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해설] 타락론(9) : 자유가 구속되어 타락한 아담과 해와

2013. 1. 8. 10:43참사랑 영원까지/원리해설

자유의 일반적인 의미는 "어느 누구에게도 구속되지 않는 상태"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어느 누구에게도 구속되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간다면 이 사회는 무법천지가 될 것입니다. 힘 있고 주먹이 강한 사람들이 자기 마음이 내키는 대로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고 살아가는 세상이 된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또 다시 자유를 박탈 당한 채 노예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인류역사를 보면 수많은 주권자들이 출현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어느 누구의 구속도 받지 않고 자기마음대로 정치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독재자들입니다. 독재자들은 한 나라의 주권자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인권을 억압하고 죽음으로 몰아넣은 비참한 사례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요즘도 우리나라 역사에 출현한 악한 주권자들의 이야기가 드라마의 소재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자유세계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에 관한 원리적인 의의를 가르쳐 주어야 할 것입니다.


자유(自由)에 대한 원리적인 성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원리(原理)를 벗어난 자유는 없습니다.
자유는 자유의지(自由意志)와 그에 따르는 자유행동(自由行動)을 합하여 표현한 말입니다. 자유의지와 자유행동은 성상(性相)과 형상(形狀)과의 관계와 같기 때문에, 이 두 가지가 합하여질 때 완전한 자유가 성립됩니다.

그러므로 자유의지가 없는 자유행동은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자유행동은 자유의지로 인하여 나타나는 것이고, 자유의지는 곧 마음의 발로인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은 원리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원리적인 의지를 가질 때 마음이 자유로운 것입니다. 따라서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 즉 원리를 벗어나서 그 마음이 움직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리를 벗어난 자유의지나 그로 인한 자유행동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창조본연의 인간에 있어서는, 원리를 벗어난 자유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비원리적인 생각이나 비원리적인 의지를 갖게 될 때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진정한 자유는 원리내에서의 자유인 것입니다.

둘째로, 책임(責任) 없는 자유는 없습니다.
원리에 의하여 창조된 인간은 자유의지로써 그의 책임분담(責任分擔)을 완수함으로써만 완성됩니다. 따라서 창조(創造目的)을 추구하여 나아가는 인간은 항상 자유의지로써 자기의 책임을 행하려 하기 때문에 책임 없는 자유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책임분담을 수행하려는 의지와 행동 안에서 자유로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어떤 자리에서 있든지 무책임한 자리에 서면 그 때부터 자유가 구속되는 것입니다.

자식을 낳아 키우는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데 책임을 지지 않고 내다 버린다면 그 때부터 본심의 자유는 상실되는 것입니다. 교사가 학생을 지도하는 데 무책임하여 잘못되는 것을 보면서도 방임하면 그 때부터 그 교사는 본심의 자유가 상실되는 것입니다. 군인이 전선을 지키는 책임을 하지 않고 탈영하면 그 때부터 자유가 구속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책임을 품고 사는 사람이 자유로운 것입니다.

셋째로, 실적(實績) 없는 자유는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자유로써 자신의 책임분담을 완수하려는 목적은, 창조목적을 완성하여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는 실적을 세우려는 데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자유는 항상 실적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므로 실적 없는 자유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실적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직장에서 실적이 없는 사람으로 자리에 앉아 있으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결국 그 직장에서 예비 퇴출자의 명단에 등록되게 되는 것입니다.

가장으로서 가족을 부양해야할 자리에 있는 사람이 직장을 잃어버리거나 돈을 벌어오지 못할 때에 그 가장은 가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거리에 나와 하루 이틀 보내다 보니 그것이 몇 개월이 되고 아예 노숙자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학생이 공부의 실적을 세우지 못하면 집에 가서 부모님 대할 면목이 없어지고, 거리를 방황하다가 탈선의 늪에 빠지기도 합니다. 지금도 언론보도에 의하면 10만 여명의 청소년들이 거리를 방황한다고 합니다. 이들의 모습은 바로 실적이 없기 때문에 자유를 잃어버린 모습입니다.

신앙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 앞에 책임분담을 통한 실적을 세우지 않고는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뜻을 위해 일한 실적도, 전도한 실적도, 헌금한 실적도, 봉사한 실적도 없이 살아가다가 하늘의 부름을 받고 영생길을 가게 되면 자유가 있을리 없습니다.

인간은 자유로 타락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자유(自由)는 원리를 벗어나서는 있을 수 없다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유는 스스로의 창조원리적인 책임을 지게 되며, 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실적을 추구하는 것이므로, 자유의지(自由意志)에 의한 자유행동은 선(善)의 결과만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유행동을 하는 사람은 원리적인 결과, 책임 있는 결과, 실적 있는 결과만을 만들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자유로 인하여서 타락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후서 3장 17절에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자유를 본심(本心)의 자유라고 합니다.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으로부터 선악과(善惡果)를 따먹지 말라는 권고를 받은 이상, 그들은 마땅히 하나님의 간섭이 없이 오직 본심의 자유에 의하여 그 명령을 지켜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해와가 원리를 탈선하려 하였을 때, 원리적인 책임과 실적을 추구하는 그의 본심의 자유는 그에게 불안과 공포심을 일으키게 하여 원리를 탈선하지 못하도록 작용하였습니다.

또 타락된 후에 있어서도 이 본심의 자유는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도록 작용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이러한 작용을 하는 본심의 자유로 인하여서 타락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타락은 자유가 구속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조상 아담과 해와의 타락은 자유가 구속되었기 때문입니다. 원리적인 의지가 구속되어 힘을 쓰지 못하게 됨으로 책임의지도, 실적의지도 구속되어 힘을 쓰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해와의 자유를 구속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비원리적(非原理的)인 사랑의 힘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타락인간들은 여러 가지로 자유가 구속당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 때문에 자유가 구속된 사람도 있습니다. 얼마 전 읍면동 사회복지 부서에 국가공무원으로 재직하면서 돈의 유혹을 받아 국법을 어기고 불행한 길로 빠져드는 사람들이 신문에 보도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먹으로 협박을 받아 자유를 잃어버린 사람도 있습니다. 매를 맞을까봐 죽임을 당할까봐 자유가 구속된 채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에덴동산에 아담과 해와처럼 불륜한 사랑의 유혹을 받아 탈선한 이후 자유가 구속당한 채 불안과 공포가 엄습해 오는 죄악의 늪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많은 세상사람들이 철망처럼 짜여진 죄악의 그물 속에서 자유를 잃어버린 채 원망과 불평과 탄식과 저주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인간은 타락(墮落)으로 자유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인간의 자유를 복귀하기 위해 섭리를 하시는 하나님

그러나 아무리 타락한 인간이라도 이 자유를 추구하는 본성(本性)만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자유를 복귀하는 섭리를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역사가 흘러가면서 무지에서 지에로 깨우침을 받은 인간들은 자기의 생명을 희생시켜 가면서까지 자유를 찾으려는 심정이 고조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잃어버렸던 자유를 복귀해 나아가고 있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리적인 의지, 책임의지, 실적의지를 회복하여 자유행동을 찾아 나아가야 합니다.

통일원리는 자유를 찾아가는데 가장 차원 높은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원리수련을 통해서 진리를 깨달아 가는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자유의지와 자유행동이 강한 것을 보게 됩니다.

중앙수련원 원장으로 수련생을 관리하다보면 가끔 일주일 금식기도를 하면서 원리수련을 받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원리를 알면 알수록 자유의지와 자유행동이 강해지는 것입니다. 또 어떤 평화대사는 원리수련을 마친 다음에 일주일 단식으로 하늘 앞에 맹세하고 이 뜻길을 따르겠다고 다짐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원리를 교육해야 합니다. 자유를 구속하는 어떤 환경일지라도 그 것을 극복하고 본심에서 울어나는 자유의지와 자유행동으로 책임과 실적을 세워서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완성하는 길로 나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자유와 타락과 복귀에 대한 이해

천사(天使)는 인간을 시종(侍從) 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천사를 대하는 것은 인간의 자유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사에게 유혹을 당하던 때의 해와는 아직도 지적으로나 심정적으로나 미완성기(未完成期)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해와가 천사의 유혹에 의하여 지적으로 미혹되고 심정적으로 혼돈되어 유인을 당하게 되었을 때에, 그는 하나님의 창조목적으로 중심한 책임과 실적을 추구하는 본심의 자유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불안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더 큰 천사와의 사랑의 힘에 의하여 타락선(墮落線)을 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도 중학교 여학생이 원조교제로 사회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이 많은 남자로부터 돈으로 유혹을 받고 끌려갈 때 본심의 자유로 일어나는 양심의 가책과 불안감이 엄습해 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에 의해 어린 아이들이 탈선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해와가 아무리 천사를 자유로이 대하였다 하더라도, 따먹지 말라 하신 하나님의 계명만을 절대적으로 믿고 천사의 유혹의 말에 상대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는 결코 타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유가 해와로 하여금 천사를 상대하게 하여 타락선까지 끌고 나갔던 것은 사실이지만, 타락선을 넘게 한 것은 어디까지나 자유가 아니고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이었던 것이다.

인간은 천사에 대해서도 자유로써 대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해와가 누시엘을 대하게 되어 그와 상대기준(相對基準)을 조성함으로써 수수작용(授受作用)을 하게 되었을 때, 그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타락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타락인간이 창조본성을 복귀하려면 그 반대경로로 하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타락인간이라도 자유로써 하나님의 상대적인 입장에 설 수 있기 때문에, 진리(眞理)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과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수수작용을 하게 되면, 그 원리적인 사랑의 힘으로 창조본성(創造本性)을 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원리를 알수록 자유의지가 높아집니다.

인간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무지에 떨어져 하나님을 모르게 됨에 따라서 그의 심정도 모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타락한 인간의 의지는 이 무지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을 취할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인간에게도 복귀섭리(復歸攝理)의 시대적인 혜택에 의하여, 신령(내적인 知)과 진리(외적인 知)가 밝혀짐에 따라, 창조목적을 지향하는 본심의 자유를 찾으려는 심정도 복귀되어 왔고, 그에 따라서 하나님에 대한 심정(心情)도 점차로 복귀되어 그 뜻대로 살려는 의지도 높아져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유를 복귀하고자 하는 의지가 고조됨에 따라서,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환경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대의 환경이 자유를 찾는 인간들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없을 때, 필연적으로 사회혁명(社會革命)이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18세기에 있었던 불란서혁명(佛蘭西革命)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러한 혁명은 결국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자유가 완전히 복귀될 때까지 계속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불행한 사람은 혁명의 대상이 되는 사람입니다. 혁명을 통해서 정권을 잡은 독재자들 중에는 도리어 혁명의 대상이 되어 비참한 정권의 말로를 맞이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혁명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간 본성의 요구를 짓밟아 버리다가 하늘의 심판을 받기도 하는 것입니다.

어느 자리에서 일하든지 혁명의 대상이 되거나 심판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소속된 사람이나 주변사람들의 본심의 자유를 짓밟는 자리에 서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지도자는 자유의지를 찾아 세워줌으로 창조목적을 완성할 수 있는 책임을 가지고 실적을 세우는 길로 나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혁명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본심의 자유를 중심하고 스스로를 혁명해 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