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철갑옷

2012. 6. 1. 22:24삶이 깃든 이야기/문화유산

임진강변 고구려 군사 시설인 무등리 2보루에서

고구려 철갑옷이 발견 돼 당시 학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2011년 5월18일

고스라니 주저앉은 철갑옷의 실물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실물로 나왔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철갑옷의 유물은 조각만 일부 발견 되거나 고구려 고분 벽화의 그림을 통해서만 그 실체를 추정해  왔었기 때문입니다.

작은 철편 조각을 가죽 끈으로 엮어 만든 찰갑(札甲),인데요

 

지난 2009년

경주 쪽샘 지구에서도 발견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신라 장수의 옷으로 밝혀졌습니다.

때문에 고구려 철갑옷이 온전한 형태로 발견된 것은 동아시아를 통틀어 최초입니다.

기존의 삼국시대 고고학 연구에 큰 활기를 불어 넣을 것입니다.

 

 

 

성벽에서 일부 튀어 나온 군사 시설을  치라고 합니다. 이러한 치는 고구려 성곽에서 공통적으로 확인 되는 특징입니다. 무등리 2보루에서도 이러한 치가 두곳에서 확인이 됐는데요.

그 치에는 독특한 방식,                                                                                                                                                                                                                                                                      <사진 제공= 문화재청>

즉 석축 성벽 앞쪽으로 5단 정도의 높이로 점토를 바르고 장작을 피워 구워서 성벽 안과 밖을 견고하게 하고

취약한 부분은 이중으로 성벽을 쌓은  특이한 방식입니다.

 이렇게 방어에 공을 들인 무등리 2보루는 그 규모에 비해서 중요한 성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발견 된 유물은

시루와 와편 그리고 토기조각, 화살촉, 많은 량의 탄화미, 석축성벽 이전에 사용 했던 목책 위주의 방어 시설 유구 등이확인이 됐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북한에 있어서 볼수는 없지만 사진으로 전해지는 쌍영총과 개마총 등 고구려 고분 벽화에는 철갑옷으로 무장한 무사가 말을 타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을 자세히 보면 말 꼬리 부분에 공작처럼 휘날리는 깃발을 달고 있습니다.

 

그 화려한 깃발이 과시용인지 아니면 단순 장식용인지 아직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림으로만 존재 했던 이른바 사행상철기(蛇行狀鐵器)라고 하는 마구류가 처음으로 완전한 셋트로 출토가 된 것입니다.

 

                                  

사행상 철기 셋트는 말에 고정 시키는 벨트모양의 철기 부분과

깃발을 꼿는 기꼿이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서울대 박물관은 3차 발굴 조사중

 남쪽 성벽 바깥쪽과 그리고 북쪽성벽 외곽에서 각각 1점씩 모두 2점의 기꼿이 유물 일괄 세트를 발굴을 한 것입니다.

 

중국 지린성 지안시에 있는 고구려 환도산성 궁전지에서 기꼿이 관련 유물 일부가 용도미상의 철기로 보고된 적이 있지만 온전한 실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 낸 것은 이번이 처음 입니다.



 

 

 

 

                                                                                                                                                                     <사진 제공= 문화재청>

무등리 2보루는 임진강 강변 서쪽에 자리 잡고 동쪽을 경계 하는 형세입니다.

해발 고도는 높지 않지만 강 건너 편의 움직임을 한눈에 조망 할수 있는 요충지로서 유진나루 유연진 일대를 통제하는 역활을 수행 한 것으로 보입니다.

                                                                                                                                                                  1991년도에는 국립 문화재 연구소에서 98년도엔 토지 박물관에서 각각 지표 조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2010년에는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 했습니다.2011년에 2차 2012년에 3차까지 발굴조사를 했습니다.

 

발견된 건물의 흔적이라든지 둘레325미터 보루의 규모를 볼 때 이곳엔 약 100명 정도의 군사가 주둔 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고구려에서는 100명의 군사를 지휘하는 장수를 당주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당주라고 하는 장수가 사용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유물이 묻혀 있는 모습과 그 위치는 많은 역사적 사실과 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고구려의 강력한 힘의 상징인 철갑옷

 

이런 보루에 있는 갑옷은 중장기 병의 갑옷은 아니고 지휘관 급이 방어용으로 착용한 갑옷이라는 것입니다.

 

철갑옷으로 무장한 채

임진강변의 한 성곽에서 기동성 있는 전술을 구사하며 동북아시아 최강의 고구려군 장교라는 자신감에 넘쳐 있었을

당주라고 하는 지휘관의 철갑옷이 선 상태에서 그대로 주저 앉은 채 발견이 됐다는 것은

뭔가 급박한 최후의 상황을 맞이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서기 668년

나당 연합군에 의해서 평양성은 함락되고 고구려는 결국 멸망을 합니다.

그 멸망의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듯 통째로 묻힌 채 발견 된 철갑옷은 평양성 함락과 운명을 같이 해서

무등리 보루 최후의 날을 증명하는 흔적임이 분명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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