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적세에서 충적세로의 전이 "문명의 발생 2편"

2012. 2. 15. 12:32삶이 깃든 이야기/문화유산

약 190만년 전 남아프리카에서는 전지구를 여행하게 될 새로운 종류의 호미니드가 출현하게 됩니다. 일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호모 에르가스트로 불리게 된 이 호미니드는 이후 호모 에렉투스(직립원인)라는 매우 유명한 이름을 얻게 됩니다. 이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속의 여러 호미니드들과 호모 하빌리스와 비교해 완전히 직립해 걸을 수 있었으며 키가 크고 체격이 매우 튼튼해 아주 먼 거리를 이동하는데 크게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두뇌용량도 크게 증가하여 750CC~1350CC정도에 이르게 되며 늦은 단계의 에렉투스 종인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는 옛 호모 사피엔스와 견주어 크게 뒤지지 않는 두뇌용량과 인지능력을 갖추었습니다. 약 100만년 전 무렵에 이르게 되면 함께 동아프리카 대륙을 활보하던 많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속들의 호미니들은 멸종하게 되며 호모 에렉투스들은 추운 빙하기 육지로 연결된 서남아시아지역을 거쳐 구대륙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프리카를 벗어난 지역에 인류의 거주가 시작된 것입니다. 아프리카와 접한 서남아시아의 여러 유적에서 이 시기에 해당하는 호모 에렉투스들의 인골들이 발견되고 있으며 전곡리구석기축제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매년 전곡리유적을 방문하는 스페인의 아따뿌에르까 유적에서는 약 80만년 전의 호모 에렉투스 인골이 발견되어 유럽에서 최초로 고인류가 거주한 지역으로 지금까지는 알려져 있습니다(물론 나중에 새로운 자료가 출토된다면 상황은 바뀌겠지만요).

아프리카를 벗어난 호모 에렉투스들은 구대륙 곳곳으로 퍼져 나갔는데, 인도네시아 자바, 중국의 베이징 동굴 등지에서 이들의 화석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유럽으로 진출한 호모 에렉투스들은 높은 알프스 산맥을 넘어 프랑스, 독일, 영국 등지로 확산되어 갔으며 약 50만년~30만년 사이 유럽 대륙에 아슐리안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아슐리안 문화가 저물어 가는 홍적세 중기 후반이 되면 유럽의 경우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에서 진화한 것으로 추정되는 네안데르탈이 출현하여 무스테리안이라는 독특한 석기문화를 발전시켰으며 비슷한 시기의 아프리카 남부 지역에서는 옛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하여 북쪽으로 활동지역을 넓혀 갔습니다. 이 시기 동아시아 지역은 매우 불확실한 지대로 남아 있는데, 아직까지 네안데르탈이 발견되지 않고 있으며 옛 호모 사피엔스의 화석자료도 출토되지 않았습니다. 이 때의 동아시아지역은 호모 에렉투스가 거주 환경에 적응하여 독특한 방식으로 진화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섬과 같이 매우 제한적인 환경조건에서 아주 작은 체구로 진화한 호모 프로렌시엔시스(이 종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발견된 개체수가 적고 일부에서는 뇌관련 질병으로 인해 키가 크지 못한 사례로 보기도 합니다)를 들 수 있습니다. 한반도의 경우,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북한 자료를 제외하고 임진-한탄강 유역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들인 파주 장산리 유적과 전곡리유적의 경우, 인골화석 자료가 출토되지 않아 매우 제한적인 설명만 가능하지만 석기만을 놓고 보았을 때, 네안데르탈이나 호모 사피엔스 석기 제작 기술과의 관련성이 매우 희박하기 때문에 호모 에렉투스 유적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홍적세가 끝나갈 무렵 남아프리카 끝에서 진정한 의미의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하여 전세계로 퍼져나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우리와 완전히 형질적으로 동일한 이 종은 매우 발달한 도구 체계를 갖추었고 자유자재로 불을 다룰 수 있었으며 초월적 자아에 대한 사고를 각 종 종교적 행위로 표출하고 음악, 미술 등 예술세계에 대한 탐닉이 가능할 정도로 인식체계가 확장되었습니다. 확장된 인식체계로 인해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대처와 적응 능력이 극도로 발달하여 이전에는 인간의 거주가 불가능했던 극지방까지 진출하였으며 베링해를 건너 이전까지 그 어떤 인류 조상들에게도 허락되지 않았았던 아메리카 대륙에 두발을 내딪게 되었습니다. 유럽으로 진출한 호모 사피엔스들은 이 땅에 거주하던 네안데르탈과 심각한 영토 분쟁을 겪었을 수도 있으며 보다 발전한 무기 체계와 조직력을 갖추고 이들을 멸종시켜 나갔을 것입니다. 다른 대륙도 비슷한 국면에 처했을 것인데, 약 3만년~2만년 전이 되면 전세계가 이들의 발자취로 뒤덮히게 되며 다른 종류의 호미니들은 지구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한반도 역시 이 시기가 도래하면 전곡리유적의 주먹도끼를 필두로 하는 고졸한 형태의 석기들이 사라지고 슴베찌르개, 각 종 돌날 석기 등 후기구석기시대의 전형적인 석기들이 발견됩니다. 아마도 새로이 유입된 인류가 아주 오래전 부터 이곳에서 살아왔을 전곡리 구석기인들을 몰아내고 새로운 주인으로 등극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이전의 수많은 호미니드들(투마이를 비롯한 최초의 직립보행 종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속에 속하는 매우 다양한 종들,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와 네안데르탈)이 적응방산하면서 진화한 결과의 집약체입니다. 인간의 진화는 대개 매우 단선적이고 직선적인 진화모델(원숭이-오스트랄로피테쿠스-호모 하빌리스-호모 에렉투스-네안데르탈-호모 사피엔스)로 설명되곤 하지만 사실 이렇게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종들이 지구상에 출현했다가 사라져 갔으며 진정으로 우리의 조상이 어떤 계보와 어떤 과정을 통해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했는지는 여전히 풀어야할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적세라는 급변하는 기후 조건 하에서 인간의 조상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여 진화해 왔으며 지구 생태계의 지배자로서 이후 문명의 창시자로서 역할을 하게될 호모 사피엔스, 즉 인간을 지구상에 출현시켰습니다. 그리고 이 존재는 그 어떤 동물군도 갖지 못한 기술체계와 사고체계, 그리고 사회 조직체계를 갖추고 전세계로 퍼져나갔으며 빙하기에 적응해 몸집을 크게 불려 적어도 포유류가 지배하는 지구 상에서는 이들을 잡아 먹을 수 있는 포식자가 없을 것 같았던 각 종 대형동물(매머드, 메갈로케로스, 순록 등)을 사냥하며 극심한 추위가 찾아온 최후 빙하기를 순조롭게(?)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따뜻한 간빙기가 도래하는 충적세로의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글쓴이: 강상식 학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