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해설] 구주론(2) : 십자가 대속을 통한 구원의 한계

2013. 1. 8. 10:35참사랑 영원까지/원리해설

십자가 대속을 통한 구원의 한계

 

만일 예수님이 십자가로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영육양면의 구원섭리를 완수하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선지자 이사야거 예언한 영광의 주님이 되셨을 것입니다.

 

이사야 9장 6절-7절을 보면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낳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히 이를 이루시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에게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서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 1 : 31∼33)고 한 천사의 전언도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믿었더라면 영육 아울러 구원받았을 것

 

하나님께서는 인간조상 아담과 해와를 창조하실 때 흙으로 육신을 창조하시고 거기에 생기(生氣)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창 2 : 7). 이와 같이 인간은 영(靈)과 육(肉)으로 창조되었으므로, 타락도 역시 영육 아울러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도 영적구원과 육적구원을 아울러 하셔야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로 강림하셨던 목적은 구원섭리를 완수하시는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영적구원과 육적구원을 아울러 완성하셔야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스스로를 포도나무로 신도들을 그 가지로 비유하셨습니다(요 15 : 5)

 

그리고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 : 20)고도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영육(靈肉) 아울러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가 인간으로 오셨기 때문에, 그를 믿음으로써 영육 아울러 그와 하나가 되었더라면 타락인간도 영육 아울러 구원을 받았을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불신함으로 육신에 사탄이 침범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불신하여 십자가에 내주었으므로 그의 육신은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고 마침내 십자가에 살해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은 돌아가셨지만 영인체는 다시 사신 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베드로전서 3장 :18절-19절에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고 기록된 것입니다.

 

육으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그러므로 육신에 사탄의 침범을 당한 예수님을 믿어 그와 한 몸을 이룬 신도들의 육신도 그대로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아무리 독실한 신앙자라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속죄(贖罪)로써는 육적 구원은 완성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아담으로부터 내려오는 혈통적인 원죄(原罪)가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리 잘 믿는 성도라 할지라도 그에게 원죄는 그대로 남아지게 되어 그는 또 원죄 있는 자식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육신을 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원죄로 말미암아 항상 육신을 통하여 들어오는 사탄 침범의 조건을 막기 위함이며,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 : 17)한 것도 이와 같이 십자가에 의한 구속으로도 근절되지 않은 원죄로 인한 사탄 침범의 조건을 막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그의 육신이 사탄의 침범을 당함으로써 육적 구원섭리의 목적은 달성하시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십자가의 피의 대속(代贖)으로 부활의 승리적인 기대를 조성함으로써 영적 구원의 기대를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부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신도들은 영적 구원섭리의 혜택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십자가의 대속으로 인한 구원은 영적 구원뿐이므로 잘 믿는 신도들에게도 원죄는 육적으로 여전히 남아 있어서 그것이 계속적으로 그 자손들에게 유전되어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은 그 신앙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죄와 더불어 더욱 치열한 싸움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대속을 받은 성도들도 원죄와 싸워야 하기 때문에, 사도(使徒)들 중에서 신앙의 중심이 되었던 바울도 육적으로 들어오는 죄악의 길을 막을 수 없는 자신을 한탄하던 끝에,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 7 : 25)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영적 구원의 완성에 대한 기쁨과 동시에 육적 구원의 미완성에 대한 탄식을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서 8잘 6절-8절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고 하신 것입니다.

 

또한 요한일서 1장 8절 내지 10절에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라"고 말한 요한의 고백대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을 받고 있는 기독교인들도 여전히 원죄 때문에 범죄자임을 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십가가의 대속으로 청산하시지 못한 원죄를 속하고 육적구원을 완성함으로써 영육 아우른 구원섭리의 목적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지상에 재림하시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영적구원이 주는 놀라운 은사

 

그렇다면 영적구원이란 무엇일까요? 영적구원이란 현실은 지옥이라고 하더라도 마음은 천국을 소망하며 기쁨 속에서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해마다 추석이 되면 실향민들 중에는 임진각에 가서 북녘하늘을 바라보면서 조상들이 살던 땅을 그리워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마음으로는 고향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몸은 그 곳에 갈 수가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타락한 인간에게 영적구원의 가치는 놀라운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권은 영적인 면에서 사탄불가침권입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성막은 예수님을 비유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성소는 아무나 제사할 수 있지만 지성소는 대 제사장이 1년에 한번 들어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들어가지 말아야할 사람이 들어가면 현장에서 급살 맞아 죽는 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인체가 지성소라면 육신은 성소를 상징합니다.
지성소에는 아무나 들어가면 급살 맞아 죽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영인체에는 사탄이 침범할 수 없는 것입니다. 즉 사탄불가침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에 대한 절대신앙으로 심정일체불가분의 관계를 맺으면 그런 성도의 영혼에는 사탄이 침범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산란하고 낙심되어 너무너무 힘들 때에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심정적으로 하나 되면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악영이 들려 길길이 날 뛰며 시달리던 영혼도 잠잠해지며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도원에서도 오직 한마음으로 몸부림치면서 찬송하고 기도하는 성도들에게 성령의 불이 내리고 놀라운 치유의 능력이 나타나는 예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구원의 혜택을 입은 성도들이 로마제국의 처절한 박해를 극복할 수 있었고, 그리고 종교개혁시대 성도들도 오직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죽음의 사선을 넘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육적으로 사탄이 침범하여 온갖 시련과 고통으로 시험할 때 사망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 영적인 보호자가 되신 것입니다.

 

사탄은 목적은 예수님의 영과 육을 죽이는 것

 

그렇다면 처음부터 사탄은 육체만을 요구하였을까요?

 

사탄은 아담과 해와를 타락시킬 때 영육 아울러 타락을 시켰습니다. 그러므로 후아담으로 오신 예수님도 영과 육을 모두 죽이는 것이 목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편하게 돌아가시도록 놔두지 않았습니다. 사탄은 최대의 능력을 발휘하여 예수님께 참을 수 없는 모욕과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그 지옥의 고통 속에서 하늘을 버리고 영육 아울러 지옥의 수렁에 빠지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마27/46)하고 호소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진 지옥의 고통도 주님의 영혼을 흔들 수 없었습니다. 사탄이 침범할 수 없는 영적인 기준을 세우신 것입니다.

 

십자가 구원의 한계를 통한 고통을 실감하며 재림을 간구해야

 

주님이 가신 길은 성도들의 따라 가야할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요14:6)
따라서 성도들의 신앙노정에도 주님이 가신 길처럼 시험이 따르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영과 육을 죽여 영원한 사망으로 이끌어가려고 할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는 주님께서 가신 길을 본받아 내 영혼에 사탄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내 영혼에 사탄이 자리 잡으면 하나님께서 주관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고 늘 깨어 기도하면서 주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 기반 위에서 재림메시아를 만나 원죄를 청산하고 영육 아울러 구원을 받아 하나님 창조목적을 완성하는 자리에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영적구원은 영적중생을 말합니다. 따라서 예수님과 성신을 통해 중생의 은사를 받더라도 하나님의 친자가 못되고 양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로마서 8장 23절에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재림의 목적은 영육 아울러 완전히 구원하시는 것

 

따라서 성도들은 먼저 영적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영육 아울러 구원받지 못한 고통을 실감하면서 재림메시아를 간절히 사모하고 기다리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대속을 통해 완전히 구원받았다는 착각 속에 빠져 있을 경우 영육 아울러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주님을 불신하는 자리에 설 뿐만 아니라. 영원한 하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기독교인들은 십가자 구원의 한계를 바로 알고 재림메시아를 통해서 영육 아울러 구원받아야할 나요 하나님의 자녀로 중생해야할 나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