자랍니다. 하룻밤 자고 나면 쑥 커서 며칠 사이에 다 커버립니다. 그런데도 대나무는 마디가 있기 때문에 부러지지 않습니다. 대나무는 커가면서 마디를 짓고 큽니다. 만약 대나무에 마디가 없다면 바람에 쉽게 부러질 것입니다.

신앙노정도 대나무와 같습니다. 대나무과 같이 마디를 짓고 가야 합니다. 마디를 지어 놓으면 거기에다 물을 부어도 물이 아래 칸으로 내려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장할 때마다 마디를 짓고 가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사탄이 아무리 뒤흔들고 시험하더라도 ‘나는 더 이상은 내려가지 않는다.’는 기준을 세워 놓고 가는 것이 성숙한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3) 이중목적         

 모든 존재는 존재목적이 있는데, 그 존재목적에는 성상적 목적(性相的目的)과 형상적 목적(形象的目的)이 있습니다. 창조원리에 의해서 한 분의 하나님 안에서 피조세계가 실체로 전개되어 나왔는데, 하나님의 성상적 부분과 형상적 부분을 닮아서 나타난 실체가 인간입니다.

그 인간을 본으로 해서 삼라만상을 창조했습니다. 삼라만상도 성상과 형상을 지니고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본체인 하나님이 이성성상의 중화적 통일체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존재목적에는 성상적인 부문이 지향하는 성상적 목적이 있고, 형상적인 부문이 추구하는 형상적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성상적 목적은 전체목적(全體目的)을 뜻하는 것으로서 공적(公的)이며, 형상적 목적은 개체목적(個體目的)을 뜻하는 것으로서 사적(私的)입니다.

개체목적은 개체가 존재하기 위한 목적이지만 전체를 위한 목적이 있고, 개체가 존재함으로써 전체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한편 전체목적은 개체를 보호하고 육성해서 그 개체로 하여금 전체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하며, 직접 전체가 지향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합니다.

마음과 몸을 놓고 볼 때, 마음은 자체를 따라오도록 몸을 이끕니다. 마음은 몸을 움직이는 동기이면서 몸에게 목적지도 제시합니다. 방향도 목적도 그 안에 있습니다. 몸은 마음이 부여한 동기에 따라 마음이 제시하는 목적과 방향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목적은 성상적 목적이며, 개체목적은 형상적인 목적입니다.

우리는 살기 위해서 밥을 먹습니다.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이루어야 할 목적이 있기에 먹습니다. 밥을 먹고 산다는 것은 개체목적이고, 보다 큰 목적을 위해서 사는 것은 전체목적입니다. 개체목적이 자기를 중심한 사적(私的)인 목적이라면, 전체목적은 공적(公的)인 목적입니다. 반드시 공(公)과 사(私)가 있습니다.

그런데 원리를 모르는 사람은 공적인지, 사적인지를 구분하지 못하고 삽니다. 그것도 죄를 짓는 일입니다. 또 공적인 것을 잊어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도 죄를 짓는 일입니다.

 

모든 존재의 근본은 에너지입니다. 하나님은 무형의 본체이자 힘의 본체로 계십니다. 그 힘이 힘으로 존재하는 목적은 소립자를 형성하기 위해서입니다. 소립자가 소립자로서 존재하는 목적은 소립자로 존재하면서 원자를 형성하기 위해서이고, 원자가 원자로서 존재하는 목적은 원자로 존재하면서 분자를 형성하기 위한 것입니다. 분자는 분자로서 존재하지만 그 분자들이 모여서 식물을 형성하고, 식물은 동물의 환경이 되고 먹이가 됩니다. 그 다음에 동물과 모든 환경은 인간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인간은 피조만물 전체의 요소가 총합된 실체상(實體相)입니다. 따라서 인간 하나가 완성되면 소립자에서부터 원자·분자·식물·동물에 이르기까지 피조세계 전체가 완성되고, 하나님도 완성됩니다. 인간이 완성되지 못하면 그 전체가 완성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힘의 본체이기 때문에 그 힘은 소립자를 비롯하여 원자·분자·식물·동물·인간에게까지 순환하면서 수수작용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개인은 개인으로 존재하는 동시에 가정을 위해서 존재하고, 가정은 가정을 위해서 존재하는 동시에 아들딸을 낳아 번식하면서 그 씨족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리고 씨족은 씨족으로 존재하는 동시에 민족을 형성하고, 민족은 민족으로 존재하는 동시에 국가를 형성하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가 사라지면 민족도 없어지게 됩니다. 그것은 민족의 울타리가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국가는 국가로서 존재하면서 모여서 세계를 이룹니다. 한 국가가 경제위기에 처하면 세계의 여러 국가가 고통을 겪습니다. 세계는 또 천주 안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인류가 존재하는 목적은 세계 인류로 존재하면서 천주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천주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개인의 주인일 뿐만 아니라 가정의 주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 안에 거하시며, 부부가 가정을 이루면 가정에도 거하시게 됩니다. 씨족·민족·국가·세계·천주의 중심도 하나님입니다. 모든 존재세계는 한 분의 하나님을 닮아서 실체로 전개된 세계이기 때문에 그들은 연체(聯體)를 이루고 있습니다. 모두가 유기체(有機體)입니다. 그러니까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눈은 상대를 보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보이는 대상이 없고 눈만 있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또 보이는 대상도 눈이 없다면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모두 연체적 관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존재를 유기체라고 합니다.

인체를 보면 60조 개에 달하는 세포가 있지만 그 세포가 전부 유기적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손가락 하나를 핀으로 찌르면 그 손가락만 아픈 것이 아니라 전신에서 고통을 느낍니다. 전부 연체적 관계인 유기체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더 확대해 보면 천주도 그런 입장입니다. 그래서 인간 한 사람의 행동에 따라 전체가 같이 움직입니다. 지구상의 인류가 개체의 세포조직과 같다면, 그 하나의 세포조직이 고통을 당하면 전신의 고통이 되듯이 지구상의 한 사람이 잘못되어 고통을 당하면 천주가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가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세계입니다. 모든 존재는 이중목적을 가지고 있는데, 반드시 전체목적인 공적인 목적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인간 생활의 제1원칙은 위하고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고, 만물을 사랑하고, 타락으로 생긴 원수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공적인 생활입니다.

공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잘못되기 쉽습니다. 공금을 주고 관리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가 여렵게 벌어서 돈을 모았다면 그 돈을 함부로 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공금은 자기가 벌지 않았기 때문에 함부로 쓰기 쉽습니다.

재벌 2세들은 대개 자기 부모가 어렵게 증식해 놓은 재산을 방탕하게 함부로 씁니다. 자기가 직접 돈을 버는 어려움을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모은 돈을 함부로 쓰면 안 됩니다. 방탕하고 잘못되면 가는 길이 비뚤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자식에게 물질적인 것을 상속해 주려고 할 것이 아니라 그 자식이 바르게 살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3) 4대심정권과 3대왕권            

 4대심정권(四大心情圈)과 3대왕권(三大王權)은 본래부터 하나님 안에 있는 심정의 속성입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심정은 본성상의 본질적 속성입니다. 그 안에는 자녀의 심정·형제의 심정·부부의 심정·부모의 심정이 들어 있습니다. 심정은 참사랑의 뿌리이고 인격의 핵입니다.

심정의 세계는 가장 높은 산꼭대기이든 가장 낮은 골짜기이든 간에 직단거리로 통합니다. 심정의 세계는 지식이 통하지 않습니다. 권력이나 돈으로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심정과 심정을 뿌리로 하는 참사랑만이 그 세계를 직단거리로 오고 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이 대상을 통해서 기뻐하고 싶은 것인데 그 심정은 직단거리를 통합니다. 그 심정이 통하는 자리가 자녀의 자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로 아담과 해와를 창조했습니다.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에 선 것입니다.

아담은 절대성의 본체되시는 아버지를 닮은 실체의 생식기, 볼록이를 가지고 태어났고, 해와는 어머니 안에 있는 절대성 난자를 지닌 생식기, 오목이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하나님 안에 그 요소가 있습니다. 양성이란 말은 양적인 생식기를 뜻하고, 음성은 음적인 생식기를 뜻합니다.

하나님은 직단거리를 통해서 아담과 해와를 창조했습니다. 무형의 본양성이 아담이라는 실체로 나타나고, 본음성이 해와를 통해 실체로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양성이 직단으로 통할 수 있는 곳은 한 점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아담입니다. 또 하나님 안에 있는 음성이 직단으로 통할 수 있는 곳은 한 점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해와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각각 본양성 또는 본음성이 통할 수 있는 직단거리에 있지만, 독자적으로는 번식이 불가능합니다. 각자는 한 점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공간성이 없기 때문에 횡적인 범위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해와 두 사람이 하나되어 횡적인 세계를 창조해야 합니다. 두 사람이 실체를 지니고 완성한 다음 실체를 지니고 사랑해서 아들딸을 낳아야만 횡적으로 번식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지어 놓고 완성한 남성이 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해와를 지어놓고 완성한 여성이 되기를 소망하고 기다렸습니다. 아담과 해와가 종적으로 지음 받았지만, 그들이 종적인 관계만 가지고 한꺼번에 완성하지 못합니다. 횡적인 번식을 통해 발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아담과 해와가 완성한 다음 부부를 이루어 자녀를 낳았을 때, 하나님에 대해서는 자녀의 심정권이 설정되고, 결혼하기 전 당사자끼리는 형제자매의 심정권이 설정됩니다. 또 그들이 부부를 이루면 부부의 심정권이 형성되고, 그 자녀에 대해서는 부모의 심정권이 설정됩니다. 그것이 4대심정권(四大心情圈)입니다. 4대심정권은 번식과 성장과 발전의 기반입니다.

4대심정권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처음부터 완성한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성장의 단계를 거칩니다. 하나님도 4대심정권을 통해 성장합니다. 하나님은 중심된 핵의 자리에서 종적으로 성장한 참아버지이시지만, 종적인 아버지도 자녀의 심정·형제의 심정·부부의 심정·부모의 심정을 거쳐 성숙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전한 자리에 계셔서 당신이 생각한 대로 창조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해 왔는데, 하나님께도 성장 과정이 있었습니다. 중심에 핵을 가진 자리에서 종적으로 성장하여 아버지가 되고 참된 부모의 자리에 나갔습니다.

본성상·본형상을 지닌 동시에 그 속성으로 본양성과 본음성이라는 참아버지의 절대성 생식기와 참어머니의 절대성 생식기를 지니신 본체가 바로 참부모이신 하나님입니다. 그 모습을 전개한 실체가 있어야 참사랑이 직단거리를 통합니다. 하나님이 그 실체의 자리에 심은 것이 아담·해와입니다. 아담·해와는 자녀의 자리에 세워졌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완성하면 자녀의 심정권에서 참된 자녀의 사랑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들이 커가면서 형제애를 느낍니다. 즉 형제의 심정을 갖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자라면서 하나님이 자신을 지으신 분이요,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을 존경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그 본질이 하나님의 심정 속에 있던 아담·해와의 자녀의 심정입니다. 그들은 이어서 형제의 심정을 느끼게 되고, 그 다음에 성장하여 부부의 심정도 느끼게 됩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닮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이상이고, 그것이 인간에게 가장 귀한 목적이고 삶의 가치입니다. 창조의 주인으로서 하나님이 피조세계를 창조하시던 심정의 대도(大道)를 아담과 해와도 걸어가야 합니다. 인간이 심정의 본체이신 하나님을 심정적으로 닮은 실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장기간에 아담과 해와가 해야 할 책임분담입니다.

자녀의 마음에는 부모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가 심정적인 분야의 중심이 되고, 자녀들도 부모의 가르침을 본받아서 부모와 같은 길을 가야 합니다. 자녀의 과정, 형제의 과정을 거칠 때 의심되고 모르는 내용이 있더라도 그것은 누구도 가르쳐주지 못합니다. 하나님도 못 가르쳐줍니다.

원리의 본체 되시는 하나님은 원리를 세워 창조했습니다. 아담·해와는 인간책임분담에 의해 성장기간 동안 원리의 길을 스스로 걸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간접주관권(間接主管圈)입니다. 간접주관권을 거쳐 4대심정권을 갖추고 하나님의 신성과 인격을 갖춘 자리에 나아갔을 때 비로소 하나님은 아담·해와에게 생식기의 주인이 엇바뀌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너희가 지닌 생식기는 상대가 주인인데, 종적인 주인은 하나님 아버지다.’ 하는 사실을 밝히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결혼이 벌어집니다. 그 결혼이 바로 하나님의 결혼입니다. 그 첫날밤 첫사랑은 하나님의 첫사랑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아들딸을 낳으면 그 아들딸은 아담·해와의 아들딸이면서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욕망의 본성은 누가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자동적으로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그 교재가 삼라만상, 만물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어릴 때는 성에 대해 몰랐습니다. 봄이 되어 토끼들이 나와서 암놈과 수놈이 교미를 해도 관심이 없습니다. 겨울에 사슴들이 뛰어다니다가 봄이 되면 암놈과 수놈이 사랑을 합니다. 어릴 때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지만, 사춘기가 다가오면 자기도 모르게 호기심이 생기고 몸속에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낍니다. 교육은 받지 않았지만 자기도 모르게 느낌이 온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토끼나 사슴들이 사랑을 하더니 암놈의 배가 조금씩 불러오은 것을 봅니다. 조금 있으니까 어미로부터 새끼가 나옵니다. 어미는 그 새끼를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합니다. 혀로 핥아 주고 음식을 갖다 먹이고 적이 나타나면 생명을 걸고 자식들을 보호하려고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담과 해와는 그것을 보면서 암놈과 수놈이 사랑하면 새끼를 갖는다는 사실을 알고, 어미가 새끼에게 젖을 먹이고 기른다는 사실을 알고 배웁니다. 그래서 부부에 대한 심정을 느끼고, 부모의 심정을 느끼는 것입니다.

자연만물은 사랑의 교과서요, 박물관입니다. 오늘날처럼 학·박사 과정을 통해서 아담·해와가 완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권력으로 완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많아서 완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만물 속에서 하나님의 심정세계를 찾아서 이루고, 스스로 절대성의 가치를 찾아서 완성하는 것입니다.

남자에게 천주를 다 주는 것보다도 큰 최고의 축복은 여자를 주는 것입니다. 여자에게는 천주를 다주는 것보다도 남자를 주는 것이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그러니까 아담에게는 여자인 해와를 주고, 해와에게는 남자인 아담을 주는 것이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축복은 얼굴 보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축복의 진정한 가치는 생식기의 주인을 허락하는 데 있습니다. 축복을 통해 온전하신 하나님의 절대성 생식기가 그 실체로 완성된 아담과 해와의 체를 쓰게 됩니다. 무형의 아버지의 절대성 생식기가 아담의 생식기와 일체가 되고, 어머니의 절대성 생식기가 해와의 생식기와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비로소 무형의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에게 횡적인 주인을 허락하고 ‘내가 너희 몸속에 들어가 종적인 주인이 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4대심정권 완성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완성하면 동시에 자기의 자녀도 완성하고, 자녀가 완성하면 부모도 완성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아담과 해와의 완성으로 인해 하나님도 완성하는 것입니다. 그때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 속에 있는 4대심정권을 완성하게 됩니다.

4대심정권은 원래 하나님 심정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속의 4대심정권이 실체를 통해서 느끼고 체휼하고 완성하게 되는데, 실체가 없을 때에는 하나님 속에 있는 4대심정권을 그냥 심정이라고 합니다. 심정의 표현이 창조입니다. 그 창조의 결과물이 아버지 속에 있는 심정권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완성하면 하나님의 4대심정권을 완성한 실체가 됩니다. 그런데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에게는 실체가 되지만 자기의 실체(=自己展開體)가 없습니다. 아담에게는 대상인 해와밖에 없고, 해와에게는 아담밖에 없습니다. 대상만 가지고는 4대심정권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성장기를 거쳐서 4대심정권을 완성한 자녀가 될 때 하나님이 부모의 심정을 완성하는 것처럼 아담과 해와도 그런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아담과 해와도 부부를 이루어 아들딸을 낳아야 합니다.

아담과 해와는 아들딸이 없어도 하나님에게는 부모의 심정을 완성시켜 드릴 수 있지만, 자기들의 부모의 심정은 완성하지 못합니다. 자체 속에 있는 부모의 심정이라는 요소가 아들딸이 없이는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과 해와도 하나님의 축복결혼을 통해서 아들딸을 낳아야 합니다.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을 모신 실체로 완성하면 하나님이 완성하는 동시에 아담·해와도 책임분담권에서 해방됩니다. 거기에서 참부모의 자리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부모이시지만 마음의 하나님, 몸의 하나님, 또는 참아버지의 하나님, 참어머니의 하나님이신 무형의 본체이십니다. 아담·해와의 타락으로 마음의 하나님과 몸의 하나님이 갈라졌습니다. 그것은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야 할 아담·해와의 마음과 몸이 갈라졌기 때문입니다. 완성한 아담·해와가 하나님을 완성하고 해방시킨다는 것은 곧 마음의 하나님, 몸의 하나님을 통일시켜 참부모로 만들어 드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만왕의 왕 하나님, 무형의 참부모입니다. 그런데 그 참부모는 실체적으로 모시는 아들딸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아담과 해와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완성하면 실체의 참부모가 됩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과 아담·해와는 동시에 책임분담권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참부모는 영원히 한분밖에 없습니다. 참부모는 최초로 책임분담권에서 해방되어 완성한 분이 얻는 영광스러운 칭호입니다. 그것은 아담·해와가 완성하고 얻어야 할 이름입니다.

아담·해와는 완성하면 참부모가 되고, 실체의 하나님이 되고, 인간의 조상이 됩니다. 그러나 아담·해와는 타락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참부모의 칭호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 혈통을 바꾸는 분이 참부모의 호칭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인류역사상 어느 누구도 혈통을 바꿀 수 없었지만, 참부모만은 혈통을 바꿀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해방할 수 있는 분은 참부모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참부모의 특권입니다. 그 특권을 만민에게 나누어주고 싶으신 것이 참부모입니다. 참부모는 하나님을 완성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완성시키고, 무형으로 계신 하나님의 실체가 되어 하나님의 혈통을 번식할 수 있는 분입니다.

 

4대심정권을 완성하면 하나님의 혈통을 중심으로 3대왕권(三大王權)이 이루어집니다.  4대심정권을 혈통적 직계로 보면, 하나님은 조부모이면서 과거에 해당하고, 존재세계 전체(=天宙)를 대표합니다.

완성한 남자와 여자로 이루어진 부부는 부모이면서 현재에 해당하고 인류를 대표합니다. 또 하나님과 부자관계를 이룬 아담·해와가 자녀를 번식하면 그 자녀는 미래를 대표하는 미래의 왕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중심하고 혈통으로 이어지는 3대왕권입니다.

3대왕권은 모든 가정을 대표하고 존재세계 전체를 대표합니다. 그래서 왕권(王權)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3대왕권을 중심으로 황족권(皇族圈)이 이루어집니다. 4대심정권을 완성한 사람은 황족권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