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해설] 종말론(6) : 말세에 처한 우리들의 자세

2013. 1. 8. 10:37참사랑 영원까지/원리해설

농경시대에 농부들은 낫을 놓고 기역자를 몰라도 절기는 구분할 줄 알았습니다. 농부가 절기를 모르면 1년 농사를 망치기 때문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천기도 볼 줄 알았습니다. 천기를 볼 줄 모르면 다 된 농사를 망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앙하는 사람은 말세의 때를 알아야 합니다. 알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 수천년 고대하던 때를 놓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변할 줄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변치 못하느냐"(눅12/56)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궃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16/3) 하시면서 탄식하신 것입니다.

 

1년 농사를 망친 농부는 1년 동안 고난의 길을 가야하지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후 2,000년 섭리적 농사를 망친 유대교인들은 지난 2000년 동안 나라를 잃어버린 채 유리고객하는 탕감길을 걸어야 했던 것입니다.

 

오늘의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2000년 동안 재림하신다는 새로운 약속을 받고 기다려왔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그 한 때를 잃어버린다면 억만세를 두고 탄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말세의 한 때를 알아야 하고 말세에 오시는 주인공인 재림메시아를  만나야 합니다. 그렇다면 말세에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말세는 낡은 것이 끝나려 할 때 새로운 것은 시작되는 혼돈기

 

따라서 낡은 것이 끝나는 점이 바로 새로운 것이 시작되는 점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낡은 역사의 종말기는 바로 새 역사의 시창기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때는, 인간의 타락으로 같은 점에서 출발하여 각각 그 목적을 달리하여 가지고, 세계적인 결실을 하게 된 선과 악의 두 주권이 서로 교차하는 시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기에 처해 있는 인간들은,

 

내적으로는 이념과 사상의 결핍으로 인한 불안과 공포와 혼돈 속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상이 옳은 것인지 판단하기 힘든 시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가 해방 후에 좌우로 갈라져 이념대립이 심각할 때 좌우지간(左右之間)이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 말은 흔히 시비를 가리며 다툼이 있을 때 싸움을 말리는 쪽에서 좌우지간에 그만두라고 하면서 지금도 많이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외적으로는 무기로 인한 알력과 투쟁 속에서 떨게 되는 때입니다.

 

따라서 말세에는 나라가 나라를 치고, 민족과 민족이 상쟁하며, 가족들이 서로 결투를 하리라(마 24 : 4∼9)는 성서의 기록대로 온갖 비참한 현상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1914년부터 1918년까지 벌어진 1차 세계대전이 벌어졌습니다. 그 후 21년 만인 1939년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1945년까지 지구성을 피로 물들이는 비참한 전쟁이 있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은, 1차 세계대전과 비교할 때 동원병력 수 약 2배, 전사자는 약 5배, 민간인 희생자 약 50배였다고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를 끌어들인 참혹한 전쟁이었습니다. 연합국측이 49개국, 동맹국측이 8개국이었으며, 중립국은 스위스 등 6개국에 불과하였습니다. 동원병력은 1억 1000만 명이었고, 그 중 전사자가 2,700만 명이었습니다. 그리고 민간인 희생자가 2,500만 명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독일과  소련 양국의 희생이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소련은 전사자 1,360만 명, 민간인을 포함하여 사망자 2,000만 명이 희생 했는데 이는 전인구의 약 십분의 일입니다. 그리고 독일은 전사자가 500만 명이고, 민간인을 포함하여 약 550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습니다. 독일 역시 전 인구의 십분의 일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인도 군인 185만 명이 죽어 민간인을 포함하여 사망자가 약250만이었다고 합니다. 이는 전인구의 약 사십분의 일입니다. 지구성 전체를 피로 물들인 전쟁이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 출현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수는 2차대전에 희생된 사람을 능가한다는 것입니다. 후버 연구소의 저명한 학자인 로버트 컨퀘스트는 공산주의로 인해 죽어간 인명이 최소한 1억명에 이를 것으로 확신했고, 프랑스의 공신력 있는 잡지인 르피가로지는 공산주의가 1억5천만의 생명을 죽였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1950년 6월 25일 일어난 한국전쟁에서 희생된 사람의 수는 약 450만 명으로 계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온 20세기가 전 세계와 대한민국에 얼마나 투쟁과 알력 속에서 비참한 모습으로 투쟁해 왔는가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참으로 상상할 수 없는 참경의 20세기였습니다.

 

선주권과 악주권이 교차하면서 세계적인 전쟁이 벌어졌던 이 시대는 말세입니다. 복귀섭리하시는 하나님은 이러한 때에 하나님은 반드시 새 역사의 중심을 보내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반드시 새 역사의 중심을 만나 새역사의 동참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말세에는 선주권의 중심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새 역사의 중심을 찾을 수 있을까요

 

새 시대의 섭리는 낡은 시대의 종말기의 환경 속에서 싹이 트고 자라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섭리는 낡은 시대의 인습에 젖은 사람에게는 좀처럼 납득되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새 시대의 섭리를 담당하였던 선지자들은 모두 그 시대의 희생자가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그 실례로, 2000년 전 구약시대의 종말기에, 신약시대의 새로운 출발섭리의 중심으로 오셨던 예수님은 구약 율법주의자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이단자의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독생자가 아니라 이단의 괴수 즉 바알세불이 접한 자로 보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죽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 결과 유대인들로부터 배척을 받아 십자가에 살해당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눅 5 : 38)고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새로운 섭리의 중심은 새 진리를 주신다

 

예수님께서는 신약시대의 종말기인 말세에 새 하늘과 새 땅을 위한 새로운 섭리의 중심으로 오셔서, 새 시대의 건설을 위한 새 진리를 주실 것입니다.

 

새 진리를 전한다는 것 때문에 예수님은 초림 때에 유대인들로부터 바알세불이 접한 사람으로 몰리고 쫓기었듯이 재림 때도 틀림없이 기독교 신도들에게 몰림을 당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장차 재림하시면 많은 고난을 받으며 그 세대에 버린 바 될 것이라고 예언하셨던 것입니다(눅 17 : 25).

 

낡은 시대에 안도하려는 사람은 낡은 시대와 더불어 심판 받는다

 

그러므로 말세인 역사의 전환기에 있어서 그대로 낡은 시대의 환경에 집착되어 안도하려는 사람들은 낡은 시대와 더불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타락된 인간은 신령에 대한 감성이 극히 둔하기 때문에, 대개 진리면에 치중하여 복귀섭리노정을 따라 나가게 됩니다.

 

따라서 이러한 인간들은 흔히 낡은 시대의 진리관에 집착되어 있기 때문에, 복귀섭리가 새로운 섭리의 시대에로 전환하고 있어도 그들은 이 새 시대의 섭리에 쉽게 감응하여 따라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구약성서에 집착되었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따라 신약시대의 섭리에 호응할 수 없었던 역사적인 사실은 이것을 입증하는 좋은 예인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라고 하시면서 질책하셨던 것입니다. 구약의 완성으로 오신 예수님을 구약말씀으로 심판하여 이단자로 몰아 세웠던 유대인들을 향하여 꾸짖었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른 제자들 중에는, 구약성서에 집착된 인물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오직 본심에 느껴지는 대로 신령을 따라간 사람들뿐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재림 때에도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신약성서의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오신 재림메시아를 신약말씀으로 심판하여 이단으로 몰아세우는 역사적인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따라서 말세에 처한 기독성도들은 성서의 문자나 관습적인 신앙에 붙들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먼저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를 통하여 신령한 것을 감득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으라. 그러면 너희가 찾을 것이다.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문이 열릴 것이다. 구하는 사람마다 받을 것이며 찾는 사람이 찾을 것이며 두드리는 사람에게 문이 열릴 것이다".(마태복음 7:7-8) 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한복음 4장 23-24)

 

따라서 모든 성도들은 말세에 새 역사의 중심으로 오시는 재림주님을 만나기 위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면서 눈물의 호소로 간구하여 반드시 중심을 만나야 할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인습적인 관념에 집착되지 말고 우리의 몸을 신령에 호응하게 함으로써, 새 시대의 섭리에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새 진리를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1950년대 통일교회 초창기의 일입니다. 경기도 야목에서 통일원리를 들은 한 여고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통일교회를 다닌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징계를 받은 후 울면서 기도하다가 놀라운 은혜를 받게 됩니다. 어머님 은혜곡에 맞추어 하늘의 계시가 내렸던 것입니다. 그 노래가 바로 <복귀의 심정으로 불리워지는 성가입니다.

 

1. 하나님 창조목적 이루시고자 복귀로써 찾으려는 한 중심의 뜻 심중의 쓰라림을 누가 알리요. 유구한 세월은 하나님 눈물. 이 땅 위에 인간들 허다하건만 하나님의 심정을 알자 없어라

 

2. 영광을 누리려던 창조주께서 인간의 타락으로 슬픔이 되니 우리들의 미와 사랑 찾아 이루어 무궁한 영광을 돌려보내세. 하나님의 그 심정 측량할소냐. 땅을 대한 눈물은 강을 이뤘네

 

3. 하나님 가슴속에 숨겼던 비밀 천사장의 나팔로써 증거하건만 노아 때에 배반하듯 모두 비웃고 어두운 무덤에서 만족하누나. 하늘 아래 그 뭣이 무섭다기로 심판 날의 그 형벌을 어찌 비하랴

 

4. 믿어요 어서 속히 믿기만 하면 아버님의 보좌 앞에 포근한 사랑. 본연의 내 고향을 다시 가보니 그 보다 더 기쁨이 또 있을소냐. 육천년간 잃었던 자녀 찾으신 아버님의 기쁨도 영원이라네.

 

그 당시 천막을 친 작은교회에서 200여명이 모여 가마니를 깔고 손바닥으로 가마니 방석을 두드리면서 눈물로 반복해 부르다 보니 어느새 가마니가 다 풀어져 북데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다음날 다시 새가마니를 가져와 바닥에 깔고 두드리면서 부르다보면 다시 북데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어린 여고생이었지만 신령에 호응하여 하늘로 부터 복귀의 심정을 받아내려 당시 어른이나나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함께 신령에 호응하여 부르다 보니 우리들의 성가가 되었던 것입니다.

 

새 진리를 따르는 길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7:13)고 하신 것입니다.

 

현세는 말세입니다.

이 때 우리는 말세의 고개를 넘어 창조이상세계로 들어가야 합니다. 쇄재두루미가 한 때 히말라야 산맥을 넘는 것 처럼 말입니다.  

쇄재두루미는  매년 정기적으로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번식지인 몽고의 초원지대와 월동지인  인도를 넘나든다고 합니다. 학자들은 어떻게 이 새가 7,000미터가 넘는 만년설로 뒤덮힌 히말라야 산맥을 넘는지 궁금했습니다. 연구결과 쇄재두루미는  히말라야  산맥의 기상이   안정될 때를  기다려  이동시기를 잡는다는 것입니다.

히말라야  산맥 상공은 언제나 영하 40도의 찬 공기가 만들어 내는 초속1백m이상의 강한 제트기류가 흐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매년10월이 되면 제트기류가 약해지고  상승기류가 발생하는 일주일기간 이 절호의 기회를 이용하는 지혜로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네팔사람들은 이 새를 일러 희망의 새, 바람의 새라고 한답니다.

이 때를 놓지면 죽을 수 밖에 없고, 때를 알고 넘다가 지치면 황금독수리의 먹이가 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믿고 기다리는 신약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2000년동안 이 때를 기다려 온 것입니다. 새역사의 중심으로 오신 재림 메시아를 만나 상승기류를 타고 복귀의 고개를 넘어야 합니다. 넘지 않으면 영원한 죽음이 있고 고개를 넘어가다 지쳐 쓸어지면 황금독수리의 먹이가 될 뿐입니다.

 

말세에 오시는 새역사의 중심을 만나 새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진정한 천적인 기쁨이 여러분 심령의 깊은 곳에서 용솟음치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늘이 이 시대에 주신 새 말씀 통일원리를 통해서 참된 구원의 길을 찾아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