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적세에서 충전세로의 전이 "문명의 발생" 1편

2012. 2. 15. 12:35삶이 깃든 이야기/문화유산

약 22,000년~18,000년 전 극성기를 맞이한 최후빙하기는 이후 점차 따뜻해져 약 10,000년 전을 기점으로 종료됩니다. 최후빙하기의 종료 시점을 대개 구석기시대의 종말 시점으로 연구자들은 설정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구석기시대 동안 지구의 기후는 끊임없이 변하며 일정한 빙하주기 패턴을 보여왔고 수많은 간빙기를 거쳤음에도 왜 유독 최후 빙하기의 종료 시점이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분기점 중 하나로 설정되어 온 것일까요?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석기시대의 의미 정립, 전환기의 환경 변화와 이로부터 야기된 생계경제의 변화 패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구석기시대는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긴 오래된 과거의 역사로 그 어떤 시대보다 오랜기간 지속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가장 알려진 것이 없는 과거의 사실이기도 합니다. 과연 구석기시대를 어떻게 의미 부여하고 이해해야 할까요? 이 문제는 전곡리 유적으로 대표되는 연천의 구석기 유적에 대한 인식 제고와 스토리텔링의 가장 중요한 축을 형성하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구석기시대를 한 인간의 생장사와 결부해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남녀간의 생물적 교합으로 탄생한 한 아이가 있습니다. 이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본능적 욕구 해소입니다. 끊임없이 엄마 젖을 찾고 배고프면 울고 배부르면 자는 생활이 반복되지요. 어떻게 보면 가장 본능적인 행동에 충실할 때입니다. 이 때는 굳이 사회적 규범, 관습, 제도 등등 인간이라면 당연히 갖추어야 한다고 규정되어온 것들에서 자유롭습니다. 점차 아이가 커가며 돌이 지날 무렵 두발로 걷게 되고 옹알이를 할 때부터는 점차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해 외부 세계를 탐닉하기 시작합니다. 공간을 인지하게 되고 시각을 통해 사물을 구분하기 시작합니다. 이 때부터 이 아이의 인식체계는 크게 확장되어 살아가면서 갖추어야 할 다양한 정보와 경험들을 매우 빠른 속도로 습득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사회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규범의 틀이 정립되게 됩니다. 뇌의 성장속도도 매우 빨라져 채 5세가 되기 전 인간의 뇌는 완전히 성숙한다고 합니다. 이 기간 동안 인간은 이후 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가장 기초적인 지식과 행위 양식들 습득하고 삶의 프레임을 형성하게 됩니다. 즉 5세 이전에 생성된 인성과 경험, 인지능력 등이 향후 학습 및 사회 능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쳐 그 이후의 인간의 생애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 "세살 버릇 여든 간다"는 우리말 속담도 괜한 이야기가 아닐겁니다.

구석기시대를 인간의 생장사에 비유한 것은 구석기시대가 이후 인간 역사의 흐름을 좌우할 가장 기본적인 체계가 만들어진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갓 태어난 아기와 같이 지구상에 첫발을 내딛힌 두발로 걸어다니는 최초의 포유류는 두발로 걷는 것 외에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자질(기술 체계, 언어, 문화, 교육, 규범 등)들을 갖추지 못한 그냥 동물이었을 것입니다. 이 존재가 홍적세라는 매우 급변적인 기후 변동을 이겨 내며 기나긴 인고의 세월과 파격적인 진화의 과정을 거쳐 인간으로 탄생하기 까지는 매우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신체적으로 유약한 체질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던 이 최초의 호미니드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무리를 지었으며 나약한 신체를 보완하기 위해 도구를 제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생태계의 많은 동물군들이 그러하듯 피식자들은 대개 무리를 지어 군집을 이루게 되지만 이 호미니드들은 다른 동물군들과는 다른 독특한 사회조직 체계를 갖추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마도 이들이 채택한 조직 체계는 이후 이들이 생태계의 다른 그 어떤 동물군들과 다른 진화 과정을 거치며 생태계의 최정점으로 달려갈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해 주었을 것입니다. 바로 가족과 분업체계입니다. 이론의 여지는 있어나 초기 인류들은 매우 이른 시기부터 조직 구성원 간 일부일처제를 시행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부일처제는 사회 내 구성원간 성적 욕망으로 부터 발생하는 구성원 간의 분열을 예방하는 매우 효과적인 제도적 장치입니다. 그리고 분명한 혈연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세대간 가족 단위의 결합력을 높여 주고 구성원간의 매우 적절한 분업체계를 완성시켜 줍니다. 나이가 들어 자연 도태되어야 할 구성원들을 가족이라는 틀 속에서 보호해 주고 이들에게 교육과 유아 양육을 맡김으로써 조직 내 노동력은 질적, 양적 확장이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인간을 포함한 초기 인류(호미니드)는 다른 그 어떤 포유류 보다 긴 시간의 영유아 기간을 거치게 됩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경우 6~7세에 초산을 하고 15세 전에 사망하였으니 전 생애 동안 3~4차례 가임 기간을 가지게 됩니다. 다른 포유 동물에 비해 매우 늦은 가임 연령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 만큼 영유아 기간을 길게 보낸다는 것을 의미하며 어미만이 계속 아이를 돌보아야 한다면 가임 기간 내 출산률을 자동적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반면 만약 사회 구성원 내 가임기를 지난 구성원이 아이의 양육과 교육을 전담한다면 가임 여성들은 출산과 가사 활동에 대한 부담을 크게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축적된 삶의 지식과 다양한 도구 제작 기술들이 연장자로부터의 교육을 통해 후대에 전승됨으로써 사회 내 지식들이 끊임없이 축적되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즉, 가족 단위의 분업체계의 정립과 집중 교육 시스템은 초기의 인류가 생태계의 다른 동물들과 비교해 매우 독특한 방향으로 진화하고 도구 체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인류 진화의 긴 시간 동안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천천히 진행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걸어온 독특한 진화의 과정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가장 본질적인 장치들을 발현시켰으며 이후 인류 문명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를 구축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사용하는 가장 기본적인 도구의 틀이 구석기시대에 출현했으며 앞서 언급했듯이 교육과 가족단위의 사회 조직, 그리고 여기서 발현되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룰 등이 이미 구석기시대에 완성된 것입니다. 즉, 오늘날과 같이 발전된 인간의 문명은 구석기시대라는 까마득한 옛날 급변하는 기후 조건에서 멸종하지 않고 끊임없이 진화의 길을 걸어며 채택한 삶의 방식들이 발현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약 1000만년~500만년 사이 한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고등 영장류들(침팬치, 고릴라, 오랑우탄, 호미니드(고인류) 등)이 서로 상이한 적응 양식으로 진화의 과정을 거쳐 왔는데, 만약 호미니드들이 다른 침팬치나 고릴라의 적응방식과 유사하게 진화하였다면 오늘날의 인류는 이 지구상에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구석기시대를 바라보는 관점은 이렇듯 기나긴 진화의 과정을 거치며 축적된 독특한 적응 양식이 발현되어 인간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틀이 만들어지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석기시대를 이해하는 것은 인간 본연이 가지는 가장 근본 적인 질문에 해당하며 풀어내야 할 "문제 중의 문제"인 것입니다.

글: 강상식 학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