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리 2보루

2012. 5. 20. 22:30삶이 깃든 이야기/문화유산

바로 집 뒤를 감싸고도는 고성산, 고구려 보루에서 언제부턴가 유적 조사단이 꾸준히 발굴하는 모습을 봐 왔는데 온전한 상태의 철 비늘 갑옷이 나왔다고 방송을 타자 이준영씨 이윤승씨 김승일씨 한정순씨가 우리 집으로 모였다.

 

불에 탄 군량미 발굴에 이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고구려 장수의 철갑옷. 그동안 벽화를 통해서만 그 모습을 짐작 했다고 하는데 이번 발굴로 온전한 형태를 확인하게 됐단다.

고대사 연구와 고구려 연구에 귀중한 사료가 될 것이다.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내일이라도 당장 이곳을 찾는다면 해설사로서 설명을 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자료를 뒤져 대략 정리(시나리오)를 해 보았다

 



 

철갑옷이 발견된 이날은 2011518일 수요일

 

고스라니 주저앉은 철갑옷의 실물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

실물로 나왔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동안 철갑옷의 유물은 조각만 일부 발견 되거나 고구려 고분 벽화의 그림을 통해서만 그 실체를 추정해 왔었기 때문이다.

                                                                                                                                  

작은 철편 조각을 가죽 끈으로 엮어 만든 찰갑(札甲),인데

 

지난 2009

경주 쪽샘 지구에서도 발견된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신라 장수의 옷으로 밝혀졌다.

때문에 고구려 철갑옷이 온전한 형태로 발견된 것은 동아시아를 통틀어 이곳이 최초다.

 

기존의 삼국시대 고고학 연구에 큰 활기를 불어 넣을 것이다.

 

성벽에서 일부 튀어 나온 군사 시설을 치라고 하는데 이러한 치는 고구려 성곽에서 공통적으로 확인 되는 특징인 것. 무등리 2보루에서도 이러한 치가 두 곳에서 확인이 됐다.

그 치에는 독특한 방식 즉 석축 성벽 앞쪽으로 5단 정도의 높이로 점토를 바르고 장작을 피워 구워서 성벽 안과 밖을 견고하게 하고 취약한 부분은 이중으로 성벽을 쌓은 특이한 방식이다.

 

이렇게 방어에 공을 들인 무등리 2보루는 그 규모에 비해서 중요한 성임을 알 수가 있다.

 

발견 된 유물은

시루와 와편 그리고 토기조각, 화살촉, 많은 량의 탄화미, 석축성벽 이전에 사용 했던 목책 위주의 방어 시설 유구 등이 확인이 됐다.

 

그리고 그동안 북한에 있어서 볼 수는 없지만 사진으로 전해지는 쌍영총과 개마총 등 고구려 고분 벽화에는 철갑옷으로 무장한 무사가 말을 타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그 그림을 자세히 보면 말 꼬리 부분에 공작처럼 휘날리는 깃발을 달고 있다.

그 화려한 깃발이 과시용인지 아니면 단순 장식용인지 아직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렇게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림으로만 존재 했던 이른바 사행상철기(蛇行狀鐵器)라고 하는 마구류가 처음으로 완전한 셋트로 출토가 된 것.


 

사행상 철기 셋트는 말에 고정 시키는 벨트모양의 철기 부분과 깃발을 꽂는 기꽂이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서울대 박물관은 3차 발굴 조사중 남쪽 성벽 바깥쪽과 그리고 북쪽성벽 외곽에서 각각 1점씩 모두 2점의 기꼿이 유물 일괄 세트를 발굴을 한 것이다.

                                                                                                                      

중국 지린성 지안시에 있는 고구려 환도산성 궁전지에서 기꽂이 관련 유물 일부가 용도미상의 철기로 보고된 적이 있지만 온전한 실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

 

무등리 2보루는 임진강 강변 서쪽에 자리 잡고 동쪽을 경계 하는 형세이다.

해발 고도는 높지 않지만 강 건너 편의 움직임을 한눈에 조망 할수 있는 요충지로서 유진나루 유연진 일대를 통제하는 역활을 수행 한 것으로 보인다.

 

1991년도에는 국립 문화재 연구소에서 98년도엔 토지 박물관에서 각각 지표 조사를 했다. 그리고 2010년에는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했다. 2011년에 22012년에 3차까지 발굴조사를 했다



 

발견된 건물의 흔적이라든지 둘레325미터 보루의 규모를 볼 때 이곳엔 약 100명 정도의 군사가 주둔 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고구려에서는 100명의 군사를 지휘하는 장수를 당주라고 한다. 그렇다면 당주라고 하는 장수가 사용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유물이 묻혀 있는 모습과 그 위치는 많은 역사적 사실과 그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구려의 강력한 힘의 상징인 철갑옷 이런 보루에 있는 갑옷은 중장기 병의 갑옷은 아니고 지휘관 급이 방어용으로 착용한 갑옷이라는 것이다.

 

철갑옷으로 무장한 채 임진강변의 한 성곽에서 기동성 있는 전술을 구사하며 동북아시아 최강의 고구려군 장교라는 자신감에 넘쳐 있었을 당주라고 하는 지휘관의 철갑옷이 선 상태에서 그대로 주저앉은 채 발견이 됐다는 것은 뭔가 급박한 최후의 상황을 맞이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서기 668

나당 연합군에 의해서 평양성은 함락되고 고구려는 결국 멸망을 한다.

그 멸망의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듯 통째로 묻힌 채 발견 된 철갑옷은 평양성 함락과 운명을 같이 한 무등리 보루 최후의 날을 증명하는 흔적임이 분명 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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