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2013. 7. 29. 17:46삶이 깃든 이야기/심정공감

 

요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웃음'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책에 소개된 모든 상황은 작가가 만들어 낸 허구의 산물이지요. 그중 고 인류(저는 호모 에렉투수로 상상)가 집단으로 경험한 최초의 웃음이 픽션이지만 가능성이 전혀 없지 않겠다^^ 는 생각으로 발췌했습니다.

그 내용은

 

 

 

기원전 321,255.

오늘날의 캐냐에 해당하는 동부 아프리카의 어느 곳.

원시 인류의 두 부족이 멀리서 서로를 발견했다. 그들은 작은 무리를 지어 돌아 다니다가 다른 무리와 마주치면 보통은 서로 피해간다.

 

하지만 이번에는 날씨가 너무 좋아서 그랬는지 맡 붙어 싸워서 상대편 여자들을 빼앗기로 결심한다. 그리하여 일대 혼전이 벌어진다.

 

상대편에게 최고의 피해를 안기기 위해 저마다 몽둥이와 돌멩이를 들고 되도록 강하고 빠르게 공격한다. 싸움터 한 복판에서는 양쪽의 우두머리가 서로를 알아보고 날카로운 눈빛을 주고 받는다.

 

남쪽 부족의 우두머리는 키기 작고 발이 큼직하다. 북쪽 부족의 우두머리는 키가 크고 어깨가 넓다. 그들은 결연하게 서로 다가든다. 즉시 모두의 눈길이 그들에게 쏠린다.

 

우두머리 대결을 지켜보기 위해 뒤로 물러나서 동그렇게 늘어선다. 양쪽에서 응원의 외침이 터져 나온다. 두 우두머리는 서로를 노려보면서 으르렁 거리는 소리와 거친 몸짓으로 상대를 위협한다. 발로 땅바닥을 세차게 치기도 하고 노기가 등등한 눈을 부라리기도 한다.

 

부족의 생존이 이 대결에 달려 있다는 것을 모두가 예감하고 있다. 그때 남쪽의 우두머리가 쉰 목소리로 고함을 내 지르며 흙 한줌을 상대의 눈에 뿌리고 상대가 눈을 비비는 사이에 발길질로 상대를 쓰러뜨린다.

 

그러고는 커다란 돌덩어리를 주워들고 상대의 머리통을 호두처럼 으깨어버릴 기세로 아주 높이 치켜든다. 뒤에 있는 그의 부족은 무아지경에 빠진 채로 ,죽여라! 죽여라!>에 해당하는 소리를 박자에 맞춰 질러댄다.

 

반대로 상대편 부족 사람들은 <일어나! 일어나!>에 해당하는 소리를 외쳐댄다. 남쪽 우두머리는 돌덩이를 치켜든 채로 상대의 머리통을 박살내기에 가장 좋은 각도를 가늠한다.

 

한순간, 모두가 숨을 죽이고 사위가 정적에 휩싸인다.

 

바로 그때 하늘에 날던 독수리가 똥을산다. 흐벅지고 끈적끈적한 똥이 돌덩어리를 치켜든 우두머리의 눈에 정통으로 떨어진다. 남쪽 우두머리는 눈앞이 갑자기 캄캄해지자 깜짝 놀라며 돌덩어리를 놓친다. 돌덩어리는 그의 발가락으로 곧장 떨어진다. 그는 <아야!>를 뜻하는 날카로운 비명을 내 지르고 두 손으로 발을 움켜지며 제자리에서 팔짝 거리기 시작한다.

 

땅바닥에 쓰러진 우두머리의 눈에는 그 모든 광경이 느린 화면처럼 떨어진다. 먼저 그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딱딱하게 굳어 있던 것이 확 풀리는 느낌이 든다. 공포심이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이어서 무언가 새로운 것이 느껴진다. 목구멍이 간질간질하고 뜨거운 기운 같은 것이 올라온다. 그 기운은 머릿속과 목구멍에 이어서 입과 배로 동시에 퍼져 나간다. 휭경막이 수축하고 딸국질과 함께 입술사이로 공기가 빠져 나간다.

 

처음에 머릿속에서 어떤 신호가 떨어지고 입에서 공기가 빠져나가는데 까지 걸린 시간은 수십 분의 1초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생리적인 과정이 한번 시작되고 나니 더 이상 그것을 멎게 할 수가 없다. 북쪽 우두머리는 끊어졌다 이어지기를 반복하는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공기를 계속 뱉어낸다. 폭소가 터진 것이다.

 

북쪽 부족의 다른 구성원들은 모두 그것에 전염된 것처럼 하늘에서 내려준 그 엉뚱한 결말 앞에서 안도감과 놀라움을 느끼며 딸국 거리기 시작한다.

남쪽 부족의 구성원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와 똑같은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모두가 얼굴을 활짝 펴고 요란한 소리를 낸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게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이때까지 웃음은 주로 개인적인 경험이거나 기껏해야 식구들 간의 경험이었다. 이번에는 수십 명이 한자리에 모여 똑같은 사건을 마주하고 함께 웃는 것이다

 

남쪽 우두머리는 독수리 똥을 닦아내고 나서 다시 싸울 태세를 취한다. 이왕 시작한일을 끝내려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 부족의 구성원들이 큰소리로 웃는 것을 보고는 그런 행동을 할 때가 아님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는 남들을 따라 웃기 시작한다. 이제는 양진영의 어느 누구도 적을 죽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무언가가 그들의 마음을 변화 시킨 것이다.

 

결국 두 부족은 서로 결합해서 하나의 부족을 이루기로 결정한다. 운명적인 순간에 하늘에서 떨어진 독수리 똥 이야기는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진다.

 

후대인들은 그 사건을 찬양하고 흉내 내고 연기하고 세세한 대목을 보태어 풍부하게 만든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이야기 하든 듣는 사람들은 마치 그 놀라운 장면이 실제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처럼 웃음을 터뜨린다.

 

유머의 역사를 보면 예로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 재미난 이야기들이 아주 많지만 최초의 이야기는 그렇게 생겨났다. 기나긴 세월이 흐른 뒤에 역사가들은 바로 그 시기에 인류가 진화의 새로운 단계로 도약했음을 밝혀낸다.

 

유머 기사단 총본부편() 유모 역사 대전(大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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