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성벽 축조 방법

2012. 4. 15. 12:29삶이 깃든 이야기/문화유산

고구려 사람들은 특히 4가지를 중히 여기고 좋아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첫째, 노래를 잘하며 춤을 좋아하는 것이며, 둘째 장례를 후하게 치르는 것을 중시하는 풍습, 세째 무와 용맹함을 숭상하는 것, 마지막으로 산성을 축조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처럼 고구려 사람들은 개국 초기부터 산성을 쌓아 대외 세력에 대한 영토 보존에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런 점은 고구려의 도성 방어 체계에 잘 나타나는데, 항상 고구려의 도성은 이성방어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구려의 두번째 도읍인 국내성의 경우 압록강변의 평지에 위치하고 있는데, 유사 시를 대비하여 국내성이 내려다 보이는 높은 산 정상에 환도산성을 구축하였습니다. 이처럼 고구려의 도성은 평상 시에 사용하는 곳과 유사시를 대비한 산성의 이원적 체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런 도성 방어 체계는 초기 백제 도성에서도 관찰되는데, 한강변의 평지에 풍납토성 위치하고 인근의 야산 정상에 몽촌토성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도성을 제외한 국경 방어를 위한 방어성곽은 대부분 산성들입니다. 이처럼 고구려 사람들은 산성을 오래전부터 쌓고 중요 시 여겼기 때문에 다른 그 어떤 민족보다 산성 축조 기술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그럼 고구려 사람들은 어떻게 산성을 견고하게 쌓았을까요? 지금부터 고구려 성곽 축조법의 비밀을 염탐해 보겠습니다.

1. 굽도리 조성과 들여쌓기

굽도리는 성벽의 기초를 이루는 부분입니다. 굽도리 상부로 높은 석축 성벽이 올라가기 때문에 성벽이 내리 누르는 하중을 지탱해야 하는 성의 가장 중요한 기초부분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대개 굽도리 성돌은 다른 성돌들보다 크고 두꺼운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야 엄청난 하중을 잘 견딜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구려 사람들은 굽도리 조성에 매우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는데, 상부의 하중을 분산시키기 위해 또 하나의 기술적 부분을 가미합니다. 그것이 바로 들여쌓기 입니다. 돌의 들여 쌓기는 고구려의 후기 계단식 적석총에도 적용되는 바이지만 아래에서 부터 위로 올라갈 수록 조금씩 들여쌓아 마치 계단 모양으로 돌을 쌓는 방식입니다. 이 때, 성돌의 쌓는 면 상부를 깎아 밖으로 튀어 나온 부분의 끝을 조금 높게 하고 안으로 가면서 낮게 깎아 하중으로 성돌이 밀리더라도 높은 부분에 걸려 밖으로 튀어 나가지 않게 하였습니다. 이런 기법은 장군총과 같은 계단식 적석총에도 적용됩니다.

국내성 계단식 굽도리

호로고루 동벽 계단식 굽도리

2. 그렝이 공법

그렝이 공법은 고구려 성곽 축조의 매우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측면을 잘 보여주는 기법입니다. 석축성벽은 위로 엄청난 무게의 성벽이 올라가기 때문에 기초부 조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따라서 고구려 사람들은 성벽을 축조하기 전, 기초부를 다지는데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대개 땅을 기반암까지 깊게 파서 기반암 위에서부터 굽도리를 쌓기도 하며 기반암에서 부터 굽도리면까지 판축을 하여 단단하게 땅을 다지기도 합니다. 후자의 경우는 당포성이나 호로고루에서도 관찰되고 있습니다. 기초가 부실할 경우 성벽의 하중으로 지면이 주저 않아 전체적인 성벽이 기울거나 무너질 위험이 크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렝이 공법은 이런 기초 다짐의 문제를 해결하고 암석이 많이 분포하는 산간지역에서 효율적으로 성을 쌓게 해주는 방법입니다.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성벽이 가는 방향에 큰 암반이 지표면 위로 노출되어 있으면 이를 피해가거나 깎아서 성돌을 쌓는 것이 아니라 암반의 모양에 맞추어 그 위에 성벽을 쌓거나 그 모양대로 성돌을 다듬어 쌓는 방식입니다. 이런 방식은 이후 신라의 성벽 축조에도 영향을 주며 불국사와 같은 사찰 등의 건물 축조에도 적용되기도 합니다.

당포성 동벽 하부 기초 판축부

오녀산성 동벽 옹성의 그렝이 공법

연천 수철성 동벽 그렝이 공법 적용 예

수철성의 경우 현재까지 신라 산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만약 성벽의 축조 세력이 신라라면 고구려의 축성법을 받아들인 좋은 예에 해당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3. 외면 쌓기와 양면쌓기, 그리고 이중성(겹성)

호로고루나 당포성, 은대리성에서 볼 수 있듯이 고구려는 지형을 이용해 매우 경제적으로 성을 쌓았습니다. 오녀산성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천혜의 자연조건을 이용해 자연 지형과 지세를 적절히 이용해 취약한 부분에만 성벽을 쌓아 성의 방어력을 극대화했습니다. 이전 글에서 남한 지역 고구려 보루의 특징에서 언급했듯이 산 정상부의 지형을 이용해 성을 쌓기 때문에 여장과 같은 별도의 시설없이도 성의 방어력이 유지되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을 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구려의 산성들은 대개 외면쌓기가 주를 이룹니다. 외면쌓기는 산의 사면부에 기대어 한쪽만 성벽을 쌓는 방법으로 성을 쌓는데 필요한 석재, 시간, 노동력을 대폭 절약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산 정상부 자체가 급경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경사면을 이용해 성을 쌓게 되면 매우 견고하고 높은 방어력을 갖춘 성을 축조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간혹 산의 계곡부와 같이 외면쌓기를 적용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양면쌓기를 하여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성의 모습으로 축조합니다(흔히 수원화성, 서울 도성과 같이 평지에 높게 쌓은 성벽과 같습니다). 연천의 고구려 평지성들인 호로고루, 당포성, 은대리성의 동벽 역시 성벽을 기대어 쌓을 수 없는 지형지물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전형적인 형태는 아니나 양면쌓기가 적용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구려성의 견고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방법 중 하나는 바로 이중성(겹성)입니다. 경사가 심한 곳이나 쉽게 붕괴 우려가 있는 곳은 체성벽의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이중으로 성벽을 만드는 방법입니다. 간혹 이러한 방법이 변형되어 체성벽의 하중을 분산시키기 위해 당포성이나 호로고루와 같이 보축성벽을 체성벽 외벽에 붙이기도 하고 소규모 성벽의 경우(특히, 보루의 경우) 무등리 2보루에서 볼 수 있듯이 굽도리 외면에 일정 높이까지 진흙을 경사시게 쌓아 성벽의 하중을 지탱할 수 있도록 보충하고 진흙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 불을 질러 흙을 굳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당포성 동벽 3단 보축벽

4. 성돌의 모양 "쇄기형 성돌"

고구려의 매우 뛰어난 축성법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는 바로 쇄기형 성돌의 사용이라 하겠습니다. 쇄기형 성돌은 그림에서 보듯이 돌을 다듬어 바깥쪽으로 노출되는 면은 넓게 하고 뒤로 갈 수록 좁게 하여 마치 쇄기처럼 만든 성돌입니다.

대개 쇄기형 성돌은 성벽의 가장 바깥쪽면에 사용되는 성돌입니다. 성벽의 바깥쪽을 이 성돌로 쌓고 뒷면에 이 성돌에 끼게 지그재그로 성돌을 끼워 넣기 때문에 성돌들이 서로 맞물려 매우 견고한 성벽을 이룰 수 있으며 혹, 외부 성돌이 바깥으로 빠져 나가더라도 성벽이 지탱될 수 있는 구조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오녀산성 서문 성벽

보시다 시피 외부 성돌은 떨어져 나갔지만 속쌓기한 성돌을 지그재그로 물려 쌓아 올렸기 때문에 성벽이 붕괴되지 않고 잘 버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연천 일대의 신라산성들을 둘러 보면 외측 성벽이 붕괴된 성벽은 거의 대부분 내축 성벽까지 무너져 성의 원형이 거의 훼손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신라산성은 고구려의 축성법을 받아들여 두텁게 내축하여 성벽의 견고성이 매우 뛰어난 것으로 정평이 나 있으나 고구려의 성돌들이 매우 견고하게 맞물려 쌓아 올려 진 반면, 신라 성벽의 내축부는 막깍은 돌을 체성벽 뒤에 채워넣은 형태로 되어 있기 때문에 체성벽이 붕괴되면 성벽이 버티지 못하고 우루루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9 보장왕 6년 기사를 보면 당 태종이 고구려로 군사를 출동시키려 할 때 조정의 논의 중에 '고구려는 산에 의지하여 성을 쌓기 때문에 갑자기 공략하기가 불가합니다'라고 하여 반대한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고구려의 산성은 공격하기가 어렵고 견고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습니다.

현재 남한 지역에 남아 있는 고구려의 산성은 대개 보루 형태의 아주 작은 규모로 대부분 나타나기 때문에 중국 동북부 지역의 고구려 본토에서 볼 수 있는 웅장한 고구려 산성들의 모습과는 많은 차이가 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고구려의 축성 기법은 남한 지역의 고구려 유적들에서도 같이 관찰되는데, 특히 연천의 고구려 유적들 중 호로고루나 당포성과 같은 평지성들은 고구려의 도읍지였던 국내성 일대와 평양성 일대에서 나타나는 고구려만의 독특한 성곽 축조법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아차산이나 양주 일대의 보루군들보다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구려의 산성 축조법은 이후 신라와 백제에 차용되어 사용됩니다. 특히 신라의 경우 석축성벽 축조에 고구려 기법을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이후 고려와 조선에 이르기까지 산성 축조의 가장 기본적인 기술과 특징들은 모두 고구려 산성 축조법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고구려 축성법은 우리 민족 고유의 성곽 축성법의 기원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글쓴이: 강상식 학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