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암대지 형성 후 전곡리의 모습

2012. 4. 15. 13:08삶이 깃든 이야기/문화유산

 

홍적세(제4기) 중기 혹은 후기 무렵 발생한 격변적인 대규모 화산 활동으로 한탄강 일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재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오리산을 중심으로 여러차례에 걸쳐 용암 분류가 있었으며 엄청난 양의 용암이 지표를 뚫고 나와 옛한탄강을 메우고 주변지역으로까지 확산되어 강을 중심으로 주변지역은 거대한 용암대지로 변모했습니다. 강을 완전히 메운 용암이 멀리는 파주 초평도 부근까지 흘러내렸기 때문에 용암 분류 후 한탄강의 유로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띌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용암분류 완료 후 반고체 상태의 용암은 대기권의 찬공기와 접촉하면서 빠르게 식으며 응고되었는데, 용암 표면에 포함되어 있던 공기방울들은 응고과정에서 대기로 방출되면서 용암 표면에 작은 기공들(흔히 곰보자국, 이로 인해 현무암을 곰보돌이라고도 합니다) 이 만들어 지고 용암의 내부는 외부에 비해 천천히 식기 때문에 비교적 치밀한 조직 구조를 가지게 됩니다. 동시에 개방된 환경에서 용암이 비교적 빠른 속도로 식게 되기 때문에 용암 상부는 마치 건조한 날씨에 땅이 갈라지듯이 균열이 가게 됩니다. 이 때의 균열 구조는 가장 안정적인 분자구조로 알려져 있는 6각형 모양으로 갈라지게 되는데 이후 침식을 받게 되면 이 균열부를 따라 현무암이 떨어져 나가면서 주상절리를 이루게 됩니다.

 

용암이 식은 후의 용암대지는 비교적 편평한 지형을 이루었으나 지형에 따라 지반이 함몰되면서 구덩이가 생기기도 하였으며 대기 중에 노출된 현무암이 자연 풍화 작용에 의해 굴곡이 생기기도 하였습니다. 이 곳에 하천운동이 재개되어 강물이 유입되게 되면 강은 이전의 강유로가 완전히 없어졌기 때문에 용암대지 위에 새로운 강이 흐르는 길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초기에는 뚜렷한 강줄기가 없기 때문에 용암대지 위에 매우 복잡한 하계망을 이루며 강이 흘렀습니다. 간혹 용암대지가 함몰된 곳에서는 작은 호수가 만들어지기도 하였으며 영평천과 차탄천 상류지역은 용암댐의 작용으로 이전에 설명드렸듯이 거대한 호수가 만들어졌습니다.

그간 장기간에 걸친 조사를 통해 작성된 전곡리유적 일대의 현무암 분포도를 살펴보게 되면 현무암의 고도차가 지형에 따라 상당한 정도로 차이가 나며 강이 흐르던 곳은 비교적 긴 띠를 이루며 현무암이 침식되어 있는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지점에 따라 강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음을 지시하는 모래층과 실트층이 두텁게 쌓여 있는 곳이 있는 반면 현무암반과 암반풍화토 상부로 점토층이 곧바로 퇴적되어 있는 곳도 있기 때문에 용암 분류 이후 현재와 같은 한탄강의 유로 만들어지기 전 용암대지 상부를 흘렀던 강의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게 해줍니다. 이와 더불어 발굴조사된 여러 발굴피트를 검토해 보면 간혹 현무암반 상부에 50cm 내외의 매우 작은 소립자의 호소성 퇴적물(고인물에 대기 중의 미세 먼지 등이 가라 앉아 쌓인 퇴적물)이 관찰되는 지점들이 여러군데 있기 때문에 작은 웅덩이들이 곳곳에 습지를 이루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용암 분류 이후 한탄강의 하천운동이 재개되기 시작한 초기에는 강은 오늘날 우리가 바라보는 강의 모습과는 달리 한탄강은 용암대지 상부로 흘렀으며 강이 흐르는 곳은 모래와 실트와 같은 하천퇴적물이 지속적으로 쌓여 나가고 주변 지역의 범람원은 고운 점토가 퇴적되었습니다. 용암대지 곳곳에는 작은 물웅덩이가 형성되어 습지를 이루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점차 여러갈레로 흐르던 강줄기들은 한곳으로 모여 다시 큰 강줄기들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강의 유로가 안정을 되찾게 되자 강은 기반암을 깎고 하방침식을 시작할 준비를 하였습니다. 이 때 비교적 지반이 약한 곳을 찾아 강의 유로가 움직이게 되었는데 현무암이 기반암인 화강암 또는 화강편마암과 부정합으로 겹쳐져 있는 곳은 다른 곳에 비해 비교적 쉽게 물이 뚫고 들어가 물줄기를 만들기 좋았기 때문에(현무암은 다른 암석에 비해 침식에 약한 암석이기도 하지만 서로 다른 유형의 암석들이 완전히 합쳐지지 못하고 겹쳐져 있는 곳(부정합면)은 그 결을 따라 미세한 금이 존재하기 때문에 더 쉽게 침식받게 됨) 이곳으로 강의 유로가 후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늘날 한탄강의 모습을 잘 살펴보면 강변에 발달한 주상절리는 대부분 강의 한쪽면에만 주상절리가 발달하고 그 반대쪽은 기반암인 화강암과 화강편마암 노두가 침식되어 노출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강이 후퇴하기 시작하자 이전에 강이 흐르며 모래와 실트가 쌓이던 곳과 호소성 퇴적물이 쌓이던 곳은 강에서 멀어지면서 범람원이 되었는데, 이곳에 고운 점토가 퇴적되었습니다. 강이 본격적인 하방침식을 시작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유로와 모습을 갖추고 용암대지 하부를 흐르게 되자 더 이상 용암대지 위에 하천퇴적물이 쌓이지 않았습니다. 수만 혹은 수십만년 지난 구석기 유적이 한탄강 일대의 용암대지 상부에 이처럼 잘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장기간에 걸친 유적의 형성과정에서 용암대지라는 이와 같은 독특한 지질사적 배경으로 인해 대규모 유적의 변경을 수반할 수 있는 하천운동이 유적 형성 이후에 영향을 미칠 여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전곡리유적의 형성과정은 이처럼 용암분출이라는 격변적인 지질운동을 겪고 난 이후 새로운 강줄기가 만들어지고 하천퇴적물에 의해 용암대지 전반에 걸쳐 고운 점토가 퇴적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 고인류의 점거가 시작되는 시점은 아마도 하천운동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 용암대지 전반이 흙으로 뒤덮여 새로운 식생이 출현한 이후 쯤이라고 생각됩니다.

 

글 : 강상식 학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