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편 지상생활과 영계 - 제1장 인간 본연의 삶과 죽음_ 3절

2013. 3. 6. 13:39참사랑 영원까지/천성경

3절 죽음이란

1 우리가 하나님을 닮고 싶어하고, 하나님도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당신을 닮게 하고 싶어하는 소망을 갖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다시 하나님과 닮을 수 있는 체를 입고 태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과 인간은 함께 영원히 날 수 있는 날을 고대합니다. 그렇게 날 수 있는 사람으로 태어나는 날, 그런 몸으로 태어나는 날, 그날이 바로 육신을 벗는 죽음의 날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죽음을 환영해야 되겠습니까, 아니면 슬퍼해야 되겠습니까? 물론 환영해야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죽는 데는 무엇을 위해 죽어야겠습니까? 하나님의 참사랑, 즉 위하는 사랑을 위해서 죽겠다고 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육신을 벗는다는 것은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의 활동권에 우리가 동참하기 위해서요,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를 위해서입니다.

2 병이 나서 죽게 되면 혼수상태가 벌어집니다.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모릅니다. 거기서부터 자기가 가서 살아야 할 곳의 모든 것을 보게 됩니다. 자기가 가서 살 곳의 동지들이 와서 자기를 환영해 주고, 전개되는 방대한 천국이 얼마나 호화찬란한지 ‘나도 어서 가야 되겠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리 가다 보니 죽는 것입니다. 점점점 좋은 곳을 향해서 1차 2차 3차 문을 지나게 되면 저나라에 들어가고, 거두어지는 것입니다. 죽음은 낙담이나 낙심을 할 일이 아닙니다.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약하게 됩니다. 승화(昇華)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죽음은 이런 자연 순환법도에 의해서 옵니다. 더 좋은 세계로 옮겨 주기 위한 절차입니다.

새로운 인생의 출발
3 일반 사람들은 죽으면 다 없어진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영계가 있기 때문에 그대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영계에 가기 위해서는 지상에서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영계에 가면 사랑으로 호흡하기 때문에 지상에서 사랑을 중심삼고 생활해야 거기서도 자유스럽게 호흡할 수 있습니다. 지상에서 사랑을 중심삼고 생활하지 않으면 거기에서 자유롭게 호흡할 수 없습니다. 영계는 사랑을 호흡하는 세계입니다. 사랑의 공기와 같은 세계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제2의 새로운 출발을 죽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무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죽음은 새로운 출발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4 생명과 죽음을 두고 볼 때 어느 것이 강합니까? 죽음보다 생명이 강합니까, 생명보다 죽음이 더 강합니까? 사탄세계에서는 생명보다 죽음이 더 강합니다. 그러므로 뜻을 알고 난 후에는 죽어야 할 자리에서 죽기 싫어하면 안 됩니다. 죽어야만 부활합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이란 무엇을 말하느냐? 하나님이 영원히 가질 수 있는 생명을 죽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세계의 타락한 혈통을 이어받은 생명을 죽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뜻을 위해 죽으려는 사람은 산다는 것입니다.

5 인간이 육신생활을 마친 다음에는 제2의 출생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죽음입니다. 제2의 출생을 하는 곳, 죽어서 가는 세계가 바로 영계입니다. 그 세계에 들어가서 제3의 부모인 하나님으로부터 우주 전체를 대표한 참사랑을 공급받습니다. 이상적인 참사랑을 공급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계에서는 통일이 안 될 수 없습니다. 죽는 순간부터는 제2 공기세계를 차 버리고 새로운 제3 사랑의 호흡기관의 세계에 연결돼야 합니다. 부모의 사랑, 형제의 사랑을 차 버리고 영계로 들어가서 결국은 대우주의 하나님 본체에 화한 참사랑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씨가 본체에서 나왔으니 결과를 맺고 다시 본체로 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6 인간이 죽는 것은 육신으로는 제한된 사랑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한대의 하나님의 참사랑의 대상적 실권을 가지려면 제한된 육신을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형의 영으로 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아가 참사랑의 이상을 온 천지와 더불어 같이 동일화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은 고통길이 아니라 우주적 참사랑을 소유할 수 있는 행복의 문을 여는 시간입니다. 죽음은 기고 걸어 다니는 지상세계로부터 훨훨 날아다니며 살 수 있는 세계로 옮기는 것입니다. 온 우주를 자기 무대로 해서 참사랑으로 즐길 수 있는 여행 자격자가 되고, 그런 세계로 입문하기 위해서 죽는 길을 가게 됩니다. 그러니 죽는 것이 바로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7 우리는 어느 땐가 육신을 벗고 영계로 가야 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태어난 우리는 죽음을 각오해야 됩니다. 또한 선한 자아를 영원한 세계에 제2의 나로 세우기 위해서는 고생해야 됩니다. 어머니의 복중에서 태교를 잘 받아야만 건강하고 선한 아기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 지상세계에서의 생활은 복중에서의 생활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고, 하나님의 심정을 본받고, 하나님의 거룩한 신성을 본받으며 자라야 됩니다. 자라서 또 생명을 걸고 넘어가야 됩니다.

8 죽음은 제2의 출생이기 때문에 비참한 것이 아닙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과 공명권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공명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상에서 사랑을 중심삼고 생활하게 되면 영계의 사랑과 같은 파장 기준이 되어 있기 때문에 지상에 살면서 영적 세계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지상에서 부모한테서 태어나 부모와 더불어 살면서 부모한테 배워 지상생활을 완성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천상세계의 사랑의 모체인 하나님을 중심삼고 다시 태어나 하늘 부모와 더불어 영원한 사랑의 세계에서 내적 오관을 완성한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하나님의 친구로서, 하나님의 몸으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이 죽음이 아닙니다. 죽음은 제2의 생으로, 유한한 세계에서 무한한 세계로 가는 데 있어서의 한계선을 격파하기 위한 것이요, 고개를 넘기 위한 것입니다.

9 죽음은 물속에 있던 때에 탯줄과 물주머니를 터뜨리고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코 세계의 이 공기세계, 이 제한적 세계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제2 출생입니다. 그것이 곧 죽음입니다. 그래서 제1 조상이 있고, 제2 조상이 있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고 세상에서 살던 것에서 무한한 부모, 영원한 부모, 하나님의 사랑의 자리를 찾아가서 하나님의 품에 품겨 무한대의 생명과 사랑의 인연을 맺어 사랑을 공기처럼 마시면서 영원히 살 수 있는 본향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했으니 이런 사랑의 실권을 내가 이루어 감으로써 내가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대등한 가치를 갖게 됩니다.

10 인간은 어차피 영계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에 영계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말 가운데 재미있는 말이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어디로 돌아가느냐? 공동묘지로 가는 것은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출발하였던 본처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그 출발지가 공동묘지가 아닙니다. 멀고 먼 역사의 기원을 넘어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돌아간다는 것은 한국 사람으로 태어나서 한국 사람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 사람으로 죽었지만 한국 사람으로 돌아가는 그 길이 아닙니다. 인류조상의 근원 세계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창조주가 계시는 곳으로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거기에서 출발했으니 거기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11 한국에서는 나이가 많아서 죽으면 ‘돌아가셨다.’라고 말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왜 안 계시느냐고 물으면 ‘돌아가셨다.’라고 하지요? 어디로 돌아갔느냐? 영계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본래 무형의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본연의 고향이 무형의 세계입니다. 무형의 세계에서부터 유형의 세계를 거쳐 땅 위에서 번식해 가지고 살다가 다시 무형의 세계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렇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무형의 아버지로부터 출발하여 유형의 아버지를 통해 어머니 몸을 빌려서 태어나 살다가 유형세계의 몸은 벗어 놓고 본연의 형태로 돌아가는 것이 영계에 가는 것입니다.

12 우리 인간은 태어나면 죽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죽으면 어디로 가느냐? 연기가 사라져 버리듯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영계에 가게 마련입니다. 영계에 가게 되면 영계의 나라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영계의 주인이 누구이겠습니까? 하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지 못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13 여러분은 영계의 사실을 모를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하나님의 특별한 혜택을 입어 미지의 세계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세계의 근본을 헤쳐 보니 원칙은 간단했습니다. 그 세계는 하나님의 천지원칙, 이상적 근원인 위하여 산 사람만이 가는 곳입니다. 그러한 내용으로 형성된 세계가 이상천국입니다. 그곳이 인간이 찾아가야 할 본향입니다. 우리는 타락한 인생으로서 본향에서 추방당한 인간이 되었기 때문에 본향 땅을 향하여 돌아가야 할 운명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인간 자체로서는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간이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역사과정에 설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사랑세계로 가는 것
14 우리는 알든 모르든 어느 곳을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내가 움직이는 시간에도 가고 있고, 쉬고 있는 시간에도 가고 있습니다. 비단 나뿐만 아니고 이 민족, 혹은 이 세계, 더 나아가 하늘과 땅까지도 어떠한 곳을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일생을 거친 후에 나는 어떠한 곳으로 갈 것인가? 이것이 인간이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종교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철학도 역사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동원돼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자신도 이런 운세에 사로잡혀 이끌려 가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어차피 가야 할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가 살다 죽는 날, 이 몸은 흙에 묻힘으로써 끝납니다. 그러면 몸이 묻히는 날 마음도, 생명도, 심정도, 이념도, 혹은 소원까지도 같이 묻혀 버리고 마는 것인가? 내용과 해결점과 확실한 목적관을 세워 놓지 않은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15 하나님이 인간의 부모라면 인간을 어떻게, 왜 지었느냐?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를 지을 때 하나님의 사랑에 동참시킨 자리에서부터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서 출발하여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서 자라,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서 성숙하여 가정을 이루고, 이 땅 위에서 세계적인 사랑과 연결시킬 수 있는 성숙자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의 품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인생길입니다.

16 인간은 영물이기 때문에 그 생명이 영원합니다. 사람들이 하늘 앞에 충성을 다하고 하늘을 위하여 죽음의 길도 가고 많은 사람이 싫다 하는 길도 소망을 품고 간 것은, 보통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꼈고 보통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가치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랬기에 죽음의 길도 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현실생활에서 부딪치는 어떠한 역경과 슬픔, 죽음보다도 더 강하지 못하면, 여러분은 죽음 앞에서 후회할 자요 슬픔과 고통 앞에서 후퇴하는 자밖에 되지 못합니다.

17 여러분은 어머니 아버지한테서 태어났습니다. 근본적인 입장에서 어디에서 나왔느냐?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어머니 아버지의 뱃속을 빌려 가지고 나왔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여러분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태어난 것은 참부모를, 참된 부모를 찾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우주의 부모를 통하고 몸의 부모를 통해서 참된 부모를 찾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죽음은 참된 부모를 만나러 가는 환희의 시간입니다. 거기에는 참된 부모의 참된 사랑이 있습니다. 그것을 영적 천국이라고 합니다. 그곳의 구성요소는 사랑입니다. 참부모의 사랑이 충만한 곳입니다. 그 사랑은 봉사와 희생의 원칙을 통한 사랑입니다. 이것은 일방적인 법도를 통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합격될 수 있는 합격자가 되기 위해서는 만우주를 내가 사랑해야 됩니다. 이 지상생활은 인류를 사랑하기 위한 시험장이요 훈련 장소입니다. 이것이 우주의 근본입니다. 인간이 살아생전 이런 체험과 이런 사랑을 가지고 살다가 합격되어 가면 틀림없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18 인간은 하나님을 닮고 싶어하고, 하나님도 마찬가지의 관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 사람은 다시 하나님과 닮을 수 있는 체를 입고 태어나야 됩니다. 그런 날을 하나님도 고대하고 인간도 고대합니다. 그런 사람으로 태어나는 날이 죽는 날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인간은 죽음을 환영해야 되겠습니까, 환영하지 말아야 되겠습니까? 환영해야 됩니다. 죽는 데는 뭣 때문에 죽을 것이냐 할 때에 ‘하나님의 참사랑을 위해서 죽겠다.’라고 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육신을 벗는 것은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의 활동권에 내가 동참하기 위해서요,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를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태어나는 것이 죽는 것인데, 인간세계에서는 ‘아이고, 죽는다!’ 하고 야단합니다. 제한된 사랑권 내에서 무제한의 사랑권 내로 돌입하는 기쁨을 맞는 순간이 제2의 출생의 순간인 죽음길을 통하는 순간입니다. 여러분은 죽음의 공포에서 해탈하지 않고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19 인간은 사는 데도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살아가는 인간의 목적이 전부 다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라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할 우리는 저 밑창에 가서 죽을 수 없습니다. 최고의 자리에서 죽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나라를 중심삼고 죽어야 됩니다. 천상천하에 하나밖에 없는 하늘나라에서 죽는 것입니다. 죽는 데도 방법이 있습니다. 죽는 데도 자리가 있습니다. 시시하게 한국적인 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최고의 자리, 천상천하를 통과한 하나님의 심정의 나라를 중심삼은 최고의 자리에서 죽어야 합니다. 하늘나라 복판에서 죽어야 됩니다. 천하가 깃발을 들고 환영하는 자리에서 죽어야 합니다.

20 하늘의 소망을 품고 사는 사람은 인간이 슬퍼하는 죽음의 고개도 기쁨으로 넘어설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하늘의 소망을 품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죽음을 앞에 놓고 세상만사를 원망하고 탄식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기뻐하고 하늘 앞에 서서 자기 죽음의 가치를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늘은 이러한 소망의 아들딸들을 찾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리에 서서 하늘의 기쁨을 느낀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으려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하늘을 대하여 울부짖는 무리가 있다고 한다면 하늘이 그 울부짖음에 응답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