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해설] 구주론(1) : 십자가는 유대인의 불신의 결과입니다.

2013. 1. 8. 10:36참사랑 영원까지/원리해설

예수님의 십자가는 유대인의 불신의 결과입니다.

 

'메시아'는 히브리어로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 즉 왕(王)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선민들은 장차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구세주를 왕으로 보낸다고 하신 구약의 말씀을 믿고 기다려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민족의 메시아사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에 따라 2000년 전 이스라엘 민족가운데 메시아로 오셨던 분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란 말은 메시아와 같은 뜻의 헬라어입니다.

 

예수님은 창조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오셨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선민에게 메시아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인간조상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인간이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었다면 메시아도 구세주도 필요 없는 선의 역사가 지속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메시아로 강림하셨던 목적은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시려는 데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셨고(마 6 : 10), 또 천국이 가까웠으니 회개하라고 외치셨던 것입니다(마 4 : 17). 또한 예수님의 앞길을 예비하러 왔던 세례 요한도 역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부르짖었던 것입니다(마 3 : 2).

 

그러면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은 어떤 사람일까요?

 

창조원리에 의하면 완성한 인간은 하나님의 성전으로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 심정을 체휼함으로써 신성을 갖게 되어 하나님과 심정일체불가분의 생활을 하게 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간은 원죄가 없고 속죄의 기도와 같은 신앙생활도 필요 없는 사람입니다. 그뿐 아니라 원죄가 없으므로 그 후손들에게는 속죄를 위한 구세주도 필요 없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대속으로 인하여 구원섭리가 완성되었는가

 

그런데 구원을 위해 2000년 전 유대 땅에 오셨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셨습니다. 그 후 많은 성도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우리가 완전히 구원받았음을 믿고 있습니다.

 

구원은 바로 복귀를 의미합니다. 병든 자를 구원한다는 것은 병들기 전으로 복귀하는 것이요. 물에 빠진 자를 구원한다는 것은 물에 빠지기 전으로 복귀하는 것이요. 타락인간을 구원한다는 것은 타락하기 전 창조본성을 복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 모든 성도들이 창조본성을 복귀함으로 지상천국을 이루었나요?

 

예수님 십자가 이후 아무리 잘 믿는 성도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함으로써 신성을 갖게 되어 하나님과 일체불가분의 생활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속죄가 필요 없고 기도나 신앙생활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성도 또한 한명도 없었던 것입니다.

 

사도바울같이 훌륭한 신앙자에게 있어서도 목숨을 건 눈물겨운 기도와 신앙생활은 절대 필요하였던 것입니다.(롬 7 : 18∼25). 그 뿐만 아니라 아무리 잘 믿는 부모라 할지라도 원죄 없는 자식을 낳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이 전혀 무위(無爲)로 돌아간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체험으로 보아도 십자가 대속의 은사가 얼마나 큰 것인가 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십자가로 인한 속죄의 한계가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문제를 밝히 알아야겠습니다.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먼저 사도들의 언행을 중심삼고 보겠습니다.

 

사도들이 예수님의 죽음에 대하여 공통적으로 느낀 것은 예수님의 죽음을 억울하게 여기고 분개하며 서러워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준 유대인들의 무지와 불신을 통분히 여겼으며, 그들의 행위를 패역무도한 것으로 여겨 저주하였습니다.

 

순교자 스데반은 유대인들을 향해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 도다.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 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행 7 : 51∼53). 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놓고 분개하고 서러워하는 스데반을 보면서 유대인들은 일심으로 달려들어 스데반을 돌을 던져 죽였던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의 죽음이 하나님의 예정에서 온 필연적인 결과였다면 하나님의 예정대로 이루어진 그 섭리의 결과에 대해서 그렇게도 분개하고 저주했을 리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보아 십자가는 기정사실이 아니다

 

다음에 하나님의 섭리로 보아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과연 하나님의 예정에서 되어진 필연적인 결과였던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후손에서 이스라엘 선민을 찾아 세우시고 그들을 보호 육성하시며, 때로는 고난과 시련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을 보내시어 위로하시며 장차 메시아를 보내실 것을 굳게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성막과 성전을 짓고 모심으로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준비를 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메시아가 탄생할 시기에 맞추어 동방박사, 시므온, 안나, 세례 요한 등을 보내시어 메시아의 탄생과 그의 현현을 널리 증거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을 메시아로 증거한 세례 요한에 대해서는 그의 잉태와 출생할 때에 되어진 기이한 사실은 당시의 유대사람들을 크게 놀라게 하였습니다(눅1:13. 눅1: 63∼66). 그뿐만 아니라 광야에서 수도생활하는 모습은 모든 유대인들로 하여금 그가 메시아가 아닌가 하고 생각케 할 정도로 놀랄 만한 것이었습니다(눅 3 : 15).

 

하나님이 이렇게 위대한 세례 요한까지 보내시어 예수님을 메시아로 증거하게 하셨던 것은, 예수님을 불신하여 십자가에 매달기 위해서 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함이었던 것임을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뜻대로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었더라면, 그 메시아를 누가 십자가에 내주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십자가의 죽음 길에 내준 것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언행으로 본 십자가의 구원섭리

 

다음으로 예수님 자신의 언행(言行)으로 보아서, 그의 십자가의 죽음이 과연 메시아로 오셨던 모든 목적을 이루기 위한 길이었던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하고 질문하였을 때,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6 : 29)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 23 : 37)라고 하시어 그들의 불신을 한탄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메시아를 증거하기 위하여 준비된 구약성경을 보면서도 믿지 못하는 그들의 무지를 책망하시면서,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 5 : 39∼40)라고 슬퍼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라고 서러워하시면서, 이어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요 5 : 43∼46)고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을 돌이키시기 위하여 많은 이적과 기사를 보여 주셨습니다. 앉은뱅이를 걷게 하시고, 눈먼자를 고쳐 주시고, 문둥병을 고쳐주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놀라운 일들을 보면서도 예수님을 귀신의 왕 바알세불이 접한 자라고 비난하였습니다.(마 12 : 24).

 

이러한 비참한 정경을 보시는 예수님은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요 10 : 38)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가하면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들에게 화가 있으라고 분노를 퍼붓기도 하셨던 것입니다(마 23 : 13∼36).

 

그리고 예수님은 그 어디에도 호소할 곳이 없어 성을 바라다보시고 우시면서, 하나님이 2천년 동안이나 애쓰시며 사랑으로 이끌어 온 이스라엘 선민은 두말할 것도 없고 이 성마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겨지지 않을 정도로 멸망해 버리고 말 것이라고 저주하시면서,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눅 19 : 41∼44)고 탄식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무지가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따라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그가 메시아로 오셨던 모든 목적을 완성하기 위한 예정에서 온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무지와 불신의 결과로 온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도 고린도전서 2장 8절에서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의 십자가 노정이 하나님께서 본래부터 예정하신 길이요. 십자가를 짐으로 구원이 완성된다면 예수님은 왜 당연히 가셔야 할 길을 걸어가시면서 "할 만하면 이 쓴 잔을 면케 해 달라"고 세 번씩이나 기도를 올리셨겠습니까?마 26 : 39).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탕감복귀의 앞날을 바라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불신한 이스라엘민족의 받아야할 처절한 탕감노정과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제자들도 따라가야 하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요14:6)

 

예언대로 2000년 동안 처절한 고난의 세월을 살아온 이스라엘

 

누가복음 19장 44절에 예언하신 말씀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2000년간 이스라엘 선민은 쇠망의 길을 간 것을 보아도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서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로 영광의 주가 되셔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9장 6절 이하에 "한 아이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다윗 왕의 위를 가지고 오셔서 영원히 멸하지 않을 왕국을 세우실 것을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잉태될 때에도,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1 : 31∼33)는 말씀을 전해 주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선민을 불러 2천년간이나 고난 가운데서도 보호육성 해 나오신 것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내시어 영원히 존속할 왕국을 이룩하시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선민 유대인들에게 몰려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에, 이스라엘은 선민의 자격을 잃어버리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민족적인 학대를 받아 나왔던 것입니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중에 히틀러 치하에서도 600여만 명이라는 유대인들이 인종청소의 제물로 죽어 갔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믿고 모셔야 할 메시아를 도리어 살해한 그 범죄에 대한 천벌이었던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예수님 십자가 이후 수많은 성도들이 당하여 온 십자가의 고난도 예수님을 불신하고 살해한 연대적 범죄에 대한 형벌이었던 것을 알아야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기정사실이 아니라 유대인의 불신의 결과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