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그리고 하롱베이

2010. 12. 7. 13:10삶이 깃든 이야기/나의 이야기

사진은 그 자체가 삶의 소중한 추억이고 곧 일기라는 생각이 든다

 

 

 

시대와 사회, 우리의 인생이 그대로 표출된, 나와 주변의 인간관계의 다큐멘터리일 것이다.

 

여행지에서 동료들과 함께 느끼고 추억한 이미지를 공유하고자 컴에 앉았다.

 

 

 

 

 

 

겨울옷을 입고 출발했기에 서둘러 옷부터 갈아입어야 될 것이란 생각은 기우인 듯하다.

 

도착한 하노이는 초가을 날씨, 여행하기엔 최적의 날씨였다.

 

 

 

늦은 시간인지라 이곳에서 숙박 하리라 예상 했지만

 

어둠속을 세시간정도 버스로 더 달려 하롱베이에 도착해서야 호텔에서 여장을 풀고 쉴 수 있었다.

 

 

 

 

 

 

 

공항과 호텔의 기억뿐,

 

늦은 시간 때문일까? 아니면 열악한 전력사정 탓인지,

 

도착한 첫날, 긴 시간 이동을 했어도 이국에서 느끼는 거리의 밤풍경은 전무하다.

 

 

 

피곤하지도 않은지 한방에 모여 늦은 시간까지 술자리가 떠들썩하다.

 

역시 젊음은 좋은 것,

 

 

그 건강함을 부러워하며 샤워를 끝내고 바로 침대에 누었다.

 

날짜가 맞지 않아 함께 하지 못한 아내를 잠시 떠 올리다, 곧 잠에 빠져 버렸다.

 

 

장소가 바뀌면 쉬 잠을 못들 곤 했는데, 어젠 피곤하긴 했나보다.

누가, 떠메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은 잠속에 빠졌다. 잠이 보약이라더니 정말! 아침이 거뜬하다.

 

 

 

신-쨔오 : 안녕하세요, 신- 깜언 : 감사합니다.

 

현지 한국 가이드의

간단한 인사말을 버스에서 배우면서 상쾌한 기분으로 도착한 하롱베이 국립공원은

영화 '인도차이나'와 로빈 윌리엄스의 '굿모닝 베트남'의 배경이 되었던 곳으로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곳.

 

배를 타고 출발한지 10분이나 됐을까?

바라보이는 풍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수많은 섬들이 보여주는 장관은 스펙타클 그 자체이다.

하롱(Halong, 下龍)이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용(龍)이 바다로 내려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설에 따르면,

한 무리의 용들이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했고,

침략자들과 싸우기 위해 내뱉은 보석들이 섬이 되었다고 한다.

베트남의 구심점인 비엣족의 선조는 바다의 용과 산의 요정이 결혼해서 낳은 용의 아들이라는 것,

바로 용이 이 민족의 발원이요, 시원이라 한다.

 

 

아름다운 섬과 바다를 만끽하며, 선상에서 먹는 점심은 그럴 듯 했다.

밥이 나왔는지는 생각이 안 났지만

가재와 게 다금바리 회 등 베트남 과일과 곁들여 술이 얼큰해진 일행은

드디어 선상 노래방을 가동,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노래솜씨가 기막힌 조계장님이 당연 인기.

 

나룻배에서 음료, 과자, 과일 등 다양한 것들을 팔고 있는데

거리장사 어느 곳에서나 그렇듯 여기서도 부르는 가격에서 절대 흥정을 해서 구입을 해야 한다.

가격이 반 정도 뚝뚝 떨어진다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병풍처럼 둘러친 듯

코앞에 다가온 섬에서 애정행각을 벌이던 원숭이가 우리를 의식했는지 황급히 자리를 옮겼다.

 

 

여행을 하루 앞둔 전날 밤 

인터넷에서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역사를  찾아보았다.

 

천 년 전 까지 천년동안,

중국은 지배자가 바뀔 때마다 베트남을 간섭해 왔고 지배해 왔다.

그 영향으로 인해 

독립한 900년 동안 중국의 문화적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어떤 면에서는 우리 한민족하고

그 배경과  흐르는 이념이 비슷하다. 

 

80년 동안 프랑스의 지배 하에서

1954년도에 프랑스를 격파하고 독립을 쟁취했지만

다시 남북으로 갈라져서 민족 상쟁이 이어졌던 근대사까지,

다르다면 미군의 포기로 가속화된 공산정권의 통일.

 

1986년도에 그들은 대외개방과 개혁을 위한 도이머이 정책을 선포한다.

따라서 이곳이 공산세계가 맞나? 할 정도로 베트남인들의 생활상은 자유스럽다.

 

그러나 정치는 사회주의를 포기하지 않았다.

북한 인민군 복장과 흡사한 경찰은 공항사무실에서, 거리에서, 우리를 경직하게 만든다.

 

사회주의란?

지배자들에겐 더할 나위없는 매력일 것이다.

이처럼 단단한 권력의 끈, 자신들의 손으론 결코 그 체제를 놓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언젠가 민중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질 때 민중에 의해서 해결되리란 생각을 해 본다.

 

석회동굴로 이동을 했다.

꿈속을 걷듯, 몽환한 조명과 주고받는 말소리의 울림으로 인해 몽롱해진다.

조금은 시원하게 느껴지는 이 동굴은 여름엔 숨이 막힐 정도로 덥다는 가이드의 설명.

 

 

 

오랜 시간과 바람, 그리고 물이 빛은 조각품들 그 기기묘묘한 치솟은 증유석과

깍아 낸 듯 날카롭게 서 있는 기둥들,

 

가이드가 손짓 하는 방향을 자세히 보니 그곳에 바위는 영락없는 세종대왕의 모습이다.

세종대왕이 친히 이 먼 곳까지 오셔서 그 자리에 위엄 있는 자태로 앉아 계시다.

 

이 석회 동굴은 기르던 원숭이를 찾다가 발견했다고 한다.

 

 

 

청하진 않았지만,

배에 승선할 때부터 우리 일행을 따라온 사진사는 기회 있을 때마다 사진 촬영하기에 바쁘다.

거의 모두, 카메라를 들고 있었지만 1장에 1달러씩이라면서 권유하는 베트남인 사진사의 요구에 따라

우린 돕는다는 마음에 되도록 순순히 촬영에 응했다.

 

 

 

마사지 순서가 저녁식사 전에 있었다.

하롱베이 주위의 섬을 둘러보는 400계단이 넘는 전망대에 오르느라

뭉친 종아리 근육과 여행의 피로가 말끔히 가셨다.

 

마사지 사들은 한 결 같이 작고 어려 보였다. 

하지만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두 시간 동안, 개운하게 몸을 풀어주어

3달러씩 약속했던 팁을 거의모두 5달러씩 주었다.

이 선생은? 어리고 애처러워 10달러 주었다고 내게 귀 뜸

 

하노이 비행장에 야간에 도착해 바로 그 시간에 하롱베이로 이동했으니

3일째 아침, 하노이로 다시 돌아 가는 길이 생소하다.

 

중간 휴게소에서 영업을 하는 사장님은 박광호 해설사님의 친구,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는 친구 둘을 만난 셈이다. 덕분에 제리를 한 봉지 씩 선물로 받았다.

이곳에서 사업하는 한국인들은 한국인을 만났다고 해서 반갑지는 않겠다.

거의 한국인을 대상으로 해서 사업을 하기 때문에 고향친구정도는 돼야 반가울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하노이 시내가 가까워질수록 오토바이가 점점 많아진다.   

지금 생각해도 오토바이 물결은 마치 파도처럼, 스펙타클하다. 오히려 하롱베이의 아름다운 섬들보다

더 강한! 여운을 남겼다.

 

베트남은 70년대 새마을 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던

우리나라의 지난날을 보듯,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신흥시장으로서 급부상 중이다.

 

오랜, 전쟁과 폐허 속에서 먹고 살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좁은 방 화장실에서까지 돼지를 기르며 입에 풀칠했다던 때에

품었을 법한 독한 마음과 배움에 대한 전통이 성장엔진에 에너지를 대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하노이 시내의 대로를 물결치듯 누비는 오토바이 행렬이 더 역동적으로 보인다.

 

뉴스 시간에나 들었던 역사적 인물인 호치민.

그의 시신을 안치해 놓은 바딘광장의 묘지를 보면서 베트남 사람들의 호치민의 대한 사랑이 느껴진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다가 죽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삶과

각종 종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천국이니, 극락이니, 지옥이니, 하는

저 세상의 삶을 믿는 사람들의 삶의 사고방식은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기독교 국가인 프랑스와 미국과의 오랜 항전을 했던 호치민은

정말 신이 없다고 하는 맑스니즘을 신봉하는 공산주의자 였을까?

한 마디로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은 호치민을 민족주의자였지 공산주의자는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외세에 눌려 어려웠던 프랑스의 압박시절에

베트남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공산주의를 수단으로 이용했을 뿐.

실제 그는,

공산주의의 종교 배척에도 유교를 옹호하고 받아드려

소련의 스탈린으로부터 미움을 사기도 한 것이 그 좋은 예라 하겠다.

 

 

 

베트남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한기둥사원은 생각보다 그 규모가 작았다.

사원 기둥이 하나라서 한 기둥 사원 또는 일주사라고도 한다.

이곳에서 기도를 하면은 아들을 점지해 준다고 하여

신혼부부나 친정엄마들이 베트남 곳곳에서 한기둥 사원으로 기도를 하러 온다고 한다.

 

 

 

 

베트남이란 이 나라에서 느껴지는 첫 인상은 나는 개인적으로 매우 좋았다.

젊고 역동적인 것,

젊다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아닌가?

 

그 가능성은

국민소득 2만 달러 문턱에서 제자리걸음을 해온 한국의 가능성을 넘어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정화해설사님이

전화번호와 주소를 적은 그 메모장을 소중히 받아들고 눈망울을 빛내던 소녀,

식당에서 써빙을 하던 어린 소녀의 코리언드림에서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겁 없는 세대로서의 강인하고 활기찬 인상을 받았다.

 

 

 

2박3일의 짧은 일정동안 다가왔던 많은 풍경들,

그리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 작고 날씬한 아름다운 모습의 씩씩한 젊은이들,

거리, 바다, 섬, 이국적인 건물들, 쉽게 접할 수 없었던 과일들,

 “그렇기 때문에”

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던 부산출신 가이드의 독특한 사투리도 인상에 남는다.

 

박경우님을 보고 자신의 이상형이라고 했던 현지인 가이드가 떠 오른다.

서울대학이 세계 100위권에도 못 든다고 하던데

베트남엔 100위권 안에 드는 대학이 두 곳이라고 한다. 그중 37위권에 든 대학교를 졸업한 인재다.

그렇기에 이미 봉사료가 지불 됐음에도 조계장님은 그들에겐 결코 적지 않은 100달러를 선뜻 내어 주었다.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에서 함께 기쁜 우리 모두의 위신을 세워 주었다.

 

 

언제 또 다시, 이곳을 찾을 수 있을까?

아쉬움을 뒤로하며 두 번째 방문국인 캄보디아 씨엠립을 가기위해 우리를 태운 버스는 공황으로 향했다.

 

 

 

 

 

                                                                         하롱 프라쟈 호텔

 

 

 

 

 

 

 

 

 

                                                             아침에 7층 룸에서 바라본 정경

 

 

 

 

 

 

 

 

 

                                                                 호텔에서 부페식 아침식사

 

 

 

 

 

 

 

 

 

무려 6시간을 이 배를 중심하고

모터보드, 노젓는 배를 갈아 타면서 

아름다운 섬과 주변 바다를 항해했다.

 

 

 

 

 

 

 

 

이순신 장군의 해전이 연상된다.

 

 

 

 

 

 

 

 

 

 

갑판에 나와 행복감을 느끼며

 

 

 

 

 

 

 

 

 

일명 키스바위

이곳에서 연인이 키스를 나누면

두사람의 인연이 영원해 진다는 곳

 

 

 

 

 

 

 

아름다운 대 자연속에서

모두가 순수해 지리라 

어린아이처럼 싱글벙글.

 

 

 

 

 

 

 

 

 

 

 

 

 

 

 

 

 

 

 

 

하롱베이의 처녀 뱃사공

 

 

 

 

 

 

 

 

 

동굴을 통과하면

사면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천혜의 아름다운 요새

 

 

 

 

 

 

 

 

 

배로 장사하는 현지인

 

 

 

 

 

 

 

 

 

티톱은 러시아인의 이름으로 호치민 수상의 대학 친구란다.

젊은 날 서로 목표를 세워 호치민은 수상이 되었고

TI TOP도 우주 비행사가 되었는데

호치민이 수상이 되었을 때

이 섬을 요구 했지만 국민들의 것이기 때문에 줄 수 없고 이름을 붙여 주었다고 한다.

 

 

 

 

 

 

날씨가 선선한데도 티톱에는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400계단을 올라선 정상에 육모정이란 정자가 있다.

그곳에서의 포퍼먼스

 

 

 

 

 

 

 

 

 

하롱베이에다 수천개의 아름다운 섬과

바다를 선물한것도 모자라

환상의 석회동굴까지 神의 축복이 넘친곳이다.

 

 

 

 

 

 

 

 

우리가 먹다남은 술을

아빠에게 드리고 싶어 달라고 요구하는 베트남처자의 효심에 모두가 감탄해서 팁까지 주었다.

한국에 오고 싶으면 도와 주겠다고 유선생님이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주자

적극적이던 베트남처녀, 아마 연락이 올것같다.

 

 

 

 

 

 

 

이 식당의 사장님이 박광호해설사님의 친구

15년만에 반가운 해우

저녁늦게 술과 김치를 호텔로가져와서 고향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하노이 가는길에 휴계소, 이곳에 사장님도 박해설사님의 친구다.

선물로 제리를 하나씩 받았다.

40대의 의욕적인 삶이 엿 보인다.

 

 

 

 

 

 

 

 

베트남의 풍경중 가장 인상적인 것중 하나가

어딜 가나 오토바이가 넘쳐난다는것,

 

 

 

 

 

 

 

 

 

                                                                              (나를 태우고 다녔던 청년)

자전거를 개조한 씨클로(베트남 전통인력거)를 타고

한시간여 동안

 

베트남의 다양한 볼거리와 문화를

직접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차량과 오토바이와 씨클로가 엉켜 질주하는 모습이

다소 위험스러웠다.

 

 

 

 

 

 

베트남 왕의 동상

 

 

 

 

 

 

 

 

 

 

하얀 연미복의 신랑과 머리를 단장하는 신부의 모습

 

 

 

 

 

 

 

 

 

 

 

여기선 오토바이 사러 간다를 혼다 사러 간다고 한다.

그만큼 온통   스즈끼와 혼다뿐

대우의 김우중씨가 구속됐을때

베트남 발전에 일조를 했다는 의리를 지켜

베트남 수상은 구명요청을 우리 정부에 했지만 묵살되자

한동안 한국산제품 불매운동을 한적이 있단다. 그때 일산이 자리잡았다고한다.

 

 

 

 

 

 

점심시간 식당 내부보다는 대부분 식당앞

길거리에서 삼삼오오 모여앉아 점심을 먹는다.

베트남 사람들은 생각과는 달리 미남 미녀였다.

 

 

 

 

 

 

 

 

 

바딘광장에서

 

 

 

 

 

 

 

 

 

 

베트남 현지출신 가이드와 함께

 

 

 

 

 

 

 

 

 

 

 

한기둥 사원에서

 

 

 

 

 

 

 

 

 

 공황가는길, 연꽂 장식이 눈에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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